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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머타임 (3/14)

2. 서머타임

겨울 문방구엔 서머타임이 있다. 해가 긴 여름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 시간 앞당겨 하루를 시작하는 제도지만, 지금은 겨울이니 임의로 윈터타임이라 해 두겠다.

학기 중엔 8시, 방학일 땐 10시에 문을 연다는 문방구는 방학 기간인데도 아침을 일찍 열었다. 덕분에 올빼미족의 표본인 나는 난생처음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서은오에게 방 한 칸을 빌린 다음 날부터. 이곳에서만큼은 아침형 인간이 되는 일이 어렵지 않았는데 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면 저절로 바른생활의 표본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날 잠을 깨운 소란의 정체는 동네 아이들의 흥분한 목청이었다. 마당이 왁자해서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으나 오락을 하다가 언성을 높인 것뿐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확인하니 9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무슨 애들이 방학에 늦잠도 안 자느냔 말이야. 투덜대며 문을 열고 나오자, 지난밤에 보았던 완두콩들과 처음 보는 어린애들이 마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문방구의 나무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엔 지난밤엔 없던 추억의 오락기가 놓여 있었다. 인원이 열댓은 넘어 보이는데 게임기는 단 두 대뿐이라 애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조이스틱을 잡은 친구에게 첨언을 남발했다.

그 광경을 멍하니 관람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털모자와 장갑을 낀 아이들이 문방구 안과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놀았다. 계절은 겨울이 분명하고 숨을 내쉬면 입김부터 나오는데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희한하게 따사로웠다.

“너 자선사업 해?”

문방구 구석에 앉아 지난날을 반추하며 의미 없이 녹음 기능을 켰다가 끄는 것을 반복했다. 틈틈이 서은오의 옆얼굴을 훔쳐보던 나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은오는 웬만하면 내 말을 고이 씹어 드셨고 불필요한 대화는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듯 시선도 나눠 주지 않았다.

그의 굳은 의지를 알아챘으면서도 나는 쉼 없이 두드렸다.

“여기서 제일 비싼 게 2만 원은 되니? 저거, 저 연필깎이. 나 런던에서 유학해서 잘 아는데, 저 가격 아니잖아? 왜 시세보다 싸게 팔아? 이익이 남긴 해? 관광객도 안 받는다며.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자기도 어른인 주제에 애들만 받는다고 인터넷에 욕이 한 바가지던데. 세상에 노 어덜트 존이 다 있다고.”

서은오는 카운터에 앉아 책장만 넘겼다. 무시한다고 입을 다물쏘냐. 나는 주절주절 궁금한 것을 늘어놓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방구 입구의 양옆으로 오락기와 잡화가 널린 좌판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구하기도 어려워진 골동품이나 문구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환장할 법한 물건이 정갈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 감독을 비롯한 영화팀 스태프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환호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 시나리오 속 남주인공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인물이었고, 겨울 문방구는 시나리오에 적힌 잡화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이상향 같은 면모를 자랑했으니까.

“혹시 노키즈존에 대한 일갈이야? 어른들도 이유 없이 못 들어가는 곳이 있다는 걸 겪어 봐야 한다는 그런 취지?”

다시 서은오를 흘끔거리며 물었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난로가 찬 바람을 밀어내고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이 나무 바닥을 덥혀 주었다. 아이들이 뛰어들 때마다 공중에서 소용돌이치던 먼지가 지금은 얌전히 부유했다.

고요하고도 나른한 시간. 이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마음에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을 다칠 리 없는 앙증맞은 가위와 인형의 몸통을 뽀각, 하고 돌리면 또 인형이 나오는 마트료시카, 이틀에 한 번꼴로 손수 굽는 쿠키와 쌀로 만든 과자들. 그리고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이.

한마디로 서은오가 꾸린 이 공간이 좋아서, 대체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자랐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후광이 나는데 함께 있으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근사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분위기가 남다른 이를 보면 닮고 싶지 않은가. 그런 맥락으로 서은오가 궁금했다.

“그거 버리는 물건 아닌데.”

내내 침묵하던 서은오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나에게 하는 소린 줄 알고 귀를 쫑긋 세웠으나 서은오는 곁에 앉은 나를 지나쳐 문방구를 나서려는 한 아이를 막아섰다.

손님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던 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만 깜빡거렸다.

“너 나가 있어.”

서은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거절하거나 미적댈 분위기가 아니라 몸을 일으켜 문방구를 나왔다. 지나갈 때 보니 아이는 빨개진 얼굴로 두 손을 달달 떨고 있었다. 입고 있는 잠바의 배 부분이 볼록하기도 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그 애가 물건을 슬쩍하려다 덜미가 잡혔음을 알았다.

마당은 고요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곳을 찾는 어린 손님들은 오후가 되면 학원으로 실려 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몰려왔다. 매일 오는 단골들은 이제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처음엔 언니나 누나라고 불렸는데 잠자코 듣기만 하던 나를 서은오가 혐오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아서, 그 시선이 못내 따가워 자진해서 호칭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2시는 손님이 없을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안다는 뜻이었다. 먼지만 둥둥 떠다니는 시각에 기척 없이 들어온 존재를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고요한 것은 둘째 치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서은오만 관찰했으니까.

괜히 코를 훌쩍거렸다. 서은오도 책만 들여다봤으면서 어떻게 알았을까. 주인의 촉, 뭐 이런 건가?

표정 없는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던 서은오는 내가 나가자마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나. 어쩐지 걱정되어 숨죽인 채 문방구 안을 훔쳐보았다.

“착각할 수도 있어. 내가 가격표도 안 붙였으니까.”

안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변함없이 딱딱했다.

“자, 잘못했어요.”

아이의 젖은 목소리에도 서은오는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어디 사느냐고도 물었다. 아이는 대성통곡하며 집에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널 처음 봐서 그래. 이 동네 애들은 다 알거든. 옆 동네에서 왔어?”

“네. 죄송해요. 나, 나도 모르게 갖고 싶어서.”

“훔치는 건 나쁜 짓인 거 말 안 해도 알지?”

“흐으……. 신고할 거예요?”

“아니. 노동시킬 건데.”

“큽. 네에?”

“아저씨가 너 색연필 줄 테니까, 이 가격만큼 일해. 눈물 닦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은오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의 손엔 동그란 통에 담긴 미니 색연필이, 서은오의 남은 손엔 스케치북이 있었다.

서은오는 문가에 서 있는 나를 건조하게 쳐다보곤 문방구 문을 닫았다. 그러곤 온갖 손님들이 드나들어 사랑채나 다름없는 별채 문을 열어 주며 들어가 있으라고 중얼거렸다. 무뚝뚝하지만 묘하게 다정한 음성이었다. 아이를 안으로 들여보낸 서은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시간 있어?”

…쟤가 지금 나를 떠보는 건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시간 없는 사람이 네 옆에 앉아 줄곧 떠들었겠냐는 말 대신 긴장의 어조로 대꾸했다.

“왜?”

침을 꼴깍 삼키고 눈치를 살폈다.

“있으면 알차게 좀 쓰라고.”

