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61)화 (62/124)

<61화>

“…싫어?”

“서, 선배. 나는….”

“나랑 결혼하는 거 싫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담담하게 물었다. 한 손으론 눈물 자국이 난 뺨을 어루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질해 주는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럴 린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싫다고 한다면 이렇게나 다정했던 손길은 완전히 달라지겠지.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빨라지며 숨결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주혁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는 재차 물었다.

“싫어?”

이번에도 시험이라면 시험일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

“아뇨.”

민예서가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좋아요.”

코맹맹이 소리였지만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명확한 어조였다.

“약혼해요.”

그의 팔 언저리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주혁의 입매에 느슨한 미소가 어렸다. 그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의식도 못 하면서 단단히 틀어쥔 그 손길이 너무도 좋았다.

“할게요, 약혼.”

민예서는 야무지게 덧붙였다.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만면에 가득했다.

“결혼도….”

그가 기다렸던 단 하나의 대답이었다. 주혁은 그녀를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결국 민예서가 이겼다. 돌아보면 늘 이긴 건 그녀였다. 조금 전까지 맛봤던 희열, 만족감과는 별개의 패배감이 내면 깊숙이 엄습해왔다. 결코 싫지 않은 감정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명백한 그의 패배였다. 비록 민예서는 모르고 있지만. 감정을 숨기지 않은 주제에 교제는 끈질기게 거부했던 그 첫해부터 지금까지.

어떻게든 이성을 잃지 않고 휘둘리지도 않고, 때로는 좆같은 개소리까지 지껄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스스로를 지키고자 애썼던 노력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대신… 이게 정말 끝이겠죠?”

민예서가 그의 가슴에 코를 묻은 채 물었다.

“이런 서프라이즈, 더는 싫어요.”

“이게 끝이야, 정말로. 맹세해.”

“이제 진짜 더는 못 할 것 같아요. 기다리는 거….”

“그럼 같이 가자.”

그녀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시험 따위가 아닌 진심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도 같이 가자고 했으면 됐을 텐데. 등신 새끼. 왜 그 생각은 못 한 건지.

“일단 무비자로 석 달이라도 와 있으면 어때? 미국 와 본 적 없으니까 홀가분하게 관광도 하고, 같이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소설 같은 거 쓰지 말고, 그냥 내 곁에 있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은 채 종용했다.

“그렇게 하자. 응?”

사슴 같은 두 눈이 한순간 반짝였다가 이내 스러졌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아직 기간제 계약 기간도 남아 있고, 여기서 할 일도 있고…. 나중에 결혼하고 기회 되면 가요. 정식으로.”

“그래. 어쩔 수 없지.”

주혁은 선선히 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더는 강요할 수가 없었다. 대신 혼인신고라도 미리 해두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또한 묵묵히 삼켰다.

둘은 현관 앞에서 그렇게 잠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채 분이 풀리지 않은 약혼녀를 달래 주고, 갑작스러운 약혼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던 말소리는 이내 다른 것으로 변해 갔다.

“아, 선… 흣…!”

실내가 온통 젖은 소리와 기꺼운 신음으로 가득 차는 동안, 창 너머로 그 해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엎드려.”

그 짧은 한마디에 예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저절로 움직이는 허리며 등줄기에 서늘한 전율이 오싹 돋아났다.

무의식적으로 밴 오만함 때문일까. 고압적인 명령이 아닌데도 그랬다. 다정하고 온화하다가도 침대 위에서만은 자주 드러나는 위압감은 늘 익숙하면서도, 평소의 그가 아닌 것 같아 긴장될 때도 있었다.

한주혁은 그녀의 등 뒤에 올라타 두 어깨를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주무르며 목덜미에 쪽, 입을 맞췄다. 흐읏, 베개에 기댄 두 팔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어느덧 긴장도 사라지고, 그 위압감과 부드러움이 혼재된 손길에 압도당했다.

“선배, 뭘….”

하지만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도 잠시, 그가 등 뒤에서 다리를 벌리자 깜짝 놀라 허리를 비틀었다. 생리 중이니 삽입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뀐 걸까.

“선배…?”

그의 손가락이 비부를 감싼 속옷 가장자리를 고리처럼 걸고 끌어내렸다. 엉덩이가 이내 맨 살갗을 드러내며 예서는 완전히 알몸이 되었다. 비부 사이로 탐폰 실이 살짝 비어져 나온 것만 평소와 달랐다.

“선… 흑!”

단단한 열기가 엉덩이 사이의 구멍을 천천히 비벼왔다. 그 뜨겁고 눅진한 감각에, 후방의 주름이 찌릿할 정도로 움찔거렸다. 두려움에 예서의 헐떡임이 커졌다.

설마, 거기 넣으려는 건 아니겠지.

“선배, 싫, 흣, 거긴 안, 흐으….”

“걱정 마. 이쪽으론 안 할 거니까.”

젖은 실소가 이어졌다.

“네가 원하지 않는 한.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몰라도….”

