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읏!”
연약한 촛불이 만들어 내는 빛 너머로 두 개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밤.
타닥타닥, 처마 끝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가 끊이질 않듯이 시운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혀와 혀가 얽히고 떨어지며 풍기는 타액의 냄새가 서로의 코를 간질일 때.
“그만…….”
시운이 고개를 틀어 끊어 냈다. 온몸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째서 단박에 이 아이를 밀어내지 못하고 저 붉은 혀를 받아들였는지. 정신이 번쩍 드니 실로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싫습니다.”
그러나 의주는 시운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작정한 사람처럼 오히려 시운의 아랫도리에 제 둔부를 맞춘 채, 슬금슬금 허리를 움직였다.
“의주야!”
금세 딱딱해진 시운의 남근이 고스란히 엉덩이에 느껴졌다. 시운은 황망해하며 고개를 되돌려 의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앳되디앳된 얼굴이 욕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 안 믿습니다.”
의주는 언제나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러나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보이기만 하던 그 웃음이 지금은 능글맞은 온전한 사내의 것처럼 보였다.
시운은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주먹만 꼭 쥐었다. 의주는 흔들리는 시운의 두 동공을 바로 마주하며 그의 주먹 쥔 손을 끌어 제 볼에 가져다 대었다. 여름인데도 차가운 살갗이 기분이 좋았다.
“안 믿는다고.”
의주의 엄지가 시운의 입을 벌리니, 촉촉하게 젖은 붉은 혀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아시겠습니까.”
의주의 두 눈이 흡사 짐승의 것처럼 번뜩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림자는 다시금 포개어졌다.
* * *
근래 도의주의 심기는 썩 좋지 않았다.
젊은 유생들이 하나같이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으로 내세우는, 홍문관 대제학 도균의 여덟 자식 중 막내. 그러니까 새빨간 핏덩이로 태어났을 적부터 있는 정 없는 정 죄 끌어모아 온갖 사랑은 다 받고 자란 것이 도의주라는 사내였다.
아무 데나 똥을 쭉쭉 싸 대는 새들조차 이 집 기와에만은 똥구멍을 처막고 조심히 지나간다는 집안에서 오냐오냐 키워 냈으니, 그 성품이 더러워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그러나 그를 모시는 돌쇠의 입장에서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도련니임!”
“조용하지 못해?”
돌쇠는 오늘도 글공부는 때려치우고 놀러 나가겠다는 못난 도련님을 때리지도 그렇다고 뭐라 하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아이고오, 오늘도 나가시면 제가 주인마님께 죽습니다요!”
돌쇠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쥐어 짜내며 연민을 이끌어 내려 했으나, 지금의 의주에게 그것이 통할 리는 만무했다.
“내, 오늘만 나갔다 온대도!”
“아이고오, 도련님!”
그 말은 어제도 했지 않았소, 하고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참으며 돌쇠가 의주의 앞을 막았다.
“막아?”
의주의 눈이 가로로 길어졌다. 덩치도 크지 않은 작자가 뿜어내는 기운이 꼭 호랑이도 때려잡는다는 첫째 도련님과 똑같았다. 피는 못 속이는가 보다 하며 돌쇠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종놈 주제에 감히 내 앞을 막아?”
의주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눈깔이 살짝 돌아간 것이 이 이상으로 막았다가는 저 성깔 더러운 도련님이 뭔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쇠는 이걸 어쩌나 하고 짧게 고민하다가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났다. 포부 넘치게 양반의 앞을 막아섰던 것과는 다른, 꽤 초라한 후퇴였다.
“얼른 다녀오시는 겁니다? 쇤네랑 약조하신 거여요!”
“나 참, 금방 갔다 온다니까.”
쯧, 의주는 영 못마땅해 보이는 돌쇠를 보고 혀를 한번 차고는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대문 밖으로 나섰다.
글공부고 출세고 나발이고 지금은 그딴 입신양명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의주는 돌쇠 때문에 늦어진 시간만큼 빠른 걸음으로 발을 놀렸다.
하절기이긴 하절기인 모양이었다. 한창 뜨거워지는 해에 땀이 배어 나와 의주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발길에 차였고, 몸을 휘감는 공기는 물기를 머금은 듯 무겁기만 했으며, 날벌레들은 하나같이 귓가에서 윙윙대며 제 존재를 알려 왔다.
쉽지 않은 걸음을 걸으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삐 걷던 의주의 걸음이 우뚝 멈춘 곳에서는 탕약 냄새가 대문 사이로 넘어오고 있었다. 결코 맛이 없을 것 같은 쓴 냄새를 맡으며 의주는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도 독하다, 가만있어도 의원이라고 동네에 소문 다 나겠네. 의주는 혼자 구시렁대면서도 문지방을 넘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여기까지 걸어오던 당찬 걸음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태도였다. 대문이 열려 있으니 주인이 있는 것일 텐데도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약첩이 떨어지면 또 들르시라 전해 주게, 내 미리 달여 둘 테니.”
괜히 흙을 파고 있던 의주의 발이 익숙한 목소리에 턱, 멈췄다.
“이걸 감사해서 어찌…….”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의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래도 양반이라고 채신머리 같은 건 잘 갖추고 있는 그가 이리 바보같이 구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아유! 깜짝이야!”
객으로 보이는 사내가 대문간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의주를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 탓에 의주도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이유는.
“도련님?”
농사도 쉬어 간다는 철에 힘겹게 시운을 만나러 왔으나, 댈 연유가 딱히 없다는 것.
“…….”
의주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눈앞의 사내를 올려다보며 괜히 큼큼거렸다. 이럴 줄 알면서도 늘 생각도 없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었다.
“순팔이, 그만 가 보게.”
시운은 약첩을 들고 의주의 얼굴을 살피는 순팔을 서둘러 돌려보내고는 여전히 아무 말도 않는 의주에게 말을 건넸다.
“어찌 또 오셨습니까.”
시운의 목소리는 순팔에게 내뱉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딱딱해졌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높다지만, 한낱 의원이 대제학의 자제한테 하기에는 부적절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것보다도 의주는 다른 곳에서 기분이 상했다.
어찌 또 왔냐니, 퍽 서운한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저가 이곳에 뻔질나게 드나들기는 했어도 굳이 말로 꺼내어 면박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가 약재를 찾는답시고 지방으로 올라갔다 온 탓에 무려 이레 만에 보는 게 아닌가. 언제 돌아온다 기별도 없어 매일같이 돌쇠도 뿌리치고 왔었건만. 의주의 입이 샐쭉 튀어나왔다가 쏙 들어갔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좋지 않으니 왔지요.”
의주는 급하게 생각해 낸 말을 거침없이 뱉었다. 아주아주 뻔뻔하게.
“편찮으시다고요.”
“예.”
아무리 보아도 혈색도 맑은 것이 아픈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의주였다. 시운이 빤히 쳐다보니 의주는 눈동자를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일단 드시지요.”
딱 보니 그대로 돌아갈 생각도 없는 듯한 의주에 시운은 일단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넓지 않은 마당을 지나 진찰을 위해 마련한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향냄새가 풍겼다. 의주는 여러 약재들이 늘어진 서랍장을 쓱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시운의 조부 때부터 병자를 봐 오던 곳인지라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졌다.
뒤따라 들어온 시운도 자리를 잡고 앉아 의주를 바라보았다.
“아픈 곳은…….”
“여기.”
의주는 당당하게 제 가슴팍에 손을 얹어 톡톡 때렸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여기가 틈만 나면 답답하고 두근두근 뛰는 것이 이상하긴 했으니까.
“어떻게 편찮으십니까.”
“답답합니다. 꼭 떡 먹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비유 한번 고급스러웠다.
“……체기에 좋은 약을 내어 드릴 테니.”
“맥은 안 잡으십니까?”
진찰을 위해서는 맥을 짚어 보는 것이 기본적인 순서이지 않은가. 의주는 불쑥 제 왼쪽 손목을 내밀어 보였다. 그 손목을 쓱 내려다본 시운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도로 일어났다.
보기에는 무탈해 보이지만 정말 체기가 있는 거라면 간단하게 약을 지어 먹는 편이 좋을 터.
시운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약재들의 종류를 나열했다. 의주는 체질적으로 생강이 맞지 않으니 배초향으로 약을 내어 줘야겠다 생각하는 그의 팔을 의주가 붙잡았다.
“……놓으시지요.”
“맥은 안 짚으시냐 여쭸습니다.”
이럴 때마다 집요해지는 의주였다. 시운은 언제부턴가 짙게 가라앉은 듯한 의주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의주는 그런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 마주할 때마다 어찌할 줄을 몰라 모양새 빠지는 짓을 많이 하긴 해도 의주의 목적은 늘 시운이었다. 그를 만나러 아버지 말을 어기고 글공부도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도는 것이었다. 그러니 피할 이유가 없었다.
