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사람
Mendelssohn : A Midsummer Night’s Dream Op.61 - Ⅸ. Wedding March
꿈에 연우가 나왔다. 서윤이 모르는 연우였다. 조금도 다정하지 않고, 살가운 말씨도 없었다. 한계까지 서윤을 몰아붙이고 제멋대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귓가에 흘리기까지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서윤은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못 알아듣겠어? 남편이랑 할 때처럼 내 손에 보지 비벼 보라고.’
‘너, 그 씹새끼한테도 이렇게 보지 벌리고 애원했어?’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했다.
도대체 자신의 무의식 어디에 이런 끔찍한 연우가 존재하는 것인지. 서윤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정하면 그날 밤 연우에게 안아 달라 매달렸던 자신이 납득됐다. 하지만 맹세코 연우에게 그런 더러운 마음을 품어 본 적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서윤이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삼켜 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에서 고꾸라진 서윤은 그대로 꼬박 하룻밤을 앓았다. 다행히 단순 몸살이라 금세 털고 일어났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며 경고에 경고를 받았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서윤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시계를 돌아보았다.
7:30pm.
곧 연우의 오후 연습 시간이었다.
* * *
연습 시간 5분 전.
연우의 방 앞에 선 서윤이 노크했다. 속으로 3초를 센 뒤 문을 열었다. 연우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서윤은 조심조심 걸었다.
소리를 죽여 자리에 앉자 의자에 감싸인 몸이 포근했다. 그날 이후 이 자리에 놓여 있던 의자가 바뀌었다. 자꾸만 폐를 끼치는 듯하여 절절매는 서윤에게 연우는 쓰러지는 편이 더 민폐라며 매몰차게 말했다. 다행히 새 의자는 기존의 것과 달리 푹신하고 안락해 보였다.
자리에 앉은 서윤이 조용히 정각이 되기를 기다렸다. 힐긋 연우를 보자 묵념하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너른 어깨 위로 걸쳐진 화이트 셔츠가 그의 섬세한 생김새와 함께 그린 듯 잘 어울렸다.
“…….”
서윤이 작게 숨을 내쉬며 연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보았다. 벽 한 면을 채운 통유리로 노을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여기서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마당의 나무 그네가 보였다.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풍경은 평화로웠다.
곧 어긋나 버릴 평화였다. 서윤이 이미 8시가 훌쩍 넘은 시계를 연신 곁눈질했다. 그때까지도 연우는 건반 위로 손을 올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단 한 시간도. 연습을 게을리한 적 없다는 피아니스트의 불문율은 얼마 전부터 균열에 빠져 있었다.
벌써 며칠째, 서윤은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열 곡을 쳤고, 그다음에는 아홉 곡, 그다음에는 일곱 곡을 쳤다. 그렇게 연습 시간 동안 칠 수 있는 곡의 개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이제는 단 한 곡도 치지 못했다.
오늘 있었던 오전 연습과 중간 연습 열 시간 동안 이대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는 소리다. 서윤이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때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했는지 묻고 싶었으나, 연우는 단 한 번도 슬럼프에 빠진 적 없는 연주자였다. 마땅한 해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
그때였다. 서윤이 입술을 달싹이며 연우를 부르려는 찰나, 연우의 손이 건반 위로 올라왔다. 서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서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 곡이 지나고, 두 곡째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서윤은 벅찬 얼굴로 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벅지 위로 올려 둔 두 손은 간절하게 주먹 쥐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겠지만, 품에 안아 머리카락을 헝클여 주고 싶을 만큼 기특했다.
연주가 다섯 곡째에 접어들었을 때 일은 일어났다. 막힘없이 이어나가던 연주가 뚝 끊긴 것이다. 입꼬리를 올린 채 연우의 연주를 듣고 있던 서윤의 미소도 툭 끊어졌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올라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연우 역시 고장 난 기계처럼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연우 가까이로 다가갔다.
“연우야.”
서윤이 연우의 어깨를 쥔다. 마주 본 연우는 괴로운 표정이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번뇌하는 얼굴에 서윤의 마음이 순간 철렁했다.
“연우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서윤이 연우의 곁에 무릎 꿇었다. 애틋하게 올려다보며 손을 쥐자 연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왔다.
“선생님.”
서윤을 부르는 연우의 목소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서윤은 다부진 눈동자로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그래, 연우야.”
“……아니에요.”
연우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서윤이 순간 당황하여 연우의 손을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서윤의 약한 힘에 연우가 무력하게 끌려왔다.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 응?”
“그날 이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응?”
서윤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채 알아듣지 못한 서윤을 연우는 친절하게도 배려했다.
“자꾸 선생님 생각이 나요.”
“아.”
서윤은 그제야 연우가 말하는 그 날이 어느 날인지를 깨달았다. 달떠 신음했던 밤, 하나가 됐던 밤, 서로의 체액을 교환했던 이상한 밤.
연우가 무릎 꿇은 서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가까이 다가가 이마와 이마를 맞대었다. 고해성사를 하듯이 고통스러운 눈동자로 스스로의 죄악을 고백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자위해요.”
“…….”
“선생님을 보면 자꾸, 좆이 터질 것처럼 발기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서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연우에게 다 들릴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입술을 뻐끔거리고 사고회로는 정지되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그만두는 게 낫겠니?”
서윤이 연우를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묻는다.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맞잡은 손은 떨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만둘게. 그게 좋겠어. 차라리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는 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서윤의 어깨를 강한 힘이 짓눌렀다. 서윤이 무릎 꿇은 채로 고개를 치들었다. 연우의 손이 다가와 서윤의 턱을 쥐었다. 부드럽게 볼을 문지르며 다정하게 입술을 뗐다.
“선생님.”
“…….”
“그런 뜻일 리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연우의 눈동자가 욕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자신이 완전히 알아채게 될까 봐, 서윤이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 다급한 꽁무니를 보며 피식, 연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연우의 시선이 그녀가 무릎 꿇었던 발치로 옮겨 갔다. 언젠가는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좆을 빨게 할 수도 있겠지. 허기가 질 정도로 구미가 당기는 상상에 연우가 혀로 입 안을 쓸며 입맛을 다셨다.
* * *
방으로 도망친 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장 깊숙한 방, 안쪽의 모서리에 자신을 끼워 넣은 채로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자위해요.’
동시에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던 덤덤한 얼굴을 떠올렸다. 서윤이 도리질 치며 쿵, 쿵 벽에 이마를 찧는다. 죄책감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그만두겠다느니,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좋겠다느니 하는 위선뿐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당장에 아버지의 손에 끌려가게 될 테다. 게다가 서윤이 쓸모 있는 인간으로 회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연우의 어린 시절 은사라는 허울 좋은 감투 때문이었다. 연우의 곁을 지키는 일이 아니면 서윤의 쓰임은 없었다. 서윤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서윤의 눈동자가 끝없이 흔들리며 번뇌한다. 연우가 저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책임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임을 져야 했다. 서윤이 바닥에 내려 두었던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같은 시각, 연우는 응접실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무릎 꿇은 채 올려다보던 가녀린 눈동자를 떠올리면서는 피식 웃음 지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그만두는 게 낫겠니?’
그만두겠다니. 용케 낸 용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기특하다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나. 당장 자신의 품을 벗어나면 아버지에게 잡혀갈 줄을 알면서, 그런 가상한 생각을 했다는 게. 그것도 그 잠깐 동안에.
연우가 테이블 위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스피커를 향해 가리키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음량 버튼을 눌러 최대로 만들고는 편하게 눈을 감았다. 도청 장치였다. 연우는 서윤의 방 곳곳과 물건들, 옷가지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만큼 작은 초소형 도청 장치를 달아 두었다.
들려오는 것이 고작 숨소리나 뒤척임 소리라고 하더라도 즐거웠다. 서윤이 프랑스에 있을 적, 사람을 시켜서 받아 보았던 사진을 확인할 때보다 더.
어쨌거나 지금은 자신의 품 안에 있었으므로. 물론 사후피임약을 처방받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은 그리 기쁘지 않았지만.
“흐음.”
지금 서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피커를 채운 것은 빠듯한 숨소리가 전부였다. 아마 깊은 곳에 숨어들어 호흡을 고르는 모양이었다. 그 쫓기는 사냥감 같은 모습이 궁금하기도 해서, 연우는 순간 방에 카메라를 달아야 하나 고민했다.
“음, 아니지.”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저장 장치에 영상을 남기는 일은 위험을 수반한다. 아무리 단속한다고 해도 어떤 경로로 유출될지 몰랐다. 서윤은 오직 그만의 것이어야 했다.
“…….”
그때,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뜬 연우가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토독토독 휴대 전화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연우가 눈을 가늘게 뜨는데, 희미한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안녕하세요.
누구지. 연우의 눈이 가늘어진다. 의문은 곧 이은 서윤의 목소리에 손쉽게 해결되었다.
-저, 사춘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요…….
“하.”
연우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실소한다. 이어서 서윤은 참 조곤조곤히도 연우를 사춘기 아들로 둔갑시킨 뒤 에둘러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청소년 상담 센터에라도 전화한 모양이었다. 포장 실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몰랐다.
“하하하.”
올바른 성교육이요, 중얼거리며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서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 * *
“은사님!”
자신의 방에서 짐가방을 챙기고 있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서 현주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휘휘 손을 흔들었다. 현주의 뒤로 빼꼼히 다른 직원들도 서윤을 향해 밝게 인사했다.
오늘은 연우의 외부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다행인 일이다. 어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다시 연우와 한 공간에 단둘이 있어야 했다면 숨이 막혔을 테니까.
-그 시기에는 올바른 성 가치관을 심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 교육 과정만으로 완벽하게 교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하니까요. 어려우시겠지만, 어머님께서 엄하더라도 확실하게 아드님을 지도해 주시면 좋을 듯하네요.
서윤이 잠시 행동을 멈춘 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꾸며 낸 정보로 상담을 받았으나 심란한 마음만 가중될 뿐이었다.
“와, 이 방 뭐예요?”
그사이 현주와 다른 직원 두 명이 서윤 가까이로 다가왔다. 현주는 연분홍빛으로 세련되게 마감된 인테리어를 보며 내내 놀라워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구들이며 소품들을 바라보는 얼굴에 감탄이 어려 있다. 한 발자국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은 박물관에 온 관람객을 방불케 했다.
“역시 은사님 대우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개국공신이 최고라니까.”