서은오가 무감한 얼굴로 일갈했다. 예상치 못한 비난에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알차게 쓰라니. 저게 말로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네. 독 바른 화살이 가슴을 관통한 기분이라 울컥했다. 서은오를 위아래로 훑으며 따졌다.

“내가 내 시간을 허비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서은오의 잘생긴 미간이 구겨졌으나, 알 바 아니었다. 일부러 쿵쾅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로 향했다.

“너 그대로 들어가면 저녁 없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제자리에 서 버렸다. 서은오는 피곤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억울해진 나는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냐는 얼굴로 서은오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결연하게 말했다.

“컵라면 먹을 거야.”

서은오가 실소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동네 할머니가 전복을 가져다주셨고 나는 이 귀한 걸, 이 귀한 것을, 중얼거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복이 싱싱했다. 무엇보다 서은오가 요리해 줄 걸 알아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전에 먹은 전복죽이 미치도록 맛있었다. 환자가 되어 몇 날 며칠 죽만 먹고 싶을 정도로. 그걸 또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비죽비죽 웃었고, 그런 나를 서은오는 지금과 같은 얼굴로 보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입을 때리고 싶었다. 미친 거 아냐? 컵라면이 왜 나와. 그깟 밥 한 끼 굶는다고 안 죽는다, 안 먹고 만다고 외쳤어야지.

그러나 지금도 살짝 허기가 졌다.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시간 알차게 쓰라며? 내 시간, 내 거니까 알아서 하겠다는데, 왜 치사하게 밥으로 협박해?”

“그래. 알차게 좀 쓰라는데, 허비하겠다고 방으로 내빼잖아. 별수 있냐, 내가.”

“무슨 소리야?”

“맛있게 해 줄게. 해 줄 테니까 나한테 써, 시간.”

화살 같은 말이 나를 한심하게 여겨 쏜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해 한 말이었다니. 쭈뼛대며 다가가자 서은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쓰면 되는데?”

쏟아지는 시선을 외면하며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에 꽂아 넣었다. 눈썹을 들썩인 서은오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얼굴 붉히지 마. 데이트 신청 아니니까.”

“…응?”

“아니라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뒤늦게 서은오의 말을 이해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뗐다.

“추, 추워서! 아니, 열 받아서 빨개진 거거든? 데이트 신청이라고 생각도 안 했거든? 너 혹시라도 하기만 해 봐. 내가 받아 주나! 어?”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민망함에 얼굴로 피가 몰렸다.

“착각 안 했다고!”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질렀다. 픽 웃은 서은오는 대꾸 없이 별채 문을 활짝 열었다. 씩씩대며 서은오를 지나쳤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까 그 꼬마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인기척에 놀라 허리를 곧게 펴고 눈치를 살피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서 웃으며 인사했다.

“그, 그러면 네 장만 그리면 돼요?”

그러나 아이는 나를 경계하며 서은오를 흘긋거리다가 물었다. 아이 곁에 앉을 줄 알았던 서은오는 내 옆에 의자를 빼며 대답했다.

“네가 너무 밑지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어.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르는 거야.”

“백 장도 그릴 수 있는데…….”

“그럼 내가 나쁜 짓을 한 게 되니까, 그건 안 되고.”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나와 서은오를 번갈아 살피기 시작했다.

“사장님부터 그릴까요? 사모님부터 그릴까요?”

푸, 하고 웃음이 터졌다. 열 살은 됐을까, 기껏 해 봐야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입에서 사장님과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서은오는 웃기지도 않은지 태연한 얼굴로 이모부터 그려 주라며 몸을 일으켰다.

눈으로 서은오를 좇았다. 불 앞으로 간 서은오는 초코 가루를 꺼내고 우유를 끓이며 코코아를 만들었다. 마시멜로까지 얹는 정성에 입술이 벌어졌다.

쓱싹쓱싹, 반복되는 어떤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한눈을 판 사이 아이는 팔을 걷어 올린 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충 해. 팔 아프겠다.”

서은오 몰래 속닥거리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벽에 걸 거라고 했어요.”

나는 팔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움직이지 말아 달라며 제법 화가의 면모를 보였고 서은오는 뜨끈한 핫초코를 가져와 아이와 내 앞에 차례대로 놓아 주었다.

“뜨거우니까 좀 식으면 마셔.”

아이에게만 친절히 주의를 준 서은오는 내 옆에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달고 뜨거운 것을 한 모금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옳지 못한 행동의 대가로 노동을 시키겠다던 서은오는 아이에게 벽에 걸 초상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났다. 엄한 생각 따위 하지 말라는 듯 집중을 깨 버리는 향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다디단 초콜릿 냄새 사이로 은은하게 주위를 감싸는 포근한 향. 문방구에서도 맡았던 것으로 이곳에 와서 종종 맡곤 했다. 겨울 햇살 같은 서은오의 냄새를.

“…으음.”

끌어안고 싶어지는 냄새에 생각이고 뭐고 눈부터 감았다. 향수 뭐 쓸까. 부자니까 한 병에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걸 뿌릴까. 브랜드를 알려 달라고 하면 순순히 알려 줄까.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꼭 이 향수를 뿌리라고 하고 싶었다. 대놓고 킁킁거릴 순 없어서 변태처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힐끔거리며 훔쳐보기를 여러 번, 시선을 느낀 서은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뭐.”

그만 쳐다보라는 주의를 알아챈 나는 내 몫의 음료를 홀짝거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으니라고.

서은오는 차갑지만 따뜻했다. 불청객의 곯은 배를 모른 체하지 못한 것, 영화팀이라면 다 쫓아내면서도 오래전 알던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만은 받아 준 것, 오픈 시간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주는 것, 동네 아이들을 거둬 먹이는 것, 잘못에 분노가 아닌 가르침을 주는 것.

그의 사려 깊은 면모를 발견할 때면 어린 서은오의 순진하고도 다정했던 성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한 사람의 기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구나, 어쩌면 기질이란 것은 거머리 같은 거구나 싶어 웃음이 샜다. 동시에 조금은 울고 싶어져 당혹스러웠다.

물건을 팔고, 관리하고, 검수하는 게 문방구 주인의 일이라 주인이 아닌 나는 몰랐으나 사장님인 그는 아이의 옳지 못한 행동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는 어떤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내거나 만드는 사람이지만, 오랜 세월 서은오를 떠올리며 두둔하는 일이 나의 과업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나도 문방구의 주인처럼 어떤 덜미를 귀신같이 잡아챌 수 있었다.

당연한 순서처럼 서은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얼굴을 가까이 붙이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의 나는 겁도 없이 묻는다.

너 여기서 문구사 하는 거, 지난 일 때문이지.

잠시나마 아이들을 보살펴 줄 너 같은 어른이 있기를 바란 거지.

우리를 못 본 척했던 학교 앞 문구사 아저씨 말고, 너 같은.

울고 싶은 기분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폭발하여 넘치고 말 것이다. 목에 깁스라도 한 듯 정면만 응시했다. 서은오가 앉은 방향으로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코끝이 매워지고 목이 따끔거려서 단 음료를 벌컥벌컥 삼켰다.

