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사로잡히다> (5/6)

<5. 사로잡히다>


우희는 차에 남아 버림받은 개가 되었던 지난 한 시간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왔다. 무헌이 손을 놓는 순간에 끝나버릴 관계란 걸 알고 있었는데도 현실로 다가오자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나락에 떨어진 패배자처럼 공포감에 젖어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다시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랐다.

만약 무헌이 다시 오지 않았다면 직접 그에게 갔을 거다. 기어서라도 갔겠지. 그러곤 무헌이 원하는 대로 모두 하겠다고 꼴사납게 애원했을 거다.

이미 그녀의 중심 깊게 자리잡힌 무헌을 뽑아낼 방법은 없었다. 인정하는 게 늦었으나,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았다.

다만 아직도 불안했다. 무헌의 마음을 확인했으나, 확신할 순 없었다. 평생이란 건, 영원이란 것은 없었다. 지금이야 열렬해도 언젠가는 식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혹여 DS가 빠지면, 무헌이 시들해지진 않을까. 우희가 바닐라 섹스를 할 수 있겠냐고 묻자, 그는 굳이 그래야 하냐며 반문했다.

후엔 우희의 천성을 증명해주겠다며 거실 한복판에서 우희의 바지를 내리게 했다. 무릎 위에 엎드리게 한 무헌은 엉덩이를 서른 대쯤 갈겼다. 엉엉 울며 그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애원한 뒤에 짐승처럼 섹스했다.

목이 졸리고 얼굴에 정액이 뿌려지고 항문에 그의 손가락 두 개가 박히면서 바닥을 기었다. 헛웃음이 터질 만큼 만족스러운 섹스였다.

오늘도 거나한 아침상을 받은 우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통창을 통해 정원에서 통화 중인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걷어 올린 셔츠 덕에 오른팔의 문신이 돋보였다. 한쪽 팔에 감긴 용 문신은 그의 상스러움을 대변했다. 신체 일부에만 새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라도 단정해질 수 있는 무헌의 능수능란함을 녹여낸 것 같았다.

무헌을 바라보는 순간이 평화로웠다. 풍요로운 물결을 누비는 것처럼 아늑하고 잔잔한 일렁임. 설령 그와 섹스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포기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성욕을 이긴 감정을 뭐라고 하더라.

우희가 현실로 돌아온 건 김규호의 전화 때문이었다. 어제 식당에서 무헌과 있는 걸 봤으니 곧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지금쯤이면 무헌이 누군지 알았을 테고, 전화를 받으면 잔소리가 쏟아지겠지.

무헌을 택한 이상 언젠간 부딪혀야 했다. 우희는 체념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희, 네가 그래도 이렇게까지 막 나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막 나가고 있어?”

[무슨 말인지 몰라? 너 지금 그 자식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김규호는 호흡을 거칠게 내쉬며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무헌과 함께 있는 게 그렇게나 화날 일일까.

“삼촌은 어때?”

[말 잘했다. 정두영 그거… 누가 그렇게 만든 줄 알아? 그, 양아치 새끼.]

김규호가 분이 찬 듯 숨을 내쉬었다. 격한 반응에 우희도 괜스레 초조해져 의자에서 일어났다. 순간 정원에서 전화를 받는 무헌과 눈이 마주쳤다.

[진무헌. 너 그 새끼가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우희야, 당장 집으로 돌아와. 혹시 오기 힘든 상황이야?]

“방금 삼촌 얘기하고 있었잖아.”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정두영이 그러더라. 어떤 새끼한테 이유도 모르고 밟혔다고! 뭐 느끼는 거 없어?]

당연히 감동을 느꼈다. 세상에 단 한 번도 없었던 내 편. 무헌이 그걸 해주었다. 다들 김우희가 틀렸다고,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무헌은 우희를 다그치지 않고 정두영을 단죄해줬다.

[아예 사지를 못 쓰게 만들어놨어. 그거 진짜 깡패라고!]

김규호는 그저 무헌이 저지른 폭력 사태에 광분하고 있었다. 우희가 받은 피해에 초점을 맞춘 무헌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러니 무헌이 타인에겐 무해할지언정, 우희에게 안전한 요새였다.

무헌은 여전히 통창을 통해 우희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이리오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머리를 좌우로 흔든 우희는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무헌이 얼마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줄지 아직은 몰랐다.

[진무헌 소재지가 서울이던데, 우희 너 서울이야? 어제도 서울이었잖아.]

“무헌 씨가 나 대신에 복수해준 거야.”

[…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야? 그다음이 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해?]

호수의 포대가 떠올랐으나, 그게 우희가 될 날은 없을 거다. 결혼하자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꿔 우희를 죽일 거였으면 이렇게까진 정성을 쏟진 않았을 거다.

“나 그 사람 계속 만날 거야. 그러니까 오빠가 아버지 설득하게 좀 도와줘.”

[김우희! 곧 총선이야. 지금 네가 조폭이랑 얽히면 되겠어? 너 그 정도로 바보야? 그 정도로 철이 없지 않잖아.]

총선이구나. 김중혁의 중대한 사업이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어디인지 말해. 당장 오 기사 보낼 테니까… 들어와서 얘기해. 그 자식이 가둔 거면 그렇다고 말해. 오빠가 사람을 써서라도…]

-쾅!

갑자기 핸드폰 너머로 굉음이 들려왔다.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낸 뒤 김규호를 불렀으나 답이 없었다. 끊어졌나 싶어서 액정을 살피니 통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오빠?”

