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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녀와 미인 (1/8)

1장 마녀와 미인

성년일 자정. 마리의 침실로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마녀능력검정시험 실기를 담당하게 된 페어리펫 데보라라고 합니다. 매혹술 전공의 애기마녀, 마리고로리 셰바 제흐노바라 본인 맞으십니까?”

“그래. 그런데 난 이제 20살이야. 어엿한 정식마녀라고.”

“마리고로리 셰바…….”

“그냥 마리라고 해.”

“예, 마리. 정식마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하셔야 합니다.”

애기마녀는 예비마녀라고도 불리는데,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정식마녀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 마녀를 뜻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마리는 아직 정식마녀가 아니었다.

넌 아직 애송이라는 페어리펫의 비웃음에 마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화를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애송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마리는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시험을 치를 차원이나 안내해 줘.”

“따로 원하시는 조건을 넣어 검색하시겠습니까?”

“인간이 좋아. 인간이 사는 차원 중에서도 미남이 많은 차원으로. 차원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를 1차 과제로 삼을 테니 같이 보여 줘.”

차원 제일의 미남을 첫 번째 과제로 삼는 마녀는 흔했다.

그러나 애기마녀 시절부터 페어리펫이나 몬스터 같은 이종족과 교미하는 동기들과 달리 마리는 취향이 확고했다. 그녀는 인간 애호가였다.

이종족에 비해 인간의 정기가 훨씬 맛있는 편이라, 마리 같은 매혹술 전공 마녀가 인간 애호가인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마리는 그중에서도 눈썰미가 유난히 까다로운 미남 애호가였다. 그것이 매혹술 전공 주제에 아직까지 동정녀인 이유였다.

“예, 마리.”

페어리펫의 손짓에 여러 개의 차원이 반투명한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본인은 애송이임을 열렬히 부정하고 있으나 이제 겨우 성년이 된 어린 마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홀로그램을 꼼꼼히 살폈다.

눈에 띄는 차원을 기억해 두며 20개 남짓한 차원을 다 살펴봤으나 처음 보았던 차원만큼 강렬한 곳은 없었다.

「차원 No. G946729

차원명: 브쉬

인구수: 10,156,352명

차원제일미남: 아담A-zero

특징: ‘멸망’ 이후, 과학이 발달한 세계」

“인구수가 천만 명이나 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초보마녀가 침투할 수 있는 차원은 멸망으로 차원력이 바닥나 차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야 했다. 시험을 치르려면 지성체가 어느 정도 살아있어야 해서 멸망 직전의 차원이 대부분이었다.

브쉬는 인류의 단합이 잘 되었거나 소위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빛나는 재능의 기라성을 보유한 차원인 것이 분명했다.

브쉬 특유의 명명법인지 아담A-zero라는 이름도 독특했다. 아담A-zero는 인간이 맞나 의아할 정도로 완벽하게 조형되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과 보석처럼 빛나는 새파란 눈동자는 신이 가장 귀애하는 첫 번째 천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군신처럼 단단히 조각된 몸매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색정적이었다. 마리는 아담A-zero의 홀로그램 앞에 철썩 달라붙어 침을 질질 흘렸다. 마녀는 탐욕에 눈이 멀어 애가 닳을 지경이었다.

“No. G946729는 멸망을 겪고도 천만 명이 넘는 인류를 보존한 차원입니다. 몹시 희귀한 경우죠. 매우 높은 수준의 과학력을 갖추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학…… 내가 잘 모르는 분야기는 한데…….”

이과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담A-zero, 이 눈부신 미인을 보고 이 차원을 포기할 매혹술 전공 마녀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필기 수석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분명 내 아담을 다른 마녀에게 빼앗겼을 거야!’

마녀의 시험은 모두 각기 다른 차원에서 치러졌고 1차 시험인 필기 성적이 높을수록 우선권이 있었다.

이미 아담을 제 것이라고 정의한 마리는 아담을 누구에게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쟤는 꼭 내 노예로 삼아야지. 마계로 끌고 와 성노예로 쓸 거야.”

아침이면 성기를 애무하여 깨우는 봉사를 시키고, 밤이면 밤 시중을 들게 할 것이다. 군신 같은 저 몸에 온갖 음탕한 짓을 다 시키겠다는 사악한 생각을 하며 마리는 눈을 빛냈다.

