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대로 직진해서 내게 도착
BTD 공금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만 같았다.
동윤과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카페로 찾아온 그의 여동생 삼총사가 나를 보자마자 물고 뜯을 준비를 했다.
"언니, 결혼하면 직장은 계속 다닐 건가요?"
"언니, 우리 오빠가 사는 오피스텔에 거의 다 있어서 혼수로 할 것도 없으니까 좋겠어요."
"언니, 제사 음식은 할 줄 알아요?"
질문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어지러웠다.
하필이면 동윤이 잠시 카페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타난 그녀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온갖 말을 다 했다. 성질 같아서는 '너희도 여자면서 미쳤냐?' 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의 가족이니 우선은 참아야만 했다.
"동윤 오빠."
더욱 최악의 상황이 숨 쉴 여유도 없이 벌어졌다.
카페 근처에선 볼 수도 없던 경희가 이 순간만 기다린 것처럼 안에 들어서며 그를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쓴 그녀가 그의 여동생들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어머! 너희 다 너무 오랜만이다."
"경희 언니!"
네 명의 여자가 서로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은근슬쩍 일어서서 조리대 앞으로 걸어갔다. 이 순간에 오직 할 수 있는 거라곤 경희가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기를 바라는 거였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동윤 오빠가 결혼한다는 여자가 윤정 씨였어요?"
역시 예상대로 경희는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으며 이죽거렸다.
"어머! 언니도 우리 새언니랑 아는 사이에요?"
"그럼 다 같은 대학교에 다닌 건가?"
"아니지, 경희 언니가 윤정 씨라고 했잖아. 사회에서 알게 된 사이인 거 같은데,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동윤의 여동생 삼총사가 한마디씩 하며 나와 경희를 번갈아 쳐다봤다.
순간, 나를 보는 경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 망할 계집애가 장차 시누이가 될 애들 앞에서 개망신을 주려는 게 확실했다.
"우리 윤정 씨랑 사귀던 남자랑 바람이 났었어. 덕분에 내가 다시 싱글이 된 윤정 씨랑 만날 수 있던 거야."
갑자기 카페 문이 열리며 동윤이 들어오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들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자 그가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제 시누이들에게 평생 지고 가야만 하는 망신을 획득했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삼총사가 내가 아니라 경희를 쏘아봤다.
"바람이라니? 나, 요즘도 경호씨랑 만나. 우린 정말 사랑해서 만났던 거야."
경희가 당황해서 그런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경호의 것을 입에 물고 있다가 걸리고도 내게 곧 그가 쌀 테니 기다리라고 하던 그녀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뻔뻔해서 이번에도 크기가 뭐 어쩌니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언니, 그게 바람이지. 정말 실망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난 애인 있는 남자한테 껄떡거리는 년들은 다 잡아다가 가둬야 한다고 생각해. 정말 개소리도 정성껏 하네."
"이러니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는 거야. 언니, 우리 새언니에게 사과는 하기나 했어요?"
셋이 연이어 쏘아붙이자 경희가 벌떡 일어섰다.
"아니! 내가 사과를 왜 해? 저 여자가 멍청해서 우리 경호씨를 힘들게 하니까 나랑 만난 거야. 저 여자는 우리 경호씨의..."
"내가 그 남자의 거기가 작아서 헤어졌다고 말하려는 거면... 맞아."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가 힘주어 말하자 삼총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더욱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경희가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망신을 당한 김에 비굴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조리대를 지나가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당당히 마주 보고 섰다.
"왜? 네가 나 다니는 회사까지 쫓아와서 말했잖아. 나는 그 남자의 거기가 작아서 헤어졌어도 너는 그거까지 다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했잖아. 왜? 거기도 작은 남자가 네 성질 받아주기 싫다고 헤어지자고 하니까 기분 나빠? 어쩌지? 난 네 선배랑 결혼할 거라 그딴 남자는 공짜로 줘도 가지기 싫어."
"너, 너, 정말..."
비아냥거리며 말하자 경희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내 몸에 손만 닿아봐. 그 남자가 나한테 주먹으로 맞았다고 말하지 않았어? 너도 오늘 그 주먹맛을 보게 될 줄 알아."
