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사악한 마녀와 교활한 초능력자
다음 날 아침.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몸으로 밤새도록 색사를 나누고도 마리는 거뜬히 몸을 일으켰다. 정기를 충만하게 받은 마녀의 몸은 회복력이 좋았다.
달콤한 향을 풍기던 향초는 불이 꺼져 있었고 아담은 마리의 배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천사처럼 고아한 얼굴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원색적으로 느껴졌다.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마녀는 침을 질질 흘리며 아담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마구 털어 정신을 차렸다.
‘뭔가 이상해. 몇 번이나 매혹술을 걸었는데…….’
어젯밤 마리의 자궁은 아담의 정액을 다섯 번이나 받았다. 마리는 그때마다 아담에게 매혹술을 걸었다. 아담은 정기의 질도 유난하다 싶을 만큼 좋았고 정기의 양도 충분했다. 그 정기를 치환한 마력으로 매혹술을 걸었으니 노예에 가까워져야 마땅한데 아담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봉사를 하려고 들었지.’
정액에 젖은 아담의 성기를 정성껏 빨고 엉덩이를 맞으며 흐느끼던 지난밤을 수치를 떠올린 마리가 입술을 암팡지게 깨물고 달게 자는 아담을 팩 노려봤다.
‘그 약에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어!’
아담을 추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마리가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그녀의 움직임에 눈을 뜬 아담이 마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제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추궁해 봐야겠어!’
‘약에 취한 사람처럼 굴더니 벌써 회복됐어. 회복이 빠른 건 육체뿐만이 아닌 모양이야. 마녀의 정신력은 어느 정도일까…….’
짧은 순간, 사악한 마녀와 교활한 초능력자는 속내를 감추고 서로를 탐색했다.
마리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걸 느꼈다. 아담을 처음 만난 날 사랑의 노예가 되는 호르몬 어쩌고 주사를 맞았을 때처럼 마리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를 쫓았다. 눈이 마주치자 뺨이 화끈거렸고 그가 눈매를 휘어 예쁘게 웃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며칠이 지나 약 기운이 빠지고 마녀 특유의 회복력 덕분에 서서히 희미해지던 사랑에 빠진 증상이 다시 강해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마녀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마리가 살아온 마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마녀의 본능이 지독한 위기를 느끼고 삐삐 울었다. 당황스러움과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안색이 파랗게 질린 마리는 무심코 손을 휘둘렀다. 폭력으로 관계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추잡한 행동이었다.
제법 매서운 기색으로 뺨을 향해 내리치는 손바닥을 본 아담은 무심코 대응하려는 모든 공격 체계를 빠르게 조종해야 했다.
‘code zero-Ω. 공격 중단. 반사 해제. 신체 저항 최하. 내구도 최하.’
진화를 거듭한 뇌가 마리는 느낄 수 없는 파동을 내뿜으며 진동했다. 은밀한 염력장이 둘 사이를 맴돌며 아담의 신체 상태를 재조정했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배어나도록 집중하고 나서야 아담을 감싸고 있던 모든 방어 체계가 깨졌다.
마리의 손은 아담의 눈에는 지겨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여 갓난아기의 피부처럼 약해진 아담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뺨을 맞은 아담의 고개가 꺾이고 뺨과 입술이 터져 나갔다. 별 생각 없이 버릇 나쁜 손을 휘둘렀다가 피가 터진 아담의 얼굴을 본 마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러려던 게, 나, 나는…….”
마리는 눈을 크게 뜨고 뚝뚝 떨어지는 아담의 피를 바라봤다. 아담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마녀의 호르몬샘이 터졌다. 경동맥을 타고 뇌혈관을 빠르게 순환시켰다. 과하게 분비된 호르몬에 속이 뒤집히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담은 공황에 빠진 마리를 얼른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어젯밤에는 내가 너무 심했죠? 마리가 화날 만해요. 잘못했어요.”
아담이 마리를 달래며 속삭였다. 그러나 마리의 머릿속에는 예쁘게 웃고 있던 아담의 뺨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려치던 자신의 손과 피가 터진 아담의 얼굴만 맴돌았다.
“허억, 허억, 허억……!”
숨이 차올라서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마리는 벌벌 떨며, 안아 주려는 아담을 피해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렸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미천한 노예를 죽여 주세요. 잘못했어요. 벌을 주세요. 죄송해요…….”
마리는 납작 엎드려 웅얼거리며 자해를 시도했다. 그녀는 아담을 쳤을 때보다도 매섭게 제 뺨을 치려고 했다. 벽에 머리를 쿵쿵 찧으려고도 했다. 놀란 아담이 서둘러 마리를 결박하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만큼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마리의 반응은 주인 마녀의 심기를 거스른 노예가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이런……. 실험을 다시 해야겠어요, 마리.”
마리가 자신에게 건 마녀의 저주가 이토록 악랄한 종류인 줄은 몰랐던 아담은 쓰게 웃으며 마리의 경동맥을 손으로 짚었다. 그의 손을 타고 흐른 전류가 인식칩을 건드리자 마리는 줄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털썩 쓰러졌다.
“나쁜 기억은 금방 지워 줄게요.”
새하얀 목덜미에 굵은 주삿바늘이 꽂혔다.
*
마리는 눈을 떴다. 왠지 목덜미가 따끔했다. 거울을 보지 못해 붉은 점처럼 남은 주사 자국을 알지 못하는 마리는 벌레에 물렸나 생각했다. 몸은 뽀송한데 마리의 아래는 끈적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뇌가 출렁이는 것처럼 머릿속이 멍했지만 짜릿한 쾌감이 안개를 갉아 내며 올라왔다.
“잘 잤어요, 공주님?”
흐리멍덩하던 보랏빛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와 작게 찍힌 눈물점이 특히나 아름다운 미인이 보였다.
문득 아담의 뺨과 입술이 찢어지던 환영이 떠올랐으나 아담의 얼굴은 깨끗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부은 뺨도 터진 입술도 없었다. 아담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던 마리의 눈동자가 총기를 띠고 또렷해졌다.
