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4)
“으음…, 흡…!”
“하……, 입, 벌려.”
짐승의 울음 같은 문도하의 경고에 눈물 섞인 서윤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문도하의 욕망은 한없이 용솟음칠 뿐이다.
맹랑하게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거부하던 눈빛에 무척 화가 났다. 이유까지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저 좀 더 그녀를 고분고분히 만들어야겠다는 갈급한 판단만 들었을 뿐.
서윤을 제게 종속시키려는 문도하의 노력은 이렇게 중간중간 베푸는 보상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걸 처음부터 맹렬히 거부하니 이상하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터미널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서윤의 행적까지 겹치자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물질이 싫다면, 몸에 새겨 주어야겠지.
그저 가이딩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던 교접이었다. 하지만 서윤이 손에 남는 유형의 물질은 싫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가이딩을 그저 문도하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거슬렸다.
“아, 앗, 그만, 아……!”
서윤은 어느새 전라로 침대에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버둥거리는 그 몸은 두 팔이 잡힌 채 문도하와 가슴을 맞대고 있다. 보통 같으면 금방 그녀의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부옇게 흐려지는데 오늘은 달랐다.
“이서윤, 정신 차려야지. 휘둘리는 게 싫다며?”
묵묵히 서윤의 가슴에 살짝 이를 세우면서 문도하는 고개를 움직였다. 고개를 틀어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아랫가슴을 핥았다. 높은 그의 코가 일부러 자극하듯 가슴의 돌기를 꾹 누른다.
사정없이 눌리는 가슴의 정점은 연이은 자극에 문도하를 향해 바짝 서 있었다. 다른 이의 손길 같은 건 탄 적 없는 분홍빛 돌기가 한층 화사한 빛을 띤다. 그간 이쯤 되면 꿈을 꾸듯 멍하니 보냈던 서윤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서윤의 팔을 구속하지도 않았다. 마치 거부할 테면 해 보라는 듯이. 자유로운 두 팔로 서윤은 문도하의 머리칼을 마음껏 헤집었다. 그의 단단한 어깨를 꽉 쥐기도 했다.
다만 그를 밀어내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맨살이 닿을 때마다 꼭 마약이라도 한 듯 정신이 몽롱해지려 했다. 문도하의 채근이 아니었어도 서윤은 그렇게 쉽게 정신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면 이번엔 다른 게 그녀를 파고들었다. 맨정신으로 겪는 쾌감은 생각보다도 더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붙었다.
그의 어깨를 쥐고 있는 손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문도하를 자극하는 줄도 모르고 무모하게. 제대로 밀어내진 않았으나 그녀가 안기고 싶은 심정으로 그를 잡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어째서인지 제 품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드는 이서윤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걸 벌하듯 그는 더욱 거세게 가슴에 열꽃을 남기는 데 집중했다. 마치 이렇게 흔적을 남겨 두면 이서윤의 족쇄가 되리라고 예언하는 것처럼. 그녀의 가슴이 온통 문도하의 흔적으로 울긋불긋해질 때까지 차근차근히 입술을 움직인다.
그러다가 이번엔 가슴에서 겨드랑이로 향하는 곳을 와락 물자, 서윤의 몸통이 퍼뜩 놀란 듯 튀어 올랐다.
“핫……!”
“집중해.”
진저리를 치며 침대 위쪽으로 움찔움찔 움직이자 문도하가 서윤을 잡아다 끌어 내렸다. 방금 문도하가 이를 세웠던 곳부터 묘한 간지러움이 올라왔다.
맨정신이기에 쾌감 앞에서 큰 위기를 느낀 서윤은 계속 본능적으로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하지만 비틀거리는 손짓에도 문도하의 만행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의 시야에는 그야말로 무지개 꽃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아지랑이 같은 희미한 색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금 그가 무심코 그녀의 성감 한 곳을 자극한 이후로 팍하고 터진 색채의 향연이 그의 시야를 홀렸다. 그녀가 느끼는 야릇한 감각이 하나둘 거센 색깔이 되어 문도하에게 전해졌다. 가이딩을 하며 보곤 했던 뭉개지고 한 꺼풀 가려진 듯한 감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잠시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문도하가 더 피워 보라는 듯 방금 그 부위에 다시 입을 대었다. 아까보다 선명하게 새어 나오는 신음이 그가 보는 광경과 어우러져 정신을 홀렸다.