“…….”
시운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의주의 손목 위에 내려앉았다. 찬기가 도는 손에 뜨겁게 달아오른 의주의 체온이 확연히 느껴졌다.
쿵, 쿵, 쿵.
의주는 제 맥을 재는 시운의 흰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백면서생처럼 허여멀건 것이 어느 집 여식보다도 하얗다. 그뿐 아니라 입술은 앵두즙으로 색을 입힌 것처럼 붉고, 콧대는 적당히 솟아 둥근 콧방울로 매듭지어 떨어지는 것이 조화로운 외관이었다.
특히 살짝 밝은 홍채가 신비롭고 색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나이로는 제 셋째 형님과 비슷할 것인데, 어찌 이렇게 다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의주가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운은 그와 눈을 마주하지 않고 그저 허공 어디께를 바라볼 뿐이었다.
쿵쿵쿵.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힘찬 의주의 맥동이 제 손을 타고 몸에 흐르는 것만 같았다.
맥에 집중하는 시간이 시운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길었지만, 의주에게는 찰나처럼 짧기만 했다. 이대로 손을 쥐면 안 될까 의주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시운의 손길이 거두어졌다.
“어떻습니까.”
의주는 방금까지 했던 생각을 지우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물었다. 시운은 딱히 대답은 않고, 그저 아까 꺼내지 못한 약재들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맞는 약첩을 지어 드릴 테니 잠시 계시지요.”
“맥이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이상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시운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부터 저에게도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또 가슴이 두근두근 달음박질을 쳐 댔으니. 의주는 약재함만 묵묵히 보고 있는 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사내를 처음 만났던 게 정확히 언제였던가. 제 머리털도 아래의 꼬부랑 털도 굵어지기 전에 보았던 사이이니 세월이 꽤 쌓였을 터였다.
두 사람이 그 옛날 처음 보게 된 까닭은 의주의 누이 때문이었다.
의주의 다섯째 누이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가 허약하여 병치레가 유독 잦았는데, 시운은 그때마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내방을 하고는 했었다. 머리가 총명하여 의원 일을 일찍이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릴 때도 당연히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르던 의주는 그런 시운의 주위를 맴돌며 귀찮게 굴었더랬다. 그래도 품성이 워낙 단정한 시운은 단 한 번을 짜증을 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찾으러 간다던 약재는 구하셨습니까.”
의주는 문득 떠오른 이야깃거리에 말을 건네었다.
드르륵, 드르륵. 함을 열었다 닫는 소리가 몇 번 정도 들렸을까.
“예.”
시운의 짧고 낮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의주는 또다시 가슴 언저리가 딱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시운을 상대하며 이런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었거늘 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아마, 시운이 저를 멀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건 언제쯤부터였지? 제가 마음을 내보인 순간부터였던가.
“의주야.”
그가 한창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시운이 예전 그 어느 날처럼 의주를 불렀다.
의주는 고개를 들어 저를 돌아보지도 않고 있는 시운을 올려다보았다. 저보다 한 뼘 정도 큰 키에도 불구하고 야윈 몸 때문인지 시운은 가냘프게만 느껴지는 모습이었으나, 그것과는 달리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었다.
〈의주야,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어렸을 적에도 시운은 늘 그러했다. 쉽게 부서질 것처럼 생겼으면서 목소리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때 그 물음에 저는 무어라 대답을 했던가.
“다시는 오지 말거라.”
미처 대답을 떠올리기도 전에 시운의 나직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 목소리는 마찬가지로 힘이 실려 있어서, 빈말로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저 고운 목소리로 못 봤던 이레 동안 허전했다고, 한 톨의 다정함이라도 내뱉어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허전했는데, 그리웠는데.
그래서, 아랫것들을 시키지 않고 매번 직접 이곳 앞을 드나들었는데.
아주 더운 여름날에 매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날이었으나 의주의 속은 이상하게도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 * *
길을 헤쳐 나가는 의주의 발걸음이 아까보다도 거칠어졌다. 인상은 있는 그대로 쓰고 있는 터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씩 돌아볼 정도로 험악했다.
“나쁜 자식.”
의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네가 불편하다.〉
〈지금, 불편하다 하셨습니까?〉
〈사내끼리 소름 끼치지 않느냐, 네가 생각해도.〉
그 말을 하고 있는 시운의 안면에 떠올라 있는 것은 분명한 혐오감이었다. 알아 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적나라한 얼굴에 의주는 화가 치밀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화라기보다는 수치심이었다. 시운이 제 속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눈치 못 채면 등신일 정도로 의주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거리끼지 않았으니.
그러나 설마하니 시운이 제 그런 마음을 소름 끼친다 표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됐어.”
나도 됐다 그래.
씩씩대는 의주의 얼굴이 붉었다.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번들거렸다.
“더워 뒈지겠네.”
의주는 팔로 얼굴을 쓱 닦아 내며 괜히 더위 탓을 했다. 육신을 움켜쥐는 듯한 이 더위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짜증이 났다.
어느덧 거칠던 의주의 발길은 마을 어귀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산세로 접어들었다. 이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애정을 받는 것에만 익숙한 의주였기에 이렇게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주지 않아도 받는 게 당연한 생이었으니, 저가 준다면 당연히 배로는 돌려받아야 하는 게 옳은 방향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타인의 서늘함에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코끝이 찡했다. 누군가 등을 톡 하고 치기만 해도 울컥하고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았다.
이렇게 의주의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건 아직 여름이 찾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그냥 여느 날과 똑같이 평범한 때. 지금과는 달리 햇살이 부드러워서 나들이하기 좋던 날.
그날도 의주는 시운이 약재를 알아보러 간다기에 심심했던 차에 따라붙었던 참이었다.
〈뭘 그렇게 비싸게 주십니까. 약재값으로 의원 일하며 번 돈 다 나가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강물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던 때, 시장에서 비싼 돈을 들여 약재를 샀던 시운을 보고 의주가 짐짓 걱정 어린 투로 말을 건넸다.
〈사람 살리는 데에 돈 아끼는 거 아닙니다.〉
〈저랑 대화할 때도 말 높이시는 거 아니고요.〉
시운의 말에 의주는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몸을 돌렸다. 그들이 건너던 강은 늦은 봄비에 물이 많이 불어나기는 했지만 높게 쌓은 돌다리가 있어 건너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운은 가냘픈 몸으로 힘겹게 의주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등에는 약재들을 짊어진 채 미끄러운 돌다리 위를 건너는 폼이 아슬아슬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는 의주 너도 내게 존대를 하지 않아.〉
시운은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며 피식 웃었다. 의주는 그런 시운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야, 윗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으니 하는 것 아닙니까.〉
〈저도 도련님께 존대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아 그리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넘길 때마다 시운에게 말을 낮추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예법이 어쩌고, 양반이 어쩌고, 하는 걸 무시하고 싶어도 의주에게나 시운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의주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시운이 제게 존대를 하는 것이 퍽 멀게만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의주에게 시운은 동네 사람들이 전부 그 사이를 인정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믿고 따르던 형님이었다. 혹자는 사실 시운이 의주의 친형이 아니냐는 큰일 날 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변해 가는 호칭에 의주가 그런 서운함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했으리라.
〈나 참.〉
의주는 한마디도 져 주지 않는 시운을 밉지 않게 흘겨보았다. 그런 의주를 보며 하하 웃은 시운이 다음 돌을 건너려 할 때였다.
물기가 남은 표면에 시운의 발이 미끄러져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의주는 흠칫 놀랐다가도 곧 쯧쯧 하고 얄밉게 웃고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여간에 손이 많이 가는 형님이 따로 없다.
〈둘이 있을 때는 그러지 마, 서운하니까.〉
〈나는 좋던데.〉
늘 열이 많은 의주의 손에 시운의 차가운 체온이 가득 들어찼다. 붙잡은 손을 한번 보고, 의주의 얼굴을 마주한 시운이 보기 좋게 웃었다.
〈어?〉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것도 잠시였다. 귀여운 동생을 보는 듯 어른스럽기도 하면서, 한없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시운의 말간 얼굴에 의주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 버렸다.
지금 저가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눈만 끔뻑였다.
〈좋다고.〉
의주가 내민 손에 기대어 시운이 같은 돌다리 위로 올라섰다. 한층 가까워진 시선에 의주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오르는 것만 같았다.