“하하…….”
서윤이 어색하게 웃었다. 벌써 2주째 살고 있는 그녀조차 적응하기 힘든 호화로운 방이기는 했다. 공연히 이상한 말들이 돌까 저어되어,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건 오직 서윤만의 바람으로, 현주는 이제 장식장 위의 조각품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밀하게 세공되어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소품이기는 했다. 고작 소품으로 취급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지나친 예술품이었다.
“나, 나 이거 혼수 준비하는 친구 따라가서 봤는데 3천만 원짜리예요.”
현주가 생각났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윤과 다른 직원 두 명이 동시에 아연했다.
“뭐라고요? 그게 왜 3천만 원이에요?”
“안 그래도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는데 저랑 친구랑, 친구 예비 신랑까지 손 떨면서 나왔잖아요. 이 오르골 브랜드도 수백 할 텐데 도대체 여기 뭐예요?”
그게 오르골이었구나. 서윤은 그제야 조각품 옆에 놓여 있던 물건의 정체를 알아챘다. 현주는 내내 입을 벌린 채 경악하기 바빴다.
“……그러게요.”
서윤이 콧등을 찡긋, 하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현주가 재벌의 삶, 재벌의 삶 중얼거리며 서윤의 팔에 팔짱을 껴 왔다.
“이 방이랑 똑같은 숙박 시설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연주자님 연습 시간용 보릿자루는 싫고 그냥 하루만 살아 보게요.”
“현주 씨가 보릿자루 한다고 이 방이 나오겠어요? 은사님이니까 이렇게까지 해 주신 거지.”
“아, 그런가? 하루만 은사님이 되고 싶어야 하나?”
“바로 그거죠.”
“전 좋아요. 우리 은사님 여자가 봐도 너어무 예쁘니까. 혹시 하루라도 빌리게 되면 몸매까지 포함인 거예요?”
현주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서윤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이 막냇동생 보듯이 꽤나 귀여워서, 서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와. 서현주 벌써부터 줄 서네.”
“그러니까.”
“아, 내가 뭐요!”
정말 오랜만의 소란이었다. 서윤이 쿡쿡 웃으며 아직까지도 투닥이고 있는 세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때 현주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아뿔싸 싶은 표정으로 다른 두 사람을 이끌었다.
“어라, 시간 다 됐다. 은사님, 저희 먼저 내려가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얼른 내려오세요.”
“아, 네.”
“그리고 연주자님도…… 아시죠?”
“걱정 마세요.”
서윤이 웃으며 짐가방의 지퍼를 단단히 채웠다. 세 사람이 순식간에 방을 빠져나가자 어느새 방 안의 공기가 싸늘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와글와글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서윤이 힐긋 열린 방문 너머로 보이는 닫힌 문을 응시했다. 긴장이 몰려들고 있었다.
똑똑.
상기된 얼굴의 서윤이 연우의 방을 두드렸다. 머지않아 방 안쪽에서 네, 하는 정돈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우의 음성을 듣자마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올바른 성 가치관에 대해 말하던 상담사의 조언마저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서윤이 애써 어깨에 걸치고 있는 숄더백의 끈을 정돈했다. 그럼에도 잡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우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얇은 그레이 스트라이프 셔츠 위에 딥블루톤 브이넥 니트를 걸친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가자. 다들 기다리고 계셔.”
서윤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연우 역시 그런 듯 보였다. 그날 무릎을 꿇은 채로 올려다보았던 얼굴에 일렁이던 정욕은 온데간데없이 깨끗했다. 내심 안도가 밀려들었다.
“선생님.”
복도를 중간쯤 걸었을까. 연우가 서윤을 불렀다.
“응?”
서윤은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름대로 미소까지 띄워 보였으나 연우가 보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서윤을 바라보며 연우가 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서윤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리에 섰다.
“오늘 밤까지 답을 주셨으면 해요.”
잠깐의 대치 끝에 연우가 입술을 뗐다. 서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붉은 입술이 닫히지도, 열리지도 못한 채로 더듬거렸다.
“그러니까, 어떤…….”
순간 연우가 그녀 가까이로 성큼 다가왔다. 손을 들어 서윤의 턱을 쥐고는 볼가에 가볍게 입 맞추며 속삭였다.
“선생님이랑 자고 싶어요. 그 밤처럼.”
서윤의 시선이 바닥을 향해 처박혔다. 속눈썹마저 바들거렸다.
“먼저 내려가 볼게요.”
농도 짙은 제안과 달리 가볍게 물러선 연우가 서윤을 지나쳤다. 서윤은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 서 있었다.
서울 근교의 스튜디오.
인터뷰장이 소란했다.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편으로 벌어진 재회의 장 탓이었다. 안내받은 일정표에 외부 인터뷰라고만 적혀 있어 잡지사에 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는데, 인터뷰장에 와서 보니 서윤의 지난 동료들이었다.
“서윤 씨! 이게 얼마 만이야! 결혼식 이후로 처음인가?”
놀란 것은 서윤뿐만은 아닌 듯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서윤 곁으로 동료들이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봬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 소식 들었어. 괜찮지?”
순수한 걱정만이 어린 눈동자에 서윤이 몽글몽글한 기쁨으로 작게 웃었다.
“그럼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그래. 요즈음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흉이라고. 아주 잘했어. 너무 잘했어. 길게 보면 인생 혼자라니까?”
“그나저나 아끼던 제자 옆에 있어서 좋겠어?”
한 동료가 방긋 웃으며 연우 쪽을 눈짓했다. 덩달아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연우에게로 향했다. 외딴 섬처럼 가만히 예상 질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이 꼭 조각상처럼 보였다.
“자알 컸다, 진짜.”
“그러니까요.”
아마 모두가 같은 감상이리라. 모두가 6년 전 콩쿠르 소동 때, 의연하게 우승 트로피를 들고 왔던 아이를 기억하며 감탄했다. 그러던 와중 서윤이 불현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우의 영상을 예선 심사에 제출했던 남자, 철민이 보이지 않았다.
객관적인 평론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꽤나 유명한 남자였는데, 그만두기라도 한 걸까. 서윤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 동료가 입술을 뗐다.
“아아, 곧 오실 거야. 오늘 인터뷰는 무조건 자기가 해야 한다면서 이발한다고 미용실 갔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편집장님 되셨거든.”
“아…….”
깔끔하게 이발하고 머리를 올리고 올 철민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떠올린 서윤이 고개를 주억였다. 몇 걸음 뒤에 있던 동료가 정말 싫다는 듯 끌끌 혀를 찼다.
“회식만 하면 자기가 우연우 키웠다면서 노래, 노래를. 지겨워 죽겠다니까. 누가 누구를 키우나. 알아서 큰 거지.”
“공으로 따지고 보자면 우연우 키운 건 우리 서윤 씨지. 안 그래?”
갑작스레 제게로 돌아온 공로에 서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놀리는 줄도 모르고 세차게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절대요. 정말 아닌 거 아시잖아요.”
“하여간 겸손은.”
그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윤이 멋쩍게 고개를 돌린다. 그 찰나에, 연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연우는 보고 있던 인터뷰지를 내려놓고 지그시 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까지 답을 주셨으면 해요.’
무심한 눈동자 위로 방금 전의 기억이 날아들었다. 서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서윤의 귀를 힐긋 본 연우가 피식 웃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그때, 이제는 편집장이 된 철민이 요란하게도 나타났다. 연주회를 방불케 하는 의상을 입은 채였다. 서윤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흩어졌다. 다들 최대한 철민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어? 서윤 씨, 오랜만이네? 이혼했다며!”
“……안녕하세요.”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릴 만큼 큰소리로 그녀의 이혼 소식을 전하는 철민을 보며, 서윤이 어색하게 웃었다. 가진 능력과는 별개로 불편한 사람이 있다. 철민이 딱 그랬다.
“그래. 반가워.”
한 손을 서윤에게로 들어 보인 철민이 거들먹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연우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었다. 비굴한 낯으로 돌변해 허리부터 굽히고 들어갔다.
“아이고, 연우 씨!”
연우가 지그시 철민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서윤이 희미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공간이, 이상하게 살얼음판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철민이 아무리 분위기를 띄우려고 해도 좀처럼 받아 주지 않는 연우 탓이었다.
지금 연우의 태도는 이제 막 언론 앞에 서기 시작한 풋내기 연주자의 서투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실상 연우는 그때도 언론을 어려워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므로, 지금의 거리감은 의도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철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콧등을 찡긋거렸다.
“저, 잠깐 쉬었다 가시죠.”
한 스태프가 어려운 공기를 끊어 냈다. 분위기를 보니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러면 잠깐 30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휴식이 선포되었다. 그제야 남자는 한숨 돌렸다는 얼굴로 연우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서윤이 팔을 뒤로 뻗어 테이블 근처에서 생수 한 병을 집어냈다. 어느새 뒤로 빠진 철민이 오늘 잘 풀리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윤이 사람들 사이를 헤쳤다. 집을 나오며 들었던 이야기와는 별개로 서윤은 할 일을 해야 했다. 최대한 기억을 지우며 서윤이 연우에게로 다가갔다.
“연우야.”
“선생님.”
“물 마셔. 목마르지?”
서윤이 연우에게로 들고 온 물병을 건넸다. 연우가 서윤이 건넨 물병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서윤을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아니면 커피 가져다줄까?”
별로 목이 마르지 않은가. 인터뷰 내내 말이 없기는 했다. 여전히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는 연우를 보며 서윤이 말을 이었다.
“스튜디오 바로 옆 건물에 카페 있으니까 선생님이 금방 사다 줄게.”
“선생님.”
“……응?”
순간 서윤이 흠칫하여 연우를 보았다. 부르는 목소리가 유달리 사분했다. 서윤의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모습을 보며 낮게 웃은 연우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잠시 주저한 서윤이 연우 가까이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허리를 숙여 연우의 입가 근처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 사람의 모습을, 스태프들이 관심 없는 척하면서 모조리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살갗으로 다 느껴졌다.
“커피 말고, 빨고 싶어요.”
연우가 서윤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 무슨…….”
서윤이 황급히 허리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연우가 서윤의 팔목을 잡아챈 채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위든 아래든…… 선생님은 어느 쪽이 좋으세요?”
서윤이 힘주어 연우를 떨쳐 냈다. 서윤 본인의 온전한 힘이었다기보다는, 연우가 힘을 풀었다고 하는 쪽이 더 알맞았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서윤의 낯빛을 보며 연우가 킥킥 웃었다.
