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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42)화 (43/124)

<42화>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제 등을 휘감는 동시에, 안쪽 깊이 파고든 좆까지 꽉 조이고 있었다. 통째로 빨아들이듯, 있는 힘껏 물고 놓지 않는 내벽의 감촉이 미치도록 좋았다.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씨발.

들끓는 소유욕에 머리가 멍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도 더 가지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것으로 가득 채우고, 더럽히고, 민예서를 아예 통째로 삼키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이미 더 흐트러질 수 없을 만큼 무방비 상태였는데도 그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가 않았다.

젖은 시선을 들어 제 아래서 색색거리는 예서를 물끄러미 눈 속에 담았다. 너무 완벽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살굿빛으로 번들거리는 얼굴과 목 아래 쇄골, 제 손길 아래 붉게 물든 젖가슴과 육감적인 선을 그린 허리와 골반까지, 흠잡을 데 없이 예뻤다.

손을 골반 뒤로 돌려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허리를 더 세게 치받았다. 치구가 바짝 겹쳐지며, 이제 접합부에 보이는 건 맞물린 체모밖에 없었다.

쿵, 쿵, 침대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진동과 예서의 흐느낌, 개처럼 헐떡이는 제 숨소리가 혼재되어 귀가 멀 것 같았다. 귀가 멀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후회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왜 참았는지. 민예서의 안쪽이 이렇게 황홀할 줄 알았다면. 둘이 하는 좆질이 이렇듯 환장하게 좋을 줄 알았다면, 첫날 꼴리는 대로 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설득해 호텔에 데려와 밤새도록 안았겠지.

등신 새끼. 이렇게나 자제하지 못하고….

주혁은 상체를 바짝 기울여 예서의 상체를 품에 안았다. 그 상태로 허리를 더 깊숙이 쳐올리자 예서가 손톱을 세웠다. 제 등에 힘껏 찔러오는 따가운 아픔마저 짜릿했다. 박을 때마다 조금씩 더 높아지는 교성이 귀에 꿀처럼 들러붙고 있었다.

-선배. 나 어떡해요…. 너무 속상한데… 힘든데….

음성 메시지를 듣는 순간 바로 이성을 잃었다. 사귀게 되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이 무색하게, 막상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마음이 금세 약해지곤 했다.

그래서 첫 번째도 일, 둘째도 일, 세 번째나 네 번째 정도의 순위와 여유만을 민예서에게 할애할 작정이었다.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한에서만 만남을 이어가고 싶었다.

민예서를 좋아하는 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성과 감정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게끔 최대한 균형을 잘 지키는 절제에 있었다.

오늘만. 오늘까지만.

허리가 다시 출렁이며 침대 헤드가 벽을 찧었다. 지금만은 그 결심도 다 밀어놓고, 눈앞의 현실에만 몰입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민예서의 몸 안팎을 제 체취와 체액에 흠뻑 절여 통째로 삼키고 싶은 욕망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아, 선, 선배… 흣! 응!”

예서가 어느새 제 몸짓에 맞춰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예쁘게 솟은 가슴이 정신없이 출렁였고, 골반이 춤추듯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 완벽한 조합에 눈이 멀 것 같았다. 전신의 솜털이 쭈삣 서고 근육마다 경련을 일으키며 욱신거리고 있었다.

주혁은 예서의 골반을 들어 올려 다리를 양어깨로 넘기고 다시 짓쳐 들었다. 뭉툭한 귀두가 경부 앞까지 들어차는 전율감에 예서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선배, 너무 깊, 하아, 깊어-”

“천천히 할게….”

그의 것이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찔러 들었다. 하지만 타격감이 크지 않게끔, 이 악물고 속도를 한껏 줄였다.

예서가 아픈 건 싫었다. 처음부터 제 성에 차게 밀어붙여 버렸다간 부서져 버릴지도 몰랐다. 처음의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할까, 겁도 났다.

“예서야….”

예서야, 예서야. 그가 느리게 허리를 치대며 몇 번이고 그녀의 이름만을 속삭였다. 그 단어밖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고장 난 녹음기처럼 몇 번이고 예서만을 불러대고 있었다.

마지막 몇 번을 거세게 박는 동안, 이마와 목덜미의 핏줄이 선명하게 불거져 있었다. 끝내고 싶지 않은 아쉬움, 단번에 놓아 버리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결국 후자를 택했다.

“아아- 아, 흐으읏-”

절정 속, 짐승처럼 그르렁대는 제 신음이 예서의 새된 교성에 묻혔다. 그는 사정하기 직전에야 터질 듯 달아오른 좆기둥을 끄집어내 예서의 복부 위에 가져다 댔다. 정액을 흩뿌리자 매끄러운 상앗빛 배와 가슴 위까지 탁한 멍울이 여기저기 튀기 시작했다.

예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사지를 한껏 벌리고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얼굴이며 온몸이 온통 붉게 물든 나머지, 곳곳에 묻은 희멀건 체액이 무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주혁은 그녀의 옆에 쓰러지듯 엎드려 잠시 눈을 감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쾌락에 이가 저절로 갈렸다. 지극히 만족스러운 동시에,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예서를 끌어당겨 안았다.

