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덫에 걸려> (3/6)

<3. 덫에 걸려>


무헌의 별장에 불려간 뒤 3일이 흘렀다. 꿰맨 곳이 잘못됐다는 연락이 올까 조마조마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근히 아쉬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깨닫고 머리를 베개에 비볐다.

“정신 차리자.”

일찍 일어나는 일이 덧없이 느껴져서 최대한 뭉그적거렸다. 진동하는 바닥을 더듬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잠이 홀딱 깼다. 새어머니 주선혜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곤 벽에 기대어 앉았다.

“네.”

[잤니?]

“그냥 누워 있었어요.”

[늦게까지 놀다… 들어갔니?]

조심스레 묻는 주선혜의 음성에 염려가 묻어났다. 이 시골에 밤늦게까지 놀 곳이 어디 있다고 이러실까. 태어나자마자 황금 젖병을 물고 우아하고 고귀한 것만 보고 자란 주선혜라지만 시골 물정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김규호의 입을 통해 우희가 찾은 BDSM 클럽에 대한 설명을 들은 주선혜가 물잔을 떨어뜨리며 소스라치던 장면이 다시금 먹구름처럼 자욱하게 밀려왔다.

“여기 주변에 놀만 한 게 뭐가 있겠어요.”

[카지노는 안 가니?]

“도박에 취미 없어요.”

[해도 취미로만. 무슨 말인지 알지? 혹시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하렴. 사람 보낼게.]

불편한 건 아침부터 걸려온 주선혜의 전화였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우희는 자꾸 죄인이 됐다. 머저리가 됐고 오염물이 되어 가족의 명예를 얼룩지게 했다. 차라리 우악스럽게 손목을 잡아끌던 이 실장이 마음은 편할 만큼 주선혜가 껄끄러웠다.

안 보이니 좀 낫달까. 집에서 진작 나올 것을 그랬다. 아무리 정은영의 유언이 김중혁과 함께 사는 거라지만, 잠깐 나올 순 있었는데 너무 참았다.

혼자가 됐단 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청승을 떨었던 건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한 번도 혼자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아뇨. 불편한 것 없어요. 지내기 좋아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렴. 용돈은 있니?]

“여기 돈 쓸데가 어디 있어요. 그럼 끊을게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종료했다. 죄 없는 주선혜를 향한 최대한의 반항이자 불편함의 표출이었다.

“하아….”

시계를 보니 10시다. 슬슬 허기가 졌다. 오늘은 뭘 만들어 먹지. 생산적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리며 일어났다.

우희는 장미옥네 슈퍼를 찾았다가 안채로 끌려가 청국장 한 그릇을 얻어먹곤 평상에 앉아 소다 맛이 나는 쭈쭈바를 먹었다. 상을 치운 장미옥은 잠시 은행에 다녀오겠다며 가게를 비웠다. 그동안 슈퍼를 봐야 할 의무가 생겼다.

누가 올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문이 활짝 열린 슈퍼를 두고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말랑해진 쭈쭈바를 잡은 손바닥이 시려 상의 소매를 쭉 빼서 쭈쭈바를 감쌌다.

검은 세단이 골목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차 두 대가 더 들어왔다. 흔한 조폭 손님인가 싶어서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쭈쭈바 국물을 마저 들이켜고 양철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나자 가장 앞의 차 조수석이 열리고 덩치가 내렸다.

유도 선수처럼 덩치가 큰 남자는 이 실장이었다. 우희를 알아본 그가 두꺼비 같은 손을 들어 아는체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의사 선생 아니냐.”

“안녕하세요.”

“뭘 그렇게 맛있게 먹냐. 맛있냐?”

“드릴까요? 하나에 천 원이에요.”

“인제 장사도 하게? 장 씨는 어디 가고.”

“은행가셨어요.”

보폭이 큰 걸음걸이로 슈퍼 안으로 들어간 이 실장이 진열대를 둘러보더니 라면과 음료수, 즉석밥 등을 골라 담았다. 우희는 계산대에서 기다렸다가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56300원인데, 300원 깎아드릴게요.”

“계산 잘한 거 맞냐? 덤탱이 아니고?”

이 실장이 웃으며 물었다. 농담인 걸 아는데도 따라 웃어지질 않았다. 잇따라 멈춘 두 대의 차를 흘긋대느라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혹시 무헌도 저 차에 있는 걸까.

“많이 팔아라.”

“안녕히 가세요.”

계산을 마치고 슈퍼를 나서려던 이 실장이 뒷머리를 긁으며 돌아섰다.

“아, 그리고 형님이 너 보수는 주지 말라고 하는데 어쩌냐.”

“보수요?”

“그래, 치료비. 너 그날 뭐 잘못했냐?”

무헌의 알몸을 빤히 보다가 뛰쳐나온 잘못이 얼마나 큰 죄인지 판단이 내려지질 않았다. 우희는 입술을 달싹대다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근데 치료비는 안 주셔도 돼요.”

“그래라, 그럼.”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슈퍼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라 평상으로 향하던 우희는 가운데 정차한 차의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마를 드러낸 포마드 스타일을 한 무헌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우희의 심장이 바닥까지 쭉 미끄러졌다. 무헌은 전보다 더 거센 파도를 몰고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심장이 조였다가 뛰었다가, 그에게 달려들고 싶다가 도망가고 싶어진다. 차라리 그냥 엉엉 울고 싶었다. 저 남자가 대체 뭐길래, 무슨 존재길래 이렇게까지 사람을 혼란하게 할까. 눈을 딱 감고 그냥 한 번 걷어차 달라고 해볼까. 하지 못할 말들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창문이 전부 내려가자 말끔하고 차가운 인상을 지닌 남자가 가까이 오라 눈짓했다.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우희는 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슬리퍼에 밟힌 뾰족한 돌멩이를 짓누르며 우희는 조각난 이성을 끌어모았다. 그녀는 어른이었고 성욕 정도는 가뿐히 누를 수 있었다. 그래야 했다.

“이젠 과자도 팔아? 이곳저곳 지분이 많나 봐.”

무헌이 감정 없는 눈으로 물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기억이 안 났는데,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떠올랐다. 준대 그룹 오너가의 일원 진무헌. 뉴스에 나오거나 행보가 기사화될 만큼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선혜가 신부 수업의 일환이라고 던져준 상류계의 중요 인물 프로필에서 본 적 있었다.

그의 정보가 다른 형제나 사촌에 비해 극도로 적어서 이상하다고 여긴 기억이 있다. 무헌이 지저분한 일을 도맡는 그림자 쪽이었다면 베일에 가려진 게 말이 됐다. 한마디로 그는 위험하고 복잡한 남자였다.

이런 남자와 얽혔다간 조용히 지내란 김중혁의 당부를 지키지 못할 게 뻔했다. 수렁에 자진 입수한 뒤 허우적거릴 미래가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사고를 치면 곧장 결혼식장으로 던져질 거다. 우희는 그 점을 명심했다.

“살 거 있으세요?”

“일단 타.”

“왜요? 저 슈퍼 봐야 하는데.”

“왕진부터 해. 네가 내놓은 칼자국 때문에 골치가 아파.”

칼자국? 새까만 창문이 다시금 올라가고 무헌의 눈만 남았을 때, 찰나 맞닿은 시선이 갈고리처럼 우희를 끌어당겼다.

우희는 마치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재빨리 슈퍼의 문을 닫아두고 왔다. 일이 있으면 문만 닫고 가라는 장미옥의 말이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위험한 것을 알면서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녀에게 있었다.

덩치 하나가 무헌이 앉은 반대쪽 차 문을 열었다. 눈을 부라리며 얼른 타라는 무언의 재촉에 얼른 몸을 욱여넣었다.

내려야 한다. 실수했다. 차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차 밖에서 보는 것과 지척에서 그를 마주하는 건 확연히 달랐다. 마치 무헌만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덫인 줄 알면서 뛰어들고선 놀라 도망가려는 꼴이라니, 한심함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몇 번이나 그를 봤다고, 그를 얼마나 안다고. 꼬리를 흔들며 주인으로 섬기고 싶은 걸까.

정신병이 아니냐고 윽박지르던 김중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페로몬에 압도당한 누에 나비처럼 교미 자세를 취하고 싶은 본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우희는 두 손을 말아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무헌 쪽을 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 괜찮을 거란 빈약한 임기응변이었다.

“장태이 구속됐는데, 알아?”

“장태이요…?”

장태이. 그 이름이 가져온 폭풍이 한 박자 늦게 머리를 강타했다. 우희가 다니던 BDSM 클럽에 마약을 푼 공급책의 이름이었다. 김규호에게 들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무헌이 장태이의 이름을 거론한다는 건 우희가 클럽에서 어떤 식으로 연행되었는지 알고 있단 뜻과 비슷했다. 마음만 먹으면 클럽 회원 명부까지도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이니 우희의 치부 정도는 가볍게 파헤칠 수 있었을 터다.

그렇다는 건… 우희의 취향도 안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놓친 미아처럼 머리가 새하얘졌다. 수치스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를 두고 한 수많은 상상을 들킨 것처럼 입안이 건조해졌다.

“장태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애새끼가, 약에 손댔을 리는 없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무헌의 날 선 시선이 우희를 향했다.

“클럽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던데.”

우희가 클럽을 찾은 목적을 추궁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헌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챈 것처럼, 더러운 음욕을 모두 꿰뚫어 본 것처럼 그의 입술 끝에 조소가 걸렸다.

“섭?”

덜덜거리는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 했으나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입 밖으로 내놓기 아찔한 성향을 무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들켜버린 이 상황에 흥분했다.

“아니면 마조.”

그가 태연하게 턱을 매만지며 취향을 물어왔다.

“둘 다인가.”

이런 얘길 아무런 쿠션도 없이, 앞 좌석에 타인을 두고서 태연하게 묻는 무헌은 역시 무서운 사람이었다. 거리낄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에겐 이런 말이 쉬울지 몰라도 우희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들켜도 무헌에게만 들켰으면 했다.

우희는 안경을 벗고 손목 안쪽으로 뜨거운 눈두덩을 번갈아 눌렀다. 축축한 물기가 묻어났다.

“내가 보기엔 둘 다 같은데. 바닥을 기면서 매질 당하고 울부짖는 김우희라니, 어울려. 천직으로 보이는데 왜 답이 없어.”

무헌의 목소리가 안부를 묻듯이 차분했다. 우희가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억누르고 제한하려던 그동안의 노고를, 무헌은 진흙 주무르듯 부수고 있었다. 그 점이 미우면서도 속을 읽어준 것 같아서 떨렸다.

지금 누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 모르겠다. 우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엉킨 매듭처럼 더디게 끌어냈다.

“…저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하신 거예요?”

“꼭 조사해야 아나.”

“….”

“볼 때마다 꼬리 흔들면서 침을 뚝뚝 흘리는데, 발정 난 걸 몰라볼 수가 있어야지.”

숨이 턱 막혔다. 속절없이 복종하고 싶은 밑도 끝도 없는 본능이 무헌에게도 보였던 거다. 전부.

“오해예요.”

“아무한테나 그러나.”

허벅지에 올려둔 두 손으로 트레이닝복 바지를 끈적하게 잡았다. 무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흥분을 불러왔고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말대로 발정한 걸 들킬까 봐 두려워하며 또 설레했다.

“말해. 아무한테나 침 흘리나?”

무헌에게 그저 오해라고 우기려니 두서없는 말들만 목 끝까지 차올라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주인 여럿 두고 떠도는 똥개라서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아무나 예뻐해 주니까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아 똥개는 싫다고 했었나, 우리 잡종.”

마침 똥개 소리에 더 서러워진 차였다. 마음을 읽힌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침 내가 한가하거든.”

무헌이 등을 뒤로 깊게 파묻으며 말했다.

“좆 맛을 많이 본 섭이 어떻게 우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의 안면 근육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무감각해졌다.

“방금 뭐라고….”

“좆 맛 많이 봤다고 자랑하더니, 모처럼 얘기 들어주겠다니까 홀랑 도망가고. 뭐가 그렇게 멋대로야. 꼭 잡아서 죽여달란 소리로 들리는 게 의욕이 생기잖아.”

그걸 많이 봤다고 했지 맛을 봤다곤 안 했다. 무헌의 해석은 여전히 이상한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쉬는 김에 강아지 한 마리 길러보는 것도 괜찮겠지. 플레이 파트너 어때.”

“…….”

“버릇이 워낙 나빠야지. 몰두해서 길들일 맛이 날 것 같아.”

창끝처럼 매서운 무헌의 시선이 우희를 관통했다. 사냥꾼의 거친 손에 붙들린 소동물이 된 것 같았다. 죽음을 목도하고도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해 발악조차 멈춘.

무헌이 가치를 매기듯 우희를 살폈다. 겁먹은 눈부터 흘러내리듯 곳곳을 훑고 갔다. 무헌이 바라보는 곳마다 뜨거워지는데, 조난 당한 것처럼 얼어붙는 기이한 상황에 직면했다.

“지, 지금 그쪽이랑 플레이하자는 거죠.”

“어째 호칭이 점점 건방져지네.”

“형님도 그런 취향이세요?”

우희가 앞 좌석을 흘긋댔다. 그런 걸 이런 곳에서 막 떠들어대도 되냐고 표정으로 물었다. 묵묵히 운전대를 잡은 덩치와 조수석의 남자 모두 침묵하고 있긴 하지만 속으론 뭐라 생각할지 몰랐다. 변태 성욕이라며 손가락질하며 흉을 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알고 까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진짜, 이거 애새끼네.”

“제,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눈 맞출 때마다 밟아달라고 아양 부리던데, 그게 모르고 한 짓이라고.”

“아양이라니, 저 그런 거 한 적 없어요.”

치료받고 잠든 그를 유심히 지켜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망상에 그쳤다. 아양이라니 해보지도 못한 거라서 억울했다.

두 눈에 눈물이 뜨끈하게 차올랐다.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닌데 무헌과 있으면 자꾸만 울고 싶었다.

“네가 쑤셔놓은 좆 위가 따가워.”

무헌이 눈을 아래로 깔았다. 쑤셨다는 걸 보아 면도하다가 실수한 부위를 말하는 듯했다.

“덧났어요? 병원은 따로 안 가신 거예요?”

도로 안경을 쓴 우희가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되물었다. 면도날에 긁힌 상처라고 무시해선 안 됐다. 곪았다면 큰일이었다. 마음이 급해져 무헌의 재킷 단추를 무람없이 풀어헤쳤다.

“이건 또 뭐 하는 개 짓거리지.”

“상처부터 볼게요. 이것 좀 빼보세요.”

베스트를 젖힌 우희가 단정하게 말려 들어간 셔츠를 잡아 빼려 끙끙댔다. 무헌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호숫가, 포댓자루…. 그것과 같은 처지가 될 거다.

눈앞이 시큰해진 우희는 급한 손길로 셔츠 단추에 손을 댔다. 셔츠를 완전히 옆으로 젖혀야 환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를 재촉했다.

“잠깐 도와주세요.”

“내 옷 벗기려면 손이 아니라 개처럼 입을 써. 그 전에 허락부터 구하고.”

“네?”

숨을 들이마시며 묻는 우희의 안경다리에 무헌의 손가락 끝이 감겼다. 휙 잡아 뺀 그가 우희의 눈물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이 콤플렉스인 부분이라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긁어놓은 데가 쑤셔서 잠이 안 오는데…. 이게 아양이 아니면. 씨발, 뭐라고.”

날것에 가까운 말투가 자글자글 끓어오른 우희의 뱃속을 뱀처럼 휘저었다. 괴물처럼 시커먼 무헌의 동공이 우희를 집어삼켰다.

“손 치워.”

강요받듯 우희는 손을 내렸다. 그의 허벅지 위로 두 손을 얹은 채 입술을 잘근거렸다.

“취향 맞춰 깔끔하게 섹스하기 번거로운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지금 어려운 제안을 해?”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었구나. 무헌은 정말 도미넌트로서 우희에게 파트너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희는 아직 이성이 우선이었다.

사고를 치면 본가로 끌려가 억류될 조건부 자유인이라는 점을 기억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정략결혼을 하는 건 좀 끔찍하지.

“제안은 고맙지만, 저는 그쪽이랑 파트너 할 생각 없어요.”

“먼저 꼬리를 쳐놓고 도망가겠다는 건가.”

