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여름, 나는-33화 (33/48)

# 33화.

“이재이 학생, 맞지?”

다시 본 건 1차 수능이 끝나고 난 여름방학이었고, 재우가 누워 있던 그녀를 억지로 끌어냈다. 집안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뒤숭숭했고 그녀의 마음도 매한가지였다.

손님이 온 거라면 그다지 달갑지 않았는데 뜻밖의 손님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지도 않았다. 제희 어머니는 가게 앞 골목 그늘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어어……, 안녕하세요?”

“나 기억하니?”

잠을 이루지 못해 푸석한 얼굴에 눈은 겁이 날 만큼 부어 있었다.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하려니 며칠간 다물고 있던 볼이 눈물에 절어 찢어질 듯 따가웠다.

오늘은 예쁘다 소리 못 듣겠구나, 겨우 그런 인사치레 하자고 오신 게 아니구나. 그사이 늘어버린 눈치로 고개를 푹 숙였다.

“길게 말하지 않을게. 우리 제희한테 마음 주지 말았으면 해.”

“……저는.”

“그맘때 남자애들은 다 똑같아. 여자애 봐도 한 가지 생각밖에는 못 할 거야. 아직 대학도 안 갔는데 괜한 걸로 애 흔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제희는, 윤제희는 똑같지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 3반 교실에서, 아니, 온 학교를 통틀어 제희만큼 조용하고 사려 깊은 아이는 또 없었다.

몇몇 철없는 어른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사람이 윤제희였다. 어머니라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제 자식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넌 아니다.’ 하고 밀어내는 것이 그저 슬펐다.

“이틀 전에도, 제희 아버지가 화 많이 나셨어.”

“아, 죄송합니다. 그날 일은…….”

“둘 다 이제 어린애 아니잖아. 그 시간까지 뭘 했는진 모르겠다만 제희는 입 다물고 묵묵부답이야. 다그쳐도 말 한마디 안 해.”

“아니에요, 제희 잘못이 아니라 그날은……, 그날은 제가.”

“그러니까.”

처음 망설이던 기색이 어느새 단호해졌다.

“그러니까 네가 맘 접고 선을 그어줘.”

이 작고 좁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 부은 눈에도 단번에 들어왔고 시간이 갈수록 그 부조화는 심해졌다. 빨리 자리를 뜨려는지 제희 어머니는 급하게 몇 마디를 덧붙였고 그 모든 말은 재이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잘 가시라 인사를 드리는 것뿐이라 몇 발짝 안 되는 가게 앞으로 돌아와선 그대로 무너졌다.

“…….”

“누나, 이거 먹을래? 히히.”

“흐흑.”

“아까 그 아줌마가 나 만 원이나 줬어. 진짜 많지?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마. 응?”

“으흐흑.”

재우가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과자들이 작은 팔에 한가득 들려 있었다. 그녀가 내미는 과자를 받지 않자 요란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자까지 후후 불어가며 재우가 주웠다. 이제는 정말 제희의 삐삐 번호를 머릿속에서 지워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워낼 것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처음 마음을 주었고, 제 거칠한 손을 먼저 내밀어보고픈 상대였다.

가진 모든 기억이 제희와 이어져 그 기억을 지우면 그녀의 서울생활은 그것으로 끝이 날 것이다. 열아홉의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참 간편하고 잔인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 방법은 성공도 실패도 못 하고 여태껏 상처로만 남아버렸다.

◇ ◆ ◇

“아.”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을 늦게 알았다. 알아놓고는 받지도 못했으니 모르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발신자 표시가 없음에도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또 울컥해 눈물이 났다. 차마 이런 목소리로 무슨 대화를 할까 두 손 사이로 진동을 묻어버렸다. 간질거리며 전해지는 그 느낌이 어쩐지 그녀에게는 따가울 뿐이다.

[부재중 통화 13통]

열세 통 전화의 모든 발신자는 한 명이겠지. 그가 아니라면 이 시간에 그녀를 이리 애타게 찾아주는 이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제희와 만나며 휴대전화라는 게 참 필요하긴 하구나, 생각했었다.

어쩔까, 고민하는 손가락이 쉽사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판 위에서 멎었다. 아무렇지 않을 자신도 없지만 속상하다는 말도 힘들었다. 가장 즐겁기만 해야 할 대학생 때 그 역시 힘들기만 했다니 더 이상은 그러기를 원치 않았다.

“……여보세요?”

다시 전화가 울리자 큰맘 먹고 전화를 받았다. 울음기도 싹 거두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받아주는 이는 그가 아니었다. 그럴 바에야 애쓰지 말고 울면서 받아도 괜찮았을 텐데.

