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하나. 장롱 속이 나의 관 (12/14)

외전 하나. 장롱 속이 나의 관

김이 오르는 도미에 젓가락이 닿는다. 생선의 속살을 떼어 꼼꼼히 살펴본다. 가시는 없는지 행여 티끌 같은 것이라도 있어 아이의 목을 아프게 하지 않을지 염려하며 밥상 앞에 둘러앉은 세 명의 어른은 작은 입 속으로 들어갈 음식을 살피고 또 살폈다. 수저를 쥐고 앉은 아이는 입가를 닦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당연하단 듯 평온하게 받았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면 인자한 웃음과 눈빛에 깃든 사랑을 발견했다.

하얀 쌀알 위에 생선 살이 올라가고 아이가 수저를 들어 한 입 삼키자 어른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웃었다. 잘 먹는다고 칭찬하며 밥상을 더 가득 채워 주지 못한 걸 마음 아파했다. 아이는 그런 것을 먹었다. 그저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었을 뿐인데, 사랑을 받았다.

그런 날이, 내게도 있었다.

“학생! 학생 아니꽈?”

“…….”

“대학생이지게?”

경운기를 탄 남자가 혀를 빼고 눈을 뒤집어 까며 킬킬 웃었다. 창백하다 못해 거뭇해진 피부엔 구더기가 기어 다녔다. 속이 울렁거렸다. 환각이다. 환각일 뿐이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심해지는 증세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남자에게 붙은 날벌레는 사라지고 서늘한 기색만 감돌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앳돼 보영 말 걸엄수다. 미성년자만 아니면 됐수다.”

대답 없이 자기만 보는 게 이상했는지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떠났다. 나는 자조하며 손에 걸린 담배를 응시했다. 어차피 내 세상엔 죽은 사람밖에 없는데, 뭘 안도해.

우습게도 그렇게 돼 버렸다. 부패한 모습이 아니라 창백한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덜 끔찍한 장면 속에 살기 위해 수백 알의 약을 삼키며 여기까지 버텼다.

“이리 와라, 아가야.”

나를 찾으러 온 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가자고 말했다. 바닥에 앉은 내 시야로 그녀의 주름진 손이 가까워졌다. 그게 낯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따뜻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손이 등 한 번만 토닥여 준다면 영원 같은 불면에서 해방되리라 믿었는데. 평온하게 잠들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이를 악물었다. 등신 같은 나는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몸 주위로 날벌레가 꼬이는 장면을. 금방이라도 등을 돌리실 것 같아 울음이 턱, 턱, 목에 걸려 왔다. 할머니 가지 마세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그럼 잡을 수 있어요.

“아가, 은오야.”

말도 못 하고 굳어 있는 내게 그녀는 몸을 숙여 왔다. 나는 그저 바라본다. 오늘이 지나면 기약 없는 기다림만 남아 밤이 길어질 테니까.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 두어야 모자람이 없을 테니까.

“가자.”

그녀는 내 손에 걸린 담배를 빼앗아 길바닥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 나는 기어이 손을 잡지 않았다.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 느리게 걸었다. 노을이 진 하늘이 눈부시도록 찬란해 눈가가 시큰했다. 내 마음은 오래전부터 어두운데, 왜 하늘은 이렇게까지 아름답나. 아름다운 사람을 데려간다고 이리도 맑은가.

“가자, 아가야. 가자.”

나를 보채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아가라는 부름에 마른 웃음이 샜다. 묻고 싶었다. 그녀에게 나는 아직도 일곱 살처럼 보이는 건지. 그래서 열여덟 끝자락에 있는 사내놈에게 자꾸 아기라고 부르는 건지.

그녀는 지친 낯빛을 하고 있으면서도 연신 손을 뻗었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 텐데도 자꾸만 그 사실을 잊고 내밀었다.

적막만이 맴도는 구불구불한 길을 다시 걸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동네는 오랜 기억과 다름없이 작고, 촌스럽고, 별 볼 것이 없어 조용했다. 낡은 간판의 찬미 미용실, 그보다 더 낡은 쌀 방앗간 집, 오래된 슈퍼와 평상, 문을 열 때마다 쇳소리가 나던 동네에 하나뿐이던 정육점까지 뭐 하나 변한 게 없어 기가 찼다.

기가 차서, 좋았다. 당장 바다에 빠져들고 싶을 만큼. 당신과 손을 잡고 걸었던 길목이 그대로인 게 좋으면서도, 이제는 함께 걸을 수가 없음에 절망했다. 넓었던 길이 이제는 아주 좁게 느껴졌다. 내가 다 자랄 동안 당신은 이 길을 홀로 걸었을까.

군데군데 안개가 낀 꿈 같은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내가 이 동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굴러다니는 조약돌도, 넘실대는 바다도, 좁은 길목도, 사랑하는 당신들도. 언젠가 가겠다고, 지옥에서 벗어나는 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이곳에 뿌리 내려 베어질 때까지 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환상 속 파라다이스를 꿈꾸던 고대인들이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망한 것처럼 나 역시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움의 통로였던 동네에 도착한대도 사람은 없고 공간만 남아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고.

오던 길을 생각했다.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건어물 냄새가 밴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동네가 가까워질수록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이렇게나 쉬운 것을, 티켓을 사고 몸만 실으면 하루 만에 만날 수 있는 것을 왜 그동안은 해 볼 수 없었는지.

“아이고, 네가 겨슬이 아들이구나. 아이고…….”

기억을 반추하며 걷던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찬미 미용실에서 튀어나온 여자가 눈물을 닦으며 내 팔을 잡았고 반사적으로 그녀를 뿌리쳤다. 놀란 눈동자를 마주하고 바로 후회했다. 싫다는 생각이 들어 밀어낸 게 아니었다. 의지와 달리 몸이 거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상처받았고 나는 언제나처럼 사과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물러났다. 팔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만들었다.

“겨슬이 자식 아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아니다.”

벌어진 거리에 끼어든 할머니가 무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라! 겨슬이 빼다박아신디!”

“아니라고 하믄 아닌 줄 알라!”

“삼춘, 진짜 영 할 거라? 난 겨슬이 친구 아니마씸! 내가 쟤 나올 때부터 머리 다듬어서! 나신디는 숨길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골암수가?”

흥분해 소리치는 여자와 차분하게 대꾸하는 할머니의 음성을 들으며 낡은 미용실 안을 바라보았다. 푹 꺼진 귤색 소파와 작고 까만 간이 세면대, 얇고 거친 타월, 때가 낀 거울. 그 앞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하던 기억. 단골 미용실에서 내게 첫 파마를 시켜 주던 당신이 떠올라 입술을 씹었다.

‘눕히면 눈 감는 외국서 온 인형 같지 않애?’

‘기여. 겨슬이 새끼는 어째 빠글빠글한 머리칼까지 곱딱햄시냐?’

