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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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는 두통이 생긴 머리를 쥐고 침대에 일어났다. 이놈의 기차 여행이 그녀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멀미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여행 하루 정도가 되면 두통이 밀려들기 일쑤였다.

“이 기사, 약 좀 가져와 봐.”

“또 머리 아프세요?”

강선애의 고향 동생이자, 수하로 둔 옥문이 물었다. 강선애는 뒷벽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러게 상해까지 몸소 왕림하실 게 뭐가 있었어요. 그냥 가즈시케 사령관님이 경성으로 오실 때를 기다려도 되는 일이라니까. 솔직하게 사업권이랄 게 있겠어요? 사람 모집하는 일인데.”

옥문은 베개 위에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하며, 내내 의자에 앉아 졸던 이 기사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중국 땅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언니가 이렇게 며칠씩 중국으로 나다니는 걸 보면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아세요?”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재잘거릴래? 넌 어떻게 허구한 날 그놈의 잔소리를 주둥이에 달고 사니! 서방도 없고 애도 없는 것이!”

옥문의 잔소리에 강선애가 팩 신경질을 부렸다. 옥문이 입맛을 다시며 침대로 다시 비스듬히 몸을 눕혔다.

“꼭 언니는 있는 것처럼 말하시네. 여장부라고 신문에서 떠들어 대고 돈이 많은 것 빼면, 언니나 나나 낙동강 오리알인 건 마찬가지 아니유. 그러니 서럽게 서방이 있네, 없네 하지 말자고요.”

옛날로 따지면 강선애는 고관대작의 기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옥문이 보기에 그녀나 자신이나 팔자 더러워 남편 자식 없는 같은 처지나 한가지였다.

“그나저나 그 앤 찾았어요?”

“누구……?”

“언니 돈 갖고서 도망간 장위건이지 누구겠어요?”

“……몰라.”

눈을 감은 강선애는 이마를 짚으며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머리가 딱딱 아파서 생각하기가 싫었지만 옥문의 말에 그녀도 생각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그럼 그 앤요? 그 총잡이 있잖아요. 마령인가 뭔가 하는 애요. 그 애 마지막 소식이 경무국에 잡혀 들어갔다는 뜬소문이었는데……. 장위건이하고 연락이 안 되면 언닌, 어쩐대요?”

옥문이 몸을 아예 모로 눕혀 뚫어져라 강선애를 바라봤다. 그녀 딴에는 걱정이 되어 물은 일이었다. 강선애가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집고 있던 손을 뗐다.

그녀의 시선이 의미 없이 객실 문 유리창에 꽂혔다. 옥문의 말에 걸리고 걸리던 일이 생각나 버린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행사장에 갈 일 때문이었다.

“요사이 경성 시내 소문이 흉흉해요. 강선애 사장 몸조심하시라고요. 그런데도 그 행사를 할 거예요?”

“……할 거야. 거기에 얼마를 투자했는데.”

강선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 팔꿈치를 짚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에 댔지만 그녀의 눈빛은 형형했다. 옥문이 그런 강선애를 향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벌써 소문 돌 대로 다 돌아서 이제 더는 간다는 계집애들 없을 거예요. 다들 속아서 갔네, 납치네, 사기네…… 말들이 좀 많으냐고요. 언니 그러다 진짜 몰매 맞아 죽을 수도 있어요?”

옥문은 다소 과장해 말했지만 강선애에게 살해 위협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경성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 중 일제에 빌붙어 돈 벌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또 그런 사람치고서 열혈 독립운동꾼들에게 협박 한 번 안 당해 본 사람도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위협은 위협일 뿐, 실제로 당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거물급으로만 말이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거나 군수업체 사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3년 사이에 강선애도 그 못지않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37년부터 시작한 근로정신대 여성 모집 사업으로 강선애는 돈방석에 앉았다. 그야말로 삼성상회 국대철의 첩마누라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근로정신대 여성모집 사업권을 처음에 획득할 때 강선애는 국대철의 도움을 크게 얻었었다. 국대철이가 제 마누라였다면 절대 밖으로 내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선애는 첩이었다. 얼마든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수완과 능력이 되고, 국대철이가 필요할 때 기꺼이 ‘몸 로비도’ 벌일 수 있는 여자가 강선애였으니까 말이다.