- 이재우 씨 보호자 맞나요? 여기 신림 파출소입니다. 아, 이재이 씨?

“이 자식들이! 너네도 잘한 거 없어!”

“아, 왜요? 우리가 못 할 말 했어요? 어쨌든 합의 안 해주면 절대 용서 안 해요. 무조건 감방 집어넣으세요!”

“거기가 보낸다고 다 들어가는 덴 줄 알아? 조용해!”

북적대는 파출소 안에서 이곳저곳 싸움의 흔적이 역력한 세 사람이 있었다. 둘은 언뜻 봐도 다친 것에 비해 엄살이 컸고 하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느라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이고 동생이라 바로 알아보았다.

“재우야!”

“어……, 누나.”

잠깐 들린다 싶은 고개가 더 푹 수그러들었다. 현기증이 났지만 재이는 한 발 한 발 힘겹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뭐, 뭐야? 응?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아니, 그게……, 으음,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흐흑.”

“이재우 씨 보호자 되세요? 얘기 좀 하시죠.”

딱하다 싶었는지 경찰이 그녀를 불러냈다. 다른 방법이 없어 그 뒤를 따르면서도 고개는 동생 쪽을 향해 있었다. 며칠 전 새벽녘에도 작아 보이던 동생은 이곳 파출소 의자 위에서 더 작아졌다.

“아, 무슨 일인가요? 설명을 못 들어서……, 재우가 싸움을 한 건가요?”

“싸움이라기보다는……, 요새 학생들 상대로 다단계 그런 게 하도 돌아서요. 서울 사는 친구 집에서 며칠 자다가 거기 말려들어서 합숙소까지 들어갔다나 봐요.”

“네? 다단계요?”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정신은 차렸다 생각했는데 머리가 다 아찔해진다. 그녀는 여느 불법적인 일과는 전혀 인연 없이 살았지만 다단계라면 들어본 적 있었다. 주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진실에 아주 가까운 소문인지라 재우와 관련이 되자 눈을 감아버렸다.

“아니, 뭐. 그렇다고 거기서 돈을 막 떼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 들어보니까 다행히 합숙 중간에 이상한 걸 깨닫고 몰래 도망치려다가 몸싸움이 났다나 봐요. 그런데 저놈들이 워낙 악질이라 그때 넘어진 거 가지고 저 난리네요.”

“그러면……, 그러면 사기를 당하거나 그런 건.”

“네, 그런 건 아니구요. 일단 저쪽은 두 놈들이라 말 맞춰서 이재우 씨가 마구잡이로 밀쳐내고 때렸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아니에요.”

이 정도를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제 신세가 너무 처량해졌다. 가녀린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창가에 기대자 경찰도 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집은 대전이라는데 번호를 하도 안 가르쳐줘서요. 여기 몇 시간 있다가 결국 누나 번호 대길래 연락 드렸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지자면 저놈들도 나쁜 놈인데 일단 때리다가 얼굴을 맞은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이게 뭐 고소감이나 그런 건 못 돼요. 근데 일단은 합의는 하는 게 편해요. 안 그러면 저희도 그냥 보내드리기는 또 힘들어서…….”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와버렸다. 단순히 이 일 하나에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 막막한 상황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니 맥이 풀려 눈물샘에 괴어놓은 돌이 빠져버렸다.

“으으음, 흐흑.”

“아니, 이게 우신다고 해결될 건 아니고. 아……, 제가 최대한 저 자식들 잡고 이야기해볼게요.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자기들도 적당선에서 생각했을 거예요. 가시죠.”

눈물이야 뜻대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나약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까 힘주어 입을 꼭 다물었다. 몇 번이나 더 뜨거운 덩어리를 넘겨내고야 재우 앞에 섰다. 다시 올려다보는 얼굴에는 겁만 가득해선 후회가 들어찬 시선이 불안해 보인다.

“누나, 미안해……. 흐흐흑.”

“너 왜 이 모양이야! 왜 이 모양이냐구!”

“으흐흑.”

“그만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 억지로 힘을 주어 버텼다. 사회에서 울음이나 고함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니 ‘이러지 말자.’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자식들! 증거가 없어 그렇지, 너네야말로 잡아 처넣어야지. 피해자? 다단계 문이나 지키면서 무슨!”

“아, 왜 그래요? 우리도 그냥 끌려 간 거라니까. 야, 가자. 흐흐.”

결국 경찰의 주선으로 합의는 적당선에서 이루어졌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금액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니 처음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저게 영악하게 잘 사는 거라면 그녀에게는 그저 진저리가 나는 모습일 뿐이었다.

“가자, 재우야.”

