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3/53)

31.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 *

RRRRRRR…

건조한 공기가 흐르는 적막한 집 안에서 핸드폰 소리가 눈치도 없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차분한 표정의 미주는 속옷만 입은 채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응, 오빠. 씻고 나갈 준비 하느라고 늦게 받았어.”

미주는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들을 뒤로한 채, 평정심을 되찾은 듯 차분한 본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한없이 부드럽지만 조금은 단호해 보이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 갔다.

“빨리 가서 처남댁의 도리는 다해야지. 어쨌든 법적으로 멀지 않은 가족 같은 사이잖아?”

‘가족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무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 빨리 와.’

진우가 ‘가족’이라는 단어의 ‘족’에 악센트를 주면서 말하자 미주는 밝게 웃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튼, 지금 남편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나가 봐야 해. 응, 나중에 봐, 오빠.”

아름다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그늘을 드리운 미주는 가슴이 답답해졌는지 손을 가슴께로 올려서 괜히 툭툭 쳤다.

그러나 가슴을 쳐 본들 그간 쌓인 깊은 원한이 그리 쉽게 내려갈 수 있을까?

“후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쉬면서 마음을 골랐다.

미주의 눈은 슬픈 듯하면서도 기쁜 듯이 보였지만 여전히 얼굴은 깊은 수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말 끝일까?”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늦으면 안 되겠지? 이상하게 꾸물거리고 싶지만, 빨리 옷 입고 나가자. 연호 씨가 기다리고 있으니.”

마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슈트를 입듯 긴장이 넘쳐흐르는 드레스 룸에서 미주는 비장한 표정으로 매무새를 다듬으며 거울을 보았다.

“점점 더 심해지는데. 파운데이션으로 가리긴 했지만, 스카프를 둘러야겠어.”

저를 죽이려고 했던 자가 남긴 이젠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기 시작한 손자국. 검은색 솔리드 실크 스카프를 꺼낸 미주가 최대한 목에 남은 흔적을 가려 보았다.

[지금 내려가요.]

집으로 올라와도 될 텐데. 아직 완전히 둘 사이에 남아 있는 어색함을 떨치지 못해서일까? 연호는 차고에서 기다리겠다 알려 왔었다.

연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현관 앞으로 향했다. 신발장 앞에서 검은색 하이힐을 꺼내 신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힐을 말없이 한참을 쳐다봤다.

‘이 하이힐을 그가 참 좋아했는데.’

미주는 여기 이 빌라에 처음 들어오던 날을 회상하다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연호를 떠올렸다.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집에서 바로 연결되는 전용 차고로 향하자 검은색 세단이 기다렸다는 듯 서 있었다.

“작은 사모님.”

검은 양복을 입은 말쑥한 얼굴의 사내가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차 문을 열어 줬다.

“유 기사님, 고생 많으세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이미 저처럼 검은색 슈트를 입은 연호가 타고 있었다.

“출발하세요.”

연호가 차분한 말투로 지시를 내리자 묵직한 엔진이 으르렁거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길, 기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두 사람을 태운 차가 빌라를 벗어나는 순간 집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이 연호의 눈에 들어왔다. 짙게 선팅된 차라 아마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면서.

연호는 시선을 옆에 앉은 미주에게로 돌렸다. 미주의 붉은 눈과 스카프로 가린 목덜미가 연호의 시선에 들어왔다.

하지만 차 안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기에 쉽사리 미주의 상처에 관해 묻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의 눈꺼풀에 불과 하루 전 벌어진 참혹한 일이 여전히 떨쳐지지 않은 채 붙어 있었으니까.

연호는 저와 똑같은 눈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완전히 숨기진 못하는 미주의 손을 잡았다.

“매형, 좋은 곳 가셨을 거야. 걱정하지 마.”

“…좋으신 분이셨으니, 이젠 평안히 휴식을 취하셨으면 좋겠어요.”