“얼른 가서 사 올게.”
서윤이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달음박질쳐 계단을 내려갔다. 줄행랑치는 모습이 꼭 토끼 같았다. 하얗고 포실한 토끼 귀가 그녀의 머리통 위로 팔랑팔랑 흔들리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한눈에 홀려 쫓아가면, 그를 이상한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이.
서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인터뷰가 재개되어 있었다. 아직 1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색하게 아이스 커피를 들고 있는 서윤에게 현주가 웃으며 다가왔다.
“갑자기 인터뷰 다시 하자고 해서 하는 중이에요. 하여간에 예술 하는 사람들 변덕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은사님 고생하셨어요.”
현주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서윤을 복돋았다. 서윤이 숨을 몰아쉬고는 사 온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인터뷰 모습이 잘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자 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아들처럼 아껴 주세요. 피아노를 시작했던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서윤의 이야기였다. 서윤이 그 자리에 서서 연우와 철민 쪽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휴식 동안 서윤과 연우의 모습을 유심히 본 철민이 인터뷰 질문을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포괄적으로는 피아노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였고, 그 시작을 말하기 위해서는 서윤의 이야기가 필연적이었다.
이 즉흥적인 제안에 연우는 무슨 심보인지 기꺼이 승낙했다. 긴 준비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마치 오래 준비한 답변처럼 연우는 덤덤하게 서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어릴 때 작은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선생님이 몸을 날려 저를 구하셨죠. 그때 잠깐 사고 처리하는 중에 선생님과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있었거든요. 아마 제가 놀랐을까 봐 먹을 걸 들려 주셨던 것 같은데.”
내내 시큰둥하게 대답을 피했던 전과는 달랐다. 지금의 연우는 확실히 인터뷰에 호의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때 선생님이 우셨던 기억이 나요.”
순간 서윤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순식간에 민낯이 까발려진 기분에 서윤이 질끈 눈을 감았다.
“갑자기요?”
“네.”
인터뷰가 순조로이 진행되자 철민은 무척 즐거운 목소리였다. 슬쩍 서윤의 곁으로 다가온 과거의 동료가 툭툭 손등을 건드렸다. 인터뷰에 방해되지 않을 만한 작은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
“서윤 씨, 왜 울었어?”
“……하하. 저도 모르겠어요. 대학 생활이 힘들었나.”
그리고 동시에, 같은 질문을 철민이 연우에게도 건넸다.
“왜일까요?”
연우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한동안 자리에 선 서윤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간 눈길이 어느 날을 더듬고 있었다. 서윤에게도 연우가 가진 것과 같은 기억이 있었다.
“글쎄요. 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무장해제됐나요?”
“그럴 지도요.”
연우가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인터뷰에 막힘없는 성정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제 나이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처음이라, 철민의 입꼬리가 한계까지 찢어졌다.
“그래서, 선생님은 제게 연약한 사람.”
서윤이 없을 때, 철민이 연우에게 건넨 질문을 짐작할 수 있는 마지막 대답이었다. 철민은 오프 더 레코드로 연우 씨와 만나고 싶다면 일단 울어야겠다는 지루한 결론을 냈다.
“은사님 이야기할 때는 엄청 부드러운 표정을 짓네요? 처음 봤어요.”
언제 왔는지, 현주가 서윤의 곁에서 속닥거렸다. 현주의 말을 들은 서윤이 조금은 생경한 기분으로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치 그녀가 그를 부른 것처럼 연우가 시선을 맞춰왔다.
순간의 일이었다. 연우가 서윤을 마주 보며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첫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청년의 얼굴이 되어 쿡쿡 웃음을 참아 내기도 했다. 그 미소 한 번에 일순 주변이 소란해졌다.
동시에 서윤의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겨우 진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치사량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수상한 기분이 서윤의 목덜미를 간질여 재채기가 나올 듯이 숨이 막혔다.
“우연우 씨는 은사님이 정말 좋은가 봐요. 신기해라.”
“……그러게요.”
손에 잡힐 듯 선연한 감정을 억누르며 서윤이 대답했다. 주먹을 꽉 쥐고 참아 낸 숨을 겨우겨우 틔워 냈다.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어디 아프기라도 한 사람처럼 입술을 떨었다.
“…….”
그런 서윤을, 현주가 이상하게 지켜보았다.
* * *
인터뷰가 끝나고 서윤과 연우는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화는 없었다. 시종일관 어색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타고 있는 차가 차고로 진입했을 때는 숨통까지 조이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답을 종용할 줄 알았던 연우는 말이 없었다. 2층에 올라설 때까지도 침묵을 유지했다. 그것이 오히려 서윤을 긴장케 했다.
“…….”
“…….”
각자의 방 앞에서 서윤과 연우는 한 번 마주 보았다. 먼저 등을 돌린 쪽은 연우였다. 아침의 질문이 무색하게도 깔끔한 몸짓으로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서윤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가지고 갔던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도 소파 위에 벗어 두었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고 문을 돌아보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씻고 나온 서윤의 얼굴이 뽀얗다. 머리카락을 털어 말리며 서윤의 시선이 힐긋 장식장을 향했다. 오늘 아침 조각품 옆의 물건이 오르골이라 말하던 현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윤이 홀린 듯 장식장 앞으로 다가갔다. 수건을 내려놓고 살짝 허리를 굽혔다. 보석함처럼 보이기도 하는 타원형의 상자를 들여다보다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뚜껑에는 파란 장미 꽃송이가 실재하듯 새겨져 있었다.
“음…….”
서윤의 얼굴이 다소 난감하게 기울었다.
오르골 상자 안에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입 맞추고 있는 장식물이 들어 있었다.
기묘한 기분이 가슴 한편을 간질였다. 백화점 진열대에서 보았다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연우가 준비한 자신의 방에 이런 물건이라니.
이만 오르골을 닫으려던 서윤이 잠시 망설였다. 고심 끝에 오르골을 켰다. 청아한 종소리가 새의 지저귐처럼 서윤의 귓가를 간질였다.
멘델스 존의 한여름 밤의 꿈. 결혼행진곡이었다.
입을 맞추던 신랑과 신부가 곡에 맞추어 춤을 추듯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내내 닿을 듯 닿지 않던 신랑 신부는 곡의 끝에서야 입을 맞췄다. 맹세의 키스를 하듯 신랑이 사분히 다가가 신부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때였다. 똑똑, 두 번.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서윤이 소스라치게 놀라 허리를 폈다. 엉겁결에 네, 대답하고는 오르골의 뚜껑을 닫기 위해 허둥지둥했다.
생각 회로가 마비된 사람 같았다. 서윤이 어쩌지 못하는 사이 연우가 성큼 서윤의 뒤로 다가왔다. 서윤의 뒤에서 그녀를 가두듯 서서 팔을 뻗어왔다.
“……읏.”
팔과 팔이 스치며 연우가 그녀를 폭 끌어안았다. 뒤에서부터 뻗어 나온 손끝이 오르골을 재생시켰다. 다시금 결혼행진곡이 방 안에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연우가 고개를 숙였다. 코끝으로 살살 서윤의 목덜미를 뭉개며 그녀의 체향을 맡았다.
“생각해 보셨어요?”
낮은 목소리가 목덜미를 스쳐 서윤에게로 전해졌다. 서윤이 색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연우 역시 막 씻고 나왔는지 옅은 샤워 코롱 향이 났다. 숨을 쉴 때마다 연우의 향이 폐부를 찌를 듯 넘어와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서윤에게서 대답이 없자 연우의 고개가 늘어졌다. 작은 서윤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기울여 떨고 있는 작은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동시에 서슴없이 서윤의 가슴 위로 연우의 손이 올라왔다. 천 아래의 포실한 젖가슴을 한 손에 담고는 살살 매만졌다.
“흐. 자, 잠깐만.”
서윤이 놀라 양손으로 연우의 손등을 움켜쥐었다. 작다란 손은 연우의 손 하나도 제대로 포개지 못했다. 그저 무력했다.
“선생님, 생각해 보셨어요?”
나른한 목소리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름다운 오르골의 노랫소리도 시끄러운 소음처럼 느껴졌다. 서윤은 안간힘을 내어 연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연우는 개의치 않고 서윤의 젖가슴 한쪽을 제멋대로 주물렀다. 손 안에 말캉한 살점을 움켜쥐고 짓이기며 희롱했다. 서윤이 파들파들 떨며 입술을 뗐다.
“아무래도, 읏. 안 될 것 같아.”
“왜요?”
“……옳은 일이 아니니까. 연우야, 잠깐, 이 손 좀…….”
“선생님은 되고 왜 저는 안 돼요?”
“그때는 너무 많이 취했고, 으읏…….”
대답이 조악했다. 술을 핑계로 그날의 일을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죄책감에 연우의 손등을 움켜쥔 양손에 힘이 풀렸다. 무엇보다 젖가슴 위를 노니는 커다란 손이 주는 쾌감에 조금씩 잠식되었다. 몸은 그 밤과 감각을 선명하게도 기억했다.
“저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해서 오면 선생님을 안을 수 있나요?”
“히익.”
“싫어요. 저는 선생님의 전부를 기억하고 싶어요.”
연우의 손이 내려가 서윤의 잠옷 원피스 끝단을 말아 올렸다. 살금살금 올라가 허벅지 뒤편을 문질렀다. 몸에 단단한 긴장이 머물렀다. 묘한 기대 역시 아슬아슬하게 피어올랐다. 낑낑거리며 저항하면서도 손길이 머무르는 곳마다 애달아 배꼽 아래가 소용돌이쳤다.
“정말 안 돼요?”
연우가 서윤의 목덜미에 얼굴을 짓이기며 물었다.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애교를 부리는 듯도 한 모양새였다. 서윤은 덜컥 울고 싶어졌다. 어느새 허벅지 뒤편을 넘어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탐내는 손길 탓이었다.
“거짓말.”
궁지에 몰린 사냥감처럼 서윤의 몸이 장식장 가까이, 바짝 붙었다. 곳곳을 침범하는 손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장식장을 짚고 선 채로 바르르 떨었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연우가 서윤을 책망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서윤의 옆얼굴을 지그시 올려다보면서는 미미하게 웃고 있었다. 연우가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살결에서 묻어나는 옅은 꽃내음에 얼굴을 파묻으며 원망을 쏟아 냈다.
