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의 사육법-30화 (30/54)

30화 ? 쫓고 쫓기는 (7)

단 후가 세워 둔 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변이 포위되어 있었다.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 같은 둔기를 들고 있는 남자들을 발견한 가혜가 가쁘게 숨을 들이마시는 게 느껴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가느다란 숨소리에 단 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어디까지 자신의 신경을 건드릴지 지켜보기라도 할 듯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가혜를 보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대편이 무기를 들고 있고, 수적 열세라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단 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최가혜. 받아.”

차키와 핸드폰을 꺼내 건네자 가혜의 눈동자가 커졌다.

“운전할 줄 알아?”

“네?”

담담한 어조에 가혜의 표정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야쿠자의 외모에 익숙해진 가혜는 이들 또한 야쿠자라는 걸 알았다. 이 밤에 무기를 들고 찾아온 거면 분명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닐 거다.

기절할 것 같은 공포가 머릿속을 침범하고 있었다.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처럼 눈앞에 지지직 노이즈가 생겼다. 그의 목소리도 차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가혜는 눈에 힘을 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최가혜? 내 말 들려? 최가혜 대답해. 운전할 줄 알아?”

가혜는 드문드문 들리는 단 후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는데…….

“안 들려요. 뭐라고 했어요. 아니, 어서 도망가요. 신고를…….”

두서없이 말하는 가혜를 보며 단 후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가혜의 얼굴을 가린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불안해할 것 없어.”

단 후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가혜의 입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감당할 수 있는 공포를 넘어서자 사라졌던 습관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빨간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올랐다. 핏자국이 살짝 비치긴 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단 후는 화를 내는 대신 부드럽게 웃었다.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워?”

가혜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 말고 극한까지 몰릴 정도의 두려움이 또 있을까.

그녀의 시선이 야쿠자가 들고 있는 칼에 닿았다.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은 가로수의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가슴이 선득해졌다.

“괜찮아.”

깜깜한 어둠에 갇혀 있다가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은 음성이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묻고 싶었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혜는 가만히 뺨에 닿는 온기에 매달렸다. 어째서인지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꼭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단 후의 손을 만진 가혜는 두 눈을 깜박였다. 자신의 것과 달랐다. 크고 단단한 손에 요란스럽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제 속도를 찾았다.

가혜는 고개를 들어 단 후의 얼굴을 자세히 올려다보았다.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여겼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달라 보였다.

“운전을 못 하면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어. 윤석의 연락처를 찾아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해. 아니면 경찰에라도 전화를 하든가.”

가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썼던 단 후는 순순히 핸드폰과 차키를 내어주었다. 가혜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과 키를 가지고 가자 그는 곧장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내 뒤에서 벗어나지 마.”

“알았어요.”

단 후가 걸음을 따라 가혜는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저들의 공격을 받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차를 향해 움직일 때마다 상대편에서도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단 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서 뒤늦게 나타난 이를 위해 길을 터주었다.

변성기를 지났지만 어린 태가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토키와 류노스케가 여자 때문에 절절매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가혜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였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는데 상처가 심했는지 안대 아래의 뺨에도 길게 흉터가 이어져 있었다. 얼굴의 좌우의 분위기가 기묘할 정도로 달랐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셨구나.”

그는 멀쩡한 눈으로 가혜를 훑어 내렸다. 머릿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눈빛이 사납게 번들거렸다. 그 시선과 마주친 가혜가 작게 신음을 뱉었다.

단 후가 남자의 시선을 끊어 내듯 입을 열었다.

“나머지 하나도 그때 같이 빼냈어야 했는데.”

가혜가 알아듣지 못하게 일본어로 중얼대며 단 후는 그녀를 제 뒤로 감췄다.

그는 눈앞에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죽었어야 했던 것들이 살아서 날뛰고 있단 말이야. 망령처럼.”

시찰을 나갔을 때 제게 공격을 해 오던 녀석은 첫째 형이었던 토키와 타이치의 부하였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도 타이치의 잔재였다.

