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12)

프롤로그

탓!

라이터를 긁은 태익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커튼 사이로 여린 새벽 여명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며 커튼 사이로 창문을 열었다.

연기가 열어 놓은 창틈으로 빠져나갔다. 경성 시내 저 멀리로부터 여명이 터 오지만 방 안은 아직 어두웠다. 낮은 조명이 잠시 깜빡거린다. 경성 시내 어딘가에서 누군가 또 전기를 훔쳐 쓰는 탓이었다.

안태익.

경성 최고 갑부 5인에 드는 유일한 젊은 부호였다. 1938년, 39년 그의 회사 ‘경성물산’이 기록한 와인과 위스키, 화장품, 가구 등등의 수입량은 일본인 기업에서도 따라올 곳이 없었다.

흔히들 대궐보다 넓은 집이라고 그의 집을 일컬었다. 이완용의 집보다도 넓을지 모른다고도 사람들은 떠들어 댔다. 한글 ‘ㅜ’ 자로 지어진 본채에만 방이 9칸, 거실이 2개, 신식 주방이 2개였다.

집을 지키는 경호 인력은 6명에 이르렀고 집사를 비롯한 행랑 식구들은 일일이 다 셀 수가 없었다. 한데 그런 안태익의 침대 위에 험한 차림의 여자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얼룩덜룩 검붉게 굳어 버린 피딱지로 얼룩진 헤링본 코트. 어울리지 않는 스카프 역시 피에 젖어 있었고 무릎 아래까지 긴 치마는 이곳저곳 찢겨져 있었다.

길게 마지막으로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신 태익은 반쯤 피운 꽁초를 버리고 창문을 닫았다.

달카닥.

열릴 때와 달리 소리를 내며 닫히는 창문 소리에도 여자는 미간 하나 움칫거리지 않았다. 태익이 테이블 소파에 깊숙하게 몸을 앉히고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리 많은 여자들 속에 있어도 그는 다미로를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안다미로.

그녀는 특별했으니까. 두껍고 거친 겉옷 속에 꽁꽁 몸을 숨겨 둔들 뒷모습만 봐도 태익은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안경을 쓰고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으로 변장을 한다고 해도 다미로를 명치정 한가운데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거친 겉옷 안에 있는 그녀의 몸을 태익이 천천히 꾹꾹 눌러 힘이 들어간 시선으로 더듬어 내려갔다. 그녀는 블라우스인지 거적때기인지 구분도 안 되게 핏물에 절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부대 자루인지 무엇인지 애매모호한 치마를 입었대도 태익의 눈에는 다미로의 벗은 몸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하-아-.’

탄식과도 같은 신음을 흘리며, 제 몸 위에서 허리를 젖힌 그녀가 신기루처럼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라버니…… 으으 음! 아으 웃!’

그를 부르며 나지막이 교성을 귓속으로 흘려 넣던 다미로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하기는 잊은 적이나 있었던가.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그 기억을 잊은 적은 없다.

5년. 5년이었다. 그녀가 태익과 이 집을 떠난 지는 정확히 5년이나 되었건만. 그는 다미로를 잊은 적이 없었다. 생각나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는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그의 머릿속으로 너무나도 가볍게 쳐들어왔다. 그래서 그녀가 떠나고 2년이 지났을 때, 다미로가 스스로 돌아온다면 용서하리라 했었다.

3년이 지났을 때에는 만일 다미로를 찾아낸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다시 그녀를 품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4년이 되었을 때 태익은 맹세를 했다.

반드시 그녀를 찾아내어 꼭 지옥에서 살게 해 주겠노라고.

“으…… 으음…….”

지옥.

다미로가 눈을 뜨는 지금 이 순간부터 말이다. 그는 다미로의 미세한 신음 소리에 느긋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테이블 의자를 벗어났다. 불과 세 걸음으로 침대 곁에 도착한 태익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입술이 터져 오른쪽 입꼬리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오른쪽 뺨에 불그스름한 멍이 들었고 왼쪽 눈썹 바로 위에는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그런 다미로와는 지나치게 이질적인 차림의 태익은 슈트 바지에 갈무리해 넣고 있던 손 하나를 뺐다.

손가락으로 툭, 다미로의 블라우스 위쪽을 들췄다. 옷섶이 옆으로 벌어지며 쇄골 아래로 기다란 상흔이 보였다. 아직 상흔의 색깔이 붉고 튀어 올라온 것을 보아, 최근에 입은 상처 같았다.

다시 조금 더 블라우스를 앞섶을 쳐냈다. 벌어진 앞섶 사이로 젖무덤의 뽀얀 둔덕이 드러났다. 투명하도록 하얀 피부가 조명 때문에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아! 조금 더…… 더 깊게…… 아아! 아으 읏! 오라버니…….’

