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길들이기 (1)
힘겹게 눈을 뜬 가혜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박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흐릿했다. 낮은 조도로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와 낯선 분위기에 가혜는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여기가 어디지?’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깨어나는 상황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다. 마지막 기억이 납치라면 더더욱. 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흐릿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손이 묶인 채로 거대한 남자에게 온갖 일을 당했던 장면이 눈앞을 스쳤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가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음, 흡!”
가혜는 발작처럼 떨고 있는 몸을 멈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굳어 버린 몸은 손가락조차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충격으로 떨리는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여!’
누워 있으면 안 돼.
집으로, 집으로 가고 싶어.
여린 입술에 이가 박혔다. 단 후에게 맞아 찢어진 입술에서 다시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방 한곳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건방져.”
가혜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들려온 예리한 목소리에 가쁜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번개라도 맞은 듯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목소리에 마법이라도 풀린 듯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멋대로 상처를 내라고 했지?”
이어지는 말에 가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일인용 소파에 그가 앉아 있었다.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차가운 눈빛과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음성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가혜가 단 후를 살피는 동안 그 역시 그녀를 보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의 입매가 슬쩍 비틀렸다 제자리를 찾았다.
단 후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가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도통 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혹은 아예 자신의 행동을 자각조차 못하고 있다든가. 그녀의 입술에 하얀 이가 더 파고들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훈련이 안 된 개를 키우면 이런 점이 성가시다니까.”
귀찮음이 역력히 담긴 목소리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짧은 순간 화면에서 흘러나온 빛이 그를 비추었다가 사라졌다.
단 후는 핸드폰 대신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순조롭게 마무리한 사람처럼 그는 자연스럽게 술잔을 내려두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을 돌아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가혜는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침대에서 막 내려섰을 때쯤 거북한 쇠사슬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찰그락─ 찰그락─
“콜록콜록.”
소리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가혜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목에 뭔가가 있어.’
침대에서 내려서자마자 머리가 뒤로 당겨지는 느낌이 들면서 목이 조였다. 가혜는 손을 들어 목 주변을 더듬었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제 목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이…… 이게…….”
어쩔 수 없이 멈춰선 몸은 그녀가 목줄을 더듬으며 고개를 돌릴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슬. 동물에게나 달법한 사슬이 제 목에, 그리고 침대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돼?”
침대에 다가온 단 후는 팔짱을 끼고서 가혜를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그는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을 따라 느긋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가혜는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보내 줘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다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제발.”
가혜는 단 후가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가 도망칠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침대를 중심으로 반원 정도의 거리가 전부였다.
사슬의 길이 때문에 옆으로는 달아날 수 없으니 가혜가 단 후를 피해 물러설 수 있는 곳은 침대 헤드가 있는 쪽 벽뿐이었다.
“한국어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벽에 완전히 붙은 가혜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 눈치껏 알아내는 것도, 기절하지 않고 간신히 서 있는 것도 분에 넘치도록 힘이 들었다.
“난 일본어 모른다고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못 알아들어!”
단 후의 일본어에 질린 가혜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런 게 전부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당신이 대체 내게 왜 이러는지!”
바락 달려들 듯 올라간 가혜의 눈꼬리와 외침에 단 후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의 얼굴에 잔악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차, 싶었을 때는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머리가 나쁜 건가.”
단 후는 자신의 턱을 쓸어내리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침착하면서 낮은 음성에 가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던 가혜는 목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컥, 콜록.”
힘들어하는 가혜를 보면서도 단 후는 사슬을 한 번 더 말아 쥐었다. 줄이 짧아진 만큼 앞으로 딸려온 가혜가 반항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녀의 반항은 제게 무의미한 것과 다름없었다. 단 후는 입술을 위로 끌어 올렸다.
“그것도 아니면.”
가혜는 단 후의 무심한 말투 속에서 불길한 전조를 읽었다.
잠시 말을 멈춘 단 후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담배를 흡입한 단 후는 연기를 내뿜으며 가혜를 바라보았다.
“이런 게 취향인가.”
단 후는 다시 줄을 잡아당겼다. 가볍게 힘을 준 것만으로도 가혜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시, 싫어!”
강하게 당겨지는 목줄을 한 손으로 붙들고서 가혜는 침대 헤드를 다급히 잡았다. 그녀가 좁혀드는 거리를 필사적으로 버티는 와중에도 단 후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웠다. 어디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겠냐는 듯.
흰 연기가 숨과 함께 뱉어지고 그가 짐짓 다정한 목소리로 가혜에게 물었다.
