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너에게>
산들산들 너울대는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은 자들은 금요일 아침을 바삐 보내기 마련이다. 봄바람이 밀려들고 노란색이 만개하는 계절은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참으로 간절하게 만들었다. 따사로운 볕을 보며 탈출을 꿈꾸는 아침.
중심을 잡아야 할 무헌은 사무실에 앉아 봐야 할 서류를 옆으로 미루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며 우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주말에 소풍 갈래요.’
권유가 아닌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무헌은 토 달지 않았다. 바로 1박 2일 여정으로 나들이할 곳을 물색했다. 재빠르게 훑으며 우희 또래의 여성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궁리했다.
유달리 아기자기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 자랑스레 업로드한 도시락이 눈에 띄었다. 이런 걸 좋아하려나. 많이 섬세한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향수, 화장품엔 제법 관심이 있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재회 한 달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고도 아직 넉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우희의 취향을 전부 간파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무헌은 넌지시 물었다.
‘도시락도 챙겨야 하나.’
‘만들어 줄 거예요?’
동태같이 멍하더니만, 우희는 도시락 얘기에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에 우희의 기대를 외면하지 못하고 노력해보겠다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저지르고 나니 슬슬 걱정이었다.
바로 내일이 토요일인데, 무헌에겐 요리 실력이 없었다. 출근한 무헌은 업무를 미뤄두고 도시락 레시피를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 유 비서가 들어와 일정 브리핑을 했다.
“듣고 계신 겁니까.”
“네. 듣고 있죠. 들리니까.”
“10시까진 결제해주셔야 합니다.”
무헌은 억지로 서류를 들추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책상의 가장 끝에 놓인 신입사원의 이력서를 곁눈질했다.
한 달 전에 가져다 둔 이력서는 풀을 붙인 것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마케팅 부 지원자, 김우희]
우희의 심하게 예쁜 얼굴을 네모반듯하게 박아놓은 이력서를 찢어발기고 싶은 걸 참으며 건성으로 서류에 사인했다. 필체가 예쁘다며 제 몸에도 새겨달라 조르던 깜찍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한 번 사정할 때마다 허벅지 안쪽에 막대기를 긋고, 진무헌의 강아지란 글자를 새겨준 뒤에야 만족스럽게 웃던 여자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좆이 멋대로 발작했다.
“아, 씨발.”
“예?”
엘리트 계열의 유 비서는 깡패 출신 대표의 수발을 들으며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무헌의 거친 면을 감당하지 못하고 졸아붙는 거다.
“혼잣말도 못 합니까.”
“아닙니다, 대표님.”
우희의 이력서를 내려다보며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할 이유를 되새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울분이 치미는 건 해결하지 못했다.
어른스럽지 못하단 자각은 있어서 우희에겐 티도 못 내고 혼자 앓고 있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유 비서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 사모님 말입니다.”
심드렁하던 무헌의 시선이 유 비서에 꽂혔다. 하는 말에 따라 너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단 의미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마케팅부 회식이라고 합니다.”
“3팀은 업무 마비라던데, 1팀은 희희낙락 회식이나 합니까. 그것도 자주.”
무헌이 삶아 죽일 듯이 묻자, 유 비서가 헛기침하며 도주를 택했다.
“그럼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뒷걸음질 치는 유 비서의 눈가가 조금 촉촉했다. 사모님의 귀가가 늦을 때마다 대표의 성질머리가 더욱 개 같아지기 때문이었다.
“김우희 씨, 올려요.”
“또요?”
헛. 유 비서가 되물어놓고 놀랐다.
“아내 만나겠다는데, 문제 됩니까.”
“대표님, 죄송하지만 두 분께서 부부란 사실을 밝히실 게 아니라면 자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유 비서는 물렁물렁한 표정을 하고선 무헌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게 자중하고 억누르는 거란 걸 전혀 모르는 낯이었다.
“내가 내려갑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모셔오겠습니다.”
유 비서가 화들짝 놀라 사라졌다.
대표가 자꾸만 일개 사원을 사무실로 불러들이자 눈치 빠른 누군가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짚어냈다. 사내 연애에 비밀이 없듯, 대표의 수상한 만남이 사내 레이더망에 걸려든 거다.
우희가 대표실로 불려오는 날은 사내 메신저가 술렁인다고 했다. 기혼인 두 사람이 자주 접촉하자 불륜설까지 돌고 있었다.
아내와 불륜설이라니. 무헌이 이런 지저분한 추문에도 해명하지 않는 건 단지 우희를 위해서였다.
무헌은 다른 회사에 취직하려는 우희를 붙들기 위해 사심이 들어간 낙하산 고용을 불사했다. 낙하산이란 타이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우희는 시키지 않는 일까지 해내느라 부쩍 바빴다.
거기에 대고 우희가 자신의 아내란 걸 밝힐 수가 없었다. 팀 분위기를 어떻게 할 거냐며 반문하는 우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우희의 안락한 회사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그녀는 아마 이직을 택할 거다. 무헌이 막으면 촉촉한 눈망울을 앙칼지게 치뜨고 사람을 피 말릴 게 뻔한 여자였다.
유 비서가 나가고 잠시 뒤, 우희가 문을 두드렸다. 일주일에 서너 번쯤 갖는 방문이니 꽤 잦은 만남이긴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피곤함에 젖은 명료한 목소리. 무헌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등을 기대며 문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는 솜씨가 치밀했다.
한두 번 불려온 게 아니니 이제 무헌이 무슨 짓을 할지 훤히 아는 거다.
“오늘은 팀장님께서 왜 그렇게 자주 불려가냐고 직접 물으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해명했는데.”
“전에 맡기신 사적인 일을 물으시려는 것 같다구요.”
“그렇게 말하면 믿고?”
“믿겠어요? 다들 점점 눈초리가 이상해진다구요.”
“네가 스릴 있고 좋다며.”
“한두 번이어야죠.”
입술을 씹던 우희가 쭈뼛대며 걸어왔다. 두 뺨이 상기 된 게 좆으로 후려치고 싶었다.
숨이 차는지, 우희가 입은 푸른색 셔츠가 가쁘게 오르내렸다. 얄팍한 허리와 골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블랙 스커트. 이 모습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탁한 질투가 일었다.
