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의 사육법-8화 (8/54)

8화 ? 차악을 고르다 (2)

단 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혜의 눈앞이 새하얗게 부서졌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을 착실하게 이행했다. 그의 커다란 몸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러자 침대가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들썩였다.

“흐…… 핫! 아…… 아…… 아학!”

가혜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신음을 질렀다. 목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 폐에서부터 터진 숨이 목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제 것을 박는 단 후의 움직임에 가혜는 허리를 휘었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득한 감각이 휘몰아쳤다. 제 안에 들어온 그의 페니스로 온몸이 빠듯해졌다.

“아흑! 너무…… 너무, 갑자기…… 이러면…… 아학!”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어 보려는 애원은 쉽게 묵살되었다. 그의 피스톤질이 이어질수록 가혜의 눈동자는 충격에 젖어들었다.

“아아…… 제발…….”

가련한 얼굴로 그녀는 단 후를 바라보았다. 자비를 구하는 애처로운 눈빛에도 단 후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았다.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 그의 표정에 가슴이 무너졌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싫어, 싫어…… 아……앗, 흐윽…… 읏!”

“얌전히 있어. 네가 얼마나 협조를 잘해 주느냐에 따라 두 번째는 상냥하게 해 주지.”

그의 단호한 음성에 가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걸 또 한다고? 그녀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잔인한 단 후의 처분에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아아아…… 싫어…… 이 정도면…… 으읏! 되……잖…….”

이대로 가다간 아래가 망가져 버릴지도 몰랐다. 불편한 감각에 기분이 나빴다. 그가 자신의 몸을 핥을 때와는 다른 생소한 느낌은 그저 괴롭기만 했다. 제발, 나가 줘. 배 안쪽 질의 어딘가에 그의 페니스가 닿을 때마다 가혜는 자꾸만 허리를 비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부는 이게 전부였다.

“제발…… 그만…….”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단 후는 가혜의 목덜미에 더운 숨을 뱉었다.

“후. 좋아.”

단 후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렀다. 그는 손을 뻗어 가혜의 뺨을 톡, 건드렸다.

“좀 더 앙탈을 부려 봐. 여기 말이야. 응?”

단 후의 다른 손이 가혜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 손은 아래로 내려오더니 가혜의 허리를 살살 문질렀다.

“아, 앗!”

그의 손이 닿은 피부 아래로, 신경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가혜는 신음을 내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단 후가 의도한 대로 허리를 튕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뒷머리를 그러잡았다.

“하아…… 하아…… 하아…….”

뜨겁게 체온이 오른 가혜의 몸이 힘없이 그에게 안겨 들었다. 그 여운을 즐기듯 단 후는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가혜를 안고서 침대 아래를 응시했다.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한 단 후의 얼굴이 짓궂게 변했다.

시선이 엇갈린 채로 안겨 있었던 가혜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저 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이 휴식을 붙잡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으면 좋겠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귓가에 쿵쿵, 울리는 심박 수와 더불어 오르락내리락 헐떡이는 가슴은 제게 너무 버거웠다. 가혜는 단 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던 신음이 점차 옅어졌다.

자신의 소리가 사라지자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벽에 걸려 있던 시계 바늘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가혜는 단 후의 가슴에 기대고 있던 이마를 뗐다.

‘몇 시쯤일까.’

째깍,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단 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하네.”

몸은 지친 데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가혜는 이 무서운 남자가 웃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도 입술도 여전히 차갑기만 한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목소리는 그랬다.

“무슨 말이에요?”

칭찬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가혜는 시계를 찾는 대신 단 후를 보았고, 이내 오만한 눈빛과 마주해야 했다.

“다시 안쪽 근육 움직여 봐. 사정해 달라고 여기로 조르라고.”

단 후는 맹수처럼 가혜의 목덜미에 이를 세워 넣으며 동시에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위아래로 느릿하게 움직이던 손이 조금 전과 같은 곳을 스쳤다.

“앗!”

새된 목소리가 가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의 신음과 동시에 아래의 근육이 조여들자 단 후는 또다시 깊은숨을 내뿜었다.

가혜는 그제야 깨달았다. 허리를 움직였던 자신의 행동이 이 남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가 이 남자를 흥분시키고 있어?’

무섭도록 거대한 남자가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가혜의 눈동자가 단 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뭘 그렇게 봐.”

단 후는 가혜를 팔을 잡고 제대로 그녀의 상체를 세웠다. 더 깊게 느껴지는 단 후의 페니스에 가혜는 고개를 저었다.

“아아. 이게…… 이건…… 이건…… 싫어. 싫어어.”

“네 목소리, 점점 더 야해지는 거 알아? 신음도 소질 있어. 기교만 가다듬으면 호스티스나 AV 배우로 꽤 잘나갈 거야.”

가벼운 어조로 가혜를 평가한 단 후는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위로 올렸다.