이곳에 왔을 때 알았다. 아니, 오지 않았어도 알았다. 문방구의 주인이라고 했을 때부터, 문방구 이름이 겨울이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서은오는 그 일에서 조금도 자유로워지지 못했다는 것을. 서은오를 만난 날을 떠올렸다. 완두콩들이 마당을 헤집으며 삼촌의 친구가 왔다고 외쳤을 때 문을 열고 나온 서은오는 자긴 친구가 없다고 했다.

“서은오.”

서은오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아이는 색을 칠하기 바쁘고 나는 무모한 결심을 하며 서은오를 돌아보았다.

“나랑 같이 앉자.”

이미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권했다. 먼 옛날 쭈뼛거리며 서 있던 도련님에게 다가가 말했던 것처럼. 그땐 청유형이었지만 지금은 명령형에 가까웠다. 나와 같이 앉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음절마다 심어 보냈다.

“…….”

머릿속엔 온갖 문장들이 떠다녔다. 서은오를 만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를 건져 올렸다. 어떤 말이든 서은오를 불편하게 할 말인 걸 알아서 긴장하고 말았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서은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서은오의 까만 눈동자 대신 아이의 까만 머리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나랑 다시 친구 해 주라.”

“…….”

“이번엔 절대로 너 혼자 안 보낼게.”

밀도 높은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 나와 서은오를 번갈아 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오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 *

저녁을 걸렀다. 애인과 헤어졌을 때도 죽지 않던 식욕이 서은오의 거절에는 맥없이 꺼져 버렸다. 아이들이, 그러니까 완두콩들이 한 끼 거르는 일을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여기며 나를 보챘으나 나는 방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모, 잠깐만-이!”

큰 완두콩과 중간 완두콩이 시무룩하게 방을 나가자, 막내 완두콩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꼼지락거렸다. 불을 켜지 않아 방 안이 깜깜했다. 열린 문틈으로 마루의 전등이 발치를 기웃거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행동이 훤히 보일 정도는 아니라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했다.

“아, 해! 아!”

갑자기 내 위로 몸을 숙인 아이가 입 안으로 무언가를 처넣었다. 말 그대로 ‘처’넣었다. 앞니에 부딪힌 딱딱한 것에 놀라 입을 벌렸다. 목구멍으로 작고 단단하며 단 향이 나는 불량식품이 떨어졌다.

“너, 이 귀한 걸 나 줘도 돼?”

캐러멜이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억지로 밀려 들어온 네모난 것을 씹으며 고맙다고 중얼거리자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이모도 전복이랑, 뿔소라 안 좋아? 나도 안 좋아. 바다에서 잡아 온 거 다 싫어.”

막내 완두콩이 허락도 없이 내 옆에 드러눕더니 참새 같은 부리로 종알거렸다.

“전복… 뿔소라……. 없어서 못 먹지.”

“근데 왜 밥을 안 먹으맨? 전복이랑 뿔소라가 하영 이신디!”

“하영이 뭐야?”

“하영! 하영도 몰라? 이모 바보다이.”

악의 없이 이를 보이며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빨갛게 볼이 튼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이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할머니가 바다 친구들을 밥상에 올리면 입맛이 없다는 푸념과 언니, 오빠의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이 싫으면서 좋은데, 그 이유는 방학이라 종일 붙어 있는 형제들이 긴 시간 돌아오지 않아 상심이 커 싫고, 두 사람이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엔 삼촌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아서, 싫으면서 좋은 마음이 같이 온다고 했다.

“너 배 안 고파?”

해산물을 싫어하는 아이가 굶었을 거로 생각한 나는 아이의 통통한 배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그에 아이는 헤헤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두부 소빠 두 번 먹었지! 나물이랑! 맛 좋아. 삼촌 밥 잘해!”

“소빠? 소빠가 뭐야?”

“이모, 소빠도 몰라? 큰일이네. 두부가 포슬포슬이야. 후후, 불어 먹으면 꿀맛인데. 삼촌한테 이모도 소빠 달라고 할까? 게므-은 밥먹잰?”

아이가 말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면서 입 안으로 침이 고였다. 허기진 배를 외면하며 됐다고 하려던 찰나,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동시에 노크 소리도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서은오가 서 있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에 대고 무슨 노크를 한담. 유쾌하지 못한 나는 서은오를 못 본 체했다.

“삼촌, 이모가 하영도 모르고, 소빠도 모른댄! 소빠 해 줘!”

벌떡 일어난 아이가 서은오의 다리에 매달려 종알거렸고 서은오는 아이를 한 팔에 안아 들곤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애들 바래다주고 올 건데.”

“…….”

“15분 걸려.”

뭔 소리야, 갑자기? 나는 눈썹이 제멋대로 출렁이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세워 앉았다. 산발이 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서은오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

“…….”

빛을 등지고 선 서은오와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이가 소빠인지 뭔지 그 얘기를 반복했기에 고요하진 않았다.

“…하.”

오랜 침묵 끝에 서은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과 방패 같은 눈싸움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시선을 끊어 내며 서은오가 입을 열었다.

“밥 먹고 있으라고. 다녀오면 얘기 좀 하자.”

하교 후 남으라는 불량 선배의 대사처럼 서은오의 발언은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완두콩들을 바래다주고 혼자 걸어올 서은오를 상상했다. 이때가 기회다, 반드시 쫓아내겠다, 염불을 외겠지. 너 어디서 꼬장이야. 네가 저녁을 거르는 게 무슨 대수라고 단식 투쟁을 벌여? 성가시게 할 거면 꺼져, 라고 할 것만 같아서 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

이미 시야에서 벗어난 서은오를 잡으려고 허겁지겁 코트를 집어 들었다. 코트를 껴입으며 마루로 달려 나왔다. 서은오는 한쪽 눈썹을 치켜뜬 채 쿵쾅거리는 나를 보았다.

“나도 데려다줄래.”

서은오가 거부할 틈을 주지 않고 신발부터 구겨 신었다. 서둘러 빠져나가는 내 뒤로 깊은 한숨이 내려앉았다.

“삼촌, 또 한숨! 왜 갑자기 한숨이 많아졌어?”

완두콩의 물음에 내가 다 뜨끔했으나,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이모, 눈이야!”

문을 열고 나오니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미 마당에 나와 있는 두 완두콩이 폴짝거렸고, 그 애들이 뛸 때마다 노랗고 파란 우산이 함께 들썩거렸다. 서은오의 품에 안겨 있던 막내 완두콩이 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서은오가 내려 주자마자 오빠에게서 연두색 우산을 받아 펼친 아이가 우산을 썼다, 말았다 하며 진눈깨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감기 걸린다.”

서은오가 우산 하나를 내게 건네곤 앞서 걸었다. 얼결에 손끝이 스쳤는데 이런 식으로 살짝 닿는 건 괜찮은 건지 싫은 기색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 표정을 잔뜩 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앞서간 서은오의 표정을 상상하며 밋밋한 큰 우산과 신호등 같은 작은 우산들을 응시했다.

천천히 따라가며 우산을 펼쳤다.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들의 평화로운 풍경에 나도 발을 걸쳤다.

“뭐랜! 내가 일등 할 거거든!”

“넌 다리 짧아서, 꼴등 할 거거든!”

“아냐! 아니야!”

완두콩들은 아이답게 산만했다. 뜬금없이 달리기 시합을 했고 이유도 없이 서로를 잡으려고 달렸다. 어느새 서은오와 나는 아이들을 뒤쫓아 가는 형국으로 걸었다.