그저 몸으로 길들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화려한 환희를 자신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덕분에 점점 목적보다는 제 욕망에 충실해진 문도하가 한층 열성적으로 서윤에게 달려들었다.
갈비뼈 사이사이를 애무하듯 혀로 훑었다. 강하게 팔을 잡은 손길과는 다르게 문도하의 혀는 뜨거운 뱀처럼 그녀의 몸을 매끄럽게 움직였다. 이윽고 그 희롱이 골반 어림까지 당도했을 땐 서윤의 발끝이 조금씩 오므라들고 있었다. 다음에 벌어질 일을 똑똑히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꽃잎은 문도하의 뜨거운 감촉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새기는 열꽃을 따라 자꾸만 피어나는 간지러운 기분이 점점 그녀의 꽃잎에 이슬이 맺히게 만든다. 이 또한 생소한 기분이었다.
마치 이런 행위를 반기는 것만 같아서 제 몸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신을 빼앗기지 않은 건 다행이었으나 이런 게 기꺼운 건 아니었다. 당황스러움에 입술을 깨물자 갑자기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흡.”
자꾸만 하얗게 핏기없어지는 입술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문도하는 느닷없이 입을 맞춰 왔다. 서윤이 제 발끝을 맴도는 미지의 감각에 집중한 터라 불시의 침입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입 안을 맴도는 그의 혀가 능수능란한 건 알고 있었으나 오늘은 한층 끈적한 정염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엔 혀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조종당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혀가 입천장의 여린 살을 훑으면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그가 정신 차리라는 듯 앞니 뒤쪽을 슬며시 쓸어 주니 이번엔 서윤의 오금이 간지러웠다.
저도 모르게 그의 혀를 따라 조바심을 끌어 올렸을 때가 돼서야 서윤은 깨달았다. 이게 그가 맨정신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교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서윤이 맨정신으로 문도하를 맞이하는 처음이라는 걸.
갑자기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정신을 잃어 본능만 남은 문도하는 차라리 상대하기가 쉬웠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저 앞으로, 앞으로 움직이기만 했으니까. 멍하니 꿈을 걷듯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샌가 아침이 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깊게 눈 마주치며 그녀의 혀 아래쪽 샘을 일부러 희롱하는 문도하를 느끼는 순간 서윤은 똑똑히 깨달았다.
그가 주겠다는 게 무엇인지를.
“후, 아앗……!”
“이서윤”
“흐으….”
“이서윤.”
그녀가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문도하는 일부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말을 걸었다. 도리질을 치며 떼어내려고 하니 양손이 올라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 순간 귀에서 야릇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
“누가 여기를 핥아 주는 건 처음인가?”
낮은 웃음소리가 어쩐지 즐거움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귓바퀴를 잠깐 훑고 간 혀가 그녀의 귓불을 슬쩍 물어 온다. 그대로 넘어가서는 귀에서 목으로 가는 여린 살에 흔적을 남겼다. 아까 건드린 곳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자 한참이나 공들여 귓가를 애무했다.
무척이나 간지러워서 도망치고 싶은 감각이었다. 이리저리 뒤틀리듯 오므라든 발 때문에 다리에는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움찔거리는 아래쪽의 감각이 이상했다. 아직 편한 바지를 벗지 않은 문도하의 성기가 그녀의 허벅지에 꾹 눌리는 감각이 났다. 천 너머로도 무척이나 뜨겁고 단단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감싸듯 잡은 문도하의 손은 그 도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왜 그러지?”
“하지, 읏, 마….”
“섹스할 때만 말 놓는 건, 버릇인가 보네.”
“으흐읏…!”
