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연우의 것
「연우, 이 아이가 말로만 듣던 네 딸이야?」
강의실이 소란스럽다. 동문의 질문에 연우가 힐긋 옆자리를 넘겨 보았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연호가 꼬물거리며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댕그란 머리통이 멀뚱히 올라왔다. 커다란 눈이 깜빡깜빡 주변을 훑다가,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을 향해 해사하게 웃었다.
「아니야.」
연우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단호한 억양으로 답했다. 연우와 연호를 둘러싼 이들이 시선을 교환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연우와 연호를 번갈아 보고는 ‘What?’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연우 너랑 똑같이 생겼다고!」
「딸 아니고, 아들.」
연우가 시큰둥하게 정정하자 그제야 야단들이 멎어 들었다. 아이를 예뻐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라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연호의 이름은 하나인데 부르는 별칭들은 별스럽게도 많았다. 선샤인부터 시작해서 달콤한 것들은 모두 연호의 차지였다. 유별나게 사람 손을 잘 타고 방긋방긋 잘 웃는 연호의 덕이기도 했다.
“아버지, 이거.”
연호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가지고 온 주스병을 연우에게로 건넸다. 주스병을 받아든 연우가 가볍게 뚜껑을 따서 건네주려다 서윤의 성화를 떠올렸다.
‘연호는 꼭 빨대 꽂아서 줘야 해. 안 그러면 흘려서 옷을 갈아입혀야 하니까.’
연우가 가지고 온 가방 앞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세련된 디자인의 서류가방 앞주머니에 잠들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하트 모양 빨대가 연우의 손가락 사이로 딸려 나왔다. 연우가 뚜껑을 연 주스병 안에 가볍게 빨대를 꽂고는 연호에게로 건넸다. 연호가 꺄륵 웃으며 기쁘게 주스병을 받아들었다.
「오, 연우. 세심하기도 해라…….」
그 모습을 육아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양 지켜보고 있던 한 명이 유난스레 감동한 얼굴로 손을 모았다. 이미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진 연우는 개의치 않고 주스를 마시는 연호를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서윤이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일어났다.
은퇴를 선언한 연우는 많은 삶을 다시 살아내야만 했다. 은퇴 선언 직후에는 서윤과 한국에서 잠시 동안 평화를 지킬 수 있었으나 정말 잠깐일 뿐이었다.
연우의 어머니는 외동딸이었고, 우 회장은 딸의 아들인 연우에게 회사를 넘겨주기를 원했다. 유예는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만이었다.
연우와 서윤은 연호를 낳고 얼마 뒤 유학길에 올랐다. 그사이 수 해가 흘렀고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둘째가 들어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새도록 서윤을 물고 빨지 못해 안달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문제는 서윤이 누구보다 육아에 열심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용인만 다섯에다 현지에서 구한 보모를 두 명이나 고용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서윤은 무엇이든 자신의 손으로 해 주고 싶어 했다. 보모들이 도통 할 일이 없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루는 연우가 서윤에게 넌지시 이유를 묻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내게 이렇게 해 주셨으면 했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때 서윤의 표정이 얼마나 침울했는지, 연우는 난감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연우의 표정이 굳어지자 서윤은 수없이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학교 다니기도 바쁠 텐데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하지만 임신이 하루 아침에 끝나는 일은 아니었다. 서윤의 피로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늦은 밤 돌아온 연우가 어깨에 짙게 입 맞춰도 ‘아, 안 돼. 오늘은 정말로 힘들어…….’라고 중얼거리며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서윤도 납득할 만한 결단.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몰라도 어떻게든 연호는 떼어 놓아야 했다. 얌전한 아이라고는 하나 다섯 살 난 남자아이까지 돌보기에 서윤의 몸은 지나치게 약했다.
결국 연우는 담당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모조리 이메일을 돌렸다. 150만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 약속과 함께였다. 그렇게 아주 순조로이, 연우의 아이 동반 수업은 시작되었다.
입학 초기에는 그랬다. 은퇴한 피아니스트인 ‘U’를 알아보는 사람이 캠퍼스 곳곳에 있었고 개중에는 연우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U’는 몰라도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는 작은 천사 ‘Woo’는 알았다.
연우의 팔에 떡하니 엉덩이를 걸친 채 안겨 오며, 손수 작은 손까지 흔들어 주기까지 하는 아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캠퍼스 내 명물이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딱딱한 교수들마저도 자리에 얌전히 앉아 시대를 월반한 천재 소년처럼 수업을 경청하는 연호의 모습을 보면, 절로 콧소리를 냈다.