‘겨슬이 니는 밥 안 먹고도 배 따시겠네.’

나이 든 여자들이 칭찬하면 무슨 뜻인지 몰라도 칭찬인 것만은 알아 그 사이에서 해맑게 웃었다. 방긋대는 나보다도 더 환히 웃던 당신. 밤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하며 나를 껴안고 웃던, 방앗간에 참기름을 얻으러 갈 때면 슈퍼에 들러 사탕을 사 주던, 저녁으로 끓일 찌개용 고기를 사며 우리 은오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하고 말하던 당신.

그런 당신의 장례를 치르러 10년 만에 겨우 왔다.

“가자.”

한 발짝 앞서 걷는 할머니를 뒤따랐다. 어느 곳을 눈에 담아도 그녀가 보였다. 오래전부터 만질 수 없게 된 그녀는 이곳에서 수십 명으로 늘어나 내 발목을 잡았다.

“담배가 맛있더냐.”

“아니요.”

작은 등이 물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시 왔던 길을 반추했다. 동네 입구가 보이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빠른 걸음으로 전진했다.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 따라붙은 것을 목격하게 될까 봐 그저 정면만 응시하며 전진했다.

눈물 나도록 그리웠던 오르막을 코앞에 두고 뜨거운 숨을 뱉었다. 오르는 순간 입술이 벌어졌다. 엄마, 라고 소리 없이 읊조렸다. 한 걸음에 한 번씩 그녀를 불러 보며 단숨에 올랐다.

하지만 영정 사진을 마주하자 견딜 수 없었다. 사진 속 아름답게 웃는 얼굴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서, 그 미소가 미워 도망쳤다. 툇마루에 굴러다니던 국산 담배와 라이터를 훔쳐 달아났다.

담배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속을 게워 내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다. 평생 술과 담배를 입에 댈 일이 없다고 믿었다. 지독한 트라우마를 남기고 떠난 남자가 쉬지 않고 하던 것이니까. 괴로워서 저지른 비행은 후회만을 남겼다. 이유가 어찌 됐든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아 고개를 숙였다.

“가서 밥 먹자. 너 먹이려고 밥상 차려 놨다.”

“…….”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오래된 집을 응시했다. 할아버지의 불 꺼진 잡화점, 마당 한쪽에 뒹구는 할머니의 테왁. 곳곳에 걸린 ‘상중’이라 적힌 등불. 마당에 자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몸국과 돔베고기, 나물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침묵하던 이들이 나를 훔쳐보았다. 따가운 눈빛을 못 본 체하며 할머니를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언니! 상중에 이게 뭔 경우 없는 짓이꽈?”

문을 닫으려던 할머니를 밀어내며 들어온 여자가 눈을 형형하게 뜨고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맙서.”

“오빠 없댄 영하는 거 아니우다. 오빠 살아생전에도 언니 몸냥하더니, 딸 앞세우고도 몸냥햄서?”

“갑서, 나 알앙하크매.”

“진짜 노망나서! 문상 온 사람들신디 인사도 안 행 내가 다 챙겸신디! 기어이 상다리 부러지게 밥을 차려서? 아무리, 아무리 손주 왔댄해도게!”

“누가 손주랜! 가라! 문상이영 뭐영 다 필요 없다! 그딴 게 다 무신 소용이라고!”

언쟁 끝에 거칠게 문을 닫은 할머니가 파들파들 떨었다. 문을 짚고 숨만 쌕쌕 내쉬었다. 한참 만에 장승처럼 선 나를 지나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아가, 이리 오라.”

“…할머니.”

“얼른.”

제사상이 아니라 생일상 같았다. 잡채와 갈비찜, 도미조림과 귤 샐러드, 소고기미역국과 할머니가 손수 잡았을 각종 해산물, 닭볶음탕과 어린아이가 좋아할 법한 돈가스까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굶어 죽고 싶었다. 하지만 밥상 앞에 앉았다. 먹으면 체할 게 분명한데도 나는.

“어서 먹소, 우리 아가.”

마주 앉은 할머니가 젓가락을 들어 도미 살을 발랐다. 내 밥그릇으로 하얀 생선 살이 올라왔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전처럼 웃는 얼굴이 보였다.

“이제 눈이 침침해 잘 안 보염신게. 혹시 가시 있을지 모르니 조심히 먹어라.”

“…….”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눈가가 시큰했다. 입 안에서 부서지는 것들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한 입도 드시지 않으면서 할머니는 젓가락질을 쉬지 않으셨다.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음식을 조각내고, 떼어 내고, 수저 위에 반찬을 얹어 주기 바빴다.

“꼭꼭, 씹어서 많이 먹어라.”

입을 닫고 억지로 씹어 삼키는 내게 시선을 떼지 못하며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겨슬아.”

“…….”

“네 새끼, 밥 먹는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수저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꼭꼭 씹어 삼켰다. 바닥을 비운 밥그릇에 새 밥이 채워지고 다시 크게 한술 떴을 때 문이 열렸다.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라 서둘러 입에 넣었다. 과식해 본 적 없는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서걱거리는 밥알을 억지로 넘겼다.

“가셔야 합니다.”

“…….”

“찾으십니다.”

할머니는 어찌할 줄 모르고 나와 딱 버티고 서 있는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붉어진 눈으로 두 손을 모았다.

“애 밥은 먹여 보내면 안 되겠소?”

“남의 집밥, 드실 이유 없으신 분입니다.”

“알다마다. 귀하신 분이니 이런 음식 필요 없겠지만.”

“어서 일어나십시오. 손대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할머니.”

가기 싫어서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나 좀 보내지 말라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소리쳐 달라고, 검은 상복 소매로 눈가를 가리고 울었다. 나를 붙잡는 손길에 소름이 돋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턱이 달달 떨리고 손에 진땀이 맺혔다. 서둘러 테이블을 짚었다.

“갈 테니까, 손.”

“이놈들아! 이놈들아! 밥도 못 먹이냐, 이 나쁜 놈들아!”

있는 힘껏 남자를 내게서 떼 놓은 할머니가 가슴을 치며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내게 손을 뻗고 오열하면서도 차마 손을 내리진 못했다. 내가 싫어하니까, 내가 끔찍해하니까.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손을 끌어 잡고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날벌레고 구더기고 부패한 몸뚱이처럼 보여도 상관없었다. 머리칼이 쭈뼛 서고 등줄기가 서늘하며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심장이 뛰지만, 이곳에 홀로 남아 나를 기다릴 이 사람이 가여워서. 만약에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면 안아 주고 오지 못한 걸 평생 후회할 테니.

“아가, 아가. 아프지 마라. 할미한테 다 주고 가. 안 좋은 거는 할미가 가져갈 테니까 우리 은오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안 아파요. 이제 괜찮아.”

“미안하다, 미안해. 아아, 아가!”

내 팔을 잡고 거칠게 떼어 내는 손길에 끌려갔다. 남자의 팔을 뿌리쳤다.