다시금 다미로가 억눌러 내질렀던 교성이 태익의 뇌리에 환청처럼 되살아났다. 우아하게 뻗은 낭창한 두 팔로 그녀가 목을 휘감던 그 느낌이 형형하게 되살아났다.

가운뎃다리에 시큰한 통증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라 후끈거렸다. 다미로를 향한 지독한 욕정이었다. 한여름 사막의 태양보다 더 살인적이며 포악스러워질 육욕이었다. 하지만 태익은 이제 그런 욕정 따위에 눈이 돌아 버릴 나이가 아니었다.

그가 다미로의 블라우스를 헤치던 손을 바지 주머니로 다시 갈무리했다. 그때였다. 이틀을 송장처럼 누워만 있던 다미로의 눈꺼풀이 떨렸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감을 잡으려는 듯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잠시 고른 숨만 내쉬던 그녀가 거칫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긴…… 혹시…… 병원이에요?”

나흘.

정확하게 나흘 동안 다미로는 햇빛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좁은 관 속에 갇혀 그녀는 나흘을 버텼다.

그러니 시력이 금방 돌아올 리는 만무. 더욱이 눈이 나빠 그녀는 안경을 썼었다. 그렇기에 이 익숙하고도 결코 잊을 수 없을 태익의 방을 그녀는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태익은 대답을 대신해, 다미로의 머리칼 몇 올을 잡아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본디 허리까지 길어 윤기가 흐르던 머리칼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짧고 푸석해져 있었다.

북쪽의 칼바람과 추위를 그녀의 머리칼은 이겨 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명확하게 그녀가 북쪽 어디에서 어떻게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그놈과 함께였다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말이다.

“……누구냐.”

다미로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날 선 경계와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녀는 곁의 사람이 간호인이 아님을 알아챘던 것이다. 태익의 서늘한 눈빛이 그런 다미로를 응시했다.

창백한 뺨, 파리한 안색. 하지만 날카롭고도 맹렬한 눈동자, 그가 알던 다미로는 없었다. 봄날 미풍과 같았고 흩날리는 벚꽃 같았던, 여름날 빗물을 머금은 청초한 모란과 같았던, 건강하고 기운찼던, 다미로가 아니었다.

안태익을 오라비라 불렀던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익은 입술 꼬리를 희미하게 끌어올렸다. 지독하게도 강렬하지 않은가! 살인청부업자 ‘마령’이라 불리는 안다미로는!

태익은 손에 쥐고 있던 다미로의 머리칼을 베개 위로 되돌려 놓았다.

“누구냐…… 라.”

그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날 선 경계와 날카로운 감각으로 매서웠던 다미로의 표정이 흔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침대를 더듬어 상체를 일으켰다. 가벼운 현기증이 몰려왔지만 세차게 고개를 털어 어지럼을 몰아냈다. 빳빳하게 허리를 세워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태익 오라버니…….”

희미하게 보이는 남자의 인형(人形)은 분명히 그였다. 오만하고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안태익 분명 그 남자였다. 어떻게 듣고도 알아듣지 못할까.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의 곁에 있었던 사내. 오라비로 따르고 사내로 품었던 남자를.

“내 목소릴 잊었으면 서운할 뻔했는데.”

비릿한 웃음이 밴 목소리가 다미로를 향해 말했다. 다미로는 가만히 이불을 움켜쥐었다. 벌써 만나게 되다니. 조금만 더 시간을 벌 수 있길 바랐는데.

그녀는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에 힘주어 눈을 감고 밭은 숨을 조심스럽게 뱉어 냈다.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의 만남이었다. 계획 속에 있던 태익과의 만남은…… 그 일을 마친 후였으니까.

“식사는 죽으로 할까?”

두 손을 날카롭게 날을 세워 다린 바지 주머니에 갈무리하고 있던 태익이 물어 왔다. 다미로는 힘주어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조금 전보다 더 확실하게 보이는 태익은 불과 그녀의 30센티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반듯하고 건장한 체격, 어느 한 곳 비뚤어지거나 모자라지 않게 잘 균형 잡힌 사내. 조선 최고의 인텔리전트.

그녀 안다미로의 삶의 주인이었으며, 그녀의 몸을 길들인 첫 남자. 그러나 5년 전, 그녀에게 잔인하게 배신당한 사내.

“오라버니…….”

딸랑 딸랑딸랑.

다미로의 부름을 무시하고 태익은 집사 이환을 부르는 종을 흔들었다. 네 짝 미닫이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이환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해 줘, 메뉴는 통일하지, 전복죽으로. 식사는…….”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생각이란 것을 해야겠다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톡톡 창틀을 두드리다 곧 뒷말을 했다.