욕설, 그리고 다른 남자의 목소리와 김규호의 음성이 마구 뒤섞여서 고장 난 라디오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괜찮은 거야?”

김규호가 불의의 사고에 휘말린 건 아닐까 걱정됐다. 싫은 상대지만, 걱정할 만큼의 의리는 있었다. 한날한시에 음주운전의 교통사고 피해자로 생을 마감한 외조부모가 떠오르며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오빠.”

1분여가량 흐른 뒤에야 김규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 끊었어?]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초조하게 거실을 오가던 우희가 냉큼 답했다. 통화가 길어져서일까. 이쪽을 바라보는 무헌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져 있다.

[갑자기 사고가 나서… 그거 정리하느라. 정차 중인데 뒤에서 들이받았어.]

“사고? 괜찮은 거야?”

[진무헌 똘마니 중에 이명석이라고, 너도 알아?]

“응.”

이명석은 이 실장의 이름이었다.

[그 자식 따라가고 있는데 눈치를 챘는지 차 뒤에서 받아버리네. 깡패 새끼들.]

뭐? 김규호를 향하던 걱정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이 실장님을 왜 따라가고 있었는데?”

[진무헌 뒷조사부터 해야 할 것 아니야. 이명석은 지금 잡으러 갔고, 진무헌은 검찰 조사 들어갈 거야. 탈탈 털어서 뭐 하나 안 나오겠어?]

“…미쳤어?”

[특검 꾸려서 진무헌이 뒤 닦아준 인간들까지 줄줄이 잡아넣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래서 언제 들어올 거야.]

김규호의 행태는 경악스러웠다. 하얗게 질려 그만두라고 소리치려는 우희의 핸드폰을 가져가 종료를 누른 건 무헌이었다. 그녀의 핸드폰이 소파 위로 던져졌다.

“통화가 꽤 기네.”

“어, 어떻게 해요?”

“다른 새끼 때문에 울어?”

울먹이는 우희를 무헌이 넓은 품으로 끌어당겨 토닥였다. 끔찍할 만큼 아늑했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구요.”

“섹스하고 싶어?”

우희가 눈을 치뜨며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오빠가 진무헌 씨를 조사하려나 봐요. 그리고 이 실장님이 오빠 차를 들이받았대요.”

“아 그래?”

우희는 평이한 투로 대응하는 무헌 덕에 속이 빠른 속도로 새까맣게 썩어갔다.

“겁 안 나요? 김규호가 물귀신처럼 당신 물고 늘어지려는 거잖아요.”

무헌이 물러나려는 우희를 끌어당기고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었다.

“여보 당신 할 때 그 당신이지?”

하, 머리가 지끈거리며 한숨이 흘렀다. 우희는 그에게 안긴 채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은 눈이 뒤집힌 김규호를 달래야 했다. 김규호가 다치기라도 하면, 아들에게만 자애로운 김중혁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럼 갈등만 커질 거다.

우희는 개싸움을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변질 되기 전에 김중혁을 만나야 했다. 그녀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면 조금은 틈을 내어줄지 몰랐다.

총선도 마음에 걸렸다. 물론 무헌과의 만남이 떠들썩하게 알려지진 않겠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든지 김중혁의 목을 졸라맬 목줄이란 건 확실했다.

기약 없이 무헌의 뒤에 숨자니, 그건 가족과 절연하겠단 뜻밖에 안 됐다. 김규호를 자극해 무헌을 조사실에 들여앉힐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봐도 최선은 김규호가 더 크게 일을 벌이기 전에, 김중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우선 집으로 가야겠어요.”

“집이라면.”

“아버지 있는 집이요.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요.”

“무슨 얘기.”

“당신한테 피해 주기 싫어요. 나도 그 정도 자존심은 있어요.”

“이러니까 애새끼라고 하는 거지.”

무헌이 거센 손짓으로 우희의 턱을 틀어잡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처럼 그녀는 허약했다. 또한, 빈곤했고 능력이 없었으며 초라했다. 김우희가 보잘것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우희가 영원을 믿지 못하는 건,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값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헌에게 잠깐 반짝일 순 있으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가치를 품고 있다곤 못했다.

무헌이라면 언제든 다른 상대를 골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더욱더 영원이란 단어가 희미했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무헌의 뒤에 숨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내맡길 수 없었다.

“아버지한테 우리 관계 허락받아볼게요.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좋잖아요.”

“네가 원하는 평화적인 방법이 나한텐 없을 것 같아?”

“이 실장님이 오빠 차를 받고, 오빠는 당신을 조사하고. 이게 어딜 봐서 평화로워요?”

“그거야 바로 잡으면 되고.”

“나도 김 의원 딸로서 가치가 있다면서요. 당신처럼은 못해도 협박이든 회유든 해볼래요.”

머릿속으로 정두영, 김규호, 김중혁. 그들이 무헌과 뒤얽혀 싸우는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무헌에게 맡기면 싸움이 더 격해지면 격해졌지, 평탄한 합의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내가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도와주세요.”

“산 하나 넘으니까 또 산이네.”

무헌이 눈썹을 찡그리며 우희의 턱을 놓아주었다. 그에게 잡혔던 곳이 얼얼했다. 우희의 눈가가 젖어 들자 무언가 더 말하려던 무헌이 멈칫했다.

“이건 누구 때문에 우는 거야. 나?”

“그게 중요해요? 내 말부터 들어줘요.”

