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광고
“광고?”
“네. 그것이, ……그 사진을 보고 섭외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문도하의 손에 들려 있던 펜이 빠득 소리를 내며 바스러졌다. 목울대를 울릴 정도로 크게 침을 삼킨 실장이 눈치를 보며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끌어안는다. ‘그 사진’ 이야기가 나오면 문도하의 심기는 무척이나 나빠졌다.
그가 복귀할 당시 여론은 기대감에 무척이나 술렁였다. 폭주로 죽은 줄만 알았던 문도하가 찾아 헤매던 가이드까지 대동한 채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몬스터를 상대하러 바닷가로 향했다. 마치 영웅이나 다름없는 행보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비판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실종되기 직전의 그의 행적이 퍽 이상했던 데다가 하필이면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진 협회장까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게다가 가이드가 하필 이렇게 극적인 타이밍에 나타난 것도 수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썩 틀린 억측도 아니라고 실장은 생각했다.
일단 문도하의 힘은 어디까지나 그의 시야가 닿는 곳에 한정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몸속의 심장 판막을 염동력으로 건드렸다는 주장은 국민 클랜과 과학계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되었다.
문도하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실장만 겨우겨우 소름이 돋는 걸 참아 냈을 뿐이다. 타인의 몸속을 보지도 않고 공격할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염동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안 그래도 힘이 지나치다고 평가받는 문도하가 진짜 위험인물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사안이었다. 그냥 염동력보다도 완벽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너무 컸다. 문도하도 이걸 잘 알기에 지금껏 아닌 척 능력을 숨겨왔으리라.
가이드의 존재는 그가 폭주를 일으키기 전부터 은폐되어 있던 것이 맞았다. 그리고 실장은 문도하가 대통령이 나서서 읍소하기 전까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으리라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이서윤이 그와 함께 지내기로 한 후부터 문도하는 그야말로 그녀 말고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 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서윤처럼 강하고 바른 사람이 문도하의 가이드가 된 건 천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아직도, 그 사진이 돌아다니나?”
“……흠흠. 보이는 족족 통제에 나서고는 있습니다.”
문도하의 복귀에는 자연스럽게 국내외의 모든 이목이 쏠렸다. 아무리 엄중하게 현장 통제를 해도 목숨 걸고 뛰어드는 기자들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차라리 문도하가 열심히 싸우는 장면이 나갔으면 이토록 화를 내진 않았을 텐데, 기자가 잠복 끝에 찍는 데 성공한 건 하필 그가 이서윤과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가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발을 털어 주는 장면 말이다.
“마음에 안 들어.”
“이서윤 씨는 거의 안 나왔잖습니까. 괜찮을 겁니다.”
“안 괜찮아.”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한번 인터넷에 오른 사진을 완전히 없애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인물에 관한 건 말이다. 알음알음 개인이 공유하는 것까지 모두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자가 그래도 목숨은 아까웠는지 이서윤은 거의 안 나오도록 사진을 실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포커스는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발을 털어 주는 문도하에게 집중되었다.
사진이 대서특필된 날 기자가 있는 곳을 알아 오라던 그를 붙잡고 만류한 것도 실장이었다. 이서윤의 얼굴이 대놓고 나왔다면 아마 실장이 그 앞에 드러누웠어도 기자의 목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이서윤을 만난 이후로 문도하는 염동력으로 실장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멱살이 잡히는 일도 사라졌다. 바늘도 안 들어갈 만큼 단호하게 구는 사안도 실장이 울고불고 매달리면 일단 듣는 시늉이라도 해 줬다.
예전에도 실장에게는 그래도 눈곱만큼 관대한 문도하였으나 이래저래 더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클랜 내부에 쓸데없이 실장의 입지만 늘어나서 일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탐탁지는 않으시겠지만, 클랜 상층부에서는 도하 님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하. 한 번만 더 이따위 안건을 올리면 바닷가에 던져 주겠다고 전해.”
덕분에 이런 거지 같은 안건도 직접 들고 오게 되어버렸으니, 박남일 실장에게는 나날이 드높아지는 입지도 그저 불행이나 다름없었다.
“정중하게 거절하셨다고 전해 두겠습니다.”