연호는 미주의 손을 잡은 채 일부러 눈을 감고 푹신하고도 안락한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미주 역시 잠을 자는지 생각에 빠진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눈을 감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암묵적인 침묵 속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차는 차현 의료원 앞에 도착한 차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을 피해 장례식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가 완전히 멈추고 유 기사가 목을 옥죄는 고요 속에서 답답했다는 듯 큰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에서 먼저 내렸다.

유 기사가 내린 뒤, 연호가 미주의 손을 놓아주면서 말했다.

“괜히 언론에 꼬투리 잡힐 짓 하지 말자. 안 그래도 우리 주시하고 있을 건데.”

“…당신이야말로 표정 관리 잘해요. 나는 이미 잘하고 있으니깐.”

살짝 웃는 미주를 보면서 연호는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고는 문을 열고 내렸다.

“자, 쇼 타임. 우리 둘 다 그럴듯하게 연기 잘해 보자.”

연호가 차 문을 열고는 옆에 서 있던 유 기사에게 손짓했다. 미주 쪽 문을 직접 열겠다는 표시를 하고 양복 상의 단추를 채우며 트렁크 뒤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더없이 신사적인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미주가 살짝 고요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팔을 잡고 같이 걸었다.

“부회장님,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부회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런 두 사람을 근처에서 카메라로 찍으며 옆으로 와서 ‘심정이 어떠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둘은 굳은 표정이지만 슬픔이 우러나오는 얼굴을 연기하며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의전팀이 둘을 보필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뒤 연호는 왼쪽 팔에 삼베로 만들어진 완장을 찼다. 미주는 검은색 한복으로 갈아입은 후 왼쪽 머리에 무명천으로 만들어진 머리핀을 달았다. 그리고 목에 두른 검은색 스카프를 잘 여며 매 최대한 목이 졸린 흔적을 누군가 볼 수 없게 감췄다.

가만히 보면 연호의 완장 줄이 두 개임을 알 수 있어, 그가 지금 고인이 된 자의 상주임이 분명해 보였다.

후사가 없었던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오래전부터 후계자라 불리던 남자.

“차 부회장, 힘내시게.”

“차연호 부회장님,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차분한 얼굴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연호에게 사람들이 가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 옆에는 죽은 자의 아내인 연희가 눈물을 계속 훔치면서 서 있었고.

“관장님,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 회장님. 남편도 아마… 흑…….”

연희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울먹이며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척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진 회장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실신하다가 머리를 부딪쳐 차현 의료원으로 실려 왔을 정도로 그녀가 쇼크 받았다 알려졌다.

“관장님,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잠시 안으로 들어가서 쉬셔야 해요.”

“그래, 누나. 와이프랑 조금 쉬었다가 나와.”

연호는 아내와 누이를 휴게실로 보낸 뒤 의연하게 위로를 건네는 정, 재계 인사들의 조문을 받았다.

아마도 지금 빈소에 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앞으로 벌어질 차현 그룹의 왕위 쟁탈전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하이에나같이, 박쥐처럼 누구의 편에 붙어야 이익을 챙길 수 있을지 각자 욕망이 담긴 시선으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서 전무가 고생이 많아.”

“서 전무, 앞으로 우리 차 부회장 잘 좀 옆에서 보필해 주고.”

갑작스러운 비극을 통제하면서 진우가 문상하러 온 조문객들을 빈소 앞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 * *

차현 그룹 진수오 회장이 별세한 지 49일이 되던 날.

망자가 살아생전에 공을 들였던 절에 사람들이 모여 사십구재를 지내고 있었다. 물론 차현 그룹 주요 간부 및 임원진들과 진수오와 관계가 깊었던 인사들까지도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이 풍경 좋은 절에 모인 사람 모두 죽은 자의 성불을 바라는 듯해 보이지만 말이다. 실상은 현재 공석인 차기 차현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리라 예상하는 연호에게 줄을 대기 위해 각자 고민하는 눈빛으로 소리 없는 전쟁 중이었다.

연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간 연호와 대립했던 죽은 진 회장 계열을 염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중립을 지키는 자들도 현재의 돌아가는 판세를 읽기 위해 여기에 앉아 있기도 했고.