꼿꼿하게 발기한 성기가 장난치듯 구멍의 주름을 잠시 더 문지르고 치댔다가 그 아래로 내려왔다. 굵은 음경이 이제 다리 사이, 갈라진 틈에 바짝 기대 느른하게 비벼왔다.

“아! 핫, 으….”

예서가 아찔함에 고개를 베개 아래 수그렸다. 당장이라도 파고들 듯, 삽입 직전의 기묘한 전율이 전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음부 바깥을 그렇게 문지르길 한참, 그는 예서의 상체를 똑바로 세워 허리 양쪽을 움켜잡은 채 성기를 다리 사이에 대고 비볐다.

삽입할 듯, 삽입하지 않고 음부와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느낌이 저릿했다. 유사 성행위에 지나지 않는데도 실제로 관계를 하는 듯한 쾌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탐폰으로 가로막힌 속살 안쪽에서 뭔가 울컥, 터진 것도 같았다.

“아… 흐… 선, 선배….”

허벅지를 똑바로 세우고 시트에 무릎을 기댄 하체가 거꾸러질 것 같았다. 커다란 두 손이 허리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때 그의 한 손이 허리를 놓고 다리 사이로 뻗어왔다.

“앗! 흑! 아, 흑, 선, 선…!”

엄지와 검지가 음핵 돌기를 더듬어 꼬집듯 잡아당기자 예서의 허리가 펄쩍 튀어 올랐다. 생리 중이라 한층 더 예민해진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와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바랬다. 탐폰 안쪽에서 정말로 뭔가가 솟으며, 다리 사이로 애액과 섞인 선홍빛 방울이 뚝 떨어졌다.

숨을 들이켜며 바르작댔지만 한주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리 사이를 짓누르는 단단한 열기와 함께 그녀의 목덜미에 연신 습기를 일으키는 호흡이 느껴졌다.

“예서야….”

잔뜩 억눌린 부름이 신음 같았다. 넣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하는 음색이었다. 다음 순간, 그가 예서의 몸을 다시 침대에 똑바로 눕히고 가슴 위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자제하기 힘들었는지 굵은 목덜미에 핏대가 선연했다.

두 손이 여전히 제 손자국이 남아 있는 젖가슴을 쥐었다. 통통하게 살 오른 살갗을 손바닥 가득 감싸 쥐고 주무르길 한참, 입술을 가져가 돌기를 물고 혀로 할짝대는 내내 예서는 연신 밭은 신음만 흘렸다.

“아… 흐으….”

이제는 탐폰이 빠지든, 피가 시트에 묻든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슴을 애무하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넋이 나가 있었다. 정신없이 유두를 탐하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여기다 할게.”

가슴에 대고 한 발 빼겠다는 의미였다. 하필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생리가 며칠 일찍 터져 버렸다.

예서는 흐트러진 숨을 고르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려던 계획은 불발되었지만 이렇게라도 그와 몸을 맞대고 싶었다. 생리가 불규칙한 제 탓인 것만 같아서 그가 뭘 원하든, 무조건 그에 맞추고 따라주고 싶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주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입술에 길게 키스한 뒤 사납게 곧추선 성기를 가슴 사이에 묻는 몸짓이 성급했다.

예서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아버렸다. 날 것의 체취가 얼굴 위까지 진하게 풍겨왔다. 침대 헤드가 가볍게 벽을 찧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짐승의 것 같은 숨소리와 울음을 참는 듯한 신음, 젖은 살이 부딪치며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관능적인 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예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두 팔을 위로 올린 채 눈을 더 꼭 감아 버렸다.

그가 허리를 위아래로 놀릴 때마다 귀두가 턱 아래 가까이 닿았다가 멀어졌다 다시 다가오길 반복했다. 젖가슴 사이를 파고든 거대한 열감이 좀 더 단단해지는 것도 같았다.

침대가 벽을 더 빠르게 찧기 시작했다. 몇 번의 격한 신음 끝에, 크게 부풀어 오른 성기 끝에서 정액이 왈칵 터져 나왔다.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한주혁이 허리를 뒤로 뺐을 때는 미지근한 체액이 예서의 얼굴과 목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흐읏….”

예서가 눈도 뜨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체액이 타액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그 상태로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사정의 여운을 음미하듯, 한동안 그렇게 뒤얽힌 채 나란히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그의 성기를 입 속 가득 물고 있었다. 삽입하지 못하는 대신 입으로 해 주겠다고 먼저 나섰던 기억이 옛날 일처럼 아득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마찰과 들쑤심 끝에, 비대하게 부푼 성기는 그녀의 입천장 아래서 두 번째 절정을 맞았다. 이번에도 사정 직전 미리 빼낼 여유는 없었다.

콜록, 콜록, 밭은기침을 토하자 그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끔 비스듬히 안아주었다. 넓은 어깨 너머, 을씨년스럽게 춤추는 싸락눈이 보였다.

눈은 그 후로도 한참을 더 흩날렸다.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한 한 쌍을 축복하듯. 혹은 불길한 전조를 표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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