클랜 상층부는 놀랍게도 이 광고에 무척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물론 실장은 이게 다 소용없는 짓인 걸 몇 차례나 말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무척 얌전해진 문도하의 태도 때문일까, 점점 애먼 기대를 안 가질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폭주의 위험이 사라진 사상 최강의 에스퍼. 그의 존재가 주는 위력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도시 하나에 달하는 해안선을 혼자서 방어할 수 있는 그의 존재는 인류에겐 보물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전의 차갑고 안하무인인 이미지를 이 기회에 던져 버리고 명실상부한 영웅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실장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저 사진 한 장이 시민들에게는 퍽 다정다감한 에스퍼의 모습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 의외의 모습에 문도하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었다. 이번 일도 그런 연인 컨셉이 필요한 광고였다. 단순한 상업 광고지만 이걸로 문도하를 떠본 후 차차 공익 광고까지 야무지게 써먹고자 하는 상층부의 속셈을 실장은 진즉에 눈치챘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이따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나 문도하는 기본적으로 득실을 잘 따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번 일로 괜찮은 이미지를 구축해둔다면 나쁠 것은 없는데,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거절하는 건 조금 의외이긴 했다.
제대로 그의 심중을 파악하기 위해 실장은 질문을 던졌다. 클랜 상부가 쓸데없는 짓을 더 하기 전에 명확하게 그의 의중을 알려주는 게 자신에게도 이로울 듯했다.
“지금 이서윤의 얼굴을 전국으로 내보내겠다고? 그 광고를 본 자들의 눈을 전부 뽑아도 된다면, 그렇게 해.”
“……거절하는 편이 좋겠군요.”
실장은 미련 없이 이번 안건은 폐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도 이서윤이 전면에 나서는 모든 일은 단번에 쳐내리라 결심하며. 상부에서 아무리 매달린다 하더라도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펼칠 계획이었다.
가이드에 관한 것이라면 에스퍼들이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건 흔한 일이다. 다만 문도하는 그 정도가 심했고, 심지어 비이성적 사고를 직접 관철할 힘마저 있었다.
“역시 안 되겠어.”
“뭐가 말씀이십니까.”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들기에 실장이 다시 태블릿을 꺼내 들며 물었다. 역시나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는 문도하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그 회사를 아예 없애 버려.”
오늘도 박남일 실장의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국민 클랜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 *
“왔어?”
“응. 내가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괜찮대도.”
집에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빛이 있다는 건 무척 포근한 기분이었다. 이서윤이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집 안에는 햇살이 비친다. 빼곡하게 파고드는 빛의 입자는 정신 차리면 어느새 그를 허공에 붕 띄워 놓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그래도 역시 그는 이서윤의 동선도 곁에서 빠짐없이 챙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의 안전에 무척 민감한 것을 떠나, 문도하는 그저 이서윤의 발이 되고 싶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것이 좋았기에.
다만 그런 희망과는 다르게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점점 많아지기만 했다. 오늘처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녀를 데리러 가지 못하는 날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친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별일 없었어?”
“나야 늘 그렇지. 오늘은 손님이 좀 많았네.”
“수상한 인물이 보이면, 바로 알려줘.”
“그래, 그래.”
마치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문도하는 현관문 앞에 마중을 나온 이서윤을 그러안았다. 그녀의 가는 허리에 팔을 두르는 것을 넘어 바싹 당기기까지 했다. 편한 차림인 그녀는 순순히 그의 품에 폭 안긴다. 가이딩에 한계를 두지 않은 후부터 둘은 종종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가에 키스했다. 간지럽다는 듯 이서윤이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면 놓치지 않고 볼에도 욕심껏 입술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낯간지러운 짓을 하면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그러쥐었다. 인사처럼 짧게 닿는 입술은 늘 부족했다.
“무슨 일 있었어?”
오늘따라 퍽 진득하게 들러붙는 그를 보며 이서윤이 물었다. 그가 평소보다도 더 애가 닳은 게 느껴진다는 것처럼.
그 걱정스러운 눈빛을 마시며 문도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단순히 환하게 빛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마 이서윤이 없다면 숨조차 쉬기 힘들 게 뻔했다.
“오늘.”
“응.”
운을 떼긴 했으나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시선을 회피하며 그는 고민에 빠진다. 과연 이서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 들어온 광고는 일단 거절해 버리긴 했으나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긴 해야 했다. 단순히 그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서윤에게도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지금은 어느 정도 너른 이해심을 보여 주지만, 본래 서윤은 이런 문제에 민감했다. 그러니 이건 미움받지 않기 위한 그의 발악과도 같았다.
“……우리 둘이 광고를 찍자는 연락이 왔어.”
“광고?”
“응.”
동그랗게 떠지는 눈이 퍽 귀여웠다. 참지 못하고 문도하는 다시 그녀의 눈썹 어림에 입을 맞춘다. 재차 고개를 틀었던 서윤이 빨리 뒷말을 이어보라는 듯 그의 양 볼을 붙잡아 고정했다.
“갑자기 웬 광고?”
“클랜에서는 이게 내 이전 이미지를 개선할 방안이라고 보는 모양이야.”