그 누구도 죽은 자의 명복을 진심으로 비는 이 하나 없는 대웅전에는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만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무표정한 얼굴로 사십구재에 참석한 미주는 연호의 옆에 앉아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고 있었다. 대웅전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부회장 부부 뒤로, 진 회장 생전에 신임을 받았던 서진우 전무이사를 포함한 임원진들이 도열해 앉아 있었다.

지루했던 형식적인 행사가 모두 파하고 각자 삼삼오오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진우와 재민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주를, 연희를 비롯한 외가 쪽 사람들과 같이 있던 연호가 보고 있었다.

‘정재민… 그래서 네가 처음부터 싫었어. 서진우보다 더…….’

연호는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쓰고는 진우의 옆에 서 있는 재민을 보았다.

제 손에 들어온 재민의 비밀이 담긴 USB. 이젠 재민을 전과는 다른 의미로 경계하기 시작한 연호의 시선에 진우는 일부러 볼멘소리를 냈다.

“재민아, 연호 저 새끼 잠잠하다 싶더니 또 시작인 거 같지?”

“글쎄요. 저를 향한 건지, 형님을 향한 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우가 짜증이 난다는 듯 오버액션을 취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민은 이미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래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생각했다.

진우와 미주가 진 회장을 엿 먹인 게 아니라, 죽여 버렸다니. 싸늘한 표정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저를 보고 있는 연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쨌든 살인에 나를 빼 준 건 정말 고마운 일인데, 너희들이 내 일을 다 망쳐 놨잖아.’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도록 기분이 좋지 못한 건 저만 이 일에서 배제되어 그런 게 아니었다. 진우와 연호 사이에서 조금씩 힘을 기르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아직 진 회장이 죽으면 안 됐다.

그간 저들의 계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눈을 감아 주고 있었던 건 말이다. 그들이 진수오를 끌어내린 후 자기들의 세상이라 여길 때 진 회장과 손잡을 경우도 생각해 뒀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저를 배신한 진우 대신, 진수오는 새로운 사냥개로 재민을 지목했었으니깐.

‘그걸 알면서도 나를 끌어들이려 했던 진 회장도 정말 대단해.’

진우를 꺾으려는 강력한 욕망에 사로잡힌 진수오는 가지고 있던 재민의 비밀을 덮어 두고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연호와 연대했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진우에게 알면서도 속아 주고 있었는데.

지금 저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연호의 눈빛에 어떤 직감 속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차연호가 알았구나.’

그렇다면, 그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제가 먼저 움직여야 할 것만 같았다.

‘이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난 생각해, 형.’

여전히 미주 앞에서는 철없던 소년의 모습이 되어 장난치는 진우를 보면서 재민은 비릿하게 웃었다.

“오늘 오래간만에 다 같이 밥이나 먹어요.”

재민의 말에 진우가 반색을 표하며 대꾸했다.

“좋지. 최근 몇 년 동안 마음 편히 밥을 먹어 본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진우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는 미주가 피식 웃었다.

“그래,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거 먹으러 가. 술도 한잔하고.”

“대낮부터 낮술이라니. 역시 초빼이 짬은 여전하구만.”

저를 놀리는 진우의 말에 미주는 웬일로 화내지 않았다. 지금의 이 평화가 너무 오랜만인 듯해 조금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고. 그래도 오빠들이랑 밥 먹으러 간다 말은 해야 하니, 잠시 갔다 올게.”

미주는 연호와 연희가 서 있는 무리 쪽으로 다가가 조심히 연호를 불렀다.

“연호 씨, 여기 끝나고 나면 간단히 오빠들이랑 식사 좀 할까 하는데, 자릴 비워도 될지 조금 걱정이라.”

연호가 옆에 서 있는 미주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가 별거 중이고 사이가 안 좋다고 대부분 생각할 테니 네가 자리를 비워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 같아.”

사람들이 저희를 주목할까 봐 미주는 건조한 말투로 심드렁한 척 말했다.

“다만 걱정인 건 여기서 더 나쁜 이야기가 날까 봐, 그게 좀 그렇긴 하네요.”

“이미 더 나쁠 것도 없어.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헤어지나 내기하고 있을 거라니까?”

