소설리스트

그 남자의 사육법-48화 (48/54)

48화 ? 복수의 시간 (3)

단 후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를 마주한 가혜는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나.

가슴께에 있던 손은 여전히 그대로인 채였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가만히 있자 시곗바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그 상태로 있던 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표정이 없는 거예요, 아니면 표정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 거예요?”

“…….”

묵비권을 행사하던 단 후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비켜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엇갈리던 찰나에 그녀는 손을 떼고 상체를 일으켰다. 제 자리에 앉고서 팔짱을 낀 가혜는 아예 단 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난처한 건 눈앞의 남자만이 아니었다.

‘속 시원하게 물어보면…….’

가혜는 눈을 깜박였다. 느릿하게 내려온 눈꺼풀이 다시 느릿하게 올라갔다.

사실을 알게 되면 무언가 해답이 나올 것만 같아서 물어보았다. 당신이 내게 저질렀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가. 팔짱을 낀 손 중에서 그의 가슴에 닿았던 손바닥이 뜨거웠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뛰어대던 심장이 아직도 손바닥 아래에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을 지워 보고자 팔짱을 풀고 손가락을 마주 잡아 깍지를 꼈다.

‘가장 아프게 복수를 하는 법을 찾았는데.’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제 가슴 한켠이 시렸다.

“질문은, 이게 끝인가?”

말없이 그녀의 반응을 살피던 단 후가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을 보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가혜가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딜 가려고요. 이제 시작인데 아직 멀었어요.”

“그런가.”

“네. 그러니까 앉아 있어요.”

싸늘한 목소리는 제가 들어도 낯선 것이었다. 단 후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제 얼굴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그 행동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단숨에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내 조사를 했어요.”

“내가 토키와 회의 조장이 되었을 때부터.”

“그때가 정확히 언제냐고요.”

“7년 전.”

“왜 했어요?”

가혜의 질문에 단 후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조장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 가혜의 생사 여부였다. 왜 그런가 묻는다면 사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원망을 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제 죽음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을.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해 타인의 생명을 거두게 만들었던 계집아이를.

수십의 피가 묻어 주홍글씨처럼 남았다. 생부와 배다른 형제들을 하나씩 죽여 나갔을 땐 아무리 씻어도 피비린내가 지지 않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아니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를, 저를 죽이려는 형제 따위. 하지만 한참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앉아있으면 핏물을 씻어내는 게 아니라 핏물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저도 살아내겠으니 당신도 살라고 했던 자그마한 계집아이가 문득 떠올랐다. 이유도 없이. 그저 기억이 떠올랐고 궁금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찾으라 했던 것이 전부였다.

나를 이 지옥에 던져둔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이것이 진심이었다.

단 후는 제가 떠올린 대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억지로 묻어 두었던 제 감정을 낱낱이 들췄다.

“왜 나를 찾았어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단 후가 가혜를 바라보았다. 고스란히 떨어진 시선이 어둠을 살라 먹은 듯 짙어져 있었다. 감춰 두었던 진심이 둑이 터지듯 나왔다.

“네가 미워서.”

“뭐……뭐라고……요?”

당황해 하는 가혜를 직시하며 감정을 쏟아 부었다.

“네가 미워서, 최가혜. 그래서 널 찾아냈어.”

차가운 눈빛과 숨 막히는 압박감은 그의 진심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나운 기세를 온전히 받으며 가혜는 몸을 떨었다. 살기가 피부에 닿자 오싹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떨리는 몸을 겨우 부여잡고 그를 보았다.

“나를 왜…… 미워했는데요.”

그의 눈빛이 더욱 거칠게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살렸으니까.”

분노를 곱씹듯 그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네가 나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으니까.”

뜨거운 눈빛과 상반되는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모습에서 가혜는 그의 상처를 읽고 말았다. 곪고 곪아 이제는 본래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 끌어안고 있었던 상처는 길고 깊었다.

윤석에게서 들었던 단 후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계입니다. 세 명의 형제들은 본처 소생이었고 조장님은 실수로 생긴 혼혈에 불과했습니다. 4대째는 오점인 조장님을 항상 이 세상에서 지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건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죠.

뒤이어 단 영의 얼굴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갔다고 말하던 그녀는 꽃처럼 웃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듯 소녀 같은 얼굴에는 말간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혜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안쪽으로 왈칵 핏물이 흘러나왔지만 이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고통에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단 영은 일이 이렇게 어긋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단 후는 그들의 자식이라, 혹은 죽음이 눈앞에 닥친 그녀를 동정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러 와 주리라. 그렇게 믿었기에 숨겨둔 아들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홀로 남을 아들에게 가족을 남겨주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가혜의 두 눈에 안타까움이 스며들었다. 윤석의 말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원래라면 조장님은 평생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한국에서 살았을 겁니다.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왜 일본으로 오게 되었나요?

