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여름, 나는-24화 (24/48)

# 24화.

“……알아. 그냥 놀러 온 거야.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미안해.”

“아냐. 그냥 온 거라니까.”

다 먹어치울 것 같았는데 반 넘게 남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생각하면서도 밥상을 치우는 그녀의 손길에도 추가 달렸다. 한결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재우가 괜히 지직거리는 TV 화면을 만져보다가 이내 불을 끄고 둘이 누웠다.

동생이라고 침대를 쓰라고 하자 멋쩍게 웃더니 기어이 바닥에 눕는다. 이거저거 해달랄 때는 화가 일었는데 제 눈치를 살피니 그것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녀와는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 어릴 때는 엄마보다 더 붙어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다.

“아, 나도 서울 살았다는데 왜 기억이 잘 안 나지?”

“그러게. 나는 서울 사는데도 사는 거 같지가 않아.”

불을 끈 작은 방 안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었다. 심란하니 그냥 잠들고 싶었는데 동생이 먼저 말을 붙이자 안 받을 수가 없다.

“누나, 있잖아.”

“응.”

“아빠 말이야. 아빠가 살아 계셨으면 우리가 조금은 나았을까?”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그거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만 냉정히 보면 재우가 하는 질문의 답은 아니었다. 아빠는 많이 아팠고 경제활동도 할 수 없었으니까.

어떤 때는 딱 죽을 만큼 힘들다 싶다가도 정말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도 맘 편히 못 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녀의 손을 잡고는 ‘우리 재이한테 가장 미안하다.’ 그 말만 여러 번 반복하셨다.

“……막 원망도 들고 짜증도 나고. 그냥 도망가고 싶은데 엄마 잘 때 보면 또 불쌍하고. 누나한테도 미안하고 그래.”

“우와, 재우 다 컸네?”

부스럭 소리를 내는 동생을 향해 모로 누웠다. 철들려면 멀었다 생각하면서도 재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하고 짜증만 가득한 엄마가 그저 원망스럽다가, 또 막상 얼굴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 앞에서 이도 저도 못 하다 그냥 피하고 싶어졌으니까.

“아, 나 대학 그냥 안 가고 싶은데. 빨리 나와서 돈 벌고 싶어. 손 벌리면서 낭비하는 것도 싫고.”

“뭐 해서 돈 벌 건데?”

“뭘 하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음, 아닐걸?”

동생이 할 만한 생각이란 너무 뻔했지만 역시나 말리고 싶다. 그녀는 재우의 나이, 스무 살 겨울에 처음으로 돈을 벌고자 나섰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라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손끝이 아려 입김이라도 불고 싶다.

“대학은 가. 가는 게 좋아.”

“누나까지 왜 그러냐. 내가 돈 벌면 누나한테 돈도 다 갚고 좋지.”

“난 다시 네 나이로 돌아가면……, 안 먹고 안 입고 엄마한테 두들겨 맞더라도 대학은 갔을 것 같아. 지금은 더 그래.”

“…….”

“그렇더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닌지라 듣고만 있던 재우도 입을 벙긋대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늘 듣는 말 또 들어야 감흥도 없겠지. 조금 전까지는 잠이 오던 재이야말로 예전 생각에 눈이 말똥해졌다. 오늘도 잠들긴 다 틀린 모양이다.

“너 바로 내려가.”

“알았어.”

재우는 새벽같이 나섰다. 조금 더 있다 가라 하고 싶어도 쓸데없는 기대감만 가질까 부스스한 차림으로 따라나섰다. 재우에게 틈을 주면 다른 생각만 하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겪은지라 이번만은 모질게 마음먹었다.

“내려가서 학원 잘 다니고.”

“응.”

“지금 바로 내려갈 거야?”

“그래야 내려가서 학원 가지.”

들고 나온 낡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열 장을 꺼냈다. 아침상 보기 전에 미리 챙겨두었던 돈이었고, 그 전까지는 관리비와 비상금으로 쓰려 빼놨던 돈이었다.

“이거, 들고 가.”

“…….”

“빨리. 학원 다니면서 뭐라도 사 먹어.”

재우가 미안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받아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열었다. 안에 꽉 들어찬 옷과 세면도구를 보며 서울에 그냥 놀러 온 것은 아니었구나 고개를 돌렸다.

이 낡은 가방은 그녀가 예전에 썼던 것이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가방이기도 했다. 저 가방을 메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느꼈던 울컥한 감정은 아직까지도 재이를 따라다녔다.

“누나, 나 갈게. 들어가……. 미안해.”

“응. 재우야. 잘 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동생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그냥 볼 수가 없어 다시 달려갔다. 가지고 있던 마지막 현금까지 다 꺼내 억지로 가방에 쑤셔넣어주자 재우의 고개가 푹 숙여졌는데, 그래서 원래보다 작아 보였다. 아직 쌀쌀한 새벽 공기에 팔을 쓸면서도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발을 붙여놓았다.