단 후는 눈썹을 찌푸렸다.

7년 전, 토키와 회를 뒤집어엎었을 때 후환을 남기지 말았어야 했다. 단 후는 아쉽다는 듯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는 한 명도 남지 않게 죽여 버리려고 했다. 귀찮게 거치적대는 것보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차라리 간단한 일이었다.

단 후는 빈정대듯 입꼬리를 올렸다.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조직의 원로들이 그렇게 널 살려 달라고 내게 매달렸었지. 벌레처럼 보았던 내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바칠 만큼. 그래 이제 날 막아설 수 있을 정도로 자랐나?”

단 후는 자신에게 사정하던 조직의 원로들과 윤석을 떠올렸다. 그 날도 이렇게 어두운 밤이었다.

7년 전.

비명 소리가 멎은 곳에는 고통에 찬 신음이 채워졌다. 사방에 붉은 피가 튀어 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겨났다.

단 후는 뺨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타인의 목숨을 취하려던 찰나 곁에 다가온 윤석이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원하는 건 조직이지, 조직을 부숴 버리는 게 아니잖아. 이쯤에서 받아들여. 이 싸움은 이미 네가 이겼어. 아이는 보내 줘.

단 후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한쪽 눈을 감싸고 있던 아이를 차가운 눈길로 보았다. 하루아침에 부모와 조부모를 잃은 아이는 귀신을 보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원수에게 전의조차 품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오줌을 지렸다.

윤석이 나서서 아이를 보내 주라고 하자, 아이를 감싸던 원로가 단 후의 앞으로 기어왔다.

─토키와 회의 모든 권리를 다 류노스케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이 아이가 훗날 반란의 세력이 되지 못하도록! 그 싹을 틔울 땅조차 모두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원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들과 척을 져 봤자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귀찮은 일들만 많아질 거야. 너도 그걸 알고 있잖아.

윤석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단 후는 재차 입을 열려는 윤석을 손짓으로 제시하고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원로에게 명령했다.

─날이 밝으면 토키와 회에서 투자한 모든 회사의 지분을 내 이름으로 넘겨.

─알겠습니다. 5, 5대째.

5대째. 원로에게 토키와 회의 조장으로 인정받자 단 후를 따르던 이들의 눈에서는 이겼다는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환호성 속에서 단 후는 고요히 아이를 보던 시선을 거뒀다. 가볍게 손가락을 까닥이자 아이는 금방 그의 눈앞에서 치워졌다.

단 후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기필코 아이의 목을 비틀어 버리리라 다짐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원로까지 깡그리 모아서.

안대를 한 남자는 단 후를 보고 빙글 웃었다.

“왜요. 이제야 절 살려 두신 게 후회가 되나 봐요.”

“그래. 그래서 지금 다시 죽여 줄까 해.”

단 후는 몸을 풀듯 고개를 까닥였다. 그들이 차에 오르지 못하도록 포위를 한 상황이었다. 정면 돌파를 하지 않는 이상 차에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그 여자가 거추장스러우시면 죽여 드릴까요?”

“건방 떨지 마라.”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유야는 키득거렸다. 본가에 제 수하를 심어 놓은 보람이 있었다. 류노스케가 아끼는 여자가 있다는 것과 경호원을 따돌리고 둘만 어디론가 떠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움직였다.

이 지역은 토키와 류노스케의 눈을 피해 자신의 세력을 키우던 곳이었다.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겠다는데.

유야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토키와 타이치, 장남으로 태어났던 아버지는 5대째가 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연히 6대째는 자신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5대째가 되지 못했지만 저는 제 것을 찾아야겠습니다. 숙부.”

유야는 손을 들어 올렸다.

“내게 류노스케의 머리를 가져와.”

공격하라는 신호를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들이 단 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헉!”

지독한 악몽이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가혜는 꿈과 다른 현실에 멈췄던 숨을 간신히 뱉었다.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가혜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제 머릿속에는 없는 곳이었다.

가혜는 그제야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인상을 썼다.