그는 마리의 음부를 정성껏 핥고 있었다. 그녀의 두 다리를 붙잡아 벌리고 눈을 공손히 아래로 내리깐 채 동글동글한 음핵을 혓바닥으로 소중히 문질렀다. 그는 마리의 시선을 느끼고 수줍어하며 뺨을 붉혔다.
“공주님이 아니라 주인님이겠지.”
킥. 마리는 순종하는 아담을 비웃으며 아침의 햇살을 두르고 반짝이는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았다. 금을 녹여 짠 금실 같은 머리칼이 두피에서 뜯길 듯 팽팽히 당겨졌다.
“마리, 아파요…….”
거친 행동에 아담은 눈망울이 축축하도록 울먹이며 마리를 애타게 바라봤다. 아침 봉사를 제대로 하고 있었던 걸 보면 그는 매혹술에 빠진 게 틀림없었다.
반짝이는 머리칼과 투명한 눈동자는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조금 섬뜩할 정도였다. 그런 미인이 애가 닳아 울먹이니 추잡스러운 만족감이 배 속을 진하게 울렸다. 어젯밤 아담의 정액을 듬뿍 먹은 자궁이 꿈틀거렸다. 얼굴만 보고도 쌀 것 같았다. 마리에게 좆이 있었다면 저 예쁘장한 얼굴에 희뿌연 정액을 잔뜩 내뿜었을 것이다.
“네 더러운 침이 묻었잖아. 더 깨끗이 핥아.”
마리는 괜한 트집을 잡으며 아담의 머리를 아래에 거칠게 처박았다.
“네……. 죄송해요.”
아담은 뺨을 붉히며 어젯밤 마리가 그랬듯 황홀하다는 얼굴로 마리의 음부를 정성껏 애무했다. 축축한 살덩이가 꽃잎 같은 구멍 싸개를 헤집고 달콤한 애액이 흐르는 마녀의 질구를 빨았다.
“흐, 걸레 같아……. 왜 이렇게 잘 빨아?”
마리는 아담의 뺨을 찰싹찰싹 가볍게 때리며 그를 모욕했다. 아담은 마리에게 뺨을 맞으며 봉사해야 했다. 아담의 눈망울이 젖어 들자 마리는 킬킬거리며 그를 비웃었다.
“하응, 깨끗한 척하더니, 흐응…… 좆걸레 새끼였어. 다른 년, 읏…… 빨아 주고 다닌 거, 하아, 아니야?”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정말이에요.”
아담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누가 고개를 들라고 했어!”
마리는 그의 머리채를 붙잡아 마구 흔들었다. 어젯밤 그가 제 엉덩이를 내려친 걸 되갚아 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뺨을 갈기고 등짝이 헐도록 채찍질해 주려 했지만 아름다운 얼굴로 봉사하고 있는 걸 보니 화가 풀렸다. 예쁜 얼굴과 깨끗한 몸을 망가트리기도 아쉬워서 너무 험하게 다루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읏,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담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고 그녀가 주는 모욕을 감내했다. 이 차원의 권력자일 남자가 조그만 손에 휘둘리며 아무것도 못하는 꼴을 비웃어 주면서도 마리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를 모욕하는 일이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았다. 벌레가 몸을 기는 것처럼 불쾌하기까지 했다. 마리는 자신이 아담을 괴롭혀 놓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이잇! 제대로 빨아!”
기분 나쁜 불쾌함에 사로잡힌 마리는 아담을 얼굴을 함부로 깔아뭉개며 앉았다. 조각상처럼 매끈한 콧대와 사랑스러운 입술이 음부에 짓눌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콜록거렸다. 호수처럼 새파란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일렁거렸다.
아담은 애처롭게 마리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밀었다. 숨을 꾹 참고 마리가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안쪽에 혀를 밀어 넣었다. 어디를 찔리더라도 흥겨워하는 마녀의 내벽이 침입자를 반기며 개폐했다. 그는 벌름거리는 구멍을 압력을 주어 빨아들였다. 마리는 죄책감도 잊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흐…… 좋아, 으응……. 더 세게, 빨아, 하으으……!”
두꺼운 혓바닥이 마치 성기처럼 안을 쑤컥거렸다. 단단하고 힘이 센 성기와 달리 부드럽고 물컹거려서 안이 줄줄 녹았다. 마리는 찐득한 애액을 터트리며 혀를 꽂고 방아를 찧었다.
말랑하고 뭉뚝한 갈퀴가 내벽을 마구 할퀴었다. 푸진 둔덕이 아담의 얼굴 위에서 바르르 경련하고 열 개의 뽀얀 발가락이 힘을 잔뜩 주고 뒤틀렸다. 쾌감이 벼락처럼 척추를 훑었다. 마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젖은 음부를 더 거세게 비볐다.
“아앙, 혀, 응, 계속…… 넣을래……!”
물기가 튀어 보드레한 장밋빛 뺨과 눈물점이 찍힌 눈가가 물기에 젖었다. 미인의 낯은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새하얗게 질렸지만 비에 젖은 물망초처럼 가련하고 청초했다.
숨 막히도록 다디단 마녀의 애액이 코와 입술로 마구 밀려들어 왔다. 동그랗고 예쁜 푸른 눈동자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반듯한 이목구비는 일그러져서도 기괴하게 아름다웠다. 섬뜩하도록 도착적인 얼굴을 음탕한 액으로 적시며 쑤셔 박히는 쾌락에 흥분한 마리가 온몸을 벌벌 떨며 물을 싸질렀다. 그녀가 싸지른 액체로 미끈한 얼굴이 진탕 젖었다. 마리는 그러고 나서야 허벅지에 힘이 풀려 앞으로 쓰러졌다.
“흐…… 콜록! 콜록!”
숨통이 막혔던 아담이 거센 기침을 토해 내며 애액으로 질척한 마리의 음부를 깨끗이 빨아 정리했다. 살고자 내뱉는 기침마저 전류처럼 마리의 음부를 자극했다.
“하아…… 으응…….”
마리는 발정 난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며 끝나지 않는 절정에 부들부들 떨었다. 애액이 계속 쏟아져서 그가 아무리 빨아도 다 정리되지 않았다.