“그렇게 보였다면 정말 죄송해요.”

생각보다 당당하게 거절 의사를 밝힐 수 있었다. 이성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고 자위한 우희는 다시 손잡이를 그러잡았다.

“발정 난 것처럼 달려든 것치곤 용기가 없네.”

“죄송합니다.”

차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느려졌다. 때맞춰 차 문을 열어젖힌 우희는 무헌의 세상에서 서둘러 내뺐다. 차 문을 닫고 허겁지겁 뛰어갔다. 무헌을 따라오던 뒤차의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무어라 소리쳤으나 제대로 듣진 못했다.

“왜 우는 거야….”

혼잣말이 가여우리만치 젖어 있었다. 우희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눈물을 훔치곤 익숙한 길을 따라 슈퍼 앞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머리에 차오른 생각이 많아질수록 속도가 더뎌졌다.

이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유학을 떠나면 이상한 성욕을 억누르기 쉬워질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나라에서 성향이 같은 사람을 찾는 수고를 들일 만큼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새로운 공부와 작업에 몰두하면 그릇된 혈기가 누그러질까 기대하던 차에, 무헌을 만났다.

첫 만남부터 그는 압도적이었다. 지배당하고 싶은 사람의 오감을 송두리째 앗아가더니 멋대로 함락했다. 두 번째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무헌의 살갗을 꿰매는 시간 동안 형벌 받는 죄인처럼 숨조차 마음껏 쉬지 못했다. 그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우희가 지켜본 그 어떤 플레이보다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달아나듯 돌아왔지만 이미 무헌 생각으로 가득해 엉망진창이었다. 이 모든 사실이 그녀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라는 것도 혼란스러웠다. 볼썽사나운 욕정을 무헌이 모조리 알고 있었다니. 우위에서 선 그가 가지고 놀 듯 약점을 주무르는 것까지도 미치게 취향이었다.

“…글렀다, 진짜.”

다만 그와 플레이 파트너를 맺는 상황은 생각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우희는 끝을 모르는 구덩이에 발을 디디고 싶지 않았다.

특정한 누군가의 섭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얼마나 빠져들려고 이래. 머지않아 끝날 사이라면 지금에라도 돌아서야 했다. 그가 돔이라는 엄청난 사실에 흥분할 게 아니라, 유학 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달력에 동그라미 치는 게 더 유익했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호통치던 김중혁과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하던 김규호의 시선, 물컵을 깨뜨리곤 몸을 떨던 주선혜의 얼굴을 떠올리니 급격히 피가 식었다. 흥분을 꺼뜨리는 데 가족만 한 게 없다니, 쓴웃음이 샜다.

“…어?”

문 닫힌 슈퍼 앞에서 서성이던 비렁뱅이 같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그녀의 외삼촌 정두영이었다.

“우희, 너 우희지?”

달려온 정두영의 눈이 뒤집혀 있다. 진한 술 냄새. 가진 돈을 다 잃고 집으로 돌아오던 과거와 닮은 표정이었다. 숱하게 봐온 모습이라 놀랍진 않았지만 피해야겠단 경계심이 반사적으로 작용했다. 우희는 여차하면 달아날 자세로 물었다.

“꼴이 왜 이래?”

“싸가지 없는 년. 말버릇 좀 봐라. 부잣집 딸년 됐다고 위아래도 안 보이지?”

“꼴이 왜 이러냐니까? 읏!”

정두영이 가는 손목을 움켜쥐곤 위로 휙 잡아 올렸다. 우희는 끊어질 것 같은 손목을 사수하려 두 발을 들었다.

“이거 놓고 얘기해!”

“돈 어디 있냐고!”

“무슨 돈, 삼촌이 다 가져갔잖아!”

외조부모의 장례식에 나타난 정두영은 교통사고 합의금과 사망보험금을 알뜰하게 챙겨 떠났다. 외조부모의 직계 자식이 그뿐이었으니 상속받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노인네들 통장 네가 가지고 있는 거 몰라? 그거 어디 있냐고!”

“할머니한테 돈이 어디 있어. 삼촌이 다 말아 먹었잖….”

말을 마치지 못했다. 우희는 삐, 소리가 나는 세상에서 비틀거리며 뺨을 감싸 쥐었다. 따끔한 손찌검에 얼이 빠져나갔다.

“그래? 네가 말 안 하고 배기나 보자.”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정두영이 집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거 놔…!”

발이 빠른 정두영의 발에 맞추기 위해 힘겹게 뒤를 쫓았다. 당연하게도 이런 폭력은 아무런 쾌락도 안겨주지 못했다. 악착같은 고통과 분노만 부추기는 범법행위에 불과했다.

두피가 뜯길 듯 아파 오자 정두영에게 개 패듯 맞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언제였더라. 만기를 앞둔 할머니의 적금 통장을 가지고 나간 정두영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우희는 빈털터리가 된 정두영에게 찬물을 끼얹으며 욕설을 퍼부었다가 그 곱절에 해당하는 고통을 되돌려받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희는 다니고 싶은 학원을 포기하고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다. 조폭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가끔 팁을 받으면 그것으로 용돈을 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이란 걸 알고 양심과 현실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우희에게 정두영은 악이었다.

할아버지가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버는데도 생활고를 면치 못한 건 정두영 때문이었다. 노름쟁이 하나가 집안을 몰락시켰다. 그런데 외조부모는 기우는 가세를 정두영이 아니라, 정은영의 미래를 말아먹고 태어난 우희 탓으로 돌렸다. 입 하나 늘었다고 허리가 휜다고 했다.

그래도 정은영이 살아있을 땐 종종 우희의 편이 되어 주었지만, 그녀가 죽자 모든 불행은 우희의 잘못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우희를 손찌검했다. 할머니가 얻어맞은 우희를 감싸주지 않았다면 그녀도 정은영과 같은 길을 걸었을지 몰랐다. 할머니의 호의는 동네 사람 보기 창피하단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뿐이지만, 우희는 그 쭈글쭈글한 손이 좋았다. 할머니가 죽어서도 편히 눈감지 못한다면 그건 자신이 아니라 정두영 때문일 거다.

“이거 놓으란 말이야!”

우희가 기를 쓰고 버티자 혀를 찬 정두영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워낙에 악바리 같은 그녀를 뜻대로 굴리는 건 정두영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혀를 찬 뒤 내민 핸드폰을 흔들었다.

“너 그 잘난 집에 전화해라.”

“뭐?”

“형님한테 해봐.”

“미쳤어?”

“빨리! 너 나 진짜 죽는 꼴 보고 싶냐? 어? 우희야. 제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크게 윽박질렀다가 마른세수를 하는 정두영은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말하기도 힘든 큰 사고를 친 게 분명했다.

“혹시 사채 썼어?”

정두영이 우희의 어깨를 거세게 밀쳤다. 그 힘에 밀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개 같은 년. 하여간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어디서 덜떨어진 게 굴러들어와선 지 애미를 잡아먹고. 에이 씨발.”

우희는 혹시 모를 발길질을 피해 바닥을 기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이 그랬듯 지지부진한 전진으로 발목이 붙들렸다. 정씨 집안의 짐 덩어리가 된 것에 대한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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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떠지지 않은 눈두덩에서 살갗이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정두영의 솜씨였다. 모진 추궁 끝에 아무것도 얻은 게 없자 정두영은 소주 두 병을 까고 잠들었다. 우희도 그 옆에서 기절하다시피 했다.

정두영이 내려친 탓에 귀퉁이가 금 간 핸드폰이 손안에서 부르르, 진동했다. 한숨을 삼키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내일 저녁에 한 번 올라와라.]

대뜸 본론을 전한 김중혁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슨 일 있어요?”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는데,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깬 정두영이 독사 같은 눈을 뜨고 빠르게 걸어왔다. 핸드폰을 날쌔게 잡아채 전화를 대신 받아들었다.

“삼촌, 미쳤어?”

얼른 일어나 그를 저지하려던 우희는 정강이를 타고 오르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주춤거렸다. 어제 정두영을 피해 도망가다가 넘어져 다친 부위였다.

“접니다. 정두영이오.”

예예. 저요, 우희 삼촌. 정두영이 뻔뻔하게 미소를 띠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중혁이 그의 의도를 모를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희를 향해 손을 휘휘 저어 저리 비키란 내색을 한 정두영이 주방 쪽으로 이동했다.

“아, 형님도. 우리가 나눠 마신 쏘주가 몇 병인지 아십니까?”

허허허. 사람 좋게 웃는 정두영의 목소리 뒤를 따라 절뚝이며 움직였다. 맨몸으로 달려들어 봐야 승산이 없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주방 입구에서 양푼을 발견했다. 그걸 움켜쥐었다. 소리 죽여 다가간 우희는 창밖을 보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아부를 떠는 정두영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뎅. 손목이 저릴 정도의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 이 씨팔!”

정두영이 싱크대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인 사이,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잡아챘다. 뺏기지 않으려 힘을 주기에 정수리에 대고 한 번 더 양푼을 후려갈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심장이 마구 벌렁거렸다. 액정을 보니 통화가 아직 끊기지 않았다. 우희는 돌바닥을 뛰어가며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대문을 넘어가는 발이 맨발이었다.

“여보세요?”

[그치가 왜 같이 있어. 중국에 있다고 하더니 언제 온 거야?]

소란을 전부 들었을 텐데 여전히 김중혁의 목소리는 점잖았다. 냉담한 반응은 예상한 바였다.

“별거 아니에요. 금방 돌아가겠죠. 원래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집구석 수준하고는. 쯧쯧.]

김중혁은 늘 정은영의 배경을 못마땅해했다. 두 번째 결혼이라서 조건을 따지지 않았더니 천박한 집안이 굴러들어왔다고 김중혁이 직접 말한 바 있었다. 그는 수준에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우희에게 몇 번이고 강조했다. 수준. 그래서 그녀의 수준은 어디쯤이란 말인가. 정체성은 그녀가 마음 편히 머무를 곳처럼 찾기 어려웠다.

[긴말 안 하마. 내일 올라와라.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네 오빠 생일은 챙겨야지. 호텔에서 하는 파티까진 참여할 것 없고, 내일모레 아침에 집에서 밥 한 끼 먹자. 이동하기 불편하면 차 보내고.]

“제가 알아서 올라갈게요.”

통화를 종료하고 혹여 정두영이 쫓아올까 봐 슈퍼의 반대 방향의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시큰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기쁘게 유배 보낸 딸을 며칠 만에 다시 불러들인 이유가 너무 속보였다. 반쪽짜리 동생을 불러내 김규호의 생일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싶은 거겠지. 김중혁의 부성은 아들에게만 발휘되는 특별한 것이었다. 언제나 그녀는 곁다리가 되어 김규호를 빛내줄 장식에 불과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보다 완벽한 생일상을 위해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를 채워야 할 의무가 있는.

불참한다면 김중혁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내일이라도 당장 맞선 자리로 내몰지 몰랐다. 그는 김규호에게만 너그러웠고 수준 떨어지는 핏줄을 타고난 딸에겐 애물단지라는 타이틀을 씌웠다. 이럴 거면 그냥 혼자 살게 두지, 왜 손을 내밀어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골랐더니, 산을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이에나 같은 정두영을 피하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흙투성이로 산을 헤매다 보니 들짐승 같은 꼴이 됐다.

그 와중에 발을 잘못 디뎌 크게 넘어졌다. 아팠지만 무심하게 손바닥을 털고 일어났다. 흙바닥을 구른 지금 모습이 딱 그녀의 수준이었다. 늘 김중혁은 이런 우희를 미련하다고 타박하며 해묵은 촌티를 탈피하라 강요했다. 그저 그의 욕심이었다.

축축한 바위에 앉아있는데 빗방울이 툭, 뺨으로 떨어졌다. 에이. 혼잣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간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폭우가 찾아올 거란 일기예보를 기억하곤 하산을 택했다. 비 오는 산은 사람보다 무서웠다.

다리가 풀려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다. 피곤이 누적되자 이런 고생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죽고 싶단 생각은 여러 번 해봤다. 엄마가 죽은 뒤부터니 어린 나이에 죽음을 고려한 거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충동이 일지 않았다.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긴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것 같아서 죽음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외조부가 매질해도 더는 별로 아프지 않았고 모진 말을 해도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저냥 살았다.

그러다가 깨달은 성적 취향에 난생처음 열정이 생겼다. 캡슐에서 깨어난 냉동인간처럼 미지의 세상을 맛있게 흡수했다. 격정적인 섹스를 상상하고 있으면 심장이 힘차게 뛰었고 사는 게 이렇게 뜨거운 거구나 희망을 품게 됐다.

김중혁의 말대로 그게 천박하고 못 배워먹은 음탕한 짓거리라고 한들, 위로를 받았으면 된 거 아닌가.

남다른 성적 취향을 폭력이라 부르든, 음란한 이의 갈 데까지 간 유희라고 일컫든, 우희에겐 삶의 지지대였다.

“으….”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는 사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정두영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겠지. 그렇다고 산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순 없으니 비를 감당할 수 있을 때 서둘러야 했다. 내려가면 곧장 빈집을 찾아 숨을 생각이었다. 배터리를 확인하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규호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굳이 올라올 것 없어. 아버지껜 내가 잘 말할게.]

서러운 마음이 목구멍 너머로 넘칠 것 같았다. 울듯이 웃으며 뜨거워진 눈시울을 외면했다. 싸구려 장식이 창피한 오빠와 그런 장식이라도 필요한 아빠가 상충하며 그녀를 상처입혔다.

그래, 신경 끄자. 중간에서 주선혜가 잘 마무리하겠지. 우희는 핸드폰을 늘어난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어느덧 슈퍼가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정차한 하얀 외제 차가 성난 돌처럼 굴러들어 우희에게로 박혀 들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장신의 남자가 내렸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남자는 정확하게 우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헌이었다.

그를 보자, 처음 BDSM을 알게 됐을 때처럼 흙빛이었던 세상에 하나둘 색이 입혀졌다. 단절됐던 청각이 돌아와 지면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쏴아아. 그는 가을비처럼 서늘하게, 때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우희를 찾아왔다. 그의 등장이 당혹스러운 한편, 목적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자 차게 식은 체온이 금방 달아올랐다.

재킷을 입지 않아 베스트에 팽팽하게 감싸인 역삼각형의 무헌의 몸이 역동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재에서 막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차림새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우아하고 금욕적인 자태가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고결해 보였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하는 우희와 그 수준이란 게 다른 남자였다.

그녀는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다가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찾아오면 무시할 수가 없었다. 되뇌던 주문의 효력이 다한 것 같았다.

원래 우희는 철이 없었다. 권리를 위해 의무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애물단지였다. 김중혁이 강요하는 빛깔 좋은 껍데기를 포기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헌이 뒷좌석에서 꺼낸 장 우산을 펼쳐 들었다. 잿빛 하늘에 감싸인 우중충한 세상에서 무헌의 우산 아래로 가장 짙은 어둠이 고여 들었다. 깊고 아득한 숲. 그곳을 향해 한 걸음 더 무모하게 발을 내디뎠다.

이제 무헌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됐다. 갈림길의 오른쪽으로 향하면 귀갓길이었고, 정면으로 향하면 수렁이었다.

무헌이 여길 찾아온 이유가 정말 나일까. 장 우산에 박혀 드는 빗방울 소리가 얄팍하게 펄럭이는 우희의 마지막 벽을 두드렸다.

무헌의 볼일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브레스 컨트롤을 당하는 것처럼 쩌릿한 흥분이 덮쳐왔다. 숨통을 더 졸라주길, 더 몰아 붙여주길 기대하는 천박한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양 뺨이 화끈해졌다.

미쳤어. 별나. 창피해. 우희는 젖은 두 손으로 티셔츠 단을 잡았다. 문득 티셔츠가 늘어지다 못해 찢어졌단 게 생각났다. 어제 그를 만났던 그 차림이었다. 씻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얻어터지기까지 했으니 아마 무헌의 시선엔 정두영 같은 거지새끼로 비출 터다.

부끄러웠다. 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우왕좌왕하는데 그가 굽어봐주고 있다. 그래서 자꾸 바라게 되는 거다. 무릎을 꿇고 가여워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혹시 저 때문에 오셨어요?”