“내 발로 갈 테니까 손대지 말라고.”

“관장님께서 병원에 계십니다. 철없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남자를 등지며 신발을 신었다. 소란에 고개를 빼고 구경하던 이들이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마당을 지나 별채로 걸어갔다. 영정 사진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술을 따랐다. 구둣발로 들어와 내 팔을 잡아 올리는 남자 때문에 술이 넘쳤다.

“인사만 하고 갈게요.”

“안 됩니다.”

“인사만 하고 가겠다고요.”

“지체할 시간 없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어릴 것 같은데?”

떨리는 팔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손이 닿은 부분으로 구더기가 파고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힘이 없을 것 같은데.”

“…관장님께서.”

“후회할 일 만들지 마세요. 나도 후회하기 싫어서 매달리는 거니까.”

“하지만, 관장님이 병원에 계신데!”

“서진이 내 것 되는 순간, 당신부터 말려 죽일 거야.”

“…….”

“그러기 전에 놔.”

남자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5분 만에 끝내세요. 제가 도련님을 조금 늦게 찾은 거로 보고하겠습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술잔을 채웠다. 상 위에 올리고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무한한 명복을 빌었다. 뜨거워지는 눈가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내게 남은 당신의 사진은 한 장도 없으니까. 나는 이제 희미해질 기억과 오늘 본 영정 사진으로 긴 시간을 버티며 살아야 한다.

“가셔야 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번 절했다.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인사했다.

잘 가,

잘 가요, 엄마.

매일 보고 싶어 했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눈물을 거둬 내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울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외로이 서 있는 할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표정 없는 얼굴로 차에 올랐다. 목줄이 풀려 달아난 개는 천 리도 못 가 잡혔다. 얼마나 더 서진의 개로 살아야 할까. 스무 해도 살지 못한 애송이가 벌써 삶을 지겨워했다. 언젠가 재회할 그녀를 생각하며, 그날만을 기약하며 버텼다.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이제 난 무엇으로 버텨야 할까.

창으로 할머니가 보였다. 푹 기대었던 허리를 곧게 폈다. 창문을 내리는 순간, 차는 망설임 없이 전진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달려오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서겨슬의 자식, 은미숙과 서남오의 손자, 서은오.

그렇게 살아간 날이 있었다.

* * *

익숙한 하루였다. 어제와 같고 그제와도 같으며 수년 전과도 같았다. 쳇바퀴 돌듯 늘 원점인 하루는 내일도 마찬가지일 테고 한 달 후에도, 수년 후에도 같은 모습이리라.

끔찍할 정도로 지루한 연극이었다. 결말이 뻔한 극의 초반부를 매일 반복하는, 꿈도 목표도 없는 무명 배우로 살았다. 관객 하나 없는 무대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골몰하다가도 그저 계단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서둘러 퇴장하고 싶은 겁쟁이는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버텼다.

그래도 하나가 남았으니까. 따뜻했던 사람 하나만은.

“대한민국에, 이렇게 인재가 없어?”

“…….”

“순 돌팔이 새끼들. 그런 새끼들한테 내 아들을 어떻게 맡겨!”

현관에 떨어진 가방과 겉옷을 주우며 어머니를 따라 걸었다. 하루는 인자한 사모님, 하루는 괴팍한 사람이 되어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그래도 이 집안엔 그녀의 사람들뿐이다. 모시는 분의 분노에 두려움보다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었다. 내겐 더없는 공포지만 그녀에겐 더없는 복이다.

“미지근한 물 한 잔 주시고, 차 우려 주세요.”

“녹차로 우릴까요?”

“네.”

익숙한 나의 요청에 집사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아도 분주한 기척이 느껴졌다. 모든 걸 들을 수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 숨어 있는 사람들.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닌, 정확히는 입을 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주문하지도 않은 일을 혹시 모른다는 가정 하나로 준비했다. 욕조에 물을 받고, 클래식 음악의 앨범을 찾으며 차를 우렸다. 이틀에 한 번꼴로 반복되는 행위를 묵묵히 이어 갔다.

“왜 아직도 이걸 치우지 않았어!”

탁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거칠게 치워 내던 그녀가 병원에 가기 전까지 읽던 보고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속이 답답했다. 부탁한 물이 오지 않아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른 곳을 향해 있던 형형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어디 가?”

“물 좀 가져오려고요.”

“대체 이 집 사람들은 하는 일이 뭐야! 내 아들이, 물 한잔 떠먹으려고 날 떠나야겠어!”

“제가 떠 드리고 싶어서, 가져오지 말라 했습니다.”

차분한 내 말에 머리를 짚은 그녀가 심호흡했다.

“아들, 내가 보이는 데에 있어야 해. 너까지 잃으면 나는 살 수가 없을 거야. 응?”

“예. 가까이 있을게요.”

“그래, 찬물은 마시지 마. 몸에 좋지 않아.”

“예.”

허락이 떨어져서야 걸음을 옮겼다. 집사는 보이지 않고 속닥거리는 어린 직원 둘만 있었다.

“이게 수천만 원짜리라며?”

“어, 찻잎 하나 떨어뜨리지 마!”

“안 떨어뜨려. 참 나, 무슨 녹차가 내 일 년……. 허, 본, 본부장님.”

녹차라고 해도 오래된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이라 그렇다고 알려 줄까 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혹시라도 이 모습을 들킨다면 몸서리를 칠 테니까.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도 이들은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물 한잔 마시러 온 거니까.”

컵을 꺼내 냉수를 받았다. 숨 한번 쉬지 않고 마시면서도 남은 손으론 다른 컵을 꺼내 미지근한 물을 받았다. 탁, 소리 나게 컵을 내려놓으며 비죽, 웃었다. 할 수 있는 반항이 고작 물의 온도뿐이라서.

“찻물 우려졌습니까?”

“네? 네, 거의…….”

“주세요. 제가 가져갈게요.”

“저희가 할 일인데…….”

“주세요.”

미지근한 물 한 잔과 차 도구를 담은 트레이를 들고 주방을 빠져나왔다. 거실에 앉은 여자가 수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며 절규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으나 막지 않았다. 미간 한번 구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한숨을 삼키는 일은 눈을 깜빡이는 동작처럼 쉬웠다.

“물부터 드세요.”

물을 건네자 손을 겹쳐 잡는다. 환각이 아니더라도 끔찍한 손이다. 하지만 얌전히 기다렸다. 어릴 때처럼 못 견디고 뿌리치거나 도망가지 않는단 말이다. 한참 만에 겨우 손이 떨어졌다. 그제야 자리에 앉아 차를 따랐다. 그녀의 오롯한 시선을 받아 내며 찻잔을 건넸다.

“불쌍한 내 아들.”