“그게 다야? 내게 반항하고 기껏 하는 짓이 이따위라면 넌 진짜 죽어야겠다.”
“아악!”
단 후는 망설이지 않고 확 줄을 잡아당겨서는 제 앞에 다가온 가혜의 뺨을 내리쳤다. 여러 대를 때렸던 차 안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한 대로 단 후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사정을 봐줬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힘의 가감이 전혀 없었다.
단 후의 손찌검은 건장한 조직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 강력한 것이었다. 남자 조직원들을 대하듯 가혜를 대했으니 그녀의 충격은 상당했을 터였다.
가혜는 텅 빈 눈동자로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걸 단 후가 목줄을 당김으로써 겨우 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단 후는 엄지로 가혜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인형처럼 얌전해진 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고분고분하네. 이렇게 맞고서 얌전해지는 쪽이 좋은 거야?”
묻는 말이었지만 대답을 원하지는 않는 듯 단 후는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천천히 가혜의 얼굴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자신에게 맞아 부풀어 오른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까 맛본 네 안도 뜨겁던데.”
단 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스르륵 뺨에서 내려온 손가락은 그녀의 입술을 훑더니 거칠게 안을 파고들었다.
“으으읏.”
단 후는 검지로 그녀의 혀를 건드렸다가 뺨 안쪽의 살을 문질렀다. 물기가 어린 입안의 살은 탄력이 있으면서도 미끄러웠다.
“아아…….”
단 후가 손가락으로 입안을 가지고 노는 동안 서서히 가혜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는 어느새 두 개로 늘어 있는 단 후의 손가락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남자는 자신의 입안을 제멋대로 희롱하고 있었다. 억지로 벌어진 턱이 고통을 호소했다. 삼키지 못한 침이 그의 손가락과 핏줄이 솟은 손등을 지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단 후는 정신을 차린 가혜를 내려다보았다. 당혹감과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가 입매를 비틀었다. 단 후는 가혜와 눈을 맞추고 보란 듯이 손가락을 거칠게 앞뒤로 밀어 넣었다 빼길 반복했다.
“컥…… 하악!”
가혜의 반듯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깊숙이 들어갔던 손가락에 구토감이 몰려온 듯 헛구역질을 했다. 단 후는 그제야 손가락을 물려 주었다.
“익숙해져야 할 거야. 내 건 훨씬 더 크거든.”
단 후는 가혜의 혀를 검지로 가볍게 두드리고는 손가락을 뺐다. 주륵, 그의 손가락을 타고 그녀의 타액이 떨어졌다.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뱉으며 가혜는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칼이 내려와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가렸다. 커튼처럼 내려온 머리칼 덕분에 잠시나마 단 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겨우 머리카락 뒤로 숨어들었을 뿐이지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들썩이던 어깨가 차차 진정되고 있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인 그가 이로 자신의 어깨를 물지만 않았다면.
“앗!”
희고 동그스름한 어깨에 선명한 잇자국이 남았다. 아픔에 가혜가 얼굴을 들고 자신의 어깨와 단 후를 번갈아 보았다.
“내 시선 피하지 마.”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가혜는 제 앞에 다가온 단 후를 불안한 눈으로 보았다. 눈치를 봐서는 그가 싫어하는 일을 자신이 한 것 같았다. 또다시 맞는 걸까. 부들부들 가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내 말만 잘 들으면 충분히 예뻐해 줄 테니까.”
잔인하리만치 냉정한 목소리가 더없이 위험하게 들렸다. 가혜는 저도 모르게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단 후가 손에 쥐고 있던 목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가혜는 속절없이 단 후의 품 안에 갇혔다.
단 후는 다른 손으로 가혜의 턱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난폭한 움직임으로 가혜의 입술을 가른 그는 마음껏 그녀의 입안을 희롱했다.
“읏! 아…… 싫……어!”
단 후는 제 가슴을 밀어내는 그녀의 두 손을 간단히 제압했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이 두 팔도 거슬리기 시작했거든.”
가혜는 제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단 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짐작했다. 내 팔을 부러트리겠다는 건가? 단 후를 거부하던 가혜의 팔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갔다.
“그래. 가만히 있어.”
단 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가혜에게 키스했다.
“하앗…… 아아…….”
거침없이 들어온 혀는 가혜의 입안을 모조리 훑고 지나갔다. 아까 그가 손가락으로 괴롭혔던 것과는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빨려지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넘쳐흘렀다.