“…들을 테니까 얘기해.”

우희는 무헌을 설득하기 위해 서랍에 꼭꼭 넣어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흔들거리던 경첩은 어젯밤 나가떨어졌기에 품어둔 사연을 꺼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열 살 때였어요. 그날은 엄마가 참 나한테 잘해줬어요. 평소에는 신경질을 많이 냈는데… 그날은 화도 안 내고 머리도 묶어 주더라구요.”

우희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잠들기 전에 그러더라구요. 만약에 엄마가 죽으면 아빠랑 살아. 아빠한테 가. 잠들 때까지 그 말을 반복했어요.”

“유언?”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일어나니까 집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갔대요.”

떨리는 눈꺼풀을 무헌이 투박하게 문질러주었다.

“꼬맹이 놀랐겠네.”

“엄마 장례식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날 쓱 보고 그냥 가더라고요. 엄마가 같이 살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럴 마음이 없었던 거죠.”

엄마는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고 친부는 아이를 외면했다. 장례식 내내 10살 아이는 정은영의 혹 덩이로 불렸다. 저런 혹을 달고 있으니 인생이 평탄치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라고 사람들은 우희의 눈앞에서 되는대로 지껄여댔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버지가 외할아버지한테 3억을 줬대요. 내 양육비였어요. 그 사실을 1년 전쯤에 알았어요. 장학금이라고 생각한 대학 등록금도 아버지가 내준 거더라구요.”

외조부가 받은 건 우희에겐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김중혁은 그것으로 양육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을 거다. 우희는 그것도 모르고 김중혁이 저를 아예 버린 줄 알고 그를 부단히도 미워하고 그리워했다.

김중혁이 함께 살자고 말했을 땐 정은영의 유언을 기억해내곤 마지막 끈처럼 그를 붙들었고.

“김우희, 네가 부모에게 부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 뒤에 숨어서 모른 체할 순 없어요.”

“그럼 같이 가.”

우희는 고개를 저었다. 김중혁에게 꾸중 듣는 모습을,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빈곤한 모습을 무헌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만은 괜찮은 여자로 비추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녀를 피해자, 정상인으로 봐준 남자에게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녀가 먼저 결판을 지어야 했다. 철없이 행동하고 권리만 찾으려던 비겁한 모습을 바꾸고 싶었다. 초라함을 털어내고 영원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길게 무헌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한 달만 해보고 안 되면 돌아올게요.”

“웃기고 있네. 가면 끝이야.”

거짓말. 우희는 무헌의 목을 감쌌다. 소파 위로 몸이 겹쳐졌다. 돌연 우희의 셔츠를 단추째 잡아 뜯어버린 그의 목울대가 사납게 요동했다.

“개소리하지 마, 김우희.”

그가 나신이 된 우희를 뒤집었다. 머리채를 잡은 채 성기를 삽입했다.

“주는 대로 받아 처먹는 강아지로 살 것이지, 왜 인간 구실을 하려고 할까. 배가 불러서 이래?”

“아아!”

거친 섹스였다. 패들로 가슴과 엉덩이를 얻어맞은 뒤에 무헌의 종아리에 음부를 비비며 압박 자위를 해야 했다. 입에 개그를 물고 구속구에 사지가 묶인 뒤 양쪽 구멍으로 딜도를 꼽은 채 방치당했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밤이 찾아오자 그녀의 목소리가 다 쉬어버렸다. 탈수가 올 때마다 그가 정액을 먹이며 미약하게 정신을 일깨워 놓았다.

“아… 주인님!”

우희는 연속으로 절정에 오르면서도 세이프 워드를 외치지 않았다. 무헌이 뭐에 쓰인 사람처럼 우희를 몰아세웠으나 그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었다.

날이 밝자, 우희는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무헌은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담배를 물고 있었다.

“한 달 뒤에 봐요.”

“여기서 나가는 순간, 난 너 모르는 거야. 학습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데리러 와주세요.”

한 달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여겼다. 그 사이 무헌의 마음이 식지 않으리라, 자만하며 인사했다.

“가서 연락할게요.”

우희가 캐리어를 끌며 돌아섰다. 한 달 전, 이 시골을 찾았던 때처럼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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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는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김중혁을 만나 무헌에 대해 얘기했다. 그와 진지하게 교제 중인 터라 정략결혼은 할 수 없고 유학도 가지 않겠다고 꾸밈없이 얘기했다.

이어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빌었다. 그의 그늘에서 편히 먹고 산 세월이 있으니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사과한 것이다.

우희의 얘기를 들은 김중혁은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 그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우희는 김중혁에게 용서를 구하고 허락을 받으려 애썼다. 그러나 김중혁은 입을 닫고 허락해주지 않았다. 우희가 끈질기게 찾아가자, 김중혁은 혼자 결정해놓고 허락을 구하느냐며 윽박질렀다. 명백한 거부 의사였다.

얼마 뒤, 우희는 김규호가 무헌에게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그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주선혜는 눈물 나는 김중혁의 배려 덕에 이 사태를 알지 못했다.

김규호의 집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은 무료하게 흘러갔다. 그들은 우희에게 다 한때의 감정이라며 시간을 가지고 감정을 추슬러 보라 말했다. 정작 격앙된 건 그들이면서.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기다리다 못한 우희가 김중혁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진무헌이가 누군진 알고 이 난리야! 감수해야 하는 아비 입장을 생각해 줘야지!’

