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외출 (5)
단 후의 품에서 떨어진 가혜는 낯선 공기에 몸을 떨었다. 방 안에 떠도는 향조차 어색했다.
“여기 잡고 있어.”
단 후의 손이 가혜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잡으라는 그의 말처럼 손바닥 아래에 플라스틱 재질의 기다란 바가 느껴졌다. 가혜는 손으로 바를 더듬었다. 벽의 길이만큼 바가 연결되어 있는 건지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발레는 해 본 적 없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던 발레 연습 바와 비슷한 것 같았다.
“제대로 잡아. 그러다 넘어져.”
단 후는 가혜의 손 위치를 다시 정정해 주었다. 커다란 손이 여기서 움직이지 말라는 듯 꾹 힘을 주었다.
가혜는 그의 손안에 갇힌 채 그가 있을 법한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한가?
가끔씩 이 남자의 행동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본인은 훨씬 더 가혹하게 나를 대했으면서 때로는 이처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어질까 조심스러워했다.
왜?
단 후의 행동의 간극이 너무 커서 가혜는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악마에서 한없이 다정한 사람으로. 그는 자신이 기대 오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분명 위험한 사람인데, 안전함을 느끼는 이유가. 경계심이 자꾸만 무뎌지고 있었다.
가혜는 윤석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었던 날을 떠올렸다.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준 것만으로 나빴던 감정이 순식간에 호감으로 바뀌었다.
이 남자에게도 같은 건가?
가혜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단 후의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얌전히 그가 자신을 만지도록 놔두었다는 사실에 황급히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 후의 손이 떨어져 나가듯 멀어지자 가혜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했다. 모순적인 자신의 감정에 좌절하면서도 가혜는 단 후의 기색을 살폈다.
화가 나진 않았을까?
상대방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적이 내려앉자 가혜는 불안해했다.
먼저 말을 꺼내 볼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아직 가까이 있을 거야.
가혜는 용기를 내 말을 꺼냈다.
“직원들은 언제쯤 오나요?”
“내가 부르면 바로.”
다행히 곧장 대답해 주었다.
가혜는 바를 잡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단 후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더듬었다. 손안에 익숙한 천의 감촉이 만져졌다. 갑자기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얌전히 옷을 갈아입고 나면 상을…… 상을 줘요.”
말하는 도중에 크게 후회를 했지만 가혜는 저질러 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말을 이었다.
“나와 협상을 하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좋아. 상을 줄게. 얌전히 예쁘게 꾸미고 나온다면 집으로 돌아갈 땐 마음껏 밖을 보게 해 주지.”
단 후는 가혜가 가장 좋아할 만한 말을 해 주었다. 그는 가혜의 얄상한 허리를 팔로 휘감아 제게 기대게 만들었다.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혀로 입술을 핥자 자연스럽게 입술이 벌어졌다.
“음.”
가르친 보람이 있는 듯 가혜는 단 후의 움직임을 따라 혀를 움직이고 있었다. 타액을 주고받으면서 단 후는 가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하아…… 아…….”
“가르친 보람이 있는군.”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단 후는 부끄러워하는 가혜를 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쪽, 단 후는 가볍게 입맞춤을 해 주는 것으로 키스를 마무리하며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네 마음에 드는 거라면 몇 벌을 사도 좋아.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하지만 뭐가 괜찮은지 보이지 않는걸요.”
가혜는 자신의 안대를 손으로 만졌다. 그에게 뭐가 문제인지 알려 주겠다는 듯 투덜거림에 단 후가 작게 웃었다.
“네가 옷을 다 갈아입고 나면 직원이 풀어 줄 거야. 그때도 이건 놓지 마. 시야가 돌아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니까.”
단 후는 손을 뻗어 바를 잡고 있는 가혜의 손등을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혜의 모습에 단 후는 볼에 키스를 남기고 멀어졌다.
“그럼, 기대하지.”
소파로 돌아온 단 후는 턱짓으로 직원들을 가혜가 있던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안으로 들어서는 직원 하나를 잡고 나직하게 경고를 했다.
“정중하게 대해.”
“네. 알겠습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서둘러 가혜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는 직원을 보며 윤석이 혀를 찼다.
