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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34)화 (35/124)

<34화>

일주일 뒤 예서는 부푸는 가슴을 안고 집을 나섰다. 사귀기로 한 날에도 밥 먹고 차를 마셨지만, 교제 이후 첫 데이트는 오늘이 아닐까.

두 사람은 공영주차장에서 만나 남산 아래 소월로의 베트남 쌀국숫집으로 향했다. 노란색 3층 집이 달빛을 받아 더 이국적으로 빛나는 가게는 이름난 맛집이라 했다.

하지만 식사를 끝내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어제에 이어, 이번에도 최인하와 연관된 이슈 때문이었다.

“최인하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할 거라고?”

귀를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더 말을 잇기도 전에 내면을 확실히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눈빛이기도 했다.

“네. 인하 오… 아니, 인하 선배는 방학 중에 바빠서 아저씨 회사에는 전혀 갈 일이 없을 거라고 했어요. 일주일 전 대화는 우리끼리만 알고 어른들은 모르시니까 그냥 없었던 걸로 하고 일하라고….”

“이미 과외 알아뒀어. 고모 아시는 분 집의 중학생 자매로.”

“네? 벌써요?”

방학 중에는 자매 둘 다 공부를 봐 주다가, 개강하면 언니만 집중적으로 하기로 대강 얘기가 끝난 듯했다. 게다가 과외비도 평균에 비해 꽤 높았다.

“그렇게 많이 받아도 될까요. 너무 과한데….”

당연히 최선을 다하겠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괜찮아. 충분히 그럴 만큼 여유가 있는 분들이고, 좋은 과외선생님 구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게다가 일주일에 세 번, 두 명을 차례대로 봐주게 되면 최인하의 아버지 회사 일을 병행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어떡하죠? 인하 선배 아버지께서도 제가 올 줄 알고 구직광고 다 내리셨다는데….”

“다시 올리시면 되지. 단순 사무직이면 괜찮은 인력이 넘칠 텐데.”

여상한 어조였지만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예서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난감했다. 기껏 알아봐 준 과외 자리를 사양하고 최인하의 부친 회사를 택한다면, 절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한주혁은 최인하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니, 필요 이상으로 날을 세운다는 표현이 더 걸맞지 않을까. 예서는 제 생각을 입 밖에 내진 않고 조심스럽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먼저 아저씨께 양해를 구한 다음 다시 얘기해도 될까요? 선배가 알아봐 준 건 너무 감사하지만, 순서상 그게 맞을 것 같아요. 내일 전화로 여쭤보고 선배에게도 바로….”

“그냥 과외만 해.”

여전히 온화한 어조였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나도 그렇게 하라고 하겠지만, 최인하잖아.”

“…….”

“난 네가 그 새… 그 사람과 엮이는 게 싫어. 너도 이해할 거라 생각해.”

이해했다. 만약 한주혁이, 그를 좋아하고 고백까지 한 같은 과 다른 여학생의 부모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아무리 한주혁이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신경 쓰이고 싫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예서는 더 버티지 않고 순순히 수긍했다.

“그럼 내일 연락해서 못 하겠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렇게 해.”

그가 한껏 누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런 무의미한 일로 감정 소모할 필요 없잖아. 피곤하게.”

“네…?”

피곤하게- 분명 그렇게 덧붙인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그 순간 한주혁이 갑자기 손을 뻗어오는 바람에 움찔, 고개를 젖혔다. 손가락이 입술 언저리를 부드럽게 훑고는 금세 떨어졌다.

“크림 묻었어.”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입술에 묻어 있던 크림 홍차 라떼의 흔적이 순식간에 그의 혀에 스며들고 있었다.

두근, 의도치 않은 그 색정적인 동작에 심장이 크게 널을 뛰었다. 예서가 재빨리 찻잔을 가져가 남은 라떼를 물처럼 들이켰다.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과는 달리 라떼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미치겠어, 어쩜 좋지.

***

“응….”

촉, 촉, 젖은 소리가 고적한 차 안을 휘감았다. 한주혁의 혓바닥 역시 그녀의 것을 바짝 감아왔다. 꿈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 것인지, 상대방의 것인지 구별이 안 될 만큼 감각이 아찔해지고 있었다. 혀가 한순간 자유롭게 놓였다. 그것도 잠시, 말랑한 감촉이 간지럽게 천장을 스치고 다시 공략해오는 순간 예서의 허리가 훅, 위로 튕겨올랐다.

한 손이 스웨터 안쪽으로 들어와 쇄골 아래를 지그시 눌러오고 있었다. 까끌까끌한 브래지어 레이스 위로 봉긋한 가슴선을 더듬던 손바닥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온기에 녹아들어 이내 뜨거워졌다. 다섯 손가락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열기가 맨살을 오롯이 장악해왔다.

예서가 깜짝 놀라 골반을 들썩이며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입술은 떨어졌지만 한쪽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쥔 손은 그대로였다.

“서, 선….”

입술과 입술 사이,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체액이 실 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 나서야 타액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싫어?”