허벅지 어림을 맴돌던 자신의 성기를 서윤의 아래쪽에 꾹 내리누르면서 문도하가 야하게 웃었다. 꽃봉오리 위의 작은 쾌감은 그런 단단한 성기에 눌리며 한층 야릇한 기분을 내었다. 문도하가 입으로 그곳을 핥을 때 느꼈던 거센 수치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저 꾹꾹 누르던 허리를 슬쩍 들어 올렸던 문도하가 제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끌어 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손길을 따라 시선을 내렸던 서윤이 바짝 얼어버렸다. 퉁하고 튕겨 올라오는 단단한 기둥을 이렇게 정면으로 보니 무서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몸에는 저렇게 무식한 물건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데.
그런 서윤의 시선을 따라 제 아래를 한번 봤던 문도하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이미 질척해진 기둥의 앞부분으로 그녀의 작은 돌기를 쿡쿡 찔렀다. 뜨겁고, 미끈거리는 자극이 거세게 그녀의 몸을 내달려 머리까지 치솟았다.
이게 뭐지.
“아니지, 이서윤 네가 버릇이 있을 리 없잖아.”
“아, 아응, 흐…!”
“전부 내가 처음일 텐데. 안 그래?”
“…흐읏…!”
그 말을 하면서 문도하는 정말 즐겁다는 듯이 나직하게 웃었다. 그게 왜 이리도 기분 좋은 일이 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서윤은 그걸 따질 정신이 없었다.
문도하의 성기는 그녀의 아래쪽을 쿡쿡 찌르며 희롱했다. 단번에 들이닥칠 듯 꽃잎의 정중앙을 눌렀다가 이내 허리를 빼내서 스륵 미끄러져 위로 올라왔다. 그러면 그녀의 애액을 가득 묻힌 기둥의 선단이 클리토리스를 거세게 문지르며 그녀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찌르는 행위가 뭔가 부족하다는 듯 이번엔 허리를 슬쩍 내려 허리를 뭉근히 비볐다. 잠깐씩 들이닥치는 쾌감이 아닌 연이어 문질러지는 쾌감에 서윤은 당황하여 고개만 훽훽 휘저었다. 그간 느꼈던 쾌감이 자극적이라는 건 틀린 말이었다. 이렇게 여과 없이 그녀를 통과하는 쾌락이야말로 자극적이었다.
그야말로 농밀하고 자극적인 허릿짓이 아닐 수 없었다. 미묘하게 제 허리를 조절하는 것이 힘들지도 않은지 문도하는 한참이나 서윤의 아래를 자극했다. 이리저리 문질러진 자신의 성기가 온통 서윤으로 젖어 들 때까지.
“하…, 뜨겁네, 네 아래쪽.”
“흐윽, 제발…….”
두 손은 자유로웠지만, 서윤은 보이지 않는 힘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도무지 움직이질 못했다. 손을 까딱하기라도 하면 몸 안을 가득 채운 야릇한 감각이 당장이라도 그녀의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아 무서웠다.
자꾸만 간지러움을 호소하는 아래쪽은 골반을 이리저리 뒤틀리게 했다. 문도하가 그녀의 다리 한쪽을 슥 들어 가운데에 완전히 자리 잡는 데도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차라리 빨리 끝나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지만 문도하가 기어코 몸을 숙여 서서히 아래로 갈 땐 화들짝 놀라 팔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이 다시 그녀의 쾌감 정중앙을 향해 기어 내려가고 있었으니까.
“안 돼. 아, 아…!”
“왜. 아래를 또 개처럼 핥아 줄 걸 기대했나?”
“아니, 그런 거, 아니, 으…!”
거짓말 말라는 듯 허벅지 안쪽을 베어 무는 문도하의 행동에 서윤은 두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쥐었다. 그가 한껏 아래쪽에 자리 잡은 덕에 마치 그 머리를 쓰다듬기라도 하는 듯한 볼품없는 손짓이었다. 덕분에 문도하는 방해 같은 건 없다는 듯 자유롭게 다시 입을 놀릴 수 있었다.