“그날 선생님이 얼마나 저를 졸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만져 달라고, 넣어 달라고, 제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애원하셨잖아요.”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연우야, 으응…….”
서윤이 고개를 처박고 애원했다. 애써 묻어 두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연우의 목소리로 실체화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제 손을 억지로 가져가서 비벼 달라고 허리를 돌리고.”
끔찍한 상상이 이어졌다. 달떠 연우에게 다리를 벌리고 손을 조르는 자신과 난처하여 어쩔 줄 모르는 연우의 모습이 쉽게 떠올랐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상상만으로 눈앞에 그려질 정도였다. 연우는 그만큼 자주 만났고, 아꼈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옳지 않다고 하시네요.”
연우의 손이 다리 사이를 침범했다. 연신 가슴을 주무르고, 툭 불거진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짓이기며 얇은 속옷 위를 쓰다듬었다. 연우의 손가락 끝에 물기가 걸려든다. 비적비적 흘러나온 애액으로 어느새 서윤의 속옷이 축축했다.
“흐으, 읏.”
“선생님, 젖었어요.”
서윤의 입이 다물렸다. 장식장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연우의 손길이 점차 과감해졌다. 속옷 위로 갈라진 틈새를 쓸어 주는가 하면 힘주어 파고들어 클리토리스를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서윤의 손 틈새로 히끅, 히끅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안쪽이 얼마나 부드럽고 축축한지 가르쳐 주신 건 선생님이셨잖아요. 뜨겁고, 잔뜩 젖어선, 좆도 맛있게 먹고…….”
“흐으, 응.”
“선생님께 욕정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여, 연우야. 연우야…….”
타박의 농도가 짙어진다. 서윤의 호흡도 가빠졌다. 위아래의 정점을 모두 쥐고 비비는 손길에 대책 없이 함락되었다. 연우의 입술이 닿아 있는 목덜미도 땀으로 끈적했다.
“으, 으응. 읏.”
꾹, 꾹 아래를 문지를 때마다 서윤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허리가 굽어져 자연스레 둔부가 연우의 하체에 닿았다. 익숙지 않은 쾌감에 벗어나고 싶어 몸을 물릴 때마다 연우를 자극하는 꼴이었다.
“아세요?”
“흣, 으.”
“한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제게 약한 사람을 때리거나 짓밟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어요. 어릴 때는 그 말이 이해가 잘 안 갔는데, 울고 있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깨달았죠. 아, 약한 사람에게 물러지는 건 불가항력이었구나…….”
피에 흐르는 약육강식의 본능만이 살아 있던 어린 시절의 그에게, 서윤은 최초의 연약함이었다. 목을 감싼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기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간 울음을 터트리는. 조심히 다루어야 할 유일한 존재였다.
다 옛날 이야기다. 연우가 음산한 눈으로 몸을 배배 꼬는 서윤을 내려다보았다. 꺼덕이는 고개와 침을 흘리는 발간 낯을 보며 툭, 툭 허리 짓 했다.
“그런데…… 저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선생님.”
“끄흐, 으, 응……!”
서윤은 연우의 손가락 끝에 농락당하느라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채였다. 연우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께 제 좆을 넣고 아프게 만들고 싶은 걸 보면요.”
연우가 토해 내고 싶은 욕설을 삼켜 내며 손가락의 움직임을 빨리했다. 서윤의 가슴을 쥐어짜며 속옷 위를 빠르게 문질렀다.
“아흑!”
가벼운 절정이 찾아들며 서윤의 고개가 장식장 위로 처박혔다. 장식장을 붙들고 연우에게 뒤를 내어 주는 꼴이었다. 연우는 기꺼이 뒤로 물러나면서, 가슴에 올려 두었던 손 역시 빼내었다.
“흐으, 흐.”
장식장에 기댄 서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클리토리스만으로 짧게 만끽한 오르가슴 덕에 속옷이 축축했다. 벗으면 끈적한 애액이 묻어나올 게 여실한 감각이었다.
그때, 연우가 서윤의 아래에 무릎 꿇었다.
연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시 뒤를 돌았던 서윤이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연우는 서윤의 둔부 아래에 무릎 꿇고 그녀의 잠옷 원피스 자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연우야, 연우야.”
안 된다는 말도, 그만하라는 말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죄가 너무 컸다. 연우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둔부와 젖은 속옷을 보는 일은 단죄나 다름없었다. 서윤은 다만 젖은 목소리로 연우의 이름을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아…….”
연우의 입술이 무릎 뒤를 짓누른다. 손으로는 마른 종아리를 더듬었다. 입술은 차차 허벅지 뒤편을 따라 올라갔다. 간간이 이를 세우며 허여멀건 살갗 위를 깨물고 혀를 내어 핥아 올렸다.
다리 사이가 절절하다. 몰아치는 수치심에 서윤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다리 사이에서 연우가 낮게 웃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부끄러움에 잠겨 울었다.
“선생님.”
연우의 부름에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다. 다리 사이의 허벅지 가까운 곳에 숨결이 남았다. 흠뻑 젖은 속옷이 다 보일 게 분명했다. 서윤이 도리질 치며 팔을 뒤로 뻗었다. 허리춤에 올라와 있던 치맛자락을 끌어다 내렸다.
순간 연우의 시선이 치마폭에 갇혔다. 서윤의 잠옷 치맛자락 아래에서 머리통이 퐁실퐁실 움직였다. 방해를 헤치고 나아가 서윤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포개었다. 속옷 위로 얼굴을 비비자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이 특유의 물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하아…….”
더운 숨이 얇은 속옷 새를 파고들었다. 서윤이 파르륵 엉덩이를 움칠거렸다. 비명 같은 숨소리를 가쁘게 뱉어 내며 몸을 뒤틀었다. 연우의 얼굴 위로 둔부를 부비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 우스운 몸짓이었다.
서윤의 체취를 길게 들이마시며 연우가 콧대로 지그시 속옷 위를 눌렀다. 얼굴을 한계까지 파묻고 젖은 틈새로 잘빠진 얼굴을 뭉갰다.
서윤의 다리가 발발 떨리며 그의 얼굴을 조였다. 그가 내벽 안으로 진입할 때의 경계처럼 빠듯하게 조이자 연우의 좆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아, 아으, 제발, 제발…….”
애걸하는 서윤의 숨이 순간 히익, 멈추었다. 연우의 손가락이 허리춤에 감겨 온 탓이었다. 건반 위를 유영하듯 손가락이 골반 위를 더듬는다. 끝끝내 속옷의 틈새를 파고들어 한 번에 주욱 내렸다.
젖은 천이 살점에서 떨어져 나가는 감각이 너무나도 생경했다. 고개를 숙여 발목에 걸쳐진 속옷을 보기 두려웠다. 연우의 손길에 발정하여 절정에 오르고 물을 흘린 것이 창피스러웠다.
“여, 연우…….”
괴로운 침묵이었다. 다음 순서를 알면서도 차마 예상하기는 싫은 탓이었다. 서윤이 씻으러 들어가기 전 켜두었던 은은한 조명 사이로 젖은 비부를 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싶었다.
“끄흑.”
서윤은 아랫입술을 물며 쾌락에 신음해야 했다. 물이 고인 빨간 밀지로 연우의 얼굴이 파고들었다. 단순히 낯뜨겁게 만드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처럼 아래에 대고 뭉그적뭉그적 얼굴을 비벼 댔다. 죽고 싶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다리 사이가 얼얼했다.
“아아, 흐, 응.”
연우가 혀를 내어 구멍에서 비적비적 흐르는 애액을 받아먹었다. 핥아먹다 핥아먹다 더 빨아먹을 물이 없으면 질 구멍 안으로 뾰족하게 혀를 집어넣었다. 제 다리에서 게걸스러운 물소리가 들려오면 서윤은 장식장을 짚고 있는 손을 발발발발 떨었다.
기묘한 감각이 다리 사이에서 들끓는다. 가볍게 스치고 달게 빨아 주지만 절대 절정에 오르도록 허락하지는 않았다. 서윤은 간질거리는 마음을 끌어안은 채로, 연우의 손을 이끌었을 지난 밤의 자신을 원망했다.
짧은 시간 수천 번의 번뇌 끝에 연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서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으나 연우가 더 빨랐다.
연우가 서윤의 골반을 움켜쥔 채로 손을 뻗어 머리를 짓눌렀다. 장식장 위로 볼이 닿는다. 강압적인 손길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힘으로는 절대 무력하게 만들 수 없었다.
서윤이 목을 비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간곡하게 올려다보았다. 연우가 무심히 눈을 껌뻑이며 팔을 뻗는다. 서윤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며 다른 손으로는 바지 버클을 풀었다.
“으…….”
맨정신으로는 처음 마주하는 성기였다. 역겨운 생김새에 서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한 폭의 인상화처럼 섬세하나 모호하게 아름다운 연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꺼덕이며 곤두선 검붉은 핏줄과 눈이 마주치면 질끈 눈을 감아야 했다.
눈을 감은 새 허벅다리가 싸늘하다. 얌전히 있을 수 없어 작게나마 동동 구르는 발 사이로 젖은 속옷이 감겨 밟혔다.
“콘돔, 콘돔을…….”
서윤이 장식장 위로 얼굴을 파묻으며 애원했다.
“그냥, 하면 안 돼.”
혐오스러워 문장이 드문드문 끊겼다. 연우에게 이런 일 따위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낯뜨거워 견딜 수 없었다.
“왜요?”
연우가 갈라진 틈 사이로 성기 끝을 뭉개며 나직이 물었다. 흐읍, 서윤이 숨을 빠듯하게 삼켜 냈다. 서윤의 비부, 통통하게 갈라진 틈새 아래로 성기가 길을 내듯 드나들었다.
“아기가 생기니까, 흐윽.”
말을 고를 새도 없었다. 서윤은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하게 설명했다. 그걸 목격하는 연우는 꽤나 즐거웠다. 그녀 몰래 엿들은 통화를 떠올리며 이 강박적이고 착한 여자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충동에 치달았다.
“아기요?”
연우가 상체를 숙여 서윤의 등에 몸을 포개었다. 작은 몸은 한 품에 가려지다 못해 폭 잠길 정도였다.
“예쁘겠다.”
천진하게 대꾸한 연우가 서윤의 볼에 제 볼을 비벼 댔다. 동시에 성기 끝이 구멍을 찾아 파고들었다. 빠듯하여 아래가 찢어질 것 같았다.