“…알고 보면 당신도 베팅했을지 모르죠.”

그러자 연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헤어지는 데 전 재산 걸어 놨어. 걱정하지 마.”

농담 섞인 말에 미주가 살짝 웃음을 꾹 참자, 연호도 조금 편안한 미소로 그녀를 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관계라 여겼는데.

물론 진 회장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따로 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마치 친한 친구라도 된 것처럼 전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어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지금 제 마음은 사랑이지만, 미주에겐 어쩌면 우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그녀가 저를 죽을 만큼 다시 증오해 주길 바라는 마음 또한 없잖아 있었다. 사랑하기에 미움도, 증오도 생길 텐데.

이젠 미주가 더는 저를 사랑하지 않기에 미워하지도 않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서 우습지만, 친구라도 좋았다. 더는 저를 남자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 형태가 무엇이든 상관없을 마음이지만.

이제는 그녀를 놓아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연호는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밥 먹으러 갈 때 정재민도 같이 가는 거지?”

“…음… 네.”

연호가 여기서 왜 또 재민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저를 보며 대답하는 미주의 얼굴에 숨길 수 없이 드러난 ‘아직도 질투하냐?’는 물음에 연호는 그게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이런 이야기 싫어한다는 거 알아. 근데, 미주야. 가능하면 정재민이랑 단둘이서는 만나지 마. 서진우랑 함께는 괜찮은데… 그게, 지금 다 뭔가를 설명할 순 없지만 날 믿어 줘.”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전에 정재민의 이름이 오르내렸을 때는 이성을 잃고 감정에만 휩싸여서 그녀를, 그리고 두 사람의 소중했던 것까지 잃었다.

“때가 되면, 지금 어수선한 이 상황이 다 끝나면 그때 설명해 줄게.”

“그래요, 그렇게 해요.”

“그래도 그냥 여기서 가 버리면 내 입장이 있으니깐 외삼촌 가시고 나면 살짝 빠져나가서 잘 놀다가 집에 들어가.”

“…그래요, 그럼.”

미주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는 걸 연호가 물끄러미 볼 때였다.

“연호야, 우리 조금 걸을까? 남편 생전에 여기 걷는 거, 참 좋아했는데…….”

미망인이 된 연희가 일부러 사람들 들으라는 듯 조금 큰 목소리를 내자 연호가 누이를 보았다.

“…웬 산책?”

“그냥, 너도 좀 걷고 싶을 것 같아서.”

눈치 빠른 연희를 보며 연호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한 번 털었다.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산책을 한다는 핑계로 사람들 무리에서 멀어졌다.

“누나, 전에 우리가 얘기한 대로 일단 누나가 회장직에 올라. 그게 모양새가 좋으니까.”

군중들에게서 멀어진 연호가 연희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답답했다는 듯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면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외삼촌이랑은 이야기 끝났어. 누나가 회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부터 바로 언론 플레이 들어갈 거야.”

연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연호가 담배를 깊게 마시고는 내뱉으면서 말했다.

“중공업, 약속대로 서진우가 가지고 가면 돼. 누나가 회장으로 있을 때 계열사 분리해 놓는 게 내가 부담이 덜하니깐.”

“그래, 만약에 이 일이 훗날에 문제가 돼도 내가 그랬다 너는 떠넘기면 되니깐 다음 달에 있을 이사회에서 슬슬 이 일,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

연희는 동생 곁으로 다가가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면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수 있을 거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모든 건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넌 네 가족과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어.”

미소를 입가에 건 연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누나를 향해 대답했다.

“돌려서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누나.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연호의 말에 연희가 아까보다 더 밝게 웃으면서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네가 뭔 생각인지 나 다 알아.”

“…그래서?”

연호는 누나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는 듯 커다란 손으로 어깨를 토닥이면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내 일은 알아서 잘할 테니 이젠 누나도 모든 걸 잊었으면 좋겠어…….”

“그래, 이제부터 내 삶을 다시 살아 보려고. 물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긴 하지만 괜찮아, 내 업보니깐. 그러니 연호야, 네 가족은 이제 내가 아니라 윤미주라는 거, 절대로 잊지 마.”