◇ ◆ ◇

“유니폼 회산데, 생긴 지 얼마 되지는 않아도 비전이 좋아. 우리 사촌형이 하는 거라 믿을 수 있고. 우리 집안에서 제일 성공하신 분이거든. 재이 네가 워낙 착하고 성실하니까 내가 두 번, 세 번 부탁했어. 다만 서울로 가야 하고 또 영업직이라……. 네가 물건 들고 다니며 팔 일은 없는데 말하고 할 땐 좀 적극적이어야 할 거야. 괜찮겠어?”

“네! 저 할 수 있어요. 정말 잘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선 망연자실할 새도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그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녀를 좋게 본 편의점 사장님의 소개로 연이 닿은 회사였다.

사장님은 좋은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혼자 잘하겠냐 걱정을 했지만 그녀에게 다른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서울이라는 한마디에 세상에서 제일 똑 부러진 아이처럼 굴었다.

“이거 다 팔 때까지 못 들어오는 거 알지? 요새 다른 데도 시험 삼아 다 이렇게 해. 우리는 영업하는 사람이니 부끄러움 같은 거 다 버려야 한다고.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능력껏 한번 팔아봐. 재이 씨는 너무 숫기가 없어 보여.”

김 과장님, 그때는 대리님이었지만, 첫 출근한 그녀를 두고 대뜸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보고만 있으니 답답한 얼굴로 박스를 툭툭 걷어찼다.

비닐 포장된 티셔츠를 재이가 마구 끌어안다 주르르 흘러내리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무실 구석에서 낡고 커다란 가방 하나를 가져왔다.

물건을 꽉 채운다면 자신의 몸집만 해질 가방이었다. 어디에, 누구에게 가야 할지 모르고 그 커다란 가방에 팔아야 할 티셔츠를 다 쑤셔넣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다.

눈물이 날 만큼 막막하고 걱정스러웠던, 그녀의 사회생활 첫 기억이었다.

지갑에는 만 원 조금 넘는 현금이 있었고 대전에서 쓰던 버스표 몇 장이 고작이었다. 첫 짐은 그녀의 집과 별반 차이 없던 고모네의 문간방에 둔지라 함부로 돌아갈 생각도 못 했다.

그녀가 19년을 살았지만 달리 연락할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정처 없이 차가운 거리를 서성였다. 시간은 보란 듯 지나가는데 차마 모르는 사람 잡고 이런 거 사달라 소리가 안 나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이야 몇몇 대기업들도 담력 키운다며 이런 임무를 주곤 한다는데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그녀는 돌아가고픈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다시 서울을 등져야 할지도 몰라 유일하게 그녀가 서울에서 알고 있던, 그리고 믿을 만한 어른을 찾아갔다.

수백 번을 망설인 염치없는 발걸음에도 예의는 또 지켜야 할 것 같아 아끼고 아끼던 만 원짜리 한 장을 깨서 음료수도 샀다. 예전에 제희가 샀던, 병이 정말 예쁜 음료수 세트였다.

“……선생님.”

“재이야! 우리 부반장 아냐?”

눈이 마주치자마자 울컥해서 억지로 웃었다. 선생님도 별다른 말은 없었다. 무조건 밥을 사주겠다며 그녀를 앉혀놓고는 허둥지둥 일을 끝맺었다.

“우리 재이가 부반장 할 때는 내가 이런 것도 다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만 한 애가 없었어. 내가 고마운 줄도 몰랐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도망갈 것도 아닌데 선생님은 옆에 딱 붙어 이것저것 다 사주고 싶어했다.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을 두고 할 말은 따로 있었는데, 그 말이 또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아 비싼 고기를 앞에 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재이 너……, 직장 다니니?”

“그냥…… 그렇게 됐어요.”

크게 숨을 들이켜고 씩씩한 척 선생님 앞에 수저를 놓아드렸다. 그녀에게 많이 먹으라 몇 번이나 말을 한 것치고는 선생님도 막상 식사는 잘 못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 물 한 모금도 힘겹게 넘겼다.

“유니폼 회사면 여러 가지 많이 있겠네.”

“……네.”

“음, 혹시 가지고 온 거 있어? 구경 한번 해보자.”

어린 제자가 가방에서 시선을 못 떼는 모습에 선생님이 먼저 나섰다. 그녀가 차마 열지 못하는 가방을 조심조심 먼저 열어보시는데도 그녀는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이것도 파는 거 맞지? 야, 좋아 보이는데. 그냥 나한테 팔아라, 재이야.”

“아니, 선생님……, 그런 건 아니구…….”

“안 그래도 우리 반 반티 하나 맞추려고 했는데. 색상도 좋고 괜찮은데? 사러 가라 해도 말도 안 들을 거고 언제 또 사오나 했거든. 제자 덕에 시간낭비 안 해도 되겠네.”

