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 선전포고 (38/53)

36. 선전포고

* * *

“연호랑은 이미 이야기 끝났어.”

“네?”

진우는 지금 뭘 들었나 싶었다. 동생이 구속되어도 이 우아한 중년 여인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연희 혼자 사는, 제가 직접 증거 인멸을 지시했던 집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연호가 죽어도 입을 안 열길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다 동원해서 알아봤어.”

“…그래서 알아내셨군요.”

“그래. 정 실장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튀어나올 줄 상상도 못 했어.”

벌써 연호가 구속된 지 100일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룹의 역량을 동원해서 그를 무혐의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민이 가진 패가 컸다.

검찰 조직 내에서 소수에 지나지 않은, 차현 쪽 돈을 받은 적 없는 검사들. 스폰을 받지 않아 승진에서도 누락된, 일명 차현 장학금을 제 손으로 거절한 고고한 선비 같은 자들이 작정하고 힘을 모아 연호를 겨냥하고 있었다.

연호가, 즉 차현이 밀어주는 검사들이 계속 검찰청에서 라인을 만들고 서로 밀고 당기니 말이다. 처음엔 청렴한 마음을 가졌던 검사도 욕심이 아예 안 생길 순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차현 라인을 밀어내고 저들이 조직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재민이 나타나 손을 내미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거기에 국민적인 여론마저도 이참에 재벌들의 편법 증여 만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계속 들끓는 중이었고. 파면 팔수록 나오는 차현에 관련된 비리에 소환되는 관련자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그중에서 배신자도 한둘 나왔다.

그룹의 위기 상황 속에서 진우 쪽 사람들과 연호를 보필하는 라인들이 더는 반목하지 않고 합심해서 머리를 맞대었으나 말이다. 재민이 이토록 치밀하게 저들을 옭아맬 줄이야.

“남편이 죽던 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얘기했거든. 차현 전자 최 사장 만나러 간다고.”

“설마…….”

“진짜 진위는 영원히 모르겠지만 그때 같이 앉아 있던 우린 그가 떠나고 난 뒤에 여자 만나러 가면서 최 사장 핑계 댄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어쩌면 그 새끼가 자기가 이길 거로 생각하곤 우리를 놀려 먹은 거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

2년 전, 한예나를 진수오에게 붙이기 위해 연희가 알려 준 정보대로 진 회장 차명 비자금의 한 축이었던 최 사장을 연막으로 끌어들였는데 말이다.

당시 재민에게 그를 관리해 줄 것을 부탁했었는데, 재민과 최 사장이 한편을 먹을 줄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관장님께서 알고 계시니 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부터 최 사장은 저희에게 회유된 게 아니었습니다. 진 회장이 우리 계획을 눈치채고 일부러 그를 들이민 거였어요.”

찻잔을 내려놓은 연희가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탄 섞인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한예나가 우리가 붙인 자석인 걸 알면서도 그냥 뒀다, 이 말인데…….”

“정체를 아는 스파이를 곁에 두는 게 오히려 안전하다는 걸 알았던 거지요.”

“역시 우리한테 속았을 리가 없었어. 하마터면 전부 큰일 날 뻔했던 거구나.”

다행이라는 듯 연희가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런데 진수오 이 새끼, 내가 최 사장 정보를 서 전무한테 팔 줄 알았다는 말이네?”

“아마도… 입니다. 진 회장이 재민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최 사장을 옆에 심은 거였고…….”

말끝을 흐린 진우는 연희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진 않고 말을 삼켰다.

그녀에게 희주를 죽인 간접적 범인이 재민이었는데 진 회장이 자기 아들을 죽인 자에게까지 손을 뻗을 줄 몰랐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미주에게 전해 들은 바로 오로지 연희 입장에서는 희주의 존재야말로 가장 큰 눈엣가시였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저와 연호의 일시적 연대가 진수오에게는 꽤 위협적이었던 건 분명해 보였다. 재민의 죄를 알고도 눈을 감고 새로운 파수꾼으로 쓰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진 회장이 얼마나 권력을 놓치지 않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었다.