“No. G946729으로 갈게. 아담A-zero를 첫 번째 과제로 삼겠어.”

“실기시험의 과제는 연계로 치러집니다. 1차 과제를 통과하지 못하면 2차와 3차 과제를 치르실 수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하여 신중히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흥! 얼굴만 보고 뭘 어떻게 알아? 잘생긴 게 최고지. 아담A-zero 옆으로 바로 보내 줘!”

“예, 마리. 예비마녀 ‘마리고로리 셰바 제흐노바라’의 1차 과제 ‘첫 번째 노예’의 대상으로 차원 브쉬의 인간 ‘아담 A-zero’가 등록되었습니다. 시험 기간은 99일입니다. 실기가 시작되면 1차 과제의 핵심 준비물인 ‘낙인술’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입력됩니다. 단, 1차 과제의 대상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건을 충족하셔야 완전히 해금됩니다. ‘낙인술’을 사용하여 ‘마녀의 낙인’을 대상의 몸에 직접 새기는 것으로 1차 과제는 통과됩니다. 1차 과제를 통과할 시 보상으로 2차 과제의 핵심 준비물인 ‘마녀구슬’이 지급되며 2차 과제인 ‘마녀구슬 성장’은…….”

마리는 이미 다 아는 얘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얼른 아담A-zero를 실제로 보고 싶을 뿐이었다.

“현 시각 이후 과제 대상 변경은 불가합니다. 시험 실패 시 마녀의 힘을 잃고 인간으로 강등당하며 그 차원 안에 갇히게 됩니다. 모쪼록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르시기를 바랍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마리가 건성으로 듣든 말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낸 페어리펫은 차원문을 열어 주며 속삭였다.

*

아담A-zero는 천공성에서 내려와 시료를 채취하고 있었다. 근래 늪지대의 영역이 넓어져 오염도를 다시 확인해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인간을 보내도 되지만 아담A-zero는 이런 일은 꼭 직접 확인하는 편이었다.

그가 시료채취를 막 끝냈을 때 차원문이 열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려고 했다.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차원문을 넘어 나타난 것은 작고 가냘픈 여자 한 명이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여자는 곧 그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햇빛을 따라 투명하게 반짝이는 여자의 얼굴을 본 아담은 자신도 모르게 경고음을 껐다.

‘매, 매혹술!’

아담A-zero을 발견한 마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매혹술을 거는 것이었다. 멸망을 겪은 차원의 인간이 예민하고 포악하다는 건 마녀들의 상식이었다. 정기를 빼앗지는 못했으니 노예로 삼을 수는 없지만 마리의 매혹술은 매혹술 전공 마녀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게다가 마리의 성년 선물은 초기 마력을 10배 올려 주는 귀물이었다. 마녀능력검정시험은 마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험이라 마리는 망설임 없이 그 귀물을 사용하고 이곳으로 왔다.

원래도 상위권인데 초기 마력 10배 버프까지 받은 마리는 숙련된 성인마녀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녀들의 왕인 위치퀸에 버금가는 힘이었다. 그러니까 마리의 매혹술이 실패할 일은 결코 없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윽! 마력이!’

순식간에 20년간 저장한 마력의 10배치가 빨려 들어 사라졌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매혹술 100번은 걸 수 있는 양이었는데, 아담A-zero는 1회만에 마리의 모든 마력을 빼앗았다. 텅 빈 마력을 확인한 마리는 기가 질렸다.

‘인간 맞아……? 그만! 제발, 그만……!’

말도 안 되는 일에 공포를 느낀 초보마녀는 마력을 끊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한번 시작된 마법은 끝을 향해 내달렸다. 마력 다음으로는 마녀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기가 쭉쭉 빨렸다.

마리는 이러다 딱 죽겠다 싶을 정도까지 정기를 빨리고 나서야 매혹술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온몸에 힘이 빠진 마리는 식은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주저앉았다. 매혹술 전공 마녀답게 곱고 아름다운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괜찮아요?”

그는 강한 경계심마저 벗어던지고 마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마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미인의 얼굴은 완전히 무방비했다.

매혹술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죽을 뻔했던 건 금방 잊은 마리가 속으로 사악하게 웃었다. 이 정도로 공이 들어갔으니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이 차원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차원의 왕이나 그에 준하는 자일 게 분명했다.