“연우야, 잠깐, 잠깐. 정말 안 돼.”
서윤의 동공이 확장하며 쾌감에 전 눈물을 떨궜다. 끔찍하리만치 싫으면서, 아래는 연우의 좆 대가리를 벌름벌름 삼켜 냈다.
“선생님이랑 저를 닮으면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젖을 나눠야 하는 일은 끔찍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귓가에 속삭여지는 말은 낮고 사분거렸다. 아주 깊은 곳에 흐르는 샘처럼 깨끗하고 어리게만 느껴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흐르기에는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성기가 느긋하게, 반쯤 서윤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정말, 정말 그러면 안 돼. 결혼도 안 했는데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으, 으흐.”
“으음, 그렇구나.”
연우가 모르는 척 허리를 쳐올렸다. 몸이 쪼개어지는 듯했다. 서윤은 하려던 말도 잊고 입술을 벌린 채로 헥헥거렸다. 질 내부가 꽉 찬 느낌이 소름 돋게 좋았다. 마치 태초부터 이렇게 이어져 있었던 사람들처럼, 다시 맞닿아 기쁜 듯이 쾌락이 몰아쳤다.
“하, 한 번만이야. 이번 한 번만, 으, 으읏. 흑…….”
“하아, 네……. 이번 한 번만…….”
연우가 느릿하게 밀어 넣은 성기를 뒤로 물렸다. 성난 핏줄이 말랑한 내벽을 스치자 서윤이 히익, 힉…… 경련하며 신음성을 토해 냈다.
“그런데요, 선생님.”
“아흐, 흐, 아응.”
성기가 쑥하고 빠져나갔다. 서윤의 질 내벽이 성기를 붙들 듯이 빠듯하게 좁아졌다. 내내 평정을 유지하는 듯 보였던 연우의 입술 새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
인내하며 상체를 일으킨 연우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제 아래의 겁먹은 소동물을 형형히 내려다보며 골반을 단단히 쥐었다.
“오늘 밤 한 번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선생님한테 한 번만 쌀 수 있다는 뜻이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퍽, 성기가 안을 치받았다. 대답 따위 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퍽, 퍽 자비 없이 허리 짓 했다.
“아흐, 으, 앙……!”
“응?”
연우가 재차 물으며 추삽질을 이어갔다. 열락이 몸을 잠식한다. 연우의 성기가 안을 드나들 때마다 물이 찌걱이는 소리로 방 안이 요란했다. 모든 감각이 요동치며 연우가 주는 쾌감을 향해 내달렸다. 서윤은 기어이 밑바닥에 고인 스스로의 천박함을 마주 보아야 했다.
“으, 후우. 제 마음대로 생각해도 괜찮아요?”
“흐, 끄흐, 읏.”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들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서윤이 절정에 떨며 엉덩이를 흔들어도 연우는 개의치 않고 좆을 쑤셔 넣었다. 서윤의 모든 몸짓들을 요분질 취급하며 한 번씩 엉덩이를 내리치기도 했다.
“허락하신 거예요. 안에 싸도 좋다고, 받아먹고 싶다고.”
“안, 아니, 앙.”
서윤이 숨을 몰아쉬며 눈을 껌뻑인다. 쑤셔 넣는 족족 성감을 뭉근하게 들쑤시는 덕에 눈물 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허벅지를 타고 흐를 만큼의 애액을 흘리면서도 싫은 체만 이어가는 것 또한 고통이었다.
“아, 흣. 연우, 아, 안 돼.”
서윤이 바르르 떨며 내벽을 조였다. 연우의 미간이 좁아지며 서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씹, 욕지거리를 뱉어 냈다. 사정감이 몰려들었다. 연우가 서윤의 배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떨고 있는 작은 몸을 힘주어 일으켜 세우자 서윤이 진저리쳤다.
연우가 단번에 걸어 서윤을 장식장에 밀착시켰다. 다리 사이가 좁아진다. 성기를 빠듯하게 집어삼켰다. 키 차이 탓에 한껏 까치발을 들고 허둥거려야 했다. 연우가 서윤의 허리를 잡아 주면서는 조금 나았지만, 오히려 공중에 뜬 채로 처박히는 기분 탓에 당혹스러웠다.
“여, 연우야. 으, 흣.”
서윤이 팔을 뒤로 뻗는다. 고개를 뒤틀어 연우를 돌아보았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녀가 알던 다정한 소년이 아니었다. 소년은 어느새 완연한 남자가 되어 그녀를 탐하고 있었다. 욕심껏, 소유욕을 드러내면서.
“쉬이, 괜찮아요.”
성기 끝이 말랑한 지스폿을 툭, 툭 건드렸다. 함께 절정에 오르기 위해 사정욕을 참아 내며 서윤의 성감을 자극했다. 치맛자락을 턱 아래까지 들어 올리고 젖가슴을 힘주어 주물렀다. 손가락 사이로 도드라진 젖꼭지를 굴리며 그녀를 환락에 빠트려 놓았다.
“그냥 아이를 만드는 게 좋겠어요.”
“무슨, 연우야, 그게 무슨, 아흣, 앙……!”
연우의 짓눌린 음성이 서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서윤이 순간 당황하여 담고 있는 좆을 아프도록 조였다. 동시에 연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비틀린 숨을 몰아쉬며 좆을 넣은 채로 허리를 돌렸다. 내벽에 성기를 뭉개기라도 할 듯이 비비고 돌리며 절정을 기다렸다.
“그냥, 아기 만들어요. 응?”
“아흣, 흑. 안 돼, 안에 하면, 안에 하면 안 돼. 끄, 밖에, 밖에라도. 제발…….”
“새삼스레 거절하지 마세요. 선생님 제 좆물만 받아 본 거 아니잖아요. 남편한테는, 안에 싸도 된다고 벌려 주셨을 거잖아요. 그 새끼보다 제가 더, 후우, 선생님을 원해요. 아시잖아요.”
그런 게 아닌 줄 알면서, 연우가 부러 짓궂게 서윤을 희롱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연우야, 흐으, 읏.”
“선생님의 아이도, 제가 훨씬, 하. 후.”
퍽, 퍽, 퍽. 말이 끊긴다. 연우가 아래에서 위로 힘껏 성기를 쳐올렸다. 연우가 내벽을 빠져나갈 때마다 목 뒤가 얼얼하게 당겨 왔다. 이미 애액은 밀지를 범람해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밑이, 이상, 흐윽. 이상해.”
“응, 봐 드릴게요. 하아. 한 번만 싸고.”
“끄흐, 흐.”
서윤은 결국 제 등 뒤로 엉겨 붙은 날짐승을 감내해야 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커다란 성기를 다리 사이로 품으며 흐느꼈다.
“씹, 하. 존나 조이네.”
지난 꿈에서 본 남자처럼 연우가 비릿한 욕설을 지껄였다. 서윤이 본능적으로 어깨를 떨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그 생각을 이어나갈 새도 없었다.
“아흣!”
퍽! 성기가 내벽 깊숙이 처박히는 느낌과 함께 다리 사이가 축축했다. 연우가 그녀의 안에 싸질러 놓은 정액이 비적비적 흐르고 있었다.
“으…….”
연우의 성기가 급히 빠져나갔다. 서윤이 히익, 떨며 잔쾌감에 절 때 연우는 그녀의 둔부 아래에 다시금 무릎 꿇었다. 모여 있던 다리가 힘으로 벌어졌다. 보이지 않는데도 연우의 시선이 샅샅이 느껴졌다. 서윤은 평생 본 적도 없는 은밀한 아래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느껴지세요? 선생님 보지에서 제 좆물이 흘러요.”
아직 달떠 있는 새빨간 살점을 연우가 손가락으로 뭉갰다. 연우의 손가락을 타고 찌걱찌걱 젖은 소리가 서윤의 귓가에 낱낱이 고해졌다.
“귀여워…….”
서윤은 차마 수치스러워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턱을 높이 치들고 최대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 애썼다. 연우는 어느새 통통한 소음순 두 날개를 펼쳐 아래를 관찰하고 있었다.
“선생님 윗입에도 먹이면 좋을 텐데.”
연우가 흐르는 정액을 다시 서윤의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부감에 서윤이 고개를 저으며 다리를 모았다. 연우가 킥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다감한 손길로 서윤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아랫배를 문질러 주었다.
“부끄러우세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서윤이 벌컥 뒤를 돌며 소리치다가 마주한 얼굴에 말문이 막혀 입을 벌렸다.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당장 입술이 엉길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이 얼굴이 좋아요.”
“…….”
“잔뜩 느껴서 빨갛고, 떨었는지 하얗게 질려서는. 마음에 들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눈길이 짙었다. 이 애가 자신의 얼굴 어디를 훑어 내는지 다 읽힐 정도였다. 통통한 이마를 지나 처연한 눈가, 촘촘한 속눈썹, 둥근 코끝, 붉은 볼, 도톰한 입술 산…….
연우가 손을 들어 서윤의 머리통을 감싸 안았다. 쪽, 쪽 달게 입 맞추면 가슴 한편이 뻐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 궁핍했던 마음 위로 무한한 애정이 와르르 쏟아지는 듯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연달아 퍼부어지는 애틋한 입맞춤은 서윤이 평생 찾아다녔던 것이기도 했다.
폭력을 나누어 들자 안도하던 어머니는 해 줄 수 없었던 것. 한평생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착취하고 갉아먹으며 살았던 아버지는 더더욱이나 해 줄 리 없었던 일. 정략혼이었지만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던 대현 역시 절대 서윤에게 되어 주지 못했던 그것.
지금 연우는 꼭 안락한 요람 같았다.
그 어떤 외풍이 불어와도 그녀를 꽉 끌어안아 지켜 줄 요새처럼 단단했다.
“그거 아세요? 제 상상 속에서 선생님은 훨씬 음탕했거든요.”
이성은 말하고 있었다. 부정하라고. 들어 본 바 없는 음담이 끔찍하다 소리치며 밀쳐 내야 한다고. 유혹에 취약한 본능만이 이 다디단 애정을 마음껏 받아먹으라 서윤을 향해 손짓했다.
그녀가 머뭇대는 사이 유유히 웃은 연우가 여전히 서윤을 끌어안은 채로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품 안에 가둔 채 체온을 느끼게 했다. 사부작사부작 움찔대며 어쩔 줄 모르는 약한 동물을 마음껏 예뻐했다. 자신의 씨까지 품었는데 사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잠깐. 연우야, 잠깐만.”