우희를 집에 두고 예뻐할 생각이었기에 그녀가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땐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하나 우희의 미래를 짓밟는 품위 없는 주인은 되지 말아야 했기에 같은 회사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통제했다.
그리고 플레이를 회사에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뭐해. 너 좋아하는 스릴 즐겨야지.”
무헌이 옆을 눈짓했다. 묵직한 형태의 책상 옆엔 보들보들한 러그가 깔려있었다. 연회색 러그는 무헌이 사무실에서 가장 신경 쓰는 물건이었다. 더러워질 때마다 수거해서 세탁하고, 깨끗한 새것으로 바꾸는 건 보람된 일이었다.
머뭇대던 우희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복도 바깥의 미세한 소리를 집중해서 들은 뒤에야 움직였다. 무헌이 부르기 전엔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인데도 그녀는 늘 주변을 경계했다.
귀를 기울이거나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그럴 때마다 안겨드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긴 했지만, 이제 좀 마음을 놓길 바랐다. 그리 말하면 콧방귀를 뀌며 성깔을 부리겠지.
“빨리 끝내요.”
“느긋느긋 만져주는 거 좋아하면서 말은.”
“회사에선 절대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무헌이 앙증맞은 말투를 따라 하자, 눈에 힘을 준 우희가 구두를 벗었다. 얇은 스타킹이 감긴 발을 러그에 묻는다. 그녀가 등을 대고 두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기며, 밑부분을 무헌이 보도록 자세를 잡았다.
“우리 강아지, 기저귀 갈 시간이지.”
“응.”
우희가 일부러 말을 놓으며 도발하는 건, 그가 너무 자주 불러대니 곤란하단 뜻이었다. 하여간 조금도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얼마나 쌌나 볼까.”
무헌은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붉어진 뺨 속에 깃든 부끄러움을 숨기려 우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를 사무실 바닥에 다리를 벌리게 해놓고 치근대기 위해 출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순간만큼은 좆 같은 마케팅 1팀을 말소시키고픈 욕구가 잠잠해졌다. 최 팀장이란 새끼가 사사건건 우희를 괴롭혀댄다는 보고가 잦아지는 건 또 다른 문제였지만.
우희를 못살 게 구는 건 무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월권하는 최 팀장의 인사 이동권을 두고 치졸해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 우희는 모를 거다.
무헌이 양쪽 발목을 쫙 벌려 잡았다. 허벅지에 걸려 팽팽하게 늘어난 스커트 단 안쪽의 은밀한 그늘을 눈에 담았다.
“많이 쌌네.”
“아, 아닌데….”
“확인해보면 알겠지.”
가느다란 두 발목을 거뜬히 한 손으로 쥐고 위로 들었다. 붕 떠오른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어 스커트를 잡아 올렸다.
커피색 스타킹에 감싸인 매끈한 다리와 골반을 눈으로 훑다가 발목을 좀 더 뒤로 넘겨 엉덩이를 띄웠다.
샅에 파묻힌 검정 팬티가 유난히 두둑했다.
“속에 바지는.”
“그것까지 입으면 너무 답답하다고 했잖아요.”
바람 빠지듯 웃은 무헌이 우희의 허리에 손을 넣어 스타킹을 한 번에 벗겨냈다. 돌돌 말린 스타킹이 한쪽 발목에 걸려 덜렁거렸다.
팬티는 종아리까지 내리게 한 뒤에 살짝 뒤집어 속옷에 붙여둔 소형 패드를 살폈다. 우희는 오늘처럼 패드를 붙이는 날이면, 답답하다며 속바지를 입길 거부했다.
무헌이 못마땅해하는 걸 우희도 알고 있었으나 버티는 걸 보아 어지간히 싫은가 싶어 관용을 베푸는 중이었다. 물론, 벌을 주는 건 별도였다.
손으로 생리대를 눌러 젖은 부위를 확인했다. 애액이 푹 젖어 눅눅했다.
“흥건한데, 안 싸긴 무슨.”
“그건 아침에 자기가….”
“그러니까 잘 품고 있으랬지.”
아침에 무헌이 푸지게 싸놓은 정액이 흘러내린 흔적이었다. 무헌이 패드를 주물럭거리자 우희가 입술을 깨물고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참아내려 애썼다. 한두 번 하는 플레이도 아니면서 풋풋한 반응이다. 그런 우희가 귀엽고 야했다.
만약 계산된 표정이라면 무헌은 천하의 병신이었다. 여자의 여우 짓에 놀아나는 등신밖엔 안 됐다. 하지만 그런들 어떤가. 김우희가 꼬리를 흔들어주겠다는데.
일어난 무헌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 새 패드와 물티슈를 가져왔다. 월경이 아닌데도 일부러 패드를 채워두고 아이처럼 다루는 플레이는 회사에서 자주 즐겼다.
아기를 대하듯 두 발목을 겹쳐 잡고 엉덩이와 음순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닦았다.
“읏….”
일부러 음핵을 집요하게 눌러 자극하자, 우희가 몸을 비틀었다.
“우리 강아지가 얌전히 못 있네.”
“아니…. 자기가 그렇게… 으읏!”
“자꾸 움직이면 잘난 구멍을 틀어막아야지. 뭐로 할까.”
자물쇠를 채운 서랍 속엔 우희를 괴롭힐 성인 기구가 여럿 있었다.
“클리 자지에 바이브 붙이고 퇴근까지 버텨볼래?”
“흣, 응… 싫어어.”
무릎을 접게 하고선 종아리에 걸린 팬티에 능숙하게 새 패드를 붙여주었다. 느릿느릿 살갗을 스치자 우희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생리하면 더 볼만하겠는데.”
“그건 시, 싫어!”
“뭐가 싫어. 생리하는 게 싫어, 아니면 볼만한 게.”
“생리할 때는 이거 안 할 거예요.”
무헌이 돌돌 말린 패드를 보란 듯 옆으로 두곤 스타킹을 입혔다.
“오늘 회식이라며. 쌀 때마다 어쩔 거야. 갈지도 못할 텐데.”
“떼고 갈 거예요. 답답하단 말이야.”
“지랄 말자.”
“욕하지 마요.”
우희가 입술을 깨물며 노려본다.
“하지 마? 여태 그런 말 없더니.”