“마리, 콜록! 자지로 봉사할까요?”
아담은 마리의 눈치를 보듯 순종적인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침의 단정한 얼굴이 거짓말인 것처럼 얼굴 전체가 액으로 칠갑되어 난잡하게 젖어 있었다. 눈가는 짓물렀고 입술은 부르텄다. 숨통이 막혔던 얼굴은 붉게 익어 아직도 잘게 기침을 했다.
“흐으…… 좋아. 넣게 해 줄게…….”
마리는 이만하면 벌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두 팔을 뻗었다. 아담이 즉각 반응하며 그녀를 끌어안고 성기를 삽입했다.
“흐아아, 살살해, 아담, 커, 크다고, 하으응……!”
다시 넣을 때마다 진저리 처지도록 섬뜩한 부피감이 장기를 밀어 올리며 자궁 경부까지 치달았다. 마리를 달래며 다정하게 삽입한 아담은 마녀의 노예처럼 정확하고 힘 있게 내벽을 난타했다. 주먹으로 배를 쿵쿵 찧는 충격감에 마리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응, 으응…… 자지, 흐…… 자궁에, 하으응, 씹물, 지려 줘……. 가득, 채워, 응!”
“네, 마리의 배가 부풀도록 사정할게요.”
아담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마리의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마리는 아담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그를 다시 예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담과 한 바탕 정사를 치르고 개운한 몸으로 일어난 마리는 그와 함께 외출했다. 필요한 것은 아담이 모두 제공해 주고 있었지만 며칠을 방 안에만 있으니 심심했기 때문이다. 마녀의 변덕에 맞춰 주고자 아담은 중요한 일정을 다른 날로 미뤄야 했지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녀의 취향을 고려해 아담이 선택한 곳은 센트럴시티의 백화점이었다. 아름답게 조형된 건물과 쾌적한 공기에 마리는 만족해하며 아담의 팔짱을 꼈다.
“고유번호 A-zero, 고유번호 A-omega, 확인되었습니다.”
백화점 출입구를 지키는 AI가 노란빛으로 두 사람의 목덜미를 비추며 말했다. 말하는 전광판을 처음 본 마리는 잠시 신기해했으나 화려하게 꾸며진 백화점 내부를 보고 신이 나 아담을 끌어당겼다.
“반갑습니다. VVIP 회원님을 모시게 된 퍼스널쇼퍼 매니저 디에고입니다.”
“매니저?”
마리는 그럭저럭 잘생긴 직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꽤 반반한 얼굴이긴 했으나 장난감 삼기에는 조금 모자란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담을 보고 나니 눈에 차는 인물이 별로 없었다.
아담은 시큰둥한 마리의 반응을 서늘한 눈빛으로 관찰하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유순하게 웃었다.
“쇼핑을 도와줄 사람이에요. 매장을 직접 둘러보는 것도 괜찮고 프라이빗한 룸에서 원하는 물건을 골라 볼 수도 있어요.”
“매장에서 보려면 저 인간들처럼 기다려야 해요?”
백화점 내부에는 사람이 많았다. 마리는 물방울 모양의 핑크다이아몬드 반지가 전시된 매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인기가 많은 매장인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아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눈짓하자 디에고가 앞장서서 움직였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리와 아담이 매장에 들어서자 매장 직원과 디에고가 바로 붙어 보석함을 가져왔다. 멸망한 차원에서 보석과 보석장인은 어떻게 구하는 건지 마녀의 눈이 빙빙 돌 정도로 호화로운 사치품이었다. 아담은 마리가 몸에 걸쳐 보는 보석 전부를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포장해 둘까요? 바로 가져가시겠습니까?”
“제가 챙겨 두겠습니다.”
매장 직원의 물음에 디에고가 나섰다. 아담과 마리는 물건 포장을 기다리지 않고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마리의 작고 하얀 손에는 보석 매장의 메인 제품이었던 핑크다이아몬드로 만든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 백화점의 물건들은 마리가 놀랄 정도로 질이 좋았다. 백화점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마리는 멸망을 겪은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걸까 의아했지만 깊이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니까 이렇게 지내는 거겠지 대충 생각할 뿐이었다.
마리는 백화점을 돌면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사치품을 잔뜩 구입했다. 아담은 난처한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만능열쇠 같은 카드를 내밀어 계산했다.
그다음으로 마리가 관심을 보인 건 남성의류 매장이었다. 마리는 인형놀이를 하듯 아담의 몸에 이것저것 걸쳐 보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마리가 가리키는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어 보던 아담이 맑은 웃음소리에 기뻐하며 그녀를 따라 웃었다.
“재미있어요?”
“응.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마리는 폭신한 소파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새처럼 그에게 다가섰다.
“다들 당신을 쳐다봐요. 저 사람들 눈에도 당신이 참 잘 생겼나 봐요.”
마리가 아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 당신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선망에 찬 눈길로 아담을 바라보았지만 그를 알아보는 기색은 없었다. 그냥 아름다운 얼굴에 놀라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내심 아담이 이 차원의 왕 같은 존재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마리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요.”
아담은 웃으며 마리의 뺨에 뽀뽀했다. 노골적인 애정행각에 두 사람 주위에 있던 직원들이 눈치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마리는 말랑한 입술을 기분 좋게 받아 주며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하나도 안 보이네요? 노인도 없고. 젊은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인가요?”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마리는 아이나 노인에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여기 있는 사람 전부가 이십 대나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라는 건 이상했다.
“의류매장이 이렇게 많은데 아동복 파는 곳도 없고……….”
“아이나 노인은 드물어요. 자연임신을 거의 하지 않고 배양기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항노화 시술을 기본적으로 받으니까요.”
“음…… 대충 젊은 사람만 가득하다는 말이죠? 그럼 아담도 늙지 않겠네요?”
마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담을 바라봤다. 아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다! 계속 이렇게 예쁘겠네요!”
마리는 손뼉을 짝 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몇십 년 지나면 추하게 늙을까 봐 걱정스러웠는데 살아있는 동안에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듯했다.
