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자다가 날벼락이라 그 꿈에서 깨고자 거친 흙바닥을 손등으로 쓸어버렸다. 아프지도 않아 정말 이게 꿈이구나 안도했다가 야속하게 맺히는 핏자국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대학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작은 세상에서는 최악의 일이었는데 세상은 항상 그녀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더 큰 시련을 준비해놓고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시험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 절망감에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재이야. 연락받고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서운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어.”
“……선생님.”
방학 중에도 나와 있던 선생님은 교무실이 아닌 운동장 벤치에서 서류를 들고 그녀를 기다리고 계셨다. 매미가 목청 높여 울어대는데 정작 울고픈 그녀는 말도 못 하고 눈의 초점도 풀려 있었다.
“그래도 우리 부반장이 정말 열심히 해줬는데. 대전 가서도 지금 성적 유지하고, 음……, 그때 상담할 때 우리 재이는 수의사 되고 싶다고 했지?”
“…….”
“와서 좀 찾아봤어. 대전에도 수의대 있는 학교가 있더라. 교차지원 되나 한번 봐야 하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서울 다시 오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예쁜 부반장 얼굴 볼 일이 있지.”
고맙다, 감사하다 말도 못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보이는 강당에만 넋 잃은 시선을 고정했다. 장학금을 받을 만한 학교나 2지망으로 썼던 교대 이야기 등등 선생님은 끊이지 않고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셨지만 이미 재이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우리 부반장. 아휴, 서운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년 애들 졸업시키는데 내가 왜 이러나 몰라.”
“선생님…….”
“난 다시 하라면 선생님 안 할 거 같아. 재이 너도 선생은 하지 마라. 마음이 너무 약해.”
“…….”
“꼭 수의사 돼서 다시 만나자. 그때 돼서 나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너.”
눈을 감고 있어 무엇이 제 손에 쥐여지는지도 몰랐다. 본능적으로 놓칠까 눈을 크게 뜨자 선생님이 씁쓸히 그 손을 다독였다.
“오늘 너무 갑자기 연락받아서 내가 따로 선물도 못 샀어.”
“아, 아니에요.”
“이거 대전 엑스포 표야. 너도 들어봤지? 학교에서 받았는데……, 난 우리 애도 어리고. 너 대전 간다길래 생각나는 게 이거 외에 있어야지. 그래도 갔다 온 사람 말이 이게 꽤 볼 만하대.”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는 엑스포였고 수능 바로 다음 날도 대전까지 갔다 와 그 황홀한 경험을 떠들어대는 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 부반장한테는 내가 고맙지. 그나저나 애들도 개학하고 알면 굉장히 서운해할 텐데. 제희도 반장인데 알고는 있어야…….”
“아니요!”
“어, 응?”
“부탁드려요. 제희한테는……, 반장한테는 아무 말씀 말아주세요. 제발요.”
그 커다란 눈에 간절함이 가득 실리자 선생님도 별말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교문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던 선생님을 알면서 뒤 한번 못 돌아봤다.
이렇게 무정한 제자가 또 있을까, 그러면서 마지막 골목에 숨어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실 때까지 숨죽였다. 이 미안함을 씻으려면 꼭 수의사가 되어 활짝 웃으며 다시 뵙고 싶었다.
“대전 가면 숨통 좀 트일지도 몰라. 네 이모가 가게 자리 봐놨다고 하고 주말에는 또 이모네 가게에서 일하면 되니까. 너도 그렇게 죽을상 하지 마. 여기보다는 나을 테니까, 너한테도 대학이든 뭐든 길이 안 생기겠냐.”
엄마는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이 빨라졌다. 이틀 내내 부엌 앞 작은 바닥에 누워 열에 시달리던 재이에게 죽 한 그릇 떠주고 이사비 구하겠다며 나가버렸다.
나쁜 딸이라 그런지, 바보가 아니라 그런지, 엄마 말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제 기운 좀 내라는 뜻으로 해본 말이겠지만 그 와중에도 미련을 못 버렸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그렇게라도 희망을 두고 싶다. 꽁꽁 닫혔던 문에 빛 한 줄기라도 들어온다면 거기에 의지해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힐지 모르니까. 허상에 불과한 약속이라도 수척해진 그녀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크흐윽……, 재이야. 나 물 좀 다오.”
몸이 아파도 더 아픈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누워 있는 것마저 사치였다. 이틀 내내 땀을 내보내고 조금은 춥다 싶은 몸을 추슬러 물 한 잔을 따랐다.
“아빠, 이거 마셔.”
“……재이야.”
“응.”
“우리 대전 가자……. 다른 방법이 없다네.”
“……알아.”
“미안하다. 너한테 미안해.”
아빠는 편히 앉지도 못해 문이 삐걱거리는 장롱에 기대어 그녀의 손을 쓸었다. 앓는 사이 그 고열에 미소마저 흘려보낸 딸에게 미안한 아빠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아빠 마음은 아는데, 내가 괜찮다고는 못 하겠어. 나도 미안해.
