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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사육법-17화 (17/54)

17화 ? 손바닥 위 (3)

입술이 붓고 끝이 찢어져서 키스를 할 때마다 따가운 통증이 일었다. 가혜는 어깨를 떨며 신음을 터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흐읏, 아파……요.”

입술을 놓아주지 않는 단 후 덕분에 가혜는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아프다는 말이 삼켜져 그의 입속에서 말끔히 사라졌지만 가혜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그의 키스를 피하려고 머리를 움직였다.

“아아…….”

가혜의 반항이 느껴질 때마다 단 후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눈썹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곧 그는 재밌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협박을 하고 억지로 그녀를 다루는 대신 숨겨진 그녀가 원치 않는 쾌감을 일깨워 주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단 후의 입매가 짓궂어졌다.

“으아, 그, 그, 그만요.”

가혜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흘러나왔다.

단 후는 그녀의 입천장을 혀로 부드럽게 쓸었다. 몇 번 쓸어 주자 민감한 몸이라는 걸 증명하듯 입속의 점막조차도 반응을 보였다. 제 마음에 드는 곳을 조금만 애무해 주면 곧장 성감대가 되어 버리는 여자의 몸은 극상이었다. 단 후는 입천장 뒤쪽의 부드럽고 매끈한 점막을 혀끝을 세워 눌렀다.

이미 그곳을 성감대로 인식한 가혜는 파르르 떨며 밭은 신음을 흘렸다.

“하아아앙……! 하아, 하아.”

점막을 훑는 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간지러우면서도 약한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 괴로웠던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나 쾌감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입안의 감각이 날뛰자 가혜는 저도 모르게 단 후의 셔츠를 부여잡았다. 무언가 잡고 늘어지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낙차감에 심장이 술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후는 그녀를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이건 자신을 거부한 벌이었다. 상과 벌을 주는 건 자신의 특권이었다. 그는 움직이는 가혜의 턱을 잡았다. 이 여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거부할 수 없어야 했다.

“아아…… 아흐윽, 제발!”

이런 건 처음이었다. 제가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였다. 가혜의 갈색 눈동자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얌전히 삼키라고. 최가혜.”

가혜의 입에서 나오는 애원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단 후는 다시 입술로 그녀의 입을 봉했다. 여유롭게 가혜의 영역을 침범한 혀가 작고 부드러운 혀를 빨아 당기더니 방향을 바꿔 그녀의 혀 아래 부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침샘을 자극하자 타액이 샘물처럼 솟기 시작했다.

“흐으윽.”

단 후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그녀의 것을 받아 마셨다.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애액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났다. 다리 사이의 것은 최음제처럼 사내를 흥분시키더니 입안의 타액은 마셔도, 마셔도 부족한 갈증을 일게 했다.

단 후는 크게 가혜의 입안을 휘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넘쳐흐른 샘물이 가혜의 입을 통해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단 후가 기꺼이 받아 마시자 그의 울대뼈가 크게 움직였다.

“아아!”

가혜는 꼴깍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단 후가 제 타액을 삼킬 때 뼈가 울렁이는 소리였다. 귀를 막고 싶은데 부끄러운 소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빈틈없이 맞물린 살은 공기마저 압축시키더니 떨어질 때마다 츕츕대는 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단정치 못한 상황이었다.

“으읍…… 아…… 하아.”

단 후의 셔츠를 잡고 있던 가혜는 꼴깍 뒤로 넘어갈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단 후의 커다란 몸 아래에서 버둥거렸다. 셔츠에서 손을 떼고 그의 어깨를 잡자 드디어 그와 시선이 맞았다.

가혜는 절박하게 그를 보았다.

상기된 뺨과 물기가 맺힌 눈이 단 후의 시야에 차자 그는 타박을 하듯 가볍게 혀를 찼다.

“몇 번이나 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어.”

마지못해 입술을 떼어 주자 가혜의 가쁜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하아, 하아, 하아…….”

가슴까지 들썩이며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가혜를 보며 단 후가 나직하게 웃었다.

“네가 제대로 삼켜 주지 않으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잖아.”

“하아…… 하아…….”

“키스를 하는 동안 코로 숨을 쉬어. 빨리 배우지 않으면 너만 괴로울 뿐이야.”

“하…… 하지만 죽을 것…… 같아요.”

가혜의 말에 단 후는 또다시 입매를 올렸다. 유려한 미소와는 달리 두 눈동자는 차갑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상대방의 사정 따위 고려해 본 적도 할 생각도 없다는 검은 눈동자가 닿는 곳마다 가시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걱정하지 마. 키스하다가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어.”