오늘은 불쌍한 아들로 불리지만 내일은 끔찍한 새끼가 되겠지. 가엾다는 눈빛을 마주할 때면 차라리 장롱 속에 처박히는 게 나았다. 어둠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두 손 닳도록 때려 달라고 빌던 때나 무서웠지. 차라리 혼내 달라 빌었던 때나.

“가여운 내 아들.”

속이 울렁거렸다. 역겨움에 이를 꽉 깨물었다. 어린애가 공포 앞에서 비는 건 당연한 일인데, 떠오르는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구차해 멱살을 쥐고 싶었다. 등신 새끼야, 그냥 적응해. 네가 백날 빌어 봤자 변하는 건 없어. 싸늘하게,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 어떻게든 알려 주고 싶었다.

“네 할아버지가 드디어 미친 거야. 어떻게 아픈 손주한테, 인간이 싫다는 손주한테 증손주를 만들라고 해!”

“제가 내일 영빈관에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왜? 가지 마! 가서, 무슨 소릴 들으려고?”

“말씀드리면 정혼 미뤄 주실 겁니다.”

“해도 내가 해. 넌 네 일에만 전념해.”

“예.”

체구가 작고 가는 그녀가 두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싸며 떨었다. 지친 기색으로 슬퍼하는 그녀를 멋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안타까워했을까. 불과 한 시간 전, 그녀는 지금처럼 처연한 얼굴로 의사의 뺨을 갈겼다. 의사 앞을 막아서며 그녀의 손길을 받아 낸 탓에 내 뺨에는 손톱에 길게 긁힌 상처가 선명했다. 웃음이 샐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를 거쳐 간 의사 중 가장 용감했으니까. 속이 좀 후련했으니까.

‘돈만 갉아먹는 버러지 같은 새끼들.’

‘후원하신다고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 말로만 최선을 다하면 뭐 해? 너희가 노력한 결과를 좀 봐. 최선을 다했다면, 내 아들이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단호히 말씀드리자면요, 제가 무능한 게 아니라, 놔 보세요, 병원장님! 할 말은 하고 나가겠습니다! 관장님, 아드님 병 진짜 고치고 싶으신 거 맞습니까? 그럼 좀 놔주세요. 관장님께서 서은오 씨를 놔주셔야 합니다. 환자분 병은요, 약만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데, 어떻게 낫기를 바라세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아! …허? 이게 무슨. 아니, 잠시만. 나 지금 맞은 거야? 저 여자가 지금 날 때린 거야? 와, 재벌이면 다야? 이보세요, 당신 아들은, 당신이 떨어져야 낫는다고!’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말투로 의사는 항복을 선언했다. 아주 오래 들어 온 말이었다. 가운 입은 사람들이 수없이 바뀌어도, 그들이 내놓은 답은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트라우마를 고치려면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에서 일단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 말에 그녀는 나를 데리고 외국으로 떠났다. 낯선 이국에서 그녀와 둘이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증세가 더 악화하자 다시 돌아왔지만 그 후로도 한국을 떠난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현실로 돌아오라는 듯 전화가 걸려 왔다. 실력 좋은 의사를 찾았다며 그들의 이력을 줄줄 읊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가 소리쳤다.

“남자 의사만 찾으라니까! 성적 취향은? 확실해?”

내가 어릴 땐 한국에 뛰어난 의사가 없다고 하더니, 다 자란 후엔 내게 흑심을 품어 떼어 놓으려 한다는 억측을 일삼았다. 우습고도 오만한 착각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은 소릴 하면 그는 돈만 밝히는 버러지가 되었다. 어떻게든 이간질하려는 간신배가 되어 처단당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오늘처럼 그녀에게서 내가 분리돼야 한다는 말이었다. 분리라는 말만 들어도 온갖 패악을 부리며 멋대로 사람을 주물렀다. 조심스럽게 신경과민이 의심된다며 치료를 권했던 의사들은 현재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며 살았다.

내게 세상은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 일어난다고 알려 주던, 그래도 좋은 일이 조금 더 많아서 살 만한 곳이라고 알려 준 그들의 말이 틀렸다. 이 집에 들어오고 아닌 것을 알았다. 세상은 돈과 훨씬 더 큰돈에 의해 돌아간다. 그녀는 무법자였다. 돈과 권력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고 갉아먹는지 오랜 세월 보고 자랐다.

“정연인 대체 언제 전문의 된다니? 저 혼자 똑똑한 척, 의사 되겠다고 집 나가 놓고 왜 여태 소식이 없어!”

수화기를 내던진 그녀가 악을 써 댔다. 빈집이 아니다. 숨어 있을 뿐이다. 둘만 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그 사실을 곱씹었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 앉은 이는 나뿐이잖아.

나를 집요하게 살피는 눈길에 숨이 막혔다. 눈이 뻑뻑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큰 돌이 가슴에 걸린 것처럼 숨 쉬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얌전히 차를 따랐다. 식은 찻물을 버리고 다시 차를 우렸다. 그녀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며 그녀의 분노가 잦아들 때까지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꿈을 꿨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빌어먹을 어둠뿐인 꿈. 차라리 그곳으로 가 영원히 혼자이길 바란 적도 있지만 실은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누워 우는 꿈.

손을 뻗어 시계를 확인했다. 밥 먹듯 꾸는 악몽에도 몸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잠을 깨운다. 5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응시하다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우두커니 선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라지 않았다. 가끔 있는 일이니까.

“잠이 오니?”

마른침을 삼키며 허리를 펴고 앉았다. 가위를 들고 온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날카로운 가위 끝을 응시했다. 차라리 찌르지. 차라리 그것 좀 심장에 박아 버리지.

“어떻게 그리 평온할 수가 있어.”

“…죄송합니다.”

“감히, 네가 감히 발 뻗고 잠을 자?”

어둠 속에서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위가 옆으로 떨어져 나가고 그녀가 내게 달려들었다. 매서운 손길이 뺨으로 떨어졌다. 내 뺨을 치고 온몸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손길을 묵묵히 받아 냈다.

“하아… 흐으.”

한참 만에 그녀는 오열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구나. 소란한 와중에 심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힘에 부치는 쪽은 내가 아니니까.

“우리, 정우는, 그 작은 관 속에 지금껏 갇혀 있는데! 너는 밥 잘 먹고! 숨을 쉬고! 잠을 자!”

“…….”

“꼴도 보기 싫어. 당장 꺼져.”

그 말을 기다렸다. 소리 없이 일어나 장롱 문을 열었다.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문을 닫았다. 서른이나 먹고도 장롱 신세라니. 기가 차 웃음이 나왔지만 고요함이 싫지 않아 가만히 어둠을 받아들였다.

“…거짓말.”