“연호가 이대로 힘도 못 쓰고 유죄 판결이라도 받으면 차현 전자 최 사장을 바지로 내세워 차현 회장으로 만들겠다, 이 말인 거지?”

“네, 힘겹게 알아낸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정 실장은 뒤에서 최 사장을 조종해 차현을 공중분해 시킬 생각인 것 같습니다.”

“차현을 조각조각 내서 팔아 치우겠다니… 내 아버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힘겹게 일군 차현인데 감히…….”

떨리는 연희의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부회장님 때문에 이사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 정 실장이 이사진들을 설득하고 있는 듯합니다. 차현의 위기 상황에 회장직을 공석으로 둬선 안 된다고, 오너 일가보다는 연륜 있고 차현에서 잔뼈가 굵은 최 사장이 더 회장직에 적합하다, 회유하고 있다 합니다.”

재민의 비상한 머리는 이미 오래전 부산에서부터 잘 알았지만, 이토록 영악하게 굴릴 줄 몰랐다. 제 밑에 있을 때는 그의 번뜩이는 기지가 피와 살이 될 때가 많았지만 말이다. 척을 지고 나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전방위로 저를, 그리고 그들을 압박해 왔다.

“우리가 너무 복수에만 집중했나 봐. 다른 적이 있을 줄 나는 몰랐어.”

“아닙니다, 관장님. 다 제 탓입니다. 정 실장이 딴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착잡한 표정의 진우가 한 모금 차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연희는 괜찮다는 듯 오히려 위로했다.

“원래 그런 거야.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는 법이지. 차라리 몰랐다면 욕심내지 않았을 텐데, 조금씩 손에 쥐는 것들이 있으니깐 더 많은 걸 갖고 싶어진 게 아닐까?”

“그래도 정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 실장이 그랬다는 걸 저 역시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우와 재민이 친형제 못지않게 지내 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희는 진우가 느꼈을 배신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되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동생이 발이 묶인 동안 선대가 이룩한 회사를 이대로 그간 적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 넘길 순 없다는 것.

차라리 진우가 저희를 배신해 홀랑 차현을 먹어 버렸다면 상대라고 인정했던 존재였기에 어쩌면 덜 억울할지도 몰랐다.

진우가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연희였기에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잘 알았다. 진 회장의 측근으로 일하려면 단순히 공부 머리만 좋아야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비열하고 얍삽하게 잔머리를 굴려야 될 때도 있었다.

거기에 진우는 남자답고 호탕한 성격을 가진 덕분에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던 부산 촌놈이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진우조차 지금의 난국을 쉽게 돌파하지 못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연호가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말인데, 서 전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

“……?”

다시 찻잔을 집어 든 연희가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고요하게 뜻을 밝혔다.

“스캔들을 스캔들로 덮어 대중의 눈을 가리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자수할게. 사실은 내가 남편을 죽였다고.”

놀란 진우가 눈을 크게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연호가 나한테 그러더라. 정재민 그놈이 우리의 살인을 알고도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결정적일 때 히든카드로 쓰려 하기 때문이다, 판단했다 하더라고.”

“저도 사실 부회장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제 살을 도려내기로 했어.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 버리면 정 실장이 쥐고 있는 그 패는 더는 못 쓰게 되니, 그를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어떻게 자수를…….”

이미 연희는 마음을 굳힌 듯 확고하게 진우에게 계획을 알렸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에게 학대를 당했다, 그래서 구치소에 다녀온 뒤 그가 나를 폭행하며 분풀이를 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총으로 쏴 죽였다.”

“관장님.”

“이 정도 이슈면 대한민국이 뒤집어지고도 남아. 몇 달 동안 내 이야기로 뉴스가 도배될 거고. 그동안 서 전무가 연호를 무혐의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면 돼.”

“…이미 시체를 화장했기에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로지 관장님 진술로만 수사가 진행될 텐데.”