나머지 경호원들은 개인실 밖과 건물 밖을 경계하고 안까지 들어온 건 윤석뿐이었다. 단 후는 그마저도 내쫓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과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 그나마 자신이 참아 낼 수 있는 윤석을 방 안에 들였다. 하지만 뒤돌아서 윤석을 마주한 순간 그마저도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단 후는 이죽거리는 윤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팔불출이 따로 없어.”
“시끄러워.”
험상궂은 얼굴로 단 후가 자리에 앉자 윤석은 소파 뒤로 걸어가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허리를 숙인 윤석은 그럼에도 앉아 있는 단 후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은 곳에 얼굴이 있었다.
윤석은 커튼으로 가려진 정면을 보면서 어쩔 거냐는 듯 입을 열었다.
“네가 가혜 씨를 데리고 이곳에 온 순간 동네방네 소문이 쫙 돌기 시작했을걸? 토키와 조장에게 이거가 생겼다고.”
윤석은 새끼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그러라고 데리고 나왔다.”
“응?”
윤석은 예상외의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눈만 껌벅였다.
“누가 내 사람인지 똑똑히 눈에 박아 넣으라고 데리고 나왔다고.”
“어?”
뇌가 기능을 정지한 것처럼 윤석은 계속 바보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차라리 잘됐어.”
“응? 뭐가?”
윤석은 단 후의 말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제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천하의 덜떨어진 놈이 된 기분이었다.
“아직 순례를 마치지 않았잖아.”
단 후의 말에 윤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가혜가 쓰러지는 바람에 단 후의 조직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이 전면 수정되었다. 먼 곳부터 가까운 곳까지 올라오는 식으로 조직을 살펴보려던 단 후는 가혜의 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은 둘러보는 조직이 가까워 꼬박꼬박 집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분명 당일로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거리가 될 것이다.
‘헬기로 매일 통근할 게 아니라면야.’
단 후가 저질렀던 미친 짓을 떠올린 윤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 여자와 밤을 보내기 위해 구매하는 자가용 헬기라니, 그 정도면 돈 지랄도 정도껏이었다. 그러다 문득 단 후가 했던 말을 되짚어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순례와 이 일이랑 무슨 관계야?’
가혜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일은 단 후에게 약점이 생겼다고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이기지 못할 단 후를 대신해 약한 가혜를 물고 뜯기 위해 달려들 게 뻔했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여자인데 무슨 사달을 내려고. 단 후 쪽으로 눈을 흘기던 윤석은 번개에 맞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나 죽도록 혹사시켜 죽일 생각이냐?”
가혜의 경호원은 자신이니 그녀를 향한 적의를 오롯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물론 네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나겠지. 하지만 가혜를 데리고 나온 이유는 그게 아니야. 네게 달아 놓은 빚은 있지만.”
단 후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윤석을 보았다.
“그러면 왜?”
“가혜가 누구의 사람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
“그게 내가 했던 말과 무슨 차이점이 있는데?”
“너는 다른 놈들이 가혜를 공격할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키기 위해 알리는 거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린다면 죽여 버릴 거라는 경고지.”
“모든 조직원이 날뛰어도?”
“그러면 내가 하려는 일이 더 쉽게 이루어지겠지.”
단 후는 기대가 된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윤석은 그 냉담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단 후는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거였다. 이곳의 직원에게 가혜에 대해서 몇 번이고 경고를 한 것처럼. 가혜를 향한 지독한 소유욕을 다른 이들에게 그득그득 보여 주겠다는 거였다.
“다른 조직을 방문할 때마다 가혜를 데리고 갈 테니 그렇게 알아 둬. 너 혼자 가혜를 감당하는 게 힘들면 경호팀에서 쓸 만한 이들로 몇 명 더 뽑아도 상관없어.”
“진심으로 조직원들에게 보여 줄 작정이구나.”
얼이 빠진 듯한 윤석을 보면서 단 후는 차게 웃었다.
“그러면? 그냥 해 본 말인 줄 알았어?”
“가혜 씨는 전혀 원하지 않을 텐데.”
윤석은 커튼 너머에 있을 가혜에게 시선을 주듯 정면을 바라보았다. 폭탄 발언도 정도껏이지. 조직 순례를 하면서 여자를 데리고 간다는 건 토키와 회의 안주인을 소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가혜는 영원히 이 세계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단 후가 그녀의 곁에 있든 없든.