“…….”

“…….”

어색해 미치겠네.

어둠이 얼굴을 숨겨 주는 데다, 목적 없이 전진하는 게 아닌데도 함께 걷는 분위기가 서먹했다. 겨울 문방구에 온 지 일주일 남짓 나는 둘만 있으면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촉새처럼 입을 놀렸다. 대답할 가치 없단 듯 침묵하는 서은오가 무조건 예뻐서 참아 준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서은오의 곁을 맴돌고 싶었다. 어색하더라도 그냥 좀 보고 싶었다. 잘 자란 모습이 좋아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흐뭇할 정도로 보기 좋아서.

상대가 내 말을 동네 카페의 음악처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듣는데도 아쉬운 쪽은 내 쪽이라, 동시에 어색해 미치려는 사람도 나고, 어떤 소리라도 우리 사이에 끼워 넣으려는 쪽도 나라서 서은오의 무시 따위는 견뎌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러니까, 우습고 만만한 취급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으리라 결심한 사람이지만, 네게만은 우습고 만만해져도 된다고 생각해.

“하영이 뭐야?”

그 언젠가 사계절을 도준에게 헌납했다는 도경 언니의 간지러운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나도 헌납했구나, 싶어서. 서은오는 내게 간지러운 대상이 아니지만 나도 서은오에게 헌납했다. 계절이 아닌 자존심을.

“소빠라는 것은 뭐고.”

나는 종종 찾아오는 이 쓰렁쓰렁한 공기를 흩트리려고 자존심도 없이 서은오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 하자는 제안에 대꾸도 하지 않고 저녁 밥상을 차리러 떠난 옛 친구에게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 조잘거렸다.

“솥밥. 아기라 발음이 잘 안 돼.”

막내 완두콩이 여섯 살밖에 안 됐으니 어려운 발음이 아직 많을 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질문을 못 들은 체하며 또 침묵할 줄 알았으니까.

“하영은 제주 말로 많다는 뜻이고.”

“오, 넌 사투리 좀 아나 보다?”

서은오의 대꾸가 반가워서 살짝 몸을 튼 채로 물었다. 서은오의 옆모습이 보였다. 시선을 느낀 서은오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할머니 때문에 조금.”

“할머니?”

“제주 분이었으니까. 상군 해녀였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할머니를 말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서은오는 재벌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재벌가 손자 얼굴까진 잘 몰라도 그의 부모와 부모의 부모가 누군지는 알았다. 내 기억으론 서은오의 양가 할머니는 해녀가 아니었다. 오래된 갤러리와 사업체를 굴리던 회장인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삼촌, 이모, 안녕!”

정신을 차려 보니 빨간 지붕에 창고가 딸린 집 앞이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고 서은오는 아이들이 문을 닫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엄치듯 걸었다. 바람에 잡초들이 흔들렸다. 집을 나설 때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차갑고 고요했다. 나는 또 마른침을 삼키며 할 말을 찾았다.

“요리는 왜 그렇게 잘해? 좋아해?”

“시간 때우기 좋아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시간 때우기 좋아서 요리를 한다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고 또 다른 말을 찾았다.

“아이들을 좋아해? 그래서 동네 애들한테 이것저것 해 주는 거야? 근데 애들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셔? 어디서 뭐 먹고 들어오는 걸 가만…….”

말끝을 흐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서은오가 우뚝 멈춰 선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표정과 식은 눈빛에 올 것이 왔다는 걸 알았다.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는 건가.

“인간 다 싫어해. 애들은 그나마 좀 나은 거고. 좋아한다곤 못 하지만 싫은 건 아니라서 보고 살아.”

“…어?”

“동네 좁다고 했던 말, 그냥 한 말 아니야. 젊은 남자가 혼자 애들 상대하는 가게 하면서, 애들 끌어들이는 거 좋게만 생각할 어른 별로 없어.”

“어? 아, 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안채 말곤 구석구석 시시티브이 달았고, 내가 누군지, 범죄 저지를 놈은 아닌지, 증명하고 여기 있는 거야. 애들 보호자는 내가 개자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고.”

“아니, 나는 너 오해한 게 아니라, 너 화나게 하려고 꺼낸 말이 아닌데.”

“화 안 나. 세상 험한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어린 자식이 어른 남자 혼자 있는 집에 들락거리면 마음 못 놓지. 난 지금 네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거야. 화내는 게 아니라.”

예상과는 다르게 번져 가는 대화가 기꺼운지 꺼려지는지 몰랐다.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해 주는 것은 좋은데, 갑자기 왜 마음을 바꿨는지 이해가 안 됐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어찌할 줄 모르고 눈만 깜빡거리는데 서은오가 말을 이었다.

“네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어. 그러니까 너도 솔직하게 말해.”

“뭘?”

“네가 왜 왔는지 모르겠어.”

역시나 나를 내쫓을 생각인지 서은오는 문전박대의 첫 구절을 뱉었다. 나는 지난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서은오에겐 나 같은 한량이 없었겠지. 바쁘게 외출할 거고 집에 있더라도 죽은 듯 있겠다 약속해 놓고 외출은커녕 자기 뒤만 밟았으니 거슬리고 못마땅했으리라.

“그게 그렇게 궁금해?”

“…….”

“궁금하냐고.”

“…그래.”

“그럼 나랑 다시 친구 해. 해 주면 말해 줄게.”

태연한 대꾸에 서은오의 미간이 좁아졌다. 확인하러 왔다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할 거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행운처럼 찾아와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뿐이라고, 네가 웃는 모습을,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그래야 내 죄책감의 응어리를 잘게 부수어 날릴 수 있으니까.

아직은 확신이 없었다. 일주일이나 봤는데도 서은오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매일 무감한 얼굴로 반복적인 일만 하는데 어떻게 알아챈단 말인가. 아침이면 서은오는 문방구를 열고 손님이 없을 땐 책을 읽고 청소를 하다가도 밥시간이 되면 불 앞에 섰다. 잠도 없는지 늦은 밤엔 차분한 손길로 재료를 손질했다.

“하자, 친구.”

웃으며 다시 매달렸다. 여전히 서은오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그의 반응이 어떻든 나는 개의치 않고 입을 뗐다.

“예전에, 우리 아빠가 어린 나한테 그러더라. 자기에게 남은 행운이 있다면 그 행운 모두 나에게 주고 싶다고. 행복한 날을 많이 만들어 주겠다고.”

우산을 쥔 서은오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빡빡해진 손가락을 보면서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는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으로 자랐다. 서은오란 이름 앞에서 주춤하며 살아왔지만, 한여름은 한여름이 다듬어 만든 고유의 성질이 있다.

그러니 할 말은 할래.

“내가 네 보호자는 아니지만, 내 걸 좀 나눠 줘 볼까 해.”

“뭐?”

웃음이 나왔다. 당혹과 분노 사이에 놓여 있는 서은오를 두고 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내게 올 행운은 아직 무궁무진한데, 그 행운의 절반 정돈 너 주려고 마음먹었다고. 그러니까, 탐나면 붙어.”