메마른 입술로 내뱉은 말이 잘 전달됐으려나 모르겠다. 빗방울이 어떤 막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분단 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남은 거리가 막막했다. 용기는 여기까지였을까. 무헌이 있는 곳을 넘본 것만으로도 크나큰 죄라고 생각하자 더는 미동할 수 없었다.

“기껏 도망가게 해줬더니 이딴 꼴로 나타나선 너 때문에 왔냐고? 정말 몰라서 묻지.”

아린 목구멍을 열어 침을 삼켰다. 겹겹이 쌓여가는 긴장감이 점점 더 무겁게 이성을 짓누르고 있다. 부푼 풍선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감각이 말아쥔 손끝을 전전했다.

“플레이 파트너 말씀하시는 거면 저는… 거절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거절을 답해놓고 우희는 오답 처리해달라는 것처럼 무헌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기적이었다. 우희는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서 비겁하게 무헌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강요한다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말 거란 걸 알기에.

“버려진 개새끼 같은 눈깔로 쳐다보면서 내가 주는 목줄은 걸기 싫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전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버릇 잘못 들였어. 아니면 성격이 원래 그래? 상대 좆 같게 만드는 거, 그거 나한텐 안 먹히는데.”

무헌의 낮은 목소리가 뱃속을 짜릿하게 옭아맸다. 넝쿨에 칭칭 감겨 한계까지 수축한 아랫배를 지나 음부까지 열이 고였다.

“지금도 밟아 달라고 보채는 얼굴이면서, 누가 누굴 거절한다는 거야. 내가 씨발, 진짜 한가해서. 관심도 없는 애새끼 잡아다가 키워보자고 이런 수고를 할까. 정말 나랑 뒹굴 생각 없으면 그렇게 쑤셔달란 표정으로 보질 말든가.”

조목조목 짚어주는 말에 흥분제를 과잉 투여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왔다.

“백번 양보해서 낯부터 익히려 했는데, 정도껏 건방져야지.”

무헌이 고개를 비스듬히 내려 까닥거렸다. 이리 와. 마치 당연한 것을 받아내는 태도였다.

“배를 까게 만들고 엉덩이가 벗겨질 때까지 후려져야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데. 너도 내 밑에서 앙앙거리면서 눈물 콧물 빼보면 결정이 안 나겠어?”

두 다리가 풀리며 옅은 신음이 흘렀다. 우희는 겨우 균형을 잡곤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말 몇 마디만으로 이미 무헌의 서브미시브가 되어 속절없이 복종하는 희망에 젖어 들었다.

“쓸데없이 시간 축내지 말고 와.”

“…왜 쓸데없다고 해요? 저도 미치겠단 말이에요.”

반항하는 투로 말하려 했는데 칭얼대는 어린애처럼 무력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무헌은 우희의 예상보다 더 강한 힘으로 우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고집부린 시간을 쓸데없다고 폄하해주는 게 고마울 만큼 우희는 나약했다.

“경계하고 머리를 굴리려는 거면 늦었어. 괜히 긁어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면 잘못 배웠고. 더 지랄할 거면, 차에 타서 해.”

무헌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가 섭이 될 거라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에 안도하면서도 미약한 불안함을 걷지 못하고 또다시 이기적으로 말했다.

“저 곧 유학 가요.”

쥐어짠 목소리가 그녀의 것이 아닌 것처럼 멀리서 웅웅댔다.

“거기까지 따라가 줘? 그 정도 해주면 너도 감수해야 할 게 많아지겠지.”

“그게 아니라….”

“네 사정도 모르고 권했을까 봐.”

무헌이 웃는 듯이 얘기했으나 표정은 아까처럼 차디찼다.

“섹스 한 번 하기 어렵네.”

얼굴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워졌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려다 들킨 사람처럼 귓불이 익어갔다. 처음부터 그가 제안한 건 플레이 파트너였다. 이 관계는 무헌이 끊으면 끊어질, 그래서 미련조차 남길 수 없는 시한부였다. 맺고 끊음이 자신 없는 건 그녀뿐이란 걸 드러낸 꼴이었다. 무헌이 감흥 없이 입꼬리만 올렸다.

“재고 따지고 다 끝났나?”

“몰라요.”

“그 개 같은 버릇부터 고쳐야지.”

버릇을 고친다는 말이 최음 효과를 불러왔다. 누군가 뜨겁게 달군 망치로 밑구멍을 쑤시고 있는 것 같다.

“더 건방 떨면 기어 오는 거로 안 끝나.”

고개를 숙이자 여전히 초라한 여자가 있다. 창피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창피한 게 어때서. 창피하면 안 되나. 사람인데 창피할 수도 있지. 욕망하면 안 되나. 사람인데 욕정 하는 게 당연하지.

머지않아 유학 갈 날을 곱씹자, 기적 같이 찾아온 그와의 접점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졌다. 평생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 몰랐다. 진무헌 같은 남자와 성적 취향까지 맞아떨어진다는 것부터가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결심을 끝낸. 아니, 흔들리다가 결국 꺾여버린 우희가 도톰한 입술로 웅얼댔다.

“기는 건 나중에 시켜주세요.”

“이러니 버릇이 없다고 하지.”

“그리고 저희 집에 들키면 저 죽어요.”

“그 전에 내 손에 죽을 걱정부터 해.”

맨발에 감긴 차가운 빗물이 따끔따끔 상처를 헤집었다. 드디어 무헌이 드리운 우산 안이었다. 빗소리가 더 두꺼워졌다. 차마 그를 올려다보진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촘촘한 속눈썹에 매달린 빗물이 자꾸만 시야를 어지럽혔다. 손을 들어 닦으려다가 탁, 그가 밀어내는 손짓에 제지당했다.

“아무거나 갖다 비비고 문지르고, 부딪히고. 그것부터 고쳐. 나랑 있는 시간엔 허락부터 받아.”

부드러운 것이 이마와 눈꺼풀을 덮었다. 무헌의 손수건이었다. 꼼꼼하게 우희의 얼굴을 닦아준 그가 툭 뺨을 두드렸다.

“내가 낸 상처 외엔 달지 말고.”

짜증 난 기색은 아니었다. 누그러진 목소리에서 그가 만족하고 있단 걸 느꼈다. 그러자 근본 없는 충성심이 피어올랐다. 그가 좀 더 흡족했으면 좋겠다.

“근데 저 처음이에요.”

“플레이? 아님 섹스.”

“…플레이요.”

“그래, 좆 맛은 많이 봤다고 했지.”

우희가 입을 뻐끔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적 없다고 부정하려고 했으나, 무헌의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에 섭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강아지가 바닐라 섹스에 만족했을 린 없을 테고. 그동안 꽤 지루했겠네.”

그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어깨에 우희를 들쳐멘 무헌이 요령 좋게 한 손에 우산을 받치고 우희를 조수석에 태웠다.

낯선 향이 들이닥쳤다. 번지르르한 차 내부를 망가뜨릴까 봐 몸을 움츠렸다. 빗물과 진흙으로 오염된 맨발로 고급스러운 시트를 밟은 게 미안해서 등을 잔뜩 굳혔다.

“아….”

우희의 호흡이 안타까이 흩어졌다. 더러운 흔적을 지우려 상처 난 발바닥으로 시트를 문지르다가 운전석에 올라탄 무헌과 시선을 마주친 거다. 견고한 차체는 문 닫히는 충격조차 부드럽게 흡수했다.

“아무 데나 문지르지 말라고 조금 전에 얘기한 것 같은데.”

“죄송해요. 차가 더러워져서….”

“맨발로 나다닌 걸 죄송해야지.”

대각선으로 선을 그리며 올라온 무헌의 팔이 안전벨트를 잡아끌어 꼽았다. 달칵, 그녀의 궤도가 무헌에게 완전히 종속되었다. 차체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가울 만큼 무거운 침묵이 폐부를 조여왔다. 와이퍼가 좌우로 사납게 움직였다.

“저기….”

“어.”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이 길고 곧았다. 저 손가락이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상상을 하며 운을 뗐다.

“어제 그렇게 가고 지금 수락한 건… 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조용히 지내야 하거든요. 플레이가 싫은 게 아니고…. 클럽 그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골칫덩이가 됐어요. 그냥 제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이상해 보이실까 봐요.”

고개를 푹 떨군 채 말하니 좀 나았다. 눈을 옆으로 돌릴 때마다 보이는 남자의 형상은 머릿속을 어질어질 뜨겁게 만들었다.

“기껏 내 차에 탔는데 꼴이 우스워 보일까 봐, 그딴 걸 정정하고 있어. 신경 건드리지 말고 앞으론 솔직하게 말해.”

숨을 반쯤 삼킨 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골길을 서행하는 차가 균형 있게 좁은 길을 헤쳐나갔다.

“원하는 걸 조르면서 엉덩이를 흔들어도 모자란 주제에. 이왕 아쉬운 소리를 할 거면 편히 싸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편이 낫잖아.”

플레이의 전조가 시작된 게 느껴졌다. 밑밥 까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초보자인 그녀에겐 능숙한 무헌이 나았다. 둘 다 어리바리하다가 플레이를 망치는 것보단 훨씬 집중도도 높을 테고 그만큼의 만족이 뒤따를 터다. 기대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죄송합… 사실.”

“뜸 뜰이지 마.”

“흐, 흥분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야지.”

“잘 모르겠어요….”

밑이 발씬거렸다. 보지 않아도 뻐끔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폭력 같은 섹스를 원하고 있단 얘기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머리를 차분하게 굴려. 모르겠단 말로 얼버무리면 죽이고 싶어져. 차 세우고 여기서 박으면 말을 좀 들을까?”

죽이겠단 소리에 겁을 먹었으면서, 아래가 기다렸단 듯이 조였다가 풀렸다.

“밑으로 싸재끼고 있는 거 모를 것 같지.”

“흣….”

우희가 공포와 설렘이 깃든 두 눈을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옆모습을 흘긋거리는 걸 멈추지 못했다. 그래, 이제 그는 주인님이었다. 무헌이 커다란 손으로 우희의 정수리를 툭툭 어루만졌다.

“얻어맞은 보지 잡아 벌린 채로 갈 거 아니면 그 눈 치우자. 그게 낫겠네.”

얼굴이 새빨개져서 습기 맺힌 창가에 이마를 기댔다. 우희가 겪었던 일방적인 폭력과는 결이 다른 행위였다. 무헌을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란 생각이 벌써 들었다.

이제 무헌은 주인으로서 통제하고 억압하고 필요하다면 매질을 할 터였다. 그게 못 견디게 기다려지고 안달이 났다.

우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 번 발을 디뎠으니 정수리까지 잠길 때까지 빨려 들어갈 일만 남았다. 빠져 죽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차가 멈춘 곳은 전의 그 별장이었다. 그의 차는 깊숙한 차고에서 정차했다. 막상 도착하니 아까보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무헌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잘한 짓이란 결론을 내린 뒤였기에 내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우희의 어깨 위로 뒷좌석에 있던 그의 재킷이 내려앉았다.

“제대로 입고 내려.”

짧은 말을 남기고 무헌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폭이 넉넉한 재킷에 팔을 넣은 우희도 차에서 내려 보닛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계약서 같은 것도 쓰나요?”

“굳이. 싫어하는 플레이 있어?”

“네.”

무헌이 무심히 앞을 향해 돌아섰다. 플레이에도 종류가 많았다. 그중에 할 수 있는 것과 못 하는 것을 사전에 협의해서 플레이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뒤에서 따라가려 했는데, 무헌이 그녀를 끌어 옆에 세웠다.

“옆에 서. 섭을 키우고 싶은 거지, 죄인 이송하고 싶은 거 아니니까.”

“네.”

“물론 플레이할 땐 가차 없이 네 죄를 따져 물을 건데….”

그를 올려다보았다가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얼른 모로 돌렸다.

“점 예쁘네.”

우희의 왼쪽 눈가에 자리한 눈물점을 그가 응시했다.

“저는 별로예요.”

“좆구멍에 끼워 넣고 문질러 보고 싶게.”

“…….”

목구멍에서 뜨끈한 것이 치밀었다. 순순히 그를 따라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희를 전의 그 2층 방에 밀어 넣은 무헌이 문을 잡고 말했다.

“욕실 들어가서 전부 벗고 무릎 꿇어. 하고 싶은 거 생각하면서 기다려. 돌아오면 바로 시작할 거니까 엄살 부릴 생각 말고.”

“저기….”

“호칭은 바꾸는 게 좋을 거야.”

말을 붙여볼 틈 없이 무헌이 사라졌다. 우희는 고민하다가 욕실로 발을 옮겼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이래저래 말을 늘어놓는 것도 답답한 짓이었다.

차가운 욕실 바닥에 서자 뒤늦게 2층으로 올라오면서 마주친 덩치들이 신경 쓰였다. 그들이 여기까진 들어오진 않을 테지만 막아줄 무헌이 없다는 게 불안감을 불러왔다.

티셔츠 자락을 쥐고 꾸물대던 우희는 안 입은 것만 못한 티셔츠와 바지를 벗어 한쪽에 두었다. 그나마 세트로 갖춰 입은 속옷에 안도하며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론적으로 이런 관계의 갑은 섭 쪽이었다. 서브미시브가 요구하는 만큼만 수용하는 게 도미넌트의 덕목이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나누는 데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차마 도전하기 어려운 항목을 정돈해가고 있을 때, 욕실 문이 열렸다.

천천히 걸어들어온 그가 한쪽에 종이가방을 던졌다. 그리로 시선이 따라갔다가 돌아온 우희가 허리를 곧게 폈다. 속옷 차림으로 무헌을 마주하는 게 창피했으나 몸을 숨기지 않으려 애썼다.

“저기….”

“말해.”

무헌이 무심히 대답하며 한쪽 욕조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혹시 시작부터 물고문인가. 두려움과 흥미로움을 담을 눈을 흘긋댔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일단 씻고. 네 한계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씨발, 숨통부터 끊을까.”

음탕한 상상을 들킨 우희의 살갗에 소름이 돋아났다.

“할 말은.”

“플레이에 섹스도 포함인가요?”

“너 울리면서 좆질하는 상상을 해도 열 번은 했어. 그걸 왜 빼.”

뜨끈해진 뺨을 꾹 누르며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플레이의 마무리는 섹스인 게 좋았다.

“플레이할 때만 주인님이신 거 맞죠?”

“왜. DS라도 할까?”

“아뇨. 저는 플레이 파트너가 좋아요.”

“호시탐탐 배 까고 싶어서 눈치 보던 주제에 말은 잘하지.”

무헌이 우희의 주장을 가뿐히 비웃었다. 하지만 DS를 맺고 본격적인 주종관계가 되는 건 무거움 책임감이 뒤따랐다.

우희는 플레이 파트너라는, 침대 위에서만 유효한 관계가 좋았다. 보통 DS를 맺으면 일상생활이 간섭당한다. 그럼 무헌과의 이별이 힘겨워지겠지. 그와의 기억은 플레이만으로 충분했다.

아직 시작도 안 해놓고 헤어질 걱정이라니. 우희는 자신의 답 없음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통탄했다.

“그렇다고 다른 파트너를 만들진 말자. 나도 그 새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니까.”

“…네.”

무헌이 조폭이란 사실이 새삼 실감 되었다. 우희는 저도 모르게 만든 적도 없는 세컨드 플레이 파트너의 안전을 기원했다.

“그리고 플레이 항목은 생각해봤는데요, 복잡해서 따로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싫은 게 있다면 대략이라도 말해. 참고하게.”

이미 플레이는 시작됐다. 분위기만으로 압도당했고, 우희는 보이지 않은 목줄에 묶여 있다. 그가 줄을 팽팽하게 당긴 것처럼 허리가 뻣뻣하게 세워졌다.

“피, 피부를 뚫거나 블러드, 린치, 스캇이나, 갱뱅이나 멀티플은 좀…. 전기고문 같은 것도 무서워요.”

자칫 웃을 수 있는 얘기를 무헌은 새겨듣듯 경청했다.

“좋아하는 건.”

“그게….”

“혼자 구멍 쑤시면서 상상해봤을 거 아니야.”

우희가 선뜻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무헌이 욕조 안에 담그고 있던 팔로 포물선을 그렸다. 촤락, 튀어 오른 물방울이 우희의 얼굴을 적셨다. 마치 물줄기로 뺨을 맞은 것처럼 살갗이 화끈해졌다.

“물속에 처박혀서 아래위로 질질 짜봐야, 재깍 대답하는 법을 배울까.”