아담은 지금 마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확하게 짐작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도 궁금한 거 있어요. 마녀는 어떻게 임신해요?”
마리의 몸에는 자궁과 난소가 있었지만 난자는 없었다. 난자가 있어야 할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임신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임신해요.”
난소와 난자 같은 건 배우지도 않았고 배울 생각도 없는 마리는 청순한 눈망울로 아담을 올려다봤다. 몸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 임신이 되는 건지 전혀 모르는 눈빛이었다.
“……그렇군요.”
아담의 떨떠름한 반응에 마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나 임신시키고 싶어요?”
아담을 소파로 밀어 앉힌 마리가 그의 몸에 올라타며 속삭였다.
“엉큼해라. 지금처럼 고분고분 굴고 내 말 잘 들으면 임신해 줄게요. 아담의 새끼는 꽤 예쁠 것 같아서 하나 낳을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말고…… 30년쯤 뒤에?”
그때에도 아담만큼 예쁘고 잘생긴 걸 찾지 못한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저와 마리의 아이는 반인반마가 되는 건가요?”
“하하! 아니요! 마녀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마녀예요. 친부의 종족은 아무런 상관이 없죠. 반마 같은 건 인간들이 만들어 낸 환상이에요.”
마녀의 씨로 낳았는데 반마 같은 하등한 게 탄생할 리 없다며 마리는 깔깔 웃었다. 명백히 인간을 낮잡아보는 태도였다.
아담은 인형처럼 예쁘게 웃으며 시중을 들었다. 매장에서 내준 달콤한 디저트를 작게 잘라 마리에게 먹여 주는 손길이 깔끔했다.
“그거 말고 초코케이크로 줘요.”
디저트를 냠냠 받아먹는 마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아담이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며 물었다.
“마녀도 머리가 터지면 죽나요?”
매혹술에 걸린 아담이 그녀를 죽이려고 할 리는 없는데도 질문이 질문인지라 마리는 섬뜩한 긴장감을 느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아담은 마리의 소스라치는 반응에 마녀도 인간처럼 머리를 잃으면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나 싶어서요.”
“아, 아담……?”
“이걸 먼저 봐 줘요. 내가 무방비하게 자고 있을 때 나를 공격하면 안 돼요, 마리.”
그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백화점 벽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총기가 튀어나왔다. 에너지가 바글바글 끓는 총구가 희게 빛나며 마리의 관자놀이를 겨누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마리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아담을 바라봤다. 아담은 마리를 겨눈 총을 손짓으로 없앴다.
“놀랐어요? 미리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 마리가 실수할지도 모르잖아요.”
“바, 방금 그건…… 뭐였어요?”
마리는 에너지를 가득 담고 일렁거리던 총신에서 마력을 닮은 거대한 힘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짐작조차 안 갔지만 그 총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세계의 무기예요. 나를 보호하고 있어서 누가 섣불리 공격하면 이렇게 나타나요. 한두 개가 아니라 몹시 위험하니까요, 내가 자고 있을 때 나를 때린다거나 하는 장난은 치면 안 돼요. 알았죠?”
그는 분노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처럼 달콤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아. 내가 깨어 있을 때는 통제할 수 있으니까 나를 때려도 괜찮아요. 마리가 나를 거칠게 다루고 내 뺨을 수차례 때리고 숨도 못 쉬게 괴롭혔지만…… 괜찮았잖아요. 나는 마리를 다치게 하지 않아요. 그쵸?”
어린애 타이르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다정했다. 마리를 바라보는 눈빛도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나 마리는 다시는 아담의 뺨을 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강한 이에게 약하고 약한 이에게 강한 마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안 때릴게요…….”
“일어나 있을 때는 때려도 돼요.”
“아, 안 때린다니까요!”
“정말? 이제 나 안 때릴 거예요?”
아담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긍정했다.
“고마워요, 마리.”
감동한 것처럼 속삭이는 목소리가 꿀타래처럼 달았다.
*
마리는 아담을 따라 지상으로 내려왔다. 썩은 늪지대의 고약한 냄새와 쾌적하지 못한 공기에 마리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안에서 기다리라니까요.”
아담은 그런 마리를 비행정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려 했다.
“괜찮아요. 따라갈래요.”
마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담의 옷자락을 손으로 붙잡았다.
근래 들어 이 사악한 마녀는 어미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아담을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딜 가도 깨끗하고 예쁘게 관리된 천공성 안에서만 그랬는데 이제는 스스로 이 더러운 곳에 발을 디딜 정도였다.
마녀 주제에 아름답기는커녕 썩어빠진 공간을 찾아들다니 마리는 도무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더럽고 못생긴 풍경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고 아담이 사준 구두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걷는 걸음이 결벽적으로 보였다.
“금방 끝낼게요.”
그녀의 고집에 져 마리를 옆구리에 달고 시료를 채취하게 된 아담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마리는 눈을 반짝이며 이 끔찍한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것을 감상했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유리관을 꺼내는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담은 지금 채취하는 시료가 무엇인지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조곤조곤 설명해 줬지만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마리는 청순한 얼굴로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자연스레 통역되는 언어가 들리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마리. 거기 가만히 있어요.”
마리를 부를 때면 아담의 목소리는 낮고 감미로워 다소 간지럽기까지 했다. 마리는 눈을 감고 그의 다정한 목소리를 노래처럼 듣고 있었다.
반쯤 졸고 있는 마리를 본 아담이 작게 웃었다. 아담의 웃음소리에 마리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최근 더 자주 이랬다. 심장병이라도 난 것처럼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모르던 예전과 달리 작은 일에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에 열이 올랐다. 아담을 꽉 껴안아 체온을 느끼고 싶었고 보들보들한 뺨에 입 맞추고 싶었다.
‘뭐 저렇게 예쁘게 생겼담? 웃는 것도 예쁘고 우는 것도 예쁘고……. 아, 또 울리고 싶다…….’
방긋 웃는 얼굴에 가학심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미소를 지켜 주고 싶었다. 마리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혼자 바쁜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렸다.