간곡한 연희의 말에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누나가 바라는 것과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결말은 같지만, 그건 저 혼자 이룰 수 있는 바람이 아니니 연호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미주 씨는 서 전무랑 밥 먹으러 간다고?”

연희의 물음에 연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하나도 안 슬픈데 슬픈 척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옷깃을 잡아끄는 누이에게 늘 그렇듯 마지못해 따라간다는 듯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주차된 차에 이제 막 타려던 미주를 연호가 보고 있을 때였다.

반대쪽 차 문을 열고 미주와 함께 차에 타려던 진우가 연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연호는 안심이라는 듯 똑같이 행동하고는 제 차에 올라탔다.

“네 차 타고 갈래. 차 두 대가 움직이는 것도 번거로워.”

“그래, 그럼.”

연희가 먼저 자동차 뒷자리에 앉을 때, 재민이 보란 듯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연호는 늘 그렇듯 재민의 인사를 무시한 채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면서 생각했다. 미주가 재민과 함께 차를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담배 끝이 빨갛게 익어 갈 때쯤 연호는 결심했다.

‘서진우한테 이 일을 알리는 게 맞아. 서진우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지켜보고 나는 도우면 돼.’

제가 알고 있는 재민의 비밀은 연희가 임시 회장이 된 뒤 진우에게 오픈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연호는 재민을 지그시 노려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저를 보는 연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는 듯 재민은 안경을 손가락으로 쓱- 올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차에 올라타 기사에게 말했다.

“전무님 기다리실라, 빨리 갑시다.”

운전기사를 부드럽게 재촉한 재민은 먼저 떠난 진우의 차를 뒤쫓아 가는 중이었다. 실력 좋은 기사 덕분에 재민의 차는 단숨에 진우의 차를 따라잡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재민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옆 차로에서 달리는 진우의 차를 보았다. 새까맣게 선팅이 되어 있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저도 그러할 테니 재민은 묘하게 웃으면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메시지를 보냈다.

[때가 된 거 같습니다.]

“어째, 신호가 자꾸 걸리는 것 같네.”

“오빠도 참, 참을성 없기는. 쯧쯧.”

옆자리에 앉은 진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미주는 나잇값도 못 한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신호에 멈춰 선 옆 차선 재민의 차를 보았다.

‘연호 씨가 한 말 때문인 건 아니지만…….’

형식적인 추모 행사가 끝나고 재민이 제 차에 함께 탈 것을 권유했었다.

‘미주야, 내 차 타고 가자.’

‘아, 그게, 오빠. 진우 오빠한테 할 얘기도 좀 있고 해서 난 진우 오빠 차 타고 갈게.’

‘뭐야, 난 태워 준다고 한 적 없는데?’

이럴 때는 꼭 눈치가 없는 진우였다. 쓸데없이 한마디 거드는 바람에 하이힐 뒷굽으로 진우의 발을 꾹- 찍어 눌러야만 했다.

덕분에 재민을 거절한 셈이 되니 뭔가 미안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연호가 당부한 게 조금 걸렸다.

‘연호 씨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전에 같이 살 때도 종종 그런 말은 했지만, 아까는 조금 다른 뉘앙스였어.’

언제나 옆에 있었지만 언제나 알 수 없었던 재민의 마음 같은 짙게 선팅된 그의 차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진우가 미주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한예나는 3일 전에 마닐라에 무사히 도착했어.”

“아, 듣던 중 다행이네.”

“나는 내일 잠깐 마카오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랑 의논할 일도 있고.”

“그래, 잘 다녀오고, 오빠. 너무 무서운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오빠가 무서운 사람이겠지?”

가슴에 손을 얹은 미주가 눈을 감았다 뜨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닐라에서 한예나를 보호…겸, 감시해 줄 사람을 마카오에 있는 지인을 통해 구할 거라, 아무래도 내가 마카오에 가서 확인차 만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응, 뭔 말인지 알겠어.”

미주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진우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참, 돈은 어제 바로 현금으로 지급했어. 약속대로 100만 달러에 플러스알파를 조금 얹어서.”