저가 좋다는 말도 아닌데 머릿속에 ‘좋다’는 말이 가득 차는 바람에 시운이 〈네가 존대할 때마다 네가 많이 자란 걸 깨닫곤 하거든.〉 하고 덧붙이는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의주야?〉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식상한 감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석양빛이 두 사람의 위로 떨어져 물비늘 위에 반짝이는 것이라든가, 흐르는 강물이 돌에 부닥쳐 첨벙첨벙 소리를 내는 것이라든가, 저 멀리 강 너머에 꽃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것 따위는 시야에서도 귀에서도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저 시운만 보였다.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체온이 느껴졌고, 그다음엔 미친 듯 뜀박질을 하는 제 가슴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기운차게 머리를 드높이는 제 물건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좋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어이없게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그날 처음 배우게 된 의주였다. 어쩌다 시운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같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의주는 평소보다도 더 맹목적으로 시운을 만나러 향했다. 손에 남은 그의 체온을 잊지 못해 몇 번이고 장난인 척 그의 손을 잡았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살아 있음을 알려 오는 것이 기뻤다. 그저, 기뻤는데.
그런 나날이 지나갈수록 시운은 변했고, 결국 오늘과 같은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까는 어디 숨었는지 찍 소리도 내지 않던 매미들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맴맴거리기 시작했다. 이 들끓는 속을 어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애꿎은 매미들을 향해 발정 난 새끼들, 하고 욕을 퍼붓고는 시선을 돌리는데, 의주의 눈에 웬 괴이한 것이 들어왔다.
얼핏 봐서는 주변 식물들에 묻혀 알아보지 못할 법도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째서인지 의주의 눈에는 그 부분만 쏙 들어왔다. 시운과 가까이 지내며 풀때기들에 관심이 많아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개의 궁둥이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잡초들 속에 우뚝 서 있었다.
* * *
의주는 어릴 적부터 똥강아지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특히 그의 외조모는 의주를 마주할 때마다 이름보다는 우리 똥강아지, 똥강아지 하며 부를 때가 많았는데 그것이 전부 애정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의주에게 글공부를 시키긴 하지만 사실 그건 양반으로서의 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을 뿐, 가문을 잇는다거나 입신양명을 한다거나 그런 건 손위 형제들의 몫이었다.
실로 집안사람들이 의주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밝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늘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기대가 없다는 것에 서운해할 법도 했지만 의주는 그런 쪽에 있어서는 다행히 무감한 편이었다. 오히려 의주는 다른 형제들은 받지 못하는 온전한 예쁨을, 저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도 피부로 느끼며 마음껏 누렸다. 그렇기에 의주는 ‘똥강아지’라는 애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개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끼잉!”
의주는 고개를 내려 제 발을 보았다. 다시 보아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복슬복슬한 털이 수북하게 덮여 있는 콩가루 묻힌 인절미 같은 갈색 발이 그곳에 있었다.
‘정녕, 이게 생시란 말인가?’
진짜 똥개가 된 의주는 제 모습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꺾어 다시 한번 몸을 살폈다. 몸도 잘 익은 단감 같은 색을 띠고 있었고, 엉덩이에 달린 꼬리는 어찌 된 건지 들개들에 비해 퍽 짧아 앙증맞아 보였다.
의주는 제가 궁둥이에 힘을 줄 때마다 펄럭이는 저게 진짜 개 꼬리인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고개를 더 꺾었다. 그러나 짧은 목에 꼬리가 잘 보이기는커녕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되니, 그게 꼭 멀리서 보기에는 제 꼬리 쫓는 개처럼 보인다는 걸 의주는 알지 못했다.
몇 번이고 꼬리를 보겠다고 뱅뱅 돌았더니 숨이 거칠어졌다. 더운 날에 할 짓은 아니었다. 이내 포기한 의주는 다시 한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건 “컁!” 하는 귀엽고도 하찮은 소리로 나올 뿐이었다.
어쩌다 이런 개 꼴이 되었냐고 한다면, 원인은 그 개 궁둥이를 닮은 꽃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꽃봉오리에 그 와중에도 호기심을 갖게 된 의주는 망설임 없이 꽃을 잡아 뜯었고, 그와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더니 이 꼴이 된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뭐라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아뿔싸’ 하는 순간, 체구가 작아진 탓에 입고 있던 옷가지들은 나풀나풀 흘러내렸고, 그렇다고 그것들을 주워서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버려두고 왔다.
살면서 술에 취해 개가 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꽃을 만져서 개가 된다는 건 못 들어 봤건만.
황당함이 가시고 나자 의주가 가장 먼저 갖게 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영영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한숨이 나오고, 절로 꼬리가 축 처졌다.
‘일단은 집으로 가야겠다.’
사람은 불안해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아무리 총명한 자여도 합리적인 사고를 잘 해내지 못한다. 그때의 사람은 그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곳을 찾게 되는데 딱 의주가 그 꼴이었다.
의주는 까만 코를 찡긋하며 제집을 찾아 네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네발짐승이었던 것처럼 안정적인 걸음걸이였다.
‘개의 눈도 사람이랑 별다를 바가 없군.’
의주는 고개를 치켜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뜨거운 해도 슬슬 저물어 갈 때였다.
사실 개의 눈은 몇 가지 색밖에 보지 못하지만, 진짜 개도 아닌 의주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그러나 일단 집으로 가서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했던 의주의 계획은 집 마당에서 산산이 깨져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불안해지면 합리적인 사고를 잘 해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의주도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 저택의 귀하디귀한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지금의 그는 그저 ‘개’라는 걸. 그것도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똥개.
“에잇! 어딜 들어와!”
그러니 마당을 쓸며 철없는 도련님을 기다리던 돌쇠가 그를 쫓아내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컁!”
“어허! 이 똥개 새끼가! 썩 나가래도!”
“캉캉, 카앙!(똥개? 또옹개?)”
“이거 안 되겠구먼.”
기다리던 도련님은 안 오고 웬 누런 똥개가 집에 마음대로 들어와서는 짖어 대니 돌쇠는 제 손바닥에 칵, 하고 침을 뱉어 비비고는 결국 빗질하던 빗자루를 휘두르며 의주에게 달려들었다. 해칠 생각은 없고, 그냥 겁만 줘서 내쫓을 요량이었다.
‘제 주인도 못 알아보는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컁캬캬컁!(나라고! 나! 못 알아보겠느냐?)”
“왐마? 왜 이렇게 짖는담. 나 참 환장하겠구먼.”
“컁, 캬앙!(말이 안 통하는구나. 네놈 말고 어머님을 뵈어야겠다!)”
“어허! 어딜!”
의주가 빗자루를 피해 안으로 달아나려는데, 돌쇠의 투박하고 거대한 손이 의주의 목덜미를 가볍게 낚아채는 것이 더 빨랐다. 뜨끈뜨끈한 돌쇠의 체온에 기분이 나빠 의주가 꼬리를 탁탁 쳐 댔다.
“뭐가 이리 소란스러운 게냐.”
“끼잉!(어머니!)”
돌쇠가 의주를 낚아채는 것과 동시에 의주의 어미가 소란 때문에 마당으로 나와 한 소리를 건네었다. 의주는 몸을 버둥거리며 그녀에게 가려고 했으나, 돌쇠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고 그저 다리를 헤엄하듯 퍼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이고, 마님. 별일은 아니고, 웬 똥개가…….”
“개?”
의주의 어미는 돌쇠가 쥐고 있는 작은 똥개를 한번 쳐다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의주는 본인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기 위해 엉덩이에 힘을 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얼굴 근육도 최대한 늘어트려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녕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소란 피우지 말고 얼른 내쫓게.”
그러나 역시나 감동적인 재회 같은 건 없었다.
의주의 어미는 종의 손에 붙들린 누렁이가 제 아들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채로 다시 곁을 따르던 계집종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그제야 의주는 깨달았다. 돌쇠가 이렇게 저를 내쫓으려고 하는 이유를.
그의 어머니는 개를 싫어한다.
퍽.
“썩! 나가거라! 썩!”
마님의 핀잔도 들었겠다 돌쇠는 참지 않았다. 그대로 대문 밖으로 나가 되는 대로 집어 던지는 바람에 의주는 제대로 낙법조차 펴지 못하고 흙바닥을 굴렀다.
“으르르…….(돌쇠 네 이놈, 내 사람부터 되고 보자…….)”
이를 내밀고 아르르, 소리를 내었지만 다시금 돌쇠가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빗자루에 의주는 일단 뒷걸음을 치며 대문 반대편으로 뛰었다.
뒤에서 “아니, 이놈의 도련님은 언제 오시려나…….”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척이 없었으나 의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왜 이놈의 꼬리는 제 맘대로 사타구니 안으로 말리는 것인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 *
그렇게 갈 곳을 잃은 의주는 이제 정말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앞날이 캄캄했다. 이대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영 이렇게 길 위를 배회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저는 왜 개가 된 것일까. 그 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천벌이라도 되는 걸까. 그렇기에는 평소에 개한테 못되게 군 적도 없건만.
개가 되니 들리는 것도 맡아지는 것도 너무도 생생해서, 생소한 감각처럼 느껴졌다. 살아생전 느꼈던 모든 것들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지난날 느꼈던 모든 것들은 꼭 죽은 감각처럼 희미해졌다. 그래서 더 두려워지는 그였다.