‘얘만 노예로 삼으면 시험은 쉽겠어.’

마리는 고생시킨 만큼 대가는 톡톡히 받아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가, 아담A-zero의 얼굴을 보고 너무 험하게는 다루지 말아야겠다고 정정했다.

“잠깐, 어, 어지러워서…… 조금, 도와줄래요?”

마리는 숨을 헐떡이며 아담A-zero의 손을 붙잡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아담A-zero는 팔로 마리의 허리를 감싸 일으켜 세웠다. 잠깐의 움직임에 가슴께의 단추가 뜯어질 듯 팽팽해졌다. 육감적인 가슴을 눈으로 핥으며 마리는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문질렀다.

“으으…….”

마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담A-zero를 올려다봤다. 위기에 빠진 연약한 인간 여자 연기는 완벽했다. 사실, 순 연기라기엔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기 시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은 매혹술 1회에 모두 다 써 버렸다. 앞으로는 정기를 얻어 써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텅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법 하나 쓸 줄 모르는 인간이 된 기분에 위기감이 들었지만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 저…….”

이 차원의 권력자일 남자는 작은 여자 하나에 쩔쩔매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마리의 어깨 부근을 어정쩡하게 맴도는 손이 가엾게 떨렸다. 숙맥 같은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마리는 당장 이 남자를 눕혀 놓고 범하고 싶어 눈이 돌 지경이었다.

“마리. 마리라고 불러 주세요.”

“마리. 저는 아담입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담.”

마리는 당장 자신을 안아 들고 쾌적한 침실로 안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걸 참으며 다리에 힘을 줬다. 아담을 완벽한 노예로 만들려면 정기를 더 모아야 했다.

“마리. 저는 당신이 차원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곳의 관리자로서 묵과하고 지나갈 수는 없어요. 실례지만 마리 씨는 몬스터인가요?”

“아니요!”

얘가 무슨 말이람. 위대한 마녀를 조잡한 몬스터 따위로 착각하다니! 아무리 어여쁜 인간이라도 이런 모욕은 참…… 을 수 있지. 저 정도로 예쁘면.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헤벌쭉 입을 벌렸다가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오해했다면 미안해요. 지금까지는 차원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가 몬스터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그럼 다른 차원의 인간이신가요?”

“맞아요.”

아담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그는 거짓말하는 사람 특유의 떨림을 마리에게서 포착했다. 마리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담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내가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마리에게는 인식칩이 없으니까요.”

“인식칩이요?”

“예. 저희 차원의 인간들은 모두 고유번호와 인식칩을 가지고 있어요. 피아 구분에 유용하게 쓰이지요.”

아담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천공성은 등록된 사람이 아니면 들여보내지 않아요.”

하늘에는 새하얀 성이 떠올라 있었다. 태양을 다 가릴 만큼 거대했고 성 주위로는 12개의 광원이 궤도를 따라 회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마법에 마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위치퀸도 저런 마법은 부릴 수 없었다. 하물며 이 차원은 이상할 정도로 마력이 옅어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력이라는 것으로 저런 성을 만들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떤 원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기서 사는 건가요?”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는 그들을 땅의 주민이라고 부르죠.”

마리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새까맣게 죽어 부글부글 끓는 늪지대와 말라비틀어진 나무만 눈에 띌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럽고 지저분해서 이런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녀는 새하얀 천공성을 탐욕스레 바라보며 아담의 손을 붙잡았다.

“저는…… 저희 세계의 차원문에 우연히 휘말렸어요. 어떻게 집에 돌아가야 하는지도 몰라요. 제가 의지할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도와주세요, 아담…….”

마리는 울먹이며 호소했다. 매혹술에 걸린 아담은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

아담은 마리를 데리고 비행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행정 가까이에는 땅의 주민들이 몰려 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땅의 주민들은 비행정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땅의 주민은 끔찍한 전염병을 앓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돋아난 수포들은 피부뿐만 아니라 안구나 입 안까지 번져 무척이나 흉측하고 징그러웠다. 그 꼴을 본 마리는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간신히 참아 냈다. 아무리 시험이래도 못생긴 놈들의 정기는 먹고 싶지 않았다.