홀로 몸을 일으키려는 우희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의자에 앉으며 품에 넣어둘 생각이었는데 격하게 바둥거려 무헌을 뿌리친 우희가 저만치 달아났다.
억지로 잡으면 못 잡을 것도 없었으나, 굳이 붙들지 않았다. 대신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기울였다.
“무슨 짓이야.”
“놀고먹는 한가한 대표님은 모르시겠지만, 말단 사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든요.”
“노고를 치하해서 금일봉이라도 내려줄까.”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자요. 전처럼 또 찾아오기만 해 봐.”
환영회가 있던 지난 회식 때 무헌이 회식처에 쳐들어가 마케팅부를 공포로 밀어 넣었던 그 사건은 아직도 회자 되곤 했다.
무헌은 회식 내내 눈치 없는 상사가 되어 상석을 차지하곤 우희를 감시한 바 있었다. 혹시 그 회식에서 무헌과 신입이 눈맞은 게 아니냐는 은밀한 사설이 덧붙은 상황이었기에 우희가 밀어내는 게 이해는 됐다. 이해만.
“키스하고 가.”
무헌이 달래는 투로 말하며 손을 뻗었으나 우희는 야멸차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허탈하게 한숨 쉬던 무헌이 몸을 일으켜 물티슈를 치웠다.
뭉친 패드를 노려보던 그가 지퍼를 내리고 터질듯한 성기를 쥐었다. 남자의 손에도 빠듯하게 감기는 성기를 우희가 징그럽다고 했던가.
“하….”
조금 전 눈에 새긴 우희의 다리, 허벅지 은밀한 곳을 되새기며 엄지손가락으로 좆 구멍을 쑤시고 불알을 거세게 주물렀다.
“꼴이 하… 씹.”
육성으로 욕을 하려다 멈추고 패드를 뜯어 성기를 감쌌다. 우희의 애액과 정액이 습하게 흡수된 패드로 자지를 문질렀다. 우희의 보지를 감싸고 있던 게 페니스를 마찰했다. 아 씨발.
비범한 자극 덕에 평소라면 길고 길었을 자기 위로가 몇 분 걸리지 않아 끝났다. 뒤처리를 마친 티슈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서류를 끄집어냈다.
해소할수록 우희를 원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애초에 채울 수 없는 갈망이었다.
회식 씨발, 그딴 거 없는 회사를 만들어야 하나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애매한 나이로 입사한 신입의 고충은 생각보다 컸다. 그녀는 명문대를 나온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스펙이 없었다.
젊은 나이기에 결혼한 것도 감점 요소였다. 나이가 좀 있는 상사들은 아이 계획은 없느냐고, 무례한 질문을 하기 일쑤였다.
우연히 같은 팀에 먼저 입사한 학과 선배가 있어서 그럭저럭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회식 자리. 고깃집 구석에 앉은 우희는 몇 번째인지 모를 술잔을 받아 목으로 넘기며 선배이자 상사인 오 대리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희야, 가는 길이니까 내 차 타고 가.”
“저 차 가져왔어요.”
“대리 부를 건데 한 차로 움직이는 게 경제적이지. 가는 길이기도 하고.”
희멀건 피부에 흐릿한 인상, 안경을 쓴 오 대리는 곱게 큰 도련님 같은 인상이었다. 지금쯤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현관 앞을 서성일 누군가와는 아주 딴판의 분위기였다.
“월요일에 차 가지고 출근하려면 타고 가야죠.”
시선을 의식해서 출퇴근은 각자의 차로 따로 하고 있었다.
“왜. 남편이 이상하게 볼까 봐 그래?”
“그런 거 아니에요.”
오 대리는 종종 우희를 떠보았다. 자꾸 우희에게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몇 살이냐, 어느 대학을 나왔냐, 사적인 걸 물었다.
처음엔 그저 궁금해서 그러나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도가 지나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오 대리와 한 차를 타고 귀가하면 무헌이 물론 좋아하진 않겠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우희가 다른 데 눈을 돌릴 리가 없으니.
“남편이랑 사이 안 좋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결혼반지도 없고, 통 말을 안 하잖아. 혹시 너 기혼이라고 거짓말한 거야?”
속닥이는 말이 거침없었다. 우희는 가만히 오 대리를 바라보았다. 오 대리가 도움이 되는 직장 상사인 건 맞지만 도움을 줬단 이유로 우희의 사생활을 멋대로 제단하고 침범할 순 없었다.
“그런 거짓말을 어떻게 해요. 인사과에서 확인해보실래요?”
“아니. 혹시나 싶어서…. 그럼 대표님 말이야, 그건 뭐야?”
“대표님이 왜요?”
우희는 모른 척 물었다.
“사실 저번 주말에 네가 대표님이랑 같은 차 타고 가는 거 봤어.”
슬슬 무헌과의 사이를 밝힐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회사 대표인 무헌에게 불륜이란 오명을 뒤집어씌울 순 없었다.
무헌과 부부란 걸 밝힌다면 모두가 불편해지겠지. 이미 불륜이란 색안경에 배척당하는 중이니, 따지고 보면 달라질 건 없을지도 몰랐다.
무헌의 회사에 들어온 걸 후회하진 않았다. 신혼의 달콤함에 취해 그의 작전에 떠밀린 건 다시 생각해도 잘한 짓이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업무를 보고 있으면, 어떤 불행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겁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강아지니까 당연히 그의 손에 닿는 곳에서 대기하고 싶기도 했다.
무헌에 한해서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그도 비슷하다고 했다. 김우희와 있으면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긴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맛있게 태우며 언제 들어오려나 시계를 확인하고 있을 그를 그리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우, 웃어? 왜 웃어?”
“제대로 보신 거 맞아요. 저랑 진 대표님, 결혼한 사이에요.”
“…뭐?”
“제 남편이 진 대표님이라구요.”
오 대리가 숟가락을 툭, 놓쳤다.
“거짓말.”
우희가 빙긋 웃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 대리가 물잔을 쥐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순간 자리를 옮기자는 팀장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사들을 따라 우희도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났다.
2차를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귀가하는 김 차장의 뒤에 합류했다. 오 대리는 망부석이 되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차장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우희 씨. 대리는 불렀나?”
“네. 이제 부르려고요.”