“가혜는 지금 상황도 원하는 게 아니었어.”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는 단 후의 말에 윤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석의 머릿속으로 이령의 모습이 시리게 파고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는 건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건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
윤석은 이령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단 후에게 말해 주었다. 자신의 경험담까지 함께.
“억지로 가지려 할수록 상대방은 더 멀어질 뿐이야. 지금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할 수 있겠지만 그 거리감은 차츰 너 자신을 갉아먹을 테고. 결국에는 가혜 씨까지 잡아먹을 거야.”
윤석의 눈빛이 씁쓸해졌다.
단 후는 가만히 윤서의 말을 듣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 봐. 내가 억지로 가혜를 가지는 것 말고 그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차가운 단 후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윤석은 곰곰이 생각했다. 단 후와 가혜가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을 할 수 있을지. 하지만 만약의 만약을 따져 보아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들은 평행선이었다. 시작점부터 너무나 달라 결코 교차점이 생기지 않았다.
“없어.”
단 후는 윤석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윤석이었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워 단 후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뒷골이 당기고 있었다. 단 후와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윤석은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단 후의 표정이 어떤지 봐야 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리를 열어 볼 수 없다면 미세한 감정의 변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너,”
“다 되었습니다. 커튼 열겠습니다.”
단 후의 앞으로 다가선 윤석이 그를 부를 순간 커튼 뒤에서 어시던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튼이 좌우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윤석은 눈썹을 찡그렸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타이밍이 나빴다.
“밖에 나가 있을게.”
저택 엔가와에서 가혜와 단 후가 정사를 치를 때 곁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때도 직접적으로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는 엔가와로 나올 수 있는 문 앞에 서서 다가오는 조직원들이 없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다. 그게 자신이 가혜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여기 있어.”
“가혜 씨가 싫어할 거야.”
“뭘 그렇게 내외하고 그래? 가혜의 벗은 몸은 충분히 봤잖아. 내가 없을 때도, 내가 있을 때도.”
“아까 전은 안 봤거든! 소리라면 어쩔 수 없지 들었지만.”
누굴 변태로 아나? 다른 사람 섹스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병은 없단 말이다.
윤석은 단 후를 노려봐주며 다시 한 번 몸을 돌렸다.
“여기 있으라고 했어.”
“하? 왜 갑자기 심술이야. 다른 녀석들이 눈독 들일까 애지중지하더니 나한테는 얼마든지 보여 줘도 돼? 거기 너희들 커튼 열지 마.”
“열어”
“열지 마. 열기만 해.”
두 남자의 언성에 자동으로 움직이던 커튼이 멈췄다 움직였다를 반복했다. 심상치 않은 밖의 상황에 안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가혜의 곁에서 직원들이 작게 의견을 나누었다.
“사장님 말씀을 따르는 게 좋겠지?”
“당연하지. 어서 열자.”
지잉─ 커튼의 레일이 움직이는 소리가 배경처럼 깔렸다.
“아가씨 바에서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안대는 커튼이 완전히 열리고 나면 풀어 드릴게요.”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직원은 의례적으로 가혜에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바를 잡고 있는 가혜의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 꼭 잡고 있으란 뜻이었다.
“아! 멈추라고!”
윤석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사이드테이블 서랍을 뒤적였다. 그곳에는 커튼 리모컨이 자리하고 있었다. 윤석은 망설이지 않고 리모턴 안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어떡하지? 리모컨으로 조작하면 안에서는 커튼 조작이 불가능한데…….”
“가서 리모컨을 받아 와야 하는 거야?”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날카로운 분위기를 가진 두 명의 남자는 비슷한 체격에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중 한 명도 감당하기 벅찬데 심지어 둘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커튼 밖으로 나가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몰랐다.
가혜는 불안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목소리는 단 후와 윤석이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일본어라 뜻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옷을 벗기고 속옷을 입혔던 이들이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단 후와 윤석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싸우는 건가?
왜?
안전 바를 잡은 채로 가혜가 손을 들어 안대를 만지작거렸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자 가혜는 인상을 썼다. 왜인지 몰라도 자신이라면 두 사람을 말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저하던 가혜가 입술을 움직였다.
