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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사육법-10화 (10/54)

10화 ? 그녀의 경호원 (2)

윤석은 재킷을 벗어 단 후가 앉았던 1인용 소파 등받이에 두었다. 흰 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고는 일정한 넓이로 소매 단을 접어 올렸다. 올라간 소매 아래로 발달된 팔 근육이 드러났다. 짐승의 잘 발달된 근육을 보는 것처럼 탄탄하게 갈라져 있었다.

“정장은 보기에 좋은 건 알겠는데 움직일 때는 별로란 말이야.”

훨씬 자유로워진 옷차림이 마음에 드는지 윤석은 팔을 가볍게 움직였다. 문득 그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가혜에게 닿았다. 그의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 본 적 있습니까?”

냉장고의 문을 연 윤석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가혜에게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이쪽 세계는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라서. 싸우다 보면 누구의 피 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옷에 덕지덕지 묻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합니다. 살도 갈리거나 찢어지는데 옷 정도야 예삿일이죠.”

윤석은 웃겨 죽겠다는 듯 기가 차다는 듯 킥킥댔다.

“그런데 정장을 입어야 한다니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잘 움직일 수 있는 옷을 입어도 모자랄 판국에?”

냉장고의 찬 기운이 자신의 감정을 식혀 주는 기분이었다. 윤석은 최대한 천천히 생수를 꺼내며 냉기를 잔뜩 쐬었다.

“거기다 비싼 양복을 입는다고 해서 그게 갑옷이거나 방탄복은 아니잖습니까?”

아쉽다는 표정으로 냉장고에서 떨어진 그는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로 가혜에게 다가섰다.

“그렇죠?”

자신을 경계하는 가혜에게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금까지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일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단순한 장난이었다는 듯 굴고 있었지만 공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혜는 남자의 변덕스러운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범한 남자와는 다른 느낌의 위험함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가혜는 이를 악물었다.

“나랑은 말도 섞기 싫은 겁니까? 너무하네요. 가혜 씨는.”

윤석은 공을 던지고 받는 것처럼 생수병을 허공에 던지면서 결박되어 있는 가혜를 내려다보았다. 아쉽다는 어투였지만 그의 눈과 입매는 다른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너를 어떻게 괴롭혀 줄까. 꼬투리를 잡기 위해 반짝이는 윤석의 눈이 가혜에게 박혔다.

“이 상황 웃기지 않아? 누군 답답할 정도로 갖춰 입고 있는데. 넌.”

윤석이 차갑게 웃었다. 더럽고 불결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에 가혜는 수치심으로 당장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큭. 아, 실례.”

잔인한 웃음이 가혜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가느다란 어깨끈으로 연결된 매끄러운 실크 슬립은 그녀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라 아래를 겨우 가린 슬립은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겨우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꼴은 너무하잖아.”

가혜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윤석은 슬립 위로 튀어나온 그녀의 유두를 발견했다. 그의 시선이 닿자 가혜의 유두가 더욱 도드라졌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며 윤석은 조소를 머금었다.

슬립 위로 윤석의 손가락이 가혜의 유두를 희롱했다. 그의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가혜의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이 터졌다.

“흣!”

“반응이 좋은데요. 가혜 씨는 여기가 민감한 타입?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꼿꼿이 서 있네요.”

다시 윤석의 검지가 닿자 가혜는 허리를 들썩였다.

“아아. 만지지 말, 말아요.”

“단 후는 여자 몸을 개발하는 걸 좋아해요. 상당히 잘하기도 하고. 그런데…….”

윤석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진지한 눈으로 가혜를 살폈다.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고 그림을 감상하듯 거리를 벌린 그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번은 개발을 한 건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네.”

잠시 만져 본 걸로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윤석이 다시 손을 뻗었다.

“흐읏. 만지지 말…… 아…….”

손가락을 피하기 위해 가혜가 몸을 움직이자 윤석이 아래로 쏟아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당기지는 않고 가볍게 손가락에 머리카락을 말아 쥐었다. 굵게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었다. 윤석은 아프지 않게 거리를 유지한 채 가혜를 관찰했다.