진우가 걱정스럽다는 듯 미간에 인상을 썼다.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놀랄 만한 소리를 내뱉은 연희는 더없이 차분한 얼굴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전에 잠깐 연호가 말했지? 남편, 아니 진수오 개새끼가 내 몸에 손댄 적 꽤 많아. 차현 의료원에 기록으로 다 남겨 뒀으니 1차적으로는 그를 가정 폭력범으로 몰아가는 거야. 그리고 다음은 자기도 알지?”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진우가 뭔가 알 것 같다는 듯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연희에게 물었다.

“ 2차적으로 사생활을 거론하자, 이거네요. 그럼 대중의 시선이 살인보다는 난잡한 성적 취향으로 옮겨 갈 테고.”

“안 그래도 찌라시로 스폰 의혹이 있었으니, 남편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

“죽은 회장에게 굉장히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고 소문이 돌면 아무래도 관장님께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깐.”

고개를 끄덕인 연희가 감탄하면서 나긋하게 말했다.

“역시 연호가 물꼬를 터 주니 서 전무가 알아서 딱딱 시나리오를 짜네. 든든해졌어.”

“동정론을 형성하면 됩니다. 재벌 딸이랑 결혼했으면서 바람피우고, 폭력 행사에, 내연녀들에게 합의되지 않은 변태적인 성도착적 행위 강요까지 일삼았으니 목숨의 위협 속에서 죽일 만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면 재판에서도 꽤 유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외가가 언론사를 하고 있으니 최대한 연호 소식은 보도하지 않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내 이야기만 떠들어 대면, 사람들은 연호 일은 잊게 될 거야.”

진우는 나쁘지 않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는 한참을 뭔가 생각하다가 연희를 보면서 대답했다.

“부회장님, 역시 대단하세요.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진 회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정 실장이 이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 손으로 터뜨려서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생각을 하시다니.”

“하나를 희생해서 모두를 구하라. 처음에는 연호가 자기가 죽였다고 뒤집어쓴다 해서 내가 말렸어. 차라리 내가 하겠다고. 실제로 내가 죽이기도 했으니깐.”

“두 분 다 정말…….”

“괜찮아, 나는. 변호인단 최고로 꾸리면 되고, 설령 실형을 살더라도 건강에 문제 있다 힘써서 형 집행 정지로 만들면 돼.”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총을 폐기하지 않으신 거죠?”

연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이해한다는 듯 진우가 말했다.

“진 회장이 예전부터 부부 싸움을 하거나 하면 관장님께 총을 겨눴다, 죽이겠다고 늘 협박을 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몸싸움을 하다가 손에 쥐게 된 총을 쐈다, 이렇게 말을 맞추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심지어 내가 아버지에게 사격도 배웠고, 지금도 취미로 삼고 있어서 순간 격분해서 방아쇠를 당겨 죽였다면 어느 정도 앞뒤가 다 맞아떨어지니, 경찰도 검찰도 적당히 속일 수 있을 거야.”

최악의 경우 어쩌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 자유는 없을지도 모르는데 연희는 태연했다. 제 한 몸 불살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과 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세운 차현 그룹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눈빛에서 이미 확연했다.

그래서 진우는 더는 연희를 말릴 수 없었다. 차라리 재민의 역습을 받는 것보다 나은 차악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대신 이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비가 오던 날이라 총소리가 묻혔고, 남편이 죽은 걸 확인하고는 살인죄가 무서워 피를 다 닦아 낸 후 진수오에게 머리를 맞아 몸이 이상해진 것 같아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진술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총상 입은 시체를 치우고 가족들을 속여 장례를 치렀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진우가 조금 애매한 듯 입을 열었다.

“밖에서는 진 회장과 부회장님 사이가 겉으로만 처남 매형인 거 다 알고 있거든요.”

“그렇지.”

“그러니 우선 실제로 불화가 깊었기에 부회장님은 따로 직접 사망 확인하진 않았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온 것으로 해 두면 혐의를 벗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고 혹여 미심쩍어도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엮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네. 거기에 미주 씨 또한 연호와 별거 중이었던 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으니, 사이 나쁜 시댁 일을 깊게 몰랐다 발뺌하면 될 테고.”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우는 마른기침을 한 번 하고는 천천히 운을 뗐다.