김 차장이 차비를 쥐여주며 우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주변에 있는 직원들을 의식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저…. 말이야. 이상한 소문은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이분도 이러시네. 무헌과의 불미스러운 소문이 생각보다 더 크게 번진 것 같았다. 정직하다 못해 고루하신 분께서도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걸 보니.
“못된 소문은 내가 막아보지. 자넨 어서 들어가.”
다음 주에도 회식이 있으니 시간을 비우라고 말한 차장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우희는 약간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한 뒤 누가 붙들세라 얼른 술집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걸음이 빨라지고 가방을 뒤적거리는 손도 다급해졌다.
사실 우희는 무헌과 얽히는 모든 단어를 좋아했다. 조만간 또 다른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그의 옆자리에 깊게 각인될 일이 살짝 기대되기도 했다.
최근 통화 목록에서 그를 찾아냈다.
“여보세요? 나 끝났어요.”
우희가 애써 술기운을 걷고서 말했다. 첫 회식 때 혀가 꼬부라져 주정을 부렸다가, 홀딱 벗겨진 채 차에서 그를 받아내야 했다. 다 좋은데 카섹스는 다음날 후유증이 너무 컸다.
핸드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회사야. 이리로 와.]
“퇴근 안 했어요?”
[어. 혼자 올 순 있고?]
“응. 걸어가면 금방이에요.”
애써 다듬어 내뱉은 말투가 먹힌 것 같았다. 무헌은 혼자 오겠단 우희를 말리는 대신 부탁을 했다.
[같은 층 임직원 화장실에 두고 온 게 있어. 제일 끝 칸인데, 들러서 갖다 줘.]
우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헌이 뭘 두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가 말한 화장실은 임직원이 회의실을 찾을 때만 사용하는 곳이었기에 분실의 위험이 적었다.
굳이 우희에게 부탁할 만한 일이 아니란 소리였다. 아리송한 마음을 미뤄두고 알았다고 했다. 술기운이 돌아 약간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고 회사로 향했다.
“가자.”
혼잣말하는 일이 많이 줄어서 내뱉은 말을 어색하게 곱씹으며 금요일 밤의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들떠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홀로 누비면서도 외롭단 생각이 안 들었다. 공허는 그녀의 배경색이었는데 무헌을 만난 뒤부턴 진무헌이 바탕색이 되었다. 그는 검은색으로 도사리며 우희를 삼켜댔다.
그가 짙어지고 컴컴해질수록 우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무헌의 집착과 소유욕은 우희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무헌이 없으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헤어졌던 두 달간 아무런 진전없는 세계를 부유했듯이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이 곱절로 빨리 갔다.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소한의 조명만 켜진 복도를 지나서 불이 완전히 꺼진 화장실로 들어갔다.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컴컴한 화장실로 들어가려니 조금 무서웠다.
스위치를 찾기는 번거로워 그대로 전진했다. 제일 끝 칸을 불로 비추었을 때, 무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우희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화장실 끝 칸으로 향했다.
“여보세요? 전화 받았어요. 말해요.”
화장실 문을 밀고 변기 주위와 옷걸이까지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여기 화장실인데 아무것도 없어요. 잃어버린 게 뭐예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려던 우희는 뒷덜미를 잡아채는 강한 힘에 떠밀려 벽에 손을 짚으며 상체를 무너뜨렸다.
“누구세, 읍!”
거센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내지 말고 다리 벌려요.”
“….”
“못 들었습니까.”
호흡을 거칠게 들썩이던 우희는 바르작거렸다.
“쉿. 움직이지 맙시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어느새 젖어버린 눈을 질끈 감으며 다리를 약간 벌렸다. 뒤에서 등을 밀어오는 바람에 다리 사이에 변기를 두고 가슴을 완전히 벽에 밀착했다.
정돈되지 않은 숨이 가쁘게 터져 나왔다. 눈물이 맺힌 눈가로 손가락이 닿았다. 차가운 남자의 체온이 섬찟한 전율을 남겼다.
“이건 호의입니다.”
매끈한 무언가가 우희의 두 눈에 감겼다. 넥타이 같았다. 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저기….”
목이 졸리듯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리 내지 말라니까.”
“읏!”
치마가 거칠게 위로 젖혀지고, 손쉽게 팬티가 내려갔다. 남자의 손가락이 질척하게 젖은 구멍을 매섭게 들쑤셨다.
“흐읏….”
우희는 이를 꽉 물고서 새어 나오는 신음과 흐느낌을 입안에 가두려 애썼다. 그가 비웃음을 흘렸다.
“당하면서 좋습니까?”
“흡….”
찰싹. 남자가 엉덩이를 강하게 후려쳤다.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되나 본데, 강간당하는 겁니다. 그런 주제에 입을 놀리면 되겠어?”
우희가 벽에 붙은 뺨을 잘게 흔들어 의사를 표했다. 그가 양쪽 엉덩이를 사정없이 벌려 젖혔다.
“흣!”
“모르는 남자한테 따먹힐 생각에 좋아 죽겠습니까? 씨발, 줄줄 흘러.”
남자가 억누르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온종일 무헌을 기다리던 음부에 말캉하고 뜨거운 입술이 덮였다.
“읏!”
밑이 사정없이 빨렸다. 드릴 같은 혀가 밑구멍을 쑤셔댔다. 혀의 돌기가 느껴질 만큼 민감하게 발달한 몸이 자극을 해일처럼 받아들였다.
두 눈을 가리고 엉덩이를 쳐들고 낯설게 여겨지는 남자에게 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느껴도 되는 걸까.
겁나는 건 사실이었으나 불안과 배덕은 언제나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우희는 결국 몸을 편히 내맡겼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었지만.
“아흣! 아!”
인정사정없이 밑을 빨고 삼각지의 음모를 쥐어틀며 음핵을 성마르게 문질렀다. 축축한 터라 고통 없이 손길을 받아냈다.
“으흣!”
벌름대는 구멍으로 손가락이 박혔다. 척척척. 민감해진 음핵을 문지르며 스폿을 공격하자 금방 절정의 기운이 몰려왔다. 질벽이 수축하며 남자의 손가락을 끊어먹을 듯 조여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부푼 점막에서 맑은 물이 툭툭툭 떨어졌다.