픽. 단 후가 웃자 가혜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붉은 입술이 매혹적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제 심장에 좋지 않았다.

“내 얼굴은 마음에 들지?”

그녀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다는 저음이 귓가로 내려앉았다. 속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약점을 파고들 듯 단 후는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반했어?”

“아, 아니에요. 그건.”

“그래?”

“네.”

“……뭐, 일단은 상관없나.”

너는 이미 내 수중에 있으니.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려는 가혜를 보면서 단 후는 다시 입꼬리를 말았다.

단 후는 자신의 입술에 묻은 가혜의 체액을 맛보듯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는 가혜가 당황하는 사이 느릿느릿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였다. 턱을 잡고 있었던 손이 가혜의 눈가로 다가가 눈물을 훔쳤다. 그는 햇빛에 반짝이는 눈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대가 돼.”

단 후에게 있어서 지금의 가혜는 식전의 여흥이었다. 결국은 그의 손에 떨어질 여자. 그가 기다리는 건 바로 그때였다.

손가락을 기울이자 그녀의 눈물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움직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가혜를 내려 보며 단 후는 흡족한 얼굴로 제 손가락에 달린 그녀의 눈물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본 가혜는 소름이 돋았다.

무엇을요? 무엇을 기대하는 거예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로서는 읽어 낼 수 없는 단 후의 눈빛이 무서웠다. 가혜의 작은 어깨가 잔뜩 곱아들었다.

그의 품에 갇힌 채 지독한 시선을 받고 있자면 꼭 자신이, 똬리를 틀고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뱀 앞에 던져진 것 같았다. 방심하는 사이 독니에 찔려 한 입에 삼켜질 위기인 것이다.

정신 차려!

가혜는 두 눈을 깜박였다.

단 후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는 네가 이런 눈을 할 때가 좋아. 이 상태의 넌 내게 한동안 붙들려 있거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게 빠져 있지.”

“아…….”

단 후의 지적에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그의 시선에서 달아나고 싶어도 무섭도록 아름답게 생긴 외모에 절로 눈이 가고 만다. 몸이 의지를 반하는 게 아니라 의지가 몸을 반하고 있었다. 육체는 본능적인 공포로 떠는데, 머릿속은 계속해서 그를 보고 있으라고 한다.

그게 자신을 사지로 몰고 있다는 것조차 망각한 채.

멈췄던 단 후의 손이 다시 가혜의 얼굴로 내려왔다. 그는 눈가를 찌를 듯 내려온 그녀의 앞머리를 만지더니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이번에는 네가 키스해 봐. 최가혜.”

자신의 아래서 얼어붙는 가혜의 몸을 느끼며, 단 후는 음흉한 속내를 혼자만 볼 수 있도록 제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의 눈동자가 세로로 응축하는 뱀의 눈처럼 사나워졌다.

* * *

한국.

제대를 하고 온 찬성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출한 동생의 소식이었다. 찬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24개월 내내 기다렸던 자유를 만끽하려고 했는데…… 썰렁한 분위기를 보니 그건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찬성아 어떡하니!”

부모님은 찬성이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를 붙잡고 걱정과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우셨는지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논리적이고 점잖으시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두서없이 말을 하고 계셨다.

소파에 앉은 채로 찬성은 주변을 서성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현재 이 집에서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외교부에도 연락을 해서, 아니다 내가 직접 일본으로 가는 게 낫겠소.”

“저도 갈래요.”

자신이 말리지 않으면 부모님은 당장 짐을 싸러 안방에 들어갈 기세였다.

찬성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강의는 어쩌시려고요.”

“가혜가 행방불명인 상태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강의는 며칠 휴강하면 된다.”

아버지의 말에 찬성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째 연락도 없는 동생에게 부모님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동생은 가출을 했다. 가출이란 자신의 행방을 밝히지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이었고 당연히 집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 게 정석이었다.

찬성은 마른세수를 하고는 탁자를 두드렸다. 탕탕, 강화 유리로 된 테이블은 유리답지 않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부모님의 시선이 한 번에 몰렸다.

“아버지, 어머니. 이거 보세요.”

찬성이 가리킨 곳에는 가혜가 남기고 간 편지가 있었다.

“아니, 누가 가출을 하면서 꼬박꼬박 연락을 해요? 거기다 이렇게 명확하게 가출한 건, 실종 신고를 해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 안 해 줍니다. 곧 돌아올 거니 기다려 보라는 말만 할걸요? 또 가혜는 미성년도 아닌 성인이잖아요. 신고를 해 봤자 헛수고예요.”