천천히 그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서윤을 고립시키는 건 쉬웠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혹여 나중에 그 사실을 그녀가 알았을 때, 그에게는 방어막이 없었다. 그녀가 그런 고립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래서 곁을 또 떠나고 싶어 한다면 문도하는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내릴 것이 뻔했으니까.
“그거 꼭 해야 해? 거절한 거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서윤은 눈가를 슬쩍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일단 클랜 쪽에서 그를 위해 준비한 일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거절했어.”
“그래. 난 그런 건 좀, ……별로라서.”
“응.”
왜 멋대로 행동했냐고 묻는다면 가져다 댈 변명은 몇 가지나 준비해두었다. 이서윤의 안전에 관한 문제나 그녀의 삼촌 일까지도. 그러나 서윤은 더 그를 추궁하지 않았고, 덧붙여 문도하의 걱정마저 일시에 불식시켜 주었다.
능력자들의 성향도 제각기라서 개중엔 가이드나 에스퍼라는 일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며 대중에 뽐내고 싶어 하는 자도 분명 있었다. 혹 서윤이 그런 유명세를 원한다면 그는 얼마든지 그걸 안겨 줄 수 있었다. 다만 나날이 커지는 걱정으로 신경이 바짝 말라갔겠지.
갑자기 몹시 그녀에게 입 맞추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쩍 고개를 숙여 입술로 다가갔다. 그가 먼저 행동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기에 서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긴 했어도 도망가진 않았다.
춥 닿은 입술이 아쉽게 떨어진다. 속눈썹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다. 서윤이 슬쩍 눈을 감았다. 문도하는 한 번 더 그녀에게 입 맞추었다. 이번엔, 조금 더 진하게.
슬쩍 파고드는 혀가 점점 집요하게 그녀를 자극했다. 서윤이 좋아하는 곳을 슬쩍슬쩍 문지르며 애를 태웠다. 한없이 주기만 할 것처럼 문지르다가도 서윤이 그걸 음미하려고 고개를 젖히면 모른 척 다른 부분을 또 자극한다.
애태우는 그의 행동에 서윤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들었다. 요즘 들어 이렇게 작정하고 물 흐르듯 유혹하는 문도하에게 도무지 배길 재간이 없었다.
“으응, 일단 씻고…….”
“씻고 왔어.”
오늘은 갑작스러운 지원 요청 때문에 급히 바닷가에 다녀와야 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멀끔하게 전투를 마쳤다. 하지만 파견되어 있던 것들이 하필 갓 각성하여 미숙한 에스퍼라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옷에 몬스터의 살점이 튀고 말았다.
아주 적은 양이라 그 냄새도 희미했지만, 서윤에게는 이따위 비린내를 조금도 맡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클랜에 돌아가자마자 몸을 아주 정갈하게 했다. 평소에는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클랜의 샤워실이 오늘만큼은 퍽 쓸모 있게 느껴진다.
결국 그는 서윤을 번쩍 들어 올린 채 그대로 침실로 직행했다.
* *
“앗, 흐응! 아…, 아……!”
“이서윤. 후…….”
침대 위로 흐드러진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문도하의 움직임에 따라 사납게 나풀거렸다. 어깨에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걸친 채 문도하는 성급하게도 허리를 움직인다. 미처 다 벗지도 못한 옷들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오늘따라 집요하게도 그녀를 파고드는 그가 버거웠는지 서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연신 튀어나오는 가쁜 숨은 올올이 문도하에게 닿으며 그를 한껏 자극할 뿐이었다.
손바닥에 닿는 그녀의 촉촉한 살결을 느끼고 나서야 살아 있음이 실감 났다. 벅찬 가슴은 이따금 도가 지나쳐 그의 갈비뼈를 흉포하게 부수며 튀어나올 듯 굴었다.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숨기려고 그는 일부러 그녀의 종아리를 물며 슬쩍 시선을 피한다.
“으응, 그마안……. 문도하……. 아…!”
몇 번이나 그녀의 안에 제 흔적을 남기고도 문도하는 멈출 줄 몰랐다. 다시금 불을 붙이려는 그의 행동에 기어코 그녀의 입에서는 자그마한 애원이 흘러나왔다. 살갗이 맞닿는 부분마다 쾌감이 피어오르곤 있지만, 체력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추어올리며 문도하는 달래듯 마구 옅은 입맞춤을 내려보냈다.
“흐, 응. 이래도, 안 돼……, 힘들어…….”
“정말?”
“정말…….”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에는 진득한 쾌감의 여운이 묻어 있다. 오늘따라 쉬이 그녀를 놓아주기가 아쉽다. 계속 이렇게 집요하게 굴면 미움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너그럽게 구는 서윤을 보면 자꾸 욕심이 머리를 쳐드는 것이다.
“안 돼? 응?”