입만 벙긋거렸다. 아기는 왜 태어나느냔 물음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고 했던 당신에게 묻고 싶다. 정녕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냐고. 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억지로 입 안을 씹었다. 의미 없는 생각 따위 하지 말자, 이럴 줄 몰랐으니 한 말이다, 그녀는 없는 사람이다, 자조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는 어떤 기억도 심한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내가 왜 살고 있는지 그 목적도, 이유도 다 잊었다. 되는 대로 살았다. 아침이 오니까 일어섰고 밤이 오니까 눈을 감았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이제 시시한 삶 그만 놓아도 된다는 듯,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내 유일한 버팀목이 스러져 간다는 소식에 웃었다.

내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몰랐다.

해가 바뀌었다. 겨우내 힘이 없는 그녀는 형의 제사만 치르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잠에서 깬 그녀가 나를 찾겠지만, 사람을 보내겠지만, 쉽게 끌려가지 않을 만큼은 컸다.

사표를 썼다.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도 않고 비서를 통해 전달했다. 연락은 없었다. 나 아니어도 그에겐 자식들이 많으니까 아쉬운 것이 없겠지.

지난 며칠을 생각했다. 하는 일은 변함이 없는데 상무 직함을 달았다고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일찍이 집 나가 사는 아버지마저 축하한다고 말했을 때,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며 기뻐했을 때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가 조금만 더 버티라고 남들 몰래 속삭였을 때 정말 이 집안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생각했다. 많은 재산과 지분을 가진 이경희를 내칠 수가 없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나를 바쳐 홀연히 나가 놓고, 말만 잘 들으면 그녀가 가진 모든 게 네 것이 될 테니, 마음이 크게 다친 네 어머니가 너를 사랑해서 벌어지는 일이니, 네 어머니가 너 없으면 어떻게 버티겠냐고 나를 꼼짝없이 묶어 놓고 이제 와 뭘 더 버티라고.

비행기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했다. 기억과 많이 달라진 풍경에 씁쓸해하다가도 할머니를 뵐 생각에 긴장했다. 병원에 도착하고도 병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네가, 우리, 아가냐.”

날이 어둑해져서야 들어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뗐다. 길어야 한 달 남은 이의 모습은 참 슬픈 거구나. 생명이 꺼져 가는 몰골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을 피했다. 나의 환각은 산 자를 죽은 이처럼 보는 착각이라 할머니의 산송장이 된 모습은 낯설고도 가슴을 따끔거리게 했다.

“곱네. 겨슬이처럼.”

“…….”

“멋지네.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

“혼자 잘 컸구나, 우리 은오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헛헛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다. 가기 전에 봤으면 됐지.”

“할머니.”

“내일 당장 겨슬이한테 가도 여한이 없다.”

숨을 쌕쌕 뱉으면서도 할머니는 웃었다. 병실을 나와 다인실에 머무는 할머니를 1인실로 옮기며 휴대전화를 껐다. 몇 날 며칠을 간병인 생활에 전념했다. 할머니 곁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인이 체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행복해서.

“기다리십니다.”

“네.”

알고 있다. 기다리고 있겠지. 눈을 뜬 순간부터 내가 출근했는지, 누구와 뭘 먹는지, 출장은 언제 잡혀 있고 업무적으로 연락하는 이들이라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속속들이 보고받아야 안정하는 사람이니까. 돌아와 무릎 꿇고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어린애가 일기를 쓰듯 달려와 실토하길 바랄 거다.

“가셔야 합니다.”

“아니요. 그런 건 이제 내가 정합니다.”

전화는 켜지 않았고 나를 데리러 온 그녀의 사람들을 모른 체했다. 다가올 때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그들은 나를 어쩌지 못해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병실로 돌아오면 나는 순한 강아지가 되어 자주 웃었다. 할머니가 나를 강아지라고 불렀으니까. 다 큰 남자를 강아지라고 호칭하는 것에 귀 끝이 빨개졌지만 품에 끼고 살면서 불러 보지 못한 게 아쉬워 지금이라도 불러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따금 신기하고 부끄럽고 궁금했다. 대체 할머니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기에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가 다 나오는지.

“우리 은오 장가드는 거 보고 가려고 했는데.”

하고 싶으신 것 없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내가 장가드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할머니는 다 안다는 눈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평생소원이었지. 매일 고개 빼고 봤느니라. 저 길로 우리 새끼가 걸어오진 않을까. 지금은 큰 공부하는 대학생이겠지, 여자 친구는 있는가, 지금은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할란가, 결혼할 사람은 생겼나.”

“…….”

“장가가는 거 보고 가는 것은 힘들어도 언젠가 이 녀석이 제 애인이에요, 하고 참한 아가씨 데려와 소개해 주지는 않을까. 그거 생각하믄 긴 밤에 잠이 잘 왔다.”

“죄송.”

“은오야.”

“네?”

“니 왜 나한테 존댓말하냐. 밤톨만 할 때는 나신디 미숙 씨, 미숙 씨이, 그랬는데. 은오 할무니, 은오 가시 발라 주세요. 그랬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대체 얼마나 오래전 얘기를 하는 거냐고 묻지도 못했다. 허공을 응시하며 지난날을 떠올리는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행복해 보여서.

“할머니.”

“응?”

“은오, 할머니.”

“오야.”

눈가가 홧홧했다. 한참을 시선만 주고받았다. 가지 마세요, 저 두고 가지 마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켜 내며 웃었다.

“레시피가 너무 엉터리라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시간 날 때 다시 써 줘.”

“왜? 봐도 모르크냐?”

“설탕을 적당히 넣으라는 말이 얼마나 넣으라는 줄 모르겠으니까. 소금 살살 치라는 건 얼마나 치라는 건지, 물 자박자박은 얼마나 넣으라는 건지.”

“어릴 때 보던 것은 영 기억이 안 나더냐?”

그냥 웃었다. 내 기억 속의 그들은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 모두 솜씨가 좋았고 번갈아 가며 만드는 날보다 다 함께 부엌에 모여 밥 짓는 날이 많았다. 어린 내가 도와주겠다며 옆에서 주물럭거리면 세 사람은 심심한 얘기를 한마디씩 건넸다.

‘우리 은오 굶어 죽을 일은 없겠네. 할머니 마음이 푹 놓인다.’

‘응! 나는 배고프면 잘 먹어.’

‘봐라. 만두 빚은 것 좀 봐. 어린이 중에 은오가 제일 잘할 거다.’

‘응! 할아버지, 나 잘해!’

‘은오야, 열심히 배워. 지금은 엄마를 위해서 만들어 주지만, 나중엔 색시를 위해 만들어 줘야 하니까.’

‘응! 색시한테 다 해 줄 거야! 근데 색시가 뭐야?’

내 말에 하하, 웃던 어른들. 그들을 따라 웃던 나. 그런 기억 하나만 남아 있다. 요리 과정이 기억날 리가.

“사람은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밥 먹고 살지.”

“할 줄은 알지.”

심신 안정에 좋대서 요리를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 더 마음이 갔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써야 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일부러 공들여야 하는 음식만 골라 만들었다.

“그래. 그래야 서겨슬이 아들이지.”

“…….”