‘그리고 대체 그자가 뭐가 아쉬워서, 널 선택하겠냔 말이다! 널리고 널린 게 혼처인데 왜 너한테 목을 매겠어? 다 그 너저분한 취향 때문이겠지!’

아…. 김중혁은 무헌이 우희를 택한 이유가 그저 성적 취향 때문일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우희는 차갑게 식은 한숨을 토했다.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사랑하고 있다고, 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믿지 않을 게 뻔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우희도 완벽히 신뢰할 수 없는 관계를 증명할 도리는 없었다.

김중혁은 이 모든 것을 무헌의 불장난으로 치부했다. 순진하고 만만한 여자 하나 가지고 노는 게 그에게 어렵겠냐고 따져왔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한 달이 넘어 두 달 가까이 김중혁의 부정적인 견해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가뜩이나 기반이 약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록 무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우희를 괴롭게 했다. 무헌과의 연락은 떠난 날부터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정이라도 떨어진 걸까. 이미 마음이 식었을까. 나쁜 생각만 들었다.

두 달이 흘렀는데도 우희는 여전히 김중혁을 설득하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 안 남은 총선까지 조용히 지내란 압박을 받으며 김규호의 집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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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헌은 어느 날 갑자기 우희 앞에 나타나 변치 않는 소유권을 주장했다. 두 손으로 대리석 바닥을 짚은 우희가 주인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잘못… 했어요.”

아아. 바라왔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등줄기가 쩌릿하게 전율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거다.

“잘못 했어요.”

우희는 아득함에 진저리치며 빌었다.

“좆 맛을 못 잊어서 이러나.”

그의 종아리에 뺨을 비비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와의 섹스가 황홀한 건 사실이지만, 그 전에 할 말이 있었다.

우희는 잠시 섭의 본분을 내려놓고 무헌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만지고 싶었던 눈썹을 손끝으로 덧그렸다.

잘생긴 얼굴을 구석구석 눈에 담자 가슴이 빠듯했다. 무언가로 꽉 차서 넘칠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그리움이 역류해 눈물이 고여 들었다.

“건방지게 굴지 마.”

“나 이제 그러면 안 돼요?”

무헌이 제 얼굴을 감싼 손을 떼어내며 한숨 쉬었다.

“너는 나를 아주 하찮게 만들어. 고작 이딴 거에 홀딱 넘어가서 화난 걸 잊어버리고. 자지 세우고선 박고 싶다고 헐떡거리게 되지. 이래서야 누가 개인지 모르잖아.”

“보고 싶었어요.”

“세상의 쓴맛을 좀 알았나?”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 데리러 온 거 맞죠?”

무헌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봐, 밤마다 눈물을 찔끔거렸다. 베개가 젖도록 서러워했으나 그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문밖으론 경호원이 대기했고 무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싫어진 줄 알았어요. 전화가 안 돼서…. 정말 버린 줄 알고.”

흐윽, 눈물이 뚝뚝 흘러넘쳤다.

“근데, 흐윽… 호텔 일을 하는 건… 나 때문이에요?”

그의 비서가 바뀐 명함을 내밀었을 때 무헌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왔는지 직감했다. 물어놓고선 혹시나 무헌이 코웃음 치며 뭘 착각하느냐고 말할까 봐 긴장했다.

“그래, 김우희가 좋아할 만한 거로 달아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그런 거면 연락이나 받지.”

“기다려줘서 감동이긴 한데, 그것보단 믿는다고 말해 봐.”

자세히 보니 무헌의 턱선이 날렵해져 있었다. 살이 빠진 걸까. 인상이 더 날카로워 보였다. 가슴이 술렁거렸다. 어쩌면 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헌의 세상이 김우희로 차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믿어요. 믿기로 했어요. 그래야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하여간, 꼴통.”

“키스하고 싶어요.”

“고작 그런 거로 성이 차?”

우희가 달려들어 입술을 부딪쳤다. 그 뒤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혀를 섞고 입술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무헌의 손이 지체하지 않고 얇은 팬티를 찢었다.

“이딴 거 입고 다니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말을 더럽게 안 들어.”

“흣…. 혹시 만날까 봐.”

“나 만날까 봐, 보지 벌릴 준비했어? 이렇게 애타게 기다릴 걸면서 집은 왜 나가.”

“다신 안 그럴…. 흣.”

“그간 여기 쑤시면서 내 생각은 좀 했나?”

무헌이 젖은 구멍 입구를 휘휘 저으며 물었다. 애액이 흥건했으나 구멍이 부쩍 좁아져 손가락 하나 받는 것도 힘들었다.

“매일 생각했, 으응!”

그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진 않았지만 깨어 있는 내내 무헌을 그리워했다.

“난 너 때문에 몽정했어. 하루도 빠짐없이.”

“아읏!”

“사춘기로 돌려줘서 고마워해야 하나.”

“아, 좋아…!”

손가락 두 개로 밑을 늘리며 입을 맞추었다. 툭툭 맑은 물이 튈 때까지 밑을 헤집는 과정이 계속됐다. 잠시 뒤 우희를 그대로 안아 든 그가 가까운 벽으로 향했다. 그녀의 등을 기대게 하고 풀어놓은 구멍에 귀두를 맞추었다.

“아, 안 들어갈 거야…!”

“들어가. 안 들어간 적 없잖아.”

“오랜만이라… 흣!”

“오랜만이라서 맛있다는데. 좆대가리 끊어지게 씹고 있으면서.”

“아…!”