그 순간, 서윤의 미약한 힘이 연우의 가슴팍을 밀어 냈다. 깊은 바다에 빠졌다 튀어나오듯 갈급한 몸짓이었다. 연우가 못마땅한 얼굴로 설핏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숙인 채 낑낑거리는 서윤은 알지 못했지만, 눈에 띄게 빈정이 상한 낯이었다.
“이러지 말자.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선생님 얼른 씻을게. 아래가 너무 끈적거려서…….”
삐딱한 시선이 쏟아지는데 서윤은 연신 연우를 떨쳐 내기 바빴다. 연우가 혀로 볼을 쓸어내린다. 제 좆물을 받아 아래가 끈적인다는 대목에서는 피식 웃음이 샜다.
첫 관계부터 지금껏 몇 번이고 제 정액을 받아 놓고, 그걸 선연하게 느끼고 있으면서, 아들을 운운하던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
연우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심히 고개를 숙여 서윤의 입술 가까이로 제 입술을 스쳤다. 내뱉는 목소리도 고저 없이 덤덤했다. 장대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스산함처럼 흐리고 가라앉아 있었다.
“어차피 다시 더럽혀질 텐데, 그냥 해요.”
연우가 서윤의 입술로 숨결을 흘리며 속삭였다. 아직도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고 있다면 몇 번이고 쑤셔 주면 될 일이었다.
그만이 알고 있는 연약한 샘이 범람할 때까지 정액을 쏟아 주면 되었다. 그와 그녀를 닮은 아이를 가진다면 부정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
“선생님, 밤은 길어요.”
“…….”
“아니면, 같이 씻을까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지며 연우가 은근하게 서윤의 허리를 쓸었다. 손길을 기억하는 몸이 야릇하게 달아올랐다. 눈꺼풀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렸다.
“아까 박히면서 보지가 이상하다고 하셨잖아요. 다시 꼼꼼하게 봐 드릴게요. 방금 전에는 정액에 씹물까지 범벅인 데다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 말, 제발 쓰지 마. 연우야, 그건 정말 나쁜 말이야.”
“어떤 말이요?”
연우가 천진한 척 가증스럽게 눈을 떴다. 서윤이 난처한 얼굴로 알지 않느냐는 듯 연우를 바로 보았다. 최근 본 중에 가장 앙칼진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보지? 정액? 씹물?”
“우연우!”
그녀의 기억 속에서 상냥하던 소년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쓰레기로 나뒹굴었다. 서윤은 답지 않게 큰소리를 냈다. 연우를 향해 이렇게 큰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모르겠어서 여쭤본 거예요. 섹스할 때는 보지로 제 좆을 아프도록 조이면서 질질 싸길래 괜찮으신 줄로만 알았어요.”
“…….”
“제 자지가 좋다고도 말씀하셨었잖아요.”
연우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말이 도통 연우의 것 같지 않았다. 신께 정결을 맹세하지도 않았으면서, 고결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지껄이기에는 지나치게 상스러웠다.
“연우 너…… 정말 이상해졌어.”
“제가 이상해진 이유를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나요.”
책망하듯 내리꽂히는 목소리에 서윤이 바짝 치켜뜬 눈을 한 수 접었다. 연우는 소리 내어 웃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제가 정말 책임을 묻기를 바라세요?”
대신 아주 애절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입술을 떼면서는 진실로 그녀의 유혹에 실수로 발을 절어 쾌락을 구걸하는 병신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재미있었다. 그가 살면서 버러지의 기분을 느끼는 일은 서윤에 관한 일이 유일했다.
“선생님께 제 처음을 바쳤어요.”
“그건…….”
서윤의 볼가가 움츠러든다. 그 어찌할 바 몰라 우물거리는 볼을 한 입에 씹어 삼키는 상상을 하며 연우가 서윤을 끌어안았다.
“오늘 밤 한 번일 뿐이잖아요, 네?”
그가 사분사분 말하며 그녀의 어린아이였던 시절처럼 몸을 부벼 왔다. 서윤은 참회로 눈을 감음으로써 이 무거운 함락을 허락했다.
각자의 방에 따로 욕실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방과 방 사이의 욕실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윤을 안아 욕실로 데리고 온 연우는 그녀를 욕조에 걸터앉히고는 물을 받았다. 미온수가 연우의 손끝에서 음표처럼 나부꼈다.
“선생님.”
욕조의 절반보다 못 미치게 물을 받은 연우가 서윤을 불렀다. 언뜻 보아도 물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윤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연우를 보자 흐릿한 미소가 돌아왔다.
“벗으셔야죠.”
기특하다고. 애틋하다고. 예뻐 마지않는다고.
서윤은 지난날에는 맞았고 현재에 와서는 완전히 글러 먹은 연우에 대한 감상을 상기해야 했다. 차라리 연우가 짓궂은 짓을 일삼는 미운 일곱 살 같은 아이였다면…….
“히익.”
서윤이 생각에 잠긴 잠깐을 연우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연우가 서윤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들어 올렸다. 일으켜 옷을 벗기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우는 잠옷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서윤을 욕조 안에 빠트렸다.
“……!”
잠옷이 서서히, 흠뻑 젖어 들었다. 몸의 실루엣이 여과 없이 비쳤다. 연우가 셔츠 단추를 푸는 동안 서윤은 엉덩이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섰다. 그녀 딴에는 도망이었건만, 그에게는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윤이 기어코 물을 헤치며 뒤돌아 욕조를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연우가 서윤의 잠옷 뒷덜미를 잡아챘다. 순간 목이 조이는 감각에 서윤이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직감 하나는 좋은 여자였다. 무슨 짓을 당할지 벌써 알고 있는 듯했다.
“왜 도망가세요?”
연우는 옷을 벗기를 포기했다. 이대로 목욕을 해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섹스에 미친 사람들처럼 욕조 아래에서 얽힌다고 생각하자 성기가 뻐근해질 정도였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혼자 씻을 수 있어.”
연우에게 붙들려 도망치지 못하고, 반쯤 물에 몸이 잠긴 서윤이 피력했다. 제자리에서도 삐죽삐죽 도망치기 위해 안달이었다.
애석하게도 혼자서도 잘하는 건, 그가 그녀를 볼 때에 있어 그리 칭찬해 주고 싶은 요소는 아니다. 차라리 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편이 연우의 기분을 더 기쁘게 만들어 주리라.
“아까 박힐 때는 몸도 못 가누시던데. 그럴 리 없어요.”
“너 정말……!”
“자, 벌려 보세요.”
연우가 상냥함을 가장한 채 우악스럽게 서윤의 다리를 벌렸다. 물에 젖은 원피스가 빠듯하게 딸려 올라간다. 밀지 아래에서 얕은 물이 찰랑거렸다.
“아, 흣……!”
연우가 벌어진 다리 사이를 유심히 지켜보며 그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트렸다. 문질거리며 자극하고 까뒤집어 속살을 보았다.
“우선 깨끗하게 씻어야 하니까요.”
중얼거리는 연우의 눈이 탁했다. 서윤의 붉은 밀지를 들여다보며 연신 혀로 입술을 쓸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져서, 서윤은 움칠움칠 허리를 떨어야 했다.
“귀여워요.”
연우가 엄지와 검지로 구멍을 벌리며 읊조렸다. 이내 한 손바닥 가득 서윤의 비부를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소음순을 쓸어내리며 후, 쾌락에 절은 한숨을 뱉었다.
“보지가 통통해서, 쥐고 있으면 기분 좋아요.”
“흐, 흣, 아…….”
욕조에 겨우 등을 지탱한 서윤이 숨 가빠 할딱거렸다. 제 손 아래에서 다리를 벌린 채 무력하게 흐드러진 서윤을 보며 연우가 비죽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아파. 그만, 그만해, 연우야…….”
“아파요?”
“따끔거려. 정말로, 정말이야.”
그러니 제발 놓아 달라는 뜻이었지만, 연우는 들어먹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말을 들을 위인이었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요?”
고개 숙인 연우가 제 손 안에서 희롱당하고 있는 아래를 진지하게 살폈다. 조금 만져 줬다고 그새 바짝 달아오른 클리토리스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리고, 벌름거리며 꿀을 뱉어 내는 구멍을 둥글게 만져 주었다.
“이상하네요. 보기에는 멀쩡한데.”
“아니야, 아니야. 네 게 너무 커서.”
“다치지는 않았어요.”
무슨 변명을 해도 통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서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식으로 저항해서라도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 꽤나 간곡해 보여 연우는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다치지도 망가지지도 않았어요. 구멍으로 많이 받아 봐서 그런가.”
“아흐, 읏.”
구멍을 매만지던 손가락 하나가 쑤욱 내벽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축축하게 젖은 여린 살을 기쁘게 만끽하며 장난치듯 안쪽을 깔짝거렸다.
“보세요. 손가락만 쑤셔 줘도 이렇게 좋다고 씹물을 질질 흘리는데.”
찰박이는 물소리에 애액이 흐르는 소리가 찌걱찌걱 섞여 든다. 이미 몇 번이고 서윤의 몸을 탐험한 연우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건반을 누르듯 섬세하게 내벽의 한 지점을 둥글려 기어코 절정 앞까지 데려다 놓았다.
“다행이에요, 선생님. 그쵸?”
“하흐, 흣.”
연우가 안쪽을 꾹, 꾹 누를 때마다 서윤이 몸부림쳤다. 요의가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연우를 밀치고 소변을 누고 싶었다.
“밤새 해야 하는데 다쳤으면 보지에 쑤셔 줘야 하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어요.”
“아, 여, 연우야. 선생님, 선생님.”
차마 쌀 것 같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서윤에게 남은 마지막 체면이었다. ‘선생님, 쌀 것 같아’라니. 맨정신에 그런 말을 뱉느니 차라리 혀를 깨무는 편이 나았다.
“선생님, 흣.”
조여드는 내벽이 오르가슴에 이를 때의 그것이라, 연우는 서윤의 심정을 이해하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선생님, 선생님 반복하는 게 꼭 상황이 역전된 것 같지 않은가.
그 또한 자극적이기는 했다. 앳된 얼굴로 존경을 말하는 서윤을 가지는 것도 꽤 구미가 당겼다. 어떤 순간이든, 어떤 몰골이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서윤이라면 다 괜찮았다.