엄지 안쪽이 어느새 단단해진 젖꼭지를 야릇하게 쓸었다.

“아! 흣….”

선배, 그렇게 만지면서 물으면 반칙이잖아요- 항변은 어느새 신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유두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하아, 악문 잇새로 가느다란 탄식이 두 갈래로 흘러나왔다. 그의 한숨은 폭발 직전의 욕망에 잠식된 것이었고, 그녀의 것은 자꾸만 도발되는 욕망을 억누르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으… 흐, 선… 앗! 아!”

돌기를 뭉근하게 쓸던 손가락이 끝을 세워 가운데를 쿡 찔러왔다. 곧이어 엄지 안쪽이 달래주듯, 찔린 돌기를 지그시 눌러왔다. 예서의 허리가 한 번 더 널을 뛰었다.

“그, 그만 해요… 아…흑…!”

느릿느릿 쓰다듬다, 꾹 찌르고 누르길 반복하는 희롱에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어졌다. 어떻게든 그의 도발을 멈추고자 손목을 움켜잡고 끌어내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에 더 힘을 실어 유두를 거세게 비벼오기 시작했다. 으, 흣, 예서의 목 깊은 곳에서 애끓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손으로 한 손도 이기지 못하는 힘의 차이에 무력감마저 들었다.

무력감은 이내 자괴감으로 변질되었다. 쾌락 쪽이 더 강렬한 나머지 실은 그가 계속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닌지, 그 속내를 한주혁 역시 간파하고 더 거칠게 변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정신없이 휘돌았다.

좌석이 뒤로 젖혀지는 느낌에 예서가 눈을 떴다. 가죽시트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가 되자, 그가 위로 올라타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이 몸 위를 뒤덮으며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보이는 것이라곤 각진 어깨 너머 차 천장밖에 없었다.

한주혁은 이제 다른 쪽 손까지 가세해, 그녀의 스웨터 자락을 브래지어째 목 위로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애무를 가하기 시작했다. 가슴 한가운데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양손이 도드라진 유두의 선단이 쓰리고 아프도록 치대다가 가슴에서 떨어졌다.

“아! 흣!”

손가락보다 더 뜨거운 혓바닥이 한쪽 젖꼭지를 순식간에 삼켰다. 춥, 추릅, 혀와 돌기, 입술이 서로 극렬하게 마찰하며 솟아나는 음란한 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 양쪽 가슴 중 한쪽만 쾌감의 불길에 휩쓸려 활활 타는 듯했다.

그는 짐승처럼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다른 쪽 유두도 빨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 서운할 일 없이 공평하게 예뻐해 주겠다는 듯, 혹은 괴롭혀주겠다는 듯 사나운 접촉이 계속되었다.

“아, 선, 흐… 으…! 응….”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그가 이를 세워 유두를 자근자근 물 때마다 온 신경 줄이 쭈삣 서며 눈앞에 부옇게 안개가 서리는 것 같았다.

처음이었다. 한주혁이 이 정도로 이성을 잃은 적이 있었나. 아무리 돌아봐도 이렇듯 날 것의 열정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황홀한 동시에 까닭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키스로 타액을 섞고 가슴을 애무하는 것조차 이 정도라면…! 끝까지 가게 됐을 때는 어느 정도일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찔했다.

“선….”

그대로 기절해 버릴 만큼 넋이 나가길 한참, 그가 마침내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무람없이 빨고 물던 혀에서 자유롭게 놓여나자, 쾌감 대신 헛헛함과 아릿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돌기가 뽑혀 나갈 만큼 격렬했던 설단과 떨어지자 오히려 밀려드는 허전함이라니. 다시금 고개를 치켜드는 자괴감에 예서가 눈을 감아 버렸다.

한주혁이 숨을 고르며 송글송글 땀이 맺힌 예서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숨을 고르고 나서야 의식이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거기서 끝났다고 믿었다. 그가 좌석을 똑바로 세워주길 기다렸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는 여전히 기울어진 좌석 위, 그녀의 앞에 있었다.

“앗, 선배! 지금 뭐 하는… 안 돼요!”

치마 레깅스 허릿단 옆으로 손이 불쑥 들어왔다. 쫙 펼친 손바닥이 순식간에 허리를 미끄러져 내려와 다리 사이를 더듬더니 속옷 한가운데를 지그시 눌러왔다.

몸 한가운데에 찌릿, 전율이 일어났다. 뭔가 솟아나는 느낌에 예서가 기겁하며 바르작댔지만 한주혁의 다른 손이 골반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선배…! 아, 안…!”

솟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솟아 흐르고 있었다. 그 손길에 즉각 반응하듯, 속옷 한가운데가 뜨뜻해지며 질척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예서야.”

그가 달래듯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깊은 동굴에서부터 울려 나오듯, 걷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 점철된 음성은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듣기 좋았다. 미친 것 같았다. 쇳소리처럼 까끌거리는 음색에마저 이렇듯 심장이 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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