반면 비행정을 지키는 천공성의 군인들은 다들 반반했다. 눈에 띄는 미인인 아담의 옆에 서면 시든 꽃처럼 미모가 죽어 버렸지만 지금처럼 배가 고플 때는 참고 먹을 정도는 되었다.

슬슬 허기가 져 괴로웠다. 당장 이 더럽고 지저분한 공간을 떠나 깨끗이 씻은 뒤 아담의 몸을 구석구석 맛보고 싶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인식칩이 확인되지 않아.”

“땅의 주민, 구인류라는 소리야?”

“구인류도 인식칩은 있어, 멍청아. 저 여자는 인식칩 자체가 없는 거라고.”

마리를 본 군인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다란 장총으로 마리를 겨누었다. 당장이라도 총을 쏠 것 같은 위협적인 태도에 마리는 긴장하여 아담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아담은 부드러운 얼굴로 마리의 손을 붙잡은 뒤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다 그런 걸 가져다 대는 거야. 당장 총 치워.”

끼릭. 군인들의 몸에서 쇳덩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평범한 인간들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던 군인들의 턱관절이 기계처럼 닥닥 부딪혔다.

“고유번호 A-zero의 명령을 확인합니다. 군법 1조 1항에 의거하여 아담 총사령관님의 명령을 그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십여 명의 군인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뚝뚝 끊기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너무나도 기괴해, 마리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단체로 세뇌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열어.”

아담의 명령에 군인들은 그동안의 절차를 따르지 않고 비행정의 문을 열었다. 마리는 아담을 따라 비행정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비행정은 중앙에 길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 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군인들은 모두 왼쪽으로 사라졌지만 아담은 마리를 데리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사방이 차가운 쇳덩이로 막힌 공간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구석에는 수술대 같은 철제 침대가 놓여 있었다. 삭막하고 차가운 분위기에 마리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벗어요.”

아담이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대며 다정하게 말했다.

“네?”

그의 여상한 태도에 마리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헷갈렸다.

“벗으라고요. 병이 있는 사람을 천공성에 들여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서 검사를 해 봐야겠어요. 아, 걱정하지 말아요. 병이 있다고 해도 내가 치료해 줄게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마리.”

마리는 수포로 가득하던 땅의 주민들을 떠올렸다.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잘 되었다. 포근한 침대 쪽이 더 취향이었으나 지금은 먹는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얼른 아담을 범해 그의 정기를 취할 생각으로 마리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중간중간 가녀리고 부끄러운 인간처럼 몸을 흠칫 떨고 얼굴을 붉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리는 마녀다운,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가슴과 골반은 컸고 허리는 잘록했다. 피부는 새하얬고 유두와 음부의 색도 사랑스러웠다. 머리카락과 눈썹만 제외하고는 털 하나 없는 매끄러운 몸이 수줍은 척 바르르 떨었다.

목적을 잊고 순결한 몸을 감상하던 아담이 뺨을 붉히며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검사 시작할게요.”

가까이 다가온 아담은 마리의 손가락 사이와 발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마리의 뺨을 쥐고 그녀의 눈과 귀를 살펴봤다.

“입 벌려요.”

마리는 혀를 내밀고 입술을 벌렸다. 붉은 점막을 꼼꼼히 훑어보는 눈동자가 퍼렇게 튀었다. 아담은 키스를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앞은 깨끗하네요. 뒤로 돌아봐요.”

키스만 해도 어느 정도 정기를 받을 수 있는데 아담의 태도는 담백했다. 마리는 정기가 부족해 눈앞이 어질어질했지만 벽을 짚고 몸을 돌렸다. 뜨거운 손이 등허리를 가린 기다란 머리카락을 앞으로 걷어 냈다.

“겉은 다 깨끗해요.”

“제 생각에는 여기도 검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안쪽에도 점막이 있으니까요…….”

마리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아담을 올려다보며 그의 손을 붙잡아 허벅지 안쪽으로 이끌었다. 붉게 갈라진 안쪽은 애액이 새어 나와 구멍을 번들번들 적시고 있었다.

“여기가 왜 이렇게 젖어 있죠?”

“몰라요……. 아담이 확인해 봐 주세요. 으응, 여기도 깨끗하다는 걸 증명해 주세요.”