여린 꽃잎이 잔뜩 내려앉은 서윤의 상반신을 보니 묘한 충족감과 동시에 갈망이 느껴졌다. 그녀의 아래쪽까지 온몸을 빠짐없이 제 흔적으로 채우고 싶다는 그런 갈망.
허벅지 안쪽을 덥석 물었다가 허리를 조금 세워 서윤의 고운 다리를 들어 올린다. 파르르 떨리는 허벅지 근육을 다른 손으로 쓸어내리며 무릎 근처를 강하게 물었다. 그가 이를 세우는 대로 파들파들 움직이는 근육을 마치 악기 연주하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그러면서도 닿을 듯 말 듯 그녀의 꽃잎 근처는 배회하기만 했다.
그의 손이 다가갈수록 움찔거리는 아래쪽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사실이 문도하는 못내 즐거웠다.
“뭘 기대하고 있어, 응? 이서윤.”
“아니야, 흐읏, 그만, 아니야…!”
오금 어림에서 시작한 그의 행위가 그녀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향하는 듯했다. 문도하의 입술이 슬금슬금 내려올수록 서윤은 울고 싶었다. 저 행위가 제 아래쪽으로 향하길 바라는 자신이 있어서.
이미 몇 번이나 문도하가 얼굴을 박아 애무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의 기억은 분명 몽롱한 쾌감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골반 어림이 잔뜩 달아오른 지금은 당장이라도 저 단단한 코가 돌기를 쿡 찔러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후….”
그녀의 무릎 뒤부터 허벅지의 가장 안쪽까지 꼼꼼하게 흔적을 남긴 문도하가 잔뜩 굽어 있던 어깨를 펴며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꺼떡이는 성기 끝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아래도 이렇게 흥건해져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허리를 펴고 마는 그를 보면서 미약한 아쉬움을 느끼던 서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쉬워?”
“아니, 난…,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제 더 좋은 걸 줄 텐데.”
두 다리를 쥐어 가볍게 그녀의 무릎을 활짝 벌린 문도하가 다시 희게 웃었다. 그 빛나는 조각 같은 얼굴을 보면서 서윤은 공포를 느꼈다.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선연한 예감이.
“아……!”
“하…, 이서윤….”
그녀의 두 무릎을 단단히 붙든 문도하가 제 온 무게를 실어 그녀를 향해 꾸욱 들어왔다. 단번에 푹푹 박아 댈 때와는 다르게, 미칠 것 같은 느린 삽입이었다.
입구에 크고 뭉툭한 것이 닿아 뜨겁다고 느낀 찰나, 이번엔 툭 하고 그녀의 아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빼꼼히 들어오는 듯하던 성기는 이내 무척이나 단단한 굵기를 자랑하며 그녀의 아래를 활짝 열리게 했다.
이윽고 제대로 벌어진 그녀의 입구가 빠듯함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단단한 기둥은 뜨거움을 온통 흔적처럼 남기며 천천히 진입했다. 마치, 이 모양을 잘 기억하라는 듯 아주 느릿하게.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크게 벌어진 입에서는 그저 소리 없는 숨만 옅게 끊어지며 나왔다. 그저 둔중하게 아랫배를 단번에 울릴 때와는 달랐다. 거대한 기둥이 슬금슬금 들어오는 매 순간을 느끼며 서윤은 억지로 전율해야 했다.
예고한 대로 문도하가 강제로 안겨 준 쾌감이었다.
“하…, 으…, 아…!”
“이서윤, 흣….”
그의 안에서는 당장이라도 들이치고 싶은 본능과 이 순간을 가능한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본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대립하다 못해 자아가 둘로 나뉠 것만 같은 괴리감이었다.
안까지 충분히 젖은 그녀는 거대한 문도하를 수월하게 삼켜 냈다. 느릿하게 들어가는 매 순간순간이 뜨거운 폭죽처럼 쾌감으로 전해졌다.