단 후가 어떤 면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얀 살결 위로 떠오르는 표정, 달아오르는 체온, 물이 들듯 붉어지는 피부. 기교가 훌륭한 여자는 많아도 남자를 밑바닥에서부터 뿌듯하게 만들어 주는 여자는 드물었다.

윤석의 하반신에 서서히 피가 몰리고 있었다.

“네가 그런 타입이네.”

윤석은 가혜의 머리를 한쪽으로 몰아 쥐었다. 그러자 앙증맞은 귀가 나타났다. 가혜와 눈을 맞추던 그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어느새 하얗던 귀는 연분홍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제 감정을 숨기는 법조차 모르는 순진한 몸은 그 자체가 범해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남자를 홀리는 미색.

“……!”

그 순간 가혜의 모습 위로 누군가의 모습이 교차했다. 윤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떠오른 이는 그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서이령.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는 달을 잘라 내 빚은 느낌이었다. 달빛처럼 신비롭게 반짝이지만 지울 수 없는 서늘한 한기를 달고 다녔다.

이 세상의 것이라기보다 저 세상의 것처럼 기묘한 느낌의 여자.

─너는 끝까지 날 가지지 못해.

그녀는 공허함 그 자체였다. 달빛을 손에 쥘 수가 없듯이, 그녀는 제가 가진 색처럼 아스라이 사라져 버렸다.

“제길.”

윤석은 작게 욕설을 뱉었다. 얼마간 떠오르지 않아서 잊어버리거나 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서이령 같은, 최가혜 같은 타입에 약했다.

부끄러움에 붉어진 살결조차 연약한 빛깔을 띠는 육체는 제가 환장하는 색을 품고 있었다. 희미해서 곧 사그라질 것만 같은.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송곳처럼 뾰족해진 강박증이 윤석의 가슴을 두드렸다.

제 경험상 이런 유의 여자는 언제 픽 죽어 버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 가져야만 했다. 또다시 바라만 보다가 후회하긴 싫으니까.

이령처럼 가혜도 언젠가 사라지리라.

울렁대는 속에도 이성은 한 가지 사실을 외쳐 댔다.

‘단 후가 알면 싫어하겠지.’

제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단 후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혜의 귀를 보자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괴롭혀 주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싫다고 울어도 더 심한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안 걸리면 그만 아닌가.’

단 후의 장난감을 허락 없이 건드리겠다는 건 죽여 달라는 시위와도 같았다. 그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자꾸만 무언가에 충동질당하고 있었다.

─너는 절대 안 돼.

이령의 목소리가 윤석의 심장을 찔렀다.

“씨발…… 왜 안 되는데.”

중얼대던 그는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굴었다.

“씨발, 약쟁이가 뒷일 생각하는 걸 봤나.”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윤석은 머리칼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 가혜의 귓바퀴를 건드렸다. 낭창 휘어지는 연골이 손가락에 걸렸다. 식욕이 돋는 것처럼 성욕이 피어올랐다.

‘조금만.’

마음에 드니까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거다. 지금은 단 후가 없고. 이 사실을 고할 수 있는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머릿속을 파고든 충동은 악마의 속삭임이 되어 윤석을 다그쳤다.

약하고 귀여우니까 부서질 때까지 울리는 거다. 넌 그럴 수 있잖아?

윤석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조금만 맛을 보는 건 괜찮잖아.’

윤석이 침대에 앉자 매트리스가 낮아졌다. 그는 가혜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의 입술이 야릇하게 올라갔다. 으슥하게 낮아진 음성으로 가혜에게 물었다.

“기분 좋아?”

윤석은 애무를 하듯 가혜의 귀에 제 숨을 불어넣었다.

“하아…… 하아…….”

윤석은 도톰한 귓불에 입술을 내렸다. 민감한 몸이 잔뜩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입술을 붙인 채로 키득 웃으며 그대로 말을 뱉었다. 아래로 내려간 손은 가혜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엉덩이 아래 허벅지 안쪽 피부가 자극으로 떨리고 있었다.