“하지만 경찰이 바보는 아닐 겁니다. 관장님이 혼자서 죽이고 바닥의 피를 없애고 시체를 닦아 내 옷을 입혀 심장마비로 위장했다, 라는 걸 믿지 않을 테니 공범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공범?”

놀란 듯 목소리를 한 톤 올려 묻는 연희에게 진우가 아껴 뒀던 패를 꺼내 들었다.

“김 기사. 김 기사를 끌어들이는 겁니다.”

“좋아, 그 새끼라면 나도 대환영이거든.”

아무리 사주를 받았다 한들 아버지를 직접 죽인 놈을 연희는 그냥 둘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고, 연호와 진우가 그와 모종의 거래를 한 걸 알았기에 말이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쯤 김 기사를 없애 버리려고 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서 할머니 소리를 듣는 날, 잊지 않고 기억한 부모의 원수를 세상에 흔적조차 없게 만들려고 했는데.

역시 진우와 손을 잡길 잘했다 생각하며 연희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김 기사만큼 좋은 인물도 없지.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나한테 사주를 받았다고 한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우리와 근접한 놈이었으니 말이야.”

“관장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김 기사와는 일종의 증거, 시체 은닉을 도운 혐의로 거래를 할까 합니다.”

“양심이 있으면, 죽어서 우리 아버지 얼굴 볼 낯짝이라도 있으려면 나를, 우리를 돕겠지.”

“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리고 제가 그러도록 설득할 거고요.”

연희가 알겠다는 듯 이미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대답했다.

“하긴, 죽이는 건 나중에라도 하면 되니까 급할 건 없지.”

절대로 원수를 잊지 않겠다는 연희의 말에 진우가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차라리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관장님께 속죄했다 생각하고는 마음 놓을 테니 나중에 조용히 따로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필리핀으로 보내 놓을까 했거든요.”

“필리핀? 좋지. 치안이 안 좋아서 워낙 사건 사고가 많으니, 나이 든 한국인 하나 죽었다 한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깐.”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진우가 허탈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되네요. 참. 아무튼 진수오가 죽던 날, 미주는 부회장님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을 함께 떠난 거로 최종적으로 입을 맞추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다음 날 우리 집부터 시작해 우리 집까지 오는 길목에 있는 CCTV에 연호가 돌아오는 것도, 서 전무 그리고 서 전무 팀들이 오는 것도 다 삭제해 원본 파기까지 했으니 석연치 않다 한들 증거를 찾지는 못할 거야.”

결연한 표정을 지은 연희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서 전무를 믿을게. 정말 진심으로 믿으니깐 내가 총대 메고 들어간다는 거야. 물론 내가 직접 죽인 것도 맞지만, 동생을 빼내야 회사를 지킬 수 있으니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을 것 같았어.”

“그 누구도 관장님 같은 선택을 할 순 없었을 겁니다. 대단하시고, 용기가 정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날 손가락질하겠지. 남편 죽인 년이라고. 하지만 얼마든지 하라고 해. 내가 죽어서 아버지 회사가 이대로 갈기갈기 찢기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백번 더 죽을 수 있으니깐.”

빙그레 웃는 연희의 눈이 슬퍼 보여 진우도 마음이 좋진 않았다.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세상에 역시 그런 것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거로 죄를 가볍게 할 순 있을 것 같았다. 누구 말마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

차연희는 진수오를 우발적으로 죽인 죄책감에 못 이겨 자수할 것이다. 재벌가의 딸조차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것이니 어느 정도 정상 참작 사유도 될 테고.

연희의 말처럼 최고의 변호인단과 함께라면, 어렵겠지만 어쩌면 집행유예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생각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진우는 한숨을 길게 쉬고 마지막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관장님. 정 실장이 마음을 바꿔 먹을 수도 있으니, 제가 마지막으로 만나 최후의 설득을 해 볼까 합니다.”

“…알겠어요, 서 전무. 정 실장도 그간의 정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 최 사장을 바지로 내세우려는 그 계획 또한 확실히 승산 있는 계획이 아니니깐.”

