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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려주고 싶은 마음 (1/6)

1. 돌려주고 싶은 마음

BTD 공금

"윤정아,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경호가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절대 헤어질 수 없다고 매달리던 나를 헌신짝처럼 버릴 때는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알았어도 그는 나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옆에서 떼어냈을 게 분명했다. 돈도 많고 얼굴도 반반한 여자에게 미쳐서 나 따위는 어떻게 버려도 괜찮았을 거다.

"경호씨, 밖에 비라도 내려?"

어이가 없어도 끓어오르는 분노는 참아지지 않았다.

"비? 갑자기 무슨 비? 날씨가 엄청 좋아."

경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카페 구석에 있는 자리라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내가 먼저 도착해서 잡은 자리였다. 서로 좋은 말이 오갈 게 없으니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망신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에게 매달리면서 받았던 거로 충분했다.

"원래 비가 내리기 전이나 내릴 때는 미친놈들이 돌아다니잖아. 지금 미친 거지? 아니면 이럴 수가 없지."

코웃음을 치고 몸을 뒤로 젖혔다.

경호가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그 여자에게 대차게 차이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나를 찾아와서 이딴 말을 지껄일 이유가 없었다.

"네가 이러는 게 당연해."

"알면 꺼져."

더는 화조차 내고 싶지도 않아 일어섰다.

영화나 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고, 나도 내가 그의 다리를 잡고 제발 버리지 말라고 매달리게 될 줄은 몰랐었다. 이제 그도 헛소리를 지껄여봐야 그때의 나처럼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윤정아, 이러지 말고 우리 앉아서 이성적으로 얘기하자. 너,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니잖아."

다급히 내 팔을 잡고 매달리는 경호의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나, 그런 사람이야. 누구 덕분에 그렇게 된 거는 알지?"

세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카페 밖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도 없던 밤이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진 뒤에야 원래의 나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가 내 앞에서 사랑받지도 못하는 주제에 냉큼 꺼지라고 했던 여자와 웃고 즐길 동안에 나는 그랬다.

"윤정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우리 정말 좋았잖아. 그건 그냥 정말 실수였어. 너도 실수하면서 살잖아? 나도 그랬던 거야. 그 나쁜..."

뒤따라온 경호가 앞을 막아섰다.

"나쁜 새끼는 너야. 몰랐어? 네가 그 뻔뻔한 년보다 더 나빠."

있는 힘껏 그를 옆으로 밀어내고 빠르게 걸어갔다.

더 구질구질하게 나오면 개망신이 뭔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 갈 기분도 아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양심도 없는 계집애에게 차이고 돌아온 거네. 쌤통이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면 속이 시원해서 날아갈 것만 같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경호와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남자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처음 알게 되었다. 두려우면서도 야릇한 흥분이 온몸을 감싸던 순간을 그와 같이했다. 무지막지하게 잔인한 말로 나를 버렸어도 그는 내 첫사랑이었다.

"구질구질한 기분 딱 질색이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멈춰 섰다.

경호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잔뜩 꾸미고 나왔는데 이대로 집에 가자니 좀 억울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큰 건물 사이에 있는 아담한 카페가 보였다. 밖에서 보기에도 조금 전에 경호와 만났던 카페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어서 오세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문대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담담히 말했다.

가식적으로 웃는 것보다 무표정하지만 어딘가 우수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괜찮았다. 앞머리가 살짝 눈을 가릴 것처럼 내려온 남자의 눈매가 날카로우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겼다.

"커피로... 아... 저기 오늘의 커피로 주세요."

남자를 빤히 보다가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괜히 이름도 복잡한 거를 골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을 느끼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이러는 게 편했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남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자리에 앉아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남자는 외모만 훌륭한 게 아니라 목소리도 근사했다. 느끼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와 만나는 여자는 다른 건 몰라도 눈은 피로하지 않을 거라 부러웠다.

"네, 감사합니다."

다시 카드를 받아들고 다소곳하게 말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커플의 세계에서 솔로로 돌아온 후부터 남자의 외모에 약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어른들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문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카페 안을 둘러 봤다.

"여행을 좋아하는 모양이네."

벽에 온갖 크기의 액자들이 걸려있는데 안에 담긴 사진이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도시의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물 앞에 남자가 서 있는 사진부터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곳들의 풍경까지 다양했다.

그러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의 옆을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욕을 하려다가 남자가 쟁반을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남자가 내 앞에 커피가 담긴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

"네, 그럴게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마자 남자가 돌아서려고 했다.

"저기..."

"네, 뭐 필요한 게 있으세요?"

"죄송한데 이 사진이요."

어색하게 웃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욕이 나오게 하는 사진을 손을 올려 가리켰다.

”혹시 경희랑 아는 분이세요?"

남자가 나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뇨! 사진이 너무 좋아서요!"

남자의 입에서 한때는 죽여 버리고 싶던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제 여자친구..."

"아! 네, 두 분이 잘 어울리겠네요."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질 것처럼 요동을 쳐서 간신히 말했다.

남자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들고 주문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사진을 노려봤다. 애인이 있다는 걸 뻔히 알고도 경호와 놀아났던 것도 모자라 내게 온갖 모욕적인 말을 했던 여 자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웃어? 웃음이 나와? 넌 죽었어."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고 커피를 마셨다.

"아! 뜨거워."

컵을 떨어트릴 뻔해서 간신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인상을 썼다.