남중 남고를 다녔던 찬성은 제법 가출이란 단어가 친근했다.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다. 찬성은 키가 큰 편이었고 체격도 있는 쪽이었다. 해코지를 당할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운동도 잘했고 가끔 미친놈 취급을 받긴 했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 감각도 있었다.

모범생인 그룹과 노는 그룹 사이에 절묘하게 한 발씩 걸친 게 자신의 학창시절이었다. 그래서 사실 의도치 않게 가출소년 찾기가 일상이기도 했다.

일진 아이들에게 물어봤자 모르겠다는 대답이나 친구를 위한다는 우정으로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줬기에 선생님 중에는 가출한 학생을 찾는 데에 찬성의 도움을 종종 요청했었다.

물론 사사건건 반항적인 일진 아이들보다 모범생 쪽에 가까운 찬성이 훨씬 다루기가 쉽다는 것도 한몫 했을 거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찬성의 오지랖도 두 몫을 했을 거고.

“그럼 어떡하니? 이대로 손 놓고 앉아만 있어?”

파리하게 질린 어머니의 말에 찬성은 고개를 저었다.

“선부터 취소하셔야죠.”

“응?”

“가혜가 가출을 한 결정적인 이유잖아요. 도대체 가혜 나이가 몇인데 벌서 결혼을 시키려고 하셨어요.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되었다면 저라도 도망가겠어요.”

“그래, 알았다.”

은선은 아들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이 제대할 때까지 신고를 하지 않고 기다렸던 건 찬성이 가출 친구 찾기에 놀라운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쪽에 익숙하니 무언가 방도가 있을 거란 기대감이 은선과 효준의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리고요?”

은선의 물음을 도돌이표처럼 따라한 찬성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일단 군복부터 벗고, 샤워부터 해야지.

찬성은 자신을 따라오는 시선을 모른 척하며 2층의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찬성아! 그 다음은 말해 주고 가야지.”

아버지의 부름에 막 계단의 난간을 잡은 찬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부모님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기다려야죠. 가혜의 전화가 올 때까지. 걱정 마세요. 가혜는 별일 없을 겁니다. 어머니, 저 땡볕에 걸어왔더니 더워요. 샤워하고 다시 내려올게요.”

묵묵히 계단을 오르던 찬성은 재빨리 욕실로 들어섰다. 군복을 벗고 샤워기 아래에 선 그는 저도 모르게 신나게 휘파람을 불 뻔했다.

오랜만에 제 동생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찬성은 하나뿐인 여동생이 소중하고 귀여웠지만 어쩔 때는 짜증이 치밀 때도 있었다.

“의지는 약하지 않은데 생각보다 행동력이 약하단 말이야.”

자신이 보기에도 부모님의 과보호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걸 묵묵히 견디는 동생이 대단하면서도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괜찮은 거냐고, 곁에서 몇 번 찔러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동생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마치 병마와 싸울 때처럼.

“망설이길래 이번에도 얌전히 있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찬성은 샤워기를 틀었다. 고정해 둔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더운 몸을 식혀 주는 시원한 물을 맞으면서 그는 보람차게 웃었다.

“선 자리 이야기와 일본행 티켓을 준 게 신의 한수였네.”

지난 번 휴가를 나오면서 어머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내용을 우연히 엿들었다. 가혜의 선에 관한 이야기였고 어머니는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식장에 들어설 동생이 떠오르자 찬성은 과외를 하면서 모아 뒀던 돈으로 일본행 티켓과 숙소를 가혜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휴가 복귀를 할 때 가혜를 따로 불러 은밀히 계획을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네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성이 있으셔. 여기, 티켓이랑 숙박 바우처야. 넌 한동안 일본에 가 있어. 선 자리가 확실히 무산되고 부모님이 너에 대한 생각을 바꾸실 때쯤 내가 연락할게. 너도 이제는 네가 하고픈 대로 살고 싶잖아?

─하지만 오빠, 엄마랑 아빠가 놀라실 텐데…… 걱정하실 거야.

─잘 들어. 선이라는 명목이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너도 네 또래처럼 살고 싶다고 내게 말했었잖아. 병원에 있을 때는 여행을 다니고 싶어 했고. 너 이대로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선 보고 결혼하면 그건 영원히 꿈으로 남을 거야.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꿈!

─…….

─자, 난 여기에 두고 갈 테니 결정은 네가 알아서 해. 선택은 네 몫이야.

찬성은 비누칠을 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했다.

“내가 봐도 일거양득이라니까. 우리 집은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돼. 음…… 가혜한테는 언제쯤 연락을 하지?”

고개를 갸웃거린 찬성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으로 혼자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거니까 천천히 해도 되겠지.”