“다행히 재민이랑 얘기가 통한다면 관장님도 굳이 살인범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정말 제가 한번 마지막으로… 재민이와 잘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연희가 걱정 말라는 듯 진우를 안심시켰다.

“협상이 결렬되면, 연호한테는 내가 말할게요. 걔도 알고 우리가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니깐.”

“네,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저 역시 재민이를 어찌해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우를 보며 연희가 달래듯 말했다.

“서 전무, 잊지 마요. 그래도 정 실장을 너무 궁지로 몰면 안 돼. 쥐도 고양이를 무는데, 하물며 정재민은 사람이라는 걸.”

“네.”

“그리고 아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서 전무라면 알고 있죠? 내가 다 짊어지면 서 전무가 해 줘야 하는 일.”

“잘 압니다. 너무 어깨가 무거워 부담스럽지만… 부회장님 나오실 때까지 누군가 차현을 지켜야 하니까요.”

어쩐지 여운이 남는 연희의 말을 진우가 곱씹었다.

* * *

며칠 뒤, 진우는 재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만나자는 제안을 재민도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의 루프탑 바.

진우는 지난 몇 년간 공들인 끝에 드디어 서울 모처에 새롭게 오픈하는 차현 호텔 지하에 이 카지노를 만들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의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진우가 앉아 있었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복잡한 상념 속에서 저를 겨우 달래고 있을 때, 재민이 나타났다.

“요즘 바쁘실 텐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네요.”

저와 달리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 같은 말끔한 얼굴의 재민이 늘 그렇듯 단정한 모습으로 앞에 앉자 진우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바쁜 건 아니고? 우리 때문에 눈코 뜰 새도 없을 텐데.”

저를 도발하는 진우의 비아냥거림에 재민은 애써 감정을 다스렸다.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는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각자 바쁘니 본론만 이야기하고 다시 일에 복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무님.”

“그래, 맞아. 시간이 곧 돈이지. 그리고 우리 같은 놈들한텐 시간이 곧 기회이기도 하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진우가 잠시 말을 삼켰다 고개를 들어 재민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재민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서로 그만하자. 나도 더는 네가 숨기고자 한 일 들추지 않을 테니, 너도 이제 그만해.”

진우의 말에 재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만두라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형?”

“네 말대로 시작한 게 아니라면, 시작, 하지 마. 정말 너까지 이러면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러니 부탁할게, 재민아.”

재민은 조용히 진우의 말을 들으면서 담배를 피웠다.

“부산으로 내려가도 괜찮고 서울에서 해도 괜찮아. 변호사 사무실, 아니, 법무 법인 하나 멋들어지게 차려 줄 테니 거기서 변호사로서, 대표로 네 인생 앞으로 살아. 더는 우리와 엮이지 말고.”

담배를 힘을 줘 꾹- 눌러 끈 재민이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면서 투덜거렸다.

“먹고 떨어지란 말인데, 대체 뭘 먹여 주실 건지 궁금하네요.”

진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에 있었는지 몸을 숨기고 있던 요한이 소위 말하는 007 가방을 가져와 재민의 앞에 놓았다.

“미리 말해 두지만 돈으로만 널 챙겨 주겠다는 거 아니야. 이건 시작이고 앞으로 네가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내가 다 도와줄게.”

“…….”

“희주 형 일도 다 덮고 죽을 때까지 왜 그랬냐 묻지도 않을 테니…….”

재민이 담배를 입에 물고는 양손으로 가방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렸다.

“깨끗이 세탁된 돈이야. 하도 돌려서 출처 불명이라 절대로 추적 못 해.”

“형님이 이리 단언할 정도면 정말 안심할 수 있는 물건이겠네요.”

재민은 양손을 뻗어 놀랍다는 듯 가방 안에 든 것을 만지며 눈으로 보았다.

왼손에 닿는 보편적인 지폐의 감촉. 100달러가 다발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재민은 진우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거리다가 시선을 살짝 오른쪽으로 틀었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금속의 차가움. 아름다운 황금빛을 띠고 있는 순금 1kg짜리 금괴가 오른쪽을 채우고 있었다.

