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제희에게나 재이에게나 수원은 낯선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하철로 한 번에 오는 곳이니 그리 먼 것도 아닌데 연고가 없으니 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보다 한 발 더 가까이 붙었다. 낯선 곳의 불안함이 가실 수 있게.
“나 정말 깜짝 놀랐어. 네가 거기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
“너 병원에 있는 줄 알았거든. 내가 문자도 보냈었어. 봤지?”
“응.”
그의 간결한 대답은 여전히 한 글자에 15원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그 음성에는 문자로는 전해지지 않는 감정이 녹아 있어 듣는 사람이 초조해지지 않았다. 나한테 화난 것이 아니구나, 제 딴에 놀래주려고 한 거구나.
“이렇게 멀리 다닐 때가 있어?”
“응. 자주는 없는데 그래도 부르면 가야지. 전에는 춘천에도 갔다 왔었어.”
“혼자?”
“응. 혼자. 가면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했는데 혼자는 안 해지더라. 기차 타고 집에 오는데 되게 허탈하더라구. 음……, 뭐랄까.”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윤제희는 이미 그 기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춘천도 아니었고, 기차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매 서울땅을 다시 딛는 순간마다 그 주먹에 허망함과 좌절감을 움켜쥐었었다.
“얼른 서울 가자.”
“응. 일도 잘 풀렸는데 고기 사줘야지.”
차를 두고 왔다는 제희와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가 운전을 할 때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법 어두운 광역버스 옆자리에 타고 있는 그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하기야 세상 천지에 윤제희를 다시 만났는데 무엇을 하건 안 신기하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피곤해?”
“……아, 응. 오늘 계속 어딜 다녀서 그런가. 좀 피곤하네. 미안.”
“자.”
말뿐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잠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칸 건너 자신의 의자 손잡이로 갑자기 몸을 기울이는 제희로 인해 두 눈이 최대치로 커져버렸다.
“등 좀 기대봐. 이쯤은 괜찮아?”
“어, 어.”
까다로운 눈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건지, 제희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 옆 작은 빈 공간을 짚었다. 닿을 듯 말 듯.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악력이 의자를 조금 더 뒤로 밀어젖혔다.
“자.”
“그래, 어……, 고마워.”
윤제희 옆에서 잠들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해봤다. 있던 잠도 달아날 거라 생각했었고. 그런데도 주책맞게 피곤이 몰려왔다.
“반장…….”
“응?”
“……내가 피곤해서 그런지 자꾸 기억이 가물해. 그런데 있잖아……, 아……, 나 왜 이러지…….”
눈이 반쯤 감겨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보다 머리 좋은 윤제희라면 분명 대답을 해줄 수 있을 텐데.
우리 예전에 이런 적이 있지 않았냐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불편한 줄도 모르는 그녀가 마지막 말은 입안에 가둔 채 잠이 들어버렸다.
“잘 자.”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은 괴이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 입술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전 같은 붉은색도 아니고 지금은 피곤이 겹쳐 다소 창백하기도 한다. 닦아줄 화장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아쉬운가? 그거야 당연한 말이다. 이재이에 대한 윤제희의 감정에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주된 감정이 무엇이든 아쉬움은 꼭 하나 붙어 있었다.
“재이야.”
그녀가 하려던 말을 알 것 같다. 이런 날이 분명히 있었고, 그는 분명히 기억했었으니까. 꼭 좋은 머리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기억은 이렇게 사진처럼 선명해지기도 한다.
◇ ◆ ◇
“음, 그러니까. 네가 월수금에 교무실에 가면 내가 화목토에 갈게.”
“알았어. 그게 끝이야?”
“아니,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눈앞에 선 이재이의 표정에는 백 가지 할 말이 더 남아 있었다. 아직 허옇게 남은 분필가루가 교복 위에 소복한데도 거울을 못 봤으니 알 리가 없다.
“뭐가 또 남았어?”
“아, 많아. 되게 많아.”
벼르고 있었던 표가 단단히 났다. 낡은 책상 서랍 안에서 수첩까지 꺼내서는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일렀다.
“그걸 다 하라고?”
“네, 네가 안 할 땐 나 혼자 했어…….”
“너도 안 하면 되잖아.”
“넌 그걸 말이라고!”
화를 내봤자 소용이 없는 애니 제 힘만 낭비하기는 싫었다. 거기다 윤제희가 때리지 않는다는 것도 아직 증명이 되지 않았다. 물론 때리는 것도 못 보긴 했지만.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할 바에는 그만두는 게 낫지.”
“그걸 몰라서 그런 게 아니잖아.”