첫날밤 이후 아담이 주는 약은 먹지도 않았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더욱 심각한 것은 아담이 정기를 줄 때마다 그에게 복종의 매혹술을 걸고 있는데 첫날밤과 다르게 큰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복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낙인술도 계속 실패했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보통의 매혹술에, 전공마법에 변주를 주는 보조술을 더해야 실행시킬 수 있는 복종의 매혹술은 대상의 정신력이 높을수록 저항이 거셌다. 아담의 정신력이 복종의 매혹술을 튕겨낼 만큼 높은 거라면 계속 이 상태로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이건 정말 커다란 문제였다. 1차 과제인 ‘첫 번째 노예’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2차 과제인 ‘마녀구슬 성장’과 3차 과제인 ‘마녀의 저주’는 시도도 해 볼 수 없었다.
1차 과제 달성의 보상인 마녀구슬조차 얻지 못했으니 마리는 사실 제대로 된 마녀라고 할 수 없었다. 마녀구슬 하나 없는 반푼이 마녀인 것이다!
그래도 마리는 낙담하지 않았다. 마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초조하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 때가 될 때까지 마리는 현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흐흐. 예쁘다 예뻐…….’
아담은 일하는 중간중간 마리를 엿보며 눈웃음을 쳤다. 마리는 그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톡. 톡. 발목을 건드리는 작은 감각에 마리는 벌컥 짜증을 내며 아래를 보았다. 아담을 보느라 바빠 죽겠는데 대체 뭐 따위가 자신을 방해하느냐는 까칠한 시선이었다. 흘깃 확인만 하려던 마리는 9쌍의 다리를 흔들며 인사하는 새까만 다족류 지네를 보고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악! 꺄아아……! 저, 저리 꺼져! 꺄아아아!”
마리의 몸부림에 말라비틀어진 나무로 떨어진 지네가 다리를 흔들며 도망쳤다. 마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굳이 쫓아가 발로 지네를 쾅쾅 밟아 잔인하게 으깨어 죽였다.
“마리! 괜찮아요?”
그리고 놀라서 달려온 아담에게 매달리며 종알거렸다.
“너무 끔찍하게 못생겼어! 저런 역겹고 징그러운 것이 내 몸에 닿았다고요! 더럽고 불결해! 소름 끼쳐!”
“물리지는 않았어요? 한번 봐요.”
아담은 신경질이 난 마리를 달래며 무릎을 굽혀 그녀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마리는 기겁을 하며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지저분한 곳에서 무릎 꿇지 마요. 아담의 몸에 더러운 게 붙잖아요!”
벌레보다 그게 더 싫었던 마리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마리가 아무리 신경질을 부려도 아담은 얼굴 한번 굳히는 법이 없었다. 그는 투덜거리는 마리를 달래어 안아 든 채 발목을 살펴봤다.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네요.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으…… 여기 사는 인간들처럼 더러운 수포가 생기는 건 아니겠죠?”
“마리는 걸리지 않는 전염병이에요. 내가 몇 번이나 확인해 봤어요.”
튼튼한 마녀의 몸은 인간들 사이를 떠도는 전염병에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천공성의 시민인 아담도 전염병에 면역이 있어 괜찮았다.
“난 못생겨질 바에는 차라리 자살할래요.”
“마리.”
마리가 무슨 짓을 해도 오냐오냐 받아 주던 아담이 서늘한 눈으로 마리를 바라봤다. 사람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봄볕처럼 해사하여 태양 같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의 뒤에 있는 시커먼 늪처럼 어둡고 무서웠다.
“못된 말 하지 말라고 했죠.”
“……잘못했어요.”
건조하고 싸늘한 시선을 받고 그에게 미움을 받을까 겁에 질린 마리는 높디높은 자존심을 죽이고 작게 속삭였다. 그 한 마디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마리의 눈망울이 터질 것처럼 그렁거렸다.
아담이 사랑하게 된 마녀는 못되고 사악하여 애정을 준 상대에게도 서슴없이 잔인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상대의 차가운 눈빛 한번에 달달 떨며 겁을 먹을 정도로 미숙하고 나약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마녀였다. 정확히 마리의 경우에는 화초가 아니라 독초로 보는 것이 맞지만.
“나도 화내서 미안해요.”
마음이 약해진 아담이 마리를 끌어안고 다정하게 달래 주었다.
아담은 마녀의 온실을 가급적 지켜 주려고 노력했다. 정기를 줄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다양한 저주를 퍼붓는 마리에게 쓴소리 한번 한 적 없을 정도였다.
철없고 영악한 마녀는 그가 달래 주자 단숨에 기가 살아 쫑알거렸다.
“아담이 나빴어요. 그냥 말해도 알아듣는데 나한테 그렇게 화내면 어떡해요. 무섭단 말이에요.”
급격한 태세 전환이 웃기고 귀여워서 아담은 픽 웃으며 뾰로통하게 내민 마리의 입술에 뽀뽀했다.
“그래요. 내가 나빴어요. 나의 마리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착한 마녀인데 말이죠.”
“맞아요. 나처럼 착한 마녀가 또 어디 있어요? 아담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잖아요?”
진심만 말하고 있는 마리의 눈동자는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고막이 터지도록 경고음이 울린 건 그때였다. 어디 숨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숨을 죽이고 있던 땅의 주민들이 벌떡 일어나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경고! 경고! 561-C 지구 차원문 발생! 561-C 지구 차원문 발생!”
그들은 턱관절이 떨어질 정도로 턱을 덜덜 떨며 기계 소리를 냈다. 엽기적인 광경이었으나 마리는 이 이상한 상황을 고민해 보는 대신 징그러운 수포가 다닥다닥 돋아난 땅의 주민들을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몹시 역겨운 것을 참아 낸다는 듯 일그러진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P9 부대 561-C 지구 집합. 목표를 섬멸한다.”
“수신 완료.”
간단히 통신을 주고받은 아담이 마리를 끌어안고 뛰었다. 마리의 체구가 작다고는 하나 성체인데도 깃털로 된 인형을 끌어안은 것처럼 가볍고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비행정 앞에 도착하여 마리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천공성으로 돌아가요.”
