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

하나

업무를 끝내고 회사 밖으로 나온 그녀는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그림자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도망칠 준비를 하는데 족쇄처럼 단단한 손이 팔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 어떻게...”

“놀랐어요?”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이 그녀에게서 나오자 그는 방긋 웃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도망 다니면 못 찾을 줄 알았어요.”

무서울 정도로 낮은 음성, 거기에 예의를 차린 정중한 목소리는 그녀를 충분히 떨리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예쁜 눈이 안 보이잖아요.”

그의 목소리, 말투에 몸 안으로 강한 전류가 파고들었다. 분명 그를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날 봐요.”

나직하지만 명령이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말에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더 이상 그와 가까워지면 자신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거라는 걸 알았다.

“피곤하다. 그만 놔줄래.”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모르는 것 같은데. 나 아프거든.”

“아프다는 말 하지말지. 난 이서경 너 때문에 심장이 새카맣게 타 버려거든.”

“까불지마라.”

“누나 같은 것 안 키운다는 것 알잖아. 특히 이서경 당신은 내 누나 아니잖아.”

발끝에서부터 뜨끈한 열기가 올라오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한마디, 한마디가 뜨거운 태양처럼 타오르게 했다.

“여자이고 연인이지.”

“재미있는데 ...”

“그만 말해. 입술 덮어 버릴 거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말로, 힘으로 그를 당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침착하게 그를 대하려고 해도 마음 뿐 쉽지 않았다.

“지금 몇 시인지 알고 있잖아요. 너무 늦게 까지 일하는 것 마음에 들지 않네.”

어느 순간 말투가 또 바뀌었다.

“네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

그에 대한 짜증 일에 대한 짜증이 그에게 그를 피해 어떻게든 숨어보려고 해는데 역시 헛된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처음봤던 중학생이 아니라 남자였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리고 그녀에게 첫 사내였다.

“내 힘을 증명하게 하지 말아요.”

“겁 줄 생각이었다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입술을 겹치더니 순식간에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발로 때려봤지만 그의 힘에 밀려 꼼짝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밀어붙였다. 호흡이 가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입술을 떼었다.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살짝 품에서 떼어 놓았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다른 놈한테 이서경 당신 안 빼겨.”

“악.”

그를 때리기 위해 올린 손을 세게 붙잡더니 그대로 끌고 갔다.

“너 뭐하는 짓이야!”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텼지만 그는 질질 끌다시피 데려갔다. 그리고 주차해 놓은 조수석 문을 열더니 짐짝처럼 그녀를 앉혔다.

“도망칠 생각 따윈 하지 말아요.”

부드러운 목소린데 이상하게 겁이 났다. 그를 사납게 노려보자 활짝 웃었다. 운전석에 앉더니 거칠게 호흡을 뱉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서경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어.”

이를 악문 채 그녀를 봤다. 자석에 이끌리듯 그의 얼굴로 보았다.

“이 자리에서 안고 싶은데... 그럼 난 짐승이 되겠지. 혀 내밀지마!”

마른 입술을 자신도 모르게 핥고 있는데 그가 크게 소리쳤다. 헐떠거리는 숨소리, 차제가 뜨거운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거칠게 셔츠의 단추를 풀더니 창문을 내렸다.

“미친겠군.”

창문을 내리더니 밖으로 숨을 뿜어냈다.

“... 윤수야...”

“그러지마. 아무말도 하지마.”

밖을 보고 있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전신을 쿡쿡 찌르는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에 몸안의 수분이 모조리 증발하는 것 같았다. 눈을, 입술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무릎위에 올려놓은 손을 세게 움켜쥔 채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숨기고 싶었던 마음과 욕망이 그로 인해 터져버렸다.

“터져버릴 것 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업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시동을 걸었다.

“최대한 결혼식은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미친 것 아니냐며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알잖아. 우린 서로의 눈으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정신차려. 미친놈한테는 약도 없으니까.”

“이서경 당신이 내 약이잖아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과 말해봤자 입만 아팠다. 거친 출발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기분 탓인지 유난히 차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요.”

조수석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그를 노려본 뒤 밖으로 나왔다. 번호키를 누르더니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에는 서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문이 열리더니 바로 현관이 보였다.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데 그가 말했다.

“들어오지 않고 뭐해요.”

머뭇거리던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자 그가 물었다.

“겁나요?”

“아니!”

강한 부정에 그는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맞닿은 채 얼마나 있었을까.

“하지마.”

그가 셔츠의 단추를 모조리 풀자 큰 소리로 외쳤다. 언젠가는 자신을 찾으러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올 줄 몰랐다. 마른 입술을 혀로 핥는데 미간을 찌푸렸다.

“... 기억나요?”

“아니. 아무것도 안나.”

“거짓말. 전부 기억하고 있잖아요.”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그를 따라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기억해요. 그 가냘픈 몸이 내 품에서 바들바들 떨었을 때, 난 당신의 향기에 취해 미치는 줄 알았거든.”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한발자국만 움직여봐요. 당장 당신을 가져버릴 거니까.”

장난이 아니다. 파동이 전혀 없는 호수처럼 그의 눈은 잠잠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마치 사냥을 기다리는 동물처럼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그대로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착하네.”

“하나도 재미없어.”

팔을 소파 양쪽으로 뻗은 걸 보고 있던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어트렸다.