“가자.”
“응?”
“그럼 가서 안 한다고 하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한마디 하고 싶은데 윤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길고 곧은 몸을 세우자 생각이 달라졌다.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인다. 그래, 윤제희 같은 애가 가서 안 한다고 할 때 붙어 있으면 나도 덩달아 이 허물을 벗을 수 있겠지.
생각해보니 이것도 기회다 싶어서 그를 놓칠까 얼른 뒤를 따랐다.
“임 선생님 퇴근하셨는데?”
“네?”
“좀 전에 나가셨어. 왜?”
“아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교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입구에서 국사 선생님과 마주쳐 비보를 들었다. 매일 자리에 붙어 뭐 하나라도 더 시킬 게 없나 하시던 분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퇴근이 빨랐을까.
“삐삐 쳐줘? 급한 거야?”
급하다면 급했다. 내일은 일요일이고 다음 날부턴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될 텐데 이런 일은 하루빨리 말하고 싶었다.
“벌써 버스 타셨으면 삐삐 쳐도 집에 가서나 연락하실 수 있을 텐데. 너네도 집에 가야지.”
“선생님 댁이 여기서 멀어요?”
“임 선생님 집이, 보자……, 나도 한번 가봤는데 거리는 좀 있지. 그런데 너네는, 많이 급한 거야?”
저렇게 심각하게 물으시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윤제희는 여전히 풀을 먹인 듯 빳빳했다.
“네. 급한 일이라서요. 혹시 모르니 주소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너네가 그렇게 급할 일이 뭐가 있냐 핀잔이나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제희의 과묵한 입에서 한마디씩 나올 때 따라붙는 긴장감은 선생님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결국은 적어준 메모를 들고 제희와 재이는 버스정류장에 섰다. 다른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하루라도 빨리 말해야지.”
“하긴……, 다음 주부터 또 뭐 한다고 엄청 시킬 텐데 빨리 말하는 게 낫겠다.”
재이는 딜레마에 빠졌다. 자신이 말을 안 하면 침묵이었고 말을 하자니 어색했다. 그건 둘째치고, 도대체 자신이 왜 토요일 오후에 의정부에 가고 있는지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 원짜리 낼 거면 표를 미리 사야지!”
버스표를 먼저 넣고 자리로 가는데 제희는 아직 앞에 있었다. 버스 기사가 싫은 소리 하는 걸 보고야 종종걸음으로 가서 한 장을 더 떼어내 넣었다. 다시 뒷좌석으로 돌아와서는 만약 ‘고마워, 다음에 갚을게.’라고 한다면 ‘됐어. 그 정도는.’ 이렇게 답해주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윤제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안 하는 감사를 억지로 찔러 받을 마음은 없었지만 입술은 몇 번 삐죽였다. 안 하면 말아라, 나도 오늘 부반장 감투 벗어내면 졸업할 때까지 너랑 말할 일도 없으니까.
어색한 그녀가 창가에 고개를 기댔다. 제 뒷자리에 앉아 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벌써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했으니 확실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되는데 그게 또 쉬운 게 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창문에 손을 댔다.
뻑뻑한 창문이 잘 열리지 않아 작은 손잡이에 두 손을 다 얹었을 때, 뒤에서 기다란 팔이 뻗어 나와 그 창문을 대신 열었다. 한 번에, 그것도 부드럽게. 그래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윤제희가 뒤에 앉았겠구나 했다.
윤제희도 제게 고맙다는 말을 안 했으니 이재이도 그런 말은 안 하고 둘 다 그저 무심히 창밖, 같은 풍경만 보았다.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여기 맞지? 국사가 버스 내리면 바로 보이는 데라고 했는데. 상록아파트.”
“응.”
“그런데 선생님 댁에 가는데 빈손으로 가도 될까?”
좋은 소식 전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송구스럽다. 버스 안에서는 일단 내려서 집만 찾으면 나는 도저히 부반장 못 하겠다, 이 소리를 하고 오려고 했는데. 열아홉 살쯤 되니 어쩔 수 없는 예의라는 것도 알아서 집 앞에서 미적거렸다.
“잠깐만.”
윤제희가 말릴 새도 없이 두 동짜리 아파트의 맞은편 작은 상가에 있는 슈퍼로 달려갔다. 1분도 안 돼서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병 음료수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반장 쟤 만 원짜리 깼겠다, 그 생각 하나만 했다.
어차피 윤제희 따라 묻어 온 거 선물도 묻어 가보자. 사실 일도 내가 더 많이 했으니까.
“저기!”