오늘도 왕세자의 하굣길인 양 힘껏 손을 흔들며 아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온 연호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이, 연주야아…….”
어느새 막달에 접어들어 배가 부푼 서윤에게로 연호가 폭 안겨 들었다. 짧은 팔이 꼬물꼬물 서윤의 배를 감싸 안고 동생에게도 인사했다. 서윤이 귀엽다는 듯 연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우리 연호, 오늘 아빠 말씀 잘 들었니?”
연호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윤이 기특한 마음을 담아 세게 연호의 머리칼을 흩트렸다. 연우가 처음 연호를 학교에 데리고 다닌다고 했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연우와 연호는 정말 꽤 잘해 내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서 손 씻고 나와. 밥 먹자.”
“네, 어머니.”
힘이 빠진 아이의 목소리가 예의 바르게도 흘러나왔다. 금세 작은 걸음이 두다다다 달려나가는데, 연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서윤이 의아하게 연우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가 삐딱해 보였다. 시선을 느낀 서윤이 짐짓 당황하여 연우와 눈을 맞췄다.
“아…….”
시선이 엇갈리자마자 그 못마땅한 눈빛의 정체를 알아챘다. 서윤이 조심스레 연우에게 다가갔다. 식을 올린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서윤은 그를 완전히 편하게 대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증오하거나 경멸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아니었다.
연우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서윤은 천천히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연우를 향하는 어둡고 습한 감정들을 끌어안은 채로, 때때로 그를 보며 설레고 입 맞추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에는 어쩌면 그의 귓가에 사랑한다 속삭일지도 몰랐다.
서윤이 양팔을 들어 손을 그의 어깨에 걸쳤다. 연우가 기꺼이 고개를 숙이며 오른쪽 볼을 서윤에게로 대 주었다. 쪽, 짧은 입맞춤을 하기 무섭게 서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오늘도 고생했어…….”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연우가 서윤의 허리를 다정히 끌어안았다.
* * *
어둠이 낮게 내리깔린 밤이었다. 서윤과 연우는 보모의 손에 들려 보낸 연호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침실로 돌아왔다.
천사 같은 얼굴로 새근새근 잠든 연호를 보며 서윤은 부드럽게 미소짓고는 연우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치들었다.
웃고 있기는 했다. 다만 연호를 바라보면서가 아니라 서윤을 바라보면서 연우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따라 웃기는 했지만 서윤은 걱정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서윤은 종종 연우가 연호에게 부성애를 느끼기는 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저, 연우야.”
연우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오른 서윤이 조심스레 연우를 불렀다.
“연호를 사랑하지?”
창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어스름히 연우의 표정이 비쳤다. 고요한 호수처럼 표정이 지워진 얼굴은 곧장 흔쾌한 대답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연호랑, 연주 모두 사랑하지?”
서윤이 불안한 눈으로 배 위에 손을 올리며 다시금 물었다.
연우가 서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본다. 말하자면 서윤과 자신의 아이라는 것 외에 다른 감상은 없었다.
그가 평생 할 수 있는 사랑에 한계선이 있다면 선 안의 것은 모두 서윤의 차지다. 아마 더 살아도 그에게 서윤 이상의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당연한 소리를.”
하지만 서윤 앞에서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은 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도한 사랑의 계절은 완벽해야 했다.
“연우와 연주를,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해.”
연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신께 맹세하듯 읊조렸다. 서윤의 입가에 입술을 맞대며 힐긋 내려다본 그녀 잠옷의 가슴께가 어느새 축축했다.
연호를 임신했을 때도 겪었던 일이었다. 막달 무렵, 서윤은 젖에서 뻐끔뻐끔 모유를 흘려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흘러내리는 젖은 모두 연우의 차지였다.
탈이 날 수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연우는 흐르는 모유를 그저 받아먹었다. 그녀의 젖가슴에 혀를 내어 할짝거리며 모유를 입 안 가득 삼켜 냈다.
짙은 시선에 그때가 떠올랐는지 서윤이 주먹 쥐어 연우의 어깨를 밀어 냈다. 보지 않아도 얼굴이 붉어져 있을 게 뻔했다. 연우가 달빛을 가로질러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서윤아.”