고개를 돌리자 너무 소리가 컸는지 주문대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나를 봐서 눈이 마주쳤다. 저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남자를 만났으니 그녀가 경호를 버린 거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제 그녀가 내게 줬던 모욕을 그대로 돌려줄 차례였다.

* * *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카페에서 만난 남자로 가득 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연인인 여자였다. 잘못을 저지르면 하늘이 벌을 내릴 거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사진 속의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오늘도 오늘의 커피로 드릴까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가 나를 보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오동윤, 내가 퇴근하자마자 매일 카페를 찾아가며 알아낸 남자의 이름이다. 동윤은 이 카페의 주인이다.

"오늘은 사장님이 추천하는 커피로 마시려고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 그의 바리스타 솜씨가 좋아 매일 오는 척을 했다.

지금 나는 커피에 환장해서 맛있는 커피를 찾으면 계속 그 카페만 찾아가는 여자인 컨셉이다. 괜히 어설프게 굴었다가는 목적을 이루기는 고사하고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게 오늘의 커피인데..."

동윤이 수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단골손님이라는 판단이 섰는지 그가 내 앞에선 자주 미소를 보였다. 이럴 때일수록 그에게 반해 매일 오는 여자처럼 보이면 곤란하다. 그건 남자 얼굴이나 밝히는 여자가 되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럼 오늘도 그걸로 마셔야겠네요."

싱긋 웃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동윤이 카드를 받으려는 순간, 일부러 손을 움직여 그의 손과 내 손이 닿게 했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통해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차려야만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목울대가 심하게 꿀렁거렸다.

"어머!"

손에서 힘이 빠진 척을 하며 카드를 주문대 위에 떨어트렸다.

곧바로 동윤이 카드를 줍기 위해 손을 내밀자마자 나도 앞으로 뻗어 손이 맞닿았다. 잽싸게 다시 손을 올려 귀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며 싱긋 웃었다.

"여기요."

동윤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계산을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이 정도로 그가 내게 호감을 보일 리가 없다. 자연스러운 만남처럼 보이기 위해 카드를 받아들고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규칙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당연히 주문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다.

"오늘 커피는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동윤이 내 앞에 컵을 내려놓는 순간에 맞춰 가방에서 여행과 관련된 책을 꺼내놓았다.

여행하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나도 같은 관심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 카메라를 꺼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디 여행 가시려나 봐요?"

동윤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책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역시 남자는 자신과 관심 분야가 같으면 흥미를 느끼는 종족이다. 경호와 연애를 하며 깨달은 것들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관심만 많아요. 여자 혼자 여행을 하는 게 쉬운 세상은 아니잖아요."

컵을 들어 양손으로 감싸 잡고 테이블 위만 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죠. 그래도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긴 하죠."

"여행 좋아하세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옆에 서 있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당연히 좋아하죠."

동윤이 활짝 웃으며 벽에 걸린 사진들을 쭉 훑어봤다.

여태껏 볼 때마다 미소만 보이더니 여행 얘기가 나오자 눈빛까지 초롱초롱 빛났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니 최근에 여행을 다녀왔을 리가 없었다. 대리만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가 내 여행계획에 관심을 가지 는 게 당연했다.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아니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어디가 그나마 안전하면서도 좋을까요?"

그게 시작이었다.

일부러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대에 맞춰서 카페에 오는 내게 동윤은 여행과 관련된 얘기를 신나서 했다. 당연히 그러면서 그가 내 이름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그가 말하면 내가 한껏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대단하다는 식으로 추켜 세워주면 그가 좋아하는 게 티가 났다.

"일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동윤이 여행에서 겪은 일들을 말하는 거를 듣고 가방을 챙겨 들며 말했다.

"전혀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조만간 내가 밥이라도 사야겠어요. 동윤 씨 덕분에 가고 싶은 나라가 더 많아졌어요."

이쯤에서 카페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그를 만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밥은 내가 사야죠. 겁도 없이 카페를 차려놓고 갇혀 있는 것만 같아서 답답했는데, 윤정 씨 덕분에..."

"오늘 어때요?"

일부러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고 물었다.

동윤이 당황했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나 역시 시간을 끌었다가는 지금까지 공들인 게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음에 보자고 하네요. 그래서 물어본 건데 동윤 씨가 일이 있으면..."

"오늘은 일찍 카페 문을 닫으려고 했어요. 혹시 싫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말해요. 그래야 뭘 먹을지 정하기 좋죠."

동윤이 싱긋 웃으며 말하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전 뭐든 잘 먹어요. 동윤 씨야말로 피하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말해요."

다시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카페에서 나가자마자 이 근처에서 동윤이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술 몇 잔을 마시며 분위기를 띄우면 되었다. 무조건 칭찬하고, 무조건 그가 하는 말이 옳다고 얘기해주다가 자연스럽게 취한 척을 하면 되었다.

* * *

"아흐... 아... 왜 이렇게 급해?"

격하게 허리를 흔드는 경호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어흑... 하아아... 말 시키지 마. 쌀 거 같아."

"뭐? 벌써?"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텔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경호가 나를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려 팬티를 벗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바지만 내리고 힘이 들어간 페니스를 꺼내 들더니 곧바로 내 안에 넣으려고 했다.

"다리 좀 더 벌려."

경호가 눈을 감고 양손으로 내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아읏... 아... 아파... 왜 이래... 아프다니까..."

"금방 끝낼게."

"오늘 미쳤어? 왜 이래?"

어깨를 밀어내려고 하자마자 페니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문을 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호가 경희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할 때였다. 난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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