“디, 딥쓰롯이랑 골든샤워, 애널, 야외 플레이… 요. 지금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안전어는.”

이 모든 행위를 멈출 수 있는 명령어는 섭의 권리였다. 문득 욕실 입구에 세워둔 사자 머리 장식이 보였다.

“사자 머리로 할게요.”

“산통 깨기 딱이네. 더 할 말 있나.”

“저기…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말끝에 흥분이 묻어났다. 드디어 주인님을 가지게 된 거다. 무헌이 희미하게 웃었다.

“준비 다 된 것 같네.”

우희는 아까부터 꿇어앉은 다리가 슬슬 저려와서 살짝 골반을 비틀었다.

“대답은 확실하게 해야지.”

“네.”

“두 손 뒤통수에 붙이고 허리 세워.”

무헌이 명령하고 욕조에 걸터앉았다. 욕조를 채우는 물소리가 세차게 뿜어졌다. 뿌옇게 변해가는 수증기를 헤치고 무헌의 시선이 우희를 훑어내렸다. 검수받는 느낌에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저기….”

“네 입으로 주인님으로 부른다고 한 지 1분도 안 됐어. 우리 강아지를 어디부터 다그쳐야 할까.”

“주인님, 다리가… 너무 저려요.”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나자 열이 확 올라왔다. 스스로 뱉은 금단의 단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배덕 감이 몰아쳤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요분질 치듯 멋대로 굴고 싶은 걸 참았다.

다리로 모래가 굴러가는 것처럼 혈액이 찔끔찔끔 순환했다. 우희가 고통에 울먹였다.

“주인님….”

“움직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죽고 싶어서 그래?”

“읏, 일어나면… 안 될까요?”

“아직도 말을 못 알아들어.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릴까. 뺨부터 맞으면 되겠나?”

무헌의 서늘한 표정에 덜컥 겁이 났다. 피가 통하지 않는 다리 때문에 끙끙 앓으면서 그의 딱딱한 표정에서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다른 새끼 손 안 탄 건 귀엽다만, 눈치가 정도껏 없어야지.”

“주인, 님….”

화난 걸까?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밀려들었다. 우희가 벌벌 떨리는 두 손을 등 뒤로 보냈다. 브래지어 훅을 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 쏟아지는 가슴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피가 도는 탓에 다리를 휘청거렸다.

“네 멋대로 할 거면 집구석에서 자위나 하면 돼. 멍청한 짓거리 할 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주인님….”

“눈 떠. 네 젖 같은 거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허리 펴고. 아직도 사람 대우받고 싶은가 본데, 넌 그냥 개새끼야.”

“흣….”

우희는 눈을 뜨고 입술을 씹었다. 무헌의 말이 맞았다. 그가 시킨 대로 전부 벗고 그를 기다리고 있어야 옳았다. 밖에 누가 있든 무헌이 하라는 대로 하고 기다렸어야 했다.

“흣….”

일어선 두 다리에 피가 빠르게 돌며 말 못 할 통증이 밀려들었다. 부들부들 떠는 중에도 흥분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게 보여 얼른 다리를 붙였다. 제 기능을 잃은 팬티를 마저 벗기 위해 물었다.

“속옷 벗어도 돼요?”

“두 번 말할까.”

우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접어 팬티를 벗어 브래지어 위에 올려두었다. 여전히 매끈한 슈트를 입은 무헌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흑색 TV를 보듯 지루한 낯이었다.

“워낙 낯을 가리시니 인사부터 하자. 소개해 봐.”

“소, 소개요?”

“되묻지도 말고.”

자칫 다정한 말투 심지엔 짜증이 깃들었다. 우희는 꾸물거리지 않으려 얼른 기억을 되짚었다. 상황이 빠르게 휘몰아치고 있어서 차분하게 머리를 굴리기 어려웠다. 인사… 인사… 아. 그런 비슷한 걸 본 기억이 났다. 그러나 초심자에겐 조금 어려운 주문이었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가 활강부터 배우는 꼴이었다.

“우희야.”

이름이 불렸을 뿐인데, 소리 없는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무헌이 다시 기회를 주며 태연히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김우희입니다. 주인님의 섭이고… 또.”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와 놀랐으나 중간에 줄일 수는 없어 우스꽝스러움을 감수하고 말을 이었다.

“스물여섯이고, 주인님을 섬기는 건 처, 처음이에요.”

“아직 안 죽이니까 천천히 해.”

거짓말. 사람 하나쯤은 손쉽게 죽일 수 있으면서. 그는 플레이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사람의 생사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우희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둥그렇게 부푼 젖가슴 아래를 두 손으로 받쳤다.

“이건 제 가슴… 아니, 젖이에요.”

흣, 시큰한 숨이 목구멍을 긁으며 터져 나왔다. 이마 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우희를 무생물 보듯 무헌은 감흥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조소하며 더러운 말을 해주는 편이 나았다.

수치스러움에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인사를 이어갔다.

“이건 유두인데….”

“섰네. 왜.”

“주인님이 봐주셔서….”

우희의 두 뺨이 아래로 내려가고 무헌의 고개가 기울었다.

“만져봐. 더 단단하게 세워야지.”

우희는 애플 수박을 엎어놓은 듯한 크기의 젖무덤 위로 두 손을 가져갔다. 옅은 색의 살점을 각각 버튼처럼 눌렀다. 분홍색의 돌기가 뾰족하게 몸을 부풀렸다.

“음란한 주제에 그걸로 만족 되겠나. 꼬집어, 떨어질 만큼 세게 당기고 돌려 봐.”

살점이 압착 되도록 세게 짓눌렀다. 참지 못한 신음이 끓듯이 샜다.

“침도 묻혀서 굴릴까.”

울먹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스스로 손가락을 빨아 축축해진 지문을 유두로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떨어져 나가겠어? 내가 쥐어뜯어 줘?”

“흣, 응!”

우희는 혼날까 봐 눈도 감지 못하고 유두에 흡착한 검지를 빠르게 흔들었다. 덩달아 출렁이며 젖가슴이 천박하게 운동했다. 단단하게 응축된 열매가 벌겋게 짓물러 갔다. 자신의 손으로, 유두만으로 이렇게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흐읏….”

“시작도 전에 울면 어쩌자고.”

주인님께선 만족하셨을까. 거칠어진 숨을 터뜨리며 그녀 스스로는 만족했단 결론을 얻었다.

“영 안 느네. 다음으로 가자.”

우희는 자그맣게 대답하며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여긴 음모예요.”

두 번째라고 다르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혀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다시. 더 잘할 수 있잖아.”

“털… 털이에요.”

“정말 몰라서 그따위야?”

“흐읏….”

눈물이 차올랐다. 수치심과 흥분, 기대감, 성취감 등 복잡한 감정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보지요.”

“우리 강아지는 지능이 없나? 아직도 이게 장난 같지.”

“보지, 흐읏 털이요….”

“묶어놓고 모조리 핀셋으로 뽑아줄까. 양이 많아서 온종일 걸리겠네. 백보지 만들어서 구멍으로 도장 찍게 해도 재미있겠네.”

닭처럼 털이 뽑혀 나가는 상상을 한 우희의 안색이 하얘졌다. 고개를 붕붕 젓다가 무서워져 더듬더듬 손을 내렸다.

“그, 그리고 여긴….”

“또 멋대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긴 구멍인데….”

다리를 살짝 벌린 뒤에 아차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설명하는 건 억지 같았다. 어떻게 하지? 허락을 구해야 할까.

“뒤돌아.”

이대로 돌려보내는 걸까? 벌써 질린 걸까? 어떻게든 쓸모를 인정받았어야 했는데….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정말 몰라서….”

“허리 숙여. 손은 바닥 짚고.”

우희는 입술을 덜덜 떨며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직 다리가 아파 비명이 나올 것 같았으나 눈치껏 이를 악물고 참았다.

“흣….”

젖은 가랑이 사이가 공기 중에 훤히 노출되는 감각이 차디찼다. 차오른 눈물이 갈 곳을 잃고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싸고 지랄 난 건 알겠는데, 하던 건 마저 해야지.”

“흐윽….”

목이 졸리며 울음소리가 결국 샜다. 모르겠다. 이런 걸 원한 건 그녀인데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낱 짐승이 되길 꿈꿔왔으면서 직접 당면하자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서러워졌다.

“흐윽….”

“못 하겠으면 돌아가. 안 말려.”

사무적인 무헌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희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긴 구멍… 인데 보지….”

“침 질질 흘리는 보지 달고서 뭘 잘했다고 울어.”

“흣, 네. 죄송합니다…. 주인님, 바닥에서 손 떼도 될까요?”

무헌이 웃었다. 허락인 것 같았으나 꾹 참고 기다렸다가 확실한 대답을 듣고 움직였다. 한 손만 바닥을 짚고 다른 손으로 대음순을 잡아당겼다. 찌걱 소리가 나며 통통한 살점이 바깥으로 밀렸다. 축축하게 풀린 구멍이 뻐끔대며 수증기 가득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흣, 이건… 여긴 제 구멍… 인데…. 흑….”

클럽에서의 경험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못했겠지. 허튼 시간이 아니었다고 위안거리를 애써 만들어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주인님을 위해….”

“얼마나 싸 재꼈는지 털이 다 달라붙고 지랄이 났는데, 날 위한 거 맞나. 너 혼자 좋아서 눈 돌아간 거 아니고?”

“으흑….”

“뒷구멍까지 홀딱 젖어선 벌름대잖아. 지금도 뚝뚝 떨어지는데 틀어막아 줄까. 여기 30센티 정도 되는 청소 솔이 있는데, 떠돌이 강아지한테 딱 어울리는 딜도 같네.”

흐어엉. 우희가 눈물을 터뜨렸다.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우희야, 진짜 처박기 전에 다리 더 벌리고 무릎 구부려.”

무헌이 무슨 자세를 원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봐왔던 플레이에서 습득하지 못한 자세였다. 실습 과정에 놓이자 수년간 익힌 정보가 무용지물이 돼가는 걸 느꼈다. 긴장감 때문에 배까지 아팠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시도부터 하고 도움 청해. 일일이 말 섞으려 들면서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거, 좆 같으니까.”

우희는 기억을 더듬어 무헌의 말대로 시도했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구부리자 가랑이가 벌어진 기마자세가 되었다. 뒤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무헌을 생각하자 위축되었다.

“더.”

“흣…!”

빈약한 근육이 무게를 버티지 못해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손.”

황급히 바닥에 손을 짚었다. 수치스러운 자세도 그렇지만 실수한 걸 혼날까 봐 심장이 쾅쾅거렸다. 개구리처럼 앉아서 뒷덜미로 내려질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벽이 있어야 할 곳에 전면 거울이 자리했다. 추잡스러운 얼굴을 비추는 유리를 통해 무헌과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내가 똥개 하나 찾겠다고 수고를 들였잖아. 그럼 너도 성의를 보여야지. 말귀 하나 못 알아들어 처먹고 낑낑대는 것밖에 못 하면 쓸모가 있겠나.”

“제가 어떻게 해야….”

“엉덩이라도 들썩이면서 애교 부려보든가. 흠뻑 젖어서 벌어진 구멍 위아래로 부지런히 흔들다 보면 봐줄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

“흣….”

눈가가 시뻘게졌다. 되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보란 무헌의 가르침대로 우선 엉덩이를 들썩였다. 손바닥에 체중을 실으니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헌의 평가는 박했다.

“그렇게 해서 동하겠어?”

거울로 바라본 무헌의 고개가 추를 매단 저울처럼 삐딱했다. 어쩔 수 없이 봐준다는 아량이 내포된 자세. 욕조 턱 위에 앉아 슈트를 입은 긴 다리를 곧게 뻗은 그는 서재 의자에 걸터앉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봤을 때,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되어 눈물 바람인 여자 하나가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앉아 허리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못 봐줄 꼴을 하고 있었다. 무헌과 그녀의 위치가 선명하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읏….”

더럽고 추잡하고 창피했다. 그래서 흥분했다. 엉덩이를 세차게 흔들었다. 흣, 흣, 흣. 거칠어진 호흡이 욕실 바닥에 흩어졌다.

“아, 주인님…. 더 자, 잘할 수 있어요. 진짜예요… 흣.”

“눈 뜨고 거울 똑바로 볼까.”

무헌이 수도 레버를 잠그고 일어나 다가왔다. 빠르게 움직인 그가 우희의 뒷덜미를 잡아 거울 쪽으로 끌고 간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흣…!”

“말을 하면, 듣는 거지.”

얼떨결에 거울을 두 손으로 짚은 우희의 뒤에서 툭툭, 무헌이 양쪽 발목을 건드려 넓게 각도를 조절했다.

“숫자는 안 세도 되니까, 지금 네 꼴을 제대로 봐.”

남자의 서늘한 손바닥이 젖은 음부를 툭툭 두드렸다.

“수도꼭지라도 달렸나?”

무헌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아래를 덮고 강하게 주물렀다.

“아읏!”

거센 악력에 오르가슴에 도달한 것처럼 허리가 잘록하게 휘었다. 무헌이 가볍게 비웃었다.

“가볍게 핸드 스팽할 건데 못 참겠으면 안전어 외쳐.”

“흐읏…. 네.”

‘가벼운’이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믿고서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해야 핸드 스팽이라고 얕잡아 본 우희는 곧장 밑을 강타하는 강한 충격에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두 다리가 대충 쌓아둔 포대처럼 허물어졌다. 혀를 차며 무헌이 펄떡이는 아랫배를 받쳐 끌어올렸다. 우직한 힘이 내포된 그의 팔이 두려워졌다. 이대로 아랫배를 압착한 대도 우희는 그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 힘의 차이는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명백했다.

“똑바로 서. 시선.”

우희는 허벅지를 바들거리며 미끄러진 손을 거울에 붙였다. 엉망으로 울고 있는 여자가 기대감을 품고 밑을 조였다가 풀고 있었다.

“이게 뭐야. 한 대 맞았다고 벌써 이렇게…. 요강이라도 끼고 다닐까. 기저귀를 채우든가 해야지. 쯧.”

“흐읏… 사, 살살… 해주세요.”

“세게 쑤셔줘야 만족하면서 엄살은 왜 부려. 순 못된 것만 배워선.”

찰싹. 음부를 강타하는 따끔한 통증이 사타구니를 전율시켰다. 아랫배를 받친 강한 힘 덕에, 주저앉지 못해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우희는 극렬한 쾌감과 통증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찰싹. 찰싹. 찰싹. 연거푸 손바닥이 마찰했다. 대음순과 소음순, 벌름대는 구멍 안쪽까지 충격이 진동했다.

“아흑, 아아…! 아응!”

거울에 어느덧 수증기가 가득 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바닥을 거울에 문댔다. 문질러져 깨끗해진 거울을 통해 줄줄 침을 흘리는 얼굴을 눈에 담았다.

“똑바로 봐. 네가 발정 난 개새끼인지, 아직도 사람인지. 인격이 남았는지.”

“아흣!”

열 대 정도 맞자 미칠 것 같았다. 고통이 너무 생경해서 그게 너무 좋아서 쾌락의 끝이 어디쯤일지 헤아릴 수 없었다.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우희는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으흣…. 잘할 수 있어요. 잘할게요. 정말 잘할게요….”

엉엉 큰소리로 눈물이 터졌다. 어떤 모습일지 계산조차 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울었다. 따가운 밑을 비비고 싶은데 허락을 받지 못해 엉덩이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애교를 부렸다.

“주인님…. 용서해주세요, 으흑….”

휘청이다가 뺨을 거울에 기대고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빌었다.

“제발….”

찌걱. 부어오른 살점을 벌린 무헌이 말없이 붉은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좆 많이 받아본 것치고 구멍이 너무 작은데.”

“늘릴, 늘릴게요….”

“어떻게 늘릴 건데.”

무헌이 달래듯 열기 오른 피부를 살살 문질렀다. 스팽할 때와는 다른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게 너무 서럽고 안심이 되어 엉덩이를 위로 쭉 뺐다.

“흐응….”

“어떻게 늘릴 건지 묻잖아.”

“흐윽,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흐으응.”

“주먹이라도 박을까?”

“흐윽, 무서… 그건 무서운데… 요. 흐윽, 주인님께서 해주시면… 참을게요. 으허어엉.”