“한국 떠나기 전에 내가 따로 챙겨 준 것도 있으니, 죽을 때까지 예나 씨가 돈 걱정이라도 안 하고 산다면 우리 죄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

조금 침울한 듯 대답하는 미주에게 진우는 위로하듯 말했다.

“어제 출국하기 전에 잠깐 만났어, 예나 씨. 네가 그랬다면서? 우리를 용서하지 말라고.”

* * *

진 회장의 장례식도 끝나고 화장까지 해 더는 그의 몸에 남아 있을 살인의 흔적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예나를 만났다.

‘미안해요, 예나 씨. 지금 증권가 찌라시에 도는 소문들 때문에 곤란하게 만들어서요. 이건 우리 약속에 없던 건데… 상황이 좀 그렇게 됐어요.’

미주가 진심으로 이 끔찍한 범죄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때, 예나는 뜻밖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에요. 전 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거액을 제안한 언니에게 일종의 승부를 건 거고, 다행히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웃기죠? 복수심에 눈이 뒤집혀 당신을 가담하게 할 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심정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끝나고 나니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이제 내 죄가 뭔지 느껴지기도 해 무섭기도 해요.’

예나가 또래의 여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미주는 조금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보이며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었다.

‘전 고마워요. 덕분에 더는 몸 안 팔아도 되고, 그럴듯한 플로리스트라는 직업도 가졌고요. 이 위대한 계획에 절 선택해 줘서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인사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예나 씨, 솔직히 말해요? 빈말이라도 그런 말 들으니 그래도 위안은 되네요. 참, 2년 동안 열심히 영어 공부했잖아요. 필리핀에 가면 뭐 할지 생각은 해 놨어요?’

물론이라는 듯 예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닐라에 도착해서 대충 짐 정리하고 나면 마사지나 실컷 받으려고요. 솔직히 말해 딱히 별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아요. 절대로 제가 아는 걸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

눈치 빠른 예나의 말에 미주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꾸했다.

‘역시, 보는 눈은 있었어.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그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하나예요.’

‘당연하죠. 전 가진 걸 잃고 싶지 않아요. 지금 너무 행복한데 왜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화를 자초하겠어요?’

‘그러게요. 나라도 절대로 평생 죽을 때까지 아무 말 안 하겠다.’

다행히 예나는 똑똑해서, 손에 쥔 걸 멍청하게 놓치는 일은 없을 듯해 보였다.

그리고 굳이 묻지 않아도 진우가 이중 삼중으로 혹여 배신을 대비해 예나의 입을 봉할 방법을 만들어 놨을 테니까.

‘평생 나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마요. 나 역시 예나 씨를 진창으로 끌어들인 죄, 평생 되뇌면서 속죄하며 살게요. 그리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모든 걸 다 잊고 행복하게 잘 살아요.’

‘서울 일 다 정리되고 여유 되면 마닐라에 놀러 오세요. 언니, 보고 싶을 거예요.’

‘설마, 내가 아니라 진우 오빠가 보고 싶겠죠.’

다른 그림체로 예쁘게 생긴 두 여자가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헤어질 때 눈물을 살짝 보이던 예나를 떠올리자, 미주의 눈가도 촉촉해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조금 울컥했다는 걸 진우가 느꼈는지 조금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풀었다.

“혹시나 해서 집은 마카티에 구해 줬어.”

“마카티?”

“어, 거기가 마닐라에서 치안도 나쁘지 않고, 나름 잘사는 동네거든.”

미주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눈을 흘겨 뜨면서 물었다.

“혹시… 내일 마카오 가는 거, 실은 마닐라 마카티에 가는 거 아니야?”

“어? 아닌데? 거긴 내가 왜 가?”

“…뭐야? 흐음… 난 또, 2년 동안 예나 씨랑 오빠랑 뭐 있는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된다는 듯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 진우가 미주를 째려보면서 한숨 쉬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동업자한테까지 그러진 않는다, 어?”