그녀가 만류할까 카운터에서 먼저 비닐까지 얻어 와 마구 담기 시작했다. 얼마인지도, 몇 개인지도 묻지도 않고 그냥 가방이 텅 빌 때까지 전부 옮겨 담았다.

“……선생님.”

죄송해요. 겨우 이런 일로 와서 죄송해요, 정말.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다가 기어이 눈물을 후드득 흘렸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부끄러움이 차례차례 얼굴로 모이니 눈물밖에는 나올 게 없었다.

“재이야. 우리 예쁜 부반장!”

“……흐윽.”

“울지 말고. 나는 네가 다 잘할 거라 믿어. 사람한테 늦은 건 없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니 눈물도 곱게 나오지 않아 바닥에 점점이 위치가 모두 달랐다. 건네받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꾹 눌러놓자 선생님이 손을 한번 잡았다.

“진짜, 진짜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뭘. 나야말로 네가 와줘서 고마워. 티셔츠 아까 보니 좋아 보이던데 하나는 우리 마누라 가져다줘야겠다. 좋아하겠지. 하하.”

혼나실 것 같은데.

제희와 함께 보았던, 그 무섭던 선생님을 꼼짝 못 하게 하던 선생님의 부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날 제 곁에 있었던 제희의 모습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저기, 재이야. 음…….”

“네?”

“제희 말이야. 너 말고 반장 제희.”

이름만 들었는데도 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애써 태연히 굴었다.

“아, 네.”

“제희 걔 한국대 의대 갔어. 아버지가 법원에서 꽤 높은 분이라서 그쪽 길로 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기어이 바꾸더라. 걔네 엄마가 몇 번을 학교에 왔는지 몰라.”

가슴이 뜨끔거리다 심장 박동마저 빨라졌다. 아닌 척, 모른 척하려고 해도 이미 그 말 한마디에 제희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샅샅이 뒤적이고 있었다.

“올해는 아닌데, 제희 작년까지는 나 계속 찾아왔었어. 너 이야기 들은 거 없냐고.”

“으음……, 흑.”

“네가 그때 하도 부탁해서 다른 소리는 안 했어. 대전에 갔다고만 했지……. 아직도 애가 무뚝뚝해서 아무 말 안 하고 밥만 먹고 갔어. 그런데도 계속 또 오더라.”

“…….”

“한번 안 볼래? 통 말은 안 하는 애가 그나마 입 열면 네 이야기만 했어.”

“흐으윽.”

염치없다 할지라도 가방을 비우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언제든 다시 오라는 선생님의 삐삐 번호를 받아놓고도 다른 사람만 떠올렸다.

그날 그녀는 결국 제희를 찾아갔다. 시간은 넉넉했고 가방도 가벼웠다. 무거운 건 오직 발걸음 하나였는데 그래도 제희를 보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억지로 지웠었지만 어디 있는지 아는 이상, 얼굴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다.

“아, 맨날 데모야. 이 앞에 난리 났더라.”

“나가지 말라던데?”

맑고 청량하기만 할 줄 알았던 대학교 앞은 연유 모르는 시위로 희뿌옇게 그녀를 맞았다. 지나가는 여학생 하나를 잡고 의대를 묻자 저 안쪽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손을 내리던 시선에서 친절하지만 낯선, 그런 눈이 자신에게 향했다.

또래가 바글거리는 이곳에서 그녀 혼자만이 이방인이었다. 사촌언니에게 물려받은 어설프고 큰 정장에 싸구려 구두 뒤축에는 뗄 때마다 물집이 잡혔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뒤꿈치에서 시작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도 제희는 보고 싶었다.

“야, 강의 들어가야지.”

“뭐 좀 먹고. 식당에 가자.”

윤제희를 찾겠다고 여기까지 와놓고는 학생들이 오가면 괜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여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뒤를 좇았다.

그녀는 의대에는 전혀 뜻이 없었지만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그 생각을 못 지웠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그랬다.

“저기…….”

“네?”

“아, 아니에요.”

뭘 그렇게 자신감 없이 구냐고 하겠지만 원래부터 그녀는 수줍음이 많았다. ‘윤제희라는 학생 아시나요?’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오히려 안다고 할까 겁이 나 지하로 향했다.

그녀가 보기엔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보였으니까. 꼭 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제희가 어떤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때는.

“야, 빨리 먹고 올라가자.”

“뭘 빨리 가? 예과 2년이 의대의 꽃인데 지금 놀아야지. 어차피 다음 수업 자연대 화학 수업 아냐? 성적 반영도 안 된다는데 뭘 그렇게 빡세게 굴어? 안 그러냐, 제희야?”

시끌벅적한 학생들 사이에 제희가 있었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제희가 우유를 몇 모금 마시다가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머리가 조금 더 길었구나. 고등학생도 아니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 주위에는 학생이 많았다. 그녀가 부럽다 생각했던 여학생 몇도 제희의 곁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잠깐 비치는 모습을 보고자 멀리서 고개를 들어 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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