아주 농밀하고 자극적인 색이었다. 화면 조정에 들어간 TV 화면처럼 동공에 박혀들 듯 강렬한 감각이다. 다시 새롭게 발견한 서윤의 감정이 문도하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온다. 분명 온 쾌락을 다해 서윤의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문도하였으나 침투당하는 건 반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무거운 두려움이나 붉기만 한 수치심과는 또 다른 선연한 감정을 문도하는 넋을 잃고 감상했다. 서윤의 나체를 잡은 순간부터 평안을 얻은 그의 녹슨 정신이 자꾸만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 것을 명령했다.
이대로 영원히 이어져 있을 수 있다면.
태어난 이래 가장 솔직한 본능의 소망을 떠올린 문도하가 정신을 차리고 싶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머리를 움직여 봤자 흩어진 이성은 쉽게 모이질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계속 이서윤의 이름을 부르면서 문도하는 제게 파고드는 거센 본능에 허덕였다.
“흐…읏….”
이윽고 그가 진입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서자 성기의 선단에 툭 하고 서윤의 안쪽이 닿았다. 이번엔 문도하 자신이 느끼는 쾌감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윤을 중독시키고자 한 행위가 문도하의 쾌감으로도 돌아왔다. 그저 갈급하게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집중할 때와는 다르게 도톰하게 피어오른 서윤의 안쪽이 그를 빠짐없이 감싸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 깊은 곳까지 촉촉해진 그곳은 틈 하나 없이 문도하가 서윤에게 파묻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문도하는 자꾸만 흉포하게 엇나가려는 본능을 내리눌렀다. 그저 이 순간을, 이 환희를 부디 오래도록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의 성기가 엉뚱한 곳을 찌르기라도 한 듯 서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선 색색 바람 빠진 듯한 호흡이 새어 나왔다. 예고했던 대로 그녀를 거칠게 몰아치는 쾌감에 그녀도 허덕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애처롭기까지 한 그 모습에 문도하는 처음으로 가장 순수한 호의를 내뱉었다.
“움직일게.”
“…으….”
그녀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문도하는 개의치 않고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서윤의 얼굴을 홀린 듯 내려다보았다.
내뱉은 말에 어울리게 애써 다정을 가장해 예쁜 웃음도 걸었다. 그와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쾌감이 두려움 뒤에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게 어찌나 아름답던지.
행여 시선이 다시 사라질까 문도하는 서둘러 허리를 움직였다. 꽉 맞물린 성기가 내벽을 쓸며 나가는 것이 또 쾌감으로 돌아온 건지 서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속에 자리 잡은 놀람이 가시질 않도록 이번엔 또 미약하게 안쪽으로 쿡 허리를 튕겼다.
들썩이는 그녀의 몸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여 꽉 맞잡았다. 봉긋한 가슴이 아래쪽과 마찬가지로 맞닿도록 거세게. 여린 그녀의 뼈대는 아무리 팔을 거세게 둘러도 곧 빠져나갈 것만 같이 가늘었다. 그러면 그 허전함이 다시 문도하를 갈급하게 만든다.
불편한지 비트는 서윤을 마치 달래기라도 하듯 추슬러 올렸다. 몸 전체를 흔드는 미약한 충격에 고운 입술이 문도하를 유혹하듯 틈을 내고 벌어졌다. 그 사이로는 그의 귀를 홀리는 고운 신음이 작게 흘러나왔다. 모든 게 문도하를 쉽게도 충동으로 몰아갔다.
“아, 아……!”
서윤의 눈동자를 계속 바라보며 그녀가 느끼는 쾌감이 쉴 새 없이 빛나도록 허리를 잘게 움직인다. 느릿하게 빠져나갔다가 퉁 그녀의 안으로 재차 진입하는 약한 움직임이 그녀의 꽃잎을 못내 자극하는 것이 분명했다.
때로는 어이없다는 듯, 때로는 분하다는 듯 다채로운 표정을 짓던 서윤의 얼굴이 곧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질척이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릴수록 그녀의 시선에는 열기가 어렸다.
쾌감으로 물든 그 시선을 보면 배가 부른 듯하다가도, 그 시선이 어쩐지 제게 닿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느낄 땐 한없이 목이 말랐다. 이중적인 감정이 서서히 싹터 문도하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서윤이 마구 욱여넣었던 감정들처럼.