“할머니는 다시 써 주크매, 혹시라도 내가 다 못 쓰고 가블믄, 엄마 요리법이라도 잘 보고 익혀서 자주 해 먹으라. 이?”

“응.”

내 대답에 그녀는 환히 웃었다. 웃음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어붙은 내 앞으로 단숨에 걸어온 그녀가 숨을 시근덕대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일어섰다. 눈에 핏발을 세운 그녀가 손을 들었다. 뺨이, 화끈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이! 이 나쁜 년!”

누워 있던 할머니가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다. 억지로 침대를 내려오려는 모습에 서둘러 낙상 방지 바를 올렸다.

“네 엄마가 쓰러졌다는데, 너 어디서 뭘 하고 있어!”

“…….”

“왜 여기 처박혀 있는 거야? 너 정말, 병원에라도 가둬야 정신 차릴래!”

내 멱살을 억지로 끌어 자신을 보게 한 그녀가 악을 써 댔다.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갔다. 할머니 앞에서 뺨 맞는 모습을 보였다. 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군말 없이 따랐다.

“지독한 년! 이, 천벌 받을 년!”

할머니는 미약한 음성으로 목이 찢어지게 외쳤다. 병실 문을 닫자마자 팔을 뿌리쳤다. 휘청한 그녀가 하늘이 두 쪽 나는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할머니 보내 드리고 가겠습니다.”

“뭐?”

“얼마 안 남으신 분, 제 손으로 보내 드리고 싶다고요.”

“네가 왜?”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라 말문이 막혔다.

“헛소리하는 걸 보니, 정말 미쳤구나.”

짧지 않은 침묵을 깨고 내 팔목을 잡은 그녀가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따라가 주다가 버티고 섰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서은오!”

“예.”

“회사는 어쩌고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어? 네가 어린애야? 왜 어릴 때도 안 하던 짓을 해? 잔말 말고 따라와. 완력 쓰고 싶지 않아.”

“사직서 제출했습니다.”

“뭐?”

“회장님 비서 통해서 전달했습니다.”

파르르 떨던 그녀가 팔을 들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나를 믿을 수 없어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니?”

“완력, 쓰시면 저 어머니 아들 안 합니다.”

“…뭐?”

멍하니 넋 놓고 있던 그녀가 눈을 형형하게 뜨며 병실 문을 잡았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저 노망난 여자가 네게 뭐라고 한 거야! 지긋지긋해! 수십 년간 얼마나 진드기처럼……!”

문을 열지 못하게 잡고 있자 제 풀에 나가떨어진 그녀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어떻게.”

“할머니 보내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다시 착실한 아들로 살겠습니다.”

“웃기지 마! 내가 왜 내 아들을 이딴 곳에 두고 가!”

그때 문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열으라! 내가 얘기하켜! 은오야, 열어 보라! 걸을 힘도 없어 내내 누워 계셨던 분이었다. 놀라서 문을 열자, 핏기 없는 모습의 할머니가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면서도 여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년, 나랑 가자! 나랑 가!”

“뭐야? 이거 안 놔! 뭣들 하는 거야? 당장, 이 미친 여자 좀 치워!”

그녀의 한마디에 멍하니 선 남자들이 머뭇대며 다가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쉽게 떨어지는 몸이 악을 쓰며 울었다.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할머니의 다리에 손을 넣어 안아 들었다.

“서은오!”

못 견디겠다는 듯 내 어깨를 돌려세우는 손짓에 이를 악물고 따졌다.

“결국엔 돌아간다잖아. 그 며칠도 못 참겠어요? 이분은 수십 년을 해낸 일인데? 고작 그 며칠도 양보가 안 되세요?”

“…하.”

“모시고 돌아가세요. 쓰러지시면 주치의 호출하고요.”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비서를 향해 말했다. 비서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가자고 속닥거렸다. 문을 닫았다. 문밖에선 소란이 일었다. 이거 놓으라며, 쟤 좀 꺼내 오라는 소리를 못 들은 체했다. 할머니는 울었다. 침대에 눕혀 드리고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할머니는 일그러진 얼굴을 풀어내지 못했다.

“너를 두고 내가 어찌 가. 어찌 가나. 이 불쌍한 걸 두고, 내가 어떻게 가.”

“…….”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힘이 없어서. 돈도 없어서. 그 어린것, 구박받으며 살 줄 알면서도, 뺏기고 말아서…….”

“아니야. 나 행복했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며 고개를 젓는 할머니를 향해 다시 힘주어 말했다.

“아까 그건, 그건… 어머니가 많이 아파서, 아파서 그래.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오늘 처음 맞아 봤어요. 좀 아프네. 앞으로 말 잘 들어야겠다.”

할머니는 내 말에 속지 않았다. 알면서도 나는 계속 속이려고 들었다. 내가 저 여자를 데려가야 하는데. 하늘도 무심하다. 하늘도 무심해. 은오야, 네가 눈에 밟혀 어찌 가누. 내가 겨슬이를 어찌 봐. 미안하다, 미안해, 죄책의 말만 반복하며 지친 듯이 눈을 감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다. 누워만 있던 사람이, 눈을 뜬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긴 사람이 평소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나는 좋아 보였던 의미를 몰랐다. 마지막 힘을 짜낸 것인 줄도 모르고 어리석게 내일을 기약했다.

그 밤, 나와 조금 더 있어 줄 줄 알았던 할머니는 딸의 곁으로 떠났다.

장례를 치렀다. 완장은 차지 못했다. 작은할머니의 아들이라는 남자가 상주로 조문객을 받았다. 나는 안채에서 홀로 애도했다. 장례가 끝나기도 전인데 작은할머니가 서류를 내밀었다. 이 집을 내게 상속한다는 문서였다. 그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그딴 시골 땅, 값어치도 안되는 그까짓 걸 감히 누구에게 남기느냐고. 당장 던져 버리고 올라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전화를 껐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이것만큼 값어치 있는 것이 없었다. 다 잃어도 이 집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3일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뭣 좀 먹으라며 음식을 가져왔지만 보기만 해도 토기가 쏠렸다. 장례가 끝나고 할머니의 관을 따라나섰다. 할머니는 남편과 딸이 잠든 옆자리에 묻혔다. 흙을 덮기 전 모두 한마디씩 했다. 고생하셨소, 잘 가시오, 편히 쉬시오. 마지막 인사 끝엔 주저앉아 울었다.

삽을 든 남자들이 관 위로 흙을 덮었다. 주저앉아 흐느끼던 작은할머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직 안 된다고, 내게도 한마디 하라며 삽을 든 남자를 막아서고 말했다.

“…….”

내가 아무 말 못 하고 관만 응시하자 잠시 비켜 주자며 친지와 지인을 손수 물려 주기까지 했다. 멀찍이 선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며 슬퍼했다. 그들을 물리면서까지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거창하고 특별한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그런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잘 가.”