그녀를 쏘아보며 말하자마자 삼총사가 우르르 달려들었다.
"나가!"
"당장 우리 앞에서 꺼져!"
"우리 새언니를 때리려고? 야! 너부터 우리 손에 죽어봐!"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경희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바닥을 펼쳐 마주 대고 툭툭 털었다. 조금 전까지도 앞으로 드센 시누이 세 명을 어떻게 상대하나 걱정이었는데 아무렇지 않아졌다.
"죽이진 않을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동윤이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전혀 걱정하지 않아요."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나한테 화낼 줄 알았는데..."
"내가 왜요? 아! 여동생이 셋이나 있다고 미리 말하지 않은 거요? 다들 건강하고 보기 좋네요."
"지금 비꼬는 거죠?"
"아뇨, 그나마 위로 누나가 셋 더 있지 않은 거로도 감사해요."
"비꼬는 거네요."
눈이 마주치자 우린 동시에 큰소리로 웃었다.
모든 게 완벽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았다. 내 곁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동윤이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가면 그만이다.
* * *
"아니야, 이건 아니야."
또 오피스텔 앞까지 찾아온 경호가 울먹거리며 매달렸다.
대체 이 지긋지긋한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걱정이었는데, 해결사가 예상외로 빨리 나타났다. 나도 경희를 보고 이렇게 반가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빠, 미쳤어? 나를 두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경희가 있는 힘껏 그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당겼다.
"아아악! 너, 이거 놓지 못해? 내가 너랑 끝이라고 했지? 신고하기 전에 당장 놔라!"
경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매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필이면 오피스텔 로비인 게 문제였지만 내가 얽혀 싸우는 게 아니라 그런지 창피하진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가 구경하는 사람인 것처럼 팔짱을 끼고 서서 그들을 빤히 쳐다봤다.
"신고? 그래, 신고해! 네 아이 임신한 여자가 감옥에 가면 꼴 좋겠다!"
경희가 잡고 있던 그의 머리채를 더욱 강하게 잡고 흔들었다.
"임신? 이게 또 어디에서 사기를 치는 거야? 야! 내가 우습냐? 내가 또 속을 거 같냐고!"
"믿지 못하겠으면 당장 병원에 같이 가! 가서 네 눈으로 확인하라고!"
"나, 너랑 못 살아. 죽어도 너랑 살기 싫어!"
한때는 둘이 좋아서 나한테 꺼지라고 하더니 지금은 서로가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어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돌아섰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경희가 가볍게 경호는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지이이잉.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려 멈춰 섰다.
"동윤 씨, 나 없이 혼자 카페에 있어서 심심해요?"
뒤에서 여전히 경호와 경희가 소란을 피우느라 시끄러웠지만 밝게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빨리 와요.]
"오늘 엄마네 간다고 했잖아요. 심심해도 조금만 더 참아요."
[아!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요. 다음엔 같이 가요.]
"늦게라도 갈 테니까 기다려요."
전화를 끊고 돌아보자 경호가 경희의 손을 잡아끌고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인연이 내가 아니라 경희였을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딱 어울려."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혼 준비 때문에 할 일이 많아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윤이 좋아하는 여행은 신혼여행으로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 일해야만 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생겼다.
"이제 왔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조금 전에 전화를 끊은 동윤이 앞에 서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은데 그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 장난을 왜 치냐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카페는 어떻게 하고 여기 있어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곧 신랑이 될 남자를 이렇게 계속 밖에 세워놓을 건 아니죠?"
나와 달리 동윤이 환하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품에 안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를 안는 그의 손길에 행복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눈앞의 행복 때문에 내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동윤 씨, 설마 카페 문을 수시로 닫는 게 습관은 아니죠?"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고 현관문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며 물었다.
"당연히 아니죠. 오늘은 우리 윤정 씨 집이 어떤지 궁금해서 왔어요. 윤정 씨야말로 설마 결혼 전까지 오지 못하게 하려던 건 아니죠?"
바로 옆에서 동윤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피곤해서 평소보다 더욱 정리정돈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지금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오면 경악 할 수도 있다. 앞으로 평생 같이 살게 될 여자의 위생개념에 대해 의심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우리 나가요. 그게 좋겠어요."