마리는 수줍은 척 속삭이며 아담의 손끝이 음부를 스칠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녀의 반응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녀의 음부는 인간의 클리토리스만큼이나 예민했다. 어디를 찔러 주든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축복받은 몸이었다. 머릿속은 음탕해도 몸만큼은 아직 순결한 마녀는 작은 쾌감에도 눈앞이 몽롱해졌다.

아담은 마리의 허리를 꽉 눌러 상체를 엎드리게 했다. 벽을 짚고 선 마리의 다리가 벌어지고 엉덩이가 뒤로 쭉 빠졌다.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한 마녀의 음부는 기뻐하며 애액을 줄줄 흘렸다.

“아, 아담…… 으응, 죄송해요. 제가 너무…… 아!”

“보지 검사할게요. 아프면 말해요.”

아담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라텍스 장갑을 착용했다. 뿌직! 냉장고에서 갓 꺼낸 투명한 젤이 구멍으로 뚝뚝 떨어졌다.

“히익……!”

뜨거운 음부로 차가운 눈송이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리는 벌건 구멍을 뻐끔거리며 자극에 부르르 떨었다. 얇은 장갑을 낀 뜨거운 손가락이 차가운 젤을 구멍 주위에 뭉개어 짓이겼다. 두꺼운 손가락은 내부를 벌리며 질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음란한 마녀의 내벽이 미칠 듯 떨리며 아담의 손가락을 콱콱 물었다.

“이런. 불편한가요? 오물거리고 있어요.”

“아, 아담, 부디…….”

“안이 무척 좁아요. 여길 만지는 건 제가 처음이에요?”

“흐, 네에…… 아담이 처음이에요.”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갈증과 식욕이 돋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마리는 아담을 덮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꾹꾹 조였다. 좀 더 거칠고 빠르게 쑤셔 줬으면 했지만 아담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상냥하게 해 줄게요. 무서워하지 말아요. 단지 보지 검사일 뿐이니까요.”

안을 부드럽게 쑤컥거리는 손짓이 얼마나 느린지 입안이 바짝바짝 메말랐다. 마리는 애끓는 성감에 가여울 정도로 몸서리쳤다.

“아담, 안쪽이, 뜨거워요. 가려워요…….”

“수포는 없는데 이상하네요. 좀 더 들여다봐야겠어요.”

마녀의 청을 다르게 이해한 아담이 얇고 투명한 유리 막대기를 질구에 삽입했다. 애액에 젖은 차갑고 막대기는 얇았지만 매우 길어서 순식간에 자궁경부에 다다랐다.

“흐, 아! 으……!”

소중한 순결을 찔린 마녀의 입술이 벌벌 떨렸다.

“쉬이. 다 끝났어요. 괜찮아요.”

아담은 마리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어르며 막대기를 빙글빙글 돌렸다. 세포 하나하나 음란하기 그지없는 내벽이 단단한 막대에 찔려 출렁거렸다. 마녀가 쾌감을 잘 느낀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마리는 처음 겪는 감각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도망치려 움찔거리는 엉덩이를 꽉 움켜쥔 아담이 혀를 차며 막대를 위쪽으로 쿡쿡 찔렀다.

“아으, 아담아아……!”

“조금만 참으라니까요.”

끈질길 정도로 안을 살펴본 아담이 막대를 톡 때리며 칭찬했다.

“보지도 깨끗하네요. 수고했어요, 마리.”

“으, 앙! 고마워, 흐아!”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의 안에서 막대가 쑥 빠졌다. 마리는 안타깝게 울며 안을 조였으나 빠져나가는 막대를 붙잡지는 못했다. 끝이 둥그런 막대를 따라 딸려 나간 질벽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오염물질이 묻었을지도 모르니 깨끗이 씻어야 해요. 도와줄게요.”

아담은 비틀거리는 마리를 붙잡아 세우고 플라스크를 하나 꺼내 뒤집었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푸른 액체가 물컹거리는 고체로 뭉치며 부피가 순식간에 커졌다. 깨끗한 호수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몸체를 가진 그것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마리의 몸을 감쌌다.

“아, 아담?”