이렇게 선명한 후각과 청각으로 개들은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담 너머의 이름 모를 누군가의 먹 냄새까지 절절하게 느껴지니 어쩐지 머리가 어지러운 것처럼도 느껴졌다.
의주가 개의 몸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날은 성실하게 지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든 해야 할 터인데, 제집에는 가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천상 양반인 그가 길바닥의 들개처럼 구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그런 의주가 선택한 곳은 친척 집도 아니고, 하물며 제 형제들의 집도 아닌.
‘이 냄새는…….’
시운의 집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걷던 의주의 걸음이 시운의 대문 앞에서 또 멈췄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정처 없이 걷는다 해 놓고 또 익숙하고도 마음이 동하던 곳으로 발길이 옮겨진 모양이었다.
오늘 낮에 보았던 약재가 주렁주렁 달린 대문간을 바라보던 의주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나 발소리가 날까 슬금슬금 걷는 것이 퍽 애처로웠다. 시운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난 것도 아닌데, 괜히 원망스러워 그의 공간 이곳저곳을 흘겨보게 되었다.
이른 저녁을 맞이한 것인지 집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의원 일을 돕는 자들이 몇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다들 집으로 돌아간 탓에 더욱 적막하게만 느껴졌다. 의주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또 총총 걸어 시운의 방 쪽으로 다가갔다.
‘시운의 냄새가 나는구나.’
자그마한 터인 만큼 진료실로 쓰이는 바깥채와 시운의 방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해서 가까이 다가갈수록 각종 풀들의 싱그럽고도 쓴 냄새가 폴폴 풍겨 와 의주의 까만 코를 간질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가까이 갈수록 시운의 체향을 덮는 알싸한 술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웬 술 냄새람, 하며 의주는 디딤돌을 밟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가볍게 마찰하는 소리가 났으나 시운은 취하기라도 한 것인지 알아채지 못한 듯싶었다.
의주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이제 어째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마루 위에 털썩 앉았다.
벌써 술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지라 하늘은 이미 어둑해진 상태였으나, 여전히 콩가루 묻힌 인절미 같은 개의 모습인 데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저의 부재에 집안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이렇게 시간이 점점 흐르면 저를 찾아 사람을 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속에 있는 옷가지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한바탕 야단이 나겠구나 싶어 의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일은 또 있었다. 이대로 시운을 마주하는 것이 그랬다. 홀린 듯 오기는 했지만 한낱 돌쇠가 그랬듯 시운에게도 쫓겨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시운이 저의 이 모습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게 지금 의미가 있는 행차였나 잠시 회의감이 들었다. 차라리 조용히 몸이라도 숨기며 지내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그래도 시운이 짐승을 퍽 좋아했던 걸 떠올리고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암만해도 머무를 곳이라도 만들어 놓는 것이 나았다.
“……의 …….”
아까부터 방 안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 귀인 의주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뭉개진 목소리라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시운이 꽤 취했나 보다 하는 정도만 알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 의주에게는 의아한 부분이었다.
‘시운은 술을 멀리하지 않았던가?’
제 처지가 개가 된 경위나 의아해할 것이지 의주는 오지랖도 넓게 시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의원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비리비리하고 허약해 술 같은 건 입에도 잘 대지 않던 사람인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마신 건가 하고.
복잡한 생각을 하던 의주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장지문에 주둥이를 들이받았다. 퍽, 하고 뚫린 장판지에 깜짝 놀란 의주가 고개를 뺐지만 이미 구멍은 난 상태였다. 살도 촘촘하지 않아 꽤 크게 구멍이 났는데, 일단 의주는 손으로 열지 못한다고 주둥이를 쓸 생각을 한 자신이 너무나도 개 같아서 기함했고, 두 번째로는 시야 안에 들어찬 술병과 함께 나뒹굴고 있는 시운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를 어쩐다.’
의주의 눈에 들어온 시운은 풀어진 저고리만 걸치고 고의와 속곳은 벗어 던진 반라의 상태로, 비스듬히 앉아 자신의 남근을 붙잡고 있었다. 아까는 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건지 이미 방 안에는 음수 냄새가 더운 공기와 함께 어우러져 바닥이건 벽이건 들러붙어 있었다.
그 쌉싸름한 냄새를 맡으며 의주는 아주 잠시 또 다른 고민을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계속 보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로.
살면서 시운의 나신을 본 것도 처음인데 거기에 수음까지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안 그래도 뜨거운 개의 체온이 더욱더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저녁이라 더위가 한풀 꺾이지 않았다면 이미 자글자글 끓어 녹아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이 들 정도로 온몸이 뜨거웠다.
떡 치기 같은 것에는 일절 관심도 없을 것 같던 그 시운이, 지금 하얀 얼굴을 붉히며 스스로 몸을 유린하고 있다. 늘 조용조용하고 세상 모든 번뇌를 초월한 듯한 그가 천박하게 보일 정도로 정신없이 신음을 뱉어 내고 있다. 마음이 없는 자가 보아도 민망한 장면이거늘 그에게 정을 줘 버린 의주는 오죽하겠는가.
“하아…….”
여전히 의주의 존재도, 문에 난 구멍의 존재도 모르는 시운은 멈추지 않고 제 기둥을 붙잡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벌려진 저고리 사이로 시운의 갈빗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 그 갈빗대 안쪽으로 시선을 따라 옮기니 선홍빛 유두가 볼록 튀어나와, 탱글탱글 윤을 내고 있었다. 시운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이 이상스럽게 색정적이었다.
아,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 봤더라.
의주는 어릴 적 헛간에서 셋째 형님과 기생이 배를 맞추던 모습을 숨죽여 보던 때를 머릿속에 덧그렸다. 그때 계집의 안에서 정신없이 흔들리던 형님의 기둥처럼 시운의 것도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시운의 몸은 형님보다는 그 기생의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희고 보드라워 보이는 윤곽도 그러했고, 음부 주위에 털이 얼마 없는 것도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의주는 시선을 떼고 싶어도 차마 떼어 내지 못하고 시운의 흐트러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집중한 채로.
“하아…….”
시운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손가락을 더 아래쪽으로 내려보냈다. 오늘 낮에도 제 손목의 맥을 재던 손가락이 시운의 엉덩이 사이로 사라졌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걸 보자 의주는 속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쿵쿵 떨어서 귀가 멀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꿀꺽.
의주는 침을 질질 흘리다 못해 물처럼 삼켜 넘겼다. 저가 넣은 것도 아닌데 꼭 시운의 안에 꾹, 박혀 들어간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손가락에 묻어 번들거리는 액체를 입 안에 머금어 보고 싶다. 아니, 저 구멍에 코를 박고 핥아 보고 싶다. 달달한 맛이 날까? 아니면 시큼한 맛이? 구멍 안쪽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양손을 쑤셔서 있는 힘껏 벌리면 보이려나?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던 욕망들이 소용돌이쳤다. 지금의 의주는 자신이 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상태였다 그저 한 명의 사내로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주는 뚫린 구멍에 제 몸을 집어넣으며 크기를 벌렸다. 여유롭게 움직일 정도가 되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넘겨 방 안을 밟았다. 딱딱한 나무 바닥이 유난히 따뜻했다. 사냥을 앞둔 짐승처럼 번뜩이던 눈을 꾹 감은 채, 수음을 하는 시운에게로 다가섰다.
차라리 짐승인 상태라 다행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그에게 달려가 제 것을 먹으라고 물려 줬을지도 몰랐다.
〈소름 끼치지 않느냐.〉
그러나 왜일까. 한껏 열을 올리던 의주의 머릿속에 시운이 꽂아 넣었던 비수가 다시금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시운에게 튀어 나갈 것처럼 앞으로 쏠려 있던 의주의 몸통이 뒤로 물러났다.
전신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열이 사그라들었다. 꼬리가 힘없이 추욱 늘어졌다.
내내 들리지 않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다시금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내가 지금 무얼……?’
의주는 고개를 강하게 비틀었다. 눈도 꾹 감아 시야가 이내 캄캄해졌다.
미쳤구나, 도의주.
네가 개가 되더니 정말 짐승이 되고 싶은 게야.
저의 마음을 두고 소름 끼친다고 한 시운이었다. 이렇게 나신을 훔쳐보며 흥분하는 자신을 알게 된다면 그는 정말 다시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암흑만이 비치는 눈두덩이 안쪽만 보며 의주는 일단 돌아가자 판단했다. 시운이 모든 일을 다 끝내면 그때 다시금 마주해야지, 하며 발길을 돌리려던 때.
“귀엽게 생겼구나.”