가방 안에 양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로 통용되는 두 가지. 하지만 재민은 관심 없다는 듯 가방을 닫았다. 입에 물고 있었던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며 말했다.

“배탈 납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먹으면요.”

“그럼 천천히 먹여 줄 테니 필요한 걸 말해 봐.”

진우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요한이 나타나 가방을 치웠다. 재민은 두 번째 담배를 다 피우고는 재떨이에 끄면서 운을 뗐다.

“며칠 전에 미주가 우리 집을 어찌 알고 찾아왔어요.”

“뭐?”

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댔지만 동요하지 않는다는 듯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알았기에 재민은 진우의 생각을 읽어 내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역시, 형 몰래 온 게 맞았네요. 근데 우리 미주, 다 알고 왔더라고요. 나한테 남편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데…….”

재민이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 때, 진우가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왜 말 안 했어요? 내가 희주 형을 판 개새끼라고 말이에요.”

재민 역시 진우가 입에 무는 담배에 직접 불을 붙여 주면서 물었다.

“네가 내 입장이라도 미주한테 말했을까? 희주 형을 판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라는 걸?”

진우가 길게 연기를 내뿜으면서 하는 말에, 재민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저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네요.”

“…이해해 주니 고맙네.”

“그런데 미주가 어떻게 내가 차연호도 팔았다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네요. 형도 미주를 너무 과소평가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진우가 담배를 깊게 빨면서 싸늘한 눈동자로 지그시 저를 보는 게 왠지 오싹했지만, 재민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형은 항상 미주한테 너무 마음이 약해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저도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미주가 우는 얼굴로 남편을 풀어 달라 부탁하는 모습이… 어쩐지 계속 마음에 남아서…….”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톡톡- 치면서 재민은 싱긋이 웃으며 진우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돈도 좋고 금도 좋아요.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옵션을 붙일까 하는데, 어때요?”

“일단 들어 보고, 해 줄 수 있는 거면 해 줄 테니……”

진우의 말을 딱 자르며 재민이 비열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미주를 내게 넘겨요.”

“……!”

“이혼시키고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냥 주면 돼요. 남의 여자인 게 좀 더 재밌으니깐.”

진우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진우의 얼굴이 제 말에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재민은 기분 좋은 듯 담배에 붙은 불을 완전히 비벼 끄면서 말했다.

“더 솔직히 말해요? 돈도 뭐도 다 필요 없어. 윤미주, 그 애를 나한테 넘겨.”

“…너…….”

“형의 모든 것이고 차연호가 사랑하는 걸 내가 차지하고 서서히 괴롭히면서 망가뜨리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꽉 깨문 잇새 사이로 분노가 새어 나와 불타는 듯한 눈으로 진우가 저를 보는 게 재민은 기뻤다. 진우를 이토록 자극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미주라는 걸 잘 알았기에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세 치 혀를 놀렸다.

“옛날에 나 좋다고 졸졸 따라다닐 때 그냥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아끼다가 똥 되는 바람에 남한테 뺏기기까지 했으니 솔직히 아쉬워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재민아, 뚫린 입이라고 필터링 없이 말하는 거 아니다. 미주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마.”

“아, 네, 네. 사랑하는 동생이다, 이거죠?”

히죽이는 재민을 보며 진우는 참담한 심정 속에서 끓어오르는 노기에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어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하며 힘든 일과 어려운 순간을 함께 헤쳐 간 재민일까?

대체 언제부터 제 옆에서 이토록 무서울 정도로 권력을 탐하고 있었을까? 너무나도 어두웠던 등잔 밑을 탓하며 진우는 재민의 도발에 침착하려 애썼다.

“어려울 거 없어요, 형. 형이 늘 해 왔던 일이잖아요? 이게 바로 형이 진수오 밑에서 일하면서 했던 짓인데, 막상 본인이 당하니깐 기분이 좀 그런가?”

피곤하다는 듯 안경을 벗어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로 놓은 재민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눈을 꾹꾹- 누르며 더러운 입을 계속 놀렸다.