무헌의 커다란 주먹이 밑을 쑤시는 상상을 했다가 너무 괴기해서 더 크게 울었다. 성애라곤 엿볼 수 없는 그야말로 진상 같은 울음이었다. 그게 우스웠을까. 언뜻 무헌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일이면 가라앉으니까 그만 짜.”

젖은 음모를 손가락 끝으로 간질이던 무헌이 그녀를 안아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내렸다. 우희가 곧바로 몸을 웅크리고 끅끅, 눈물을 멈추려 애썼다. 벌게진 눈가를 손끝으로 거둬간 무헌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울면, 내가 꼭 쓰레기 같잖아.”

“죄송합니다… 흐윽….”

“오늘은 이쯤 하자. 너 탈진할라.”

“네?”

벌써 끝내도 되는 건가? 사실 힘들었던 우희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무헌은 아까보다 너그러운 표정이었다.

“괜찮으세요?”

“내 안녕보다야, 네 컨디션이 우선이지. 그만 보채. 진짜 기절할 때까지 죽여놓기 전에.”

나른하게 눈썹을 구기는 무헌의 아랫도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흥분한 건 비단 그녀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좀 용기가 났다. 플레이도 끝이라니까 할 말은 해도 되겠지.

“그래도 너무 아팠어요….”

“보지로 울던 게 누군데.”

“저는 초심자니까 조금만 봐주세요. 물론 너무 좋긴 하지만….”

우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껴안은 무릎 위를 덮은 수면 아래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헌이 불붙인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입술에 담배를 끼운 채 우희의 머리칼을 뒤로 끌어모았다.

“편하게 누워.”

그대로 머리채를 잡아당길까 긴장한 우희는 두피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물줄기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가만히.”

무헌이 놀라서 움찔대려는 우희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그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무헌의 손길은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세심했다. 샴푸 후 꼼꼼히 트리트먼트까지 도포한 그가 시간이 흐른 뒤 머릿결을 물로 헹궈냈다. 자욱했던 담배 연기가 걷힌 후였다.

무헌이 걷어붙인 팔을 물속에 넣어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문질렀다.

“읏….”

우희는 흥분점이 눌린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간지러워서 허리를 뒤틀고 신음을 흘렸다. 정작 무헌은 부푼 유두를 긁어내고 밑을 문대는 과정에 일말의 감정도 없어 보였다. 감정 없이 우희를 씻긴 그가 커다란 수건을 꺼내왔다.

우희는 욕조에 쭈그려 앉은 채, 소용돌이치는 물을 빨아들이는 물구멍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이건 호강 같아요.”

머리를 수건으로 꾹꾹 눌러주던 무헌이 예민한 귓바퀴에 손을 뻗쳐왔다.

“불만이 많네. 개처럼 질질 끌려다녀야 하는데, 아쉬워?”

“그게 아니라….”

이렇게 일일이 씻겨주고 머리까지 감겨주는 무헌의 태도가 의아했다. 행위 후에 따르는 에프터 케어라기엔 우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정했다. 가차 없는 주인일 것 같았는데…. 상념을 흩트리듯 귓구멍으로 손가락이 훅 들어왔다.

“으응….”

“온몸이 성감대인 우리 강아지.”

단조로운 투였다.

“만지는 데마다 반응하니까 재미가 없잖아. 1년 내내 발정기야?”

귓바퀴부터 그의 손끝이 닿는 목덜미까지 열감이 번져갔다. 낯선 수치스러움이 전신을 채색했다.

무헌이 축 늘어진 우희를 일으켜 피부를 닦아냈다. 그는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커다란 손으로 수건을 눌러 우희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놨다.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 괜찮다고 숨기거나 말 안 하면 나랑 플레이 못 해.”

“조금 피곤한 것 빼곤 괜찮아요.”

우희는 멀리 떨어진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가 따끔따끔한 것만 빼면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만 어디든 누워 쉬고 싶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는지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우희가 아까부터 참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실은 아랫배가 아릴 정도로 소변이 급했다.

“저기,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던져놓은 무헌이 얼핏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젖은 베스트를 벗어 다른 바구니에 던졌다. 젖은 셔츠도 마찬가지로 벗었다.

무헌의 몸은, 우희의 기억보다 더 탄탄했다. 음영이 뚜렷한 윤곽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하루 이틀 단련해서 만들 수 있는 몸은 아니었다.

그가 반라가 되자 바지를 찢을 것처럼 발기한 성기가 더 뚜렷하게 돋보였다. 물이 빠지며 희미해진 수증기가 다시금 자욱하게 밀려들어 코와 입을 틀어막는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반창고를 붙여둔 옆구리로 시선이 옮겨갔다. 괜찮은 걸까. 면도날로 긁은 곳은 아물었겠지. 그녀가 실수한 상흔을 보려면 바지와 속옷을 반쯤 내려야 했다. 어느 정도 책임감이 있었기에 우희는 확인차 물었다.

“상처는 괜찮으세요?”

“네가 긁어놓은 데라면 아니. 내가 이 나이 먹고, 혼자 좆 잡고 흔들어야겠어?”

“…네?”

무헌이 한쪽 구석의 블라인드를 걷었다. 숨어있던 양변기가 나타났다. 아까도 그랬듯 불안감과 기대감이 빙글빙글 뒤섞여 들이닥쳤다.

“마음이 바뀌었어. 여기까지 와 봐.”

무헌이 바닥을 눈짓했다. 시험대에 오른 것 같았다. 마치 우희의 자질을 가늠하려는 듯 그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왜.”

“하, 할게요.”

“금방 살랑거릴 거면서 빼기는.”

욕조 밖으로 나온 우희는 두 손을 바닥에 짚었다. 약간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천천히 그리로 기어갔다. 울컥, 기껏 말려 놓은 음부에서 애액이 샜다.

그가 눈짓하는 대로 변기에 올라가 앉았다. 벽을 짚고 선 무헌의 복부가 눈앞 가까이에서 어른댔다.

“안전어 기억하고.”

플레이가 끝났다고 긴장이 풀렸다. 우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으읏!”

순간 거칠게 잡힌 머리채가 뒤로 꺾였다. 천장을 향한 그녀의 낯 위로 무헌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대답을 어디로 하는 거야. 밑구멍으로만 말하게 해줄까?”

“죄송해요. 죄송…. 하읏….”

목이 뒤로 꺾일 듯이 젖혀진 채 무헌의 집요한 시선에 짓눌리자, 아랫배를 터뜨릴 것처럼 요의가 거세졌다.

“다리 위로 올려서 앉아.”

무헌이 시키는 대로 두 발을 변기 위로 붙이자 쭈그려 앉은 자세가 됐다. 저 끝의 커다란 거울에 볼썽사납게 쭈그려 앉은 그녀가 흐릿하게 비쳤다.

“다 터져선.”

정두영에게 맞아서 터진 입가로 뜨끈하고 축축한 게 닿았다. 무헌의 혀였다.

“흐읏….”

무헌은 상처를 더욱 헤집듯 혀로 입가를 들쑤셨다. 반대편 입가를 갈고리처럼 걸어 벌린 뒤에, 더 찢어지길 기원하듯이 입가만 집요하게 혀끝으로 뭉갰다.

“아흣….”

입을 다물지 못해 흐른 타액이 턱을 타고 가슴으로 흘렀다.

“누가 찢어놨어.”

“흐읏….”

“내가 말하잖아. 눈 떠야지.”

우희는 한쪽 입술이 검지에 걸린 채 입을 웅얼거렸다.

“이건, 사적인….”

발음이 엉망으로 샜다. 무헌이 피식 웃었다.

“너한테 사적인 부분이 어디 있을까. 내가 말하라면 하는 거야. 정두영인지 뭔지 그 새끼가 이래놨나?”

“그걸 어떻게….”

입가를 한계까지 당기고 있던 손가락이 타액을 늘어뜨리며 빠져나갔다.

“그 새끼한테 맞으면서도 쌌어?”

“네? 제, 제 외삼촌인데….”

“또 모르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우희가 억울함을 가득 담아 강하게 부인했다. 빨개진 눈에 투명한 눈물을 담아 부인했다.

“절대, 그런 적 없어요.”

“이렇게 울면서 빌었어?”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그래, 그랬으면 오늘 걸어서 못 나갔을 거고. 빨아.”

무헌이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우희의 입술로 대주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그 끝을 물었다. 무헌의 손가락이 끝을 모르고 밀려들어 우희의 혀뿌리를 짓눌렀다.

“우윽….”

구토감이 치밀 때까지 찔러넣은 그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고작 손가락 하나에 이러면 내 좆은 어떻게 물려고 그래. 딥쓰롯하고 싶다며.”

“흐음….”

“그래.”

“하… 하고 싶어요. 흐음….”

우희가 엉덩이를 띄우며 안절부절못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소변을 배출하고 싶었다.

“싸고 싶어 죽겠지.”

“네. 흣, 싸고 싶어요. 주인님….”

“떠돌이 개새끼라서 아무 데서나 사 재끼고 싶을 거야.”

“아니에요. 주인님, 주인님의 개예요. 떠돌이 아니에요. 흣… 제발, 허락해주세요….”

무헌의 사나운 눈가가 얼핏 풀렸다.

“다리 벌리고 싸 봐.”

“흐응…. 흐, 흘릴 것 같은데….”

“혼날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해.”

머리채를 잡힌 채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하지. 우희가 고민하는 사이 무헌의 커다란 손이 아랫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아!”

“눈뜨고, 네 주인 보라고 몇 번을 말할까.”

“흐윽….”

항문까지 저리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방광에 힘이 풀렸다. 쪼르륵, 물소리가 났다.

“아흣….”

소변이 막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우희는 순리에 휩쓸려 갔다. 흐리게 마주한 그의 눈가에 흥분이 어린 것 같았다. 바지를 뚫고 나오려던 거대한 형체가 얼핏 떠올랐다. 직접적으로 해소하지 못했으니 무헌은 아직 부족할 수도 있었다.

“주인님, 저 싸, 싸요….”

“우리 강아지가 다 보는 데서 오줌이나 지리고. 응?”

목소리 끝이 제법 다정했다. 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마지막 체면을 내려놓은 뒤 밑에 힘을 풀고 실컷 방뇨했다. 물줄기가 거세졌다.

“하응….”

우희는 혼탁한 시야를 부지런히 그와 맞추며 남은 물을 쏟아냈다.

“흐윽, 흐윽….”

바닥에 좀 흘린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무헌은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비대의 버튼을 누른 그가 우희의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렸다.

“세기는 어때.”

“괘, 괜찮아요.”

소변을 눌 때보다 더 부끄러워서 눈을 내리깔았다. 세정이 끝나자 그대로 안아 올렸다. 우희는 그에게 찹쌀떡처럼 달라붙으며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잘했어.”

그 말이 뭐라고 서러움이 폭발했다.

“흐윽, 이제 그만…. 그만할래요.”

우희는 필사적으로 무헌을 껴안으며 도리질 쳤다.

“많이 했으니까… 흐윽, 그만할래요.”

“강아지가 아니라 진짜 애새끼를 주웠네.”

나른한 투로 말한 무헌이 침실로 나갔다. 혹여 떨어지면 그가 플레이를 재개하자고 할까 봐, 꽉 달라붙어 여지를 차단했다.

“저 진짜 힘들어요.”

“누군 편할까, 좆이 터질 것 같은데.”

그의 맨살에서 나는 향기가 묘하게 좋아서 코를 훌쩍이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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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쯤 화들짝 놀라며 깼다. 악몽을 꾼 것처럼 등이 축축했다. 전에 그 침대에서 또 한 번 신세를 진 우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근한 수면 등이 외롭게 켜진 커다란 침실엔 그녀 혼자였다.

“아….”

밑이 조금 따끔거렸다. 심각한 정돈 아니어서 최대한 조심하며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허벅지 위에서 펄럭거리는 커다란 셔츠는 우희의 옷이 아니었다. 무헌의 것인 듯 품이 큰 셔츠는 손목이 몇 번 접혀 있었고, 옷 안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정강이와 입가에 연고가 묻어 있었다. 정두영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해둔 듯싶었다.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런 자잘한 상처가 뭐라고 무헌은 정성껏 약을 발라뒀을까.

어쨌든 집에 돌아가려면 옷부터 찾아야 했다. 우희는 욕실로 들어가 세탁 바구니에서 옷을 꺼냈다. 다시 입기엔 상태가 나빠 찝찝했으나 헐벗고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헌의 셔츠를 머리 위로 벗고 옷을 주워입었다. 2층 계단으로 내려가자 불이 밝게 켜진 거실 한가운데에 이 실장과 함께 있는 무헌이 보였다. 밖으론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은 채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고 그 옆으로 이 실장이 벌 받는 것처럼 서 있었다.

우희는 계단을 내려가며 때를 잘못 맞췄나 고민했다. 그래도 연락처를 남긴 메모를 두고 훌쩍 가버리는 것보단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게 나을 거다.

그녀의 인기척을 인지한 무헌이 빽빽한 서류 활자에 눈을 고정하고서 우희를 향해 말했다.

“일어났으면 식사해야지.”

“밥은 집에 가서 먹을게요. 시간도 늦었고, 실례 많았습니다.”

말을 마친 우희는 갑자기 허리 숙여 인사하는 이 실장의 행동에 놀라 주춤거렸다.

“일어나셨습니까, 형수님.”

“…저요?”

“예, 형수님.”

우희를 동네 꼬마를 대하듯 방종하기 그지없던 이 실장의 태도가 깍듯하게 돌변해 있었다.

그 옆에 태산처럼 자리한 무헌을 보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래도 상사의 섹스파트너에 불과한 그녀에게 고개까지 숙이는 건 조금 과분했다.

무헌의 손에 들린 서류가 이 실장의 품으로 돌아갔다.

“나가 봐. 애들 치우고.”

“예.”

우희에게도 또다시 깍듯한 인사를 건넨 이 실장이 돌아갔다. 그녀는 남은 계단을 내려가 무헌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희의 차림새를 느긋하게 훑은 무헌의 날렵한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딴 걸 옷이라고 걸치고 나오지.”

“어쩔 수 없었어요.”

우희가 누더기 같은 옷을 손으로 더듬었다.

“침대 옆에 내 옷을 두었는데.”

반바지와 티셔츠를 보긴 했지만 입어도 될지 확신이 없었다. 왠지 그의 생활에 너무 끼어드는 기분이라 내키지도 않았다.

“어차피 돌아갈 건데요.”

“내일 아침이면 주문한 옷이 올 거야. 그때까진 내 옷 입어. 필요한 건 차차 사면 되고.”

“아침까지 있으란 거예요?”

긴 다리를 풀고 일어난 무헌이 거실 맞은편의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큰 보폭을 자랑하는 동안 우희는 거절을 말을 쥐어짜야 했다.

“초밥, 죽. 어느 쪽이 나아.”

“저는 그냥 집에 갈게요.”

“급한 대로 사 온 거라 성에 안 차도 참아. 다음 식사까진 구색 맞출 테니까 일단 배부터 채우지.”

벽 뒤로 사라진 무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우희는 목을 길게 빼며 말했다.

“아뇨.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요. 시간도 많이 늦었구요, 잠은 집에서 자야죠. 연락처는 어떻게 할까요? 다음엔 언제 만나실 수 있어요?”

“김우희.”

“네?”

보이지 않은 채 얘기를 나누려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우희는 종종거리며 다가가 주방 입구로 향하는 벽을 돌아갔다.

무헌이 있는 주방으로 들어서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식탁 의자를 빼며 빈자리를 눈짓했다. 그는 우희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앉지.”

우희는 고개를 저었다. 플레이가 아닌 시간까지 그의 말을 따를 의무는 없었고 무헌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니 확실히 거절하면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집에 갈 거라구요.”

“이거 먹고 짐 챙겨서 들어와. 나도 휴가 기간엔 쭉 이곳에 있을 거고.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잖아.”

“…아주 여기서 지내란 거예요?”

“곧 유학 가셔야 하는 몸인데, 틈나는 대로 플레이해야지. 아쉽지 않게.”

우희는 뒷걸음질 치다가 눈에 힘주어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그와 밀접하게 지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싫어요.”

“합리적인 게 싫나.”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플레이 동안만 당신 말 들을 거예요. 이런 것까지 강요하지 마세요.”

“누가 24시간 내 밑에서 기라고 했나? 편하게 하자는 거지.”