흙이 뿌려진 관과 옆으로 봉긋한 두 무덤을 번갈아 응시했다. 힘없이 웃었다. 지금쯤 그곳에서 다시 만나 웃고 있으려나.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잘 가.

잘 가요, 할머니.

이제 정말 아무도 없네.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되나.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평범하게 자란 그녀는 느닷없이 다가온 사랑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상대가 어떤 집안의 자식인지도 모르고 겁 없이, 기꺼이 모든 걸 바쳐 남자를 사랑했다. 아이가 생기고 그녀는 이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행복 같아 위기에서도 어떻게든 낳고 싶었다. 목숨을 구걸했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아이를 낳았다. 울고, 웃으며, 그 아이를 길렀다. 아주 짧은 7년을 위해 그녀는 자신을 불살랐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치 있는 일이었느냐고. 행복, 했느냐고.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여자는 잠시 행복하고, 긴 불행을 영원처럼 껴안아 겨울에 죽었다. 그 여자를 낳은 이도 겨울에 죽었다. 내 반쪽짜리 형도 겨울에 죽었다. 나는 겨울에 많이 맞았고, 쌀쌀해질 무렵부터 봄이 오기까지 장롱을 침대로 썼다. 나의 불행한 눈도 겨울에 얻었다. 이제 보니 나의 마음은 내내 얼어 있던 것도 같다.

그러니 겨울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목숨을 버리는 일에 실패했다. 눈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네 어머니는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보냈다고. 이미 가고 없다고.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본가로 들어가는 건 원치 않을 테니, 혼자 살 만한 집을 구해 놨다.”

그는 미련한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들어했느냐고 슬퍼했다. 우스웠다. 차라리 나약한 새끼라고 욕하며 찾아오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내 아들이 왜 이렇게 됐냐며 모든 잘못을 그 여자에게 돌리려는 그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시작한 일이고, 외면한 일인데 누굴 탓해요.”

“…은오야.”

“이럴 거면 처음부터 데려오지 말지.”

“이럴 줄 몰랐어. 정말,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에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허탈하고 피로했다.

“알았잖아. 살려 달라고, 빌었잖아, 내가.”

언젠가 한 번 그가 나를 장롱 속에서 끌어낸 적 있다. 어린 나를 안고 여자에게 미쳤느냐고 소리를 질렀던 적이. 하지만 그뿐이었다. 걔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걸 어쩌겠냐고, 사람이 무섭다고, 징그럽다고 피해 들어간 걸 어쩌겠냐고 악다구니 쓰는 여자의 말을 그는 믿었다.

오랜 세월 생각했다. 그때 발버둥 치지 않았다면 좀 달라졌을까. 나를 안은 아버지의 품이 너무도 역겨워서, 온몸에 날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해 발버둥 친 내 잘못이겠지, 체념하며 살았다.

몰랐다고 말하지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몰랐을 리가 없다. 늦은 밤 내 몸에 남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나가던 등을 기억하니까. 그런 밤중에 어느 밤은 두 사람이 다투기도 했지만, 많은 날 조용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어린 아들에게 속삭였다.

‘은오도, 알지. 형이 하늘나라에 가고 어머니 신경이 많이 쇠약해졌어.’

‘다 너를 사랑해서, 너까지 잃을까 봐 네 주변 사람을 다 경계하는 거다.’

‘제발, 거기 좀 그만 들어가면 안 되겠니?’

‘대체 너 뭐가 문제야. 살아서 왔잖아! 네 형은, 네 형은!’

‘아니다, 은오야. 내가 미안하다. 네가 조금만 말을 잘 들어 주면 된다. 이런 데 들어가지도 말고, 자꾸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손도 잡으려고 노력해야지.’

‘네 의지가 이것밖에 안 되니?’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문장만 수백 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뱉은 말들을 다 기억할 리 없겠지만, 한 번쯤은 만나게 해 줄 수도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던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면,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요? 뭘요?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서은오.”

“그 여자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뭘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결국엔 또 붙여 놓을 거면서.”

“아니다. 아니야. 날 좀 믿어 다오.”

창밖만 보던 나는 그 말에 슬퍼하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런 말, 아이였을 때 좀 해 주지.”

“…….”

말문이 막힌 듯 굳어 있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주 잠깐 당신의 아들이었던 적 있어요. 형이 죽기 전에.”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은 내 아들이 아니라는 거야?”

흔들리는 눈빛에 실소했다. 당신이 피해자인 척하면 나는 누굴 원망해야 할까.

“그땐 아버지가 너무 좋았어. 그 집에서 유일하게 나를 진심으로 아껴 준 사람이니까. 엄마 얘기를 몰래 할 때면, 얼마나 좋았는지.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잖아요. 아내가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자식이 더 있는 남자가.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매일 밤.”

“그건.”

“내가 좋았던 건 맞습니까?”

“뭐?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물어? 너 내 자식이야. 자식 싫어하는 부모가 어딨다고.”

“내 엄마가 좋아서, 엄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라 찾았던 거겠죠.”

“서은오!”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를 외면하며 바늘을 빼냈다. 어디 가느냐고 막아서는 그를 등지고 병실을 나왔다.

“또, 네 멋대로지!”

연락을 받고 내려왔는지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정연이 있었다. 얼마 전 결혼한 그녀에게, 행복하기도 바쁠 시기에 나라는 짐을, 불행을 떠안긴 것 같아 미안했다.

“미안.”

“지랄하네.”

“너한텐 정말 미안하다.”

나와 달리 아버지를 닮은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사죄했다.

“진짜 뒈졌으면, 넌 진짜 내 손에 죽었어!”

파들파들 떨던 그녀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고 침묵 끝에 도착한 곳은 정연이 사는 빌라였다. 주차를 마친 그녀를 쳐다보자 한숨을 내쉬며 대꾸한다.

“여기에 내 집만 있니? 네 집도 있어.”

“…….”

“못 알아들어? 너 이제 나한테 감찰당할 거라고.”

새집을 일부러 자기 집과 가까운 곳으로 구했다는 말을 듣고 차에서 내렸다. 정연은 이틀에 한 번씩 사람이 와 집 안을 살필 거고 자신은 매일 아침저녁,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올 거라고 떠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 집에서 죽은 듯 잠만 잤다.

모든 게 허무했다. 일이 아닌 내가 나에 관해 중대한 결심을 내리는 행위가 처음이었다. 누구의 허락이나 감시 없이 시도한 행위. 간절히 바라 왔던 자유에 실패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사는 게 허망했고 어떻게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서은오, 너 음침한 구석이 있더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코 밑에 손을 대거나 흔들어 깨워 자신의 눈앞에서 약을 먹으라던 정연이 어느 날 침대 맡에 앉아 말했다. 나와 몇 개월 차이로 태어나 내게 오빠라 부르는 일이 어릴 적부터 없었다. 나 때문에 호적이 늦게 신고되어 사는 내내 불만이 많았고 그나마 얕은 불만이라 친하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로 자랐다. 같은 반이지만 그저 안면만 튼 동창생 같은 사이였다. 같은 집안에 태어나 이상한 어른들 아래에서 살아남으려고 각자도생한 게 언뜻 비슷해 보이나 엄연히 다른 인생이었다.