“식사는 이 방에서 할 거야. 다미로하고만 둘이. 식사 시중은 필요 없다. 아무도 들이지 마.”

“네, 사장님.”

이환이 허리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문을 밖에서 닫기 전, 다미로와 눈을 맞추더니 인자한 웃음으로 말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다미로 아씨.”

심장이 덜커덕 고장 난 자동차 엔진처럼 소리를 냈다. 5년 사이에 머리 위로 하얗게 흰 머리칼을 뒤집어쓴 눈먼 집사의 환영 인사에 그녀는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다미로와 태익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이 크고 넓은 집 안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태익은 그녀의 배신조차 집안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절, 그곳에서 왜 빼내 왔는지 물으면 대답해 주실 거예요? 오라버니.”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태익의 눈동자가 그녀를 직시했다. 알면서 뭘 묻느냐는 뜻이었다. 역시나……. 다미로는 떨리는 입술로 희미하게 웃었다.

언젠가 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각오는 5년 전 그를 배신할 때부터 되어 있었다.

“죽는 걸 두려워했다면 총 같은 거 손에 잡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일부러 죽자고 애쓴 적은 없지만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석 달만 시간을 주세요. 꼭 돌아올 거니까.”

그때……. 오라버니가 날 죽이겠다면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암묵적 약속이었다.

“만일 오라버니가 안 되겠다고 하신다면, 그러셔도 저는 어쩔 수가 없어요. 꼭 해야 할 일이…….”

“안다미로.”

다미로의 말이 잘렸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빳빳하게 허리를 세운 그녀 앞으로 태익이 다가와 있었다. 그의 검지가 다미로의 턱 끝을 들어올렸다.

해는 이미 동쪽 하늘에 바짝 올라와 있을 테지만 암막 커튼을 걷지 않은 태익의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 탓에 조금씩 빛에 적응해 간 그녀의 시력은 안경이 없이도 태익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여전하다. 안태익의 아름다움은. 살기를 숨기지 않고 다미로의 눈동자를 꿰뚫겠다는 그의 눈은 변함없이 크고 날카롭고 깊었다. 심장이 벌벌 떨렸다. 그의 손가락에 들린 턱이 달달 떨려 왔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났어도 그녀의 몸에 새겨진 또렷한 기억들이 심장 안에서 팽배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네가 할 일은 내가 정해.”

그의 엄지가 다미로의 창백한 뺨을 깊게 눌러 쓸어내렸다. 온몸의 솜털들이 오소소 곤두섰다. 그의 손가락이 쓸어내린 뺨에서부터 시작된 전율이 다미로의 뇌수까지 찡하니 울려 왔다.

시작도 이 방에서였고 마지막도 이 방에서였다.

스무 살.

첫 경험의 기억은 날카롭고도 숨 막히도록 격렬했었다.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하아, 하아, 하아 아아악!’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쾌락을 넘어선 고통. 그러나 그 끝은 역시 숨이 끊어질 것처럼 격한 쾌락이었다. 울부짖음에 가깝게 내질렀던 자신의 교성이 다미로는 지금도 머릿속에 또렷했다.

늦은 봄날이었다. 멀리 뒷산에 핀 밤꽃 향기가 짙었던 늦은 오후였다. 뒤에서부터 꿰뚫어 들어온 태익을 받아 내기가 버거웠다. 엎어져 침대를 짚은 팔이 후들후들 떨렸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는 파들파들 떨렸고 아래가 홧홧하게 타올라 그곳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중심부를 꿰뚫리는 강렬한 쾌감은 그 모든 것보다 우위였다.

머릿속이 텅 비고 몸 안에 우주가 들어차 그 속에서 폭죽이 터지고 강둑이 터지고 해일이 덮치는 것 같았던 날이었다. 밤꽃 향기가 숨 막히도록 짙었던 밤이었다. 별빛이 찬란했던 새벽이었고, 아침놀이 유난히 붉었던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태익의 손에 턱이 붙들린 다미로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러 왔다. 트고 갈라진 입술이 태익의 손가락에 쓸려 따갑고 쓰라렸다.

하지만 쓰라림보다 따가움보다 더 강렬한 감각은 배꼽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각인된 욕망이었다. 태익의 손길에 길들여진 육체가 잊지 않고 있던 그 쾌락의 감각이었다.

자신을 죽이고자 살기를 숨기지 않는 사내를 향한 미련한 욕정이었다.

멍청한 계집. 아둔한 계집…….

다미로는 마음속으로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태익은 이제 그때의 태익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때의 안다미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그런 태익이 자신을 원할 리가 없건만.

