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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47)화 (48/124)

<47화>

예서의 두 손이 탄탄한 가슴을 어설프게 더듬었다. 손바닥에 와 닿는 단단한 근육의 열기가 무척 기분 좋았다. 손이 잔근육을 쓸고 매만지다 오똑 솟은 돌기와 유륜으로 향했다.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여길 괴롭히면 그도 저와 똑같은 기분이 될까? 조금 전까지 제 가슴을 마구 주무르고 물고 빨고 핥았던 것처럼 한다면 저도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을까?

예서의 손이 머릿속의 조종을 받듯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 안쪽으로 주혁의 한쪽 돌기를 살살 쓸다 손톱 끝으로 살며시 눌러보았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흣.”

그가 입술을 짓씹듯 물었다. 하지만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밭은 호흡에 묻어나왔다.

“너… 흐.”

여길 빨면 어떤 맛이 날까. 혹시 누구나 유두에선 단맛이 나는 건가? 그래서 선배도 내 걸 그렇게 빠는 걸까….

예서가 입술을 오므려 검붉은 선단을 입 속에 넣고 혀를 움직였다. 단맛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주혁 특유의 알싸한 체취가 났다. 돌기의 몰랑몰랑한 감촉도 기분 좋았다. 그가 제 것에 했듯 혀에 힘을 주고 씁, 빨아들이는 순간 어깨가 우악스럽게 잡혔다.

그가 눈에 핏발이 선 채 입술이 비틀려 있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화나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극도의 흥분이 느껴졌다.

“선배도… 기분 좋아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양손이 바위 같은 가슴에서 배로, 더 아래로 내려가 장골에서 멈췄다. 툭 튀어나온 뼈를 쓰다듬으며 허리를 뒤로 살짝 빼자 내벽에 숨어 있던 귀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두 손이 저도 모르게 성기 아래로 들어가 고환을 매만졌다. 거기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손바닥이 점점 위로 올라오며 어느덧 두 손이 발기한 음경 가운데를 받치고 있었다.

뜨겁고 부드러웠다. 불에 달군 벨벳처럼 보드랍고 단단한 살갗은 한쪽으로 끝을 기울인 채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었다.

무섭도록 씨근거리는 숨결에, 예서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주혁은 가슴을 들썩이며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집어삼킬 것 같은 눈인데도 증오나 미움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흘러넘칠 듯, 달뜬 욕망과 또 다른 감정만이 가득했다.

그 열렬하고 격렬한 감정을 뭐라고 칭해야 할까. 광기, 소유욕, 애욕, 뭐가 됐든 제정신은 아니었다. 지금 한주혁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그랬다.

“읏…!”

예서가 긴장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자 그의 목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한주혁이 미간을 좁히며 예서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그녀의 손을 제 좆기둥에서 떼어놓았다. 거칠진 않았지만 깨질 듯 살살 다루는 손길도 아니었다.

하아, 금방이라도 타액이 흘러내릴 듯 후끈한 입김에 예서가 겁먹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나로 얽힌 시선에 등골이 찌릿했다. 단지 눈을 맞춘 것만으로도 다리 사이가 홧홧하니 달궈지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며 입술이 재차 삼켜졌다. 한주혁이 그녀를 으스러져라 끌어안고 거칠게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맞붙은 상체에 이어, 그의 것이 다시 다리 사이로 진입하며 하체도 딱 맞물려 움직임을 재개했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아앙, 색정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흣! 아흑….”

성기가 단번에 끝까지 치받으며 내벽을 꽉 채웠다. 그는 허리를 밀어 올린 채 후퇴할 줄을 몰랐다. 더는 들어 올 데가 없을 때까지 막다른 곳까지 파고들었는데도, 더 들어 올 여지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귀두를 경부 앞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 선, 선배! 아파, 아파요…!”

예서가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듯, 그가 허리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미안해. 너무 흥분했어.”

그는 한참을 달래주고 난 뒤에야 허리를 느리게 쳐올렸다. 안쪽에 박혀 드는 움직임이 점점 거세고 빨라졌다. 하지만 아까처럼 아랫배까지 뚫어올 기세로 끝까지 눌러오진 않았다. 철썩, 철썩 맞부딪치는 충격과 리듬이 거듭될수록 쾌감도 점차 고양되고 있었다.

씨발. 엄청 조여.

평소 같지 않은 상스러운 말조차 싫지 않았다. 오히려 쾌락을 더 자극하듯 야한 울림을 자아내는 통에,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예서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히끅, 딸꾹질을 하듯 울먹이다 새된 교성을 올리길 반복했다. 그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가슴을 애무하거나 지분거릴 때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색색거리는 숨결이 잦아들고 끙끙 앓는 흐느낌이 허밍처럼 가늘어지면 어김없이 다시 허리에 힘을 주고 퍽, 퍽, 찔러댔다. 그럴 때마다 안에서 애액이 새어 나와 구멍 안을 흠뻑 적시는 속도도 더 빨라져 갔다.

하아, 하아, 헐떡임과 살이 철썩대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어느 순간 골반이 들리고 다리가 그의 어깨 뒤로 넘어가며, 빠듯하게 맞물린 접합부가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끝까지 들어찬 페니스가 완전히 제 안에 묻혀 보이지를 않았다.

