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화>
[Epilogue]
해가 바뀌며 그 겨울의 두 번째 눈이 내리던 날, 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양가 상견례가 없었던 건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의 의사가 존중된 결정이었다.
“야아, 5월의 신부라니! 진짜 기대된다. 응?”
눈이 소담하게 대지를 적시는 오후, 수민은 청첩장을 들고 방긋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한주혁의 한남동 집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의 고집으로, 신혼집이 리모델링이 완료되기 전까지 여기서 함께 지내기로 합의를 본 차였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진짜 잘됐다, 예서야. 아유, 내가 왜 눈물이 다 나냐…. 친정 언니도 아닌데.”
“친정 언니처럼 그동안 정말 잘 해주셨잖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수민 언니.”
“그런 말 마. 내가 잘해 준 게 뭐 있다고…. 널 친동생처럼 생각한 건 맞지만. 아 참. 그러고 보니 약사님, 결국 네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신 모양이야.”
“아… 그러셨군요.”
예서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선배의 퇴원과 동시에, 비행기에 실었던 짐과 함께 이 집으로 오게 되었을 때였다.
미국행이 불발된 것에 대해 미국의 고모네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줬던 친구들, 플랫폼과 출판사 사람들, 조수민에게 전했을 때 수민이 마침 보광동 소식을 듣고는 그녀에게 귀띔해준 바 있었다.
정우와 아내 최소라, 딸 지우는 결국 분가해 정우의 새 직장 근처로 이사를 나갔다. 이경은은 하필 새로 바뀐 건물주가 재건축 명목으로 약국 권리금도 주지 않고 퇴거 요청을 하는 바람에 꽤 곤란을 겪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의 소유주가 사정상 실거주를 하겠다고 집을 비워달라 요청까지 해서 더 난감한 상황이었던 듯했다.
“집이야 주인이 입주한다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약국은 사실 법적인 판례들이 있어서 끝까지 싸우면 승산은 있거든? 근데 법정 싸움이란 게 실제로 해보면 그리 녹록지가 않잖아. 시간도, 돈도 들어가고 장기전인데…. 그래서 그냥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합의 보고 다 정리해서 시골로 내려가시기로 했나 봐.”
“그렇군요. 그럼 약국은… 거기서라도 하시겠죠?”
“글쎄. 나도 직접 연락한 게 아니라서 거기까지는 모르겠어. 근데 내가 약사님 아래서 꽤 오래 일을 해봤잖아. 성격상 페이약사는 못 하실 텐데 말이야. 그렇다고 개국 자금이 넉넉한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귀향이 최선의 선택이셨겠지.”
“…….”
“정우네하곤 왕래가 없는 눈치야. 워낙 가까운 모자지간이었으니 정우가 제 처 몰래 따로 만날 수는 있겠지만. 지우 엄마가 성질이 보통이 아니더라구.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손녀가 여자애라고 구박하는데 어떤 엄마가 참겠어.”
둘이 점심을 마치고 온실 티룸에서 몇 시간째 얘기에 집중하는데 로비에서 벨이 울렸다. 예비 신랑이 일찍 귀가한 모양이었다.
“어머, 한 본부장님 오셨나 봐?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수민은 긴장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래전에 카페에서 그녀를 보던 눈빛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질투였었다. 친구고 동성이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예서를 저 혼자만 독점하고 싶어 하는 지독한 소유욕이었단 말이지.
“언니, 더 있다 가요! 선배도 반가워할 텐데 온 김에 저녁도 먹고….”
“아, 아냐. 생각해 보니까 저녁에 집 보러 온다는 사람들이 있었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때 온실 문이 열리고 한주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민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한껏 굳혔다가, 부드러운 미소에 조금 누그러졌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예서와 더 얘기하다 가시죠. 비서에게 댁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음. 괘, 괜찮아요. 실컷 놀았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어라? 저번하곤 좀 다르네?
위압감은 여전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적어도 그녀를 불청객으로 보는 느낌은 훨씬 덜했다. 그래도 역시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수민은 예서에게 점심 잘 먹었다고 인사하곤 티룸을 나왔다. 수행비서 중 하나가 그녀를 사무실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정중히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수민은 잠시 망설이다 이 호의까진 고맙게 받아들여도 되겠지, 생각하며 차에 올랐다.
수민이 탄 차가 떠나자마자 한주혁의 온기가 예서에게 바짝 와닿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정수리에 입술을 살짝 묻었다.
“재밌었어? 글은?”
“오늘치 아직 반도 못 끝냈어요. 이따 저녁 먹고 마저 써야 돼….”
그의 입술에 잡힌 뺨이 간지러워 예서가 설핏 웃었다.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는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아주 급한 거 아니면 내일 써. 나 회사 가고 없을 때. 응?”
“안 돼요. 꼭 그렇게 방해하더라.”
“방해? 너무한데. 방해꾼이 그렇게 서재까지 공들여 꾸며준 거야?”
예서는 반박하지 못하고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한주혁은 이제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있었다. 정원 뷰가 제일 근사한 2층, 그녀의 서재 겸 작업실은 본래 그의 재택 공간이었다.
