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의 사육법-11화 (11/54)

11화 ? 그녀의 경호원 (3)

기절한 가혜를 안아 든 윤석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손목을 묶고 있던 넥타이를 끊었다. 힘없는 손이 툭 그의 손안에 떨어졌다.

한손에 다 들어오고도 남을 정도로 뼈밖에 없는 손과 손목이었다. 윤석은 그제야 자신이 괴롭히던 여자가 무척이나 작고 여리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확실히 박아 넣었다.

“음…….”

처음부터 작은 생명체라고 내내 생각을 했음에도 이제야 실제로 와 닿았다.

윤석은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가혜를 보며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떠올렸다. 연노랑 빛의 병아리는 아껴 뒀던 용돈을 털어야 했지만 삐약삐약 울어 대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제 손가락을 따라 가느다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뛰는 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하지만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생명력이 감명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윤석은 상자 속에서 죽어 있는 병아리를 발견했다. 병아리는 연약한 제 몸을 보듬듯 날개에 머리를 묻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신이 자고 있던 사이에 방 한쪽에서는 생명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윤석은 손을 내밀어 병아리의 연노랑빛의 털을 쓰다듬었다.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린 병아리에게서는 어제의 따스했던 온기도 초롱초롱했던 눈망울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너무 약하잖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윤석은 ‘약해 빠진 존재’를 인식했다.

윤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기억을 정리했다.

“연약한 생명일수록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중얼거린 그는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두 눈동자가 그의 기분을 닮은 잿빛이 되었다.

“이령과 있을 때는 생각이 안 나더니.”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않던 윤석은 손을 뻗어 말려 올라간 가혜의 슬립을 내려 주었다. 난폭했던 좀 전과는 달리 군더더기가 없는 담백한 행동이었다. 그는 가혜의 등 뒤로 팔을 집어넣어 힘주어 안아 올렸다.

어느새 이불이 달아나고 없는 침대 시트 위로 가혜를 눕힌 다음 윤석은 반대편으로 돌아가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 들었다.

커다란 손으로 먼지를 털 듯 이불을 턴 그는 가혜의 위로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그 세심한 행동에 윤석은 눈썹을 찡그렸다.

오늘은 자신의 일상과 상당히 동떨어진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단 후의 뒤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던 자신이 멀게만 느껴졌다.

윤석은 다시 가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단 후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여자를 자신에게 맡겼을까. 누군가를 돌보는 데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또 헛웃음이 나왔다.

“아아, 진짜 망했네.”

윤석은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손이 머리에서 떨어지자 음울했던 눈빛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처음 방에 들어설 때의 능청스러움이 그의 표면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토끼야, 죽으면 안 돼.”

가혜에게 토끼라는 별명을 지어준 윤석은 침대 맡에 서서 미간을 접었다. 집중을 할 때 자연스럽게 접히던 주름이 그의 이마에 선을 그렸다.

윤석은 침대 맡에 서서, 상자 속 병아리를 발견했을 때처럼 잠시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알아서 일어나 주지 않으려나? 어쩌면 곧 눈을 뜰 수도. 몸이라도 뒤척여 주면 좋으련만.

이 방에서 인기척이라고는 자신의 것이 전부였다.

윤석은 그제야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사방이 거북했다.

“숨은 쉬고 있겠지?”

손을 코밑에 가져다 댄 그는 검지에 느껴지는 얕은 숨결에 안도했다.

“죽은 건 아니네.”

윤석은 묘한 눈빛으로 가혜를 내려다보다 재킷을 걸쳐 두었던 1인용 소파로 향했다. 재킷을 뒤적인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밖에서 전화를 받는 듯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상납금을 멋대로 줄인 조직을 박살 내러 간다고 했던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조장님.”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에 윤석 역시 일본어로 대답했다. 단 후가 일본어를 쓸 때는 누구든 일본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것이 단 후가 지배하는 토키와 회의 숨겨진 규칙이었다.

윤석의 부름에 단 후가 날을 세웠다.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단 후의 표정이 눈에 선명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물면서 위험한 향기를 풀풀 풍기고 있겠지.

“왜. 민윤석.”

“어…… 그래. 나야. 윤석이.”

“…….”

주저하는 듯한 윤석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고요함은 맹수가 사냥감의 목줄을 물어뜯기 전 제 기척을 죽이는 행동과 같은 맥락이었다.

침묵이 깨어진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떤 상태야.”

윤석은 자신이 전화를 했을 때부터 단 후는 이 상황을 짐작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이 여자를 맡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 미안한데…….”

“입 다물고, 내가 묻는 거만 대답해.”

윤석은 사나운 단 후의 반응에 벌써부터 기가 질렸다. 어찌 된 사정인지 알면 정말 자신은 죽으리라. 왜 하필 그때 자신의 강박증이 시작되었는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음, 닥터를 불러야 할 것 같아.”

윤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분노를 삭이는 듯한 숨소리가 터졌다.

단 후의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윤석은 통화를 하는 내내 자신의 여권과 숨겨 놓은 해외 자금을 떠올렸다. 스위스랑 파나마에 내가 얼마쯤 뒀더라.