─조장님의 어머니가 4대째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죠. 그 분은 병으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4대째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조장님은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으로 오셨죠. 그전까지는 조장님의 존재는 모르고 있었으니, 그의 등장에 난리가 났었죠.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이.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마음이.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남은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선택지였다. 그제야 가혜는 단 후가 왜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알았다.

그는, 제가 죽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생(生)은 타인의 사(死)와 맞바꾸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죽으려고 했었다.

가혜의 눈동자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그걸 내가 살렸어.’

누구도 구원 받지 못하는 이야기 속에 자신 역시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단 후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눈에 선명히 읽히는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드러냈던 상처를 갈무리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겠다고 했었지.”

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을 죽이고, 또 죽여서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았어.”

단 후는 손을 뻗어 떨고 있는 가혜의 뺨을 쓸었다. 작은 동물의 것처럼 커다란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내내 밝은 세상 속에서 웃고 있는 너를 보았어.”

뺨을 만지는 단 후의 손 위로 가혜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이 지나갈 때마다 그의 심장에도 같은 길이 생겨났다.

“행복해하는 널 볼 때면 미움이 깊어지다가도 동지의식을 느꼈어. 너도, 나도 살아있으니까.”

가혜의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이 또다시 그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네가 있는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품었어.”

닿을 수 없는 태양을 바라는 해바라기처럼 네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 생각하던 단 후는 한 쪽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아니, 해바라기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태양 주위를 날고 있는 이카루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네가 있는 세상에 닿을 수 없었지.”

태양에 다가가면 갈수록 양초로 이어붙인 깃털이 녹아 하나둘씩 떨어졌다. 애초에 그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마지막 낙하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결정했다.

“내가 네 세상으로 갈 수가 없다면 너를 이곳으로 끌어당기면 된다고.”

단 후의 얼굴을 보고 있던 가혜가 두 눈을 감았다.

“그래서 너를 이곳에 데려왔어.”

나의 지옥에.

* * *

“식사 시간입니다.”

열린 문 앞에 서서 윤석이 노크를 했다. 무릎을 세운 채 소파에 앉아있던 가혜가 눈살을 찌푸렸다.

“노크는 문을 열기 전에 하는 거예요.”

그녀의 타박에 윤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몇 번이나 노크를 했는데 못 들은 사람이 잘못이죠.”

새벽에 단 후가 떠난 뒤로 가혜는 잠을 들지 못했다. 내내 우울해 하던 가혜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아직까지도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윤석은 쇼핑백을 들고 가혜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던 것이 생각나 그는 병원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준비해서 왔다.

근처에 한식을 잘하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입맛이 없는 가혜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에는 잡채와 불고기, 그 밖에 다른 반찬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지난번에 한식을 먹고 싶다고 했으니 어쩌면 몇 술이라도 뜰지 몰랐다.

“국부터 좀 뜨고 밥 먹어요. 바로 먹으면 안 넘어갑니다.”

후식까지 준비된 도시락을 가혜의 앞에 펼친 윤석은 그녀의 손에 젓가락까지 쥐어주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윤석의 호의라는 건 알지만 그다지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먹으면 바로 체할 것 같은 기분이라 가혜는 도시락에서 시선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생각해서 사 왔는데 이러는 거 아닙니다.”

윤석의 투정에 가혜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인사 말고, 밥을 먹으라니까요. 포도당 주사로 때울 생각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주사를 맞겠다고 팔을 내밀 참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윤석이 선수를 쳤다.

“밥상머리 앞에서 한숨 쉬는 거 아닙니다.”

윤석의 지적이 끝나기 무섭게 가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제 말은…….”

“단 후에게 토키와 회가 중요해요?”

엉뚱한 질문에 잔소리를 하려던 윤석의 입이 한 일자로 다물렸다. 그는 제게 물음을 던진 가혜를 자세히 살폈다.

“복수니까요.”

“복수…….”

젓가락을 쥔 채로 손을 꼼지락거리던 가혜가 다시 윤석을 보았다.

“아직도 복수할 사람이 남았어요?”

“없을 겁니다.”

“그래요.”

가혜가 젓가락질을 하지 않자 윤석이 쇼핑백에서 일회용 젓가락과 숟가락을 꺼냈다. 그녀를 대신해서 국을 뜬 그가 숟가락을 내밀었다. 입가에 대주자 어쩔 수 없이 국물을 삼켰다.

몇 번 더 새 모이 주듯 가혜에게 국물을 떠준 윤석이 젓가락으로 밥을 떴다.

“궁금한 게 있으면 한입에 한 번씩으로 합시다. 저도 맨입으로 알려 드릴 수는 없죠.”

제법 좋은 생각이었다.

“국물 먹었잖아요. 두 번은 더 물어도 되네요.”

젓가락 위에 있는 밥을 보다가 가혜가 뚱하게 대답했다.

“뭐, 좋습니다. 물어보세요. 얼른.”

