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40)화 (41/124)

<40화>

두 시간 후, 의식이 돌아온 건 볼 언저리를 매만지는 감촉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뺨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떼어 내 귀 뒤쪽으로 넘기고 있었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에 목 깊은 곳에서 신음이 흘렀다.

“응….”

“미안. 깼어?”

착 가라앉은 음색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났다.

“선배, 지금 몇 시….”

“이제 6시야. 해도 안 떴으니까 더 자.”

겨우 두 시간 잤구나. 간신히 가늘게 벌어진 눈이 스르르 다시 감겼다. 그때 입술 위로 쪽,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눈이 저절로 확 떠졌다. 한주혁이 그녀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 미안.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더 안 괴롭힐게. 어서 자.”

“…….”

잠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지 마요….”

완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대범한 행동이 설명될 수가 없다.

“선배….”

그의 숨결과 얼굴이, 너른 어깨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두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고 힘을 주었다. 한주혁의 얼굴이 맥없이 끌려 내려와 예서의 코앞에서 멈췄다. 긴 속눈썹 아래 동공이 크게 열려 있었다. 그녀의 손길에 놀란 듯했다.

“예서….”

“잠깐만 안고 있을게요. …응?”

낮은 한숨이 흘렀다. 그는 제 육중한 무게가 그녀에게 실리지 않게끔 모로 엎드렸다. 그러고는 잠자코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에헤헤, 예서는 그제야 만족한 듯 웃으며 그를 폭 안았다. 커다란 곰 인형을 안은 아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힘들어 보였다. 그저 조용히 안겨있을 뿐인데도 숨소리가 더 커져 있었고 맥박도 빨라진 듯했다. 너무 세게 안아서 힘든가, 예서가 반쯤 잠에 취한 채 그의 등에 두른 팔 힘을 슬쩍 늦추려 할 때였다.

“안 되겠어.”

“……?”

“더는 못 버티겠다고.”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불편하게 만들… 흣!”

포옹을 풀어 그를 놓아주려던 예서의 목청이 단숨에 틀어막혔다. 한주혁의 혀가 그녀의 반쯤 벌린 입술 새를 파고들어 입 속을 거칠게 핥았다. 뒤이어 사로잡힌 혀마저 거세게 빨리며 돌기끼리 쓸리는 음란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한주혁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일으켜 이불을 덮은 예서의 몸 위로 올라와 있었다. 두꺼운 이불 사이로도 데일 듯 열기가 덮쳐왔다.

“흐… 읏….”

그의 혀가 입 안을 정신없이 유영하고 그녀의 것을 촉수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혀가 제 설단을 휘어감고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머릿속이 희뿌연 안개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한주혁이 혀를 얽은 상태에서 느릿느릿 이불을 젖히고 그녀의 배스가운을 더듬었다.

예서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제야 더는 못 버티겠다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순식간에 잠이 깨어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전히 꿈속 어딘가를 헤매는 듯 머릿속이 아득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맞닿은 허리에서 단단한 열기가 단전을 지그시 눌러왔다. 연이어 배스가운 안으로 차디찬 손이 불쑥 들어오며 봉긋한 맨살을 그러쥐었다. 예서가 그에게 혀를 빨린 채 허리를 바르작거렸다. 머리끝이 쭈삣 서는 감각에 숨이 가빴다.

촉, 소리와 함께 간신히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젖가슴을 쥐고 몽우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치대며 주무르는 손길은 그대로였다. 혀가 멀리 떨어진 대신, 이번에는 코앞에서 숨결이 얽히며 서로의 체취가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아, 흐, 읏! 응….”

예서의 신음이 잦아들었다. 한주혁이 가슴에서 손을 뗀 것이다. 두 눈이 저도 모르게 휘둥그레 커졌다. 그가 흐트러진 배스가운 앞섶을 바로 잡아줄 때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

“미안. 나도 모르게 선 넘을 뻔했어.”

그가 조금은 이성이 돌아온 듯, 다시 이불을 그녀의 턱 밑까지 덮어주며 사죄하듯 뇌까렸다.

“네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해놓고는 나도 모르게….”

“돼, 됐어요!”

예서가 이불을 확 젖히고 다시 멀어지려는 그를 붙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녀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나무토막처럼 단단한 손목을 있는 힘껏 그러쥐었다.

“됐어요, 준비.”

“…….”

“선배… 선배와….”

목이 꽉 잠겨 들어 쇳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용기를 쥐어짜내 간신히 말을 맺었다.

“선배랑 하고 싶어요.”

한주혁의 눈빛에서 뭔가 크게 일렁였다. 그는 그녀에게 손목이 잡힌 채 석상처럼 굳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예서가 재차 말했다.

“해요, 선배. 우리 이제… 연인이잖아요. 사귀잖아요.”

“정말 괜찮겠어?”

응응, 예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할 일이 아닌가. 처음이 무섭고 두렵긴 했지만,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보여줘야 한다는 게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와 진짜 연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훨씬 더 강했다.

“중간에 안 멈출 거야.”

“괜찮아요.”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괜찮아요. 힘들다고 안 할게요.”