“내 경고가 우스웠나.”

나직한 음성에는 고저가 없었다.

“아니. 그건 백 프로 아니지. 절대, 절대 아냐.”

윤석은 실제로 고개까지 저어 가며 부정했다.

“그런데도 내 말을 어겼어?”

“어, 음, 나도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이건 천재지변 같은 거였달까.”

나도 그때 강박증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단 후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사라져 갈수록 윤석은 머릿속으로 도망 루트를 열심히 짜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을 죽이겠느냐고 했지만, 역시나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이었다.

제 목숨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걸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 돌이켜 보건대 단 후는 전적도 화려하지 않은가. 단 후에게 혈육이라는 사실은,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 축에도 들지 못했다.

윤석은 눈으로 문을 흘겨보았다. 밖에 몇 놈들이 있더라. 자신을 죽이라는 단 후의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적으로 돌변할 녀석들이었다.

으, 같이 술잔을 나눈 녀석들을 죽이는 건 별로인데.

윤석은 반대편 손으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이대로 몇 년, 혹은 몇십 년은 험한 곳을 굴러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도 내가 살아 있어야 가능한 거겠지만.

휴대폰을 반대편으로 바꿔 들며 윤석은 소파에 던져 뒀던 재킷을 다시 들었다. 안쪽 주머니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었다. 휴대폰을 대고 있던 귀의 반대편에, 찾아낸 이어폰을 꼈다.

이제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도 상관이 없었다. 자유로워진 활동반경이 마음에 드는 듯 그는 통화를 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휴대폰의 화면을 뒤적였다.

윤석은 제일 먼저 찾은 건 세계 지도였다. 세계지도는 검지로 쓱쓱 돌려볼 수 있도록 지구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검지로 지구본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일본에서 단숨에 중동으로 지구본이 움직였다.

‘이 녀석이 못 쫓아오는 곳이 어디지? 이라크나 시리아 쪽?’

없는 종교도 만들어 몸을 의탁해야 할 지경이었다. 내가 테러리스트가 되면 이 녀석 때문이야.

“나랑 말장난할 정신은 있어? 도망가기도 급할 텐데?”

“내가 도망은 무슨, 왜 그래 무섭게. 우리 조장님이 왜 그러실까. 거기다 진짜 우리 사이에 그러는 거 아니다?”

단 후의 말에 재깍 반박했지만, 이번에는 남미 쪽을 떠올렸다.

윤석의 손을 따라 지구본이 빙그르 돌았다.

그래! 우선 파나마에 있는 돈을 들고 콜롬비아로 내려가서 약쟁이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브라질로 가자. 현대 문물도 없는 아마존에 처박혀 있으면 무슨 수로 날 찾아? 거기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다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단 후가 윤석의 계획을 뚝 잘랐다.

“응? 어? 그랬어?”

“헛짓하지 말고 닥터 불러. 그리고 넌 옆에서 간호하고 있어.”

“응? 닥터가 있는데 굳이 나까지 있을 필요가 있을까?”

“민윤석. 테러리스트나 카르텔 사이에 숨는다고 내가 너 하나 못 죽일 것 같아?”

해 볼 테면 어디 해 보라는 식이었다. 뒷골이 싸한 걸 보니 오히려 단 후는 그걸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조직 생활이 지루한가.

“아니.”

“그래. 그러니까 붙어 있으라고. 내 장난감 옆에.”

* * *

군기가 해이해진 하부 조직들을 점검할 겸 거슬리는 타 조직들을 밟는다는 목적이었다. 말이 쉽지 전국구인 토키와 회는 자신의 구역을 가볍게 돌아보는 데도 최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단 후는 그걸 반의반으로 줄인 강행군을 계획하고 움직였다.

일주일 안에 정리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온다.

이 비현실적인 계획은 가장 멀리 있는 지역부터 해서 위로 올라오는 식으로 구체적인 일정까지 잡혀 있었다.

‘내가 지금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나?’

윤석은 침대에서 물러나 문 근처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서 있었다. 나름 반성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바닥을 내려다보던 눈은 자꾸만 침대 쪽을 향했다. 그의 시선은 불손하게도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단 후 맞지?’

윤석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두 시간 전, 단 후와 통화를 끊자마자 윤석은 닥터에게 연락을 취했다. 정말 바로 닥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닥터는 이미 이곳을 향해 출발을 한 상태였다.

선견지명이라도 있나.

멍청하게 무슨 일이냐 질문을 했더니 닥터는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듯한 탁한 목소리로 단 후에게서 직접 연락을 받았다고 했었다. 성질 더러운 조장의 직속 명령이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떨어진 것이다.

잠시 후, 닥터는 속도 위반 딱지를 매 사거리마다 끊고는 병원에서 여기까지 십오 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윤석의 눈앞에 나타났다. 말 그대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날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닥터가 나타났을 때도 놀라웠는데 저 녀석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되는군.’

윤석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단 후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본가에 나타났다.