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시운의 조부는 내의원에서 한평생을 보냈고, 그의 아들은 내의원에서 일하다가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궐이 아닌 진짜 민생을 위한 의원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시운은 그런 제 아버지를 동경했다.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해 의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많은 자들을 위하여 제 지식을 사용하는 모습이 어린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래서 시운 또한 과거에 합격해 혜민서에서 근무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었다. 그러나 혜민서 자체도 일반 백성들이 이용하기에는 그 한계가 역력했고, 그것 때문에 시운은 그곳을 나와 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놈이 왜 힘든 길을 가려는지 모르겠다며 생전 한탄을 많이 했으나, 자신을 닮아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시운이기에 생에서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곤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시운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관청에서 계속해서 일을 했더라면,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었더라면, 그랬다면 의주와 지낸 시간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고.
시운은 평소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물 마시듯 목구멍 안으로 넘겼다. 투명한 액체가 목을 뜨겁게 태우며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걸 느끼며 그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꼭 고뿔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울렁거리는 속에 숨만 색색 내뱉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충격을 받은 듯한 의주의 얼굴이 시야 앞에 떠올랐다. 형태도 없는 숨이 단단해져 목구멍을 꽉 막아 버리는 듯한 기분, 시운은 의주를 보면 늘 그런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외동인 그에게 밝기만 한 의주는 남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
좋은 집안에서 많은 애정을 받고 자란 아이는 언제 보아도 반짝반짝 빛이 나서, 당장이라도 각혈하며 쓰러질지 모르는 약한 저가 가까이해서는 안 될 텐데도. 시운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피식피식 지어지는 웃음은 숨겨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마음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것이 의주가 잠시 들렀다 간 뒤로 시운의 기분이 물에 젖은 목화솜처럼 축 가라앉아 있던 까닭이었다.
〈소름 끼치지 않느냐.〉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아니다. 말을 하기는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의주는 몇 번이고 이곳으로 찾아와 그 맑은 낯으로 제 속을 흔들어 놓았을 테니까. 그러면 더러운 저는 그 하얗고 말간 아이에게 안아 달라 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너처럼 사랑받고 싶다고.
아무도 떠나보내지 않고 늘 곁에서 사랑받고 싶다고. 이 유한한 목숨이 설령 너를 다치게 할지라도 나는 사랑을 받고 싶다고.
어쩜 이리도 이기적인 마음이란 말인가.
의주는 명망 있는 가문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워 온 자손이자, 저보다 몇 살이나 손아래인 데다, 그렇게 강렬하게 차오르던 맥박처럼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다. 절대 저 따위의 의원 나부랭이가 넘봐서는 안 되는 고귀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주를 떠올리자 시운은 온몸이 불에 달군 듯 달아올랐다. 의주의 웃음을 떠올리니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고, 의주의 움직임을 떠올리니 사타구니가 뻐근해졌으며, 의주의 체온을 떠올리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시운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저고리 매듭을 풀었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을 뱉으며 고의와 속곳도 한 번에 벗어 던졌다.
쿵.
눅눅한 여름의 공기가 유독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시운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우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의주야…… 의주야…….”
만져 다오. 만져 줘.
술을 마시니 별의별 욕구가 다 치밀었다. 음습하게 숨겨만 두었던 것이 혼자가 되니 빗장을 열고 들이닥쳤다.
어머니는 저를 낳다 죽고, 아버지는 조부의 병을 닮아 폐환에 걸려 죽었다. 아무리 사람을 살려도 그들은 자신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시운에게 남은 것은 고맙다는 그들의 한마디 말뿐. 물론 기뻤지만 그것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지만, 모두가 떠난 집 안을 보고 있으면 외로움에 사무치는 그였다.
그래서 의주가 찾아오는 것이 기꺼웠고, 의주와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의주…….”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운은 아버지를 잃은 뒤 눈앞이 막막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를 떠올렸다. 곁에 있어 줄 가까운 친족도 하나 없던. 이 넓디넓은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게 피부에 와 닿아 두려워졌던 나날들. 그렇다고 저도 명이 길지 않을 텐데, 누군가를 곁에 두었다가 이런 진창에 빠진 기분을 건네고 떠나고 싶진 않았던 시기. 양가감정에 괴로웠던 그날들이 두루마리 펼쳐지듯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혼자가 아닙니다.〉
식음도 미루던 그에게 찾아왔던 의주의 모습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난생처음으로 의주에게서 들은 공대 또한 방금 귓가에 울린 듯 선명했다.
〈제가 가족이지 않습니까.〉
의주의 품이 단단해지고 넓어졌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제 개똥 묻은 나뭇가지를 들고 쫓아오던 철없던 어린아이는 없다는 걸 알아 버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뜨거운 의주의 품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의주를…….
“하아.”
시운은 제 손으로 유륜을 문질렀다. 마음을 알고도 그렇게 고얀 말로 밀어내 놓고 이제 와 자신을 생각하며 수음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의주는 무어라 생각할까. 순식간에 딱딱해진 젖꼭지를 양 손가락으로 붙잡아 꾹 누르고 돌렸다. 따끔한 통증이 퍼지자 가슴에서부터 열이 쫙 하고 퍼지며 음부까지 닿았다.
꿀렁이며 남근이 튀어 오르자 그 뒤는 더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의주가 곁에 있는 것처럼 그의 손짓을 상상했다. 저와는 다르게 건강하게 근육 진 몸으로 제 위를 덮을 의주를.
‘벌려 보시지요.’
아, 의주다.
어째서일까 어디선가 의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운은 남근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엉덩이골 사이에 나 있는 구멍에 이르렀다. 골을 벌리고 입구를 슬슬 매만지다가, 이윽고 손가락을 집어넣으니 술기운에 어지러운 머리가 죄이듯 터질 것만 같았다. 생경한 느낌에 다리가 바르르 떨렸다.
습한 공기에 땀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몇 번이나 넣었다 뺐다고 찌걱찌걱하는 소리가 방 안을 타고 흘렀다. 난잡한 놈. 난잡한 새끼. 시운은 저 스스로를 욕보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귓가에 닿는 축축한 소리에 조금 더 깊숙이 넣자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아랫배가 빨래처럼 꽉꽉 조여 짜이자, 그는 고개를 젖히고 손가락을 하나에서 두 개로 늘렸다. 미끈거리는 점막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손등까지 들어갈 정도로 푹 집어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는데, 어디선가 기척이 났다.
멈춰서 그 기척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의주로 인해 시작된 이 모든 행위가 지나치게 색정적이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환자가 고통에 몸을 뒤틀 듯, 그는 열락에 몸을 뒤틀었다.
“아흑.”
감각을 좇다 보니 퍽, 하고 밀려들어 간 손가락에 내벽 어딘가가 세게 부딪혔다. 술기운 속에서도 치미는 고통에 작게 신음을 흘리니, 그제야 살짝 정신이 들었다. 한계까지 차올랐던 숨이 서서히 규칙적으로 내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웬 콩가루 묻힌 인절미가 눈에 들어왔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대며 일어난 그는 갑작스러운 개의 출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술과 쾌락에 취해 있는 탓이었다.
인절미는 어딘가 불편한지 저를 앞에 두고 고개를 좌우로 뒤틀며 낑낑대고 있었다. 어딘가 의주를 닮은 것도 같았다. 그에 가까이 다가간 시운은 무릎을 굽혀 개를 향해 내뱉었다.
“귀엽게 생겼구나.”
* * *
“그래, 그렇게 먹는 것이다.”
“찹찹!”
의주는 눈앞에 놓인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시운은 만족스러운 듯 상기된 얼굴로 의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맛이 있기는 한가 보구나.”
한데, 나는 네놈처럼 입이 까다로운 개는 또 처음 본다.
시운은 백숙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는 인절미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낑낑대는 것이 배가 고파 그런 건가 싶어 먹다 남은 것들을 대충 가져다주니 꼬리를 탕탕 바닥에 내려치며 성질을 내던 인절미는, 백숙을 내어 주니 기가 막히게 잘 먹어 치우고 있었다.
의주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며 속으로 핀잔을 주면서도 닭을 뜯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들르며 큰일을 치렀더니 허기가 여간 지는 것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인절미를 보면서 시운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얼마 전에 내방했던 무관 댁에서 덕분에 병환을 다 털어 내었다고 고맙다며 주고 간 귀한 암탉인데도 아까워하는 기색 따위 없었다.
“어쩌다 이곳까지 왔을꼬.”
시운은 무릎을 굽혀 인절미를 빤히 보았다. 그러나 과음의 여파로 여전히 머리가 어질어질한 탓에 뒤로 퍽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에 깜짝 놀란 의주가 먹던 닭도 던지고 쳐다보자 시운이 하하, 하며 웃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인절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하지 말거라.” 하고 읊조렸다. 시운은 별생각 없이 하고 있는 행위이건만 의주는 가만히 굳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운이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있지 않은가. 찌릿찌릿하게 털이 곤두서는 것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꼬리가 바짝 올라섰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운의 손바닥에 제 머리를 더 들이대며 그의 감촉을 즐기고 있는 의주를 향해 나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시운은 손을 옮겨 인절미의 턱을 붙잡아 올리고는 눈을 맞췄다. 의주는 하릴없이 또 열이 전신으로 뻗치는 걸 느껴야만 했다. 개가 되어 보는 시운도 너무 고왔다. 그에게서 나는 냄새도 마치 꽃향기 같았다. 만개한 꽃밭에 누워 있는 것처럼 강하게 풍겨 오는 향에 매료가 될 것만 같았다.