마리는 마계의 애완 촉수 같은 생물체에 당황하며 그를 불렀으나 아담은 한 발짝 물러나 마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담이 벽의 버튼을 누르자 위에서 깨끗한 물이 쏟아졌다. 물컹한 촉수는 흠뻑 젖은 마리의 몸을 문지르며 뽀얗고 향기로운 거품을 터트렸다.

“우리 세계의 비누예요.”

“이, 이게 비누라고, 으응! 자, 잠깐……!”

올록볼록 돋아난 촉수의 빨판이 젖꼭지와 음부를 꼼꼼히 문질렀다. 예민한 살갗을 문지르는 돌기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뾰족하게 돋아난 돌기가 기다래지더니 젖꼭지와 음핵을 칭칭 감아 당겼다. 경험 없는 마녀는 혼비백산했다.

“으응, 아! 아담, 아으응…… 아담아아!”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려는 습성이 있거든요. 나쁘지 않죠?”

위에서 쏟아지는 물 때문에 눈앞이 뿌옜다. 자극을 받은 마녀의 음부가 움찔거렸다. 촉수는 마치 킁킁거리는 개처럼 둥근 머리를 질구에 처박고 돌기 하나를 내밀어 질구를 스윽 핥았다. 계속 이렇게 뒀다가는 삽입이라도 할 것 같았다. 첫 경험을 정기도 없는 생명체와 할 수는 없었다. 눈앞에 아리따운 미인을 두고서는 더더욱 말이다!

“아담, 읏, 싫어…… 싫어요, 아담!”

마리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거짓말은 나빠요. 즐기고 있잖아요. 벌름거리는 구멍이 여기서도 보이는걸요.”

“거짓말 아니, 으응, 아! 못생긴 거…… 싫어, 아으흐! 예쁜 게 좋단 말이야!”

마리는 울음을 터트리며 절규하다시피 소리쳤다.

“뭐?”

예상치 못한 말에 아담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리의 진심 어린 거부를 읽은 촉수도 멈칫했다. 겨우 진정한 마리가 또렷한 눈으로 아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담. 아담이 해 줘요. 난 아담이 좋아요.”

진의를 가늠하며 마리를 살펴보던 아담이 소년처럼 산뜻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마리는 정말 재미있네요.”

그는 촉수를 밀어내고 흠뻑 젖은 마리의 몸에 수건을 둘러 주었다.

“수작인 걸 아는데 넘어가고 싶어요.”

“수, 수작이라니요?”

“인간이라는 거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 아니에요!”

마리는 즉답했으나 아담의 미소는 더 깊어졌다. 그는 마리의 거짓말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담에게 생체반응을 읽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르는 마리는 혼란스러웠다.

“악!”

목덜미가 따끔했다. 마리의 몸에 주사액을 넣은 텅 빈 주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 낸 강화 인간도 바로 곯아떨어지는 수면제를 맞고도 마리는 조금 졸려 할 뿐이었다. 아담은 다른 주사기를 하나 더 꺼냈다.

“괜찮아요. 마리는 정체 모를 침입자지만 나는 마리가 마음에 드니까요. 상냥하게 심문해 줄게요.”

그는 다정하게 속삭이며 새하얀 목덜미에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았다.

*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마리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겨우 가누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썼다.

몸은 뽀송뽀송 말라 있었고 얇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대 같은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눕혀져 있어 계속 한기가 올라왔다.

“이름.”

“마리고로리 셰바 제흐노바라.”

정신은 반쯤 나간 채였는데 부드러운 목소리에 몸이 바로 반응했다. 입과 혀가 몸에서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이는?”

“20살.”

“애기네.”

아담이 피식 웃으며 정신을 못 차리는 마리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소속을 말해 봐요.”

“차원 넘버 B09212 마계 라헬의 예비마녀, 마녀아카데미 매혹술 전공부, 인간애호 동아리 소속…….”

“마녀. 정확히 어떤 의미죠? 인간과 다른 게 뭐예요?”

“하등한 인간과 달리 고귀하고 우아하다. 번뜩이는 지성을 갖추고 매혹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로 생명체의 정기를 빼앗을 수 있다. 정기는 마녀의 생명력이 되어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하며, 마력으로 치환하여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마녀는 반짝이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것을 몹시 좋아하니 나를 숭배하려면 그것들을 바치도록…….”

“여기 온 목적은?”

중얼거리던 마리는 그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덩하던 보라색 눈동자가 햇살 아래 둔 보석처럼 빛났다.