“…하긴, 동업자랑 그러면 상도가 없는 거긴 하지. 오빤 주변에 여자가 그리도 많으면서 여자 마음 하나도 모르다니. 아직 멀었다, 멀었어.”

“뭔 소리야, 대체?”

눈치껏 보아 하니 예나의 슬픈 짝사랑인 듯해 미주는 가슴이 아팠다. 하필이면 이런 나쁜 놈을 좋아하다니, 제가 다 예나에게 미안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오빠는 좀 그래.”

“…얘가 진짜…….”

미주가 괜히 죄 없는 진우를 타박해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셋이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아, 거기에는 요한과 도균 등 진우가 아끼는 사람들도 여럿 함께하고 있었다.

“재민아, 아까 차에서 미주가 뭐라는 줄 아냐? 나한테 여자 마음을 모른단다. 참, 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우가 재민의 잔을 채워 주자 재민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근데 제가 봐도 형은 여자를 잘 몰라요.”

“뭐? 이것들이 또 둘이서 몰아가고 있네, 씨-”

진우가 일부러 차에서 미주와 쓸데없는 잡담을 했다는 듯 재민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일상적으로 쓰는 욕을 하려고 하자 미주가 인상을 딱 쓰면서 말을 잘랐다.

“욕하지 마. 나는 욕 못 해서 안 하는 줄 알아?”

“네, 네, 재벌 사모님 되시는 분께서 어련하시겠어요?”

진우의 놀림에 미주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우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눈치는 챘기에 저 역시 재민에게 슬쩍 대화의 화살을 돌렸다.

“진우 오빠는 평생 바람둥이로 살다가 죽든가, 모르겠고. 오빠는 언제 결혼할 건데?”

“…뭔 소리야. 갑자기 왜 나한테 불똥이 튀니?”

“그때 그 여자, 아직도 만난다면서? 입 싼 진우 오빠가 다 말해 줬거든.”

재민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고, 미주는 실눈을 뜨면서 말했다.

“여기도 나쁜 놈이네. 여자들 울리는 나쁜 놈 하나, 여기 둘.”

미주가 잔을 들어 ‘하나’에 진우의 잔에 부딪치고 ‘둘’에 재민의 잔에 부딪치면서 한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뭔가 작정이라도 한 듯 저를 놀리는 미주의 모습에 재민이 웃으면서 그녀의 빈 잔을 채우며 운을 뗐다.

“여기 셋, 네 남편을 빼먹으면 섭섭하지.”

‘셋’이라 말하면서 미주의 잔에 잔을 부딪친 재민이 보란 듯 술을 마셨다. 조금은 알쏭달쏭한 재민의 행동에 미주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대답 대신 제 잔을 말끔히 비워 낼 때였다. 재민 때문에 순간 미묘해진 분위기를 요한이 끼어들면서 유연하게 환기했다.

“나도 끼워 줘요, 미주 씨. 여기 넷. 우리 건배 진짜 오랜만인 거 알죠?”

“요한 씨도 나쁜 놈이었어요? 뭐야, 여기 진짜 대환장 파티네?”

일부러 잔을 부딪쳐 오는 요한을 보면서 미주가 질렸다는 듯 질색하지만, 얼굴은 온통 웃음이었다.

“아아, 나도, 나도. 미주 씨, 여기 다섯! 나 빼먹지 마. 나도 여자들한테 나쁜 남자라는 말 많이 듣는데.”

“뭐야, 이 나쁜 놈들아! 자랑이다, 정말!”

물론 이어서 도균까지 가세하면서 졸지에 석 잔을 연거푸 마시게 됐지만 말이다. 술이 센 미주가 볼이 발그스름해지면서 취기가 올랐을 무렵이었다.

“자, 나쁜 놈, 나쁜 년, 모두 잔 들어. 건배 한번 해야지.”

진우가 건배를 제안하자 모두 즐겁게 잔을 높이 들었다.

이제 비극은 끝났고, 비밀은 숨겼으며, 앞으로 꽃길만이 펼쳐지리라 모두 의심치 않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 재민만은 그들과 조금 다른 결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제가 생각한 그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심했다.

앞으로 미래가 어찌 되든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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