“아담은요?”
“상황을 봐야 해서요.”
아담은 고개를 젓고 단호히 돌아섰다. 빠르게 멀어져서 막을 새도 없었다. 비행정 문이 턱 닫혔다. 마리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담은 이미 떠났는지 바깥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위험한 건 아니겠지?”
사실 아담이 사는 세계는 진작 멸망했어야 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차원문이 아무 때나 열리고 여러 차원에서 무차별 침공을 받고 있었다. 인구수가 천만 명이나 되고 생활수준이 영락한 걸 보면 지금까지는 잘 막아 온 모양이지만 이 세계의 저력을 잘 모르는 마리는 걱정스러웠다.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다가와 마리를 안쪽으로 안내하려 했다.
“안 가. 아담을 기다릴 거야.”
마리가 움직이지 않자 군인들은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군인들은 턱관절을 벌려 똑같은 기계음을 내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담을 두고는 안 간다니까!”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정말 뭐라는 거야! 당신들 멍청이야? 그 말밖에 할 줄 몰라?”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문이나 열어! 나갈 거야!”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기이함을 느낀 마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군인들을 노려봤다.
“짜증 나게 하네, 진짜. 고물 소리만 내는 이 멍청한 군인 몇 명 가지고 놀았다고 아담이 화내지는 않겠지?”
아담을 사랑할수록 아담의 분노가 두려워진 마리는 입술을 씹으며 고민했다.
“아담이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용서할 거야……. 야! 마지막 경고야. 문 열어!”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아담이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만 반복했다. 그 말에 질린 마리는 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겨우 20년을 살았을 뿐인 예비마녀는 할 줄 아는 마법이 전공마법인 매혹술과 전공마법에 변주를 주는 보조술, 낙인술뿐이었다. 낙인술은 현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아담을 굴복시키지 못해 조건을 해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낙인술을 쓰려면 1차 과제의 대상인 아담에게 마녀의 낙인을 찍었어야 했다.
따라서 마리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법이 뭔지 하나하나 신중히 되짚어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을 사용했다.
‘매혹술.’
마리는 이 멍청한 군인들을 꼬셔서 아담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멍청해도 561-C 지구가 어디인지는 알겠지? 당장 안내해.”
오만한 마녀의 명령에 군인들은 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고유번호 A-omega,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바로 비행정을 출발시키겠습니다.”
이쯤 되니 조금 오싹해졌다. 마리는 고장 난 인형처럼 턱을 덜덜 떠는 군인들을 꺼림칙하게 바라보며 다른 마법을 사용해 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반응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매혹술에 발정을 일으키도록 보조술을 섞어 썼더니 바지춤이 부풀기 시작했다.
“왜 저래? 이 상황에 발기한 걸 보면 마법은 먹혔는데 왜 저러고 있지?”
마리가 의아해할 때였다. 바지 주름이 팽팽하게 당기도록 발기한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총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리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칠 때였다. 총구가 향한 쪽은 마리가 아니라 총을 든 군인의 머리였다.
퍼버벅! 강력한 이 세계의 무기가 강화 인간의 머리통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마리는 사이좋게 머리를 잃고 쓰러진 군인들을 시체를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뭐야……. 나 때문이야? 내가 사고 친 거야? 아담이 오면 뭐라고 하지?”
당연하게도 마리는 죽은 군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담에게 혼이 나는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보같이 스스로 머리를 쏴 죽은 군인들 때문에 비행정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비행정 주위에 몰려드는 땅의 주민들이 쭈뼛거리며 마리를 향해 다가왔다.
“꺄아아! 싫어! 가까이 오지 마!”
수포가 터져 괴상하게 일그러진 땅의 주민을 본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철컥! 죽은 군인들의 시체에서 떠오른 총이 허공으로 떠올라 땅의 주민을 죽였다. 목소리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주민의 몸뚱이에서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뭐, 뭐야. 나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나……?”
마녀라고 해도 배우지도 않은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마리는 얼떨떨해했다. 마리는 한참 고민하고 나서야 백화점에서 아담이 한번 보여 줬던 능력이라는 걸 떠올렸다.
“얘들은 아담을 지키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땅의 주민이 또 다시 마리에게 접근했다.
“우리들의…….”
“꺄아아아!”
“이야기…….”
“꺄아! 꺄아아아!”
“들어…….”
“꺄아아아!”
마리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그녀의 주위로 둥둥 떠오른 총기가 총성을 터트렸으나 땅의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문제는 마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말 걸지 마! 저리 꺼지라고!”
비릿한 피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마리가 소리쳤다. 열 개가 넘는 총기가 마리를 둘러싸고 총알을 마구 난사했다. 귀청이 터지도록 커다란 총성이 멈춘 건 근처에 있던 땅의 주민을 모두 몰살하고 난 뒤였다.
“아, 정말, 이게 뭐야…….”
마리는 둥글게 퍼진 핏물에 젖은 신발을 탈탈 털며 울상을 지었다.
“마리!”
사건이 일단락되고 5분 정도 지나서야 아담이 돌아왔다. 숨을 조금 헐떡이며 뛰어온 아담이 피웅덩이 위에 서 있는 마리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꽉 껴안았다.
“아, 숨, 숨!”
마리는 아담의 튼실한 팔뚝을 퍽퍽 때리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아담은 깜짝 놀라 바로 팔 힘을 풀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이 시체들은 다 뭐고?”
“내, 내가 한 거 아니에요!”
마리는 일단 딱 잡아떼며 발뺌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마리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소리쳤다.
“난 모르는 일이라고요! 자기들끼리 갑자기 쏴 죽는데 나도 정말 놀랐다고요!”
마리의 말에 아담이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마리를 추궁했다.
“자살했어요?”
“네! 그렇다니까요! 난 아무 잘못도 없어요!”
마리는 예쁜 두 눈을 크게 뜨고 이 눈이 어디 거짓말을 하는 눈빛이냐며 진심을 호소했다. 자백제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까먹은 눈치였다.
상황을 단숨에 이해한 아담이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마리. 내가 없을 때 다른 새끼 좆 세웠어요?”