“싸? 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자한테 따먹히면서 느껴요?”
“흐읏….”
음부를 움켜쥔 그가 엄지로 음핵을 짓누르며 채신머리없이 흔들어댔다. 입술을 씹으며 신음을 참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허읏, 으흣!”
“조용히 하라니까. 말을 안 들어먹네요.”
열기 오른 남자의 목소리가 두렵긴커녕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철컥. 금속성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장소가 협소하긴 한데, 그래서 좋네. 어떻게 때려도 맞을 거 아닙니까.”
“흐…?”
젖은 음부를 내놓은 그녀가 멀어지는 그를 이상하게 여기며 허벅지를 스스로 비볐다. 뜨겁게 자극하던 무언가가 사라지자 길을 잃은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거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하니까…. 우희는 팔 하나를 뒤로 보내 허공을 휘저었다.
“왜. 아쉽습니까?”
남자가 비웃는 순간 우희의 손끝에 그의 옷자락이 잡혔다. 안도할 새도 없었다.
“벽 짚어요. 손 움직이면 다칩니다.”
“흣….”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엉덩이로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
“흡!”
우희의 엉덩이를 내리친 건 벨트였다. 두어 번 겹쳐 잡은 벨트를 둔부에 후려치고 있었다.
“아읏!”
찰싹. 통증에 놀라 볼품없이 흔들리는 둔부를 내려다볼 검은 시선을 생각하자 고통보단 짜릿한 흥분이 밀려들었다.
“소리 내면 다음은 보지 맞는 겁니다.”
엉덩이를 가볍게 긁고 떠난 벨트가 다시 엉덩이를 후려쳤다. 너무 아파서 두 다리가 휘청였다.
“말 안 했던가. 움직여도 보지 맞는 거야. 딱 스무 대만 합시다.”
두 갈래의 벨트가 통통한 살갗을 매섭게 스칠 때마다 무릎이 굽혀지고 신음이 튀어나왔다. 감당 못 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으나, 언제 내려칠지 몰라서 지레 겁을 먹은 탓에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섯 대쯤 연달아 맞자 소리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흣…. 흐윽. 그만 넣….”
“닥쳐.”
벽에서 손이 떨어졌으나 엉덩이를 잡거나 숨기진 못했다. 어설픈 자세로 끙끙대며 매를 견뎠다. 결국, 상체가 주르륵 미끄러지고 다리가 풀려, 자세가 엉망이 되었다.
“말을 안 듣네요.”
“흐읍….”
닫힌 변기 뚜껑을 짚고 주섬주섬 일어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어디서 이렇게 술을 처먹고 다닙니까.”
“으흣….”
우희는 얼른 뒤로 돌아 무릎을 꿇었다. 감으로 남자의 종아리를 더듬다가 구두를 매만졌다.
“뭐 하자는 거지.”
“흐읏….”
우희는 남자의 발목을 들어 제게 당기는 시늉을 했다. 물론 꼼짝도 하지 않았으나 애를 썼다.
“뭐. 밟아달라고?”
“흐읏….”
“하…. 지금 강간당하고 있단 자각은 있습니까?”
“흐응….”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었다. 절정에 오르기 직전 멈춘 탓에 흥분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어서 쑤셔줬으면, 더 밟아 줬으면. 본성이 깜빡깜빡 노란불처럼 경고했다. 어서 더 망가지라고.
“흣…!”
머리채를 거칠게 잡은 남자가 사타구니를 우희의 콧대에 마구 비볐다. 딱딱한 나무토막 같은 것이 뺨과 코를 마구 짓눌렀다. 얼굴을 내리자 물컹한 고환이 비벼졌다.
“흐읏….”
“먹고 싶어요?”
“으으….”
“아무 자지나 넣어주면 좋다고 까무러칠 것 같은데.”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눈물이 젖어 눈을 가린 넥타이가 축축했다. 무헌이 머리채를 잡은 채 우희를 일으켰다.
앞으로 당겨간 두 손을 벨트로 묶은 그가 우희의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쿵. 좁은 공간에서 우희의 몸이 회전했다.
“흣….”
“원하는 대로 박아줄게요. 맛있게 먹어 봐요. 술에 취해서 맛이나 느낄지 모르겠지만.”
결박된 두 손이 화장실 옷걸이 봉에 걸렸다. 표본이 된 나비처럼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채로 블라우스 단추가 툭툭 밀려났다.
브래지어를 위로 올려 감춰뒀던 젖가슴을 노출했다. 출렁거리며 부드러운 살덩이가 튀어나왔다.
“유두가 크네요. 매일 만집니까?”
수치스러움에 귀가 뜨끈했다. 그야 무헌이 매일 물고 빨고 클립과 체인을 연결해서 끌고 다니니,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람 몸이 이렇게 다 야해.”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낮은 목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무언가 환한 빛이 번쩍였다. 핸드폰 플래시 같았다.
“흐, 뭐, 뭐 하는 거예요?”
“사진첩에 남겨놔야지.”
남자의 손에 들린 우희의 한쪽 허벅지가 방만하게 벌어졌다. 다시 한번 환한 빛이 번쩍였다. 넥타이로 가린 눈 때문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사, 사진 찍은 거예요?”
“보지나 잘 벌려요. 야한 것 치곤 구멍이 영 구실 못하게 생겼습니다.”
우희의 두 다리를 들어 제 허리에 고정한 남자가 미끈한 귀두를 문지를 때마다 문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누가 들어오면 어쩌지. 모르고 지나치던 사람도 소리 때문에 들어와 볼 것 같았다.
“소리, 소리…. 흣.”
“봐주면 좋은 거 아닙니까? 꽉꽉 조이면서.”
푹. 성기가 밀려들었다. 단숨에 꿰뚫린 줄 알았는데, 푹푹. 두 번 더 격한 통증과 환락이 지나간 뒤에야 남자의 뿌리까지 삼킬 수 있었다.
“아흣, 아…. 자기.”
“자기? 처음 만난 좆한테 호칭이 꽤 상냥하네요.”
가득 찬 느낌에 엉덩이를 흔들며 조르다가, 내벽을 스스로 자극한 꼴이 되었다. 허리를 추어올리기 시작하자 이지를 잃었다. 우희는 덜컹덜컹덜컹. 격렬한 소음을 자아내며 교합에 열을 올렸다.