“그래. 밖으로 나가서 다른 녀석들에게 네 신음 소리와 흐트러진 네 모습을 보여 줄까? 다른 녀석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고.”

“그게 무슨…….”

당황한 가혜를 무시한 채 단 후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두 팔을 집어넣었다. 두 팔의 근육이 움직인다 싶은 순간 가혜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천장에 매달렸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지켜보면 너도 더 흥분해서 질질 쌀지도 모르지. 재주껏 애교를 부리면 다른 놈들의 맛도 즐기게 해 줄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이었다. 이 남자는, 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단 후의 품에 안긴 채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아래에서 치받는 충격에 가혜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깨물지 마.”

단 후의 혀가 가혜의 입술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는 집요하게 같은 곳을 핥았다. 혀가 닿은 부분이 상처를 자극하자 다시 피가 흘렀다. 그 따가운 느낌에 가혜는 눈을 찌푸리며 신음을 뱉었다.

“읏.”

“그래.”

기어이 가혜의 입술과 이를 떼어 놓은 그는 그녀를 차갑게 응시했다. 붓고 찢어진 입술은 가혜의 얼굴에서 제일 엉망이었다.

“네게 상처를 내는 건 나만 가능해.”

단 후는 피가 흐르는 가혜의 입술에 제 입을 가져다 댔다. 그는 제 혀로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삼켰다.

“피가 멎었군.”

가혜의 입술에서 단 후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유감이라는 듯 가혜의 입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흡.”

가혜는 자신을 바라보는 단 후의 시선이 두려웠다. 미친 사람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눈. 저 눈의 의미를 알아서는 안 된다.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그녀는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단 후는 먼저 자신의 시선을 피한 가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바로 앞에 문이 나타났다. 손잡이만 돌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열지 마요.”

그가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나설 것만 같아 가혜는 덜덜 떨었다. 그의 눈빛과 다른 공포였다.

“제발…….”

저 밖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낯선 남자들에게 보여 주는 건 싫었다. 바닥부터 차오르는 수치심에 가혜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울면서 단 후에게 사정했다.

“나가지 마요. 그건 싫어요. 나가지 말아 줘요.”

가혜의 머릿속은 그의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막을 수 있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해? 물음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그가 자신을 칭찬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가지 말아 줘요. 나가지 않아도 더 잘할 수 있어요.”

“뭘?”

“제가 열심히 조일게요. 나한테 원했던 것처럼 그렇게 할게요.”

가혜의 애원에 단 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려는 듯 눈빛이 깊어졌다.

“잘할게요. 그러니까…….”

단 후는 이어지던 가혜의 말을 잘랐다.

“넌 급하면 이런 식이군.”

“무슨……?”

“핥고, 빨겠다, 고 했었지. 분명.”

단 후의 얼굴이 가혜의 얼굴을 향해 내려왔다. 서로의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싫으면서도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너는 서슴없이 차악(次惡)을 선택하네. 포기가 빠른 건지, 현명한 건지.”

읊조림과 같은 말을 들으면서 가혜는 눈을 깜박였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찾는 사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할 수 있겠어?”

“네? 네.”

기회를 준다는 듯 던져진 말에 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게 많아서 좋겠어, 최가혜. 저것도 해야 하고.”

단 후의 턱짓을 따라 가혜는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나보고 저걸…….”

“유두 클립을 하라는 뜻이었는데 넌 어쭙잖게 이불이나 네 몸에 감고 있었지.”

가혜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제이라는 여자와 겐지라는 남자가 나타난 뒤로 아무런 언급이 없기에 잊은 줄 알고 있었다.

가혜는 단 후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냉철해 보이는 외모처럼 철저한 남자였다.

‘이 남자는 절대 자신을 거스른 일을 잊지 않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잊어버리지 않았으면서 왜 지금에서야 유두 클립에 대한 말을 꺼냈을까?’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눈동자가 자신을 보는 순간, 가혜는 납득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효율적으로 그를 거역한 대가를 받아 내기 위함이었다. 이해나 용서 같은 다정한 단어 따위가 아니라.

가혜의 입안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토록 무서운 사람에게 잡혀 버렸구나.

“저것도 할게요.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지만 말아 줘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싫어요.”

“뭐, 좋아.”

단 후는 자연스럽게 몸을 틀었다. 침대로 다가간 그는 가혜의 몸에서 페니스를 빼내기 시작했다. 주욱. 피스톤 질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페니스는 더디게 움직였다.

“흣!”

천천히 나가는 페니스는 적나라하게 그 길이와 모양이 느껴졌다. 가혜는 페니스의 귀두 부분이 안을 긁어 대며 나가자 소스라치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는 유두 클립이 떨어진 침대 아래에 가혜를 내려 주었다.

“하아…….”

제 발로 서 있는 게 낯설 정도로 가혜는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경련을 하듯 떨었다.

단 후는 그 모습이 우습다는 듯 조소를 머금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거만한 태도로 가혜에게 명령했다.