“뭐요?”
“이 새끼들 발기시켰냐고요.”
“엥? 그, 그걸 어떻게 알았, 아니! 내가 죽인 거 아니라니까요!”
마리는 억울해하며 발을 쿵쿵 굴렸다. 어금니를 꽉 깨문 아담이 짙게 미소 지었다. 그늘진 미소를 보고 찔끔한 마리가 아담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아, 아끼던 사람들이에요? 근데, 내가 진짜 안 죽였어요……. 난 아무 짓도, 안 한 건 아니지만…….”
마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거짓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요. 이 사람들 목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애초에 그러라고 붙여 둔 거였고.”
마리를 보호해라. 마리에게 발기하면 자살해라.
아담이 군인들에게 내린 명령은 이 두 가지였다.
“내가 화난 부분은 마리가 나 없을 때 다른 남자에게 매혹술을 썼다는 부분이죠. 왜 그랬어요? 나 하나로는 부족했나요? 나보다 더 예뻤어요? 얼굴이 마음에 든 거예요? 저게 마리의 취향이에요?”
아담의 눈치를 살피던 마리는 그의 반응에 눈을 크게 떴다. 귀엽고 청순한 미인의 얼굴이 활짝 피어오르는 꽃처럼 밝아졌다.
“설마 질투해요?”
뭘 잘했다고 해맑게 헤헤 웃는지 열이 확 받았다. 아담은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마리.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귀엽긴 한데 저런 급 떨어지는 거를 어디다 가져다 대는 거예요. 아담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고요! 난 그냥 아담을 찾으러 가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심미안이 없냐는 둥, 어떻게 저런 못생긴 거에 질투를 했냐는 둥, 마리는 한참을 더 종알거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마리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마리가 아담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나 여기 계속 세워 둘 거예요? 정기 많이 써서 피곤해요. 집에 가서 씻고 잘래요.”
“집?”
“천공성에 있는 우리 집 말이에요.”
마리는 이걸 왜 못 알아듣느냐는 얼굴로 설명했다. 본인이야말로 뇌가 청순한 쪽이면서 한 번에 못 알아들었다고 아담을 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담은 그 순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아담은 얼른 가자고 채근하는 마리를 위해 곧바로 비행정을 불렀다.
*
천공성으로 돌아온 아담은 마리와 함께 몸을 씻고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말려 주고 있었다.
“잠시 나갔다 와야 돼요.”
“또 어디를요? 나도 갈래요!”
눈을 감고 두피를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는 손길을 느끼고 있던 마리가 두 눈을 뜨고 그를 돌아봤다.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닐 거예요. 이번에 사로잡은 몬스터를 심문하려고 하거든요.”
아담에게 심문 당한 전적이 있는 마리는 그의 심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았다. 그러나 이번 심문 대상은 인간이 아니었다.
“몬스터라고 하지 않았어요? 말이 안 통할 텐데요?”
“방법이 있어요.”
“나도 따라갈래요!”
“선물을 주고 갈 건데도?”
“선물이요?”
“네.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 있어요. 마리가 좋아할 만한 거예요.”
아담은 부드럽게 웃으며 마리를 데리고 안쪽 방으로 건너갔다. 아담은 방문을 열기 전에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리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뭐 얼마나 대단한 선물을 주려고 이러나며 마리는 투덜거렸지만 아담은 예쁘게 웃을 뿐이었다.
고작 아름답게 세공된 보석 따위를 상상하던 마리의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아담의 두 손은 각각 마리의 어깨와 눈가를 만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체온이었다.
“봐요.”
아담이 마리의 눈을 가렸던 손을 치우며 웃었다. 아니다. 아담은 뒤에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웃고 있는 아담이 둘이나 더 있었다. 아담이 하나도 둘도 아니고 셋이다!
“아, 아담? 아담? 아담?”
마리가 똑같이 생긴 세 남자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다가 눈을 벅벅 비볐다. 환상이 아니었다. 아담이 셋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마리가 양 뺨을 발갛게 붉히며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맑은 자색의 눈동자가 별빛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마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아담과 완벽히 닮은 그것들을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 보았다. 목덜미에 ‘Code No. AR1’, ‘, ‘Code No. AR2’라고 쓰인 문신만 없다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담과 똑같았다.
“뭐지? 아담, 분신 마법 쓸 줄 알아요?”
“하하. 이건 마법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예요. 나 없는 동안 재미있게 놀고 있으라고 깜짝 선물로 만들어 놓은 마리 전용 장난감이죠.”
안드로이드가 어떤 것인지 마리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마리는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궁금해하기보다는 아담처럼 아름다운 장난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했다.
“둘 다 내 거예요?”
“그럼요. 마리가 원하는 만큼 가지고 놀아도 돼요.”
아담이 눈짓하자 그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AR1과 AR2가 책상 위에 검은색 상자를 올려 안을 열어 주었다.
상자 안에는 예쁜 걸 좋아하는 마리의 취향에 맞추어 제작된 성인 용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로터, 전동 기구, 딜도, 밧줄, 채찍, 패들, 수갑,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액체까지……. 없는 게 없었다. 마리는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느끼며 정신없이 그것들을 구경했다.
“사실 안드로이드보다는 섹스로이드에 가까워요. 마리 전용 자위 기구라고 생각하면 쉽겠네요. 장난감이긴 해도 성능은 꽤 괜찮을 거예요. 뭐부터 하고 싶어요?”
아담이 마리의 어깨를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물었다. 마리는 고민하다가 울룩불룩한 쇠막대기를 꺼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예요?”
“요도에 삽관하면 돼요. 마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정할 수 없을 거예요.”
끝에 철제 고리가 달려있어 장치를 풀지 않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풀 수 없게 만들어진 기구였다. 바로 옆에 초심자에게 적당한 얇고 매끈한 카테터도 있는데 처음부터 저런 걸 고른 마리는 흥분으로 얼굴이 벌게져서 AR1에게 명령했다.
“옷 벗고 바르게 서, 아담.”