“한 번으로 안 끝날 수도 있어. 내가 너무 오래 참아서.”

“괜찮…다니까요.”

대답하는 어미에서 조금씩 힘이 풀려갔다.

“그럼 오늘 하루 더 자고 내일 집에 가도 괜찮지? 오늘 너 못 걸을 거야. 아마도….”

예서의 눈꼬리가 움찔거렸다. 그 말에는 차마 괜찮다는 대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오늘 못 걸을 거라니? 예전에 봤던 성교육 매뉴얼 가이드에는 그런 주의사항이 없었는데? 처음 하면 그 정도로 아픈 건가?

“서… 선….”

예서는 말을 맺지 못했다. 그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입술을 재차 겹쳐왔다. 동시에 가운 허리띠가 손쉽게 풀리며 그의 상체가 벗은 가슴 위를 뭉근히 눌러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 속은 그의 혀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동시에, 몸은 실험대 위에 올려진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황홀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가 멈추지 않았으면 싶었다. 이대로 그와 밀착한 채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도 몸은 자꾸만 버둥거렸고 사지는 바르작댔다. 선배를 좋아하는 진심과 그의 이어지는 경고로 증폭된 두려움, 그 양가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예서의 공포를 읽었는지 한주혁이 입술을 떼고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자제해서 천천히 해 볼게, 최대한. 그러니까….”

“아! 응!”

하지만 달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두 손으론 유두를 꼬집고 잡아당기며 그렇게 부드럽게 얼러봤자, 귀에 들어 올 턱이 없다. 한주혁은 젖꼭지를 괴롭혀대던 손을 거두고 제 옷을 훌렁 벗어 던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 데리러 오기 전에 샤워해두길 잘했네. 사흘 만에.”

하, 스스로가 기특한 듯 짧게 웃는 치아가 하얗고 가지런했다. 그가 속옷째 바지까지 벗어 던지고 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예서가 숨을 훅 들이켰다.

발기한 음경을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포르노를 본 적은 있었다. 화면 속, 머리숱이 별로 없는 외국인 남자의 것은 꽤 크고 길었다. 하지만 거무튀튀한 색에다 그 위에 지저분하게 성긴 음모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았었다.

그의 것은 화면 속 배우의 것보다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칙칙했던 영상 속 남자의 색과는 달리, 혀처럼 매끄러운 선홍색에다 끄트머리가 처짐 없이 말끔하게 올라가 있었다. 쿠퍼액을 머금은 귀두 아래서부터 굵직한 핏줄이 실금처럼 꿈틀대긴 했지만 징그럽지는 않았다.

예서가 침을 꼴깍 삼켰다. 문제는 그 비대한 크기였다. 거부감이 일지는 않았지만 과연 제 몸에 들어갈 수 있을지 불안감이 앞섰다.

그는 예서의 허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지만 단번에 삽입하지 않았다. 대신, 벗기다 만 예서의 배스가운을 몸에서 완전히 벗겨낸 채 그녀의 알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방금까지 제 손이 희롱해대던 가슴을 지나 다리 사이에 남은 속옷 위를 보고 있었다.

“선배, 그만….”

수치심을 자극하는 시선에 예서가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리고 꼭 힘을 주었다. 한주혁의 한 손이 가볍게 다시 벌려놓기까진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맛보고 싶어. 오랜만에.”

“아, 안… 흣!”

그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단번에 혀를 비부 사이로 밀어 넣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저번에 차에서처럼, 이번엔 생리 기간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본격적으로 혀를 끝까지 밀어 넣고 점막을 제 입 속처럼 거세게 핥기 시작했다.

“아, 흑! 서, 선….”

혀가 느른하게 누워 속살을 쓸다가 어느 순간 위로 세워, 쑤시듯 찔러왔다. 그러다가도 예서가 숨이 넘어갈 듯 신음을 올리면 일부러 혓바닥을 빼내어 안달 나게 만들기도 했다. 빠져나온 설단은 어김없이 음핵을 물고 빨았다.

“아흣, 선, 아, 앗!”

고문이 따로 없었다. 쾌락이 점점 고조되며 배가 당기는 느낌에, 예서가 상체를 비틀며 그의 머리칼을 잡아 뜯었다. 숨을 헐떡이다 못해 잔기침이 나왔다. 혀로 빨고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이런데 본격적으로 삽입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이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서, 선배! 잠깐만요-”

안에서 주륵, 흘러내리는 느낌에 예서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생리가 아닌 애액이었다. 한주혁은 이번에도 꿀을 핥듯 혀를 날름거리며 비부에 쓱쓱 문질렀다. 예서가 이제는 아예 애원하듯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선배, 그냥 너, 넣… 응! 하….”

아앙! 듣기에도 색정적인 제 신음에 예서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한주혁이 그 손을 붙잡아 내리며 젖은 입술을 손등에 맞췄다.

“참지 말고 마음껏 소리 내.”

너무 듣기 좋으니까. 좋아서 돌아 버릴 것 같아.

그 덧붙임에 예서의 얼굴이 더 짙게 달아올랐다. 저야말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한주혁이 너무도 음란하고 변태 같아서, 그런데 그 모습에 속절없이 끌리는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