연우가 서윤의 위로 올라온다. 볼가에 쪽, 쪽 달게도 입을 맞췄다. 서윤 역시 끙, 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연우를 밀치지는 않았다. 그저 묵직하게 내려앉는 남자의 무게를 받아 냈다.
“잠옷이 다 젖었네.”
얼굴을 가까이 맞댄 채로 연우가 지껄였다. 서윤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을 달싹거렸다.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뿐인데도 다리 사이가 뻐근해졌다.
“벗겨 줄게.”
연우의 손가락이 차근차근 잠옷 단추를 끌렀다. 질질 흐르는 젖이 창피한지 서윤이 양손으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선생님께서 젖 돌 때 만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들어야 하지 않을까.”
연우가 엄하게 서윤의 양 손목을 쥔다. 부끄러워 도리질 치는 서윤을 보며 쯧, 잠시 혀를 차고는 협탁 서랍을 열어 부드러운 끈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서윤의 두 손목을 그러쥔 채였다.
“자, 잠깐…….”
“사랑하는 아이한테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
사랑이라는 단어에 묘하게 힘이 실려 있다. 서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연우가 삐뚤게 웃으며 서윤을 일으켜 세웠다. 젖이 흐르는 기묘한 기분과 함께 서윤의 양팔이 뒤로 향했다.
“……!”
서윤이 놀라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처럼 서윤과 얼굴을 맞댄 채로 뒤로 옮긴 서윤의 손목에 끈을 감았다. 붉은색 공단 리본이 그녀의 새하얀 몸에 묶여 더할 나위 없이 고혹적이었다.
“연호 임신했을 때보다 더 흐르는 것 같네.”
서윤의 팔을 뒤로 결박한 연우가 그녀를 가볍게 들어 올린다. 어느새 침대에 기대어 앉은 그의 허벅지 위에 서윤을 앉히곤 감상하듯 젖이 흐르는 모양을 구경했다.
느긋하게 희롱하는 얼굴을 보며 서윤이 괴로운 듯 미간을 좁혔다. 연우가 그 모습을 오만하게 바라보았다. 검지 끝으로 풍만한 젖가슴을 타고 흐르는 젖을 닦아 주며 나직이 물었다.
“괴로워?”
“……흣.”
손길은 선처럼 가늘되, 그녀를 향한 음욕은 우물처럼 깊고 짙었다. 연우가 희게 눈을 빛내며 뒤로 손이 묶인 채 떨고 있는 서윤을 응시했다.
“울고 싶어?”
“제발…… 하, 하지 마.”
서윤이 눈가에 가득 눈물을 매단 채로 애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 눈물이 볼을 가르며 후두둑 떨어졌다.
“왜 울지?”
의미 없이 물으며 연우가 옅게 웃었다. 서윤은 매번 꽃이 만개한 꽃봉오리를 떨구고 스러지듯이 울었다. 연우는 그를 지켜보기를 좋아했다.
그 모습이 예뻤으니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기에. 무엇보다 그녀가 낙화하는 바닥이 자신의 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젖은 아이를 위한 거야…….”
“나도 당신의 아이이던 때가 있었잖아.”
서윤의 설득을 연우가 무던히 쳐 냈다. 지그시 바라보며 그렇지 않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젖이며 보지며 당신 몸에서 흐르는 물에 환장하는 걸 보면, 그 시절에 당신 젖을 못 받아서 이렇게 집착하는 모양이야.”
“말도 안 되는…….”
“아니, 내 결핍은 영원히 당신이니까.”
연우가 불쌍한 체하며 혀끝으로 흐르는 젖을 핥아 냈다. 그 아찔한 감각에 서윤이 어깨를 떨며 전율했다. 결박되어 제자리걸음뿐인 양 손목을 비비며 수치에 떨었다.
젖을 핥는 소리가 점차 짙어져만 갔다. 가볍게 핥아 젖을 머금었던 입술이 아이처럼 쪽, 쪽 젖꼭지를 물고 빨았다. 처음 모성애를 품었던 남자에게, 젖을 물리는 기분이 오싹했다.
“제발, 아흐, 제발. 연우야. 젖은, 젖은 이제 그만…….”
서윤이 애걸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눈물을 아래로 떨궈 젖에 짠 내가 섞이는 지경이었다. 연우는 마음 깊이 즐거워하며 서윤의 젖을 양껏 핥아 먹었다. 입에 물 수 없는 다른 쪽 젖은 아깝다는 듯 손으로 받아 내며 이따금 그녀의 젖가슴에 마사지하듯 문질러 주었다.