하지만 그때였다. 태익의 입술이 다미로의 입술을 경고도 없이 덮쳐 왔다. 차가운 입술. 냉정한 입술이었다. 다미로의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물었다가 윗입술로 올라가는 태익의 입맞춤은 냉정하고 냉혈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태익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자신이었으므로. 5년 전의 선택은 그녀의 결정이었다.

“오늘 다미로 네가 해야 할 일은…… 이거 하나다.”

입술 사이로 태익이 뱉어 낸 말이 무엇인지 그녀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넝마와 다름없던 블라우스가 우악스럽게 찢겨 나갔다. 맹수에게 물리듯 태익에게 물린 입술이 흡! 빨려 들어갔다. 거침없이 그녀의 입 안으로 그의 혀가 파고들었다.

거침없는 태익의 손길이 다미로의 젖가슴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쳐올리듯 움켜쥐었다.

“흣!”

배려 없이 잔인한 그의 손길이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터트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그것이 신호탄인 듯 광폭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이와 이가 부딪쳤다. 혀와 혀가 얽혀 뿌리까지 흡입했다. 타액이 입가로 흘러 내렸지만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입술이 고통스럽도록 아프게 빨렸다.

혀가 뿌리째 뽑힐 것처럼 강렬하게 태익에게 흡입되었다. 그러나 다미로는 그를 밀쳐 내지 않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부러져라 이불만 움켜쥘 뿐이었다.

“하아 하아.”

광폭하게 그녀의 입술을 물고 뜯던 태익의 입술이 돌연 떨어져 나갔다. 다미로의 창백했던 입술이 거친 자극과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입술로 새된 숨을 내쉬며 파들파들 떨리는 눈동자로 태익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흥분과 두려움이 뒤범벅된 자신을 그녀는 알았다. 그러나 숨을 곳이 없었다. 숨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태익의 잔인한 시선을 온 힘을 다해 받아 냈다.

태익의 눈이 그녀의 눈에서 천천히 내려가 방만하게 드러난 젖가슴에 꽂혔다. 그의 눈동자가 파랗게 번뜩였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의 손이 다미로의 허리를 강하게 당겨 안았다.

순식간에 깊게 고개를 숙인 그가 뜨거운 입술로 분홍빛 돌기를 삼켜 쭉 빨아 당겼다.

흡!

아릿한 쾌감에 다미로의 허리가 절로 휘어졌다. 그와 동시에 태익의 손이 좁고 밭은 그녀의 허리춤을 파고 들어갔다. 우두둑. 치마의 단추가 뜯어졌다. 치마와 속옷이 순식간에 그녀의 늘씬한 허벅지 아래로 구겨져 말려 내려가고 그의 거친 손길이 무성한 음모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본능적으로 다미로의 허벅지가 조여들었다. 그러나 태익의 거친 손이 조여진 허벅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갔다. 귓바퀴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벌려라, 다미로.”

지독하게도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욕망에 들뜬 것인지, 지독한 증오에 휩싸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힘을 풀지 않는 다미로의 허벅지 사이를 강제로 파고들어 갔다.

갈라진 중심부에 그가 중지와 약지를 끼워 아래로 훑어 내렸다가 길게 쓸어 올렸다.

“하앗!”

아찔한 쾌감이 그의 손가락이 희롱하는 붉은 속살에서부터 터져 핏물처럼 번져 나갔다. 벌써부터 젖을 대로 젖어 있던 그녀의 여리고 붉은 속살 사이로 태익의 손가락은 자유롭게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러나 다미로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 아랫입술에 피가 배도록 깨물었다. 그와 두 눈을 마주한 채였다. 눈을 마주한 채로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음부를 헤집고 자극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알지만, 그가 ‘오늘 네가 할 일은…… 이것이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 역시 알기에 태익으로부터 그녀는 벗어날 수 없었다.

한순간이었다. 시선이 겹쳐진 채로 태익의 손가락이 다미로의 질 속으로 파고들어 간 것은.

“하으읍!”

그것은 끊어질 듯 당겨진 실을 양끝에서 맞잡고 팽팽하게 맞서던 시간과 같았다.

맹수의 광폭한 눈빛을 한 태익과 그의 광폭에 삼켜지지 않으려는 다미로의 팽팽한 신경전과 같았다.

“식사 준비했습니다, 도련님. 지금 안으로 들일까요?”

문 바깥에서 집사 이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아침 햇살이 무겁게 창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를 눈부시게 파고들었다.

부지런한 아침 새의 지저귐이 서럽도록 고운 아침……. 다미로는 태익의 잔혹한 눈동자를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새하얀 햇볕 아래, 태익의 방과 마주한 그녀의 방이 보였다.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태익의 본채와 마주 본 그녀의 별채.

언제나 그와 서로를 볼 수 있었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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