그가 바짝 엎드렸던 허리를 세우며 좀 더 빠르게 움직이자 그제야 구멍을 들락거리는 살점이 보였다. 핏줄이 불거진 기둥은 삽입 전보다 더 짙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음경이 내벽을 푹 찔렀다가 뒤로 후퇴할 때마다, 내벽이 기둥에 찰싹 들러붙어 딸려 나왔다. 제 속살이 그의 것보다 훨씬 더 연해서 한눈에도 구별이 뚜렷했다. 말할 수 없이 음란한 광경에 예서가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살면서 저렇게 난잡하고 음탕한 데도, 멈추지 말았으면 바라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미친 것 같았다.

그의 아래 깔려 허리를 마주 흔드는 동작도, 목 깊은 곳에서 한숨처럼 끓어오르는 교음도, 한주혁의 목을 힘껏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두 손도. 모든 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리고 제 것을 욱여넣던 그가 어느덧 움직임을 멈췄다. 하, 짧은 탄식에 이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애틋하게 쓸어 넘기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괜찮아?”

괜찮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묻는 것 같았다.

“힘들어?”

응, 예서가 울먹거렸다. 움직임이 멎었는데도 안에 꽉 들어찬 압박감으로 숨이 가빴다.

“힘들어요. 그래도 처음만큼 아프진 않으니까….”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내뱉고 말았다.

“해요. 끝까지.”

그가 성대를 짓누르듯 하아, 한숨을 토해냈다. 살짝 찡그린 미간에서 다시 땀이 툭, 떨어졌다.

“넌 진짜….”

두 손이 그녀의 뺨을 감싸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예서가 혀를 잡힌 채 흐윽,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몸을 기울여 오는 통에 그의 것이 경부 앞, 오목한 스팟을 꾹 눌러왔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네가 없었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재미없고 좆같았을까.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속삭임에 예서가 그의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뭐라 대답할 틈은 없었다.

이어지는 철썩임, 격렬한 파동 직후 둘은 나란히 절정을 맞았다. 그는 길게 사정한 후에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품에 꼭 안았다. 세상에 오롯이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예서는 온전한 환희와 충만감 속에서 잠이 들었다.

***

둘은 그 후에도 위층에서 두 번 더, 절정을 맞았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두 번째 사랑의 여운은 몇 시간 뒤 충격과 혼란으로 바뀌었다.

“뭐라고요?”

예서는 포댓자루처럼 큰 그의 셔츠를 빌려 입고 젖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자정 넘어 위층 식탁에 마주 앉아, 그가 만든 시나몬 애플 티를 홀짝이고 있었다. 한주혁이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가 크리스마스 선물에 이어 새해 선물이라고 챙겨준 향수와 팔찌도 너무 근사했다. 특히 팔찌는 택을 떼어 버려 가격을 알 순 없었지만 느낌상 꽤 고가일 것 같았다.

“나 군대 가. 다음 주 월요일.”

너무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마치 오늘 날씨가 어떨 거라더라, 전하는 것처럼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선배, 방금 뭐라고….”

“그렇게 됐어. 미안해.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예서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머그잔이 흔들려 하마터면 차를 쏟을 뻔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사귀기로 한 지 오늘이 한 달째였다. 작년 12월 10일, 그가 고백을 하고 첫 키스를 나눈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전 불시에 첫 관계를 했고, 두 번째 사랑을 나눈 게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군대를 간다고요? 그것도 앞으로 일주일 뒤에.”

갑자기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잘은 몰라도 지원부터 입영 확정까지 적어도 몇 달은 걸리지 않나? 전시 상황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입영이 결정됐을 리가 없었다.

“언제 지원, 아니… 언제 확정된 거예요?”

“9월에 선발 지원해서 11월에 통과됐어.”

그가 잠깐 틈을 뒀다가 이어 말했다.

“그때는 너랑 이렇게 되기 전이었으니까. 사실 반쯤은 홧김에 저질러 버린 거야. 너 안 보려고, 다시 휴학하고 군대 가려고.”

너 학교에서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의 덧붙임에 예서가 잠깐 말을 잃었다. 그 정도로 제 감정을 부정하고 그녀를 외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보였건만, 새삼 놀라웠다.

“그럼 12월 초에 만났을 때 얘길 해줬어야죠.”

그렇다고 해도 뒤통수를 맞은 충격은 가시질 않았다. 11월에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던 거라면. 그럼 보안 프로젝트를 급하게 연초에 끝낸 것도 군대 때문이었나?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그때 알았든 지금 알았든 어차피 군대에 가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요? 이제 막 만나기 시작했는데.”

예서가 눈물 맺힌 눈가를 손등으로 비비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기껏 어렵게 시작했는데 1년 반을 꼬박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미리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없게끔 입영 며칠 전에나 말을 하다니.

“예서야, 잠깐만.”

그가 당황한 듯 가까이 다가섰다. 예서는 그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다시 눈가에 눈물이 어리며 속에서 복받쳤다.

“그날, 사귀자고 하면서 미리 알려줬어야죠. 도대체 왜 끝까지 말을 안 한 거예요? 내가 그것 때문에 거절할까 봐서…?”

그럴 리가 없었다. 슬프고 안타깝긴 했겠지만, 사귀기 전에 이미 결정된 것 때문에 사귀지 않겠다고 뭐라 할 리가. 난생처음 좋아하게 된 사람이고, 꼬박 1년 동안 가슴앓이해 온 대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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