바둥거릴수록 귀두가 구멍 주름을 밀어젖히며 깊게 들어왔다.

“아응! 이, 나쁜!”

“몰랐어?”

무헌이 가차 없이 뿌리까지 우희의 안에 파묻었다. 우희가 잘게 경련하며 헉헉거렸다.

“이러니 눈이 돌아가지.”

우희가 흘리는 눈물을 핥아 올리며 무헌이 허리를 뒤로 내뺐다.

“자, 잠깐…. 아아!”

“잘 잡아. 놓치면 더 좆 같이 박을 거야.”

우희는 필사적으로 무헌에게 매달렸다.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벌리며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던 무헌의 이마로 실핏줄이 비쳤다.

“깊게, 박아… 응, 줘.”

짧은 욕설과 함께 무헌이 격한 추삽질을 시작했다. 몽둥이가 밑을 후빌 때마다 별이 번쩍번쩍 튀었다. 아무런 플레이 없는 삽입 섹스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흥분되고 좋은 거지. 플레이가 아님에도 거대한 충족감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안 돼. 아….”

“하….”

무헌의 복근이 팽팽하게 부풀었다가 진한 골을 만들며 수축하길 반복했다. 그는 힘들지도 않은지 우희의 등이 벽에 쓸리지 않도록 번쩍 안아 들고서 골반을 쳐올리는 것에 열중했다.

“아흣….”

두 달 전에는 불규칙한 생리 때문에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콘돔을 끼지 않은 채 삽입했으니 임신의 위험이 있었다. 가임기가 아니란 생각이었을까. 우희는 쫀쫀한 질벽으로 무헌의 페니스를 잡아 뜯으며 흐느꼈다.

“아! 빼지 말고, 안에…! 으흣….”

“욕심이 많아.”

“으응, 먹고 싶… 어. 흣…!”

무헌과 시선을 맞췄다. 역동적으로 밑을 맞추면서도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게 서로에게 고정되었다.

“맛있게 먹어 봐.”

“아흣!”

골이 흔들릴 만큼 밑이 치받쳤다. 어느 순간 귓바퀴를 씹으며 무헌이 길고 긴 사정을 했다. 우희는 반으로 접힌 채 고개를 젓다가 애액을 분수처럼 터뜨렸다.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처럼 헛소리까지 중얼거렸다.

“아, 가지 마. 온다고 했, 응 잖아….”

사정의 여운에 취한 무헌이 갈라진 목소리로 웃으며 옴찔옴찔 수축하며 나가지 말아달라 조르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무헌이 애액에 젖어 엉킨 음모를 손끝으로 간지럽히다가 침대로 움직였다. 정신없이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도 전부 벗었다.

하얀 허벅지를 밀어 올린 그가 우희의 음부에 입술을 박았다. 쩝쩝 게걸스럽게 음액을 마시고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정액을 혀로 닦아 다시 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에겐 오아시스보다 귀한 생명수였다. 다만 아껴먹지 말란 듯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좁은 구멍을 들락거리며 혀가 얼얼하도록 처박고서도 부족해서 음핵을 세차게 흡입했다.

“아, 아! 그만!”

무헌은 그의 머리를 쥐어뜯는 우희를 가소로워하며 혀를 뾰족하게 내밀어 힘차게 털어댔다. 허리를 튀며 경련하는 우희의 엉덩이를 높게 들었다. 하늘을 향하게 한 두 구멍에 무헌의 짙은 호흡이 뒤덮였다.

“하나는 진분홍이고 하나는 연분홍이네, 우리 강아지.”

“흣, 말하지 마아….”

무헌이 코를 내려 애액이 잔뜩 낀 주름을 빨았다. 역시나 쫀쫀하게 무헌의 혀끝을 조여왔다. 무수한 주름이 혀를 끊어뜨릴 듯이 단단한 힘으로 조여들었다. 무헌은 바득바득 혀를 세워 구멍을 벌려냈다.

“읏, 아! 찢어져!”

“안 찢어지려고 푸는 거지.”

“왜, 아읏!”

목이 접히고 무릎이 어깨 위로 붙다시피 한 우희의 처참한 자세에 무헌은 흥분했다. 찌부러진 젖가슴을 주무르며 촉촉하게 젖은 주름을 젖혀 혀를 쑤셔 넣었다. 탄력 높은 구멍은 쉽사리 틈을 내주지 않아 턱이 아릴 때까지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혀의 반쯤이 기어코 뒷구멍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우희가 엉덩이를 흔들며 발버둥 쳤다.

“아, 더러워…! 그만!”

“네 건데 달지.”

“미쳤, 아아아!”

유난히 살집이 몰린 엉덩이를 매섭게 내려쳤다. 그래 봤자, 평소의 플레이에 비하면 아주 약한 강도였는데 울컥, 밑구멍에서 애액이 기어 나왔다.

뒷 주름을 실컷 희롱하다가 혀를 빼도 동그란 구멍이 생겨 뻐끔거릴 무렵 물러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무헌이 제 위로 우희를 끌어왔다. 침을 흘리며 축축 늘어지는 우희가 귀여웠으나, 벌써 지치면 곤란했다.

“눈 떠야지. 지루해?”

“흣….”

군침을 줄줄 흘리는 귀두를 질구에 대고 문지르다가 우희의 골반을 들어 단숨에 주저앉혔다. 흐물거리며 방심하던 우희가 악을 지르며 엉덩이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아아아아!”

뜨끈한 물이 무헌의 배와 우희의 엉덩이를 적시고 시트로 흘러내렸다.