엄지손가락만 세운 채 주먹을 내밀었다. 내민 팔 위로 진눈깨비가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서은오는 심각한 얼굴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편을 나눌 때 여기 붙어라, 하고 손을 내밀면 엄지손가락을 감싼 손바닥 위로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 줄줄이 따라오던 작은 손들이 이곳엔 없으나 우리 둘은 남았으니까.

“붙으라니까?”

외롭게 떠 있는 내 팔이 불쌍하여 팔을 흔들며 재촉했다. 서은오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고 엄지를 감싸는 온기 따위는 오래도록 없었지만, 나는 서은오의 흔들림을 읽었다.

한참 만에 서은오가 입을 뗐다.

“네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진 모르겠는데.”

“…….”

“있을 때까진 규칙 지켜.”

침착하게 시선을 거둔 서은오가 이어 말했다.

“손끝 하나 닿을 생각 하지 마.”

진눈깨비가 빗줄기로 변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우산으로 추락하는 빗줄기가 굵었다. 앞서가는 등을 가만히 보다가 같이 가자고 소리쳤다. 비는 나흘간 계속되었다.

* *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람에 또 한량이 되었다. 이제 일다운 일 좀 해 볼까 하려던 찰나, 온 동네를 잠기게 하려는 요량인지 많은 비가 쏟아졌다. 궂은날이 갤 때까지 하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괜히 날씨 탓을 하며 서은오를 귀찮게 했다.

서은오는 내가 스무 마디 하면 겨우 한마디 해 줄 정도로 나를 무시했으나 삼시 세끼만은 잘 차려 주었고 나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다.

먹고 난 후 설거지라도 하려고 일어서면 눈을 형형하게 뜨며 냉랭한 태도로 남의 살림에 손대지 말라고 말해 와 그릇을 갖다 놓는 일만 할 수 있었다. 지난날 완두콩들이 자기 밥그릇만 개수대에 퐁당, 담그던 이유가 다 있던 것이다. 물론 애들에게 뭘 시킬 어른은 별로 없지만.

서은오가 덜어 둔 쌀뜨물에 설거지를 시작하면 나는 식탁에 앉아서 잘 빠진 등을 감상했다. 그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난 왜 저 넓은 등이 자랑스러울까. 내 것도 아닌데 든든해서 입꼬리가 쉽게 올라갔다. 서은오가 무심코 몸을 돌릴 때면 얼른 표정을 바꾸며 딴청 부리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설거지를 마친 서은오는 쌩하니 자기 방에 틀어박힐 때도 있고, 청소기를 돌릴 때도 있으며, 지금처럼 차를 내려 내게 나눠 준 후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일정한 소리에 집중했다. 후두두, 톡톡, 문창살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정답게 끼어들고 얌전히 귀 기울이던 나는 휴대폰을 들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띠링, 하는 버튼 소리에 책에 박혀 있던 시선이 내게 건너왔다.

“계속 읽어.”

나는 소리 없이 입만 벙긋대며 계속 읽으라고 손짓했다. 서은오는 금세 활자로 시선을 내리고 기다렸던 책장 넘어가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5분이 훌쩍 넘어가는 녹음 시간을 보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서은오의 고개가 완전히 나를 향했다. 말은 안 해도 궁금해하는 눈치라 입을 열었다.

“그때도 말했지만, 나 음악 만들어. 주로 영상에 입힐 음악.”

서은오는 누가 물어봤냐는 듯 무심한 태도로 차를 마셨고, 나는 냉랭한 시선 처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로파이 전문이야. 저음질로 시작하는 도입부. 예를 들면 그릇 부딪치는 소리, 빗소리, 일상의 소린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다 음악의 도입부인 거야. 그릇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서서히 음이 깔리는 거. 그런 음악을 잘 만들어.”

“…….”

“그래서 녹음하는 게 일상이야. 비싼 장비도 있긴 한데, 주로 이 휴대폰이 내 보물 창고. 좋은 소리는 작정하지 않을 때 나오거든. 장비 찾아오면 이미 지나가고 없으니까.”

비죽 웃음이 샜다. 책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서은오가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빗소리는 이어지는데 네 책장은 안 넘어가니까.

“나는 별로 잘하는 게 없었어. 잘하는 걸 업으로 삼을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을까, 남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할 때,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좋아하는 걸 골랐지. 좋아하는 걸 수만 번 만져 보니까 잘하게 되었고.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지? 아무리 해도 안되는 사람이 태반인데, 난 운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거야.”

“…….”

“넌 어땠어?”

서은오가 책을 덮고 나를 빤히 보았다.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혼자 떠들다가 불시에 자기 얘길 묻는 게 못마땅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땠냐구. 대답 안 하면, 할 때까지 쫓아다닌다?”

가벼운 협박에 한숨을 내쉰 서은오가 입을 열었다.

“닥치는 대로 살았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다 해 보면서.”

“뭐야. 못하는 게 없다는 소리야? 그 얼굴에 열심히 살기까지 했다고?”

서은오가 피식 웃었다. 곧 씁쓸한 음성이 따라붙었다.

“못하는 게 있어선 안 되는 인생도 있으니까.”

“애인도 많았지? 완벽한 여자만 만나고 다녔지? 지금은 있어, 애인?”

나는 무거워지는 공기를 흩뜨리고 싶어 턱을 괴고 떠들었다. 서은오는 바로 한심하단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돌렸다. 대화가 이대로 끊어지는 게 싫어서 아무 말이나 갖다 붙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솔로네. 나도 그래. 우린 어쩌다가 솔로인 어른이 됐을까. 우리처럼 괜찮은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중얼거리던 나는 금세 침묵했다. 다시 활자를 읽어 내는, 내리깐 눈이 지나치게 예쁜 옆모습을 넋 놓은 채 바라보았다. 홀린 듯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어떤 타입 좋아해?”

“…그건 왜.”

“내가 중매 좀 서 볼까? 재벌 집에서 주는 술 석 잔 받아 봐?”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친 서은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을 곱씹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재벌 집에서 때리는 뺨 석 대는 꽤 아프겠지. 서은오의 눈빛이 까불지 말라는 신호 같아서 서둘러 내 얘기를 했다.

“내 이상형은 우리 아빤데, 세상에 아빠만 한 남자가 없더라. 잘생기고 해바라기 같은 남자. 그런 남자 알면 중매 좀 서 줄래? 망해도 나는 네 원망 안 할게. 진짜. 어차피 계속 망하는 연애만 해 왔거든. 그래서 또 망해도 별 타격이 없을걸.”

씁쓸한 농담을 뱉으며 활짝 웃었다. 보통 이럴 땐 상대도 함께 웃고 마는데 서은오는 싸늘했다. 사람 민망하게.

웃기는 일에 실패한 나는 입술을 말아 물며 시선을 내렸다. 야, 너도? 나도 잘 망해. 그래서 우리가 솔론가 봐, 하는 통통 튀는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겨울바람보다 찬 무반응은 상상도 못 했다. 마치 내복 바람으로 쫓겨나 칼바람을 맞는 기분이었다.

“…자랑이다.”

뒤늦게 떨어진 음성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긴 해도 반응해 주었다는 게 기뻐서, 마치 오랜 친구의 대화 같다고 느껴져서 헤실헤실 웃었다.