“원한다면 넣어 줄 수도 있어.”

“흐윽…… 아아…… 그, 그만.”

“단 후밖에 모르는 몸이지? 다른 남자는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지 않아?”

이브를 유혹하는 뱀처럼 윤석은 가혜를 계속해서 유혹했다. 듣기 좋은 저음과 기분이 좋은 곳만 만지는 손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했다.

가혜는 미간을 찡그리며 윤석의 손길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하아…… 싫어…… 싫어어.”

“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기분 좋을 거야.”

가혜는 윤석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뿌리치고 싶어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커다란 몸 때문에 자신의 몸 위로 어둑한 그늘이 졌다. 마치 그 남자가 자신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남자의 손이 거칠게 슬립을 밀어내고 아래를 파고들었다.

“헉! 빼, 빼!”

“왜? 좋잖아.”

손가락이 제 좁은 속살을 가르고 무언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빙글, 돌던 손가락은 구부러져 벽을 간질이듯 문질렀다. 그러자 비음이 터졌다.

“하아, 아아, 으응”

가혜는 분명히 느꼈다. 자신은 남자의 손가락이 만지는 곳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찔대고 있었다. 질벽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쾌감이 온몸에 가득차서 손가락에 모든 걸 맡겨 버리고 싶었다.

음부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엉덩이까지 축축해졌다.

“욱, 아앗, 읏!”

“내벽 부풀어 올랐네? 내 걸 넣고 싶어서 잔뜩 흥분해 있잖아. 걱정하지 마, 내 것도 그러니까.”

윤석은 제 손목까지 흥건히 적신 가혜의 애액을 보고는 손가락을 빼냈다. 대충 하의를 내린 그는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애액이 묻은 손으로 잔뜩 흥분한 페니스를 잡은 윤석은 가혜의 얼굴 앞에서 제 것을 잡고 흔들었다.

젤을 바른 것처럼 윤석의 커다란 성기가 번들거렸다.

“하지, 하지 말아요. 싫어.”

묶여있는 손이 침대 헤드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윤석은 무시하고 다른 손으로 가혜의 다리를 어깨에 걸쳤다.

“아아! 안 돼!”

어느새 배 위로 밀려올라가 있는 슬립 아래로 가혜의 음부가 드러났다. 흰 피부와 대비되는 검은 숲 아래로 붉은 과실이 보였다.

“역시 맛있어 보인단 말이야.”

그의 것을 넣으면 달콤한 과즙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싫어! 싫어!”

가혜의 거부에도 윤석은 제 것을 입구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때였다.

“끼아아아아아─!”

가혜가 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껴안은 것처럼 비명을 지른 것이. 발작처럼 그녀의 몸이 요동쳤다. 두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가 까무룩 죽기를 반복했다.

“헉, 헉.”

미치도록 싫었다. 윤석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죽도록 싫었다.

빈속임에도 불구하고 가혜는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가혜의 음부에 페니스를 가져다 댄 윤석의 행동은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겨우 머릿속에서 밀어 놓았던 기억이, 꺼내기조차 힘들어서 깊숙이 묻어 두었던 기억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내가 아니야.

아니어야만 해.

가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이봐?”

윤석은 어깨 위에서 이상한 각도로 휘어지는 가혜의 다리를 얌전히 침대로 내려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그의 얼굴에도 난감함이 어렸다.

“으으으으, 헉헉.”

가혜의 벌어진 입에서는 삼키지 못한 침이 흘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그녀는 엉망진창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가혜 씨, 정신을 좀 차려 봐요.”

“으으…….”

“정신 차려!”

윤석이 조금 더 큰소리로 외쳤다.

“……야…….”

“뭐라고?”

“내가 아니야!”

떨리던 가혜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입 밖으로 나왔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동자가 허공을 헤맸지만 가혜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낮고, 명확했다.

“나를 좀 내버려 둬.”

음울하고 처연한 목소리에 윤석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을 차렸다. 그의 머릿속을 헤집던 이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강박증도, 충동도 없어졌다.

“괜찮아?”