“네 주치의 권한으로 내가 네 물건 싹 다 뒤졌어. 주치의로 안 통하면 가족 신분으로, 아, 금고도 털었어.”

며칠 내내 나만 들여다보고 가는 줄 알았던 그녀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 말이 나왔다.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고, 사촌에 팔촌까지 제대로 엿 먹이려고 준비 다 해 놨더라?”

“서정연.”

“그래 놓고 왜 죽으려고 했니?”

“…….”

허공을 응시하던 정연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환자들 상대하면서 드는 생각이 뭔지 알아? 세상 진짜 엿 같다, 인간들 지긋지긋하다. 너무 지겨워서 가운 입고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끔찍하거든?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자기가 멀쩡한 줄 아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진이 빠져. 다 남이 잘못했대. 이래서 틀어졌고, 저래서 망했고. 그래도 이 일을 하는 건, 오로지 마음 다친 사람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고치고 싶다고 와. 그들이 고칠 게 뭐 있어. 마음이 말랑한 것을, 그걸 자꾸 헤집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일이, 힘들면.”

“등신아, 네가 멀쩡할 리 없잖아. 어릴 땐 학대당하고, 다 자라선 집착에 숨도 못 쉬며 살았는데!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걸 모아 뒀으면 진작 알렸어야지! 버거우면,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한마디만 하지.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 버젓이 이길 패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걸 그냥 버리려고 했어? 왜?”

“…….”

“왜 그랬냐고!”

“너하고, 수연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말이 헛나왔다는 변명에 정연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치다가 버럭, 소리치기도 했다.

“…너 그래도 우리가 동생들이라고, 걱정돼서 그냥 묻었다는 얘기야?”

“아니. 내가 너무 지쳤어. 긴 싸움에 다칠 사람은 많고, 나도 지겹고. 그 끝에 뭐가 남아서. 다 상처받고 끝나면, 그 후에 난 뭘 해야 해.”

“서은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 고장 난 것 같아.”

실소하며 시선을 내렸다. 남들이 말하는 나는 남을 깔보는 안하무인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탄탄대로로 살아서 사람을 우습게 보는 재벌 집 아들, 손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팔을 뻗으면 뿌리치거나 미간을 구기며 살벌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행동을 일삼았으니까.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 아니 무슨 말을 건네든 선을 그었으니까.

벌게진 얼굴로 황급히 떠나는 등을 물끄러미 보며 한숨을 삼켰다. 내가 선을 긋지 않으면 재수 없어져요. 뒷조사당해. 일이 이상하게 꼬일 거야. 하지만 그런 사실은 나만 알고 있으면 되었다. 참 간단한 일이었다. 내가 재수 없어지면, 상대는 보통 날처럼 평범한 일상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굳이 내 불행을 옮겨 줄 필요가 없었다.

“서은오, 네가 왜 할 일이 없어? 당장 회사로 돌아가도.”

“가기 싫어. 다신 안 가.”

탄탄대로로 살아가는 성공한 남자의 가면은 깨졌다. 언제부턴가 부모를 수저로 지칭하는 말이 유행했고 그 유행하는 말에 따르면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놈이었다. 집안 덕 봤다는 말이 싫어서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잠을 줄여 가며 일에 매달렸다. 어려운 건 없었다. 악몽을 자주 꾸는 내게 어차피 잠이란 아무 의미 없었다. 집에 있으면 뱀처럼 감아 오는 눈이 있고, 힐난하는 새벽뿐이라 차라리 회사에서 야근하는 게 편했다. 나는 인간에게 최소한으로 채워져야 할 요소만 채우며 지냈다. 그게 편하니까.

남들이 보는 나는 완벽한 사람인데, 막상 까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여태 얼마나 많은 거짓과 뒤처리를 하며 살았는지. 정연은 내게 다 이길 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비리는 그녀가 스스로 판 무덤이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일가친척들이 제 손으로 판 무덤이었다. 그걸 모았을 뿐.

“그냥 좀 편해지고 싶어.”

“다른 방법도 있어.”

“아니.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끝나.”

“서은오!”

“…그래서 네가 곤란할 거 알면서도 저질렀어. 미안하다.”

“사과 좀 그만해. 누가 할 소린데, 자꾸!”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나도 너무 무서웠다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너처럼 되기 싫어서 도망갔다고.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고,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조금 더 많아서 살 만한 곳이 된다고 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죄 없는 정연의 사과에 떠올랐다.

“죽지 마, 은오야. 제발. 너무 뻔뻔한 거 아는데, 널 위한 마음보다 날 위한 마음이 커서 미안한데, 너 이렇게 가면, 정말 세상이 엿 같을 거 같아. 착하기만 한 사람이 떠나 버리면! 내 배 속의 아기한테,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살아 줘. 살자, 응?”

“…아기, 가졌어?”

아주 오랜만에 웃었다. 정연은 어쩐 일인지 더 크게 울었다. 좋은 소식인데 왜 우느냐고 물었다. 좋아서 우는 거냐고도 물었다. 정연의 죄책감에 나는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며칠만 더 살아보자고. 조카가 궁금하기도 하니까.

“은오야.”

한참 만에 그녀는 씩씩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눈물을 닦고 내게 할 일을 알려 주었다.

“일단, 엄마한테서 벗어나려고 노력부터 하자. 너 제주 가. 너희 할머니가 너한테 제주 집 남기셨다며. 거기선 네가 다른 생각 안 하겠지. 가. 가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 아침이 오면 일어나서 밥 먹고, 못 일어나겠으면 그냥 누워 있어. 그러다 늦은 점심 먹고, 저녁도 먹고, 후식도 찾아 먹어. 그리고 푹 자. 약 잘 먹고, 주에 한 번은 병원 가서 상담받아. 아는 동료 거기 있으니까, 너 봐 달라고 할게.”

“…….”

“어?”

“그래.”

정연은 그제야 웃었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할 때야 나는 그토록 원하던 곳으로 돌아왔다. 실패한 후에 얻은 것이 있다면 짧은 자유 하나. 언제 이 자유가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바닷가에 섰다. 짠 내를 품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떨치지 못해 여기까지 달고 온 불안감을 안고서도 웃음이 나왔다. 나를 지켜보는 이가 없다는 것에, 웃음이.

동시에 눈가가 뜨거워져 고개를 숙였다. 간조가 되어 물이 빠진 모랫바닥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다. 빨리 와, 엄마, 빨리. 그렇게 외쳤던 것도 같은데. 가물가물한 기억에 입술을 씹었다.

이제 나만 남았다. 오로지,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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