“연우야, 선생님. 그만, 그만 놔 줘. 제발, 흣. 더러워. 아앙, 응.”
결국 다 참아 내지 못한 서윤이 연우의 손에 삐질 물을 터트렸다. 애액과 다르게 튀어나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서윤이 내벽을 조이며 비명 같은 신음을 질렀다.
“괜찮아요. 싸세요.”
연우가 느긋하게 흥분점을 갉아 내며 말했다. 물을 잘박이며 긴장으로 바짝 선 엉덩이를 기특하다는 듯 토닥토닥 두드리기도 했다.
“아흣, 아, 으응. 더러워, 정말, 흣.”
“고작 이런 게 뭐라고요.”
우리는 앞으로 더 더러운 짓을 할 텐데. 한 줄기 터진 물마저 마시지 못해 아깝다는 생각에 연우가 언뜻 미간을 좁혔다.
“착하지. 싸세요.”
“연우야, 연우야…….”
“네, 제 손에 쉬 싸세요.”
연우가 나긋하게, 그러나 위압적으로 명령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서윤이 물줄기를 뱉어 냈다. 바르르 떨며 극도의 쾌감과 해방감에 흐느꼈다.
“안 돼. 흐앗. 힉. 너 정말 이러면 안 돼…….”
어느새 밀지와 연우의 얼굴이 가까워, 터져 나온 물줄기가 언뜻언뜻 연우의 볼가를 스쳤다. 차마 눈으로 담기 어려워 서윤이 질끈, 눈을 감았다. 달아오른 몸은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연신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쾌락에 시달리기 바빴다.
“저도 선생님 보지에 싸면 되죠. 공평하게.”
연우가 조금 더 손가락을 움직여 남은 물까지 모조리 뽑아냈다. 지난한 해방감이 끝나자 몰아치듯 몸이 늘어졌다. 연우가 잡아 주지 않고 있다면 미끄러져 얕은 물에 얼굴까지 빠져 버렸을지 모를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절정에 빠져 눈을 깜빡이는 서윤을 보며 연우가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더 기다리지 않고 두 손으로 각각 서윤의 양 무릎을 붙들었다.
“흣…….”
그대로 다리를 밀어 올린 연우가 욕조 물에 빠져 있는 서윤의 손에 무릎을 물려 주었다. 서윤이 어리둥절하여 올려다보자 연우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잘 붙들고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연우가 가슴께에 바짝 붙여진 다리를 벌려 주었다. 서윤이 저항이라도 할라치면 물끄러미 내려다봄으로써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우리 공평하기로 했잖아요. 선생님이 한 번 제게 섹스를 구걸하셨고, 제가 선생님께 한 번 섹스를 애걸했죠. 방금 선생님이 제 손에 싸셨으니까, 이제 제 차례예요.”
연우가 바지 사이에서 좆을 꺼내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반문할 힘도 없었다. 서윤이 꿀꺽, 침을 삼키며 연우에게 다 들릴 정도로 색색 숨을 쉬었다. 시선은 연우의 오만한 얼굴에 고정된 채다. 연우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보며 제 손으로 느릿느릿 성기를 문질렀다.
“후…….”
서윤의 입이 다물렸다. 연우가 그녀를 보며 자위하고 있었다. 성기의 대가리를 서윤의 아래에 고정한 채로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 읏, 씨발.”
갑작스레 귀에 내리꽂히는 욕설에 서윤이 기겁하며 눈을 크게 떴다. 연우는 그 모습이 웃긴지 쿡쿡 웃으면서 손놀림을 점차 빨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선생님 온몸에 좆물을 싸질러 주고 싶은데.”
읊조리는 말에 서윤마저 달아올랐다. 맞닿아 있던 시선을 황급히 외면하며 가슴팍을 들썩이는 여자를 보고는 연우가 비스듬히 웃었다. 눈길을 내리자 젖꼭지가 빳빳하게도 도드라졌다. 물에 반쯤 잠긴 채로 벌어진 다리 사이의 구멍마저 뻐끔거렸다.
“후우. 구멍 벌름거리시네요. 좆물 싸 준다니까 그저 좋으세요?”
연우가 눈빛으로 서윤의 곳곳을 탐하며 그녀를 읽어 냈다. 서윤이 팩 하고 고개를 돌려 연우를 흘겼다. 바짝 토라져도 보이는 얼굴에 연우가 못내 즐거워하며 좆 대가리를 서윤의 구멍 가까이 바짝 붙였다.
“소원대로 싸 드릴게요.”
“끄흐……!”
성기가 맞닿는 감촉에 서윤이 몸서리쳤다. 연우가 탁, 탁 성기를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클리토리스와 부딪히면, 저도 모르게 눈이 풀린 채로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그대로 붙잡아서 박을 거예요. 아프시다면서요. 그걸 바라시는 건 아니겠죠?”
어쩌지 못할 정도로 달아오르기만 하면, 매번 싫다고 울며 도망치려 드는 서윤을 연우는 잘 알았다. 서윤은 원망스레 연우를 올려다보면서도 다리를 붙든 손에 힘을 빼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주어 버텨 냈다.
“옳지.”
그 모습이 꽤 기이하고, 기꺼웠다. 연우가 좆을 만지고 있지 않은 팔을 서윤 쪽으로 뻗었다. 긴 손가락이 서윤의 턱을 귀엽다는 듯 간질였다.
“이렇게 난잡한 꼴로도 선생님은 예쁘네요.”
서윤이 떨림을 숨기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응?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후우.”
연우의 손짓이 빨라졌다. 성기 끝이 서윤의 아래에 닿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 은근하게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허리 아래가 아찔하고 정신이 아득했다.
“하아…….”
서윤이 움칠움칠 연우의 손짓에 허리 짓을 맞췄다.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분명히 자각한 채로도 그렇게 요망한 짓을 했다.
“흐읏, 응.”
정신이 어질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연우는 연우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녀가 알던 애틋한 소년이 아니라, 모르는 남자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예뻐하는 남자.
귀엽다 달콤한 말을 귓가에 흘려 주면서, 짐승처럼 자신을 욕망하는 남자.
“하, 씹.”
서윤이 쾌락을 찾아 분명하게 허리를 움직인다. 그 모습을 낱낱이 목도하고 있는 연우의 심정은 조금도 모르는 눈치였다.
당장 엎어다가 좆을 쑤시고, 음탕한 말을 귓가에 박아 넣으며 자궁 깊숙이 정액을 싸고 싶었다. 좋다고 느끼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리도록 마음껏 희롱하고 싶었다.
“미치겠네…….”
연우가 몸을 숙여 서윤에게로 겹쳐 왔다. 힘주어 들어 올린 무릎 위로 남자의 무게를 짓누르며 다가갔다. 몽롱하게 달아올라 느끼는 표정을 마음껏 감상하며 손을 놀렸다. 성기가 꺼덕대며 씨근거렸다. 흥분감이 가시지 않아 프리컴이 그 사이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싸 줘?”
“……읏, 으. 흐응.”
“선생님, 보지에 싸 드릴까요?”
음험한 분위기가 짙어졌다. 서윤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차라리 정신없이 박히고 있었다면 입술을 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연우가 당장이라도 구멍을 범할 듯이 쿡, 쿡 구멍을 빗겨 찔렀다. 서윤의 구멍 입구가 성기 끝과 맞닿을 때마다 흡입하듯 좁아졌다.
“흐으, 읏.”
서윤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애간장이 녹아들었다.
“대답하세요.”
연우가 성마르게 재촉하며 성기를 갈라진 틈새에 끼워 넣었다. 미끌미끌하게 젖은 계곡 위로 잔뜩 성이 난 성기를 위아래로 문질렀다. 애액과 물이 찰박찰박 그의 성기를 매끄럽게도 자극했다. 당장이라도 싸 버릴 것만 같다. 부드러운 요람에 파고든 듯 아찔했다.
“혼내야 말을 들으실 거죠?”
“너도, 너도 싸고 싶잖아. 흐읏, 읏. 아응.”
부러 모진 말을 하는 연우를 보며 서윤이 원망을 담아 노려보았다. 그 새침한 말에 연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유순한 눈을 하고 있으면서, 이럴 때는 꽤나 앙칼진 새끼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그게 멈추기 힘들 정도로 꼴리는 줄도 모르고.
“맞아요. 선생님 보지에 싸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요.”
연우가 서윤의 몸에 조금 더 밀착했다. 성기의 핏줄이 클리토리스를 거세게 짓누르며 아리도록 오갔다. 구멍 사이로 끈적한 애액이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릎을 쥐고 있는 손에도 더 이상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선생님을 정액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싶어요.”
“으응……!”
“하루 종일. 평생.”
“아흣, 읏. 너무, 이상해. 흣.”
“응? 서윤아.”
범람해 흘러내릴 것만 같은 애정이 그녀의 이름에 담겼다. 서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전율이 정신을 달게 마비시켰다.
“서윤아, 후, 서윤아…….”
“아으, 응. 조, 좋아. 흣.”
“하, 씹…….”
그 순간, 연우가 서윤의 위로 사정했다. 고작 좋다는 말 한마디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뻐근한 사정감이 밀려들며 인내할 수 없었다.
연우가 제 정액으로 범벅이 된 서윤의 아랫배를 느리게 훑어 냈다. 손가락을 들어 묻어난 정액을 빙글빙글 문질렀다. 그녀의 자궁에서 소용돌이치는 정액처럼 보였다.
성기가 다시 힘을 얻었다.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또 한 번 서윤을 향해 흥분했다. 몸을 일으킨 연우가 강한 힘으로 서윤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욕조에 앉아 빳빳하게 선 성기 위로 그녀를 앉혔다.
“아……!”
오래 기다린 환희가 내벽 깊숙이 차 들었다. 연우도 이미 이성을 잃은 채로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렸다. 작고 연약한 육체가 그의 몸짓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풍만한 젖가슴 역시 출렁이며 그를 유혹했다. 연우가 서윤의 가슴 사이로 얼굴을 파묻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퍽, 퍽, 좆을 내벽 안 깊숙하게 쳐올리며 혀를 내어 가슴골을 핥았다.
“하아. 선생님, 제 이름 불러 보세요.”
목을 길게 빼고 흐느끼는 서윤을 향해 연우가 명령했다. 이미 쾌락에 빠져 암전 상태에 빠진 서윤은 착실하게도 그의 말을 들었다.
“아, 으, 흣. 여, 연우야.”
“그래, 서윤아. 후.”