윤석은 조심스럽게 가혜를 살폈다. 제멋대로 풀려 있던 근육은 다시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떨림이 멎은 몸과 반대로 정신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가혜 씨?”

윤석의 부름에도 가혜는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싫어.”

“가혜 씨!”

윤석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가혜는 허상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곁에 있는 윤석이 점차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실제로 그녀의 눈앞에는 남녀의 정사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환각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데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아니야.

주문처럼 중얼거린 말은 소리조차 되지 못했다. 그저 내면에서만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말이었다.

내가 아니야.

저건 내가 아니야.

하지만 나체의 남녀는 익숙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등에 자리한 문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등을 가득 채운 한 마리의 용과 호랑이는 남자를 닮아 사나운 기세를 풍겼다. 당장에라도 그의 몸에서 튀어나와 제 몸을 찢어발길 듯한 생생한 느낌이었다.

─으흑! ……아아!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가혜는 침대 위를 뒹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제발 조용히 해.

숨소리조차 내지 말란 말이야.

가혜는 점차 울 것 같은 얼굴로 변해 갔다. 침대 위에 있는 여자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지마. 그 말을 꺼내면 안 돼.

하지만 가혜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는 남자에게 서슴없이 매달리고 있었다.

─아아, 제발, 아아. 주인……님, 주인님. 아아.

가녀린 목소리에 짙게 깔린 건 쾌락이었다.

달콤한 신음, 높게 올라간 목소리, 어쩔 줄 모르는 몸짓. 부정하려고 해도 쾌락의 증거는 잔인했다.

여자의 욕망이, 흥분이 고조될수록 남자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아아앙!

─좋아?

─좋아요. 좋아! 아앙, 더, 더!

남자가 파고들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퍽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음란함의 절정을 찍고 있었다.

─앗, 앙!, 아하…… 아아…… 앙!

─허리도 움직일 줄 아네? 이젠?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남녀 간의 섹스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가혜는 여자의 행동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녀와 자신의 몸이 이어진 것처럼 그녀가 느끼는 감각들이 가혜의 몸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신경이 당겨진 화살처럼 팽팽해지고 있었다.

짧은 찰나가 작게 나뉘어 영원처럼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하악, 하아아, 아앗, 아아!

높아지는 교성만큼 남자 역시 여자에게 제 몸을 더 붙였다. 탐스러운 엉덩이를 세게 잡아 제 손자국을 새기듯이 힘을 주었다. 분신을 젖은 틈 사이로 빠르게 찔러 올랐다.

─으흑!

─내걸 받아 내는 거다. 하나도 남김없이 쥐어짜 내.

─하악! 아아…… 아학…… 읏…… 앗!

남자는 사정없이 자신의 허리를 움직였다. 아래에서 여자가 죽을 듯이 신음을 내질렀다. 그게 기분을 고조시키는 듯 그는 눈을 감고 제 것으로 안을 휘저었다.

─최가혜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와 가혜가 동시에 눈을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흥분으로 상기된 여자의 얼굴과는 달리 가혜의 표정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땀에 젖은 얼굴과 달리 남자의 표정은 차갑고 오만했다.

─애원해 봐. 가르쳐 줬잖아.

남자는 귀두로 여자가 느끼는 부분을 사정없이 찔렀다. 진한 감각이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확, 그 강렬한 감각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여자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쿡쿡, 제 안을 공격하는 남자의 것을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가고 싶어요……! 가게 해 주세요……. 주인님.

─좋아. 가 버려.

허락을 한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에서 손을 떼고 골반을 잡고 라스트 스퍼트를 냈다.

─아아아!

여자의 입에서 환희의 신음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혜는 소름이 돋은 제 팔을 보고는 귀를 막았다. 여자가 느끼는 쾌감에 몸이 오싹했다.

제 몸에 일어나는 반응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강제로 당하는 일이었다.

남자를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웠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저토록 필사적이었을까.

한 줄기 허망한 눈물을 흘리며 가혜는 마지막까지 여자와 남자를 제 눈에 담았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에 지친 듯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아래로 쓰러졌다. 깜깜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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