다시 휙 돌아서려고 하자마자 동윤이 손잡이를 당겼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에서 차라도 마셔야죠. 아! 윤정 씨, 커피는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시기로 약속한 건 기억하죠?"
"당연히 우리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기억하니까 나가요."
서둘러 그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에게 선물처럼 아기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매사에 진중한 줄 알았는데 그가 말해서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시댁까지 다 알게 되었다.
"우와! 대단해요."
동윤이 거실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인생 자체가 망신의 연속인지 바닥에 널려있는 속옷들까지 들키고 말았다. 그나마 그를 만나기 전에 맥주 캔이 나뒹굴 때보다는 괜찮았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이래요. 평소엔 이러지 않다고요. 내가 얼마나 깔끔한 여자인지 알죠?"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챙겨 세탁기에 넣었다.
아직 동윤이 설거짓거리가 쌓여있는 주방의 개수대는 보지 못해 억지로 소파에 앉히려 등을 떠밀었다. 간신히 그를 앉히고 냉장고를 열어 생수병을 꺼내 들었다.
"빨리 냉수 마시고 속 차려요.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알죠?"
생수병을 내밀자 동윤이 나를 당겨 안았다.
요즘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너무 강하게 안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는 게 보였다.
"우리 아기가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겠죠?"
동윤이 내 배에 귀를 대며 물었다.
"아빠는 몰라도 엄마는 엄청 열심히 사는 거 알겠죠. 이번 달 월급 받으면 그대로 저축해서 기저귀라도 맘껏 편하게 살 거예요."
그의 어깨를 밀어내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윤정 씨, 오늘만 봐줘요."
다시 동윤이 나를 안으려고 해서 옆에 나란히 앉아 생수병을 내밀었다.
그가 생수병을 들어 물을 마시더니 내 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의 숨결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키스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동윤 씨, 조심도 적당히 하는 게 어떨까요?"
허벅지에 손을 얹고 말하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알잖아요."
"알죠. 당연히 알죠. 그래도 우리 할 거는 좀 하는 게 어때요?"
이제 그에게 부끄러운 게 없었다.
점점 허벅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가 쓱 위로 올리자 거기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바지 지퍼를 내리려고 하자 그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곧바로 지퍼를 내리고 손을 안으로 넣었다.
"하아..."
동윤이 참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이건 내 손짓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둘만의 몸짓을 나누다가 참았으니 그도 이러는 게 당연했다. 팬티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자 귀두가 있는 부분이 젖기 시작했다. 팬티를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허으... 하아..."
혀를 내밀어 귀두를 쓱 핥자 동윤이 내 머리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입술을 벌려 귀두부터 뿌리 끝까지 입에 넣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이렇게라도 그를 느끼자 종일 쌓였던 피로가 잠시나마 잊혀졌다.
"하... 허으... 윤정 씨."
동윤이 나를 부르며 점점 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매끄러운 그의 페니스가 내 입을 오가며 우리가 같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입안 가득히 그의 따뜻한 숨결이 쏟아진 뒤에야 소파에 나란히 누웠다. 좀 좁기는 해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윤정 씨, 내가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죠?"
동윤이 뒤에서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요? 우리 아기가 태어나면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아쉬워요?"
마음에 걸리던 문제였는데 그가 먼저 말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아뇨, 늘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것만 같아서 여기저기 많이 떠돌아다녔어요. 말 그대로 뒤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워낙 집에서 뭐라고 해서 카페를 오픈한 거였어요. 솔직히 돈을 더 모아서 떠나려고 했어요. 당연히 윤정 씨를 보자마자 마음이 바뀐 거지만요."
동윤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넘쳐났다.
"기분은 좋은데 나 때문에 발목 잡혔다는 소리처럼도 들려요."
요즘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난 윤정 씨랑 우리 아기만 보면서 살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계속 직진했더니 윤정 씨에게 도착했어요."
동윤이 고개를 들어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 역시 떠돌다가 그가 있는 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대로 직진해서 내게 온 그와 일상의 행복을 꿈꾸며 사는 것, 그게 내게 남은 전부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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