덜었던 밥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서 윤석이 가혜를 응시했다. 그도 궁금했던 참이었다. 새벽에 병실을 나선 단 후 역시 내내 가혜와 똑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이 시점에 조직의 보스가 넋을 놓고 있었다. 윤석은 제 신세를 한탄하며 가혜의 질문을 기다렸다.

“단 후는 내가 미워서 이곳에 데려왔대요.”

가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윤석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런 쪽으로 요령 없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 본인이 그렇게 말해요?”

“네. 따지고 보면 내가 그에게 복수를 하라고 떠민 것이나 마찬가지라서요.”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가혜는 여기까지는 모르는구나. 혼자 중얼거리고는 다음 질문을 꺼냈다.

“단 후가 복수할 사람은 이제 없고, 단 후에게 복수하고 싶은 사람만 남은 거죠?”

“뭐…… 그렇습니다만.”

“유야라는 사람이 토키와 회를 가지려면 단 후를 죽여야 하나요?”

“토키와 회를 가지기 위해 죽인다기보다 그쪽도 복수를 하는 거라서요.”

“아, 형을…….”

죽였다고 했었죠. 마지막 문장은 눈으로 전한 가혜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죽고 죽이고.

확실히 유야는 단 후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 가혜의 눈이 잔인하게 올라가던 유야의 미소를 떠올렸다.

바닷가에서 유야를 마주한 순간은 여전히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운 기억이었다. 서로를 향한 살의가 현실로 펼쳐지던 그곳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현실성이 뚝 떨어져 나가고 견디기 힘든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했었다.

─싫어! 싫어!

잔상처럼 남은 기억에 가혜의 두 눈이 찡그려졌다. 두통이 일었다.

“이게 뭐지?”

낯선 기억에 머리를 부여잡던 순간 차 안에 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남자가 떠올랐다.

갇혀 있던 기억이 풀리고 있었다.

잊어 버리고 있던 모든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자의 손에 칼이 있었지만 그것은 저를 찌르려는 것보다 위협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는 두려움에 질려 그의 사소한 행동조차 저를 해할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었다.

가혜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가혜 씨?”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겨우 정신을 차린 가혜가 벌벌 떨고 있는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기억 속 칼을 쥐고 있던 손은 피로 젖어 들어 있었다.

“나…….”

살고자 죽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을 해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험하니 칼을 내려두라는 듯 그는 들고 있던 칼을 시트 위에 내려놓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가혜의 손에 있던 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를 찌르던 느낌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피가 튀었다. 한 번 사람을 찌르고 나자 무엇에 홀린 것처럼 칼을 휘둘렀다. 거기에 또 다시 누군가가 다쳤다.

“가혜 씨?”

“나……. 기억이 났어요.”

“네? 무슨……?”

“내가,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죄를 자백하듯 가혜가 윤석에게 말을 꺼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손바닥을 보고는 다시 윤석을 보았다. 그의 표정이 얼어붙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살고 싶어서.”

“가혜 씨? 그게 무슨 소리…….”

“그날 바닷가에서 유야를 만났던 그날!”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가혜는 손바닥으로 제 귀를 감싸 쥐었다. 죽어가던 이의 숨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하하. 무슨 소리를, 가혜 씨의 손에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조장님이…….”

단 후가 죽였다는 말에 신경이 뾰족하게 섰다. 손바닥 아래서 뛰던 단 후의 심장이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거예요? 왜요?”

가혜는 윤석의 말을 자르고 화가 난 사람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도시락이 한꺼번에 아래로 떨어져 바닥이 엉망이 되었다.

윤석의 멱살을 잡은 채 가혜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가혜 씨, 진정하시고…….”

이령처럼 가혜 역시 자신이 타인을 해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리라 예상했었다. 윤석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며 가혜를 다독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잘못을 한 건 그쪽이었어요. 정당방위였다고요.”

윤석의 말에도 가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미워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는 단 후의 말이 그제야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사랑하느냐고 묻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거세게 뛰는 심장을 보며 기저에 깔린 마음으로 그를 비웃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죗값으로 그의 심장을 찢어놓고 말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 고통 속에 그를 몰아넣은 것이 자신이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가 없어서.”

가혜는 단 후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멍하니 눈물을 흘리던 가혜의 신형이 무너졌다.

“가혜 씨! 가혜 씨! 의사, 의사를 불러와.”

쓰러진 가혜를 붙들고 윤석이 외치자 밖에 서 있던 진영이 다급히 의사를 불러왔다.

* * *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일환의 보고에 기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일환과 파트너로 입원실 경호를 맡게 된 터였다. 자연스럽게 가혜의 신변에 대한 정보를 얻은 기욱은 머릿속으로 탈출 루트를 그렸다. 가혜의 상태가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은 기욱은 윤석과 진영이 다른 멤버와 교대를 하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으로도 속에서 초조함이 몰려왔다.

그는 세희가 누워 있는 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서 빨리 해독제를 받아야 했다.

세희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기욱은 유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밤 가혜 씨를 넘길 테니 장소를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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