“아흣, 으.”
애무가 길어지자 성감이 몰려들었다. 무릎이며 허벅지, 모두가 경련하며 어쩔 줄 몰라 울었다. 아무리 질끈 눈을 감아 외면해 보아도, 연우의 혀끝이 젖을 핥아 먹는 궤적과 삼켜 내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선명했다.
다 큰 남자에게 젖을 물리는 스스로가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갔다. 질척하고 외설적이었다. 밑바닥을 나뒹구는 기분이었다. 무릎을 꿇고 그의 다리 사이를 기지 않아도 그랬다.
“보지도 젖만큼은 젖어 있어야 그 갈증이 조금은 풀릴 텐데…….”
연우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젖을 빨리는 일을 무엇보다 수치스러워하는 서윤더러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서윤은 매번 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목을 내주고는 했다. 더 무겁게 느끼는 감각을 내어 주고 기꺼이 연우의 기대에 응해 주었다.
“젖었어, 엄청, 무척…….”
제정신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열락에 잠겨 더듬더듬 단어를 맞추는 행위에 불과했다. 연우가 빨고 있던 가슴에서 고개를 떼고 비스듬히 울먹이는 서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여상한 질문에 서윤의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색색거리며 더운 열기를 뱉어 내는 입술은 흐느끼며 흘린 타액으로 붉고 번들거렸다.
“거짓말은 나쁘지 않나. 연주가 이런 엄마를 보고 뭘 배우겠어.”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서윤을 바라보며 연우가 부푼 배를 쓰다듬었다. 서윤의 배에서 작은 파동이 느껴졌다. 혹 아이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꼴이라니 서윤의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연주는 슬프겠네. 곧 벌을 받는 엄마를 봐야 하니까.”
아이로 말미암아 서윤이 붙들려 드는 이성의 끈을 연우가 냉정하게 끊어 냈다. 연호를 가졌을 때도, 연주를 가지고도, 관계를 치를 때면 서윤은 배를 끌어안은 채로 아이가 듣는다며 매번 크게 울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귀를 틀어막을 수라도 있는 듯이.
“그러지, 마.”
서윤이 배 속의 고동을 느끼며 연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연우가 그녀의 저항을 시큰둥한 눈으로 맞받아쳤다. 서윤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몇 년을 함께 지내고도 그의 간극이 적응되지 않았다. 낮에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밤이 되면 무자비하게 그녀의 위로 군림했다.
숨이 더워질 만치 짙은 애정과 등골이 서늘한 육욕 사이에서 서윤은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애정에 질식해 죽어 버릴 것 같다가도 그가 그녀를 내던져 놓은 밑바닥의 한기에 오금이 저렸다.
“연우야…….”
간절한 부름에도 서늘하게 맞닿았던 연우의 눈매가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자비를 베풀 듯 다정하게 올라간 입꼬리에 서윤이 배알도 없이 희망을 품었다.
연우가 서윤의 배의 둔덕 위로 입을 맞추었다. 누구에게 전하는지 모를 말을 낮게 읊조렸다.
“응, 괜찮아. 엄마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지.”
분명 애정이 섞인 목소리였는데, 왜 간담이 서늘한지 몰랐다. 서윤이 주춤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그의 무릎 위, 얼마 가지 못해 붙잡힐 도주였다.
연우의 팔이 서윤의 등 뒤를 감싸며 묶인 손목을 매만졌다. 고개는 여전히 서윤의 배에 내린 채로 음험한 목소리를 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젖보다 보지를 적시는 데 더 익숙하거든.”
서윤의 어깨가 발발 떨린다. 어느새 그의 손에도 여과 없이 느껴질 정도로 서윤은 떨고 있었다.
“보지에 좆만 문질러도 미끈거릴 정도로 질질.”
“……보.”
“가끔은 화장실을 못 가리나 싶을 때도 있고.”
“여보…….”
눅눅한 음담에 서윤이 울음을 떨구며 그를 불렀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부탁하는 밤이 찾아오면 서윤은 본능적으로 그를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그럴 때면 울고 있음에도 꼭 애교를 피우듯이 들렸다.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연우의 귓가에 서윤의 목소리는 언제나 달았다.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미소를 띤 채로 어디 더 발칙하게 굴어 보라 시선으로 말했다.
“응?”
