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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8/8)

Epilogue. 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현재 브쉬는 놀라운 속도로 자정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 일에는 고유번호 M2243 시리즈를 부여받은 몬스터들의 활약이 컸다.

마리는 이 몬스터를 청소부라고 불렀는데 쓸모 많은 청소부들을 가장 살찌우게 하는 건 고등생명체였다. 브쉬의 경우 인간이 가장 적합했다. 깨끗하고 기름진 땅으로 브쉬를 되돌리는 청소부를 경이롭게 바라보던 땅의 주민들은 청소부들의 몸에 흡수되는 영광을 부여받았다. 무척 관대한 처벌이 아닐 수 없었다.

섬 아모르는 그런 청소부들이 가장 먼저 청소한 땅이었다. 그 덕분에 바다의 범람으로 잠겼던 여러 섬 중 현재 유일하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청소부들은 놀라운 식탐을 보이며 섬 하나를 두 달 만에 청소해 냈다. 몸이 불어나는 만큼 먹어 치우는 속도도 빨라서 1년이 지난 지금은 인접 해안과 바다까지 깨끗해졌다.

이는 아담이 섬 주변의 해역에 거대한 거름망을 설치한 덕분이었다. 거름망은 섬을 양식장처럼 가두었다. 오염된 바닷물은 거름망과 청소부에 한 번씩 걸러져 깨끗해진 상태로 들어왔다.

청소부들은 청정수역을 조금씩 더 늘리고 있었으나 바다의 깊이가 하염없으니 브쉬 전체를 정화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할 수조차 없었다.

섬 주변만 깨끗하게 치운 아담은 청소부들을 대부분 땅으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또 열심히 브쉬의 땅을 먹어 치우며 이 차원의 자정력을 높이고 있었다.

청소부들은 맛없는 땅을 자꾸 먹이는 주인에게 툴툴대었으나 아담이 간식을 –인간-주는 일은 잘 없었다. 브쉬는 그 특성상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죄인이 자주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공기정화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아모르의 창공에 오랜만에 비행정이 나타났다. 청소부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침을 뚝뚝 흘렸으나 비행정에서 내린 인간은 마리와 아담뿐이었다.

“와! 예쁘다!”

“멸망 전에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했다고 해요. ‘에덴의 앞뜰’이라고 불렸다죠.”

신혼여행지로도 가장 유명한 섬이었다.

아담은 마리가 인간이 된 첫날부터 나름의 낭만을 담아 이 섬을 청소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뒤에야 마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새하얀 백모래와 푸른 바다가 반씩 섞인 섬이었다. 1년 내내 여름이 계속되는 열대기후의 섬인 만큼 날씨가 따뜻하고 나무가 울창했다.

해안가 근처에는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별장이 있었다. 마리가 좋아하는 꽃들도 한가득 피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열대기후에 적응할 수 없는 꽃들이었지만 열대 꽃들의 유전자를 배합하여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애쓴 보람이 있게 아름다운 정원은 푸른 바다와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이 외에도 이 섬에 있는 무엇 하나 아담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리의 심미안에 꼭 맞도록 조경을 계획한 인위적인 낙원이었다.

“저 안개는 뭐예요?”

마리가 널따란 수평선 끝을 가리켰다.

저 안개는 이 낙원의 기준점이었다. 바다는 나뉘어 있었다. 악취를 풍기는 시꺼멓게 오염된 바다와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말이다.

“곧 완벽해질 거예요.”

아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구름 같고 신비로워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마리는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었다. 마리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상정하고 외관을 완벽히 꾸며낸 보람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은 마리가 통통 뛰는 발걸음으로 아담을 이끌었다.

“별장 안에 들어가 볼래요.”

아담이 숨기고픈 것들을 완전히 가려낸 안개가 허옇게 일렁거렸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앗, 차가……!”

날씨가 뜨거워서 딱 기분 좋을 만큼 시원했다. 마리는 길쭉한 팔다리를 첨벙거리며 헤엄쳤다.

“인간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이라는 걸 해요, 마리.”

어느새 나타난 아담이 마리의 몸에 하얀 튜브를 씌우며 말했다.

“아담도 안 했잖아요!”

“나는…….”

“강화 인간이라고요? 그럼 나도 그거 할래!”

1년이 지나도 철딱서니 없는 연인은 또 아담이 식겁할 만한 말을 했다. 아담의 눈썹산이 가파르게 치솟았으나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뇌가 귀여운 연인을 위해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도 해 주고 싶죠. 하지만 항노화 시술이랑은 달라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잖아요.”

“나 아픈 거 잘 참는데…….”

퍽이나. 마리는 손가락 끝을 조금 베이고도 울상을 짓는 평범한 엄살쟁이였다.

브쉬의 인간들은 통증을 느낄 감각기관도 없는 포배기 배아 때부터 강화 수술을 준비했다. 그만큼 공이 많이 들고 위험했다. 그런 걸 다 자란 성인에게 시도하려면 온몸의 장기가 터져 나가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고통으로 쇼크사할 정도로 위험했고 살아난다고 해도 최소한 정신이 망가지는 트라우마가 남을 것이다.

아담은 잠든 연인의 몸을 몸 주인의 허락도 안 받고 살펴보는 걸 즐겼지만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다루었다. 보호자이자 연구원이자 주치의의 입장으로서 평범한 인간과는 조금 다른 마리의 몸을 잘 알아 두어야 했다. 마리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배제하고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담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리의 몸은 ‘번식 본능에 기막히게 맞춰져 아주 음탕한 몸을 가진 인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난자도 나오고 생리도 했다.