“너를 보고 있으니 그 아이가 생각이 나.”
의주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개인 의주가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의주는 너무나 뜻밖의 말에 놀란 나머지 고개를 팍 들었다가, 놀라는 시운 때문에 다시 그의 손바닥 위에 턱을 올렸다.
“그만큼 네가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나 또 한 번 내뱉어진 말에 결국 의주는 딸꾹질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제게 소름 끼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사랑스럽다니?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으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빌어먹을. 의주는 딸꾹, 딸꾹거리면서도 시운을 향한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이런, 밥을 너무 급하게 먹은 모양이구나.”
시운은 인절미의 등을 힘을 줘 몇 번 토닥이며 그 상태를 살폈다. 의주는 시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반응하는 제 몸이 얄궂고 짜증이 나면서도 그가 내뱉은 말로 인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그가 고민하던 그때.
“의원 나리 계십니까!”
당황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대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시운이 자리에서 벗어나 대문으로 향했지만, 의주는 고집스럽게 시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려온 목소리가 꼭 돌쇠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나 몸종이 이윽고 내뱉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 그도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나리! 혹시 우리, 우리 의주 도련님 여기 없으십니까?”
의주가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진 것이었다.
* * *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소름 끼친다는 사람을 이토록 절실하게 찾아다닌다니. 결국 밤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는 의주에, 그의 집안에서 사람을 풀었다. 순팔의 증언에 의해 의주가 시운을 찾아왔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거기서 얻어질 소득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옷가지만 남겨 두고 사라진 양반 도련님을 찾기 위해 온 동네가 떠들썩해졌지만 밤이 깊어지니 그마저도 사그라들었다. 산짐승들이 나다니는 시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모두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보자 하고 귀가를 했으나, 시운만은 예외였다.
“의주야!”
짐승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소리를 질러 대는 것인지.
“어디 있느냐!”
몇 시진이나 흘렀을까. 횃불 없이는 앞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저를 찾아 헤매는 시운을 쫓아다닌 지가.
찾아봤자 소용없단 말입니다.
“의주야!”
바로 옆에 있지 않습니까.
의주는 채 말이 되지 못한 소리를 내며 시운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다리가 비틀거리는 것이 체력도 한계에 치달은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허약한 자가 지방에 다녀온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때에 숲을 헤집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체 사람 가슴에 그리 모진 말까지 해 놓고 왜 이런단 말입니까. 의주는 시운의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풀썩.
전전긍긍하며 시운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풀숲 위에 주저앉았다. 놀란 의주는 캉! 하고 짖고는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의주야…….”
시운의 사색이 된 얼굴은 등롱의 붉은빛에 얼룩졌음에도 가려지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토록 절실해 보인단 말입니까. 의주는 당신이 그토록 찾는 제가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없음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나 때문이다.”
“낑……?”
“내가 그런 모진 소리를 해서…… 그래서…….”
기어이 시운의 눈에서 눈물이 도르륵 굴러떨어졌다. 그 순간 의주는 깨닫고야 말았다. 어떤 이유였든 시운이 제게 했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이 사내는 저를 아끼고 있다는 걸.
“네가 잘못되면…… 나는…… 나는 안 된단 말이다…….”
의주야.
울부짖듯 퍼지는 제 이름을 들으며 의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그의 여린 등을 껴안아 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럴 거면서 왜 그때는 그렇게 모진 말을 했었냐 무어라 화를 내고도 싶었다.
투둑, 투둑.
물기를 머금고 있던 것은 비를 내리려 함이었는지, 굵은 빗방울이 시운과 의주의 위에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한 방울이던 것이 기어이 장대비가 되어 둘을 적셔 갔다.
빛을 잃어 가는 등롱에 의주는 시운의 옷자락을 입에 물었다.
“왜…….”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잡아끌었다. 꽤 다부진 힘에 시운의 몸이 휙 끌렸다.
“왜 이러는 게냐. 아직……!”
시운이 무어라 울부짖든 말든 의주는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시운이 밤을 새워 이 숲을 다 뒤진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게 자신이었다. 이대로 두면 체력이 다해 쓰러지든 산짐승들에게 위협을 받든 위험에 노출될 터였다. 그러니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겨우 몸을 일으키는 시운에 의주는 이번에는 그의 바지 자락을 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둠에 사위가 잠식당했지만 개인 그에게 길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라 다행이었다.
“이것 놓거라……!”
시운이 힘을 주어 버틸 때마다 의주는 더 강하게 그의 바지 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나 참, 이러려고 백숙을 먹였나, 하며 어울리지 않는 핀잔을 늘어놓으면서.
시운을 끌어내느라 힘이 들던 것도 점차 수월해졌다. 찬비를 맞으니 정신이라도 들었는지, 아니면 작은 개가 저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운은 힘이 하나도 없는 걸음걸이로 인절미를 따랐다.
그렇게 힘겹게 집에 돌아와서도 시운은 한참을 방에 들지 못하고 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만 바라보았다. 그렇게라도 하면 의주가 돌아올까 싶은지 고집스러웠다.
의주는 집에 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그에 한숨을 내쉬었다. 개가 쉬는 한숨이란 저 스스로에게도 애달프게 들렸다. 저를 걱정하는 마음은 기꺼웠으나 바라보고 있는 건 퍽 힘겨운 것이었다.
젖은 옷조차 환복할 생각이 없는 듯한 시운에 의주는 또다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인절미에 시운은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몸을 움직이기는 했으나 걱정이 드리운 얼굴은 여전했다.
“내일을 기약하려면 쉬어야겠지…….”
쉬지 않고 낑낑거리는 인절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시운은 억지로 젖은 옷만 벗고 침소에 누웠다. 의주는 그런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부르르 떨어 빗물을 말리긴 했지만 여전히 털이 눅눅하게 젖은 상태였다. 짐승을 집 안에 들이는 법은 없는데도 시운은 인절미를 밀어내지도 나가라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제 곁에 눕히며 이불을 덮어 주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기만 한 시운의 얼굴을 보며 의주는 내일이면 꼭 이 사람을 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 이상한 일이 모두 끝나서 이 사람의 걱정도 끝났으면, 하고 답지 않게 진중한 바람을 떠올렸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뚫린 장지에 더 크고 선명하게 퍼지는 빗물 떨어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시운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의주의 눈이 어느덧 스르륵 감겼다.
* * *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비 내리는 소리는 여전히 요란한데, 어쩐지 주위가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을 켜 두고 잠에 들기는 했지만 어두운 건 매한가지라, 의주는 눈을 깜빡이며 어둠에 익숙해지려 했다.
그의 바로 앞에 눈을 감고 있는 시운의 얼굴이 보였다. 꽤 지친 듯한 것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시운을 마주하면서 깨어난 것이 퍽 설레었다. 살집 없는 얼굴에 선명히 드러난 광대와 턱 선을 따라 시선을 내리던 의주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시운의 뺨을 어루만졌다. 조금은 찬 체온이 손바닥 안에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구나. 티끌 하나 없는 어여쁜 복숭아를 만진 듯한 감촉에 의주는 손바닥을 한번 꾹 쥐었다 폈다.
“어?”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단 걸 느낀 의주가 제 손을 보았다. 길쭉한 발톱이 박힌 통통하던 검은 발바닥은 사라지고 살구색의 다섯 손가락이 길쭉하게 뻗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의 손이었다.
사람의 손이라니. 사람의 손이라니!
깜짝 놀란 의주는 벌떡 일어나 제 몸을 살폈다. 짧고 뚱뚱하기만 하던 팔다리와 짧아서 우습기만 하던 꼬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부위조차 일평생 보던 것처럼 우람하게 서 있는 것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게 하룻밤의 꿈이었나, 하고 의아해졌지만 그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제 옆에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에 들어 있는 시운이 있으니.
기쁨.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그리고 의주는 그대로 시운의 위에 올라탔다. 망설임도 없이 올라탄 것과는 다르게 그는 제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시운의 위로 올라타 버린 것이다.
좋다고 막 달려드는 꼴이라니, 하루 동안 개가 되더니 그새 그 본능에 물들어 버린 것일까. 자조적으로 웃던 의주는 이내 고개를 숙여 시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위에서 보니 더 예쁘다.
이마부터 주욱 시선을 내리니 도톰한 입술이 눈에 걸렸다. 의주가 그 입술에 다가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의주가 흘려보낸 번뇌의 개수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윽고 보드라운 입술 위에 제 것을 올렸을 때, 의주는 떠올렸다.