서윤의 몸에도 맨정신으로 똑똑히 느끼게 된 야릇한 쾌감들이 속속들이 자리잡았다. 문도하가 빼곡하게 채워 넣을 듯 굴었던 꽃잎을 따라서. 답지 않게 느릿하게 밀고 들어오는 그의 단단한 기둥을 따라서. 바스러진 수치를 밟고 일어선 쾌감이 잘그락 소리를 내며 그녀의 안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길고 새로운 밤이 시작되었다.
* *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덕분에 제가 누워 있는 곳을 순간 헷갈린 서윤이 반짝 눈을 떴다. 기이하리만큼 상쾌한 숙면이었다. 아주 잠깐, 그 평화로운 안락함을 누리던 서윤이 이내 저물어 가는 정신을 애써 일으켰다.
왜 집 안에 바람이 불지.
슬며시 고개를 들자 어깨를 감싸고 있던 이불이 스르르 떨어졌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이 꼭 문도하의 손길 같아서 흠칫 놀랐다. 그 감촉 하나에 잠이 황급히 달아났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어제의 강렬한 쾌감의 잔향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활짝 열린 창문이 보였다.
“…아….”
무심코 흘린 음성에 서윤이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볼품없이 쉬어 버린 자신의 목소리가 꼭 다른 사람인 양 낯설었다. 타인의 존재를 떠올리자마자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문도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황급히 일어난 덕에 아직 머리까지 피가 돌지 않았다. 일단 그녀를 깨운 바람의 근원지를 찾아 창문부터 바라본다. 그녀 혼자 살 땐 잘 열어 두지 않는 창문이었다. 그러니 누가 열었는지는 명확했다.
더웠던가, 멍하니 생각하던 서윤은 제 몸을 잠식한 끈적한 감촉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크게 떴다. 코끝을 맴도는 은밀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숨 막힐 만큼.
그걸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헤집으며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애써 재구성해 보았다. 끈적이는 액체 같던 쾌감이 불시에 떠올랐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보드랍기만 하던 이불의 감촉이 갑자기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파들파들 떨리는 허벅지와 다리가 근육통을 호소했다. 어찌나 뻐근한지 자신의 몸 같지가 않았다. 좁은 방에서 마치 누군가 저를 감시하고 있다는 듯 서윤은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시야 구석에 어른거리는 것이 있어 내려다보니 드러난 가슴이 엉망이었다. 우뚝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멈춘 서윤이 다소 아연한 심정으로 이불을 천천히 걷어 내었다. 그녀의 몸에는 수많은 문도하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게….”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며 서윤은 그 감각을 밀어냈다. 이렇게 엉망인 모습으로 홀로 일어난 것이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간밤의 격렬했던 마찰 때문에 한껏 퉁퉁 부은 그녀의 아래쪽이 이상하게 뭔가를 가득 머금은 듯했다. 분명 사라지고 없는 그였는데, 꼭 지금도 그녀의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마치 영원히 제 안에 흔적을 남긴 문도하의 존재를 뜻하는 것 같아서 서윤은 한층 고개를 숙였다.
무엇보다도 서윤을 비참하게 한 것은, 이제 문도하를 떠올릴 때 두려움만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려움 뒤에 끈적하게 붙은 쾌감이 그녀를 조롱하듯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약간의 자각이 들었을 뿐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문도하가 서윤의 안에 뭔가를 새기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으니까.
눈물이 투드득 무릎으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붉은 자욱이 가득 남은 그녀의 허벅지는 처참하리만큼 점령당해 있었다.
“아니야….”
잔뜩 쉰 목소리가 그녀의 부정을 바로 뭉개 버린다. 거칠게 제 머리를 헤집으며 서윤은 기억을 더듬었다. 거짓말이다. 분명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다.