“깨어났어?”

고개를 돌리자 곁에는 유카타를 입은 단 후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란 걸 아는데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단 후의 분위기 때문에 꿈처럼 여겨질 지경이었다. 아주 나쁜 꿈을 꾸었다고 치부하면 될까?

가혜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이마에 팔을 올렸다.

머릿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알아듣지 못할 격한 말이 오가고 곧이어 사람들이 뒤엉켰었다.

흉기가 코앞까지 다가오다가 단 후의 주먹에 밀려났다. 무기까지 든 상대와 싸우면서도 그는 한 번에 서너 사람을 상대했다. 그가 앞을 막던 사람들을 쓰러트리면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차에 도착했을 때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막기 위해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차창을 내려치는 쇠파이프가 마치 자신을 후려칠 것만 같았다. 정신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가혜는 차키의 버튼을 눌렀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반짝이면서 잠금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 들어가.

─같이 들어가요.

가혜는 자신을 지켜 주는 단 후를 걱정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괜찮으니까 들어가. 유리는 방탄 유리로 되어 있어서 금은 가더라도 완전히 부서지진 않을 거야. 눈 감고 귀 막고 있어.

단 후는 가혜를 차 안으로 들여보냈다. 뒤에서 미는 힘에 그녀는 엉금엉금 두 손으로 시트를 짚고 기었다. 간신히 몸을 구겨 넣은 가혜는 뒤를 돌아 문을 잠그려고 했다.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반대쪽 문이 벌컥 열렸다.

─헉!

족히 60cm는 될 법한 칼이 그녀를 향해서 쇄도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던 그때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단 후!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이름을 외쳤다.

─죽어라!

남자의 살기 어린 눈을 보며 가혜는 죽어 가는 것이 스스로를 보살피듯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생살이 찢기고 뼈가 갈리는 고통밖에 남지 않았다고 체념했을 때 칼날이 그녀를 비켜나 궤적을 달리했다.

‘비켜났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던 가혜는 이마에서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단 후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심장이 세게 뛰었다.

“갑자기 왜,”

단 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혜는 손으로 그의 유카타를 끌어내렸다. 어깨가 보이고 팔꿈치 아래까지 유카타가 내려가자 붕대에 감싸인 팔이 보였다.

놀란 듯 그대로 얼어 버린 가혜의 모습에 단 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혜의 손을 떼어 내고 다시 유카타를 올렸다.

“별것 아니야.”

귓가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듯 박동 소리가 요란했다.

“많이…… 많이 다친 거예요?”

“조금 긁힌 정도야.”

가혜는 파르라니 질린 입술을 깨물었다. 안도감과 미안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뒤섞여서 제 안의 감정이 날뛰었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다잡아 보려 했지만 폭풍처럼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휘말렸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단 후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이게, 조금 긁힌 정도라고요.”

목이 멘 가혜는 잠시 쉬다가 말을 마쳤다.

정신을 놓기 전에 봤던 장면은 온통 붉었다. 사방으로 풍기는 쇠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차의 핸들부터 시트, 유리창까지 눈에 닿는 모든 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체가 피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게……

칼이 지나간 자리의 살은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벌어져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그걸 보고서야 자신을 대신해 그가 다쳤다는 실감이 들었다.

끝도 없이 솟아나는 핏속에서 언뜻 뼈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보았다고 생각했을 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하고 눈앞이 빙글 돌았다.

그냥 어떻게든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손에 잡힌 게 뭔지, 이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이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그와 자신이 살 것만 같았다.

더듬더듬 시트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워 들고 망설이지 않고 차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휘둘렀다.

단 후의 품에서 기절을 할 때까지.

“내가 사람을 죽였나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가혜에게 단 후는 손을 내밀었다. 작고 가느다란 손을 입술에 가져가 손가락 하나씩 정성 들여 입맞춤을 했다.

“네 손에 죽을 정도면 그 자식들은 이 바닥에 있을 필요가 없을걸.”