땀으로 젖은 옷부터 갈아입은 그녀가 무엇에 홀린 듯 빈 가게의 돈통을 뒤졌다.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은 채 그 돈을 다 움켜쥐고 가방에 쑤셔넣었다.
돈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우리 식구 서울서 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엄마 말대로 있으나 마나 한 돈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손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쿨럭, 가게 문을 닫고도 아빠의 끓는 듯 울리는 묵직한 기침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그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었다.
“반장.”
이른 아침부터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지나치게 크고 우아한 주택이 그녀가 잠드는 곳과 너무 격차가 커 현실감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용감해졌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아직도 몽롱해 거리낄 것도 없고.
“이재이, 너 여기 어쩐 일이야? 응? 너 얼굴이 왜 이래? 얼른 들어와.”
“아니, 아니. 반장.”
그림 같은 잔디밭에서 책을 보던 제희가 그녀를 안으로 끌자 다리에 모든 힘을 실어 아니라 버텼다.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지 짐작하면서도 그녀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
“너 오늘 시간 괜찮아?”
“……시간?”
“응. 안 되면 어쩔 수 없는데……, 내가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서.”
“아냐. 잠깐만 기다려. 가서 지갑 들고.”
“아니, 나 돈 많아. 오늘 돈 많아.”
“…….”
“그러니까 그냥 지금 나가자. 응? 부탁이야.”
따라 나온 동생에게 한마디만 일러둔다기에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떨었다. 열도 다 내렸고 더 이상 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이 떨려왔다. 열 내리고 뒤늦게 오한 든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어디 갈 건데?”
큰 걸음으로 바로 따라온 그가 자꾸 그녀의 얼굴을 살피려 했다. 굳이 피하지는 않아도 재게 발을 놀려 달리다시피 속도를 붙였다. 어서 빨리 이 동네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이재이,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우리……, 대전 가자.”
“대전?”
“응, 엑스포 가자. 나 표 있거든.”
허탈한 웃음이 지나고 그제야 평소의 윤제희로 돌아왔다. 그가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그녀 얼굴에 어린 홍조와 가쁜 숨소리가 골목을 내달려 얻은 거라는 생각은 안 했을 텐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유행처럼 떠들썩하던 엑스포 열풍에 이재이도 어쩔 수 없어 휩쓸리고 말았겠거니, 그렇게 웃고 말았다. 사실 그 역시 남 보고 웃을 처지도 못 된다. 이미 그녀가 제집 앞으로 왔을 때부터 그 울렁대는 열기에 편승한 지 오래였으니.
“대전 두 장이요. 고등학생이요.”
강남 터미널 경부선에서 표를 끊어주던 아가씨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제희를 넘겨다보았다. 이 키가 큰 총각이 고등학생이 맞는 건가 하다가 옆에 선 재이를 보고야 청소년 표 두 장을 내밀었다.
“반장, 너 남들이 보면 어른 같나 봐.”
지하철 타고 내릴 때만 해도 별말이 없던 재이가 터미널에 도착한 후로는 말도 곧잘 하고 잘 웃었다. 쏙 들어가 젖살이 내린 뺨에 눈이 가면서도 살며시 떠오른 미소에 먼저 빠져버렸다.
“넉 달만 더 있으면.”
그럼 난 진짜 어른이 돼. 너도 그렇고.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물이며 사탕, 계란 한 꾸러미 사온 그녀가 짐을 넘겨줄 때 부러 그 손에 오래 닿았다. 어색해하며 고개를 돌리는데도 그 얼굴 그대로 내려다보며 손가락 두어 마디가 꾸준히 닿아 있었다.
“연지가 그러는데 엑스포에 진짜 볼 거 많대. 안경 쓰고 보는 것도 있고 외국 사람도 되게 많대.”
“그래?”
“응. 테크노관인가 그런 것도 있고 로봇들이 춤추고 그런다더라.”
“재이 너 많이 가보고 싶었나 보네?”
엑스포가 아무리 커다란 행사에다 볼거리가 많더라도 그녀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지금 있는 기술과도 백만 광년 떨어진 그녀의 집에 최첨단 기술이 무슨 소용일까. 다만 이왕 가야 할 대전이라면, 그와 먼저 발을 내딛고 싶었을 뿐이다.
윤제희와 먼저 대전에 가게 된다면, 대전에서 지내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아프고 돈이 없어 떠나는 대전이 아니라, 제희와 왔던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곳으로 남게 될 테니.
“……응. 갔다 온 애들이 하도 재밌다고 해서.”
“미리 알았으면 뭐라도 좀 챙겨 오는 건데.”
“아냐, 나 진짜 돈 많아. 오늘은.”
“그래.”
“진짠데. 볼래?”