“칭찬 아닌데.”

“알아.”

서은오는 미간을 좁히며 나를 흘끗거리다가 나중엔 아예 대놓고 해괴하게 보다가 자리를 떴다.

여전히 바깥은 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곡조처럼 뽑아 들고 따뜻한 이 공간은 포근하기까지 해서 식탁에 엎드린 채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보단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감히 생각했다.

* * *

여름은 특별하고도 귀중하니까.

하고 아빠는 말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녀가는 계절 중 하나를 빌려 와 지은 이름이 어렸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성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멀쩡한 이름을 두고 별명을 지어 놀리던 시절, 그때도 내 별명은 여름 혹은 써머라서.

‘한여름, 너 때문에 너무 덥잖아! 너만 있으면 갑자기 한여름이 돼!’

유치한 트집이 일상인 시절엔 자주 심통을 부렸다.

‘왜 하나밖에 없는 딸 이름을, 대충대충 지었어?’

내가 목청 높여 따질 때면 아빠는 여름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 떠들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 푸른 하늘. 이가 시리도록 찬 계곡물. 뜨거운 태양. 이 모든 게 다 네 이름 안에 있다고.

울며불며 떼를 쓰는 딸을 보며 젊은 아빠는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달래 주는 게 좋아 그랬을까. 나는 좀처럼 쉽게 풀어지지 않는 어린이였으나 아빠는 포기를 모르는 어른이라 결국엔 딸을 웃게 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는 어떤 결단의 날이었음을 아빤 직감했던 것 같다. 그날은 폭발의 날이었다. 늦은 시각까지 연구실에 박혀 있던 남자는 혼자 잠들었을 딸을 걱정하며 걸음을 서둘렀을 것이다. 도착해 보니 불 꺼진 집 안이 찜통 같아서 1차로 놀라고, 딸아이가 거실 한복판에 시퍼렇게 눈을 뜬 채 퍼져 있어서 2차로 놀랐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놀리는 패턴이란 매번 비슷했다. 한마디로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아서 식상했다. 게다가 서은오가 내 편을 들며 ‘네 이름이 제일 예쁘다’고 말해 주기까지 해 언짢은 기분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태평한 반응이 싫었는지 신나게 놀리던 아이가 왁, 소리쳤다.

‘뭘 좋다고 웃어? 엄마도 없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 애가 걔다. 동창 결혼식에서 내 열을 한껏 올려놓은 걔.

하여간 엄마도 없는 게, 라는 말을 들은 여덟 살은 심장이 아팠다. 젓가락으로 심장이 마구 찔리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숨만 쌕쌕 내쉬는 나 대신 서은오가 벌게진 얼굴로 그 애를 밀어 버렸다. 쓰러진 그 애가 울기 시작하자, 나는 서은오의 손을 잡고 도망쳤지만 담임선생님에게 잡혀 화해하라는 강요에 굴욕적인 악수와 포옹을 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후, 어린애는 차려진 밥도 먹지 않고, 선풍기도 틀지 않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왜 안 돌아와? 엄마가 없으니까 외로워.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데려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왕창 쏟아 낼 시간만 기다렸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어둠을 가르고 들어온 아빠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걸 보자,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악몽 꿨어? 혼자 오래 둬서 무서웠어? 미안해.’

두서없이 떠들며 나를 안은 아빠는 하얗게 질려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왜, 왜 내 이름, 여름이라고 지었어! 왜 그랬어!’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여덟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병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은 아빠의 잘못이 아니었고,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여 지금까지 혼자 사는 남자였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나는 그날을 떠올리면 여덟 살의 나에게 고마워서 사탕이라도 쥐여 주고 싶어진다. 최선을 다해 망언을 참아 주었으니까.

‘무슨 일 있었니?’

‘내 이름 싫단 말이야! 왜 이렇게 지었어! 아빠 미워!’

그날 아빠는 한참 만에 숨을 크게 내쉬며 오늘도 놀림받았느냐고 묻다가 통곡하는 나를 안고 말했다.

‘여름은 특별하고도 귀중하니까. 네가 너무 귀해서 가장 사랑하는 이름을 주고 싶었어.’

그는 넥타이도 풀지 못한 채 구겨 앉아 작고도 뜨거운 몸을 안고 중얼거렸다.

‘좋은 일은 다 이 계절에 일어났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영원을 약속했어. 그리고 네가 태어났지. 아빠한테는 가장 강력한 단어야. 행운 같은 거. 앞으로 나한테 남은 행운이 있다면 그거 다 네게 가라고 소원하면서 지었어. 진심이야. 절대로 성의 없이 지은 이름 아니야.’

그 후로 이름을 사랑했다. 어머, 자기 여름에 태어났구나? 부모님이 대충 지었네, 하는 기가 찬 말에도 발끈하지 않고 그냥 예, 하고 넘겼다. 남들은 몰라도 이름에 깃든 사랑을 나만은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빠, 그래서 내 이름 왜 이렇게 지었다고?”

-여름은 특별하고도 귀중하니까.

“들었지? 나 특별하고도 귀중해서 여름이 된 거야. 응? 아니, 여기 애들이 내 이름 가짜 아니냐고 해서요.”

나를 에워싼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휴대폰을 응시했다. 스피커 모드를 끄고 귓가에 휴대폰을 바싹 붙이며 아빠에게 안부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매번 비슷했다. 잘 지낸다고. 건강하다고. 일이 많아 적적할 틈도 없다고.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다정한 나의 영원한 이상형은 자신의 일상은 대충 얘기하곤 딸의 안부를 묻기 바빴다. 낯선 곳에 머무는 딸의 기분과 불편함을 신경 쓰느라 수업도 거를 기세였다.

-불편하진 않니? 힘들면 못 하겠다고 해라. 아빠가 있잖아.

든든한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듣는데 얼른 전화를 끊으라는 듯 뜨거운 시선이 쏟아졌다. 맑고도 강렬한 시선에 겨우 전화를 끊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왜. 뭐.”

“어른도 아빠가 있어여?”

가장 작은 완두콩이 발표하듯 팔 하나를 번쩍 들고 말했다. 나 여섯 살 때도 이랬나? 주위에 가까이 지내는 어린이가 하나도 없으니 가물가물한 과거를 짚어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어른도 엄마나 아빠가 있다고 얘기해 주려던 찰나, 초등학생인 큰 완두콩이 동생을 나무랐다.

“이, 바보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른들의 엄마, 아빠야!”

“나 바보 아냐!”

아이들은 금세 티격태격했다. 나는 벌러덩 누워 다시 시작된 쫑알대는 소릴 들었다. 현재 시각은 12시. 점심 메뉴는 해산물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굼벵이처럼 뒹굴뒹굴하던 나는 슬슬 풍겨 오는 맛있는 냄새에 거실 끝까지 굴러가 주방과 식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넓기도 하지. 부지런히 불 앞을 서성이는 등을 훔쳐보며 흐뭇하게 웃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른 오전, 막내 완두콩이 해산물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라던 할머니의 한탄에 서은오가 조개와 홍합, 오징어를 꺼내 해감을 시작했다. 차분하고도 꼼꼼한 손길로 완벽하게 손질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주위를 기웃거렸더니 도끼눈을 해 와서 주방을 벗어났고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거실에서 애들과 노닥거리며 배식을 기다렸다.