두 손이 묶여 그를 제대로 껴안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서러웠다. 무헌은 정말 밑만 탐하려고 온 사람처럼 키스도 하지 않고 성기를 맞추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안고 싶어…. 흐읏!”
“쉿.”
“흐읏….”
서러워 엉엉 울면서 절정에 올랐다. 사지를 경직시킨 채 말간 물을 사방으로 뿜어댔다. 척척척. 마찰하는 소리에 잡음이 늘었다.
“아, 싸고 싶….”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절정에 오르고 나자 이번엔 요의가 찾아왔다.
“실컷 싸놓고 또? 오줌이라도 싸고 싶습니까.”
“흐읏…. 네.”
피식 웃은 그가 좆을 한 번에 빼냈다. 후두둑. 딸려 나간 내벽이 뻐끔대며 고여있던 애액을 뱉었다. 몸이 뒤집히고 처음처럼 변기를 마주 보고 섰다.
“뚜껑 올리고 서요.”
“흣….”
순순히 변기 뚜껑을 올리고 그 앞에서 섰다. 설마 이 자세로 소변을 보라는 건 아니겠지.
“싫… 튈 거예요.”
“이제 와서 무슨.”
찰싹. 가랑이 사이를 내리친 무헌이 구멍을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성기가 꾸역꾸역 좁은 구멍을 비집고 삽입됐다. 탄식이 가슴부터 끓어올라 터졌다.
“아흣…!”
곧바로 스퍼트를 올리자, 골이 흔들렸다. 나오고 싶은 게 소변인지, 눈물인지, 신음인지 모르겠다. 무헌이 밀고 당기는 데로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나아…! 더!”
“더? 이보다 더?”
“여보, 더 으응! 뒤에!”
쾅쾅. 박아대는 걸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주제에 애널에 손가락을 박아달라고 애원했다.
“박아만 주면 아무나 자기고, 여보인가? 좆 맛 볼 때마다 그랬어?”
“아니야… 많이 안 봐, 봤으응! 경험 거의 없었단 말… 흣!”
무헌이 잠시 허리를 멈췄다가 종마처럼 격하게 삽입했다.
“흣, 아니야…! 무헌, 아! 진무헌. 뒤에 해줘…!”
“뒤에 자지 넣어줘?”
“응. 넣어, 넣어줘. 뒤에 자지로 괴롭혀… 하응!”
물론 택도 없는 소리였다. 20센티가 넘는 길이는 둘째 치고 생수병 굵기의 좆을 애널에 넣었다간 어딘가 파열되어서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이게 돌았나, 진짜.”
쾅! 화장실 문이 열리고 무헌이 빠져나갔다. 허전해진 우희는 변기 위를 어설프게 짚고 있던 손을 밀며 몸을 바로 했다.
“흣…. 어디 갔어?”
“눈 가린 거 풀고 여기로 나와.”
“흐읏…. 뒤는?”
우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가린 걸 치웠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다르게, 화장실 조명이 켜져 있었다.
어두울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소리 질렀는지도 모르겠다. 호텔 화장실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내부를 눈에 담자 정신이 차차 돌아왔다.
“흣, 나….”
“나와.”
무헌이 선 곳은 남자 소변기 앞이었다.
“곧 청소 시간인데, 시간 끌면 좋은 구경이나 시켜주겠지.”
우희는 묶인 두 손을 앞으로 하고 주춤주춤 걸어갔다. 구두 때문에 몇 번이나 휘청였고 그럴 때마다 무헌의 눈빛이 짙어졌다.
그는 우희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다고 무헌처럼 잡아 죽일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 거란 생각을 했다.
우희가 다가가자 무헌이 우희를 소변기 앞에 서게 했다. 마치 남자가 소변을 보는 듯한 자세였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근데, 이건…. 아흣!”
뒤에서 그가 삽입했다. 거의 선 채로 받아들인 거라 뒤꿈치가 들렸다. 우희는 벽을 짚으며 허리를 뒤로 뺐다. 생존 본능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기에 배가 꿰뚫릴 것 같았다.
“아흣….”
서늘한 손가락이 음부 주변을 훔쳐 애액을 퍼 올렸다. 흥건한 애액을 뒷 주름에 문지르며 무헌이 붙어먹길 재개했다.
눈은 가린 채 좁은 공간에서 박히는 것과 이렇게 뻥 뚫린 곳에서 섹스하는 건, 느낌이 많이 달랐다. 곧 누가 들어올 것처럼 겁이 났다. 우희는 화장실 문을 훔쳐보며 신음을 삼켰다.
그러다 애널에 손가락 끝이 진입하자 허겁지겁 삼켜대기 바빴다.
“아흣, 좋아….”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와서. 사람을.”
그가 정신없이 몰아세우며 젖가슴을 쥐고 흔들었다. 사정의 기운이 임박하자, 우희도 더는 요의를 참을 수 없었다. 절정 또한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아! 안돼.”
“소변 마렵다고 해서 기껏, 어울리는 데로 데려왔더니.”
“흐흣… 흐응! 죽을 것, 흐응! 아아아!”
절정에 올라 몸을 펄떡거렸다. 무헌이 허리를 놓고 물러나자 우희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며 변기를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버렸다.
“흣, 으으응!”
무헌이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우희는 소변기를 마주 본 채 오줌을 쌌다. 졸졸졸 세차게 흐르던 소변 줄기가 약해지자 서러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일어나.”
무헌이 비틀거리는 우희를 억지로 끌어내 바닥에 눕혔다.
세상에 화장실 바닥에 누워서 섹스라니. 더군다나 결벽적인 무헌이 할 짓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우희를 눕혀놓곤 화장실 바닥에 기꺼이 무릎을 비비며 허리를 털었다.
“패드 떼고 속바지도 없이, 어?”
“으흥! 무슨 상관… 아아아!”
“함부로 행동할 거면… 하, 밖에 나오질 마.”
우희가 고개를 저으며 울었다. 눈물, 콧물, 침이 줄줄 흐르는 얼굴이 뭐가 예쁘다고 무헌이 낮게 신음하며 사정했다. 입을 맞추며 혀를 얽으며 여운을 나눴다. 화장실 바닥에 엉켜 여운이라니 웃기고 추접스러웠으나 우희는 손목이 풀린 뒤 그를 안으며 만족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무헌이 물을 적신 손수건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닦아주며 말하라는 듯 눈을 맞추었다.