마녀일 때보다 정신력이 떨어져서 쾌락을 과하게 느끼면 평범한 인간처럼 기절하기도 했다. 성욕에 있어서만은 아담 못지않던 체력도 떨어져서 온종일 섹스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아담은 안 그래도 소중히 생각하던 연인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보살피는 중이었다.

“디자인이 유치해…….”

그런 마음도 모르고 마리는 괜스레 깜찍하게 만든 튜브를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아담의 거절이 못마땅하여 화풀이하는 것이었다.

“귀여운데 왜요. 그거 안 하면 금방 힘들걸요?”

아담은 헤엄을 쳐 마리가 탄 튜브를 끌어 주었다. 편하고 쉽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리는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그렇게 한참 물놀이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배고파요?”

눈치가 귀신같은 아담은 즉각 물놀이를 중단했다. 별장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먼저 씻었다. 짭짜름한 소금기를 물에 씻어 내고 나온 마리는 아담이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담이 직접 하는 거예요?”

“못 미더워요?”

“그냥 신기해서요.”

버터를 발라 자글자글 구워지는 스테이크와 거의 다 만들어진 해산물 파스타의 외관은 완벽했다. 향도 좋았다. 마리는 아담의 등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언제 끝나요? 배고파요…….”

“다 했어요. 접시에 옮기기만 하면 돼.”

아담은 굳이 마리를 떼어 내지 않았고 마리는 그의 등을 끌어안은 채 뒤뚱뒤뚱 매달려 있었다. 뜨거운 요리를 접시에 가뿐히 옮긴 아담이 예쁘게 플레이팅한 음식을 식탁에 올려 두었다.

쪽. 밥 먹을 때가 되어서야 마리를 떼어 낸 아담이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뺨에 뽀뽀했다.

“자, 먹어 봐요.”

맞은편에 앉은 아담이 먹기 좋게 썬 스테이크를 포크에 꽂아 건네주었다. 마리는 그녀가 선호하는 굽기로 익힌 스테이크를 꼭꼭 씹어먹었다.

“맛있어요. 아담, 요리 잘 하네요.”

“난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거든요.”

딱히 자랑이랄 것도 없는 담백한 진실이었다. 아담이 다방면으로 유능하다는 걸 잘 아는 마리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내가 아니라 아담이 마녀인 거 아니야? 마법 쓰는 것 같아요.”

마리도 이제 마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한 바를 곧이곧대로 말할 만큼 아담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여 마리를 무안하게 하거나 상처를 줄 만큼 연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담은 포도주를 따른 와인잔을 들어 마리와 건배했다.

“마리가 인간이 된지도 벌써 1년째네요.”

“벌써요?”

포도주를 한 모금 삼킨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으로 사는 건 어때요?”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마녀일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제 매혹술을 쓸 수 없다는 것 정도?”

원래도 브쉬에서는 매혹술을 쓸 일이 딱히 없었다. 아담 말고 꼬시고 싶은 인간도 없었고 예쁜 장난감이라면 아담이 많이 만들어 줬으니까 심심하지 않았다. 또 이렇게 아담이랑 함께 있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해서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이성을 유지하는 마녀일 적과 달리 이제는 마리도 술에 취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

“인간도 좋은 것 같아…….”

“정말?”

“응. 지금처럼 계속 지내면 좋겠어…….”

포도주 몇 모금에 취한 마리가 샐샐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마력을 다 잃은 게 어색하고 혹시나 아담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을까 노심초사했으나 변함없는 아담을 보니 그런 걱정까지 나태해졌다.

마리는 지금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아담은 그녀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편이라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었다. 또 예쁘고 잘생긴 아담과 함께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일상이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마리는 어릴 적부터 그림처럼 아름다운 남자와 –비록 노예를 바랐으나-함께하는 삶을 꿈꿨다.

“행복해요, 마리?”

“응!”

“다행이다. 정말 기뻐요…….”

방긋 웃는 마리를 본 아담도 기분 좋게 따라 웃었다.

다 큰 남자가 어쩜 저렇게 천사처럼 고아하고 사랑스러울까. 아담은 정말 완벽했다. 만약 아담 옆에 남지 않았다면 마리는 죽도록 후회했을 것이다. 인간이 되긴 했어도 결국 이 아름다운 남자와 평생 함께하게 되었으니 마리는 성공한 마녀였다.

마리는 몽롱한 눈으로 아담을 감상하며 포크를 톡 내려놓았다.

“더 먹어야죠.”

배가 어느 정도 부르면 음식에 무심해지는 것이 마리의 나쁜 습관이었다. 할 수 없이 아담이 옆에 붙어 마리의 입술로 분주히 음식을 날랐다. 하나하나 떠먹여야 했지만 조금도 귀찮지 않았다.

아담은 마리가 손끝 발끝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몸이 굳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수발을 들어야 한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만큼 마리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아담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낙원향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담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리의 자유를 되도록 존중했다. 사랑스러운 마리가 그가 만든 울타리만큼 안전한 곳을 두고 빠져나가려는 위험한 짓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성실한 ‘연인’이 되어 마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뇌 맑은 마리와 교활한 아담은 상성이 좋다.

아담의 저주는 마리의 곁을 지독하게 맴돌며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교활한 저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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