“배뇨를 하려면 말을 해야지.”

“아흣, 아흐으… 어떻, 어떻게 흐응!””

우희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도망가려는 엉덩이를 잡아 강하게 스팽한 무헌이 골반을 쳐올리며 우희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으응!”

시원하게 싸재낀 소변 덕에 척척척,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아, 안 돼…. 읏, 응!”

“주인한테 오줌이나 뒤집어씌우고, 못 쓰겠네.”

“아! 읏!”

눈이 풀린 채 쌕쌕대는 우희의 신음이 그를 부추겼다. 무헌은 도통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몸 사이에 갇혀 짜부라진 젖통 어딘가에서 발기한 유두가 그의 상체를 긁어대고 있었다.

우희의 등을 끌어당기며 헤벌어진 입술에 손가락을 물렸다.

“네 뒤로 들어갈 거야. 정성껏 핥아.”

“으음….”

입을 벌린 우희가 두툼한 무헌의 손가락을 막대사탕이라도 되듯 아주 맛있게 핥아댔다.

“키스하듯이 혀 써 봐.”

“흐음….”

무헌은 시트에 발을 대고 허리를 쳐올리며 우희의 입안을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치아를 훑고 입천장을 더듬은 뒤 목젖을 쑤셔 진한 타액까지 토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젖은 손가락을 뒤로 가져다 댔다.

“엉덩이 벌려.”

흥분에 감긴 목소리로 말하자 무헌의 가슴에 늘어진 우희가 뒤로 손을 가져가 엉덩이를 벌렸다. 우희는 초점을 잃고 빨리 쑤셔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끝내주는데.”

무헌이 웃으며 아까 풀어둔 뒷구멍에 중지를 찔러넣었다.

“아흐흣!”

“어때.”

“너무 커, 으응….”

“손가락 하나 가지곤 만족 못 하는 게.”

“아읏! 진짜야… 흐응!”

주인님인지 애인인지 구분 못 하고 아무렇게나 칭얼거리는 쪽도 그의 취향에 부합했다. 아니 우희의 모든 것이 무헌의 취향이었다.

좆과 손가락 두 개를 교차해 찔러넣었다. 엇박자로 쑤시다가 동시에 공격하자 우희가 경련하며 절정에 올랐다. 흰자위를 보이며 비명을 지르는 우희의 허리를 세워 마주 앉았다.

갈증 난 입을 크게 벌려 유두를 삼켰다. 하얀 젖가슴을 붉은색으로 난도질해놓고 피가 맺힐 때까지 빨아댔다.

조금 전, 천 조각 같은 원피스를 입은 우희를 봤을 때 뽀얀 피부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고환이 움찔거렸다. 축 늘어진 우희를 잡아 정액을 푸지게 싼 뒤 성기를 빼지 않고 다시 움직였다.

우희는 혼몽한 얼굴로 질척한 키스를 받아내느라 무헌의 페니스가 다시 흉기로 변해가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아, 이 괴물…! 그만, 진짜 아파… 흐읏!”

우희를 엎어두고 뒤에서 박았다. 무헌은 허벅지를 양옆으로 넓게 펼친 모양으로 그녀에게 올라타 엉덩이를 때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검은 음모가 우희의 엉덩이에 비벼졌다.

“이거, 좋… 아! 좋아.”

우희가 손을 뻗어 음핵을 차지게 후려치는 무헌의 고환을 만지작거렸다. 작은 손이 미끈거리는 애액을 뒤집어쓴 주머니를 살살 굴리자 사정감이 치솟았다.

“이것도, 으응! 커…! 흣!”

“아, 씨발.”

“하으… 천천히!”

무헌은 사정이 임박한 몽둥이를 빼내 머리채를 잡은 그녀의 얼굴로 가져갔다. 시뻘겋게 물든 얼굴 위로 정액을 이리저리 쏘아대며 포식을 즐겼다. 혀를 내밀며 정액을 받아먹으려는 게 귀여워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무헌이 나른한 기색으로 귀두를 우희의 눈물점에 비볐다.

“우희야, 이제 헛짓하지 말고 내가 주는 거나 처먹으면서 살까.”

“흣, 응….”

고분고분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의 시간이 우희에게도 길었단 소리로 들려서 포만감이 깊어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뭘 목표로 하는지. 전부 바뀌었어, 너 때문에.”

“흣….”

“우희야, 들어야지.”

“아…. 그만.”

말랑해진 귀두를 입술로 쑤셔 넣으며 무헌이 말했다.

“내가 사랑한다잖아.”

“흐음….”

말도 못 하게 뒷머리를 잡아 입술에 좆을 찔러넣으며 그가 태연히 손등으로 우희의 뺨을 툭툭 쳤다.

“사랑해서 혼내는 거니까, 너무 서러워 말고.”

“흐음…!”

찰싹. 꽤 아플 만큼 손등으로 뺨을 후려치자 가물거리던 우희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흐으응!”

“더?”

“흐응!”

눈물을 달고 허벅지를 비벼대는 게 더 맞고 싶어서 안달 난, 변함없는 무헌의 강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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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헌은 햇살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닫힌 커튼을 확인하고 침대 위로 눈길을 보냈다.

우희가 낯선 침대를 투정 없이 사용하는 게 기특하다만, 아무 데서나 머리만 대면 자는 건 아닌가, 하는 하찮은 걱정이 밀려들었다.