“느끼고 있지 말고, 어서 줍기나 해.”

“……네.”

가혜는 무릎을 꿇고 유두 클립을 집었다. 집게처럼 되어 있는 유두 클립은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집게 부분에 고무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차 안에서 봤잖아.”

“……”

“짜증 나니까 빨리해.”

낯선 물건 앞에서 망설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단 후의 다그침에 가혜는 유두 클립과 자신의 왼쪽 유두를 번갈아 보았다.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깊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결심을 한 듯 조심스럽게 제 스스로 유두 클립을 채웠다.

“읏!”

예상했던 대로 유두에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살이 집힌 부분에서 아픔이 피어올랐지만 그곳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쾌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처할 정도로 몸이 예민해졌다.

가혜는 부끄러운 눈으로 반대편 가슴을 확인했다. 얼른 클립을 채워 달라는 듯 유두가 꼿꼿이 서 있었다. 가혜는 침대 위에 있는 단 후를 곁눈질로 살피고는 나머지 한쪽을 달았다. 그가 제 변화를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사항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정말 좋아하는군.”

단 후는 발을 들어 가혜의 오른쪽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엄지발가락에 클립이 움직이자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 허리가 울렸다.

“하윽!, 아아아아…… 그게 아니라……”

“거짓말. 그 따위 변명 할 거면 그냥 입 다물고 이쪽으로 와.”

단 후는 검지로 제 다리 사이 공간을 가리켰다.

“네.”

그가 다리를 치워 주자 가혜는 무릎걸음으로 단 후에게 다가갔다.

‘이제 어쩌지?’

난처한 얼굴로 자리를 잡자 그가 그녀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중심을 향해 가혜의 입술을 내렸다.

“윽.”

입술의 상처에 커다란 페니스가 닿았다. 쓰라린 걸로 봐서는 다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입 벌려. 최가혜.”

“웁.”

각오는 했지만 막상 입에 페니스가 닿자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흉흉한 크기는 제 입에 다 담길 것 같지도 않았다. 가혜는 괴로운 듯 눈을 찡그렸다. 눈물이 고였다. 비린 냄새는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흐읍.”

가혜는 죽을 것 같아 제 머리를 잡은 단 후의 손을 잡았다.

“밖으로 나갈까?”

단 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협박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가혜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아니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려 바닥을 짚었다. 단 후의 것을 머금기 위해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꾸만 체중이 앞으로 쏠렸다. 쓰러지지 않게 제 몸을 양팔로 지탱하며 가혜가 입을 열었다.

슥─ 그의 페니스가 입안에 넣자, 기다렸다는 듯인 잔혹한 지시가 내려왔다.

“핥고, 빨아 봐.”

* * *

“헉!”

숨이 막이는 느낌에 기겁을 하며 가혜는 눈을 떴다. 지독한 꿈이었다. 잠을 자던 내도록 식은땀을 흘렸는지 온몸이 축축했다. 그 끈적이는 느낌에 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샤워를 하러 갈까?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아…….”

피곤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끔찍했어.’

물 먹은 솜처럼 침대 위에 퍼진 가혜는 어두운 방안에 젖어 들어 가듯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잘까. 그래.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호텔 조식을 먹은 뒤에 기운을 내서 밖으로 나가자. 오늘은 어디로 갈까.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는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랑 달콤한 케이크도 먹고 싶어. 그러면 이 기분도 나아지겠지?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기분 좋은 생각만을 떠올리던 가혜는 습관적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찰그락─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였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온 것도 같았다.

가혜는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째깍째깍 시계 바늘이 소리가 들렸다. 문득 가슴이 선득해졌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었다.

가혜는 스스로를 위로하듯 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찰그락, 찰그락─

기다렸다는 듯 귓가에 꽂히는 쇳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가혜는 움츠렸던 몸을 풀고 다시 몸을 똑바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히 쇳소리가 들렸다. 자신과 아주 가깝게.

가혜는 설마하며 손으로 이불 속을 더듬었다.

‘아닐 거야.’

하지만 찜찜한 예감은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건 꿈이야.’

찰그락─

체온으로 따뜻해진 쇠가 손가락에 걸렸다.

가혜는 감겨 있던 눈을 번뜩 떴다.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둠에 익은 눈이 방안의 실루엣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야.”

신경질적으로 이불은 걷어 낸 가혜는 제 손가락에 걸린 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악몽이 아니야.”

가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꿈이라 치부했던 그 일들이 모두 현실이었다. 제 자신이 했던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어.”

그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더 깊게 넣어.’

그의 신음이 귓속을 채웠다.

‘흐음. 후.’

내가 대체 뭘 했던 거야?

“아아악.”

가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싫어어!”

가혜는 현실을 부정하듯 소리쳤다. 그 순간 방안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가혜의 행동에 전혀 놀라지 않은 태도로 말을 걸었다.

“일어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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