* * *

일본.

“그만! 그만해요.”

더 이상 키스를 계속 했다가는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혜의 마음과 달리 단 후는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몇십 분 전의 그는 억지로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하게 만들어 놓고는 막상 입술이 닿자 곧바로 얼굴을 뗐다.

─기교는 좀처럼 안 느는군. 아니 그러고 싶지 않은 건가?

좁혀진 미간과 싸늘한 음성에 가혜는 숨을 멈췄다. 대충 흉내만 내려던 속내가 들켰다.

─골라. 겐지와 제이를 불러서 다시 교육을 시켜 줄까? 아니면.

단 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다른 놈들을 불러 줘? 어떻게 해야 네가 잘 하고픈 마음이 들까? 응?

─난…….

─잊었어? 내게서 도망가려면 날 만족시켜 한다는 거? 지금 네 솜씨로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택해. 최가혜.

가혜는 위험하게 가라앉은 단 후의 눈동자를 보면서 직감했다. 잘못을 빌면서 그의 화를 풀지 않으면 그는 더 사납게 굴 것이란 걸.

협박 아닌 협박 속에서 가혜는 결국 단 후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미안해요. 이번에는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지금까지 키스가 이어진 거였다.

“제발요. 이제 입술에 감각조차 없어요. 그만해요.”

가혜는 손으로 제게 밀착한 단 후의 몸을 밀었다. 어디를 만지고 어디를 건드리지 말아야 할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몸을 틀어 그의 속박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가혜는 간신히 제 몸을 뒤집어 엔가와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항은 고작 거기서 끝이었다.

“어디를 가.”

단 후는 엎드린 가혜의 겨드랑이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었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그녀를 들어 제 무릎 위로 앉혔다. 엉덩이 아래로 그의 탄탄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단 후의 허리를 감싸는 자세였다. 저절로 원피스의 비침을 막아 주던 속치마뿐만 아니라 원피스 치마까지 허리까지 말려 올라가자 골반 쪽에 대칭적으로 리본이 달려 있는 아이보리색 레이스 팬티가 보였다.

단 후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설핏 웃었다.

“귀여운 팬티를 입고 있군. 네 거야?”

여권조차 없이 납치를 당했는데 그녀의 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니에요.”

가혜는 차마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을 때부터 난감했던 속옷이었다. 그는 귀엽다고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야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섹시한 걸로 입어. 넌 가터벨트나 허벅지벨트도 어울리겠어. 조만간 쇼핑을 하게 해 주지. 거긴 프라이빗룸이 따로 있어서 직접 입어 볼 수도 있어. 네가 속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지루해하지 않고 의견을 말해 주지.”

“아니, 그러지 않아도…… 앗!”

단 후는 한손으로 가혜의 양 손목을 교차로 잡은 다른 손을 이용해 팬티를 만졌다. 레이스에 그의 길고 커다란 손가락이 닿았다.

단 후는 감촉을 즐기듯 음부 앞쪽을 긁듯이 만졌다.

“으으…… 아아, 음.”

가혜는 그의 손놀림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레이스 소재인 팬티 위로 느껴지는 그의 손가락은 직접적으로 만져지는 것보다 더 농밀한 감각을 선사했다.

“잘하겠다고 했지?”

단 후는 고집스럽게 다물린 가혜의 입술에 자신의 이를 세웠다.

“읏! 키스는 이제 그만하기로……”

“누가? 너 혼자만의 생각 아닌가.”

단 후가 자신의 몸을 일으키기에 키스는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기억 속 어디에도 남자의 수긍의 표현은 없었다.

단 후는 아래를 지분대는 손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가혜의 입술에 짧은 키스를 날렸다.

“착하지. 입 좀 벌려 봐.”

‘착하지’라고 어를 때 거절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녀는 똑똑히 겪었다. ‘착하지’라는 말은 그가 그녀에게 주는 유일한 힌트였다. 이걸 무시하면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암시. 가혜는 순종적인 모양새로 단 후가 원했던 것처럼 입을 열었다.

“으음…… 으응응!”

이제는 익숙한 그의 입술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입술에 닿았다. 서로의 타액으로 입술이 젖은 만큼 키스를 나눌 때마다 질척이는 야한 소리가 났다. 난잡하게 놀고 있어요, 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가혜는 얼굴을 붉히며 단 후의 상반신을 손으로 밀었다.

가혜의 손을 느낀 단 후는 단호하게 입술을 떼고 물러났다. 서늘한 목소리로 그가 씹어 뱉듯 한 글자씩 말했다.

“개는 원래 손을 못 쓴다는 거 알아, 최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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