우희는 이곳에서 무헌과 살 부대끼며 살 자신은 없었다. 김중혁이 알면 곤란한 건 고사하고서라도 무헌이 생활에 너무 깊이 침투하는 건 겁났다.

조금 전에 한 플레이만으로 지울 수 없는 큰 영향을 받았다. 그와 생활까지 같이하라는 건 시도 때도 없이 무헌에게 휩쓸리란 소리였다.

유학을 떠나 머리를 환기한다고 해서 사라질 취향이 아니란 것을 무헌과 플레이로 깨달았다. 주인의 관심을 먹고 사는 처절한 섭이란 걸 부정할 수가 없게 된 거다.

다시는 무헌 같은 돔을 만나지 못하리란 건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이었으니, 그와 생활까지 공유하는 건 잔인했다. 적당한 거리 유지만이 우희의 살길이었다. 헤어질 때 엄청난 상실감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

“저는 남의 집에서 못 자요.”

“잘 자던데, 잠꼬대도 하고. 욕도 했나.”

“잠자리가 불편해서 가위눌렸나 봐요.”

“내 몸도 더듬던데.”

“좋은 게 있으면 만지고 싶은 게 사람 본능이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희는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빠져나갔다. 지난번 무헌의 성기를 보고 도망칠 때보다는 침착한 걸음이었으나 붙들릴까 봐 두려운 마음은 그때보다 컸다.

그녀는 현관의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하나 챙겼다. 나중에 돌려줄 생각으로 우산을 펼쳐 현관을 빠져나왔다. 장대비를 피해 대문을 나서자 이 실장이 서 있었다. 덩치의 우산 아래에 편히 서 있던 그가 우희를 발견하곤 번뜩 자세를 바로 했다.

“형수님,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길 알아요.”

“형님 지시입니다.”

“혼자 가는 게 편해요.”

“그냥 가시면 제 모가지가 날아갑니다. 설마 그러길 바라십니까?”

호소하는 이 실장의 두툼한 눈두덩에 약간의 협박이 담겨 있었다. 비도 오고 돌아갈 길이 멀긴 했다. 우희는 한숨을 내쉬며 차에 올랐다.

조수석엔 함께 있던 덩치가 타고 이 실장은 운전석에 탔다. 우희는 주인인 양 차지한 뒷좌석이 불편해서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토로하듯 이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 실장님, 전처럼 편하게 말씀하면 안 될까요?”

“그건 어려운데. 형님께서 깍듯하게 모시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운전대를 시원하게 감으며 이 실장이 룸미러를 흘긋댔다. 우희는 문득 상사의 섹스파트너 눈치까지 봐야 하는 이 실장이 측은해졌다. 시한부 관계의 첫 희생양이 된 그를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이 실장님.”

“예예. 죄송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하세요.”

“집 앞까지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차는 슈퍼 앞의 골목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혼자 걸어가려니 정두영이 떠올라 불안해졌다.

평소의 정두영이라면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이니 벌써 돌아갔을 테지만, 눈이 돌아 있던 걸 생각하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예. 그렇지 않아도 집까지 모시려고 했습니다.”

골목에 정차한 뒤 이 실장이 운전대를 놓고 내렸다. 우희는 한발 앞서가는 듬직한 어깨를 가로등 삼아 걸었다.

심약자가 보면 기절초풍하게 생긴 이 실장은 이 순간, 우희에게 든든한 무기였다. 더는 정두영이 무섭지 않았다. 역시 돈과 힘은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게 없었다.

“가로등이 죄 고장 났네. 이런 데서 혼자 지내신다고? 허이고.”

이 실장이 컴컴한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혀를 찼다. 우희는 그 뒤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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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는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잠이 들었다가 깼다를 반복하며 끙끙 앓았다. 무헌의 별장에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할 만큼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별장 욕실 바닥에 손을 짚고 기마자세를 취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개구리처럼 앉아 엉덩이를 흔들던 걸 떠올리자 아픈 와중에도 흥분이 밀려들었다.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식사를 챙길 힘도 없어서 끓여둔 보리차만 조금 마셨다. 무헌과 함께한 단 몇 시간이 며칠간의 대청소보다 체력 소모가 큰 듯했다. 앞일이 조금 걱정됐다.

조금만 움직여도 곡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체력 증진 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격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우희로서는 꽤 큰 결심이었다. 산책 코스를 늘려야 하나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자니 왜 혼자만 이 고생인가 싶어서 억울함이 들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뜨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으나 상대가 무헌이란 걸 어렵지 않게 유추했다.

[차 보낼 낼 테니 7시까지 와.]

[저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내일 아침 식사를 함께하자던 김중혁의 목소리가 잔재했다. 오지 말라는 김규호를 생각하면 굳이 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불참하자니 김중혁이 난리를 칠 것 같았다. 주선혜가 어디까지 중재해주려나. 몸이 아프니 머리도 잘 안 돌아갔다. 이래저래 고민이었다.

무헌의 답은 전화로 왔다.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시네. 우희는 이마를 긁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늘 왜 안 돼.]

대뜸 질문하는 무헌의 목소리가 낮았다. 감정을 죽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목소리를 듣자 남아 있던 잠이 달아났다.

“개인적인 사정이에요. 오늘은 어렵고 3일쯤 뒤에 봬요.”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었다. 7시까지 오라는 무헌에게 3일 뒤에 보자고 한 건 조금 미안했지만, 그도 그러라고 동의할 줄 알았다.

[개처럼 끌고 오기 전에 계획 바꿔.]

“…네?”

[3일 뒤는 우희야, 끝내자는 소리지.]

무헌이 싸늘하게 추궁했다. 건조한 동의도 싫었으나 이렇게 화내는 것도 싫었다. 갈대 같은 줏대를 뽑아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우희는 핸드폰을 쥔 손을 바꾸며 어깨를 한 바퀴 돌렸다.

통증에 인상이 절로 써졌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허기지는 것이 서러웠다.

“몸살 났단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대놓고 퉁명스러웠다.

[고작 그거 뒹굴고 몸이 상하기라도 했나?]

“형님께선 하는 입장이니 모르시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온몸이 다 아프다구요.”

[그러게 왜 고집을 피워. 여기 있으면 수발들어줬을 텐데.]

무헌은 평이한 투로 우희의 선택을 비웃었다.

“네. 모두 제가 자초한 일이죠.”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말해. 보지가 아플 린 없을 거고.]

그의 말대로 무헌은 직접적으로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핸드 스팽을 했지만, 집에 왔을 때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두영을 피하다 다친 정강이가 아직도 욱신거릴 뿐.

[병원 갈 정돈가? 열은.]

우희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머물렀다. 당연한 듯 몸 상태를 묻는 무헌은 역시 좋은 주인이었다. 뺨을 손끝으로 문지르다가 속도 없는 것 같아서 얼른 눈가를 찌푸렸다.

“며칠 쉬면 나을 거예요.”

[지금 차 보낼 테니까 얌전히 타고 와.]

“형님이랑 있으면 못 쉴 것 같아요.”

[네가 아픈 건 내 책임이야. 플레이 때문이라면 더욱.]

플레이 파트너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걸까. 부족한 경험으론 평균 상식을 도출하기 어려웠다.

“괜찮아요, 진짜.”

느른하게 한숨을 쉰 무헌의 호흡이 다시금 길게 이어졌다. 담배를 태우는 것 같았다.

[그럼 보지 사진 찍어서 보내. 보고 판단하게.]

“…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스팽한 부위 확인하는 건 기본이야. 3분 안에 보내.]

“저, 거기 괜찮은…!”

전화가 걸려왔던 것처럼 끊어지는 타이밍도 갑작스러웠다. 우희는 까맣게 칠해진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며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기본이라고…?”

무헌이 그저 가지고 놀려고 함정을 판 건지, 진지하게 말한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침음을 삼킨 우희는 뻑뻑한 눈가를 눌렀다.

손안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의미 없이 문질렀다가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헉…!”

목구멍 밖으로 심장이 튀어 나갈 것처럼 맥박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지잉,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

우희는 벌레의 사체를 확인하는 것처럼 핸드폰 액정을 툭, 옆으로 밀었다. 마음을 크게 먹고 실눈을 떴다. 다행히 이번엔 사진이 아닌 문자였다.

[쉽잖아. 바로 지워. 나도 그러지.]

무헌은 발기한 성기를 찍어 당당히 메시지를 보내놓고 처분에 대해서도 쉽게 얘기하고 있었다. 우희는 손끝에 힘을 주어 메시지를 위로 올렸다. 고환에서 이어지는 밑동을 쥔 긴 손가락과 채 잡히지 않은 길쭉한 기둥. 그리고 그 끝에서 미지근하게 새고 있는 프리컴까지. 보란 듯이 적나라했고 불그스레한 색감은 해괴하기까지 했다.

“미쳤나 봐….”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말 글러 먹은 것 같았다.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질식할 만큼 무헌의 것을 물고 싶어졌다. 어딜 봐도 일반적이지 않은 크기의 페니스가 무서우면서 또 탐났다.

[직접 확인하러 가도 되고.]

참을성 없이 도착한 메시지를 보곤 퍼뜩 놀라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고민할 시간 없이 트레이닝 바지에 손가락을 끼워 쑥 내렸다. 속옷과 함께 내려간 바지를 오른쪽 발목에 끼웠다. 이불에 닿는 맨살의 감촉이 보들보들해서 괜히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우희는 아무도 없는 집을 두리번거렸다. 혼자인 게 확실한데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직접 확인하러 오겠단 무헌의 메시지는 거짓이 아닐 거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벽에 등을 비스듬하게 기댄 뒤 두 다리를 조심히 들었다. 다리 밑으로 이불을 살짝 걷고 음부에 맞춰 카메라를 가져다 댔다. 창을 꿰뚫는 밝은 햇빛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삼각지의 빽빽한 음모와 구멍 주변의 여린 털. 작고 연한 색감의 소음순이 가감 없이 카메라에 투과됐다. 찰칵.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저장했다.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받는 이를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전송했다. 그동안 재촉하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저도 지웠으니까 바로 지워주세요.]

오타를 여러 번 낸 뒤에야 완성형의 문자를 보내놓고 손톱을 깨물었다.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다.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더 미친 무헌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좋은 주인이니 결코 섭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비로소 위험한 놀이기구에 올라탄 것처럼 짜릿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그래, 범죄도 아닌데 뭐 어때. 서로 비밀만 잘 지키면 될 일이다. 법 없어도 사는 무헌이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사진이 유출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거다.

다만 무헌에게서 답이 늦었다. 우희는 이불 속에서 눈을 끔뻑이며 답신을 기다렸다. 저지르고 나자 행위에 대한 자책감보다 무헌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지잉. 신호총처럼 불시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콩알 자지를 세워야지. 발정 난 구멍 잘 보이게 활짝 벌려서 다시.]

낙뢰를 얻어맞은 것처럼 우희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뭐, 뭐를 세워? 우희 딴엔 태어나 가장 야한 짓을 저지른 후였다. 그러나 무헌은 내심 칭찬을 바라던 우희의 기대를 단숨에 무너뜨리며 더 음란해지란 주문을 해왔다.

매몰찬 무헌에게 섭섭함도 잠시였다. 다른 기대감이 들어찼다. 그가 지독한 변태인 이상 플레이가 루즈해지는 일은 없겠지.

그나저나 콩알 자지라니. 처음 듣는 무뢰한 단어를 곱씹자 자글자글 열이 올랐다.

이불을 전부 걷어낸 우희는 손가락을 밑으로 내렸다. 무헌이 쳐들어오기 전에 곧장 시행해야 했다. 나고 자란 곳에서, 엄마의 기억이 담긴 이 집에서 무헌에게 다리를 벌리고 개처럼 길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의 주문에 맞춰야 했다.

상당한 흥분감에 잠겨 우희는 신음을 흘렸다.

“흣….”

숱이 빽빽한 부드러운 음모를 살살 헤쳤다. 늘 음모가 많아서 스트레스였다. 월경 때마다 왁싱을 고민했다. 그런데도 시도하지 않은 건 타인과의 접촉이 껄끄러워서였다. 시술이 목적이라고 해도 낯선 사람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수영장이나 목욕탕조차 꺼릴 만큼 타인에게 결벽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런 우희의 견고한 벽을 무헌은 아주 손쉽게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그가 유일한 우희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흣….”

예민한 살점을 찾아 손끝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쾌락 점을 찾으며 음탕한 상상을 시작했다.

어제 어떻게 했더라. 우희는 무헌을 향해 벌름대는 밑구멍을 내보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더 밟아달라고 애원하는 마음을 가졌다. 진창으로 처박아주는 말에 흥분하면 애액을 뿜었다. 낯선 남자 앞에서 오줌을 쌌다.

“아읏….”

무헌이 재료가 되자 열은 쉽게 올랐다. 얇은 껍질에 쌓인 둥근 정점이 귀엽게 부풀었다. 확실히 아까보단 커진 것 같았다. 무헌의 말대로 제대로 세웠는진 모르겠지만 감각이 무르익은 것이 여실했다. 손끝이 살짝만 닿았는데도 허벅지가 경련할 만큼 예민해졌다.

“아흣….”

손가락을 쭉 내리자 구멍에서 흐른 미끈한 애액이 수초 같은 음모를 미끈하게 뒤덮은 게 느껴졌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들었다.

“아읏….”

아무런 자극 없이도,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아래가 옴쭉댔다. 다리를 활짝 벌리고 음모를 위로 젖혀 클리토리스까지 한 화면에 잡았다. 찰칵. 사진을 찍고 받는 이를 재차 확인한 뒤 전송했다.

사진첩을 눌러 증거를 인멸했다. 남아 있는 흥분 때문에 계속 밑을 만지며 답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무헌은 답이 없었다.

한번 불안감이 엄습하자 밑이 마르기 시작했다. 우희는 메지시함과 빈 사진첩을 들락거렸다. 1이 사라졌음에도 답이 없는 무헌의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용기를 잃은 우희는 이불 속으로 은신한 뒤 핸드폰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시큰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는 연결이 되었는데 무헌은 말이 없었다.

“저….”

[그새를 못 참고.]

하…. 무헌의 낮은 신음이 크림처럼 고막을 휘감았다. 뭔가 이상했다.

“…뭐하고 계세요?”

[좆 잡고 흔드는 중인데.]

우희가 벌떡 일어나는 동시에 둥근 어깨에 걸렸던 이불이 툭, 흘러내렸다.

[영상통화를 할 걸 그랬나. 우리 강아지가 헐떡이는 얼굴로 봐주면 더 빨리 쌀 텐데.]

무헌이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사, 사진 지우셨어요?”

[지금 보고 있지. 김우희 통통한 보지에 뭘 박아볼까 생각하면서. 우선은 좆이 좋겠지.]

놀라서 통화 종료 버튼을 연타한 뒤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아흣….”

뱃속이 욱신댔다. 멍하니 앉아있던 우희는 자위하는 무헌을 상상하다가 다시 밑을 만졌다. 조금 전 들은 낮은 웃음소리를 되새기자 음핵을 몇 번 문지르는 것만으로 절정에 올랐다.

“하읏…. 아…!”

오르가슴이 지나가자 약간의 자괴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잔열이 남은 몸을 웅크리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우희는 이불 위를 기어가 핸드폰을 가져왔다.

[한숨 자고 밤에 갈게요.]

고민하던 서울행은 관뒀다. 스스로 빠진 구덩이에서 실컷 헤엄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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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우희는 집을 나섰다. 푹 잠들어 9시까진 오라는 무헌의 답장을 뒤늦게 확인한 터라 마음이 급했다.

이 실장이 모는 차가 별장에 가까워지자, 조급함이 거세졌다. 꼭 무헌에게 혼날 것만 같았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해요.”

“바로 내리셔야 됩니다.”

이 실장이 미적거리는 우희를 떠밀었다. 그의 음성에서도 초조함이 느껴졌다.

조금 전. 10시가 넘어서 일어난 우희는 무헌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메시지에 적힌 대로 이 실장이 대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실장님, 대체… 얼마나 기다리신 거예요?’

‘얼른 갈 준비나 합시다. 형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당황한 우희는 우선 이 실장을 집안으로 들인 후,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전처럼 대문이 부서져라, 두드려주지는. 갑자기 예의를 지킨답시고 대문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서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는지.

“휴….”

