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그가 마지못해 혀를 빼고 입술을 떼어 냈다. 아쉬웠지만 더 확실한 쾌락으로 가기 위한 중단이었다.
“흣, 선배….”
민예서가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옷 속으로 파고들어 맨살을 더듬는 손을 밀어내려 애썼다.
“가요, 그만. 집에 가기로 했잖….”
“이제 나흘밖에 안 남았어.”
“아! 읏…!”
음험한 손가락이 속옷 위, 돌출된 부분을 꼬집듯 잡아당겼다. 어느새 팔이 뱀처럼 미끄러져 들어와 브래지어를 젖히고 속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못 볼 거야. 그러니까….”
“응! 흐읏….”
“지금 실컷 해야지.”
그가 한쪽 가슴의 유두를 잡아당기다 입술을 가져가 정신없이 빨았다. 촉, 촉, 혓바닥이 돌기를 스치는 소리가 음란하게 차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아! 선, 선배…!”
민예서는 도마 위의 물고기처럼 정신없이 파닥거렸다. 그가 가슴을 한참 동안 빨고 핥다가 마지못해 그녀를 놓아주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안전벨트를 매주는 손끝에서 부스스, 정전기가 일어났다.
“가자.”
“어, 어딜요?”
“오피스텔. 아니… 너무 멀어. 제일 가까운 호텔로 갈게.”
그가 시동을 걸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다디단 살 맛을 음미하듯 입술을 천천히 핥는 얼굴이 너무도 야해 보였다. 민예서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지만 차에서 내리겠다고 하진 않았다.
“어딜 봐. 왜 눈을 피해.”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 입매엔 웃음기라곤 없었다. 오직 폭발 직전의 흥분만이 가득했다. 민예서가 겁먹은 듯 움찔, 어깨를 떨자 그제야 눈매가 다시 부드럽게 변했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기곤 입술을 재차 맞췄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미안해. 잘못했어.”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기꺼이 입술을 열고 그의 혀를 재차 받아들이는 몸짓이 용서나 다름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키스가 영원처럼 계속되었다. 맞닿은 혀가 이 끝에 스칠 때마다 보드라운 감촉에 피가 들끓었다. 앞섶이 더 부풀어 오르며 열기에 통째로 잠식될 것만 같았다.
주혁은 입술을 떼고 나서도 그녀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머리칼에 코를 묻고 흥분을 달래려 했지만, 오히려 더 증폭시키는 역효과만 났다.
-나는 선배가 어느 정도로 내게 진심인지 모르겠어요. 날 좋아하고 헤어질 마음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선배를 좋아하는 만큼은 아닌 것 같아서….
앞으로도 민예서가 늘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조금은 불안해하고, 자기가 그를 더 좋아한다고 착각하면서 항상 그렇게 안달 내 주기를.
비뚤어진 갈망과 은밀한 욕구가 한데 얽혀 내면을 혼탁하게 어지럽혔다. 그는 조급한 손길로 차를 출발시켰다. 1초도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한 손은 그녀의 것과 깊숙이 깍지 낀 채였다. 손이나마 맞닿지 않으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다.
***
영원할 것 같던 겨울 끝에 드디어 개강을 맞았다. 각오했던 바였지만, 갑작스러운 CC 소식에 대한 여파는 예상보다 더 강했다.
교정 어디를 가든 시선이 따라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뒤통수도 내내 따끔거려 처음 두 달 정도는 어딜 가나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같은 과 동기들은 물론, 제일 친한 채린과 새은도 충격을 금치 못하고 마구 몰아붙였다.
“야, 진짜 서운하다. 민예서. 어떻게 우리한테까지 비밀로 할 수가 있어?”
“게다가 사귀자마자 선배가 군대가 버리고! 근데 차라리 잘 된 거 같아. 둘이 같이 다녔어 봐, 지금보다 더 이목이 집중됐을걸?”
“그래도 카투사라 다행이다. 평택이면 주말엔 만날 수 있잖아. 주말마다 만나지?”
“응? 어…. 근데 새은아, 아까 빌려달라 그랬던 노트 지금 줄게. 여기서부터 복사하면 될 거야.”
“오, 감사! 야, 뭐가 이렇게…. 한 번 빠졌다고 필기가 이렇게 많아?”
새은의 말에 예서는 멋쩍은 듯 얼버무리며 대화의 방향을 바꿨다. 사실 입영하고 두 달 조금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자대배치일에도 어른들이 오신다고 해서 갈 수 없었고, 신병 보호 기간 직후 첫 휴가 때도 일 때문에 만남이 여러 차례 불발된 까닭이었다. 평택의 험프리스 부대까지 일명 에스코트, 방문을 가려고 수차례 운을 떼기도 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카투사니 주말마다 볼 수 있다던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본인이 빠진 이후로는 스타트업 운영에 공백이 생겼다니 거기 대고 뭐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낙담과 실망을 홀로 삭혀야 하는 마음은 조금씩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일반 군에 복무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
혼자 열애 중인 듯한 허전함은 달이 바뀌어 4월 초입으로 넘어가도 변함이 없었다.