〈의주야,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그때의 대답을. 조막만 한 손을 펴 시운을 향해 자신 있게 내뱉었던 그 소망을.
〈시운의 남편이 되고 싶어!〉
시운의 입술을 핥으며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운의 감은 두 눈이 언제고 깨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게 집어넣으며 그의 턱을 벌렸다.
말캉한 입술 아래에 들어 있던 뜨거운 혀가 닿자, 의주는 제 혀로 그것 위를 쓱 훑었다. 그러자 시운의 살덩이는 피하듯 움츠러들었다가, 곧이어 의주의 것에 기대기 시작했다.
“으음.”
이 정도면 깰 만도 한데, 술을 마신 데다가 밤새 의주를 찾아다닌 탓인지 쉽게 깨어나지 않는 시운이었다.
“그렇게 걱정해 놓고, 잠은 잘 주무십니다.”
의주는 살포시 웃으며 시운의 살덩이를 깨물고 놓기를 반복했다. 사람이 되어 후각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시운에게서 풍기는 깨끗한 꽃 향만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움찔하는 시운의 미간을 힐끗 본 의주는 이번엔 그의 가는 목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읏!”
목에 드러난 물렁뼈를 잘근잘근 깨물며 뜨거운 호흡을 뱉자 그제야 깨어난 시운이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이제야 기침을 하셨습니까.”
“의주……?”
“찾아다니던 걸 찾으신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의주가 장난스럽게 웃었음에도 시운은 제 위에 옷 따위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있는 그 때문에 무슨 상황인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밤새 찾을 때는 없던 그가 그의 집도 아닌 제집에 나타났다니, 꿈인가 싶었다.
“대답은 몸으로 듣지요.”
눈을 마주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의주였다. 어제 보았던 시운의 수음이 아른거려서 더욱더 그랬다.
의주의 입술이 다시금 시운의 입술에 닿았다. 뻐끔거리던 입술이 그대로 삼켜지자 시운은 이렇다 할 반항도 못 한 채 휩쓸렸다. 의주는 제 모든 것을 쏟아 내겠다는 듯 시운의 안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입천장 깊숙한 곳까지 훑어 내고, 그다음에는 시운의 무딘 치열을 훑어 제 흔적을 남기려 애를 썼다.
두 사람의 입술은 당최 떨어질 줄을 몰랐고, 그 탓에 호흡은 점차 거칠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괴롭다거나 싫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의주는 좋아서, 시운과 닿았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상모라도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양반의 채신 따위 다 필요 없다. 시운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서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개가 되어 있는 동안 하지 못한 말이 그사이 얼마나 쌓였던가.
“그만…….”
시운이 고개를 틀었다. 당최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의주와 입을 맞췄다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의주가 제게 마음을 품었더라도 모질게 밀어내야 하는 것이 미천한 자신의 본분일 터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싫습니다.”
아니, 그러기가 싫었다.
“의주야!”
의주는 무언가 달랐다. 늘 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당당한 그라고는 해도, 지금은 무엇도 거리낄 게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시운과 제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
그러니 아무리 시운이 밀어내고 모진 말을 쏟아 낸다 해도 이제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음을 거절당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배우기는 글렀다.
의주는 시운의 중심부에 둔부를 맞추고 천천히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이에 시운의 옷이 가림막을 하고 있음에도 생경한 감촉이 서로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뭘 했다고 벌써 벌떡 올라선 시운의 기둥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 물건의 변화를 못 느낄 리 없는 시운은 황망해하며 틀었던 시선을 다시 의주에게 맞췄다.
“이제 안 믿습니다.”
의주는 열기 어린 얼굴로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목이 한여름에 우거지듯, 의주의 열기에 시운의 마음도 크기를 숨기지 못하고 무성해졌다.
의주는 언제나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보이기만 하던 미소가 지금은 능글맞은 온전한 사내의 것처럼 비쳤다.
시운은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주먹만 꼭 쥐었다. 의주는 흔들리는 시운의 두 동공을 바로 마주하며 그의 주먹 쥔 손을 끌어다 제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 행동에 어째서인지 시운은 인절미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인절미는 어디로 간 것일까. 분명 함께 잠을 청했는데, 그 똥강아지가 또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안 믿는다고.”
의주의 엄지가 시운의 입을 벌리니, 촉촉하게 젖은 붉은 혀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아시겠습니까.”
촛불 하나만 켜 둔 방 안, 아직은 어슴푸레한 새벽, 한여름 날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두 사람의 그림자가 포개어졌다.
의주의 혀가 입술을 적시는 그 순간 시운의 눈이 감겼다.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이 아이의 마음을, 제 마음을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하늘도 한 번쯤은 눈감아 주지 않을까. 어젯밤 이 아이를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웠는데, 한 번만…… 꿈이라 생각하고 욕심을 내면 안 될까.
“하아.”
시운이 고분고분해진 것을 알아챈 의주는 기꺼이 그의 입술을 물고 놓기를 반복했다. 혀와 혀를 섞어 저에게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게 했다. 시운이 밭은 숨을 내쉬니 의주는 살짝 고개를 떼어 복숭아 같던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의주야…… 흣!”
그러고는 혀로 쓱 핥았다. 타액이 축축한 길을 남긴 것을 엄지로 쓸고는 퍽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는 의주였다. 감촉만 복숭아 같은 줄 알았더니만 맛조차 같았다.
시운은 의주의 뜨거운 혀가 떨어져 나간 자리가 아쉬워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이제야 솔직해지시는 겁니까.”
의주의 목소리가 짓궂었다. 그에 시운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의주의 몸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늘 하고 싶던 게 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는 시운의 위에 의주가 올라 누웠다. 정확하게는 시운의 입에 귀두를 맞춘 채로.
“의, 의주야, 이, 이건……!”
“먹으십시오.”
그러기 위한 자세라고는 예상하긴 했지만 의주의 입에서 직접적인 말, 아니 명령이 나오자 시운의 귓가가 뜨거워졌다. 의주의 것을 먹는다. 시운은 어둠 속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는 의주의 남근을 보았다.
곧이어 허리를 내리는 의주에 시야에서 남근이 사라지고, 수북한 의주의 음모가 보였다가,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입 안으로 가득 들어차는 남근에 목구멍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평소 의주를 보며 제 마음을 부정할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춥, 추읍.
얼굴 위에 의주의 음모가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목구멍까지 선단이 치밀어 목젖이 울렸지만, 그만큼 타액도 줄줄 흘러넘쳤다. 발기가 끝난 줄 알았던 의주의 기둥이 이상하게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아…… 어쩝니까.”
의주는 제 아래에 깔려서 신음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꿀떡꿀떡 삼키는 시운이 기특했다.
“더 세게 빨아.”
저가 손아랫사람이라는 건 홀라당 까먹은, 욕망에 눈이 돌아간 의주는 오냐오냐 커 온 양반 도령답게 명령조로 시운을 대했다. 공대도 시운이 좋다 하기에 계속하던 것뿐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허리를 퉁기는 의주의 귀두에서 슬그머니 음수가 새어 나왔다. 시운은 입 안에 퍼지는 쌉싸름한 맛을 타액과 함께 삼켜 넘기고는 입술을 오므렸다 벌리며 의주의 기둥을 애무했다. 양손으로는 의주의 골반을 붙잡았다. 얼굴 위에 닿는 의주의 음모가 까끌거렸지만 의주의 흐트러진 호흡이 야살스러워 더 열심히 빨았다.
빨리고 있는 건 의주이건만 왜 제 아랫배가 이렇게 조이는 것인지.
“읍, 우읍, 읍!”
작정한 사람처럼 의주가 박아 넣는 바람에 뿌리 끝까지 삼킨 시운이 이번에야말로 격한 신음을 뱉었다. 의주의 골반을 붙잡고 있던 손으로 그를 밀어내기까지 했다. 눈물이 핑 돌다 못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또 밀어내?”
의주는 시운에게서 떨어져 다시 하복부에 몸을 내리고 앉았다. 그의 눈에는 이성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밝아져 오는 바깥에 그런 얼굴이 더 잘 보였다.
“농은.”
시운은 가볍게 대꾸했지만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의주는 몸을 움직여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말을 이었다. 다시금 시운이 좋아하는 말투로 돌아간 그였다.
“애정을 받는 데에만 익숙했던지라, 거절에는 영 숙맥이지 뭡니까.”
씁쓸하게도 느껴지는 목소리에 시운은 마음이 좋지 않아 의주에게서 시선을 떼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사랑받고 자란 귀한 아이니까. 어쩌면 제가 한 말이 그의 최초의 흉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생각도 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벌을 받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운의 다리 쪽에 자리를 잡은 의주는 그의 고의와 속곳을 차례로 벗기기 시작했다.
