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주혁이 피식 웃었다. 그의 재킷 깃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똘망똘망 붉어진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눈이 사랑스러웠다. 흡사 주인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강아지 같았다.
깊은 안도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MBA 과정을 무리해서 1년 반 만에 마치고 돌아온 보람이 있었다.
민예서는 여전히 그에게 미쳐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주인을 엄마처럼 여기고, 한 몸처럼 딱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그 사실이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안겨주었다.
***
시동을 걸 여유도 없었다. 집에서 보내온 차를 주차장 한가운데 세워둔 채 정신없이 입부터 맞췄다.
서로의 혀가 맞닿다 못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얽혀들었다. 아주 잠깐 입술이 떨어졌을 때 예서가 하악, 숨을 몰아쉬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한주혁도 그래 보였지만, 그보다 자신이 더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장난치듯 그녀의 아랫입술을 간질간질 훑다가 살짝 물고 잡아당기길 한참, 혀가 다시 들어와 점막을 빨고 혀를 비벼왔다. 흣, 머리가 하얘지는 쾌감에 그의 목을 감은 두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한주혁이 방향을 바꿔가며 혀를 돌릴 때마다 양손으로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가 팔뚝을 짚었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깨는 부딪치면 부서질 듯 단단했고, 목울대며 머리카락에선 익숙한 숲 냄새가 흘렀다. 너무도 그리웠던 그만의 체취였다.
잠시 후 그가 입술을 떼고 그녀 위로 몸을 더 기울였다. 어느새 한 손이 스커트 자락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손가락이 무람없이 다리 사이를 더듬기 시작하자 예서의 허리가 용수철처럼 확 튀어 올랐다.
“아! 선, 선배, 여기서는….”
다급하게 팔뚝을 잡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차가 잠깐 흔들린 것도 같았다.
“괜찮아. 안 보여.”
물론 보이진 않을 것이다. 틴팅된 유리창이 바깥에서는 암막 커튼이나 다름없으니. 하지만 차체가 흔들리는 건 확실히 눈에 보일 텐데.
“흣! 아, 안….”
중지가 속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안쪽까지 밀려들었다. 익숙한 열기와 쾌감이었다. 단지, 너무 오랜만이라 이물감이 조금 더 강했다. 검지까지 가세하자 그 아찔한 충격은 두 배가 되었다.
“앗! 응, 선… 하윽!”
손가락 두 개가 느른하게 속살을 쑤시며 내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가 이상해지며 혀가 꼬여버린 듯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미치도록 좋았다. 손가락이 안쪽 깊숙이 파고들어 와 은밀한 내부를 들쑤시는 감촉, 내벽이 그의 살갗을 꽉 물고 수축되는 감각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 선… 으응….”
예서는 다리를 한껏 벌린 채 한 손은 그의 팔 언저리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단단한 허벅지에 손톱을 박았다. 하읏, 갈라진 성대로는 바람 빠진 비음만 흘렀다. 거친 숨결이 이내 명령으로 화해 예서의 귓전에 밀려들었다.
“옷, 올려 봐. 가슴 위로.”
그의 허벅지를 쥐어뜯던 손이 블라우스 자락을 들어 올렸다. 가슴에 와닿을 또 다른 쾌감을 몸이 먼저 예상한 듯, 손가락을 틀어쥔 내벽이 꿈틀거렸다. 그는 다리 사이에 파고든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하… 흐읏… 선배….”
한주혁이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굶주린 짐승처럼 게걸스럽고 사나웠지만, 천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빨아줬으면, 바라는 스스로가 미친 것 같았다. 혓바닥이 유두를 머금고 세차게 빨다가 혀끝으로 느리게 돌릴 때는 아흣, 몸이 바르르 떨리다 못해 허리가 퍼뜩 들렸다.
돌기가 잇새에 물리며 살짝 힘이 들어갔을 때 쾌락은 최고조에 달했다. 다른 쪽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고 터뜨릴 듯 힘을 주자 비음은 헐떡임으로, 그리고 다시 신음으로 변했다.
그가 다른 쪽 유두까지 입에 넣고 천천히 돌리다 씹었을 때 신음은 흐느낌이 되어 있었다. 다리 사이가 한껏 맞물리며 그의 손가락을 그대로 끊어낼 듯 힘이 들어갔다. 유두를 잡아당기던 손이 음부 위, 튀어나온 돌기를 꼬집듯 당길 때였다.
“아, 선배! 흐으, 응, 앗, 아아-”
요의 같은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다리 사이에서 불투명한 애액이 훅 튀어 올랐다.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강렬한 쾌감에 시야도 부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한주혁의 정수리가 보였다.
“선배…!”
하아, 하아, 밭은 호흡 속에 이가 악물렸다. 그는 질척하게 젖은 그녀의 치구와 음부, 허벅지 안쪽까지 혀로 일일이 핥으며 닦아내고 있었다.