하지만 예서의 희망 사항과 최적의 작업 동선 등을 고려해 완전히 그녀만의 작업 공간으로 뜯어고친 지 벌써 2주가 지나 있었다. 그녀의 소설이 재미있는지, 어떤지, 한 번도 의견을 말한 적은 없었지만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수차례 정독하기도 했다.
“가서 씻어요. 저녁 준비될 때까지 좀 쉬는 게… 아!”
“알았어. 이렇게 쉴게.”
어느새 그가 그녀를 제 무릎 위로 가볍게 안아 올려 앉혔다. 수민과 마주 앉았을 땐 크고 널찍했던 티룸이 어느새 비좁게 느껴졌다. 예서가 그의 품에서 내려오려고 바르작거렸지만 그럴수록 단단한 팔이 더 바짝 둘러와서 숨이 버거웠다.
“간지럽다고요, 진짜… 선배!”
둘이 하나로 엉켜서 낄낄대길 한참, 한주혁은 마지못해 그녀를 놓아주곤 티룸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손을 꼭 잡고 예비 신부의 귓불에 대고 뭐라 속삭이는 등 도무지 예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단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몇 주는 떨어져 있다 해후하는 것 같았다.
***
“흣!”
저녁 후 몇 번의 눈치싸움 끝에 다시 서재로 달아나기 직전, 문가에서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예서는 순식간에 한주혁의 단단한 거구와 문 사이에 짜부라질 듯 끼어 버렸다.
“안 돼요, 아직 할 일 남았다고 아까 그랬….”
“알았어. 충분히 시간 줄게, 우리 일부터 먼저….”
길고 집요한 손가락이 예서의 허벅지를 실내복 원피스 자락째 쓰다듬고 밀어 올리다 다리 사이에 파고들었다. 음부 입구는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검지와 중지가 얇은 레이스 천을 비집고 들어와 달아오른 살갗을 느른하게 비벼왔다.
“여긴 벌써 젖었잖아. …봐.”
“아! 그, 그만… 흣!”
손가락이 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감각에, 예서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등 뒤에서 끌어안는 그의 팔뚝이며 손등을 움켜쥔 손톱이 아플 지경이었다.
“선배, 하지 말… 하아. 아, 알았어요, 먼저 하….”
하아, 한주혁이 등 뒤에서 억눌린 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단번에 안아 들었다. 몸이 번쩍 위로 들리자 예서가 짧게 비명을 흘렸다. 이럴 때마다 제 몸이 한순간 깃털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은은한 스탠딩 조명 아래, 예서가 가장자리에 앉아 옷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그가 눈 깜짝할 새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아직 엉덩이에 걸친 바지 앞섶이 무서울 만큼 팽창해 있었다.
“도와줄게.”
“아니, 괜, 흣.”
한주혁이 그녀의 양 뺨을 부드럽게 모아쥐고 입술을 쪽 맞추더니 그대로 실내복 원피스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훌렁 벗겼다. 그 안의 꽃무늬 슬립과 브래지어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으…흣….”
예서가 아랫입술을 꼭 문 채 앓는 소리를 흘렸다. 어깨끈을 내리고 브래지어 훅을 풀었을 뿐인데도 속까지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어제도, 그 전날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그에게 보였건만 늘 새로운 수치심이 밀려와 주체할 수가 없다.
크고 따스한 손바닥이 공기 중에 드러난 가슴을 감싸 쥐고 살짝 힘을 주었다. 그 손짓에 호응하듯, 석류알처럼 도드라진 유두가 좀 더 단단해졌다. 한주혁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빳빳하게 선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살살 문질렀다.
“왜….”
응? 예서가 쾌감에 흐려진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왜 매일 더 커지는 것 같지. 너무 좋게.”
쿡, 실소를 터뜨리자 예서가 나무라듯 그를 노려보았다.
“그만 만져요, 아파….”
미안, 그가 고개 숙여 뾰족하게 선 유두를 달래듯 할짝였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가 흡사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 같았다.
하지만 예서는 그 모습은 처음일 뿐임을 경험상 잘 알았다. 침대 위에서만은 이내 본래의 한주혁으로 돌아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바람에, 다음날 제대로 거동을 못 할 때도 있었다.
“나, 내일 오전에 회의 있어. 한 번만 해요….”
“플랫폼 미팅?”
응, 예서가 살짝 밀어내듯 너른 어깨를 짚었다. 적당히 하라는 무언의 제지였지만 두 눈은 아까보다 더 음험해져 있었다.
“…갈 때 데려다줄게.”
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두 손으로 젖가슴을 감싸 쥐었다.
“아니. 한 비서님 있으니까 괜찮… 하, 읏!”
아래서 위로, 반죽하듯 천천히 주물러 올리던 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터뜨릴 것 같은 악력에 예서의 허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아파-”
“미안.”
손이 가슴을 받친 채 입술이, 뒤이어 뜨겁게 젖은 설단이 양쪽 젖꼭지를 번갈아 가며 희롱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