사납게 움직이는 단 후의 혀에 가혜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바라 왔던 첫 키스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황홀하고 행복할 것 같았던 키스는 여기에 없었다.
현실의 키스는 오직 강압적이고 일방적일 뿐이었다.
“으읏…… 읍. 아…… 아.”
한껏 벌어진 입과 찢어진 입술에서는 피 맛이 났다. 자신의 첫 키스에 대한 소감은 비릿함이 전부였다. 가혜의 눈동자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가혜는 제 입안을 자신의 것처럼 차지한 단 후의 혀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흐으…… 아…….”
괴로운 신음을 흘리자 단 후는 서늘한 눈으로 가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침 범벅이 된 가혜의 턱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 내고는 목줄을 쥐고 있던 손으로 그녀의 유두를 손톱으로 긁었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가혜에게 내린 벌이었다.
“히익, 아아아…… 아앗─!”
단 후가 입술을 떼고 물러난 후라 가혜는 고개를 한껏 꺾으며 자지러졌다. 아직 미약의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터라 그녀의 몸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눈물과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악……. 아파…….”
가혜는 너무 아파서 차마 그 부위를 감싸 쥘 수도 없었다. 무언가 제 가슴에 닿기만 해도 죽을 것만 같았다. 가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가슴의 중심이 그대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반응이 좋은데?”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혜를 보며 단 후는 반대쪽 유두 역시 손톱으로 찍어 눌렀다.
“아아…… 싫어…… 제발…… 흑.”
단 후의 잔인한 처우에 가혜가 눈물을 쏟아 냈다. 왜 자기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가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가혜의 흰 피부를 따라 투명한 눈물이 몸을 따라 흘렀다. 뺨에서 떨어진 눈물은 곧장 목 줄기를 타고 생명을 가진 것처럼 그녀의 가슴골 사이를 내달렸다.
단 후는 가혜의 몸을 훑고 있는 눈물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네 가슴은 크고 하얗고, 부드러워. 생크림 케이크처럼. 그리고 네 여기.”
옅은 핑크빛이었던 가혜의 유두는 새빨간 열매처럼 색이 짙어져 있었다. 단 후는 제가 만든 작품을 살피듯 엄격한 얼굴로 그녀의 유두를 보았다. 가혜는 그의 시선이 닿기만 해도 흠칫 긴장했다. 또 그가 자신의 유두를 제멋대로 만질 것만 같았다.
“케이크 위에 체리 장식을 해 놓은 것만 같아.”
단 후는 잔뜩 긴장한 가혜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녀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관찰했다. 눈물에 젖은 가혜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 준 그는 그녀의 목줄을 잡아당겨 바닥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숙련된 훈련사처럼 그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읏.”
철그럭─ 철그럭─
그의 손에 감긴 쇠사슬이 다시 소리를 내자 가혜의 목을 감은 목줄이 위로 당겨졌다. 가혜는 어쩔 수 없이 단 후를 올려다보았다.
‘크다.’
서 있을 때도 자신에 비해 두세 배는 커 보던 남자였다. 이렇게 있으니 그가 까마득히 커 보였다.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하늘처럼. 그 거대한 존재감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비참했다.
하지만 더욱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는 건 그의 손톱이 닿았던 곳에서부터 퍼져 오는 야릇함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전기가 통한 것처럼 짜릿하고 저린 통증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아픔이 점차 사라지면 질수록 알 수 없는 욕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혜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제 가슴을 보았다.
가혜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직접적으로 성 경험을 해 보진 못했지만, 성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제 몸은 지금 바라고 있는 거였다. 미칠 것 같았던 고통과 쾌락을.
가혜는 제 눈앞에 있는 단 후의 손을 훔쳐보았다. 커다랗고 긴 손가락이었다.
‘날 때리고, 희롱했던 손이잖아. 그런데도…….’
가혜는 자신의 생각을 끊어내듯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겨우 숨을 돌리려던 찰나 가혜의 머리 위에서 고저가 없는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더 만져 줬으면 싶어? 하긴 유두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긴 했었지.”
단 후는 꼿꼿이 솟아오른 가혜의 유두를 보고는 픽 입술을 말았다.
“즐기게 해 줄까.”
그는 사슬을 놓고 침대 반대쪽에 있는 서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서랍을 열자 유두 클립이 다양한 모양과 종류로 준비되어 있었다.
단 후는 그중에서 작고 동그란 모양의 클립을 꺼내 가혜의 앞에 던졌다.
“네가 직접 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