“연우야, 연우야…….”
서윤이 연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미친 것 같았다. 아끼던 제자에게 발정하며 다리 사이를 기꺼이 내주었다. 부끄러워 얼굴도 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이대로 연우에게 무너져 버리고 싶었다. 이미 선악과를 베어 문 지 오래인데, 순결을 연기하는 짓 따위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밤새 관계를 치렀다. 부정하던 서윤도 이미 본능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연우가 주는 쾌락을 아낌없이 받아들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연우의 낮은 한숨 소리와 서윤이 앙앙대는 소리가 집 안 곳곳을 울렸다.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곳에서, 연우에게 다리 사이를 범해졌는지도 다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연우를 따라 숨어들었던 그녀의 방 드레스룸이었다. 서윤이 실례인 것 같아 열어 보지 않았던 우측 옷장을 연우는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서윤이 챙겨 온 옷을 넣어 두었던 작은 서랍장에 들어찬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옷과 가방, 악세서리가 그 안에 가득했다. 연우는 서윤을 드레스룸 벽 쪽에 몰아붙인 채로 팔을 뻗어 옷을 골랐다. 아니, 옷이라고 보기 힘든 새빨간 슬립이었다.
당장이라도 쑤셔 달라 애걸하는 듯한 슬립을 연우가 제 목 아래에 들이밀어 차가운 감촉이 몸에 닿았을 때도, 서윤의 다리 사이는 젖고 있었다.
음탕한 상상이 이어졌다. 원래부터 밝히는 여자였던 것처럼, 슬립을 입은 채 연우의 위에서 허리를 돌리는 자신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서윤의 침대 위에서였던 것 같다. 부끄러운 옷을 입고, 연우의 배에 올라탄 서윤을 보며 연우가 웃었고, 젖꼭지가 꼬집혔다. 그렇게 연우의 탄탄한 아랫배에 애액을 흠뻑 흘린 뒤에야 성기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읏, 응……!”
분명 정신이 흐려져 기절했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연우의 허벅지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연우의 방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리. 그랜드 피아노의 의자 위였다. 서윤의 비부는 방문을 바라보며 벌어져 있었다.
“하아…….”
목덜미가 씹혔다. 연우가 삽입을 이어 가며 정신없이 제 몸을 핥아 먹고 있었다. 영역 표시를 하는 짐승처럼 타액을 흘리고 씹어 흔적을 남겼다.
서윤이 흐린 정신을 붙잡으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살결 위로 열꽃이라도 핀 것처럼 온몸이 얼룩덜룩했다. 지난밤 연우가 그녀의 몸에 남겨 놓은 각인이었다.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하으, 읏, 힘, 힘들어.”
서윤이 연우의 어깨 위로 머리통을 기대며 가느다란 목소리를 냈다. 저녁부터 지금까지, 밤새 연우를 받아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연우는 발정기라도 맞이한 듯 지치지 않았다. 서윤이 기절하면 기절한 대로 안았고, 깨어나면 깨어난 대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힘드세요?”
연우가 귓바퀴를 빨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 간질간질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서윤이 으응, 내벽을 조였다.
“아, 흐, 읏. 연습, 연습해야지…….”
눈꺼풀을 들어 올려다본 시계는 어느새 오전 연습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매몰되어 늘어진 채로, 서윤은 가슴을 움켜쥔 연우의 손등을 쥐었다. 꺼져 가는 불씨처럼 목소리가 흐렸다. 이따금 아랫배를 파고들며 찌릿하게 울리는 쾌감에 흥건한 물을 흘리는 것이 몸짓의 전부였다.
“연습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지금 끝내면 외면하실 거잖아요.”
“흣.”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거부하시겠죠. 하아.”
“그건, 흐, 아응.”
연우가 끔찍하다는 듯 서윤의 어깨 위로 이마를 비비적댔다. 애절한 목소리에 순간 서윤마저 감화되었다. 서윤의 뒷덜미에 쪽, 쪽 입을 맞추는 얕은 입맞춤마저 슬픔에 잠긴 듯 느껴졌다. 그러나 서윤의 뒤에서 살을 비비는 연우의 눈동자는 내내 싸늘하기만 했다.
“저는 못 잊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제 좆에 쑤셔지면서 좋다고 하셨던 일,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들면서 정액을 졸랐던 일…….”
“무, 무슨. 흣. 아으으.”
서윤이 당황하여 연우의 손등을 세게 움켜쥐었다. 연우는 그녀의 귓가에 음담패설을 흘려 넣기를 멈추지 않은 채로 추삽질에 힘을 주었다. 퍽, 쳐올리자 서윤이 히익 놀리며 허리를 둥글게 휘었다.
“차라리 정말, 아이라도 생기면 선생님이 제게 눈 돌리지 않으실 텐데.”
“아흣, 으, 아.”
“그것도 아니라면…….”
완전히 고립시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지. 연우가 뒷말을 삼킨 채 뭉근히 허리를 돌렸다. 서윤이 느끼는 지점에 멈추어 애타게도 문질러 주었다.
“선생님, 조금 더 벌려 주세요.”
연우가 서윤의 무릎 뒤로 팔을 걸며 힘껏 벌려 준다. 작게 열린 방문 틈새로 보아도 그의 좆을 물고 있는 비부가 다 보이도록 활짝 다리를 열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이에요. 잔뜩 싸 드릴게요.”
“아, 아흐, 읏! 연우, 연우야. 연우야.”
“제가 싸 드리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요. 맞죠?”
“앙, 으, 으응. 흣.”
한계까지 커진 성기를 빠듯하게 조여오는 내벽을 느끼며 연우가 쾌감에 절었다. 아니, 무엇보다 그를 흥분시키는 것은 조금 있으면 그녀를 완전하게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후, 선생님. 선생님…….”
“아, 아아, 연우야. 너무, 너무 좋아.”
아직 지난 밤에 잔상에 머물러 있는 서윤은 기꺼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연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머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소중한 것은 소중히 다뤄야 한다. 하지만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아낄 수는 없었다. 그가 그녀를 귀히 대할 때는 우선 그의 것이 되어 주어야 했다.
연우는 서윤이 망가지더라도 얼마든지 귀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의 애착 인형처럼 평생 동안이나.
“아, 아읏, 하. 연우야, 연우야.”
“선생님, 하아.”
절정에 가까운 서윤의 신음이 커지자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연우는 가슴을 쥐고 있던 손으로 서윤의 턱을 움켜쥐었다. 신음성이 멈추지 않도록 엄지손가락을 서윤의 입술 안으로 처넣자 말캉한 혀가 만져졌다.
“선생님, 따뜻해요. 부드러워요. 위도 아래도, 후, 미칠 것 같아요.”
“으, 으응, 좋아.”
좋아. 그렇게 말하는 발음이 모두 뭉개졌다. 연우의 손을 타고 서윤의 타액이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턱까지 질질 흘러 밖에서 보면 아찔한 장관이리라. 입술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음습한 정사의 현장이거나. 희열이 오르자 서윤의 내벽 안쪽에서 성기가 부풀었다.
“아, 거기, 거긴 안 돼. 안 돼…….”
퍽, 쳐올린 순간 서윤의 동공이 확장됐다. 연우는 더 단단히 움켜쥔 턱을 방문을 향해 고정시켰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와 훔쳐보는 이와 눈이 마주칠 수 있도록.
“가, 가아.”
“몇 번이고 가셨으면서.”
“아니, 싸, 쌀 것, 쌀 것, 흐읏.”
“제 손에도 쌌는데 바닥에도 싸는 게 무어라구요.”
그 순간, 서윤이 귀가 예민하게 방문 밖의 발소리를 잡아챘다. 내벽이 바짝 좁아진다. 눈이 크게 뜨이며 주섬주섬 연우의 팔을 잡았다. 연우는 어느샌가 이성을 잃은 것인지, 정신없이 그녀의 안으로 성기를 쑤셔 박고 있었다.
“선생님, 싸세요.”
“잠깐, 하읏, 앙, 잠깐, 잠깐. 잠깐, 연우야. 아앗……!”
놀라 목소리를 죽여 봤자였다. 이미 방문자는 이 난잡한 교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챘을 테다. 연우는 발작하듯 몸서리치는 서윤의 몸을 단단해 고정했다.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끼며 그녀의 귓가에 사랑을 고백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머, 멈춰 줘. 밖에, 밖에. 연우야. 아, 아읏, 하으, 히익.”
서윤이 고개를 돌리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럴수록 턱을 쥐고 있는 연우의 힘을 단단해졌다. 어느새 서윤의 동공 가득 눈물이 맺혔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어느새 성큼 가까워져 방문 앞에 멈추었다.
“선생님, 후우, 사랑해요.”
저주처럼 다시금 읊조려지는 고백과 동시에 문 틈새로 시선이 마주쳤다. 서윤의 시야에 경악한 현주의 표정이 한가득 들어찼다. 위와 아래 모두 찐득한 물을 흘리며 연우에게 박혀 흔들리는 모습이 낱낱이 보고되고 있었다.
“안 돼. 아, 안 돼, 흐읏, 아, 으응. 아응!”
긴장으로 내벽이 좁아졌다. 접합부가 빠듯하게 물리며 절정이 찾아왔다. 아찔한 요의는 참아 내려야 참아 낼 수 없었다. 질질 터지는 물을 느끼며 서윤이 눈을 감았다. 몸서리치며 끔찍해 비명을 내질렀다.
“선생님, 선생님…….”
어느새 사정한 연우의 정액이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연우는 겁에 질려 초점을 잃고 늘어진 서윤을 다감하게 끌어안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쾌락이 그를 잠식했다.
곧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연우와 서윤이 어떤 관계인지, 서윤이 누구의 것인지. 오늘은 세상에 그와 그녀를 선언하는 첫날이나 진배없었다. 연우만이 아는, 그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서윤이 미친 사람처럼 안 된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연우가 서윤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 아아, 안 돼…….”
짓밟혀 뭉개진 순간에도 그녀는 단연코 빛이었다. 아름다웠다.
* * *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더더욱이나 여자에게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이 치부이거나 죄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면, 세상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어코 그 여자를 심판대 위로 끌고 왔다. 얼마나 끔찍한 치부인지 입방아를 찧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죄라 수군거렸다. 끝끝내 마녀로 만들어 지옥으로 떨어트렸다.
마찬가지였다.
서윤과 연우의 관계가 소문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괴물의 이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