회상을 마치고 한숨을 내쉰 우희는 덩치가 열어주는 문밖으로 꾸역꾸역 빠져나왔다. 시간을 다시 확인하자 기분이 축축 처졌다. 사고를 친 어린아이처럼 주눅이 든 거다.

플레이도 아니고 자다가 늦는 정돈 괜찮았다. 정확히 따지면 아직 밤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간이 쪼그라들 필요가 없었다.

우희는 정원 곳곳에 자리한 가로등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멜론 같은 전등을 품은 가로등이 한밤의 어둠을 은은히 밀어내고 있었다. 빛을 따라 돌계단으로 진입하자 정원 가운데의 벤치에 앉은 무헌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희는 얼른 속도를 내려다가 앞으로 고꾸라질뻔했다. 순간 두툼한 손이 튀어나와 우희의 낭창한 허리를 낚아챘다. 뒤따라오던 이 실장이었다.

“허이고, 괜찮으십니까.”

우희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구두가 불안하게 지면을 지탱하는 걸 이 실장이 영 못 믿겠단 듯이 바라보았다.

“또 넘어지겄는디.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이 실장이 우희의 허리를 번쩍 들어 돌계단 위의 정원 바닥에 내려주었다. 원치 않은 친절이었지만 마다할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무헌에게 정신이 쏠린 우희는 냉큼 그를 향해 뛰어갔다. 조심하라는 이 실장의 당부는 의식 저 뒤로 사라진 뒤였다.

“마, 많이 기다렸어요?”

불난 집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다급하게 묻는 우희를 비웃듯 무헌은 여유로웠다. 그가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입가를 늘렸다. 짜증이 난 것도 같고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희는 처음 보는 무헌의 표정을 뜯어보며 쉽사리 읽히지 않는 그의 기분을 가늠해보려 애썼다.

“플레이를 한 번만 더 했다간 송장 치우겠어.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맥을 못 추면 앞으로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

“시간을 착각한 것뿐이에요.”

“착각하는 게 정말 그것뿐인가.”

무헌이 잘 이해되지 않는 질문을 하고선 답을 요구했다.

“메시지를 늦게 봤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무헌이 골치를 앓는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그의 고민거리가 된 듯했다. 검은 안개에 갇힌 듯 캄캄한 흥분에 휩싸였다.

어쨌거나 그를 기다리게 했고, 무헌은 이 실수를 플레이로 끌어들여 자신을 처벌할 거다. 두려운 만큼 기대감이 차곡차곡 덩치를 키워갔다.

무헌의 옆엔 낯익은 얼굴의 덩치 두 명이 함께였다.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자리한 그들은 이 실장처럼 인사를 해오거나 눈을 맞춰오진 않았다.

앞만 보고 선 덩치들의 속마음이 어쨌건, 무헌의 사생활이 저들 입을 통해 새어나갈 리는 없었다. 그래서 무헌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그녀가 무헌을 올려다보았다. 무감각의 어디쯤을 배회하던 눈빛이 우희에게 비딱하게 내려앉았다.

“뭐 하는 짓이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일어나. 무릎 다쳐.”

“화 많이 나셨어요?”

“일어나란 말 못 듣지.”

“혼내셔도 돼요. 반성할게요.”

우희가 제법 결연하게 대꾸했다. 툭툭. 무헌의 긴 손가락이 벤치 바닥을 두드렸다. 한숨 비슷한 것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김우희.”

“네.”

“누가 같잖게 판단하라고 했을까. 일어나란 말이 이해가 안 되나.”

우희는 움찔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무헌의 기분을 풀어주려던 것이 오히려 화를 돋운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벌 받아야 하잖아요.”

“너한텐 상이겠지. 그래서 일부러 좆 같게 구는 건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왜 화가 더 난 거지? 우희로서는 최선을 다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무헌에게 혼나고 싶어서 일부러 그를 화나게 할 만큼 요령 좋은 섭이 아니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정두영에게서 도망치던 꼴을 보인 게 마음에 걸려서 신중하게 고른 옷을 입고 왔다. 힐까지 신고 왔는데, 그런 정성은 보이지 않는지 무헌은 잘못을 찾으려 혈안이 된 사람처럼 매섭게 말했다.

“일어나.”

“주인님.”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 걸 언제까지 봐줘야 할까.”

무헌에게 맞는 게 좋은 만큼이나 칭찬받고 싶었다. 그에게 섭으로서 신뢰를 받은 뒤에 매를 맞든, 뺨을 맞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면 화난 무헌이 그냥 돌아가라고 할 것 같았다. 우희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주 큰 실수란 걸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무헌이 뒤의 덩치 두 명을 향해 손짓했다.

“둘, 바지 벗어 봐.”

“네?”

놀란 건 우희였다. 덩치 둘의 표정에도 짧은 당혹감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어디서 굴러먹던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데서나 가벼우면 되겠나. 이참에 제대로 배워.”

“무슨….”

“아, 혹시 이 새끼들한테도 배 까뒤집고 싶은 걸 내가 몰라본 건가? 주인 하나로는 만족이 안 돼?”

우희는 그제야 무릎을 꿇은 게 문제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무헌이 시키지 않은 짓이었다. 면죄부를 얻고자, 기특하단 소리를 들으며 귀여움을 받고자 일어나란 명령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우희는 떨리는 손으로 잔디를 짚은 뒤에 무릎을 떼고 일어났다. 수치스러움에 두 뺨이 뜨거웠다.

“제가 실수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냥 넘어가면 만만한 줄 알고 설칠 게 뻔히 보이는데 그냥 넘어가라고.”

“안 그럴게요. 정말 안 그럴게요.”

우희가 젖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잘 몰라서 그랬다. 정말 이런 게 처음이라서. 아니 무헌이 처음이라서 그가 뭐를 좋아할지 몰랐다. 이런 건 서럽고 무서웠다.

“질서를 모르는 것 같은데.”

“알려주시면 잘할게요.”

“그럼 고개 들어야지. 왜 아무 데서나 개새끼처럼 굴어.”

우희는 벌 받는 심정으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타인 앞에서는 고개 숙이지 말란 소리였다. 다른 보는 눈이 있는 곳에선 무릎도 꿇지 말고. 그게 무헌이 말하는 질서였다.

자기의 섭을 다른 돔에게도 빌려주고 갱뱅까지 일삼는 하드한 플레이를 관망하던 우희에게 무헌의 세계는 어려운 편이었다. 그러나 무헌이 하는 말이 법인 세계에 발을 들였으니 그를 따라야 했다.

“이것들은, 좆대가리를 따야 벗을까.”

무헌의 목소리 끝에 짜증이 묻어났다. 우희는 제게 한 소린 줄 알고 어깨를 굳혔다가 아니란 걸 깨닫고 불안하게 입술을 씹었다. 덩치 둘이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형님!”

눈치를 보던 덩치 둘은 허겁지겁 벨트를 풀었다. 금속이 어긋나는 소리가 적요한 정원 바닥에 깔렸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멍한 시야가 올가미처럼 우희를 조여왔다.

덩치들이 지퍼를 벌리고 허리춤에 손을 끼웠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우희가 뒤로 달아나려는 것을 무헌이 허리를 감싸 당겼다.

“배운다고 하지 않았어?”

“했어요….”

“그럼 잘 봐야지.”

무헌은 부드러운 힘으로 그녀를 벤치에 앉혀두곤 가녀린 턱을 잡아 덩치들이 보이도록 고정했다.

“한번 말해선 못 알아들어 처먹잖아. 학습 능력도 없어 보이니 충격 요법을 쓰는 거야. 동물에겐 동물적인 방법이 낫겠지.”

“…충격 요법이요?”

우희가 울먹이는 사이 덩치 둘의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갔다. 그 채로 뒷짐 진 그들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제대로 봐. 내 강아지가 다른 사내새끼 앞에서 우스워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지.”

“읏….”

눈을 질끈 감으며 도리질 쳤다.

“날 어디까지 얕잡아 보는 걸까.”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그렇게 봐요. 아시잖아요.”

무헌이 파르르 떨리는 우희의 음성을 가볍게 무시했다.

“저것들이 좆 잡고 흔들면, 바닥까지 내려간 김우희 위신이 좀 세워지려나.”

“제발….”

우희가 처절히 애원하며 그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무헌이 태연한 표정으로 제 팔에 감긴 손가락을 가닥가닥 떼어냈다. 툭, 그녀의 팔이 낙엽처럼 힘없이 주저앉았다.

우희는 버림받는 강아지처럼 충격에 휩싸여 입을 벙긋거렸다. 고작 한 번의 플레이로 무헌의 뭐라도 된 줄 알았나 보다. 그가 내치듯 손을 밀어내자, 하염없이 서글퍼졌다.

“울고 애원하면 용서해주고 봐주고. 그럴 거면 뭣 하러 너랑 놀아. 뭐해. 니들은 좆 흔들어야지.”

“예, 형님!”

씩씩하게 대답한 덩치 둘이 속옷을 한 번에 발목까지 내렸다. 우희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헌에게 잡혀 고정된 턱을 흔들어 거뭇하게 덜렁거리는 성기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강제로 보게 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흐읏….”

“사지를 묶어줄까. 아니면 코앞까지 저 새끼 좆을 대령해줄까.”

우희가 고개를 저으며 차오른 눈물을 떨궜다.

“제발, 무슨 말씀하는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만해주세요.”

우희의 경솔함이 애꿎은 사람들을 잡고 있었다. 관련 없는 덩치들에게 벌을 가하는 건 부당했다.

“내 것이면 고상하게 굴어야지. 저것들 때문에 눈물 짜면 그땐 더 좆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우희는 자신과 고상이란 단어가 겉돈다고 생각됐다. 그의 앞에서 한없이 천박해지는데, 그는 고상하게 행동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것이므로 타인 앞에선 품위 있게 행동하란 뜻이었다. 플레이 파트너란 얄팍한 관계 안에서 지향하기엔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제발, 그만… 하세요.”

“아, 저것들이 떡 치는 걸 보고 싶은 건가.”

허옇게 질린 우희는 결국 애원하길 포기하고 사약을 받는 심정으로 덩치들을 바라보았다. 덩치들을 도와주려면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애원한다고 물러나는 호락호락한 주인이 아니라는 게 한편으론 좋았다. 우희가 어찌할 수 없는 바위 같은 상대가 그녀의 주인이라는 게 더없이 황홀했다. 이런 때조차 잠잠하질 못하는 성향이 남사스러웠다.

덩치들이 전혀 부끄러움 없는 자세로 셔츠 깃 사이로 축 늘어진 성기를 쥐었다. 이윽고 두툼한 손으로 쥔 거무튀튀한 성기를 흔들었다. 아무런 성적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 보기 불편하기만 한 장면을 세 남자는 아무런 동요 없이 견뎌냈다. 어쩔 줄을 모르는 건 우희뿐이었다.

이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감행하는 진무헌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그의 내면이 궁금해졌다. 어딘가 단단히 비뚤어진 게 틀림없었다. 보통 섭의 자위를 노출하지, 상관도 없는 바닐라의 자위를 섭에게 보게 하진 않았다.

척척척. 덩치의 프리컴이 윤활유가 되어 끔찍한 소리를 냈다. 가뜩이나 빈속이라 울렁거리던 위장이 뒤집힐 것만 같다.

“우리 강아지, 그간 좆 맛은 많이 봤으니 감이 올 것 같은데, 어때. 저 새끼 좆이 맛있을 것 같아? 그래서 개처럼 무릎을 꿇었어?”

너무 억울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녀가 복종을 맹세한 건 무헌이었다. 덩치들의 행위를 백날 지켜본다 한들 아무런 흥분도 가져오지 못했다.

“고상하게 있으라고 하셨으면서 왜….”

“말해.”

“주인… 아니 진무헌 씨가 더, 저를 민망하게 하는 거예요?”

서러운 마음을 한 톨 흘려낸 우희가 입술을 씹었다. 무헌이 손끝을 뻗어 감쳐 문 입술을 빼냈다.

“발랑 까진 네가 독단적으로 헤프게 흘리고 다니는 것과 내 손을 거친 게 같아?”

무헌이 도통 무슨 생각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 건지 계산기를 두드리려는 자그마한 머리를 무헌이 톡톡 건드렸다.

“정 죄송하면 저것들 뒷구멍이라도 쑤셔 보든가.”

그 말에 백지장이 된 얼굴로 우희가 소리쳤다.

“미, 미쳤어요?”

“그 정도는 해야 저것들 눈깔이 안 뽑힐 건데.”

무헌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지만, 우희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져만 갔다.

“싫어요. 정말 싫어요. 그러면 안전어 말할 거예요.”

“그래, 한다고 했으면 죽여버렸을지도 모르겠네.”

무헌의 동공이 음산한 빛을 발했다. 뭐? 우희는 시험대에 오른 것처럼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아흑!”

덩치 하나가 기계적인 자위의 끝을 알리며 크게 신음했다. 정원 바닥으로 막지 못한 사정액이 튀었다.

“저 새끼가 돌았네.”

무헌이 심드렁히 말하며 미간을 좁혔다.

“죄송, 죄송합니다, 형님. 흐으….”

아래를 채 숨기지 못한 남자가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고 우희는 새파랗게 질려 무헌에게 숨다시피 안겨들었다.

“제발, 저한테…. 저한테 푸세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지금 저거 감싸?”

“아니요. 아니에요. 다른 사람 없이, 주인님이랑만 있고 싶어요.”

작게 속삭인 우희는 가장 무서운 사람의 품으로 더욱 용감하게 파고들었다. 무헌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얼추 알았으니 이 정돈 봐줄 거란 계산이 있었다.

으음, 하고 무헌이 목을 울렸다.

“제발요… 주인님. 저런 건 싫어요. 주인님 것만 좋아요. 주인님만 볼래요.”

계속 속삭이며 우희가 그를 채근했다. 덩치들을 배제하는 편이 무헌의 기분이 좋아질 거란 판단은 먹혀들었다.

“애교 안 통한다는데도 고집을 부려.”

무헌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웠다. 우희는 턱을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가 원하는 건 주인님이에요. 다른 사람은 그냥 안 보였어요…. 그래서 무릎 꿇은 거예요.”

“안 보여? 그럼 저것들 있는 데서 할까. 어차피 안 보일 텐데.”

애써 다잡은 심지가 무헌의 말 한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렸다.

“아, 안 돼요.”

“말이 자주 바뀌네. 듣는 사람 심란하게.”

심란한 건 우희였다.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선이 없을 줄 누가 알았나. 우희는 차마 속마음을 뱉진 못하고 감정에 호소했다.

“주인님, 너무 무서워요. 주인님이랑 둘이 있고 싶어요. 다른 사람은 싫어요.”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다행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조금 마음이 놓인 우희는 강아지가 낑낑대듯 그의 쇄골에 이마를 비비며 파고들었다. 다행히 아까 손가락을 떼어내던 것처럼 내치진 않았다. 그게 뭐라고 감격이 찌르르, 진동했다.

“근데… 정말 죽일 거예요?”

“정말 죽여?”

“아까 정말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우희의 눈앞에 호수와 포대 자루가 둥둥 떠다녔다.

“하는 거 봐서.”

“그럼 주인님이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전부 알려주세요.”

물먹은 음성으로 속삭인 말에 무헌의 눈썹이 실룩였다. 골치 아픈 사건을 맡은 형사처럼 우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팔로 무헌의 등을 칭칭 감으며 빳빳한 슈트에 뺨을 비볐다. 주인님뿐이라고 어서 둘이 있고 싶다고 평생 부려본 적도 없는 애교를 열심히도 쥐어짰다.

“전부 치워.”

“네, 형님.”

언제부터 있었는지 이 실장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바지를 엉거주춤 입은 남자 둘이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눈에 띄게 안도하던 우희는 아차 싶었다.

무헌의 명령이 그녀에게 닿을 차례였다. 우희의 긴장한 등 근육을 어루만지며 무헌이 물었다.

“야외 플레이 좋다고 했나.”

“…네.”

대답해놓고 나니 이곳도 야외였다. 산속에 자리한 별장은 빽빽한 나무와 높다란 담을 겸비해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완벽한 요새였다. 덩치들을 물렸으니 이곳엔 무헌과 그녀뿐이었다. 불편한 공기에 자취를 감추었던 기대감이 은근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무헌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우희를 가뿐히 떼어냈다. 가엽게 떠는 그녀를 두툼한 허벅지 위로 엎드리게 했다.