“선배, 하지 마요…. 그만….”
한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혀로 제 입술을 천천히 핥는 미소가 너무 아찔하면서도 변태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 더 섹시하다고 느끼는 자신이 더 변태 같았다.
“그렇게 좋았어? 혼자 가버리고.”
“흐….”
수치심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한주혁이 양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예쁜 얼굴 가리지 마.”
눈물로 얼룩진 눈가며 뺨을 닦아주는 손길, 그녀의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제 입술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얼굴 여기저기 입을 맞추는 몸짓, 모든 게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하자. 응?”
“몰라요….”
그는 피식 웃으며 물티슈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속옷을 제 자리로 끌어올리고, 흐트러진 블라우스 리본까지 매주는 손길에 다시 눈물이 났다. 그가 정말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자 왜인지 가슴이 울컥했다.
“왜 또 울어.”
한주혁은 피식거리면서도 그녀의 눈가를 엄지로 훔쳤다.
“내가 와서 그렇게 좋아?”
예서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이젠 정말 어디 안 갈 거죠? 또 그렇게 며칠 말미 두고 훌쩍, 가버릴 일… 다신 없을 거죠?”
군 복무, MBA 과정…. 이제 다시는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불안이 둘 사이를 잠식해오는 것만 같았다.
“절대 없어. 약속해.”
“…….”
“그러게 내가 미국에 같이 가자고 했었잖아. 중간에 오라고도 했었고. 구청 계약직 끝났을 때도 그렇게 끈질기게 설득했는데 끝까지 한국에 있겠다고 고집한 건 너였어.”
“말했듯이 우린 아직 구두 약혼만 한 상태였고 공모전 준비 때문에 나도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쓸 수 있다지만….”
착각일까. 소설 얘기가 나오자 내내 밝던 그의 표정에 그늘이 지는 듯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네, 작년에 워낙 참여작이 많아서 올해는 아예 7월부터 시작하는 걸로 개최일을 늦췄으니까요. 심사 기간도 넉넉히 잡아서 두 달 정도…. 아무래도 9월 중에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래.”
그의 무감한 대답에 예서의 심장이 살짝 조여들었다. 아, 혹시 이번에도 떨어질까 걱정돼서 일부러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이번에는 조금 자신 있어요, 선배.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민망하지만…. 확실히 그 팀장님 조언대로 현대 판타지물이 저에게 더 맞았던 것도 같아요.”
“그렇구나. 잘됐어.”
그가 운전석에 똑바로 앉아 시동을 걸었다.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왜일까.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불쑥 충동이 일어났다.
“선배. 선배가 원래 소설은 안 읽는 거 알고 있지만….”
그때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한주혁의 휴대폰이었다. 업무 관련이었는지 그는 잠시 미간을 좁히고 화면에 집중하다 고개를 들었다.
“응? 미안. 뭐라고 했어?”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럼 이제 집에 가요. 내가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 중이시라니….”
예서는 애써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한주혁은 손수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주며 싱긋 웃었다.
“다음에 꼭 만들어줘. 전에 네가 직접 만들어 줬던 김밥이랑 샌드위치도 좋고. 엄청 맛있었는데 박성준 그 새끼 때문에 몇 개 못 먹었잖아.”
“아….”
예서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주혁은 제대 직전, 마지막 휴가 나왔을 때도 스타트업 매각 마무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일하는 틈틈이 그거라도 먹으라고, 외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 샐러드 도시락을 싸서 전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음식은 그가 방 안에서 장시간 화상회의를 하는 동안, 마침 오피스텔에 놀러 온 박성준의 위장으로 대부분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박성준이 그녀에게 우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예서야, 진짜 내가 살다가 그 새… 아니, 주혁이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다. 그것도 먹는 거에. 명품 가방이랑 옷은 슬쩍해도 아무 말 안 하면서 네 도시락 좀 먹었다고 어찌나 화를 내고 지랄을 하는지, 와! 난 진짜 네가 만든 줄도 모르고, 마침 배가 고파서 회의 끝내고 나오면 다시 시켜줄 생각으로 먹었는데 사람을 그렇게 잡도리질을 하고…. 진짜 서럽다, 서러워. 아무튼 너한테는 미안하다.
-아아…. 네… 괜찮아요, 성준 선배.
“김밥, 샌드위치보다 훨씬 더 좋은 거 해 줄게요. 저 요리 좋아해요. 외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배운 것들도 있고….”
“그래? 그럼 기대할게. 그래도 무리해서 하진 마. 너 힘든 건 싫으니까.”
그는 다정하게 덧붙이며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 예서도 마주 웃어 보였다. 그에게 물어보려던 말이 아직 뇌리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하지만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