그냥 구식 맞추기 정도로 여겼던 본가의 헬기 착륙장. 큰 회사나 병원, 또는 빌딩 옥상에 착륙장이 있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여긴 집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갑자기 상공에 나타난 헬기는 커다란 소음과 바람을 일으키며 착륙했다. 그 소란에 안에 있던 조직원들은 연장이나 총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녀석들도 있었다.

윤석 역시 다른 조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혜가 있는 방안은 창문조차 없는 막힌 공간이었다. 바깥에 무언가 위험이 닥쳤다면 얼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윤석은 조직원들을 방패막이 삼아 상황 파악에 나섰다.

모두가 혼란에 빠진 소동 속에서 헬기의 문이 열렸다.

단 후는 유유히 헬기에서 내렸다.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조장이 나타나자 더욱 긴장했다.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본가에 돌아오셨다면 중요한 이유가 있으실 거다. 그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피바람을 머릿속으로 그린 조직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모두의 시선이 오직 단 후에게 모였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만들어 내는 거센 바람과 소음은 그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 후의 뒤로 경호팀이 따라붙었다.

윤석의 팀원들이었다. 윤석의 눈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경호팀에서 좌천 당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새 경호팀원들이 반가웠다. 부럽기도 했다. 아, 지금 만나면 놀림부터 당하려나? 분명 비웃을 녀석들이었다.

놀림거리가 되는 건 싫은데. 윤석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몸을 틀었다.

그는 저들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이 가혜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뒷골이 서늘한 음성과 시선이 제게 꽂히지 않았다면.

─내가 옆에 붙어 있으라고 했을 텐데 왜 여기에 나와 있지?

‘귀신같은 놈!’

생각을 정리하던 윤석의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자신이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덩치가 큰 녀석들 뒤에서 완벽하게 숨어 있었다. 기척을 지운 건 기본이었다. 제 앞에서 엄폐물이 되었던 녀석들이나 주위에 있던 이들까지 윤석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발각되었다.

짜증 날 정도로 쉽게.

윤석은 침대에 누워있는 가혜를 보고 있는 단 후의 뒤통수를 세게 노려보았다.

‘어디 이것도 한번 알아내 보시지?’

영양제를 섞은 링거를 맞고 있는 가혜는 윤석이 염려했던 대로 탈수 증상에, 정신적인 충격까지 더해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윤석은 속으로 단 후의 모습을 빈정댔다.

‘저러고 있으면 누워 있는 여자가 눈을 뜨나?’

이상했다. 이런 단 후는 몹시 이상했다.

닥터는 심신에 좋다는 아로마 향까지 처방해 주고 갔고, 불쾌한 점은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토록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인데 윤석의 눈이 비친 단 후의 뒷모습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애달파 보였기도 했고. 높은 곳에서 외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게 말이 돼?’

헬기까지 급하게 수소문해서 그 거리를 날아온 것 치고 단 후는 공기처럼, 혹은 물처럼 침대 옆자리에 고여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단 후 때문에 윤석의 가슴이 불안하게 술렁였다.

참다못한 윤석이 입을 열었다.

“너…….”

“조용히 해.”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지만 날카로운 기운은 윤석의 말을 베어 냈다. 매끄럽게 잘려 나간 단면이 그의 광기를 보여 주었다.

‘광기?’

윤석은 자신이 읽어 낸 감정에 다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진득하다 못해 끈적했다. 음습하고 악랄했다.

공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단 후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날렵한 턱선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간신히 무언가를 참아 내는 모습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훔치는 외모와 무릎을 꿇게 만드는 분위기를 날것 그대로 풀어놓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수록, 그 밀도가 짙어졌다. 큰 체격이 훨씬 더 거대해 보였다.

성큼 걸어온 단 후는 긴장한 윤석의 앞에 마주 섰다.

“닮았지?”

“!”

윤석은 단 후가 말하는 대상을 알아차렸다. 서이령.

“그래. 나도 찾아내는 걸 네가 모를 리가 없지.”

단 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눈동자가 윤석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물지 못하는 상처에서 다시금 피가 흘러나왔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내 혈육.”

단 후는 손을 뻗어 윤석의 뒷머리를 그러잡았다. 윤석은 식은땀을 흘렸다. 다시 강박증이 오고 있었다.

“헉, 헉.”

숨이 가빠 오고 있었다.

단 후는 잔인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윤석에 대한 그의 벌이었다. 죽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넌 나와 많이 닮았어. 그래서 널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게 있지.”

윤석은 차마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못했다. 그건 자신의 치부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단 후는 픽, 웃음을 흘리고는 손을 떼며 몸을 움직였다. 제 몸에 가로막혀 있던 윤석의 시야를 틔워 주었다.

곧장 침대가 보이면서 아기처럼 잠이 들어있는 가혜가 시선을 끌었다.

“왜 내가 널 선택했는지 감이 와?”

“씨발 새끼.”

인상을 구긴 윤석이 욕을 뱉었지만 단 후는 그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앞으로가 사뭇 기대된다는 눈빛에는 만족스러움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잘 지켜야 될 거다.”

단 후는 윤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축객령을 내렸다.

분을 이기지 못한 윤석이 벌게진 눈을 한 채 방안을 나서자 침실에는 온전히 가혜와 단 후 두 사람만이 남았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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