서윤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흐느꼈다. 눈물을 떨구고, 젖을 흘리며, 밀지에서 역시 단내나는 물을 내보내고 있는 주제에 순결해 보이는 눈이었다.
“어, 얼른.”
무수한 밤을 음탕하게 울었으면서 더듬거리는 목소리도 그저 하얗게 들렸다.
“얼마나 쌌는지 봐 줘…….”
부풀어 오른 배 탓에 서윤은 끙끙거리며 무릎을 세워 다리를 보여야 했다. 백합처럼 말하며 벌린 다리 사이가 붉은 장미 꽃잎처럼 새빨갛다. 물기로 잔뜩 젖은 밀지를 연우가 응시했다.
출산을 위해 옅은 음모를 다 밀어 놓은 통통한 아래가 그를 향해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어서 희롱하고 수치를 달라는 듯 애액이 흐르는 구멍은 연신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그의 입술 새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건조하다. 다만 고작 그걸로는 눈빛에 어린 욕망을 가리기는 어려웠다.
“당신, 천박해 보여.”
연우의 목소리가 신랄하다. 천박하다니. 모욕적인 말에 서윤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통 안 싸는 곳이 없네.”
비난하듯 읊조리며 연우가 서윤을 훑어 내렸다. 울음을 쏟아 내는 촉촉한 눈동자와 타액이 번들거리는 입술, 모유를 흘리는 젖과 가득 흘린 애액까지 공평히 시선을 둔 뒤에야 힐긋 그녀를 보았다.
서윤에게로 맹렬한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연우가 성기를 꺼내 들었다. 언제 보아도 흉측한 물건이었다. 서윤이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
연우가 손을 들어 우악스럽게 그녀의 고개를 바로 한다. 시선을 맞추고 끈적하게 훑어 내렸다. 형형해 타들어 갈 듯한 눈빛을 바라보며 숨조차 쉬지 못하는데, 연우가 입술을 뗐다.
“괜찮으니까 더 천박하게 굴어 봐.”
“…….”
“나는 가끔 상상하거든.”
“……흣.”
“집에 들어왔을 때 이 자리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당신을.”
연우가 좆을 손에 쥔 채로 벌어진 서윤의 다리 사이로 가지고 갔다. 이미 함빡 젖은 아래에 좆 대가리를 뭉근하게 비볐다. 끈적한 애액이 찌걱찌걱 그의 성기에 달라붙어 왔다.
“당장 보지부터 쑤셔 달라고 애원하는 거야.”
“아흐, 읏.”
“하루 종일 몸이 달았다고 말하면서.”
서윤이 고개를 저으며 울음을 쏟아 냈다. 눈앞은 점멸할 듯 새하얗게 흐트러지는데 연우의 목소리만은 선명했다.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폭격처럼 내리꽂히는 듯한 착각에 시달렸다.
“혼자 얼마나 음탕하게 즐겼으면 손가락은 죄다 쪼글거리고. 보지에서는 씹물이 흐르다 못해 거품이 일어.”
“아, 읏. 아니야, 아니야…….”
그의 목소리로 일깨워진 환상이 서윤을 괴롭혔다. 자신의 얼굴을 한 낯선 여자가 상스럽게 그를 향해 애걸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펼쳐졌다.
“이렇게 좆만 가지고 가도.”
벌어진 구멍 틈새로 연우가 성기 끝을 물렸다. 서윤의 눈이 일순 크게 뜨이며 버거운 성기를 조금씩 받아 냈다. 허공에 붕 뜬 엉덩이가 부들거리며 몸을 가르는 성기를 움칠움칠 삼켰다.
“벌름거리면서 먹어치우겠지.”
“흐, 히익.”
“다음에 또 그러면 전화해서 들려줘. 빨리 돌아와서 보지에 쑤셔 달라고 부탁해도 좋아.”
“그런, 그런 적 없, 아흣, 흑. 흐으, 응……!”
마치 그런 일이 있었다는 듯 말하는 연우를 향해 서윤이 아연하며 신음을 흘렸다. 느긋하게 허리를 쳐올리는 연우 탓에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연우가 주는 쾌락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퍼져 나가며 몸을 잠식한다. 서윤이 살금살금 연우의 허리 짓에 장단을 맞췄다.
“상관없잖아. 젖 흘리면서 허리 흔드는 당신 보면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후.”
“미워, 미워. 흣. 꼭 그렇게, 못되게……. 아흐, 읏, 앙.”