[선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안부 문자 보내요. 너무 연락이 없으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되니까 시간 될 때 짧게라도 답장을 줬으면 좋겠어요.]
문자를 썼다가 결국 뒤의 문장은 지우고 전송했다. 답장을 달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압박이나 떼를 쓰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도 이 정도 부탁은 괜찮지 않나…? 보통의 연인 사이에서는 충분히 할 법도 한 말인데.
하지만 작년 말의 대화가 떠올라 조심스러웠다.
-1월 3일부터는 한숨 돌릴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네, 그럴게요. 일단 지금은 일이 중요하니까 그것만 신경 쓰고…. 1월 3일 이후에 보는 걸로 해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다른 여자 같았으면 화내고 투정 부렸을 텐데. 일 때문인데도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워 피곤하게 구는 거… 그런 감정 소모도 내가 연애를 기피해 왔던 이유 중 하나였거든. 하지만 예서 넌 역시 다른 것 같아.
떼쓰고 피곤하게 하는 연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현명하고 속 깊은 여자친구가 되는 걸까. 보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볼 수 없나, 한마디 전하는 것조차 피로감을 안겨주진 않을까 수없이 고심해야 하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싶었다.
혹시… 선배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의혹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가끔 채린이나 새은에게 조언을 구해볼까, 서두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결국 털어놓진 못했다. 선배의 사적인 부분까지 드러내긴 조심스러웠고, 뭣보다 수민과 똑같은 조언을 하진 않을지 겁이 났다.
-그건 무심함을 넘어선 방치 아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업을 하면 여친 만날 시간이 그렇게까지 없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아… 역시 그렇죠? 근데 그 애 남친이 원래 엄청 바쁘긴 해서….
친구 얘기라고, 최대한 남 일인 척 심장을 졸이며 물어봤을 때였다.
-글쎄. 네 친구 커플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뭐라 평가하긴 어렵지만, 그 사연만 들으면 남자가 너무 별로인 듯. 그냥 잡아놓은 물고기 방치하는 딱 그건데? 처음에 사귄 것도 네 친구가 너무 좋아해서 만나기로 한 거고, 고백도 먼저 했다며.
잡아놓은 물고기 방치란 말이 가한 타격감은 꽤 컸다.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의견이었지만 도무지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의 상처는 며칠이 지나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과외를 마치고 집에 가는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어쩐지 눈물이 나서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터덜터덜 걸을 때였다. 알림음에 무심코 휴대폰을 본 순간 다리가 저절로 뚝 멈췄다.
[바빠? 이번 주말에 만날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예서는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 재빨리 자판을 두드렸다.
[이번 주말은 안 바빠요? 회사 일 괜찮아요?]
[바빠. 그래도 만난 지 오래됐잖아. 이번 주 금요일은 오피스텔 비어 있을 예정인데 거기로 올래? 비밀번호 그대로니까 미리 와 있어도 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방금 전까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먹먹했던 게 거짓말처럼, 막혔던 심장이 갑자기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네, 선배. 과외 끝나고 바로 가 있을게요.]
벤치에서 일어나자 정수리에 피가 몰렸다. 뛸 듯이 기쁜 나머지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석 달 만에 만나게 될 얼굴이 눈에 선했다. 역시 사진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했다.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직접 온기를 느껴보고 싶은 그리움을 덜어주는 데 턱도 없었다.
잡아둔 물고기 방치하는 격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던 수민의 말도 어느새 뇌리에서 소리 없이 증발해 있었다.
***
석 달 만에 보는 한주혁은 조금 야위어 있었다. 얼굴은 좀 더 갸름해 보였지만 체격은 어쩐 지 더 단단하고 커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더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아! 선, 선배! 흐읏….”
맨살에 부딪혀오는 근육과 힘으로 그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서, 소파에 앉아 있는 예서를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들다시피 그녀를 끌어안았다. 석 달 만의 회포를 한꺼번에 풀려는 것처럼, 정신없이 혀를 넣고 얽는 몸짓에선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정신이 들었을 땐 소파에 누워 알몸으로 헐떡이고 있었다. 제 흐트러진 신음과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숨소리가 한데 얽혀들어 젖은 열기를 자아냈다.
한 번 터진 봇물처럼 욕망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옷깃이 사납게 비벼지는 마찰음과 함께 귀두를 밀어 넣는 힘에 실린 욕망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하나로 들러붙은 두 몸뚱어리를 잠식해왔다.
“흣, 서, 선배…! 잠깐만….”
예서야, 애틋한 부름이 귓전을 스쳤다. 살과 살이 들러붙으며 찌걱거리는 소리까지 가세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대로 넋을 놓고 있다가는 정신이 아예 이상해질 것 같았다.
다리가 한껏 벌어지며 열에 달궈진 기둥이 구멍 깊숙이 박혀 들었다. 속살을 열어젖히고 좁은 내벽을 바짝 넓혀가는 힘에 숨이 막혔다. 그는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다시 삽입하는 대신, 그 상태로 허리를 올려 쳤다.
“아! 선배, 좀, 천, 천천히…! 흑!”
애원은 이내 신음으로 변했다. 콱콱 치받아오는 충격에 눈이 절로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