의주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애정을 당연시하기만 하고 한 번을 제대로 감사해했던 적이 없으니, 하늘이 제 복에 겨워 파렴치한 놈이라며 개가 되는 벌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개는 좀 아니지 않나…….”
속으로 중얼거렸어야 하는 말을 무심코 뱉어 버린 의주에, 시운이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하니 하늘에 울화가 치밉니다만.”
옷을 다 벗겨 낸 의주가 시운의 하얀 허벅다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여름날의 과일처럼 싱그럽게.
“받았던 애정은 그대로 드리려 합니다.”
당신에게.
“의주…… 읏!”
의주가 입속으로 시운의 선단을 머금었다. 찬 기운이 도는 몸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시운의 남근은 뜨겁기만 했다. 혀를 내밀어 기둥을 그대로 핥아 내리니, 시운의 굴곡이 그대로 혀끝에 느껴졌다.
어찌나 예민한지 아직 제대로 먹기도 전인데 시운은 자꾸만 바르작거렸다.
“의주, 의주야…….”
“어릴 적에는 그저 호기심인가 했는데.”
“으읏…… 흣!”
기둥을 핥던 혀를 내려, 두 방울을 동시에 머금자 시운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슬쩍 허벅다리에 손을 얹으니 닭살이 오소소 돋아나 있었다.
“깨달은 게 늦었던 것일 뿐, 어쩌면 첫눈에 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아, 의주……야, 잠…… 잠시……!”
탱글한 방울을 꽉 물어 터뜨릴 것처럼 장난질을 하던 의주가 혀로 그 아랫부분을 스윽스윽 문지르자, 남근이 꿀렁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음수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해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으나 형제들 덕에 본 건 많았기에 퍽 능숙하게 의주는 시운을 흥분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늘 즐거운 건, 우리 의원님뿐이었으니.”
장하지 않습니까?
의주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어 시운의 남근을 붙잡았다.
“아, 아읏, 으응…… 의…… 아읏!”
사정없이 흔드는 탓에 제 몸이 이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운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허리를 뒤틀고 다리를 바동거려도 의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손으로 시운의 저고리 안을 파고들었다. 빳빳하게 올라서 있는 유두를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꼬집자 어젯밤 보았던 시운의 수음이 떠올랐다.
“어제저녁 수음하셨을 때와 지금.”
“읏……?”
시운은 뜻을 알 수 없는 의주의 말에 밭은 숨을 내뱉으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 쪽이 더 좋으십니까?”
어제도 저를 생각하며 하신 겁니까? 원래 그렇게 음탕하신지요? 저를 마주하고 몇 번이나 혼자 쑤시셨습니까? 쉬지 않고 음담패설을 쏟아 내는 의주에 시운의 얼굴이 홍당무만큼 빨개졌다. 늘 백지장 같던 얼굴에 혈색이 도니 보기가 좋았다. 물론 의주의 눈엔 안 좋았던 때가 없지만.
“그만…… 읏!”
팟!
그 순간 시운의 귀두에서 탁한 액체가 터지듯 줄줄줄 터져 나왔다. 의주는 제 손 가득히 적시며 떨어져 내리는 음수를 보며 씩 웃었다.
“하아…… 하, 으…….”
시운은 의주의 손안에서 터져 버린 제 것이 부끄럽고 민망했으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환각 증세를 보이게 하는 약초를 잘못 먹었을 때처럼 그의 힘으로는 참아 내기 힘든 쾌락이 돌았다. 더위와 흥분으로 젖어 버린 몸에도 불쾌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이건 대답해 주시지요.”
언제부터 저를 연모하셨습니까?
물으며 손에 묻은 음수를 쪽 빨아 먹는 그에 시운의 남근이 다시 또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에 의주는 멈추지 않고 시운의 아랫입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조심스러움도 없는 움직임에 시운의 몸이 위로 세게 퉁겼다.
“의주야……!”
“아, 이것도 몸으로 듣기를 바라십니까?”
능청스럽게 웃은 의주가 손가락을 쑤셔 박다 빼기를 반복하자 찌걱이는 소리와 함께 미끈한 액체가 시운의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운은 다리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이 쾌락을 참아 내려 했지만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어느새 이렇게 커 버린 것인지. 도의주, 너란 아이는. 너란 사내는.
시운이 손을 뻗자 의주는 그걸 붙잡아 손바닥에 입을 촉 맞췄다 떼었다. 그러곤 놓지 않고 자연스럽게 깍지를 껴 잡았다.
“아…… 아……!”
손가락에 묻어나는 액체 덕분에 의주는 점점 더 수월하게 구멍을 넓힐 수 있었다. 손가락 개수가 차례로 늘어나고 마침내 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싶어졌을 때쯤, 의주가 선단을 구멍에 맞췄다.
“말해 주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읏……!”
쑤욱.
귀두가 조이는 구멍을 억지로 넓히며 들어가자, 굴곡진 기둥이 뒤따라 들어섰다. 꽉꽉 무는 게 벌써 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아니, 대답은 늦게 해 주시지요.”
“의주야…… 나는…… 읏!”
퍽, 퍽, 퍽. 매끄럽게 들어갔다 나오는 기둥에 두 사람 모두 등골을 따라 전율이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줘 더 꽉 맞물렸다. 의주는 고개를 숙여 제 것이 시운의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밖은 완전히 밝아진 상태였다. 쏟아져 내리던 비도 뚝 그친 지 오래였다.
“아아.”
아직 반밖에 넣지 않았는데도 신음이 그냥 새었다.
“잘도 흘리십니다.”
이렇게 질질 흘리는 걸 나만 볼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기쁜지.
“그만…… 못 해?”
자신을 내려다보며 흘리는 말에 시운은 깍지 낀 손으로 의주의 손등을 꾹 찔렀다. 그러자 의주는 장난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갈무리하고는 더 세게 허리를 퉁겼다.
“읏!”
단번에 끝까지 점령한 의주에 시운의 발끝이 꽉 오므라들었다. 배 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깊어서 또 눈물이 찔끔 흘렀다.
“내가.”
“으, 으응!”
“얼마나.”
“아, 아……!”
“고생을 했는데.”
의주는 시운의 다리 한쪽을 어깨에 올리고는 더 빠르게 허리 짓을 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더 고통스러운지라 그만두지도 속도를 늦추지도 않았다.
덕분에 시운은 흘러나오는 눈물의 짠맛을 느끼며 신음을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만하라니.”
“그, 말이…… 아니, 읏……!”
결국 버티기 힘들어진 시운이 발악을 하듯 상체를 들어 올려 의주의 목을 감싸 안았다. 어깨에 걸친 다리에 통증이 있을 법도 한데 지금은 다른 게 더 자극적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시운의 붉어진 얼굴이 어여뻤다. 땀이 흘러 젖은 머리칼이 음심을 더 자극시켰다. 의주는 이 상태 그대로 허리가 끊길 때까지 그에게 박아 넣고 싶다는 소망을 했다.
“아아아!”
그러나 시운이 또 한 번 음수를 뿌리며 사정하자, 구멍이 작정한 것처럼 조여들었다. 이번만큼은 의주도 참기가 어려웠다.
“시운…… 김시운.”
의주는 시운의 이름을 제 안에 새기듯 읊조리며 마지막으로 허리를 퉁겼다. 파앗, 시운의 안에 그득그득하게 터져 나가는 음수에 두 사람 모두 아, 아…… 하는 신음만 흘렸다. 여운에 시운이 몇 번 정도 더 허리 짓을 한 뒤 쑥, 하고 기다란 기둥을 빼내자 시운은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의주는 그의 등을 감싸 안고 위로 엎어졌다.
맥박, 의주의 맥박이 쿵쿵쿵 뛰고 있었다. 시운은 어제의 맥박보다 더 힘차게 뛰는 의주의 가슴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연모해 주어 고맙다. 이 마음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저 고맙다는 말만 떠올랐다.
의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운이 저를 미워하지 않아서, 혐오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개가 되지 않았더라면 괜한 자존심에 시운을 영영 찾아보지 않았을 자신이었기에 어제의 그 사달이 기껍게까지 느껴졌다.
그럼에도 다시는 개로 변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의주야.”
“……?”
“연모한다.”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진심에 의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또 섰습니다.”
“의주야!”
아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 의주에 시운도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집에 돌아가는 것도, 저 뚫린 장지문을 고치는 것도, 돌쇠 놈을 응징하는 것도.
이 행복을 맘껏 누린 뒤로 미뤄야지. 의주는 그렇게 결정하고 시운의 어여쁜 눈과 제 눈을 맞췄다.
저도 연모합니다, 한 번 더 배를 맞춰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그…… 일은 어떻게 아는 것이야……? 혹시 본 것이야?
하고 자그맣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뚫린 장지문 너머 녹음이 진 여름날에 퍼져 나갔다.
〈개꽃〉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