분명 가벼운 키스였을 텐데 어느새 그의 입속에 손가락이 들어가 있었다. 손가락에 혀가 닿을 때마다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바르작거리며 손을 빼려고 하자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줘 더욱 깊게 손가락을 빨아들인다.

“흐……으.”

혀가 손가락 사이를 지나갈 때 가혜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마음에 들어?”

“하아, 그만해요.”

“너는 이게 문제라는 거 알아? 조금은 솔직해지는 게 어때?”

단 후는 가혜의 유카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살결의 가슴을 지분대던 그는 가혜의 오비!#[font|small](허리에 묶는 끈)[font]를 풀었다.

금세 풀어헤쳐 진 옷에 얼굴을 붉히며 가혜가 물러났지만 잡혀 있는 손 때문에 멀리 가지도 못했다.

“하악…… 아아.”

단 후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희롱하자 무릎을 꿇은 상태로 허리를 세우고 있던 가혜가 잘게 떨어 댔다. 군살 없이 납작한 배와 가느다란 허리가 그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허리가 움직이잖아. 벌써 아래가 움직일 정도로 흥분한 거야?”

“아, 아니, 아니에요.”

단 후는 입안에 넣고 굴리던 가혜의 손가락에 제 타액을 묻혔다.

“그런지 아닌지 네가 한번 만져 봐.”

“흐읏, 싫, 싫어.”

단 후는 가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바동대는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 그는 천천히 가혜의 손가락을 질구에 가져다 댔다.

“흡……!”

아래에 닿지 않으려는 손가락을 억지로 아래에 가져다 댄 그는 가볍게 입구 주변을 문지르게 했다. 안에서 나온 애액과 단 후의 타액으로 가혜는 부드럽게 자신의 것을 애무했다.

“으…… 아아.”

헐떡이기 시작하는 가혜는 애처롭게 단 후를 올려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야릇한 감각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가 아래를 만져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게 자위야.”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의문을 느꼈는지 단 후는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휘어지는 눈매에서 위화감을 읽은 가혜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

“아아, 그만, 그만요. 그만해요.”

단 후는 고개를 젓는 가혜를 보며 유두를 비틀었다.

“앗!”

“알려 줄 때 잘 배워. 너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다는 거 알아?”

단 후는 혀를 내밀어 상처가 난 가혜의 입술을 핥았다.

“으응…… 읏.”

“앞으로 내가 아래를 풀어 두라고 하면 네 스스로 여기를 벌려 두는 거야. 자, 이제 넣어 봐.”

단 후는 친절히 가혜의 중지를 펴서 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앙!”

“네가 느끼는 곳이 어딘지 금방 찾아내네.”

눈썹을 찡그린 가혜는 제 손가락을 압박하는 질의 느낌에 깜짝 놀랐다. 제 안이 이 정도로 좁은 느낌일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틈도 없이 맞물린 공간에서 당황스러워하자 단 후가 조용히 가혜를 얼렀다.

“넣고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 내가 해 준 것처럼 움직여야지.”

“흐으…… 응. 하아…….”

“어서.”

찰싹 엉덩이에 날아든 단 후의 손바닥에 가혜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삽입과 후퇴를 반복하던 손가락이 점차 속도를 빨리했다.

“하아…… 하아…… 단 후. 아아…….”

“기분 좋아 보이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며 단 후가 가혜를 안고 일어섰다.

“빼지 말고 넣고 있어.”

“흐윽…… 아앙.”

단 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충격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손가락에 가혜가 발가락을 오므렸다. 손가락을 타고 애액이 흘러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이상해……요. 이제 그만, 하읏, 아아!”

가혜는 단 후의 옷깃을 잡고 애원했다. 열기를 머금은 몸은 더욱 강한 쾌락을 원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채우던 것을 찾는 듯 안을 채우는 손가락으로는 부족함이 몰려들었다.

“아아아…… 단 후, 이제는 못 참겠어요.”

질벽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돌려 보아도 더 깊은 곳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단 후는 솔직해진 가혜의 이마에 베이비키스를 날리고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증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여긴?”