“하, 씨발…….”
이미 흥건하게 젖어 말캉거리는 살점이 성기를 감싸자 연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더운 숨을 토해 냈다. 서윤의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자 흐르는 모유가 연우의 입가에 가랑비처럼 튀었다.
“여보, 흐, 여보. 아으, 흣.”
연우가 참지 못하고 서윤의 젖가슴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한 팔로 서윤의 등을 받치며 아이처럼 서윤의 젖을 빨았다.
쾌락에 못 이겨 침을 흘리며 울던 서윤은 어느새 비명에 가까운 신음성을 토해 냈다. 밑을 범하는 자비 없는 성기와 반대로 부드러운 머리칼이 가슴골을 사부작사부작 훑고 지나가면 상반된 자극에 매 순간이 절정처럼 느껴졌다.
“아, 으흣.”
“하아…….”
뜨거운 숨소리가 교차한다. 쉴 새 없이, 박자를 타며 굳게 닫힌 방문을 넘었다. 끝도 없이 서로를 탐하며 몸을 겹쳤다. 그녀의 밀지가 정액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연우는 서윤을 놔주지 않았다.
* * *
찌덕, 찌덕.
흰 원피스에 노란색 앞치마를 두른 서윤이 투명한 볼에 삶은 달걀과 마요네즈, 잘게 다진 피클을 넣고 주걱으로 꾹꾹 뭉갠다. 어젯밤의 정사로 피곤이 내린 얼굴이 뾰로통했다.
주걱으로 아직 뭉개지지 않은 삶은 달걀을 으깰 때마다 나쁜 놈, 나쁜 놈 씨근거렸다. 어느새 죽사발이 된 샌드위치 속 재료를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데, 허리 사이로 단단한 팔이 들어왔다.
“흐읍…….”
“자기야.”
육중한 몸이 서윤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폭 안겨 뒤에서 보면 서윤은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리 가.”
서윤이 이미 으깨질 대로 으깨진 속 재료에 공연히 화풀이하며 냉담하게 말했다. 부러 차갑게 낸 목소리를 들으며 연우가 피식 웃고는 목선을 따라 입을 맞췄다. 턱가를 핥아 올리며 짙게 그녀를 불렸다.
“여보.”
“……흣.”
“서윤아.”
쪽. 쪽. 목이며 볼이며 귓가에 간지러운 입맞춤이 난사했다. 애써 굳혀 놓은 마음이 또다시 줏대 없이 말랑거렸다.
“잘 잤어?”
서윤이 입을 다문 채로 식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제 무리했잖아.”
연우가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어젯밤 서윤이 울면서 그만해 달라고 빌 때 그녀를 보던 남자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늘 연호랑 마당으로 소풍 가기로 했어.”
서윤이 연우의 말을 자르며 제 할 말만 툭 꺼내 놓았다. 갇힌 몸을 비틀며 연우를 떨쳐 내려는 시도 역시 함께였다. 연우는 개의치 않고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나와. 내가 할 테니까.”
“됐어.”
“이대로 속옷만 젖혀서 박아 버릴까.”
연우가 서윤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서윤이 흠칫 어깨를 떨자 연우의 팔이 아래를 향한다. 서윤의 무릎께에서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쓸어올려 허벅지 뒤편을 쥐었다.
“막 잠에서 깨서 엄마 찾으러 온 연호한테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겠어?”
다리를 타고 올라온 손이 서윤의 엉덩이를 쥐었다. 한 손에 가득 주무르며 이따금 다리 사이를 스치듯 손을 놀렸다.
“당신은 내 좆에 박히느라 정신없어서 앙앙거리기 바쁠 테니까 나라도 대답해 줘야 하잖아.”
쪽, 쪽, 쪽…….
머리통 부근에서 내려지는 다디단 키스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서윤이 경직된 얼굴로 치마 속을 유려하게 흐르는 손길의 궤적을 좇았다.
“엄마도 맘마 먹고 있다고?”
“…….”
“아니지. 어쩌면 내가 당신 보지에서 흐르는 씹물을 빨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침은 아빠가 먹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순간 서윤이 있는 힘껏 연우를 밀쳐 냈다.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로 원망스레 연우를 흘기며 황급히 그의 품을 벗어났다.
“얼른 해……!”
“그럴까?”