“전에 호수에 포대에 던졌잖아. 그거 사람 죽인 거예요?”
미간을 좁혔던 무헌이 제 뒤처리를 마친 종이 타월을 휴지통에 넣으며 말했다.
“분명히 괜히 의미 부여하지 말고 잊으라고 하지 않았나.”
“빨리 말해줘.”
“사람이면. 내가 죽였으면.”
조폭이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긴 할 거다. 그래도 직접 들으니 뒷맛이 떫었다. 이렇게 도착적으로 구는 무헌이 눈이 돌게 되면….
“…나도 죽일 수 있어?”
“그러면.”
“죽이지 마요.”
우희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무헌이 허탈한 듯 웃으며 우희의 셔츠 단추를 잠갔다.
“그거 최 회장 왼팔 유품이었어. 그 새끼가 뒈지면 그 호수에 던져달라고 했거든.”
“사람 아니야? 정말?”
반가운 소리였다. 우희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걸 곱씹으면서 내가 언제 널 죽이려나, 그딴 고민을 했어?”
우희는 작게 안도했다. 혹시 사람을 자주 해치는지 물으려다가 말았다. 사무실로 돌아간 뒤 무헌은 또 뭐에 눈이 돌았는지, 기껏 입혀둔 옷을 벗기며 말했다.
“만약에 내가 죽고 싶어지면, 그때 너도 죽여줄게. 한날한시에 가야지.”
무시무시한 소리가 달콤하게 들리다니, 우희는 웃다가 무헌에게 붙들려 숨이 막힐 정도로 입을 맞추었다. 결국,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무헌의 팔에 안겨 나왔다.
종종 무헌과 처음 관계를 맺은 그 별장을 찾았다. 금요일 업무를 마친 우희는 무헌보다 먼저 시골로 향했다. 무헌은 출장지에서 곧장 오기로 했기에 먼저 외조부모의 집으로 향했다.
수리하고 가구를 전부 바꾼 덕에 치료소 느낌은 이제 나지 않았다. 역시나 새 단장을 마쳐 깔끔해진 마당을 거닐었다. 때 묻은 그네를 손으로 흔들어보다가 뺨으로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을 느끼고 집으로 들어갔다.
뉴스에서 곧 장마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우산 없을 텐데.”
지난번 무헌의 차에서 장 우산을 꺼내쓰고 돌려놓지 않았기에 무헌이 골목 입구부터 걸어올 걸 생각하자 걸음이 바빠졌다. 우산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가는 잠깐 사이에 빗줄기가 꽤 굵어졌다.
이끼가 걷힌 말끔한 돌계단을 밟으며 우희는 상념에 잠겼다.
작년 가을에 무헌을 만났고 해가 넘어가 벌써 여름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에는 온통 무헌이 가득했다.
만개한 무헌의 존재감은 우희를 자유로운 나비로 만들어주었다.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던 우희는 이제 날개를 펴고 이곳저곳을 날았다. 그래 봐야 무헌의 세상 안이었기에 두려울 게 없었다.
결국, 무헌에게 종속될 여정이었기에 하루하루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이란 단어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 우희의 현재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말이었다.
왜 태어났을까 모르겠단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 답을 찾았다. 행복하려고, 무헌을 사랑하려고, 그에게 사랑받으려고 살아왔던 게 틀림없었다. 아팠던 시간마저 그에게 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하자 괜찮은 추억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우산의 끝을 보니, 문득 정두영에게 얻어터지고 방황 중이던 자신을 데리러 왔던 무헌의 모습이 생각났다. 약속한 물건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연한 태도로 불러주던 남자.
그날 우희는 무헌의 울타리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세상의 소리가 모두 멈추고 커다란 우산 아래 단둘이 남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세상과 단절한 채 무헌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욕심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우희는 그와의 시간을 간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흔적을 좇았다. 무헌의 손이 닿은 모든 것과 사진, 목소리가 담긴 파일들을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존재했음을, 두 사람이 사랑했음을 증명해주는 무언가를 더 가지고 싶었다. 욕심은 채우는 만큼 생겨나는 게 분명했다. 우희는 그를 더 사랑하고 싶었다.
다행히 무헌은 우희에게 포기하는 법 대신, 원하는 대로 취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관심을 두면 아낌없이 사들이고 직접 겪어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아마 무엇이든 우희가 제안한다면 그는 그러라 말해줄 것이다.
대문 밖으로 나가니 언제 왔는지 무헌이 담벼락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이 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처럼 기시감이 들었다. 우희는 아리송한 마음을 지닌 채 우산을 그의 머리 위에 씌웠다. 파묻혔던 기억이 드러난 건 무헌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지금 작업 걸어?”
“예전에 여기 온 적 있죠?”
“맛없는 초콜릿이나 받으려고 왔었지.”
초콜릿? 잠시간 머리를 되짚었다. 기억날 듯 말 듯 하다가 무헌이 비뚜름한 시선을 보내오자 번뜩 선명해진 기억이 스쳐 갔다.
하, 우희가 숨을 토해냈다. 그때 그 사람이구나. 무헌이 그때 그 남자였다.
우희가 평소에 보던 그런 덩치들과 다르게 기묘한 분위기를 가진 젊은 남자가 집 앞으로 찾아온 날이 있었다.
밖에 형님이 있다고 모시고 들어와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덩치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 날이었다. 덩치들은 치료가 우선이란 걸 모르는 무뢰한이었다.
형님이 없으면 할복이라도 할 기세였다. 우희는 외조부의 지시로 밖에 있다는 형님을 살피러 나갔다.
그들의 형님이라기에 우락부락한 덩치를 상상했는데, 남자는 젊고 잘생긴 외모로 모델 쪽에 더 어울릴 법한 인상이었다.
세련된 남자는, 그러니까 무헌은 그 나이 때의 남자에겐 없는 기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무심한 눈빛에 너그러운 행동. 그러나 방심하면 물어뜯길 것 같은 위험한 위압감.
안의 덩치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 같았다. 그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호기심이 일었다.