안드로이드라고 제대로 된 명칭을 알려 줬고 목덜미에 둘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구분코드도 써 놨는데 진짜를 옆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기계 따위를 ‘아담’이라고 부르는 만행에 아담의 미소가 깊어졌다. AR1은 아담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반짝거리는 머리칼과 보석처럼 푸른 홍채는 물론이고 조각 같은 몸과 거대한 성기까지 완벽히 아담과 똑같이 구현되어 있었다.
마리는 달뜬 숨을 내뱉으며 AR1의 성기를 붙잡아 기둥을 흔들었다. AR1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바르게 서 무방비하게 몸을 내맡겼다. 노예보다 더 노예 같았다. 진짜 아담과 마찬가지로 물이 흥건한 자지가 선액을 줄줄 흘리며 젖었다. 마리는 더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선액을 질질 싸는 AR1의 요도에 카테터 끝을 밀어 넣었다.
“크읏, 윽……!”
“세상에! 목소리도 완전 똑같아!”
마리는 기뻐하며 손에 힘을 더했다. 차갑고 두꺼운 막대가 한 번도 뭔가를 넣어본 적 없는 작은 구멍을 무자비하게 비틀어 벌렸다. 실에 꿴 구슬처럼 울룩불룩한 막대가 요도벽을 자극했다. 뒷짐을 쥐고 선 강건한 신체가 부들부들 떨었다. 반사적으로 마리의 손을 잡아 뜯고 싶은 걸 참는다는 것처럼 꽉 쥔 주먹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리는 조심성 없이 AR1을 다루었다. 끝만 조금 삽입해 넣었다가 빼는 것에도 복부를 크게 들썩이며 거친 숨을 내뱉는데 망설임 없이 카테터를 끝까지 밀어 넣어 버렸다.
“……큿!”
마리는 퍼렇게 핏줄이 선 새하얀 목덜미와 눈물로 혼탁하게 젖은 푸른 눈동자를 황홀히 바라보며 요도벽을 푹푹 쑤셨다.
땀 대신 피를 흘리며 한 번에 천리를 간다는 한혈마의 뒷다리 근육처럼 두꺼운 허벅지에 힘이 꽉 들어갔다. 동그란 카테터 끝이 요도구를 틀어막았는데도 얼마나 기세가 좋은지 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안드로이드는 뻣뻣이 서서 마리가 손가락을 한번 까딱일 때마다 치부를 눌린 것처럼 움찔움찔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 얼굴을 한 안드로이드의 추태를 서늘히 바라보던 아담이 안드로이드를 괴롭히는데 열중한 마리의 경동맥을 두 손가락으로 짚었다. 따끔한 전류가 흐르자 마리의 눈동자가 점멸하며 흐릿해졌다. 마리는 AR1을 가지고 놀던 걸 관두고 아담을 끌어안았다.
“마음에 들어요?”
“너무 기뻐요. 최고예요!”
“나 하나로 부족하다면 언제든 말해요. 이런 장난감은 얼마든지 만들어 줄 테니까 내 허락 없이 다른 새끼 자지 먹으려고 하지 말고요.”
그는 세뇌하듯 귓가에 붙어 속삭였다. 마리는 황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말 잘 들을게요, 아담…….”
“나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놀아요. 마리가 원하는 건 다 해도 돼요. 그런데…… 마리는 날 험하게 다루진 않잖아요. 그렇죠?”
“아껴 줄게요……. 예뻐해 줄 거예요.”
“착한 마녀네요.”
아담은 마리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 준 다음 AR2를 손짓으로 불러 마리에게 붙여 줬다. AR2는 무릎을 꿇고 앉아 마리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담은 AR2에게 음부를 빨리고 있는 마리의 가운을 벗기고 젖꼭지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카테터 끝까지 채워야죠. 금속 고리로 귀두에 씌워 고정하면 돼요. 네, 잘하네요.”
“흐, 흐아, 이, 이렇게요, 응…… 아담……?”
아담의 설명을 따라 마리는 AR1의 성기에 고리를 채웠다. 차가운 금속 고리가 발기한 귀두를 압박했다. AR1은 명치를 찔린 듯 헛숨을 들이켜곤 몸을 앞으로 확 기울였다. 부들부들 떨던 AR1이 마리를 잡아당겨 카테터를 씌운 성기를 음부에 비볐다.
“마리. 안드로이드가 자지로 봉사하고 싶다네요.”
“으응, 허락할게, 흐…… 어서 넣어…….”
AR1의 몸에 달라붙은 마리가 음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음부에 성기를 끼워 맞추었다.
“아, 으, 아아……!”
지독하게 큰 성기가 꾸역꾸역 아래를 쪼개어 벌리며 들어왔다. 카테터를 삽입한 탓에 더 단단하고 울퉁불퉁했다. 둥글게 마모된 철제 고리가 젖은 내벽을 할퀴며 파고들었다. 안드로이드는 마리의 허벅다리를 끌어안아 삽입을 더 깊게 하며 침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뒤를 AR2가 따라갔다.
“아, 흣, 흐앗! 앗! 앗!”
AR2의 몸 위로 마리를 엎어 놓은 AR1이 발정한 수캐처럼 거칠게 추삽질했다. AR2는 동공이 풀린 마리의 입술에 키스하며 마리의 엉덩이를 바투 잡아 벌렸다. 힘이 센 손아귀에 무참하게 벌어진 구멍은 잘 닫히지 않아 무방비했다. 기다랗고 두툼한 자지가 길이 난 내벽을 가르며 마녀의 음란한 자궁을 직격했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둔부가 푸지게 흔들리며 철썩철썩 내려치는 불알에 후려 맞았다. 마리는 애달프게 울며 벌겋게 열이 오른 음부를 흔들었다.
“금방 다녀올게요. 즐겁게 놀고 있어요.”
“다, 앙! 다녀, 흐…… 와요! 헤윽! 앗!”
동공이 풀린 마리가 아담을 쳐다봤으나 안드로이드의 허릿짓이 거세지자 더 말하지 못하고 신음만 줄줄 흘렸다. 두 안드로이드의 봉사를 받는 보랏빛 눈동자가 끔찍하게 달콤한 환락으로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