“마녀능력검정시험 실기를 치르기 위해서, 아담A-zero를 내 성노예로 만들어 마녀성에 데려가기 위해서. 매일 내 몸시중을 드는 첫 번째 노예라는 영광을…….”

“노예? 날 그렇게 험하게 다루려고 했단 말이에요?”

이성은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마리의 입술은 자동으로 벌어졌다.

“내 전공 마법인 매혹술로 널 내 노예로 만들 거다. 넌 지금 1차 매혹술이 적용된 상태로 일정 이상 너의 정기를 흡수하면 완벽한 노예로 각인시킬 수 있다. 네가 내 노예가 되면, 하악, 매일 너를 범하고, 하악,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라 노예야, 싫다고 울며 빌어도 소용없어, 쾌락에 몸부림치는 몸으로 만들, 하악…….”

아담이 완벽한 노예가 되면 뭐부터 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었다. 몽실몽실 떠오르는 난잡한 상상에 마리의 입술은 정보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아담의 눈동자가 묘한 이채를 띠며 가라앉았다. 마리는 몰랐지만 아담은 ‘자유’에 상당히 집착하는 인간이었다. 노예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계속 마리를 추궁했다. 마리가 정확히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는지, 정기를 어떻게 얻어 어떻게 쓰려는 건지, 마력검정시험이라는 건 어떤 것인지, 시험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같은 중요한 부분과 마리의 사사로운 취미와 취향까지도 모두 까발려졌다.

“아담, 내가 없으면 사정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주겠어……. 모름지기 애완 노예라면 자지로 싸고 싶다고 울면서 앙탈을 부려야, 하악, 하악!”

계속되는 노예 타령에 아담은 자백제에 취해 정신없이 웅얼거리는 마리의 뺨을 찰싹 때렸다.

“아!”

“마리는 음탕하고 못된 마녀네요. 혼이 좀 나야겠어요.”

“인간 주제에 감히!”

아프지는 않았으나 일부러 모욕을 준 행위에 마리는 분노했다. 훨씬 더 심한 일을 벌이려고 한 주제에 죄책감 하나 없이 뻔뻔했다. 사악하고 교활한 마녀다웠다. 따라서 아담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기로 했다. 마리를 상대하려면 그 역시 그래야 했다.

“마녀 주제에 인간에게 잡힌 게 문제죠.”

아담은 화가 나 부들부들 떠는 마리의 뺨을 토닥거리며 바퀴가 달린 서랍을 끌어당겼다. 날카로운 수술 도구를 본 마리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담은 길쭉한 메스를 들고 다가와 마리의 턱을 콱 움켜쥐었다.

“아, 아담, 잠깐! 나, 마, 마리예요!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노예 삼으려던 하등한 인간의 위협에 마리는 진심으로 겁을 먹었다. 분명 매혹술이 성공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마리는 당황스럽고 두려워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를 불러 댔다.

“사랑해요.”

아담이 달콤하게 속삭이며 새하얀 목덜미에 메스 대신 입술을 맞추었다. 마리는 촉감까지 완벽한 탐스러운 입술을 욕심 사납게 바라보았다.

“사랑하니까 이 작은 머리를 열어 뇌를 꺼내지 않는 거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두개골부터 쪼갰겠죠. 피 하나 살점 하나 아껴 가며 빠듯이 발라내서 연구소로 내돌렸을 거예요. 당신은 해부학적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존재니까요.”

“그, 그런데, 왜…….”

마리는 그가 아직 들고 있는 메스를 눈으로 흘긋거렸다. 곱게 자란 초보마녀는 바늘로 손끝을 찌르는 것조차 두려워할 만큼 겁이 많았다. 목덜미에 날붙이가 드리워진 상황이 좋을 리 없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아요. 마리도 내게 괘씸한 짓을 벌였으니 이해하죠?”

“매, 매혹술은 낯선 세계에서, 너를 내 노예로 삼으려면 어쩔 수 없었…….”

자백제에 취한 입술이 방정맞게 진실을 읊조렸다. 낯선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려던 마리는 혀를 질끈 깨물었다.

“난 당신의 노예가 됐죠. 당신이 내게 마법을 건 덕택예요.”