서윤의 말을 단단히 곡해한 얼굴로 연우가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대로 꽉 껴안아 정신없이 입을 맞추며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쪽, 쪽, 쪽, 쪽.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쪽, 서윤의 입술 위로 입술을 포갠 연우가 피식 웃으며 물러났다. 연신 버둥거리던 서윤이 색색거리며 숨을 골랐다.
“정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서윤을 연우가 힐긋 넘겨 보며 식빵을 뜯었다. 능숙한 손길로 금세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어 냈다.
연우의 옆에 두 발자국 멀찍이 선 서윤이 샌드위치를 만드는 연우의 옆태를 바라보았다. 흰 셔츠를 입은 단단한 남자의 육체가 한눈에 도드라졌다.
공연히 지난 밤에 보았던 그의 육감적인 나신이 떠올라, 서윤이 황급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얼굴을 붉힌 채 정면을 향해 몸을 틀었다. 연우가 짧게 웃는 것이 느껴졌다.
“연호가…….”
한참 말이 없던 서윤이 작게 운을 뗐다. 갑자기 얼마 전 서윤에게 우다다 달려와 폭 안기며 눈을 빛내던 아이가 떠올라서였다.
그러자 칼로 샌드위치를 정확히 4등분 하여 도시락통에 정갈하게 담고 있던 연우가 서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싱크대에 살짝 몸을 기댄 서윤이 설핏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네가 피아니스트였다는 걸 들었다나 봐.”
“그래?”
“응.”
어머니, 아버지가 정말 피아노를 쳤어요? 2층에 있는 피아노는 어머니 것이 아닌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던 천진한 아이는 연우와 쏙 빼닮았되 그와 전혀 닮지 않았다.
“아빠 연주가 듣고 싶대.”
무슨 대단한 부탁이라고, 황급히 시선을 내리까는 서윤을 보며 연우가 픽 웃었다.
“그래.”
“……손가락에 무리일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서윤이 조금쯤 심란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서윤은 여전히 그가 피아노를 그만둔 일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의사로부터 일생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아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 자책하는 듯했다.
그 마음의 기저에는 그날 이후 피아노 앞에 앉지 않는 연우의 탓도 있으리라. 연우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짧게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애초에 그가 사랑한 것은 피아노가 아니었다. 그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그녀를 사랑했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벅찬 얼굴로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동자를 사랑했다.
또한 피아노 앞에 앉아 얌전히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그녀의 시간을 사랑했으며, 마침내 그가 흘려 놓은 선율을 한 발자국씩 밟아 제게로 온 그녀의 발걸음을 사랑했다.
그에게 피아노는 서윤을 곁으로 데리고 올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서윤을 다독일 수도 있으나, 비열한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윤이 그녀의 죄를 무겁게 느낄수록 연우의 죄는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사랑을 구걸할 수 있는 위치나마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 곡 정도라면.”
연우가 그 정도라면 무리는 아닐 거라는 듯, 고심 어린 대답을 내어놓았다.
“……정말?”
“정 걱정되면 옆에 앉아 줘.”
연우가 서윤의 턱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입술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에 함께 연주해도 좋겠지.”
연우가 미소로 서윤을 본다. 그녀의 선량한 마음에 기생해 살아갈 평생이 못 견디게 기대가 됐다.
그날 점심에는 함께 싼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나갔다. 사이에 연호를 두고 손을 맞잡은 채로 손을 흔들며 걸었다. 평화롭고 나태한 가족의 시간에 젖어 행복해하는 서윤을 보며 연우 역시 행복했다.
짧은 소풍이 끝난 뒤에는 피아노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서윤은 연우의 부탁대로 그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 소리와 함께 연주는 시작되었다. 나란히 건반 위에 오른 연우의 왼손과 서윤의 오른손이 낮은음부터 올라가, 높은음에서 내려오며 얼기설기 선율을 만들어 냈다.
잠시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아름다운 환상곡이 펼쳐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서윤의 생은 도돌이표처럼 흐르고 흐르다 연우의 곁에 앉았던 처음으로 다시 발을 디뎠다. 그녀의 자리는 그의 곁에서 영원토록 되풀이될 것이다.
우연우.
그의 이름에서부터 이미 예견되었듯이.
<괴물의 이름> fin.
참고문헌
『더 클래식 1』 문학수, 돌베개(2014)
『슈베르트 세 개의 연가곡』 나성인, 한길사(2019)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민모, 위즈덤하우스(2019)
괴물의 이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