“다, 단 후!”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두 사람 중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불러도 될지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걱정이 몰려왔다.
가혜는 밖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못 들었나? 다시 이름을 부르느냐 마느냐의 고민에 빠져 있던 가혜는 제 옆에 서 있던 이들이 부산스럽게 멀어지자 주변을 살피듯 고개를 움직였다.
“저…….”
가혜는 텅 빈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바를 잡고 걸음을 떼려는데 기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어서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저기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누구, 여기, 저기요.”
떠듬떠듬 아는 일본어 단어를 뱉었지만 사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눈이 가려진 채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가혜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턱이 자잘하게 떨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했었지? 뭐하는 곳이라고……. 속옷을 입혀 줬으니까 옷가게인가? 이상한 곳은 아니겠지?
가혜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하면 앞이 보일 것처럼 그녀는 몇 번이고 좌우를 살폈다.
“단 후, 단 후!”
대답이 없자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자신을 어딘가에 팔아넘긴 게 아닐까.
가혜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더욱 큰 소리로 단 후의 이름을 외쳤다.
바를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순간 익숙한 음성이 정면에서 들려왔다.
“너 말이야. 아무리 내 이름을 가르쳐 줬다지만 너무 막 부르는 거 아니야?”
“아…….”
“놀랐어?”
가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단 후의 목소리를 따라 몸의 방향을 틀었다. 가혜는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서 이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있는 곳은 요원하게 먼 것 같았다.
“내 이름 다시 한 번 불러 봐.”
“단 후.”
“다시.”
“단 후.”
촤락- 커튼에 달려 있던 레일이 단 후의 악력에 뜯겨나가다시피 움직였다.
큰 소리에 어깨를 움츠린 가혜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쳤다.
“엄마야!”
성급하게 발을 움직이다 보니 결국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헛디딘 발이 중심을 잃고 무너지자 가혜의 신형이 급속도로 허물어졌다. 곧 다가올 아픔에 그녀는 안대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잠시 후 느껴지는 건 허리를 휘감은 강인한 팔이었다.
“조심하랬잖아.”
“고마워요.”
단 후는 제 품에 반쯤 안긴 가혜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몸매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보다 레이스로 은밀히 가려진 몸이 훨씬 더 섹시해 보였다. 허벅지 아래로 내려온 가터벨트가 남자의 상상력을 부추겼다.
“지금 네 모습,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아?”
단 후는 가혜를 자신 쪽으로 당겨 안으며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순식간에 목까지 붉어진 그녀를 보며 단 후는 손을 내렸다. 탄력 있는 엉덩이를 주무르던 그가 가혜의 아래로 움직였다.
“하앗.”
단 후는 중지를 세워 팬티 채로 질구에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가혜가 단 후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으흣, 아아……!”
신음을 뱉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혜에 단 후가 짓궂게 물었다.
“내가 넣어 둔 건 제대로 잘 물고 있어?”
“아아 그렇게 하지 말아요. 아래가…….”
“아래가 뭐?”
“자꾸만 더 깊게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아아아, 배, 배가…… 눌려서.”
색으로 물든 음성으로 가혜가 애원하자 단 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당장 그녀의 팬티를 벗기고 아래를 꿰뚫을 것처럼 그의 분신이 일어났다. 차 안에서 가혜가 빨아 줬던 감각이 소스라칠 정도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후. 넌 정말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
바지 위로 솟은 페니스를 여성에 가져다 대자 가혜가 힉, 소리를 질렀다.
“흐으. 약, 약속했잖아요. 얌전히 속옷을 입으면 상을 준다고요.”
“씨발.”
“약속 지켜 줘요. 단 후…….”
가혜는 팔에 힘을 줘 더욱 세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단 후는 짐승이 그르렁대듯 목안 깊숙한 곳에서 소리를 냈다. 아쉬움이 가득한 음성을 길게 뱉고 나서야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단 후는 가혜의 뒤통수 쪽에 있는 잠금장치에 손을 뻗었다. 열쇠로 자물쇠를 열자 안대가 풀렸다.
툭, 바닥에 안대가 떨어지자 단 후는 그녀를 똑바로 세웠다.
긴 속눈썹이 깜박이는 모습을 보면서 단 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상은 줬으니 벌을 받을 차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