위기감에 마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젯밤의 열락은 고스란히 그녀의 안에 새겨지듯 남았다. 약이나 능력이 아닌, 순수한 몸의 접촉. 그게 서윤을 흥분하게 했다. 그 모든 순간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중간중간 어설프게 눈을 떴을 땐 문도하가 곁에 있었다. 차라리 기절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나 흔들고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단단한 두 팔로 그녀를 그러안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가 얼굴이 눌려 답답한 듯 움직이면 문도하의 가슴 근육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러면 서윤은 아직도 갇혀 있다는 생각에 꿈으로 도피했다. 그 짓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그녀는 홀로 일어날 수 있었다.
예전부터 기절한 그녀를 이렇게 끌어안고 있었을까? 매번 볼일이 끝나면 화장실을 떠나는 것처럼 바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새삼스러운 정보에도 그녀의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순간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서. 그가 주는 건 전부 받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결국 문도하는 최악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족쇄를 안기고야 말았다.
아래가 쓰라리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재빨리 모든 걸 씻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불이 걷힌 몸을 내려다본 서윤은 다시 좌절해야 했다. 온몸을 불긋하게 채우고 있는 문도하의 흔적은 그냥 닦아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연한 감각에 발걸음이 절로 뒤틀린다.
예전처럼 그저 씻어 낼 수 있게 해주지. 이렇게까지 그녀를 다룬 것에는 괴롭히려는 의도 외의 무언가가 있을 리 없었다. 억지로 쾌감을 안겨 준다 하지 않았던가. 이건 그걸 똑똑히 기억하라는 그의 경고임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몸에는 집요하리만큼 흔적을 남긴 주제에, 멍하니 둘러본 방 안에는 문도하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있는 거라곤 그가 대충 책상 위에 걸쳐두고 사라진 편한 옷가지뿐. 옷과 더불어 창문이라도 열어 두고 가지 않았다면 정말 흔적 없이 돌아갔다고 생각할 뻔했다.
멍한 머리를 흔들며 서윤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찌 되었든 할 수 있는 만큼은 전부 씻어 내고 싶었다. 그 뒤엔 긴 옷을 입어 적어도 제 눈에 띄지 않도록 전부 가려 버릴 작정이었다.
그렇게 욕실로 향하는 아주 짧은 거리마저 비틀거리며 걷던 서윤은 이내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불길한 붉은빛이 그녀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챘기 때문이다.
“…문도하….”
분노 서린 음성이 처음으로 문도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주방과 침실의 구분이 무의미한 원룸이지만 그녀에게는 그 경계를 나누는 작은 식탁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이 방에 입주하며 부렸던 유일한 사치였다. 소담히 차린 밥을 편히 먹을 수 있는 높고 하얀 식탁.
그 위에는 문도하가 놓고 간 목걸이가 있었다. 보란 듯이 케이스를 열어 서윤의 침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올려 두고 간 목걸이가.
마치 전시라도 하듯, 서윤이 눈을 뜨자마자 바로 볼 수 있는 자리에.
그 잔인한 과시에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그녀의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걸 억지로 떠안길 셈이다. 그녀가 무너지든 비참해하든 상관없이 그저 손목에 무거운 족쇄를 하나둘 늘려갈 생각인 것이다.
마치 화대라도 주는 듯 보란 듯이 놓고 간 비싼 목걸이에 서윤은 비참한 비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밟히고 밟혔음에도 서 있을 수 있는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픈 다리도 잊은 서윤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거칠게 목걸이를 향해 걸어갔다.
팩 소리가 나도록 그걸 잡아챈다. 두꺼운 벨벳 케이스가 둔중하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곱게 끼워져 있던 목걸이가 흔들리며 절그럭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다시 침대 어림으로 돌아온 서윤이 방구석에 있는 붙박이장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목걸이와 문도하의 옷을 거칠게 쑤셔 넣는다.
진득한 좌절로만 점철될 뻔했던 그녀의 아침이, 덕분에 분노로 물들었다. 그가 억지로 남기고 간 보석과도 같은 탁한 붉은 빛이었다. 가만히 거세게 닫힌 장롱문을 노려보던 서윤이 굳게 고개를 들었다.
절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