강선애는 올해로 마흔 일곱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찾는 고관대작들은 많았다. 국대철의 말을 빌자면 강선애는 ‘요부’ 중 요부라는 것이었다.

“경성에서 하기로 한 이번 행사는 취소해요. 경호해 줄 마땅한 사람도 없는 거잖아. 장위건이랑 연락이 안 되면.”

옥문이 강선애를 부추기려 애를 썼다.

“장위건 그놈이랑 연락 안 돼도…… 그 애랑 연락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경성을 나갔다거나 죽었다는 소문이 없는 걸로 봐선 수소문하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꼭 그 애여야 하겠죠? 마령이 그 애가 언니랑 거래한 게 몇 년인데. 그보다 믿을 만한 애 없을 법한 게 걔도 언니처럼 돈이면 뭐든 다 하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돈에 움직이는 사람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세상이잖아요.”

“그렇지.”

강선애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신경질적으로 눌러 대며 대충 대꾸했다. 옥문이 강선애의 대꾸에 그녀에게 몸을 돌렸다.

“5년을 일하면서 일부러 서로 얼굴 한번 안 보다니.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비슷해요? 지독하게 독한 거.”

“그러니까 내가 얼굴도 모르는 그 앨, 5년이나 길게 상대했지. 섣부르게 나한테 접근해서 내 얼굴 보려고 했으면 내가 5년이나 써먹었겠어?”

“그러게요.”

옥문은 한숨을 내쉬며 잘 손질된 손가락으로 시선을 내렸다. 강선애는 자기 목숨을 지키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인물이었다. 지은 죄가 크기에 당연하다고 생각 들면서도 옥문은 가끔 저렇게 철저한 강선애가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강선애의 비밀을 잔뜩 알고 있는 자신을 언제 그녀가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시 유옥문의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었던 것이다.

덜컹덜컹 기차의 속도가 다시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강선애는 기차 밖 어둠 속으로 눈을 돌렸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 * *BORI 공금갠소요게X

기차는 심양을 무사히 통과해 단둥역도 무사통과를 했다. 심양에서 가지 못한 전보 때문에 일본 경찰국으로는 아무런 연락도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았고 곧 점심 무렵이 될 것이다. 기차는 어느새 개경을 지나 경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차의 종착역은 부산이지만, 특2호실의 시신들이 언제 발견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특2호실의 상황을 누가 언제 알아채느냐가 관건이었다. 다미로는 한조와 단둘이 쓰는 객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객실로 되돌아온 후에 그녀는 내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조가 아침을 먹자며 깨웠지만 어제에 이은 배탈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 편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최창학과 김산 역시 그녀의 객실 근처로는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은, 계획을 모의했던 20분.

정확히 그 시간뿐이었다. 경성에 도착하기까지 피를 말리는 10시간이었다. 기차가 역사 안으로 진입해 기관차가 멈출 때까지 다미로는 눈을 감고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혼자서 걸을 수 있겠어요?”

한조가 걱정스런 표정을 했다. 다미로는 계획한 대로 흐트러진 머리를 수습하지 않고서 코트를 걸쳤다. 뜯어진 치맛단은 코트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는 길이 십 리 길 같았다. 언제 특2호실의 상황이 밝혀져 승객 전부가 발이 묶일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조의 손이 그녀의 등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다미로는 자신도 모르게 복도 뒤쪽을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태익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오유미가 그의 팔에 매달리듯 붙어 있었지만 태익의 눈은 다미로와 한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시선은 그녀의 등에 닿은 한조의 손으로 옮겨 갔다. 다미로의 심장이 미약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먼저 기차에서 내린 한조가 손을 내밀었다.

다미로는 한조의 손을 외면했다. 차가운 경성의 겨울바람이 그들을 맞았다. 선로의 열기와 기차가 뿜어내는 증기가 뿌옇게 눈앞을 가렸다. 다미로는 하차하는 승객들 사이에 떠밀려 역을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경찰이 부는 호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수선한 승객들 사이를 역주행하는 경찰들 몇이 있었지만, 다미로와 일행이 모두 경성역을 빠져나온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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