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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8/10)

에필로그

그해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청명한 초여름의 오후였다.

약식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고 싶었던 서윤의 바람과는 달리, 두 사람의 결혼식은 다시 없을 만큼 성대하게 치러졌다. 하객들 역시 정·재계 인사들부터 예술계 거물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치 보란 듯 과시하는 규모였다.

그러한 태도는 식장 앞에 선 남자에게서 더더욱 두드려졌다. 몸에 핏되는 슈트를 갖춰 입은 연우는 내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님을 맞았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결혼 축하를 주고받는 그들 사이에서 몇몇 하객들만이 잘못 섞여 든 이물질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연우나 그의 손님들이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 같았다. 모두가 대본을 받아 본 연기자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자리에 앉은 몇몇 관계자들이 서늘한 위화감에 주변을 둘러보아도 모두가 평화로웠다. 압박당하는 듯한 자리에서 불편한 표정을 짓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연우의 부상과 은퇴 소식이 세간에 전해지면서 그보다 더 떠들썩한 것이 그의 결혼이었고 그의 연인에 관해서였다. 서윤과 연우의 관계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관계자는 식을 출산 이후, 비밀리에 진행할 것이라 점쳤으나 전혀 아니었다.

연우는 오히려 서윤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임신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아홉 살 연상의 스승, 결혼 경력이 있는 여자……. 분명 떠들기 좋은 이야기였으나 막상 이에 대해 시끄럽게 구는 이는 없었다. 아니,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는 게 더 맞았다.

그렇게 결혼 소식이 전해지고 두 달여 사이에 서윤의 등에 붙은 이혼 꼬리표는 흐릿해져 갔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인연에 대해 말했다. 보도 자료로 나간 ‘오랜 첫사랑’이라는 말에 주목했고, ‘순애보’라는 단어에 감동했다.

“신부님.”

신부 대기실에 앉아 소담히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있던 서윤이 플래너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순간 대기실의 조명을 받아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진 티아라가 눈부시게 빛났다.

2부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박힌 티아라는 연우가 서윤에게 청혼하며 건넨 선물이었다. 평생 그녀를 섬기겠다는 숭고한 맹세이기도 했다.

“신랑님 대기하고 계십니다.”

“……아, 네.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여자가 웃으며 서윤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배가 많이 부풀어 거동이 불편했다. 아이를 낳고 결혼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출산을 하면 또 한동안은 정신없지 않겠냐던 연우의 의견에 동의했다. 연우의 말처럼 결혼을 빨리 해치워 버리는 편이 아이에게도 나을 것 같았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만 더 뻔뻔스럽게 감내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서윤이 못내 한숨을 내쉬며 플래너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대기실 밖으로 향했다.

“…….”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연우의 등이었다. 낮은 웨딩 슈즈 덕에 키 차이가 상당하여 한참은 올려다보아야 하는 등이기도 했다.

“신랑님, 신부님 나오셨습니다.”

공연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랫입술을 깨물기 무섭게 그가 돌아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유월의 신부가 된 그녀를 향해 짙은 시선을 가져다 두었다.

“왜, 왜 그렇게 봐…….”

샅샅이 훑어 내리는 듯한 눈길에 참다못한 서윤이 연우를 보며 물었다. 연우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큼 가까워지자 연우와의 체격 차이가 새삼 실감이 났다.

“유달리 예뻐서.”

연우가 서윤 쪽으로 팔을 건네며 대답했다. 서윤의 눈꺼풀이 잠깐 사이 부리나케도 깜빡거렸다. 급히 그의 팔에 레이스 장갑을 낀 손을 올려두면서 공연히 다른 쪽을 바라보며 허둥지둥했다.

그녀의 외면에 얽힌 선연한 긴장감에 연우가 뻐근한 기쁨을 느끼며 그녀를 식장으로 이끌었다. 천천히, 느긋하게,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왕관을 받아드는 이처럼 그녀와 걸었다.

마침내 당도한 결혼의 문 앞에서는 영원을 생각했다.

그의 아이를 품은 그녀는 절대 도망칠 수 없을 평생의 족쇄를 떠올렸다.

이 걸음을 걷기 위해 그녀의 영혼 조각조각을 찢어 망가뜨린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서윤아.”

식장 문이 열리기 직전, 그녀가 그의 것이라 말하는 진정한 선언의 문턱에서, 연우가 서윤에게로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내리깔린 서윤의 눈꺼풀이 조심스레 들어 올려져 그를 향했다. 맑고 깨끗한 눈망울이 그의 매끈한 얼굴에 나비처럼 사뿐히 앉았다.

“맹세할게.”

연우가 팔에 올려진 서윤의 작은 손을 쥐고 끌어 올렸다. 입술 가까이 가지고 와 서약처럼 그녀의 손가락 위로 짧게 입맞춤했다.

“사랑해.”

낮고 그늘진 고백과 함께 문이 열린다. 신랑 신부의 입장을 기다리던 하객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잠시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두 사람을 환영했다.

버진 로드 위로 쏟아지는 꽃잎들을 따라 청아한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가 설계했던 그대로, 그린 듯 아름다운 결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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