“아직 아니야! 완벽하지 않다고! 내 꼴을 보면 모르겠어?”

“그럼 당신이 건 마법을 풀 수도 있나요?”

“그, 그건 아, 아니, 아니, 풀 수 없어. 풀 수 있다고 해도 안 풀어! 넌 내 거야! 날 영원히 사랑해야 해…….”

닥쳐! 입 다물어!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진실을 말하는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멋대로 조종하여 노예로 삼으려 했다는데 불쾌해하지 않을 존재는 없었다. 아담의 손에 꼼짝없이 잡힌 마리는 겁을 집어먹고 부들부들 떨며 아담의 눈치를 봤다.

“그래요? 내게 그런 저주를 걸어 놓고 당신은 유유히 또 다른 남자의 좆을 탐했을 거라는 뜻이죠? 당신을 지독히 사랑하게 된 나는 바람피우는 당신에게 빌빌대며 날 버리지 말아 달라고 비참하게 애원하고?”

“아냐, 나는 아무 자지나 안 먹어. 잘생긴 남자 자지만 먹어…….”

마리의 말대꾸에 아담의 미소가 더 음산해졌다. 마리는 혀를 콱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담은 마리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다. 마리가 아담에게 원한 것은 첫 번째 성노예로 삼는 것뿐이었다. 마녀능력검정시험을 치르고도 아담을 버리지 않고 데려가겠다고 했으나 말뿐이었고 본인은 다른 남자와 색사를 나누며 여러 잘생긴 남자의 정기를 빼앗으려고 했다.

영악한 마녀의 머릿속에는 사랑이나 존중 같은 미덕은 없었다. 마리는 단지 아담에게 욕정 하며 탐욕을 부리고 있었다. 소유물 다루듯이.

반면 마리의 저주에 걸려 이 못된 마녀를 사랑하게 된 아담은 미치광이처럼 안광을 번들거렸다.

아담은 이런 일을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겁도 없이 제 마음을 조종하다니……. 마녀에게 화가 치미는데 또 볼수록 사랑스러워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담은 취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나쁘지 않아요.”

그는 겁을 잔뜩 먹은 마리의 얼굴을 소중하게 매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이 마리의 턱을 붙잡아 단단히 고정했다.

“그런데 나만 당신을 사랑하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그는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년처럼 달게 웃으며 마리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리의 심미안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눈동자가 퍼렇게 빛났다.

“너도 날 사랑해야지. 안 그래?”

그는 달콤한 목소리를 내며 마리의 목덜미를 메스로 찢었다.

“아! 아파, 아파, 아아악! 아파, 아, 안 아파……?”

살을 찢는 메스의 움직임에 마리는 질겁하고 비명을 질렀으나 고통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백제와 마취제를 섞은 물약을 주입해 놓았던 아담은 마리의 비명에 황당해했다.

“엄살은.”

피식 웃은 아담이 작은 칩이 담긴 주사를 꺼내 찢긴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차갑고 선득한 느낌은 들었으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마리는 멍한 눈으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제 목덜미 쪽을 바라봤다.

“우리 세계에는 사랑에 빠진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페닐에틸아민, 도파민, 세로토닌, 에스트로겐, 옥시토신……. 마리가 날 사랑하도록 만들 마법의 호르몬이죠. 당신은 인간이 아니지만 걱정 말아요. 나는 꽤 유능하거든요.”

그는 피를 뚝뚝 흘리는 마녀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황홀하게 웃었다.

“당신이 날 노예로 삼으려고 했어도 용서할게요. 당신도 날 용서해요.”

주우욱. 혈관을 타고 빨려 드는 주사액에 마리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가뜩이나 저 하늘 위의 고고한 신마저 홀릴 것 같은 미인의 얼굴이 더 완벽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칼과 완벽하게 조형된 이목구비가 사랑스러웠다.

텅 빈 주사기가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무슨 약물을 얼마나 넣는 건지 벌써 일곱 개째였다. 그러나 분노 대신 묘한 감정이 돋아났다. 마리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를 가지고 싶어 버둥거렸다.

“아담, 안아 줘요. 키스해 줘요, 더 가까이…… 아담, 나를 사랑해 줘요, 아담…….”

“마리, 당신은 나를 영원히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는 마리를 저주했다. 마녀의 저주만큼이나 교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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