“내가 전에 말씀드렸지요? 너무 지독하게 굴지 말라고. 그게 보자… 언제였더라? 미주 전략실 발령 건 알아내려고 박 실장 고문할 때 이렇게 말했잖아요? 말 안 하면 네 아내와 딸을 죽일 수 있다고, 그게 아니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험한 꼴 당할 수 있으니 불라고.”

“진실을 알기 위해 협박하려고 한 말이지, 진짜 내가 박 실장 처자식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네, 맞아요. 하지만 형은 알아야 해요. 미주를 위해서 남을 죽이고 괴롭히고 행복한 가정을 파괴해도 죄의식 하나 없이 그게 오직 본인이 옳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정당화시켰겠지만.”

“…….”

“다 궤변이고 개소린 거, 제일 잘 알잖아요?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도 형은 그저 살인자일 뿐이에요.”

어쩌면 재민에게 핵심을 찔렸을지도 몰랐다. 미주를 위해서 제 손으로 수없이 많은 악행을 행했다고 한들 말이다. 결국 타인이 봤을 때는 그저 흔한 범죄자의 자기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기로, 15년 전, 하늘이 불타던 날에 이미 결심했었다.

진우는 인정한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면서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나만 쓰레기로 만들지 마, 재민아. 너도 살인자야. 희주 형을 죽인.”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아니에요. 형이랑 동일 선상에 두는 건 나 솔직히 기분 나빠요.”

눈을 가늘게 한 번 뜨고는 다시 안경을 쓴 재민이 어렵지 않다는 듯 진우를 향해 말했다.

“여자 하나 넘기면 모두 끝나요.”

“너 설마, 내가 네 거래에 응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반반이었는데, 형이 현실을 직시한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보지 않을까 했어요. 그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목표를 위해서는 모두 깔아뭉개고 박살 내 버리는 불도저 아니었습니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기도 안 찬다는 듯 진우는 재민을 뚫어져라 봤다. 그리고 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결정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재민아. 대답해 줄게.”

진우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던 반쯤 타 버린 담배를 그대로 재민의 오른 손등에 비벼 꺼 버렸다.

“아아악… 으으아아악……!”

“내 대답.”

“이 씨발 새끼가! 아악……!”

재민은 담뱃불에 화상을 입어 벌겋게 변해 버린, 피부 껍질이 녹아 흐물거리는 손등을 잡았다. 살 타는 냄새 속에서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러 댔다.

“감히 미주를 가지고 거래하려고 하다니. 정재민, 내 손에 아작 나기 전에 차연호가 이 사실을 알면 널 절대로 살려 두지 않을 거야.”

“으으, 이 좆 같은 병신 새끼들. 여자 하나 때문에 다들 정신 못 차리는 꼴이 우습네!”

“그러는 너는?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 네 인생 종 치게 됐다는 거, 명심해 둬. 차연호한테 갈 것도 없고 내 손으로 널 죽여 버릴 테니깐.”

“죽여 봐, 한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 주지.”

일어서서 재민을 내려다보며 즐겁다는 듯 말한 진우가 양복 상의를 한 번 손으로 털고는 피식- 웃었다.

“난 너한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정재민. 그걸 네 발로 찬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좋아, 선전포고.”

엉망이 된 손등을 보며 재민이 이를 갈면서 안경 너머 형형한 살의가 담긴 안광을 쏘았다.

“선전포고? 야, 전쟁도 급이 같아야 하는 거야. 네가 얼마나 하찮은 놈인지 내가 직접 보여 줄게.”

“…….”

“너 같은 버러지만도 못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에겐 기회도 아까워. 그러니 그냥 죽어, 정재민.”

진우는 재민 보란 듯이 그의 손등을 지졌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면서 유유히 루프탑 바를 빠져나갔다. 재민은 진우의 뒤를 따라 저를 경멸의 눈빛으로 흘깃 보고 지나가는 요한과 도균을 보았다.

두 사람을 보면서 재민은 점점 홧홧하다 못해 진물이 나는 것 같은 진우가 남긴 상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가만히 안 둬, 서진우… 그리고 너희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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