“흐으응…….”
그녀가 좋아하는 귓가에 슬쩍 입 맞춘다. 퍽 버거워 보이는 건 사실이라 그녀가 편히 누울 수 있도록 한껏 들어 올렸던 다리도 살포시 내려 주었다.
다만 아쉬움을 표하듯 그녀의 안에 자리 잡고는 계속해서 그녀를 어루만진다. 서윤이 아주 자지러지곤 하는 등 쪽의 움푹 패인 골이나 가슴과 가슴 사이에 톡 튀어나온 갈비뼈 같은 곳들을.
결코 큰 자극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감질날 정도의 간지러운 애태움을 그녀에게 줄 뿐이다. 이미 한껏 쾌락에 푹 잠긴 몸에는 이 또한 치명적이었다.
“이서윤. 응?”
꼭 폭주 직전에 얼빠진 사람으로 돌아간 것처럼 문도하는 종종 침대에선 한껏 서윤에게 매달렸다. 그가 지금 무척이나 제정신이라는 건 누구보다 서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약해지는 것이다. 이토록 살갑게도 그녀를 유혹하는 문도하에게.
“조금만 더, 응?”
아예 그녀의 등을 그러안고 들어 올리면서 문도하가 코를 그녀의 턱 어림에 문질렀다. 허리가 움찔거리며 들썩이는 것이 무척이나 참고 있는 모양새다. 오늘따라 무척 체력이 버거울 정도로 달려드는 그를 보면서 서윤은 난감하게 눈꼬리를 내려트렸다.
자신이 이런 문도하의 태도에 제일 약하다는 걸 애석하게도 너무 일찌감치 들킨 모양이라 큰일이었다.
“……마지막이야. 정말로.”
“응.”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서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완전히 마주 앉은 자세가 되자 이어진 부분이 한층 깊게 그의 것을 머금었다. 그 선연한 감각이 곧 익숙한 쾌감이 되어 그녀를 잠식했다.
“이서윤. ……난 너 없으면 못 살아.”
절절할 정도의 감정이 말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좋아한다 따위의 말이 없어도 그의 진심은 때때로 이렇게 무겁게 서윤에게 전해졌다. 그녀 또한 대답하진 않았으나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두 팔은 그에게 활짝 뻗으면서.
그것만으로도 둘에겐 충분했다.
* *
“여기?”
“응. 살살……. 읏…….”
“……미안.”
“알면 됐어.”
새치름하게 말하긴 했으나 서윤은 문도하가 해주는 안마를 한참이나 내버려 두었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질 못했고, 덕분에 휴일은 이렇게 소파에서 안마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나른하게 몸이 풀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서윤은 멍하니 TV를 응시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선남선녀가 손에 음료를 하나씩 쥐며 마주 보는 광고가 나왔다. 익숙한 회사명을 보고 문도하는 이서윤 몰래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저거…….”
“……저 음료수?”
때마침 문도하의 손이 아주 나른하게 근육 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어서 그녀의 음색에도 만족이 묻어 나왔다. 묵묵하게 그 소리를 들으며 문도하는 안마에 집중했다. 이 순간조차 그에게는 큰 자극이었으나 철저하게 표정 관리를 했다. 오늘도 달려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미움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응. 맛있더라…….”
“……그래?”
지나가는 서윤의 칭찬에 문도하는 그저 여상히 대꾸할 뿐이었다.
나른한 오전은 경쾌한 광고 음악과는 다르게 느릿하게 흘러만 갔다.
* *
며칠 뒤. 퇴근 후 씻고 나온 서윤은 갈증을 느끼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문도하는 오늘도 급한 일이 있어서 바닷가로 파견을 나간 상태였다.
최근 들어 새로 각성한 에스퍼들이 주축이 되어 몬스터 웨이브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단기간에 그들의 실전 경험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했다. 다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종종 문도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곤 했다. 그런 돌발 상황에 어설프게 대응했다가 몬스터가 한 마리라도 도심으로 뛰어든다면 피해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행여 다치지는 않을지, 그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알면서도 서윤은 습관적인 걱정을 했다. 오늘 돌아온다면 가이딩이 필요하지 않은지 면밀히 그를 살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마실 것이나 찾아볼까 하고 연 냉장고에는 한 종류의 음료수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응? 실장님이 이걸 왜 이렇게 많이 사셨지?”
그녀가 맛있다고 한 음료수였으나 정작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 문도하의 뛰어난 안마 실력 덕에 가물가물하게 보고 있던 TV 앞에서 까무룩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가 선호하는 음료수였기에 서윤은 선뜻 음료를 집어 들었다.
소파에 앉아 문도하를 기다리는 일이 퍽 익숙해지고 있었다.
<가이드의 우울>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