입구 옆 놀이터에서 선생님이 그네를 타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아빠를 꼭 닮아 그런지 한눈에 부자관계란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아들인가 봐.”
“지금 해?”
“어……, 그래.”
조금 망설여졌다. 그네에서 내린 아이를 빙그르 돌리니 이곳까지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가 완전히 달랐다. 엄한 표정도 없고, 입에 붙은 잔소리도 없었다.
“당신! 여기 아직 있으면 어떡해!”
놀이터 뒤에 다다라 ‘선생님’ 하고 불러볼 참에 이번에는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빠만 닮은 줄 알았던 아이는 엄마도 닮아 그 인물이 선생님의 부인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어어……, 정욱이랑 잠깐 놀아준다고.”
“내가 말했잖아! 찌개 올려놨으니까 두부 한 모 사서 바로 오라고! 왜 사람을 두 번 나오게 만들어!”
“그게 아니라. 나도 일하고 뭐 하고 이제 막 왔는데 피곤해서…….”
“당신만 피곤해? 나도 논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집안일 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어떻게 좀 해보겠다고 동동거리고 쫓아다녔다구!”
일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풀이 죽은 담임선생님의 얼굴 어디에도 재이가 알던 핵주먹 타이슨은 없었다.
“가자.”
그러거나 말거나 한 발 더 내딛는 윤제희를 다급히 잡았다. 옷깃만 잡으려 한 것이 급한 마음에 팔을 잡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도 그는 ‘왜?’ 하는 감정 없는 눈빛이었다.
“아니, 우리가 지금 가면 선생님 부끄러울 거 아냐.”
“여기까지 와서?”
“……어휴.”
일단 한숨을 쉬었는데 답은 없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부인에게 쪼이고 있고 아들은 그 와중에 뭘 사달라 보채고 있었다. 뒤에서 보는 선생님은 학교에서의 자신 이상으로 처량했다.
“그럼 넌 가서 말해. 난 갈래.”
“넌 왜?”
고개를 내리고 흔들었다. 윤제희는 이미 제 손을 떠났고 자신은 이미 결심을 굳혔으니 더 있으면 뭐 할까. 바로 앞 정류장으로 다시 걸어오는데 무슨 이런 하루가 다 있을까 싶었다.
“윤제희. 너는 왜? 넌 안 하겠다고 해도 돼.”
“……나도 됐어.”
그가 그냥 돌아온 것은 의외였다. 선생님이 부인한테 잡아먹히거나 말거나 ‘나는 안 합니다.’ 꼭 말하고 돌아올 줄 알았다. 그게 너무 의외라 돌아오는 버스에서 제 옆자리에 앉은 것은 따로 신경도 못 썼다.
“창문 열어줄까?”
“아, 아니. 괜찮아. 앞자리에 열려 있는데 뭘.”
돌아오는 길의 반은 갈 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무심코 발끝에 걸리는 음료수 상자에 재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괜히 샀다. 비쌀 텐데.”
“안 비싸.”
“……그래도 선생님 안 드리길 잘했다. 말도 못 했는데 드리고 오면 아깝잖아.”
“너 마실래?”
“어?”
난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의 손길 몇 번에 병이 울리는 소리가 맑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그녀의 손에 오렌지색 선명한 주스병이 들어왔다. 집에 들고 가 모아놓고 싶을 만큼 병은 예뻤다.
“왜 안 마셔?”
“아니, 마실 거야.”
새콤하고 상큼한 주스가 입을 축이자 심란했던 마음도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 모금, 두 모금 주스를 다 마시고 나니 또 다른 주스가 무릎 위에 놓였다.
“무거워서 들고 가기 귀찮아.”
귀찮다면야 뭐.
도착할 때까지 이재이는 주스를 세 병이나 마셨다. 그러고 나니 슬슬 눈이 감긴다.
“……어른 돼도 사는 게 다 피곤한가 봐.”
눈은 감았는데 서슬이 퍼런 부인한테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하얗게 질려가던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저런 게 진정한 인생이라면 그다지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응.”
“……주스는 고마워.”
“나도 고마웠어.”
버스표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재이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 눈을 못 떼는 남학생들이 벌써 반에도 서넛이 넘었다. 윤제희가 알기로는.
“……그래도 일은 나눠서 해야 돼!”
“그래.”
“꼭!”
“응.”
확답을 받은 이재이가 잠이 들었고, 그는 앞쪽의 열린 창문을 닫아주었다. 곱게 잠든 그녀의 입술에 주스가 살짝 묻어 있었고 그걸 본 윤제희가 웃었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