두 달 만에 만난 우희였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실물로 접한 그녀는 무헌의 이성을 몽땅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우희에게 달려가지 않기 위해 억누른 수많은 밤을 보상받듯 새벽 내내 그녀를 몰아붙였으나 여전히 목말랐다. 무헌은 기절한 우희를 두고 객실을 빠져나왔다.

지난 두 달간 그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붙여놓은 수하를 통해 우희가 종종 가족과 함께 파티나 모임에 참석한다는 걸 꿰고 있었으니. 무헌은 그때마다 오늘을 기다리며 인내했다.

처음엔 그렇게 떠나버린 우희에게 화가 났으나 단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가 원하는 걸 이뤄주면 될 일 아닌가.

우희가 바라는 대로 평화적인 협상을 궁리했다. 호텔까지 거머쥘 생각은 없었으나 그게 빠른 방법이란 생각이 들자 그 뒤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무헌은 아득바득 외조부를 꺾고 거머쥔 왕좌를 아쉬움 없이 내려놓았다. 전문 경영인을 세워 뒤로 빠진 후엔 그룹의 호텔 경영권을 넘겨받는 과정을 밟았다. 거미줄처럼 얽힌 법과 규칙을 뚫기 위해 무헌은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 써야 했다.

어찌 보면 우희 덕에 효도한 셈이었다. 무헌의 친가는 그가 외조부의 명맥을 잇는 걸 탐탁지 않아 했으니까. 공석이던 호텔 대표 자리는 금세 무헌의 옷인 양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제 준대 호텔의 대표로서 김중혁의 자랑스러운 사위가 될 일만 남았다.

-똑똑똑.

무헌이 리조트 레스토랑의 개별 룸을 두드렸다. 미리 도착해 있던 김중혁이 묘한 표정으로 무헌을 향해 인사했다.

“들어오시지요.”

무헌이 자리에 앉기 전 말했다.

“아시겠지만, 우희와 만나는 진무헌이라고 합니다.”

그 상대가 우희가 아니라면 협상엔 자신 있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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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우희는 손으로 머리를 빗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온몸이 욱신대는 게 죽을 맛이었다. 어제 욕실 어디쯤에서 기절한 것 같은데….

무헌은 객실에 없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 아니라면 어제의 일을 꿈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허전한 침대를 약간 침울하게 보다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룸서비스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옷부터 입었다.

무헌이 준비해둔 옷은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였다. 드디어 그의 곁이란 실감이 이런 때 났다. 우희가 옅게 피식거리며 티셔츠에 목을 끼웠을 때였다.

서류 봉투를 든 무헌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다녀와요? 전화 안 받던데.”

“금수 될 준비는 됐나.”

옷을 거꾸로 입은 탓에 다시 팔을 빼며 우희가 되물었다.

“금수…?”

“김 의원이랑 얘기 다 됐으니까 허락받겠다고 설칠 필요 없어.”

“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래. 환영해주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던데.”

지난 두 달만 봐도 김중혁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무헌이 거짓말을 하나 싶어서 우희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그래요? 설마 돈 준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받겠대요?”

“비슷하지. 떡을 치든 연애를 하든, 손주를 줄줄이 낳든 이제 아무 말도 못 할 거야.”

우희가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룸서비스 메뉴판을 펼쳤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약간은 충격받은 마음으로 메뉴를 골랐다. 더듬거리며 룸서비스를 시키고 나자, 테라스에서 담배를 태우는 무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도 안 돼서 김중혁의 마음을 완벽하게 돌렸다는 걸까.

호텔 대표 명함이 어떻게 쓰였을지, 그리고 김중혁이 어떤 마음으로 무헌을 받아들였을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허무하기도 허탈하기도 한데, 무헌이 대단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이마를 짚은 우희가 어기적거리며 테라스로 나가자 무헌이 코트를 열었다. 이어 온기가 가득한 품으로 우희를 당겨 감쌌다.

“야외 플레이는 집에 가서 하자, 춥다.”

“어떻게… 아버지가 뺨을 때리거나 그런 건 아니죠?”

무헌이 정말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 눈까지 휘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아무리 김중혁이 정신 나갔다고 하더라도 무헌의 뺨을 쳐올릴 순 없었겠지.

“청와대까지 올려주겠단 약속을 했지.”

“…그렇게 막 약속해도 되는 거예요?”

그 말을 덜컥 믿은 김중혁도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래, 쉬워. 우희야, 난 다 쉬워.”

호텔 대표 명함을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나 그렇게 믿어요?”

“제발 그래 봐.”

고집부리며 떨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결국, 무헌의 그늘에 무임승차할 걸 왜 시간을 끌었을까.

“…미안해요.”

담배를 비벼끈 무헌이 콧대를 내려 우희의 목덜미를 핥았다. 고개를 젖히며 무헌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앞으로 김 의원 돈 필요하면, 너한테 받아 갈 거야.”

“무슨 돈?”

“김 의원한테 검은돈을 퍼주기로 약속했는데, 그냥 주면 아쉽잖아. 김 의원이 네 손을 통해 직접 받아 가게 해놨지.”

자신에게 손 벌리는 김중혁이라니,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은혜를 갚는 건지 기만하라는 건지 의도가 참 시꺼멨다. 진짜 금수라도 되라는 걸까. 정말 무헌다웠다.

“김규호 앞길도 보장될 거고.”

“검찰 쪽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요?”

“내 돈 가져다 쓴 인간들, 장부라도 보여줘?”

우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거절을 표했다.