“흡!”

갑자기 서은오가 돌아서는 바람에 황급히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주 훔쳐봤다고 광고를 해라. 차라리 자연스럽게 웃으며 정말 뭐 도와줄 거 없느냐고 물었다면, 쟤가 또 오지랖을 떤다고 가볍게 생각했겠지. 괜히 아닌 척하려다 꼴만 우스워졌다.

“…….”

“…….”

하지만 식탁에 그릇을 놓는 서은오와 천장만 응시하는 나는 어른들답게 서로를 못 본 척했다.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창을 통과한 햇살이 바닥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길게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제대로 응시할 수 없을 만큼 볕이 환했다.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나더니 머리칼을 만져 대는 손길이 느껴졌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막내 완두콩이 바닥에 흩어진 머리칼을 갖고 놀았다.

“지율아, 이모 머리 뜯는 거 아니야.”

따끔거리는 두피에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서둘러,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른한 어투로 아이를 만류했다.

“아이참! 손님이 말이 참 많군요!”

“…원장님, 제발 살려 주세요.”

“네! 살려 드려요! 빠마 탱글탱글, 해 주께요!”

입을 틀어막고서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긴 머리칼을 바닥에 흩트린, 아이를 유혹한 내 탓이다.

“밥 먹자.”

그때 구세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서은오는 나무 식탁에 두 팔을 내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막내 완두콩을 보고 있는 거겠지만.

“와아!”

산발이 된 내가 느리게 일어날 동안 아이들은 빠르게 식탁을 차지했다. 이 집 안에 있는 인원은 완두콩 삼남매와 동네 남자아이 하나, 그리고 나와 서은오까지 총 여섯이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서은오는 스파게티에 시판 소스를 쓰지 않았다. 해산물을 손질하며 토마토까지 데치던데, 유학 시절 시판 소스가 아니면 진작 굶어 죽었을 나보다 더 빨리 요리를 마쳤다. 6인분을 뚝딱 만들어 낸 솜씨가 감탄스러웠다. 보나 마나 주방은 닦아 놓은 듯 깨끗하겠지. 내 주방은 항상 그대로 버리고 이사 가고 싶을 정도로 험한데 말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서은오는 또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를 빼 주었다. 여섯 살 완두콩의 목에 턱받이를 채워 주고 손에 포크를 쥐여 주며 뜨거우니 주의하란 소리도 잊지 않는다.

나는 이제 지정석 같은 자리에 앉으며 서은오를 훔쳐보았다. 아이들과 있을 때면 내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근사한 미소와 다정한 손길을 당연하게 받는 완두콩이 어쩐지 좀 부러워서 그에게 숨겨 둔 딸이라도 되느냐고 물을 뻔했다.

“삼촌! 이모 이름 알아여?”

“응.”

“왜 여름인지도 알아여?”

“아니. 꼭꼭 씹어.”

막내 완두콩이 입을 꾹 다물고 오물거렸다. 면을 다 삼킨 아이가 다시 소리쳤다.

“삼촌, 이모는 특별할 여, 귀종할 름! 이래요.”

“뭐?”

가만히 듣다가 놀라 반문했다. 그때 중간 완두콩이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아니이! 귀종이 아니고, 귀중! 귀중할, 름!”

세상에…….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웃음이 터져 나와 참지 않는데 서은오와 눈이 마주쳤다. 서은오도 이건 웃겼는지 턱을 괸 채로 슬쩍 웃었다.

“그래! 나도 알아! 맞지, 삼촌? 나, 나, 똑바로 말했지? 이모는 특별하고, 귀종하다고여!”

“응.”

서은오는 간결하게 답하며 막내 완두콩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중간 완두콩과 큰 완두콩이 가슴을 쳐 대고 동네 아이 하나도 그거 아닌데, 하고 웃었지만 서은오만은 네가 맞다며 미취학 아동 편을 들었다.

“그래. 특별하고 귀중해서 여름. 나도 알아.”

담담한 음성으로 인정하는 목소리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던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보다 서은오가 만든 게 더 맛있었다. 바다에서 잡아 온 친구들이 싫다던 완두콩이 신나게 친구들을 씹어 먹는 걸 보면 말 다 했지. 이 와중에도 아이는 사진을 찍어 놓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작은 얼굴이 빨간 소스로 범벅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며칠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식사했다. 물기 있는 국수라도 먹듯 호로록, 흡입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도 질세라, 입을 크게 벌리고 먹다가 서은오와 시선이 얽혔다.

…턱을 괴고 남 먹는 것을 구경하는 얼굴이 어째서 잘생겼는지?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아 가슴을 치며 기침하자 서은오가 물컵을 가까이 밀어 주었다. 여전히 그의 몫의 면은 줄지 않았고 그게 신경 쓰여 천천히 먹었다.

아이들이 자기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 다시 거실에서 장난을 치는 동안 서은오와 나는 느린 식사를 이어 갔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애타게 매달렸다.

“오늘은 진짜 한 번만 하게 해 주라.”

그것도 설거지가 하고 싶으니 제발 시켜 달라는 노동권을 주장하면서. 단호한 서은오가 거실을 고갯짓했을 때 빛의 속도로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를 잡아챘다. 쏟아지는 한숨을 모른 척하며 주방 세제를 짰다.

“똑바로 닦아.”

내 옆에 나란히 선 서은오는 세제가 묻은 그릇을 헹구다가 제대로 설거지되지 않은 그릇을 다시 내 쪽으로 넘기며 타박했다. 나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예, 솊.”

“뭐?”

“알겠다구요, 솊.”

“…기가 막히네.”

“솊, 기가 막히세요? 그거 성질 더러워서 그래요, 솊.”

“재밌냐.”

혼나는 주제에 ‘예, 셰프.’ 하고 장난을 걸었다.

“너, 손까지 예쁘네…….”

물에 젖은 커다란 손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흘끔거리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물이 탁, 하고 꺼졌다. 마른 수건에 손을 닦은 서은오가 나를 두고 주방을 벗어났다.

“삼촌! 우리 숨바꼭질하게여!”

“너희끼리 해.”

“아니! 사람 많아야 재밌지!”

아이들은 주방에 선 나에게도 달려와 같이 놀자며 매달렸다. 난감하게 웃던 나와 표정 없이 서 있던 서은오는 정신을 차려 보니 가장 열성적으로 숨어,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야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는 황당한 어른들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진짜 잘한다며 칭송하다가도 억울해했고, 그 말이 뭐라고 끝까지 잘해 보고 싶어진 나는 다시 시작된 숨바꼭질에 눈에 불을 켜고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놀이가 몇 판이나 반복된 터라 숨을 만한 곳은 이미 다 발각된 장소였다. 고민하는 사이, 술래가 외치는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아직 숨지 못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며 온 집 안을 헤맸다.

아아, 이 몸 하나 품어 줄 공간이 더는 없단 말인가. 구겨지고 웅크리며 버텼던 나의 능력은 이렇게 바닥이 나고 마는 걸까.