반쯤 넋이 나간 예서는 스르르 얌전히 안겨 왔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거칠던 숨결이 잦아들며 고르게 변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긴 채 폭 잠들어 있었다.

심장이 뻐근하니 벅찼다. 주혁은 그녀의 이마 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얼굴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이제야 비로소 제 것이 된 것 같아 기뻤다. 동시에 불안했다.

그는 예서를 아기 새처럼 꼭 안고 있다가 제 몸에서 살며시 떼어놓고 욕실로 향했다. 온수 탭을 열어 욕조를 채울 동안,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혁은 물이 가득 채워지고 나서야 예서에게 돌아가 그녀를 살며시 안아 들었다. 적당히 데워진 욕조에 알몸을 내려놓고, 잔뜩 혹사당한 근육과 속살을 씻기는 동안에도 예서는 단 한 번을 깨지 않았다.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입가에 웃음이 어린 제 얼굴이 거울 너머 보였다. 미소가 천천히 걷혀갔다. 하지만 그녀를 부서질까 조심조심 씻기는 손길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

정신없이 잠에 취한 예서를 깨운 건 호텔 모닝콜이었다. 정확히는 애프터눈 콜이라고 해야겠지만.

-미리 예약된 룸서비스 점심을 준비해서 올려드리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 괜찮으실까요? 아니면 다른 시간이 편하시겠습니까?

“네? 아… 네, 지, 지금 보내주셔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대답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정오가 막 지나 있었다.

“세상에. 몇 시간을 잔 거야. 이렇게 낮이 다 되도록….”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섯 시간도 채 못 잔 것 같았다. 커튼 사이, 조그만 틈으로 탁한 겨울 하늘과 마천루 꼭대기가 보였다.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메모지와 쇼핑백, 상자가 놓여 있었다.

[예서야. 언제 깰지 모르겠지만 밥은 먹고 더 자라고 12시 룸서비스 시켜뒀어. 하룻밤 더 체크인 해뒀으니까 하루 더 쉬어도 되고. 일어나면 연락해.]

그 옆에는 피로 회복제와 새 속옷이 든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어떻게 속옷까지. 세심함과 민망함에 예서의 얼굴이 다시 발갛게 물들었다.

다시 보니 속옷뿐이 아니었다. 그 옆의 쇼퍼백에는 겨울 코트와 캐시미어 원피스도 있었다. 완전히 새것인 데다 꽤 비싼 브랜드 로고가 박힌 제품이었다. 예서는 깜짝 놀라 다시 휴대폰을 거머쥐었다.

[선배. 방금 일어났어요. 근데 코트랑 옷은 뭐예요?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답은 오래지 않아 날아왔다.

[그냥 입어. 어제 옷도 제대로 못 챙겨입고 나왔었잖아. 어차피 크리스마스 선물 고민하던 차에 내 맘대로 골랐어.]

[네? 하지만 전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실은 텀블러를 생각하긴 했었다. 금전적인 제약이 있긴 했지만, 그 덕분에 좋은 과외 자리도 얻고 했으니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샵에서 제일 비싼 아이템을 여럿 찜해두고 늦어도 25일 만나기 전에 사둘 생각이었는데.

[이미 받았잖아. 아주 큰 거.]

텍스트 위로 어쩐지 웃음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은 괜찮은 거지? 지금 잠깐 정신이 없어서 10분 뒤에 전화할게.]

문자는 거기서 끝났다. 예서는 핑크빛이 도는 원피스와 카멜색 코트를 번갈아 만져보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간밤의 일이 떠오르며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욕조에서 깨어나 한바탕 더 일을 치르던 중 기력이 소진해 기절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다리 사이도 찌릿했다. 예서는 시트를 들추고 뽀송뽀송하게 마른 알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랫배가 울긋불긋했고 그 아래 비부도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허리가 좀 욱신거릴 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침대 아래 카펫에 다리를 펴고 발을 딛는 순간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다리 전체가 돌처럼 뻐근했다. 욕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에 부쳤다. 샤워기 아래 서 있을 힘도 없어 욕조에 물을 받아 느릿느릿 씻는데 룸서비스가 도착하는 바람에 허겁지겁, 간신히 씻고 가운 차림으로 음식을 문 안으로 들이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모친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오전 중에 모친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한 번 와 있었다.

-어디니? 집에 왔어? 간밤엔 채린이네 간 거야?

“아, 아직요. 아직 다른 친구 집에…. 실은 몸이 안 좋아서 조금 있다 가려고요.”

죄책감이 가슴을 쿡 찔렀다. 예전에 몇 번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외박하곤 그녀와 밤새웠다고 거짓말해달라 청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제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 요즘 생리불순으로 피임약 먹더니 부작용 생겨 탈 난 거 아냐?

“그런 건 아니고 몸살 기운이 좀 있어요. 저녁 전에는 갈게요.”

-그래, 알았다.

휴대폰 너머로 손님을 맞는 조수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친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한주혁이 전화를 걸어왔다. 잠시 급한 불은 끈 모양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관계를 가진 후 제정신으로는 처음 하는 대화라고 생각하니 너무도 떨렸다. 조금 전의 문자와는 또 다른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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