무헌은 차에서 옷을 말리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옷이 찢기든 벗겨지든. 그 누구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어렸을 땐 무릎이 구멍 난 바지를 입고 동네를 쏘다녔고, 보다 못한 장미옥이 번번이 옷을 꿰매주기도 했다.
그만큼 집안사람 아무도 우희에게 관심이 없었다. 10살까지 함께 살았던 정은영마저도 늘 어딘가 넋을 두고 온 것처럼 멍했고 외조부모는 정은영이 앓는 우울증의 원인으로 우희를 꼽았기에 살뜰한 보살핌은 바랄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남자가, 그것도 사람 하나 눌러 죽이는 것쯤은 가뿐한 이가, 우희의 걱정을 해주었다. 그의 의도가 어쨌든 우희는 위로를 받았다.
그날은, 우희의 생일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남자애가 준 초콜릿을 충동적으로 무헌에게 건넸다. 그냥 호의에 대접한 거라 치부하기엔 우희는 그 초콜릿을 버리고 싶었다.
“작업은 그때 무헌 씨가 걸었던 거 아니에요?”
“너 그때 애기였어. 진짜 애.”
무헌이 대꾸했고, 우희가 웃었다.
“그 초콜릿 나 좋아하는 남자애가 준 거예요.”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심기 건드는 건, 계산인가?”
“네. 근데 왜 당신 줬는지 알아요?”
원치 않는 애정은 당시 꽤 괴로웠다. 하필이면 가장 잘나간다는 여자애가 그 남학생을 좋아했고, 우희는 졸지에 친구의 남자를 꼬신 여우 같은 년이 되어 있었다.
우희가 자꾸 피하자 남학생은 거의 겁박하기에 이르렀다.
“당신 같은 사람한텐 걔가 함부로 못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면 조폭 보스한테 줬다고 하려고 그랬어요.”
“내가 쓰레기를 처먹었네.”
무헌이 담배를 벽에 비벼 끄며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잔 연기를 흩뿌리곤 커다란 손으로 우희의 뺨을 문질렀다. 그녀는 거기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완벽한 돔을 상상할 때마다 그때 봤던 당신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이것도 계산이야?”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당신 때문에 이런 성향이 된 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녀가 눈을 뜨자 어둠을 자처한 남자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이 그에게 꿰뚫려 끈 달린 인형처럼 조종되어도 좋았다. 그가 다른 조직의 스파이가 되라고 하면 기꺼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젖어 든 게 아니라, 알을 깨준 게 진무헌이었다면. 아주 오랜 시간 주인을 그리다가 호수에서 그날, 한눈에 알아본 건 아닐까.
“빗속에서 한 번 하자는 소리로 들리네. 여기 짚어봐.”
무헌이 눈짓하는 담벼락은 어느 날 우희가 기대어 울던 자리였다. 괴롭기만 하던 공간이 무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두영을 피해 뛰어가던 골목 입구, 맨발로 넘어야 했던 녹슨 대문, 볕이 잘 들던 2층 골방.
그가 머문 자리에 이야기가 채워진다. 더는 생각할 의지를 잃어,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하던 우희지만 이제 달랐다. 무의식에서 깨어난 새싹처럼 그를 보며 행복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에겐 독일지라도 우희에겐 샘이었다. 무헌이 있어야 연명할 수 있었다.
“개미 한 마리 없으니까 이리 와 봐.”
“오늘 김밥 싸주기로 했잖아요. 나도 누가 싸주는 김밥 먹고 싶어요.”
번들거리던 무헌의 동공이 더욱 짙어졌다. 입꼬리는 느슨하게 풀렸는데 눈매는 뇌쇄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사람 부려먹는 거 맛 들였지.”
“내가 상처받은 어린양 같아서 좋다고 했잖아요. 술 먹고 저번에, 자기가 보살필 수 있어서 좋다고 그랬으면서.”
“기억력이 참 좋아.”
“임신하고 싶어요.”
허, 무헌이 숨을 토해냈다. 마른세수를 하더니 머리를 쓸어넘겼다.
“애 배고 싶어?”
“응.”
콘돔을 하다 말다, 피임약을 챙겼다가 말았다가. 철없는 꼬맹이들처럼 뒹굴었다. 두 사람에겐 아이란 찾아온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존재였다.
암묵적으로 동의한 내용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냥 말해두고 싶었다. 무헌은 뭐든 조잘조잘 떠들어주는 걸 좋아했고, 미리 의사를 밝혀 둬야 안에 많이 싸줄 거란 생각이었다.
“지금 배란기잖아. 김밥 먹을 시간이 있겠어?”
“근데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 건 누구나 하는 고민이지.”
무헌이 손을 뻗어 우희의 어깨를 잡아 옆으로 세웠다. 그러곤 그녀가 높게 들고 있던 우산을 대신 받아들었다.
“네 엄마도 했을 건데.”
“글쎄. 엄마가 날 원해서 낳았을까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원치 않으면 버리지. 굳이 여기까지 데려와서 키웠겠어? 굳이 아빠한테 가라고 유언을 남겼겠냐고.”
수없이 드나들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무헌은 가끔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건넸다. 그가 플라스틱 그네를 눈짓했다.
“정 걱정이면 태어난 애한테 그네나 부지런히 밀어줘. 김밥은 내가 쌀 테니까.”
“아씨, 왜….”
우희가 시큰한 콧대를 억누르는 걸 실패하고 금세 차오른 눈물을 툭툭 떨어뜨렸다. 기다리고 있자, 무헌이 고개를 숙여 입술로 젖은 눈물을 훔쳤다.
“애가 엄마 닮아서 울보면, 머리 아프겠네.”
“애한테 잘해줄 거예요?”
우희가 약간은 염려스럽게 물었다. 무헌이 다정한 건 그녀 한정이기에 아무래도 걱정이었다.
“우희야.”
“응.”
“아직 나무에는 안 묶여 봤지.”
“뭐…?”
“태명을 나무로 짓는 것도 괜찮겠지.”
설마 저기서 역사를…. 그네를 매단 나무가 을씨년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저질.”
무헌이 낮게 웃으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가볍게 내리누르던 촉감은 진득하고 날카롭게 변해 우희를 베고 또 베었다. 그가 금수처럼 무맹한 속도로 우희를 채색했다.
『금수의 자질』 마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