상심하는 와중에도 왔다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이윽고 초조한 걸음이 창고로 사용하는 짐 쌓인 방으로 향했다. 사람은 데드라인이 코앞까지 다가와야 뭔가를 해낸다. 임박한 카운트다운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무개처럼 다리가 멋대로 춤을 췄다.

“하!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지.”

드디어 발각된 적 없는 장소를 발견했다. 낡디낡은 커다란 장롱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불 꺼진 방, 바닥에 널린 방해물을 넘어 장롱 문을 열기엔 어린아이들의 담력이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10, 9, 8, 7, 6!, 이제 5초 남았다!”

한계까지 임박한 숫자에 문짝을 뜯어낼 기세로 장롱 문을 열었다. 바로 발 하나를 들이미는 순간,

“…너.”

“…….”

장롱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고요히 앉아 있는 서은오를 발견하자 입술이 벌어졌다. 침묵과 동시에 어색한 시선이 오갔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은 몰랐는데…….”

나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제 찾는다!”

정신 놓지 말라는 듯 술래의 외침이 들려왔다. 급박해진 나는 장롱 안으로 들어가려고 자세를 잡았다. 서은오가 눈을 치켜뜨며 읊조렸다.

“어딜 들어와.”

“공간 남잖아! 치사하게 이럴래?”

입장이 막히는 바람에 목소리를 낮추고 따졌다. 하지만 서은오는 태평한 얼굴로 내가 열어 놓은 문을 당기며 말했다.

“내가 먼저 들어왔어. 다른 데 숨어.”

“이제 와서 어디로 가라고? 여기서 더 숨을 데가 어딨다고?”

“너 들어오면 팔 닿아.”

서은오가 끔찍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두 손을 들어 으쓱했다.

“어쩌라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

안 된다는 거절이 나오기 전에 억지로 들어가 자리를 만들었다. 꾸역꾸역 옆자리를 파고들자 서은오는 한숨을 내쉬며 제 큰 몸을 구기는 데 혈안이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암흑으로 변했다. 나란히 구겨 앉아 작은 틈새를 엿보지만 장롱 밖도 어두운 건 매한가지라 바깥 동태가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다만, 쿵쾅거리는 소리는 선명히 들려왔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진 나는 곧잘 움찔거렸고 그때마다 서은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바르작거려.”

그제야 고개가 돌아갔다. 언제 들킬지 몰라 초조하게 대기하느라 곁에 앉은 서은오를 뒷전으로 두었다.

서은오를 응시했다. 서은오의 말처럼 팔이 닿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미간을 구겼을 서은오가 얄미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속닥거렸다.

“목소리 크게 내지 마. 들키면 어떡해.”

“들키면 들키는 거지.”

“…그런 사람이 장롱 안까지 숨어들어? 어쩔 수 없이 참여한 놀이에도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어? 매력적이다, 진짜. 어쩔 거야.”

“적당히 해라.”

“근데 좀 재밌지 않아?”

실실 웃으며 팔을 한번 찔렀더니 서은오는 욕이라도 할 것 같은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타이밍 좋게 쾅! 하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그걸 빌미로 손가락을 입에 올리며 쉿, 쉿 하고 능청을 떨었다. 하늘로 솟은 성난 눈썹에 고개를 돌리며 몰래 웃었다.

“쫓겨나고 싶으면 계속 건드려라.”

서은오가 이를 악문 채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별생각 없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만지면 뭐 닳아? 아니면 뭐, 설마 내가 불결해? 그래서 닿으면.”

“굳이 날 만질 이유가 있어?”

말문이 막혔다. 만질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서은오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근사한 실루엣이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지 바꿔서 생각해. 내가 네 허락도 없이 자꾸 만지면 기분 어떨 거 같은데.”

상상도 못 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등줄기가 선뜩했다.

“어, 아, 어, 미안. 나는 그렇게 생각 못 했어. 불쾌했구나. 미안해. 진짜 미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깥에선 이미 들통난 아이들의 떠드는 목소리와 술래의 절규로 시끌시끌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냥 나가 버릴까. 숨바꼭질이고 뭐고 얼굴이 홧홧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야.”

잘 없는 부름에도 대꾸 없이 입술만 말아 물었다. 야. 한 번 더 나를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못했다. 서은오가 답답하단 듯 머리를 헤집었다.

“그런 거 아니야.”

“…….”

“네가 만져서 불쾌한 게 아니라 누가 만져도 나 원래 이래.”

서은오가 내 쪽으로 몸을 튼 게 느껴졌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넌 정말 뭘까. 서은오를 올려다보았다. 언뜻 초조한 기색이 느껴졌다. 허락 없이 만지면 좋겠냐고, 처지 바꿔서 생각하라고 한 사람이 그가 아닌 나 같았다. 내 입술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런 착각을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파악한 것이 있다면 서은오의 가시였다. 물러 터진 속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서은오는 자주 가시를 세웠다. 하지만 다가오지 말라며 잔뜩 날을 세우다가도 막상 상대가 찔리면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 사람 심란하게. 차라리 뻔뻔하게 찔리든 말든 모른 척하든가.

한숨을 삼켰다. 복잡한 머릿속은 나중 일로 미뤘다. 함께 있는 지금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너야말로 바르작거리지 마. 목소리도 좀 낮추고. 들키면 손잡을 줄 알아.”

언제 어색한 기류가 흘렀냐는 듯 장롱 문틈을 훔쳐보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서은오는 얌전했다. 돌아오는 반응 따위 없어도 나는 만족했다. 서은오가 겸연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왔다, 왔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소곤거렸다. 적막이 흐르는 공간에 술래가 등장했다. 불시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불을 켜지 않고 거실 빛에 의지해 눈으로만 방 안을 살폈다.

“여기도 없, 없네!”

입구에서 서성이던 아이는 어른이 어둠 깊숙한 곳에 숨었을 리 없다고 판단했는지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다시 긴 기다림이 이어졌다. 입술을 말아 문 채 눈치를 살피다 서은오를 흘끗거렸다. 쳐다보는 이유는 따로 없었다. 그냥 시선이 갔을 뿐이다. 나도 왜 자꾸 훔쳐보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괜히 정면과 암흑인 천장을 둘러보다가도 결국엔 서은오의 흑백인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마른침을 삼켰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숨소리도 잘 들리는 마당에 침 삼키는 소리를 어떻게 숨길까.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구강 내 샘물이 왜 조용하고 긴장되는 순간엔 참을 수 없이 범람하는지. 꿀꺽,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긴장되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게 초조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리를 달달 떨고 싶을 만큼. 손끝이 간지럽고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으며 곁눈질로 힐끔대기를 몇 번, 내 시선을 못 견딘 서은오가 고개를 돌렸다. 흘끗댄 걸 들킬세라 나도 허겁지겁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왜 자꾸 보냐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서은오는 말이 없었다. 꽤 시간이 지났으리라 생각했을 때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서은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어디선가 비상벨이 울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암전이었다. 바닥없는 낭떠러지를 향해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으로 겨우 입을 뗐다.

“…술, 술래가 끈질기다. 그렇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딴청을 부렸다. 여전히 서은오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좀처럼 못 찾겠다고 소리치지 않는 술래 덕에 숨만 색색, 뱉으며 닿아 있는 어깨가 뜨거워질 때까지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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