“그때 파란 파다를 못 봐서 아쉽다고 했었지?”

단 후의 말에 가혜는 고개를 들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온천의 배경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를 보면서 가게 해 줄게.”

단 후는 유카타를 벗고는 탕으로 들어섰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가혜를 두고는 그녀의 손가락이 들어 있는 곳에 자신의 검지를 넣었다.

“아앗!”

온천물이 함께 들어가자 가혜가 높은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처음만 조금 뜨거울 뿐이야.”

눈물이 맺힌 그녀를 다독이고는 단 후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으응, 앗, 하아.”

그의 손가락은 자신의 손가락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굵고 단단했다. 좁은 질 안에서 그의 손가락과 제 것이 부딪힐 때마다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그가 손을 휘저을 때마다 안으로 물이 밀려들어 왔다.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운 것이 안을 채우자 미칠 것만 같았다. 흐물흐물 녹을 것 같은 기분에 가혜는 빠르게 숨을 뱉었다.

“눈 떠.”

가볍게 절정을 느낀 그녀의 눈꺼풀이 감기자 단 후는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뭐해? 바다 봐야지. 네가 보고 싶다고 하던 것이잖아. 최가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자극에 차마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단 후는 가혜가 눈을 뜰 때까지 귓불을 잘근 씹고,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이스크림을 핥는 것처럼 그의 혀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의 귀를 애무했다.

단 후에게 갇힌 몸은 그의 잔인한 행동에 신음을 흘리며 떨어 대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로든 그를 피할 길이 없었다.

쾌감에 힘들어하는 가혜에게 단 후가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얼마든지 봐도 좋아. 네가 만족할 때까지 보게 해 주지.”

단 후는 가혜가 힘겹게 눈을 뜨자 안에서 손가락을 뺐다.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아래에 허전함을 느낀 가혜가 고개를 돌렸다.

“하악!”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단번에 페니스가 삽입됐다. 귀두 부분이 안을 파고들어 뭉뚝한 끝으로 원했던 곳을 긁어내리자 가혜는 고개를 저었다.

“아아.”

쾌감으로 자잘하게 떨리는 턱은 삼키지 못한 타액이 맺혀 있었다.

“내 물건이 그렇게나 좋아?”

크고 단단한 것이 그녀의 안을 꽉 채웠다. 뼈밖에 없었던 손가락조차 강하게 압박하던 좁은 공간이 단 후의 것에 의해 넓혀지고 벌려지고 있었다.

“으아, 아!, 아앙!”

“그렇게 풀어 놨는데도 이렇게 조이면 어쩌자는 거야.”

뒤에서 들어오는 단 후의 남성이 더욱 각을 세웠다.

“하아, 응, 싫어, 아흑!”

피스톤질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가혜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단 후가 움직일 때마다 온천물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자신이 꼭 바닷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으응! 하…… 아…….”

“미치겠군.”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비트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아래가 오물오물 삽입에 맞춰 페니스를 씹어 대고 흘러나온 애액으로 핥아 대고 있었다.

“흐, 하앙, 이제…… 이제…….”

단 후는 가혜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불안하게 엎드린 가혜의 자세를 조정해주고는 점차 속도를 높였다.

“하, 하아, 흐으…….”

“내 이름 불러 봐.”

“윽, 하아…….”

단 후는 가혜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정수리에 키스를 했다.

“최가혜, 내 이름 불러 봐.”

“아, 흐윽! 다, 단 후…… 단 후.”

정신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보채는 가혜의 목소리가 짜릿할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단 후는 혀로 입술을 핥고는 페니스를 뺐다가 안까지 깊게 찔러 올렸다.

“!”

맺히지 못한 가혜의 음성 대신 그녀의 아래가 발작을 일으키듯이 사정없이 떨었다.

단 후는 쥐어짜는 듯한 질의 움직임에 몇 번 더 허리 짓을 반복하더니 곧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그녀의 등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자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단 후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 귀에도 이제 파도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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