떠보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던 그가 가방을 뒤적거리는 그녀를 보더니 웃었다. 남자 체면 따지자면 그가 준비해놓은 것이 더 그럴듯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아무래도 좋았다. 말없는 재이가 이리 가보고 싶은 곳에 자신을 동반자로 선택해주었다는 것이 성인의 길목에 선 그를 이만큼 띄워놓았다.
“졸려서 그래?”
“으응. 자꾸 눈이 감겨서. 나 그냥 눈만 좀 감을게.”
그러면서도 한 문장 안에서 말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교실에서 이른 아침마다 꾸벅꾸벅 졸 때는 안쓰럽기 그지없더니 제 옆에서 잠드는 것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4개월, 얼마나 긴 시간인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어리다 생각해본 적이 없던지라 어른에 대한 갈망 자체가 무의미했다. 하지만 재이를 만나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어딜 가나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자신에게 제 몸 하나 스스로 건사할 힘이 생긴다면, 그 틈에 작고 작은 재이 하나는 더 끼워넣을 수 있으리라.
너무 가늘어 표도 안 나는 아이이니 덜 입고 덜 먹더라도 당당하게 제 옆에 꼭 붙여두고 싶었다. ‘너희는 아직 어리다.’ 그런 웃음과 비웃음이 섞인 시선은 지긋지긋하다.
“으음.”
새근거리며 자는 이재이는 제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감은 속눈썹이 길게 말려올라가 머리칼과는 그 결이 또 달라 보였다. 창 너머 햇살로 열이 오른 건지 복숭아 같은 뺨과 붉어진 입술을 보니 한숨마저 나온다.
이런 애를 두고도 자신은 열 걸음은 앞서 달리고 또 애가 타 뒤돌아보고, 그 허무한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중이었다.
안고 싶다. 만지고 싶다.
불편한지 머리를 살짝 움직이길래 제 어깨를 가까이 대니 무게감도 없이 내려앉았다. 자연히 그 작은 손도 감싸쥐어 가슴께로 들어올렸다. 온몸에 피가 끓어 참고 참은 게 이 정도다.
가느다란 손가락, 그중에서도 그의 욕심이 닿은 약지에 단 한 번 입을 맞췄다. 깨면 어쩌나 걱정도 안 했다. 만약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면 여긴 이미 내가 맡아둔 내 자리라 무섭게 일러두면 그만이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단 두 시간이 이렇게 길었으니, 4개월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그에게 절망에 가까운 인내로 남아버렸다.
◇ ◆ ◇
“그대로야. 그치?”
“사람만 좀 더 있으면.”
2002년의 엑스포 공원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던 인파 속에서 간신히 입장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이렇게 곱게 들어가는 발걸음이 허무할 정도다.
“재이 넌 여기 자주 왔겠네.”
“아니.”
“왜? 너 그날 좋아했잖아. 대전 살면서.”
“원래 파리에 사는 사람이 에펠탑 안 가는 법이래.”
어디선가 들었던 농담을 가져다 붙였지만 벌써 마음이 찌르르 울린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신 역시 이곳은 9년 만이다.
차마 이곳에 다시 올 생각은 못 해봤다. 그럼에도 눈으로 그려낼 듯 선한 것은 걸음 닿았던 곳곳에 제희의 흔적이 남아 있던 탓이겠지.
꼬마가 들고 가는 사탕 하나에도 그의 생각을 먼저 했으니 이곳은 판도라의 상자로 남겨두었다. 무엇보다 추억을 웃으며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고, 그 전에 그를 잊지 못하고 살았다.
“여기 이길 쭉 따라가면 미국관이 있었는데.”
“와, 제희 넌 그게 기억나?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지금은 비어버린 길을 걸어가며 그 기억을 되살렸다. 제희가 하나하나 짚어주니 날 듯 말 듯하다 몇몇 단편적인 기억들을 맞춰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아, 맞아! 여기에 있었는데. 우리 여기서 서커스 같은 거 구경도 했는데.”
“응.”
“너 진짜 대단하다. 한 번 오고 그걸 다 기억한단 말야?”
대단한 애야, 중얼거리며 새초롬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그를 이기고 싶다 생각도 해보았는데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둘이 다니며 하나라도 똑똑하게 구는 것이 참 다행스러울 뿐이다.
“아! 여기, 제희야. 여기!”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녀가 호들갑을 떨며 커다란 건물을 가리켰다. ‘소재관’이라는 명칭은 이미 빛이 바랬고 그 크기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했던 기억과는 다르다. 다시 들어가도 되는지 몰라 망설이자 그가 앞서 그녀를 끌었다.
파란색, 빨간색의 전용 안경을 받아 문을 여니 화면 속 아이가 튀어나와 그녀를 반겼다. 길을 가다 알아볼 만큼 선명한 아이가 자라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다.
눈이 침침한 것도 아닐 텐데 한순간 모든 것이 뿌옇다.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제희를 돌아보자 같이 안경을 쓴 그가 싱긋 웃었다. 입체감을 준다는 안경 때문인지 어지러운 배경 속에서도 그는 한 걸음 더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