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

도망자가 아닌데 도망자가 되어버렸다. 서경은 희뿌연 서울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집’ 그녀는 넓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없는 게 없는, 갖출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집이었다. 집안 온도는 따뜻한데 그녀의 마음은 한겨울 밖에 서 있는 것처럼 추웠다.

“추워?”

잠옷 차림으로 방에서 나오던 인서가 몸을 문지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팔 거야?”

“응.”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그녀의 것이 된 집이었다. 남편이 3년 전 이유도 없이 이혼을 요구했을 때 어이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유지가 어려워서 그래?”

“아니. 너도 알잖아. 돈은 충분해.”

그랬다. 이혼을 하면서 남편은 위자료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챙겨주었고, 결혼했을 때 집의 명의도 그녀의 이름으로 해주었다. 그의 이름이 아닌 그녀의 이름으로 했는지 지금도 궁금했다.

“나쁜 새끼.”

아무리 감정을 다스리려고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불쑥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그녀의 욕설에 인서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두 사람은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웃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그녀는 눈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서경아.”

그녀는 대답대신 인서를 얼굴을 봤다.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서가 걱정스럽게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 자식 ...”

“생각해. 잊으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인서였다.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았고 솔직하게 말했다.이혼의 상처는 쉬 아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을 하자마자 계획도 없이 공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유럽행을 결정했다.

“미안해.”

인서의 사과에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야 했어.”

서울로 돌아온 것은 인서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혼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자신이 그의 체온에 익숙해졌다는 걸 알았다. 미치는 게 별것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언니, 공부하는 것 좋아하잖아요. 거기서 공부를 하는게 어때요?’

어느 날 유럽으로 훌쩍 날아온 희애의 말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 위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잠깐이어지만 그녀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자신을 잊고 있었다. 언어와 디자인을 배웠다. 다행이 인서의 회사에 해외 파트가 있어 큰 자리는 아니었지만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래서 내가 서울 안 오려고 했던 건데.”

“아직도 널 찾아다닌다고 하던데.”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냉기로 가득 찼다.

“내가 미쳤었지. 그 어린 것이 나한테 빠졌다고 생각했으니.”

“널 정말 사랑했다는 것 알잖아.”

“사랑? 얼어 죽을 게 사랑이야.”

목숨처럼 사랑한다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고? 그런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은 자신이 바보였다.

“그때 뺨 한 대, 욕설 한마디 못하고 나온 게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변호사가 이혼 서류를 가져왔을 때 그대로 도장을 찍어버렸다.

“그때 그의 어머님 말처럼 내가 올려다 볼 나무가 아니었어.”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이는 인서를 보며 무심하게 물었다.

“커피 마실건데. 너도 줘?”

인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나가기 싫어. 주문해서 먹자.”

“너 지금 며칠 째 꼼짝 안하고 있잖아.”

“그냥 쉬고 싶어서 그래.”

서울에 오자마자 쌓였던 피로가 몰려온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벌써 일주일째 내리 자는 것과 먹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희애하고 연락했어?”

“응.”

음식 전단지를 탁자 밑에서 꺼내 그녀는 주문할 음식을 고르며 무심한 척 말했다.

“희애 부모님 기일 때문에.”

“그럼 그 사람도 왔겠다.”

못 들은 척 휴대폰을 찾아 음식을 주문했다.

“너 찾는 것 금방이겠네.”

찾는다고? 그녀는 인서의 말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가 이혼을 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난치는 건줄 알았다. 사랑한다고 했던 그였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진지한 표정을 보고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당장 필요한 옷 몇 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양가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고집대로 했던 결혼이었다. 부모님은 부모님 때로 자신들이 모시던 집안과 사돈이라니... 말도 안되는 결혼이라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결과는 이혼이었다. 미친년이 미친 짓을 하고 말았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따.

‘당신 독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이유는 물어야 하지 않나.’

‘내가 왜?’

싸늘한 그녀의 대답에 눈빛이 변했다. 정말 궁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만히 있었다. 물론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

‘어린애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부터...’

‘그만하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어린애라고 할 때였다. 그녀는 그걸 그의 약점으로 이용했다. 분노로 얼굴이 달아오른 걸 보며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너하고 나의 집안, 재산 차이 때문일수도 있지.’

조롱하는 말투에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너 왜 나하고 결혼하자고 했어.’

항상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혼하는 날까지 입 밖으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보고 있는데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랑했으니까.’

그 말에 심장이 떨려 미칠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건 억지였고 투정이었다.

‘넌 결혼도 쉽고, 이혼도 쉽구나. 있는 집이라 그런가.’

빈정거리는 걸 모르는 그가 아니었다.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불끈 틀어쥔 주먹은 핏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하고 결혼해서 얻은 것 많잖아.’

그의 말에 얼굴을 치켜들었다. 결국 그도 그녀를 돈에 환장한 여자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란 생각에 가만히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주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당연한 것 아니야. 그래서 너하고 결혼했으니까.’

독사의 독은 치명적이지만, 해독약이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자신에게는 어떤 해독약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가 자신의 행방을 찾는다는 전화를 희애를 통해 들었다.

‘오빠 만나봐요.’

‘차라리 나한테 죽으라고 그래. 죽어도 그 자식 안났나.’

그때부터 그를 피해 도망다녔다. 그가 가진 재력으로 그녀의 행방 하나 알아내는 것 쉽다는 것 알았다. 그래서 이곳저곳 미친 듯 돌아다녔다. 돈은 ... 굴레였지만, 때론 그녀에게 엄청난 힘과 자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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