최 회장이 나이트클럽으로 키운 조직은 도박장과 나이트, 사채, 건축 용역으로 확장해 거대한 사업체가 되었다. 그걸 무헌이 흡수하며 교묘한 방식으로 대한민국 수뇌부에 둥지를 틀었다고 김규호를 통해 들은 바 있었다.

정말 그에겐 모든 것이 쉬울지 몰랐다. 그걸 믿지 못해 어리석게 행동했다.

“표정이 왜 그래. 뭐 씹은 것처럼.”

“아직 반성 중이에요.”

“할 거면 키스로 갚아 봐.”

우희는 뒤꿈치를 들어 올려 무헌의 입술을 훔쳤다. 서툰 키스에 흥분한 무헌이 우희를 집어삼켰다.

룸서비스가 애타게 벨을 누르다 돌아갔을 무렵, 우희는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성기가 가랑이 사이를 푹 꿰뚫었다.

무헌이 침대가 부서질 것처럼 격한 피스톤질을 하며 우희를 이리저리 뒤집어 박았다. 질 내에 깊숙이 사정한 그가 흐트러진 머리를 쓸며 일어났다.

이제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가늘게 소리치며 우는 그녀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세면대에 우희를 앉혀놓곤 다리를 벌리게 했다. 무헌이 들고 온 건 쉐이빙폼과 면도기였다.

“…뭐하려구요?”

“전부 벗겨놔야 도망갈 생각을 안 하지. 가만히. 움직이면 다쳐.”

무헌은 두 달간 속 썩인 대가로 빽빽한 삼각지와 부드러운 구멍 주변의 털을 싹싹 밀어버렸다.

면도기를 내던진 무헌이 민둥한 보지 위에 샤워기 헤드를 가져다 대고 수압을 높였다. 음핵이 빨갛게 충혈될 때까지 고문이 지속됐다.

목이 쉰 우희가 허벅지를 달달 떨며,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마안…. 잘못, 흐윽… 했어요.”

“좀 커진 것도 같고.”

음핵을 손으로 비틀던 무헌이 몇 발 뒤로 물러섰다. 팔짱을 끼고 서서는 세면대에 반쯤 누워서 밑을 벌리고 있는 우희를 감상했다.

“흐읏….”

“진짜 애새끼가 됐네. 구멍도 좆만해선.”

“흐으, 흐윽….”

“앞으로 열심히 쑤시고 만져서 늘려놔. 퇴근하자마자 박게.”

우희를 둔 채 욕실 밖으로 나갔다 온 무헌의 손에 볼펜과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아까 가져온 서류 봉투에서 꺼낸 것 같았다.

“그게 뭐예요?”

“혼인신고서.”

멍하게 흐려졌던 우희의 동공이 차츰 맑아졌다. 그녀가 눈을 비비며 허리를 세워 앉았다.

“혹시 아버지가 결혼하는 조건으로 허락한 거예요?”

“아직도 머리가 안 굴러가?”

옅게 숨을 퍼뜨린 무헌이 종이를 내려놨다. 서류의 빈칸은 정갈한 글씨로 전부 채워져 있었다.

“갑자기 이건 왜… 잠, 아아!”

볼펜의 손잡이가 질구로 들어와 푹 박혔다. 무헌이 몸을 바들바들 떠는 우희의 허리를 잡아 세웠다. 너무 운 탓에 엉덩이 밑에 깔린 서류가 흐릿하게 보였다가 말았다가 했다.

“사인부터 해. 확실하게 묶어 둬야 헛짓거리할 때마다 잡아 오기 편하겠지.”

“아, 안 해…. 흣. 이제 안 해요.”

“사인.”

암흑 같은 눈빛에 떠밀려 우희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나 밑으로 볼펜을 끼우고 제대로 된 사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낙서 비슷한 것만 힘없이 서류 위를 덧그렸다.

“하기가, 싫어?”

“아니이… 흣. 어떻게….”

“내려와서 엎드려.”

세면대에 가슴을 대고 엎드린 우희는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맞았다. 혼미한 탓에 숫자를 세다가 자꾸 틀렸고, 나중엔 뒷구멍에 볼펜을 하나 더 끼운 채 엉엉 울며 빌었다.

“저는 진무헌 거예요. 흐읏…. 진무헌 거예요. 사인, 하게 해주세요. 손으로 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결혼하고 싶기라도 해?”

“네. 결혼하고 싶어요. 제발…. 제발…. 흐응….”

푹. 뒷구멍에 볼펜 하나가 더 들어왔다. 자꾸만 불어나는 볼펜에 겁이 났다.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면서 사인을 하겠다고.”

“네. 네! 하, 할 수 있어요.”

“허공에 대고 연습해 봐.”

양쪽 구멍에 볼펜을 박은 채 우희는 벌게진 궁둥이로 허공에 이름을 썼다. 전신이 벌게질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나만 보기 아깝네.”

“흐응…. 주인님.”

어설프게 무릎을 꿇고 무헌의 다리에 매달려 빌었다. 씻고 나간 뒤에야 우희는 이미 자신의 도장이 찍혀 있는 진짜 혼인신고서를 볼 수 있었다.

“나쁜 새끼….”

침대에 엎드린 우희가 중얼거렸다.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해?”

“들리라고 말한 거예요.”

엉덩이에 약을 발라주는 가증스러운 손길이 좋아서 눈물을 찔끔 흘리다가 옆으로 돌아와 안아주는 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째깍째깍. 초침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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