“날 봐요.”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지 않자 소파에 두르고 있던 팔을 내렸다.

“계속 그렇게 있을 생각인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고개를 들었다.

“내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게 재미있어.”

무심한 듯 내뱉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순전히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게 아이였다.

“어린애는 다르구나.”

“말 조심해.”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결혼 허락 했어. 할아버지, 부모님, 그리고 이서경 당신 부모님도.”

지금 저 자식이 뭐라고 한 거야? 마치 남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말했을텐데. 꼭 이서경 하고 결혼한다고. 내 아내는 이서경 한 사람 뿐이라고.”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그가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왔다. 현실이 아니었다. 그래.. 꿈이다.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를 찾았을 때 막혔던 호흡이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이서경... 그의 최음제이며 엔돌핀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모른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그는 중학생이었다. 차에서 내리던 그의 눈앞에 그녀가 보였다. 누구냐고 묻자, 이씨의 딸이라는 말에 별 관심이 없었다.

“넌 이 상황이 재미있니.”

“아니. 처음 우리 대화 나눴던 것 기억나?”

대답이 없었다. 그때까지 그는 아주 많이 싸가지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따를 것 없었지만...

“반말하는 나더러 싸가지 없다고 했지.”

“넌 싸가지 없었어.”

“그렇게 컸으니까. 난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거든.”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그녀를 봤다.

“야, 너가 아니라, 누나라고 하라고 했지. 아주 또박또박 천천히 아이한테 글을 가르치는 것처럼.”

누구도 그에게 그녀처럼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모두 움직였고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었다.

“누나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날 봤잖아.”

“처음이었어.”

그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기분 나쁘다는 듯 일그러졌다.

“우리 지독하게 많이 싸웠어.”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표정이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던 날, 흠뻑 젖은 채 서 별채에서 빨래를 걷고 있는 그녀를 봤다. 언젠가부터 그는 그녀가 오는 걸 보기 위해 별채만 보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행사 때문에 나가고 없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그 혼자 집에 있었다. 심심했다. 무작정 본채에서 나와 그는 그녀가 있는 별채로 향했다.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생각없이 문을 연 그의 눈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누가 더 놀랐는지 모른다. 너무나 당황스러워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 봤으면 나가줄래.’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고 호들갑스럽지도 않았다. 말과는 달리, 그녀가 떨고 있는게 보였다. 뒤로 돌아선 그는 말없이 집밖으로 나왔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그를 흠뻑 적셨지만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한달 후,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하고 결혼해.”

“싫어.”

단호한 표정과 말투, 짜증날 정도로 고집스러웠다. 소파에서 일어서자 그녀가 움찔 몸을 떨었다.

“겁나나 보지.”

“아니.”

“대답이 너무 빠르잖아.”

그녀 옆으로 다가가자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걸 보며 손목을 잡아 무릎위에 앉혔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녀의 등줄기를 쓸어내리자 몸의 떨림이 그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보고 싶었다고, 내가 그리웠다고 말해.”

“싫... 읏... ”

봉긋하게 솟은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안에 잡힌 가슴을 움켜쥐었다가 놓아주자 잇새를 악문 신음소리가 들렸다.

“갖고 싶어.”

허벅지 사이로 축축한 열기가 번져나갔다. 그의 손길에 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그리웠고 밤이면 한번 맛들인 쾌감에 미칠 것 같았다. 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놀라기도 했지만 솔직히 좋았다.

“하... 하지마...”

그의 손이 허벅지 사이를 헤집고, 치마를 걷어 올리더니 젖어있는 그녀의 여성을 문질렀다.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입술 내려요.”

미칠 것 같은 그녀와 달리, 그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벌린 입술 사이로 불꽃같은 숨결이 뿜어졌다.

“빨리.”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래 ... 이 자식이 좋았다. 아니 사랑했다. 알몸을 처음 보였을 때부터, 아니 훨씬 그 전부터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의 것이듯, 그 역시 그녀의 것이었다. 입술을 혀로 핥았다. 천천히 둥글게... 으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입술이 그에 의해 막혀 버렸다.

“하악.”

자신의 영토에 들어온 것처럼 그의 혀는 집요하게 그녀를 헤집었다. 부드럽다가도 거칠게, 유영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뒤흔들었다. 단단한 목에 팔을 두르고 그를 품에 안았다. 그의 혀는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혀를 물었다가 풀어주었고 깨물었다. 사탕처럼 빨았다가 놓아주더니 입고 있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잡아 뜯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지금 당장 들어가야겠어. 터질 것 같아.”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전신을 뒤덮었다. 품에 그녀가 안겼을 때 세상을 전부 얻은 것 같았다. 처음 키스를 했을 때, 안았을 때, 그녀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을 때 그는 자신이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미치게 예뻐. 돌아버릴 정도로 흥분돼.”

침대에 내려놓더니 거칠게 소리쳤다. 뒤로 물러서더니 입고 있는 옷을 집어 던졌다. 그녀의 치마를 벗기더니 촉촉하게 젖은 여성으로 입술을 가져왔다.

“... 아...윽.”

거침없이 그녀 안을 파고 들었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뽑듯이 잡아당겼다.

“...읏... 아아아앙....”

몸이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파닥 거렸다. 몸안으로 뜨거운 혀가 침입해 왔다. 몸이 들썩거렸고 발을 버티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 그.... 그만... 윽.”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쾌감에 그녀는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몸에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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