겁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스러운 금액이었지만 그녀의 반달치 월급과 맞먹는 액수다. 그 허무함이 휑하게 구멍을 뚫어 그녀를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왜 이 여름에 나는 몸이 떨릴까, 아빠도 그랬는데 나까지 왜 그러지?

오한이 들까 몸을 추슬러 터덜터덜 밤거리를 걸어가는데 주뼛대던 재우가 마지못해 뒤를 따랐다.

“야, 그래도 이겼으면 했는데 졌네.”

“진짜 아깝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터키전에서 졌다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그랬구나, 그럴 것 같았다는 허망함이 스쳐 지났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멀찌감치 떨어져 아무 말이 없던 재우는 좁은 골목에 도착하고서야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말이 들릴 정도의 거리에만 간신히 붙었다.

“누나, 진짜 미안해.”

“…….”

“돈 빨리 벌고 싶은데 방법도 없고. 들을 때는 그게 될 것만 같아서……, 흐흑.”

“누가 너한테 돈 벌래?”

“아니, 나는……, 나는 진짜……, 돈 벌면 누나한테 제일 먼저 주려고 했거든? 으흐흑. 너무 갑갑해서. 가, 가서 이야기만 들어도 돈 준다고……, 그래서 따라만 간 건데……, 흑.”

“너 바보야? 왜 그러는데, 대체! 이야기만 들어도 돈 준다고? 어떻게 그걸 믿어?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구!”

입이나 다물면 좋았을 것을, 변명을 듣고 나니 기어이 울분이 터져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훨씬 큰 덩치에도 팔이 풀썩거리자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재우의 나이에 추운 거리로 옷가방을 들고 나섰을 때, 그 막막함이 가득하던 때, 누군가가 같이 가서 잠깐 이야기만 듣자 말을 걸었다면. 과연 자신은 뿌리칠 수 있었을까?

“정말,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누나.”

“대전에는 왜 안 내려간 건데? 그러게 왜 친구네로 갔어?”

“그게……, 으흐흑.”

“말 안 해?”

“너무 내려가기 싫어서 그랬어. 대전 가기 너무 싫어서……. 가면 너무 답답해서. 갈 데가 거기밖에 없는데 너무 가기는 싫어서…….”

그 마음을 가장 잘 알면서도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힘 빠진 손을 억지로 추스르고 입을 닫아버렸다. 처음처럼 다시 그녀는 앞서 걷고 재우가 뒤를 따랐다.

왜 그렇지? 왜 나한테만 이러지?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한 것 같은데?

돌이켜봐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착한 일만 하며 살지는 못했어도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다.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고 자신이 바란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꿈에도 유효기간이 있어 심지가 다 타버린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이재이!”

집 앞에서 오직 그녀만 기다리던 제희가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에 보았다던 환상같이, 그냥 그렇게 보였다. 한가로이 읽은 책이 많지도 않아 다른 이렇다 할 표현도 못 찾았다.

“어떻게…… 여기로 왔어.”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전화를 얼마나 했는지 알아? 너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나는!”

“…….”

화를 내려던 것이 아니었다. 찾기만 한다면 이제 이런 불안함 같은 거 없이, 다른 계획 모두 미뤄놓고 제집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 안에서 다른 생각 할 틈도 주지 않고 어르고 감싸 자기가 갇히는지도 모르게 가둬두고 싶었다.

“누나, 누구야?”

“……너 들어가 있어.”

주뼛대던 재우가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닌 걸 알았는지 묵례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분명 누나라는 소리까지 들었건만 그래도 다른 남자가 재이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윤제희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누구야?”

“내 동생. 남동생이야.”

“너 그럼 지금까지 남동생이랑 있었던 거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동생과 같이 있었으니까.

“좋아. 괜찮아.”

“…….”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태평한 순간도 아닌데 제희와 함께 있으니 꼭 그렇게 느껴졌다. 꾹꾹 눌러 담다가 눈물까지 한바탕 흘리고 온 길이건만 그저 평화로운 일상 같기만 했다.

그래서, 현실 같은 위험한 것들은 모조리 잊고 지내니까, 꿈은 위험한 걸지도 모른다.

“봤잖아, 동생 들어간 거.”

“저 집에서 어떻게 남동생이랑 둘이 있어? 불편해서 잠이나 자겠어?”

대뜸 손부터 움켜잡고 힘을 주는 제희를 지켜보았다.

키도 크고 잘생긴 윤제희.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다정한 윤제희.

나를 가장 행복하게, 또 초라하게 만드는 윤제희.

“여기보다 더 작은 방에서도 넷이 살았어. 서울 살 때.”

“…….”

“다시 서울 와서는 남의 집이라 밤에 잘 때만 들어갔어. 그래서 난 지금 이 집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

“재이야.”

“난 계속 그렇게 살았어,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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