그러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원피스 끝자락을 들쳤다. 시스루 재질의 얇은 속옷 위로 그림 그리듯 손끝을 미끄러뜨리다가 와락 살덩어리를 쥐었다.

“아읏! 주, 주인님.”

“바람 한 번 불면 죄 뒤집히게 생겼는데.”

“흐읏….”

엉덩이를 터뜨릴 듯 커다란 손이 압력을 더했다. 싸늘한 바람이 스치는 곳에서 엉덩이를 내놓으려니 불안했다. 다만 도덕을 거스르는 야만적 행위에 누구보다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헌에게 들키는 건 짜릿했다.

“이런 위험한 꼴을 하고 다녀.”

“주인, 주인님한테 잘 보이려고….”

“나? 이 실장이 아니고?”

이 실장? 번쩍이는 시야 너머로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대문 앞에서 조용히 대기하던 이 실장을 집으로 들인 후, 인스턴트 녹차를 대접했다. 그러곤 원피스 두 벌을 가지고 나와서 그에게 어떤 게 더 낫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물은 거 아닌가? 어떤 옷이 더 벗기고 싶은지.”

“아니, 아니야… 아읏!”

그가 애널이 찢어질 정도로 우악스럽게 엉덩이골을 벌렸다. 무헌을 잘 아는 이 실장의 의견을 물은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이 짧네.”

그가 속옷을 모아 엉덩이골 사이로 욱여넣었다. 끈처럼 가늘어진 천 조각을 허리 쪽으로 당기며 비좁은 면적으로 음부를 압박했다. 티팬티처럼 변형된 시스루 속옷이 애널을 아프게 파고들며 마찰했다.

“아읏! 아!”

“질질 싸는 거 보여주려고 속바지도 안 챙겼나.”

“주인님 취향… 으응! 몰라서.”

“아, 내 취향을 몰라서 물었어?”

“네, 네 흣….”

“속옷도 물었어? 보지 다 보이는 속옷 입고서 이 실장한테 뭐가 더 낫냐고 애교 부렸겠네.”

말도 안 돼. 눈물이 터졌다. 수집한 속옷을 두루 입어보는 건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서울에선 세탁물을 가사 도우미가 수거해갔기에 입어보지 못한 채 모아두기만 했었다. 시골에서나마 마음껏 입어보고자 가져온 것인데 무헌이 비약하며 우희를 조롱해댔다.

“저는 주인님한테만…. 하읏.”

찰싹. 강한 매질에 놀라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유난히 골반 아래로 살집이 많아서 소리가 더 차지게 울렸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내새끼들 죄 흘리고 다니는 잡종 똥개를.”

“흐윽…. 똥개 아니… 흣.”

“똥을 주워 먹어야 똥개인가. 아무 데서나 꼬리 흔들면 똥개지.”

서러워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벤치 밑판의 숭숭 뚫린 구멍으로 검은 물이 든 잔디가 어렴풋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숫자 세. 말끝엔 인사 붙이고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흐읏…. 네 감사합니다.”

커다란 손이 기둥을 박을 땅을 다지듯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보지 털 삐져나온 꼴이 가관이야. 집에서부터 벌름대면서 왔나 본데. 벌써 홍수야.”

찰싹! 따끔한 통증이 엉덩이를 후려쳤다. 맞을 땐 아프지만 상처가 남거나 잘못되지 않는다는 건 지난번 경험을 통해 배웠는데도 살갗이 터질까 걱정될 만큼 강한 매질이었다.

“아흐읏…! 가, 감사합니다….”

비명 뒤엔 기어들어 가듯 목소리가 작아졌다. 정말로, 겁이 났다. 여태까지의 두려움은 비교도 되지 않는 공포가 엄습했다. 본격적으로 그가 플레이에 임하고 있단 게 피부로 느껴졌다.

찰싹. 두 번째는 반대편 엉덩이에 충격이 떨어졌다. 혼몽한 와중에 우희는 잊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이은 타격 사이의 간격이 점점 빨라졌다. 통통하게 살 오른 엉덩이가 풍랑 치듯 출렁였다.

“아읏…. 아….”

“하여간 엄살은. 얼마나 했다고 울어.”

“흐윽… 흐윽… 열다섯. 감사합, 흐윽… 니다.”

무헌이 벌겋게 짓무른 엉덩이를 주무르다가 손톱을 세워 긁었다.

“아아…!”

밑이 뻐끔거리며 파고든 속옷을 빨아들였다.

“내 바지까지 적셔놨네. 몇 대를 더 맞아야 버릇을 배울까.”

무헌의 낮은 목소리가 기분 좋은 듯 나직하게 울렸다.

“흐응…. 흣.”

“아파? 네가 바라던 거잖아.”

목덜미에 닿는 공기가 스산했다. 쏴아아. 바람이 비비고 간 나뭇가지가 을씨년스럽게 울어댔다. 무헌이 한쪽 엉덩이를 잡아 벌리곤 틈새 쪽을 후려쳤다.

“하읏으응! 열여섯, 감사합니다….”

“감사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좋아서 때려달라고 했잖아, 우희야.”

“흐응, 흐윽….”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쁨의 표현이었다. 엉망으로 당하면서 안도하는 쓰레기가 자신이라니 우희는 울면서 다리 사이를 비비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속옷에 빠듯하게 끼인 소음순이 압박되어 아릿한 통증이 전달됐다.

“주인님, 너무…. 좋, 으아 요….”

“그래 보이긴 하다만, 혼자 비비는 건 안 되지.”

속옷을 위로 당겨 아프도록 음부를 압박한 그가 꿀밤을 먹이듯 젖은 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아읏!”

우희의 눈에 불꽃이 튀며 허리를 경련했다.

“허락도 없이 싸는 구멍을 뭐로 막아야 할까. 말 좆 정돈 박아 놔야 말을 들을 것 같은데.”

쉬지 않고 체벌이 이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스무 대를 다 맞고 나자 기진맥진했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흐윽….”

“못 쉬어. 옷부터 벗어.”

“흣, 네….”

우희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눈물에 젖은 머리칼이 엉킨 채로 귓바퀴로 꼽혔다.

서럽게 울먹이며 안경을 벗고 원피스를 위로 벗었다. 속옷에 힐만 신고서 오들오들 떨었다. 브래지어의 갈라진 천 사이로 젖꽃판이 노출되었다. 음란한 의도가 담긴 그곳으로 무헌의 관심이 쏠렸다.

“노출에 관심 있나?”

“흐읏….”

“벗고 다니는 게 소원이면 말을 하지. 지금이라도 애들 불러서 눈요기시켜?”

“시, 싫어요. 저는 주인님만… 주인님한테만 보이고 싶어서, 그래서….”

손가락으로 툭, 우희의 유두를 가격한 그가 아아. 하고 낮은 숨을 터뜨렸다.

“안 좋은 버릇만 들어왔지.”

“흐윽…. 주인님, 잘못했어요.”

“비는 거 하나는 잘해.”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하는 칭찬은 그야말로 누워 절받기였다. 우희는 훌쩍이며 브래지어를 벗고 젖은 팬티를 내렸다. 예뻐해 줄 거라 기대했는데 혼만 났다. 속옷이 둘둘 말린 채로 발목에서 빠져나왔다.

“이딴 속옷 입고 설치고 싶으면 허락부터 받아.”

무헌에게 우선순위는 미적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종속되는 게 먼저였다. 우희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허락을 구하란 소리였다. 규칙을 배운 우희가 착실히 대답했다.

“흐윽, 네. 주인님.”

“두 손 깍지껴서 뒤통수로.”

우희는 그를 마주 보고 선 채로 자세를 취했다. 머리끝부터 팔꿈치, 발가락까지 무헌의 시선이 꼼꼼히 머물렀다가 떠났다.

벤치에서 일어난 그가 우희에게 앉았던 곳을 눈짓했다.

“무릎 꿇고 올라가자. 등받이 잡고.”

“네.”

등받이를 마주 본 채 벤치로 올라갔다. 무릎을 대고 서자, 무헌이 앉았던 곳에서 미지근한 온기가 전해졌다. 옅게 떨려오는 허리를 무헌이 잡아 눌렀다.

“무릎을 꿇고 싶으면 나만 보는 곳에서 해야지. 아무한테나 발정 난 걸 보이는 개새끼는 내 강아지가 아니야.”

“네, 주인님.”

우희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헌이 허리를 더 깊게 눌러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게 했다.

“흣!”

“피부가 하얘서 얻어터진 게 잘 보이네. 찍어두고 전시라도 할까? 별장 오가는 새끼들한테 전부 보여주면, 우리 강아지 좋다고 질질 쌀 텐데.”

우희는 엉덩이를 살짝살짝 내치는 손길만으로 길게 신음하며 울었다.

구멍에서 기어 나온 애액은 애널 주름까지 흘러가 반짝이는 윤기를 남겨두었다. 무헌이 애액을 윤활유 삼아 뒤쪽 입구를 깔짝거리며 손끝으로 벌어진 주름을 긁었다. 아… 우희가 벤치를 붙든 팔을 떨며 몸을 뒤로 꺾었다. 겁이 나는 동시에 아랫배가 근질댔다.

좁고 쫀쫀한 구멍을 무헌의 손가락이 꿰뚫고 들어오는 상상을 하자 항문이 조여들었다.

“읏…!”

배출 용도로 쓰이는 애널이 무참하게 확장된 모양을 예견해보았다. 기괴하고 무서운 형태로 늘어난 구멍을 무헌이 꿰뚫어주는 상상을 하자 참을 수 없이 좋았다.

“아, 더… 더 해주세요.”

“이건 무슨, 구멍마다 걸신이 들려선.”

“좋아, 읏응….”

무헌을 통해 얻는 쾌락은 숫자처럼 정확하게 셀 수 없었다. 명료한 문장이나 단어로 함축할 수도 없었다. 정의되지 않은 감각에 휩쓸려 갔다.

한계까지 다리를 벌리고 무헌을 전부 받아들이고 싶을 만큼 좋다가도, 두려울 땐 이리떼에 쫓기는 것처럼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무헌의 손가락 한 마디가 주름 사이로 폭 잠겨 들었다. 날갯죽지가 솟아올랐다. 그가 주름을 깔짝깔짝 드나들며 생경한 유희를 맛보여주었다.

이건 흑백으로 나뉘는 감정도 아니었다. 좋으면서 무서운, 결국은 그의 사나운 발톱에 걸려 나자빠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떠한 말로 형용하기엔 우희의 본색이 지나치게 음란하고 추잡했으며 선정적이었다.

“주인님, 아으응. 빨리이…”

“보지는 벌써 다 풀어졌네. 어느 구멍부터 넣어줘. 아, 둘 다?”

젖은 길을 타고 세로로 죽 미끄러진 손가락이 음모를 뒤적여 퉁퉁 부은 음핵을 찾아냈다. 팬티에 압박된 동안 불에 불린 콩처럼 부피가 팽창한 그걸 무헌이 돌돌 굴렸다.

“만지다 보면 여기도 어린애 좆만큼 커지려나. 흡착기구를 달아둬도 괜찮겠네. 24시간 내내 빨아대면 모르지. 좆질하고 다닐 만큼 커질지.”

어디로 진로를 바꿀지 모르는 무헌의 손가락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엉덩이를 바짝 긴장한 채 간질대는 손길을 흠 없이 받아내려 정신을 집중했다. 주인님의 만족 또한 우희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아으응!”

무헌의 손길은 아주 부드러웠다. 애액을 타고 미끄러지는 손끝은 모래알로 빚은 진주를 다루는 것처럼 보들거렸다.

매섭게 엉덩이를 후려칠 때와 다르게 밑을 지분대는 손길은 깃털처럼 조심스러웠다. 그가 옅게 치대는 압각은 미미했으나 혼자 했던 위로보다 훨씬 더 극렬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아읏! 주인니임… 더, 더 세게.”

“살만해서 까부는 건가.”

“아아!”

대답할 새도 없이 꼬집듯이 붙잡힌 음핵이 좌우로 흔들렸다. 정말 그의 말대로 크기가 비대해질까 걱정될 만큼 세게 잡혀 앞으로 죽죽 늘어났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달아나지 않고 버텼다. 줄줄 터진 눈물이 뿌옇게 시야를 방해했다.

“아파, 흐읏…너무 아파요!”

“세게 해달라며. 자꾸 말이 바뀌네. 상대를 봐가면서 변덕을 부려야지.”

“너무, 흐읍…. 아 주인님!”

동아줄에 매달리듯 간절히 부르자 살점을 떼어낼 것처럼 달라붙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경련하듯 바르르 떨자, 무헌이 허벅지까지 흐른 애액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가 양 엄지로 구멍을 쫙 잡아 벌렸다. 뻐끔대며 허겁지겁 공기를 삼켜댔다. 내밀한 질 주름까지 찬기가 밀려드는 게 선연했다. 한밤중에 옷을 헐벗고도 춥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달아올랐다는 것을 깨닫자 젖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음탕한 것치곤 좁잖아.”

손가락 하나가 구멍 입구를 휘휘 젓다가 안으로 미끄러지듯 침투했다. 달아오른 내벽이 맛있다고 꿀떡꿀떡 손가락을 삼키며 쫀득하게 그를 휘감았다.

“힘 빼야지. 손가락 끊어 먹는다.”

“으읏, 아응….”

무헌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비좁은 길을 헤쳐나갔다. 쿡쿡. 앞과 뒤를 번갈아 찌르다가 문지르기도 하고, 살짝살짝 흔들기도 했다. 어딜 어떻게 찔러도 좋았다.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그게 꼭 살아 있단 증거처럼 느껴졌다.

내벽이 시큰하게 쑤셔질 때마다 심장이 펄떡댔다. 태어나 가장 활력 있게 심장이 뛰는 순간이 지금인 듯했다. 우희는 자궁 입구를 찾아 쿡 쳐올리는 손짓에 맞춰 애액을 주르륵 흘렸다.

“좆 많이 물어봤다더니 순 허세만 있어. 실좆만 먹어봤나?”

“아응… 아니, 아아!”

두 번째 손가락이 빠듯하게 구멍을 쑤시며 침입했다. 그의 오해와 다르게 경험이 적은 서툰 구멍이 버겁다고 시위하며 조여들었다.

“아윽, 안 돼!”

“정말 하지 마?”

“아니야, 흐읏. 해. 해줘요… 하읏!”

엉덩이를 뒤로 쳐들며 빠져나가려는 손가락을 황급히 붙들었다. 그가 비웃는 것조차 흥분에 겨워서 두 손으로 직접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죄송해요. 해주세요. 해주세요…. 흣.”

“거기 말고 뒷구멍 벌려놔. 주름 쫙 펴진 거 보이게.”

우희는 손을 뒤로 보내 애널을 당겼다. 이마를 벤치에 기대어 중심을 잡고선 아플 때까지 당겼다.

“아흣….”

주름이 찢길 것처럼 따가운 걸 즐기고 있자니, 무헌이 타액을 뱉었다. 끈적한 타액이 정확하게 주름에 안착했다. 구멍이 꼼질대며 다디단 주인님의 타액을 먹어 치웠다.

“맛이 어때.”

“맛있, 윽… 아아아아!”

질구에 박힌 손가락 두 개를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우희는 까마득한 절정을 맞이했다. 아까부터 그녀를 들쑤시던 열감이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푹푹, 무헌이 무참하게 손가락을 찔러댔다. 그럴 때마다 애액이 터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돼지 발정제라도 주워 먹은 것 같은데.”

그가 느긋하게 웃음을 흩뿌렸다.

“저어… 갔, 흐앗, 갔어요….”

“말도 안 하고 갔어?”

“죄송, 죄송해요…. 흐으응.”

그가 손가락을 가위처럼 벌려 좁다란 구멍을 확장했다. 열심히 늘렸건만 별 소득 없이 여전히 좁디좁은 길이었다. 맑은 물을 줄줄 흘려대는 구멍을 심란하게 바라보며 무헌이 혀를 찼다.

“안으로 들어와. 구멍부터 벌리자.”

무서운 소리를 사무적으로 말한 무헌이 별장을 향해 떠났다. 벤치에 젖은 옷감처럼 널려있던 우희는 한 박자 늦게 눈을 껌뻑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망이 된 꼴로 우희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직시했다.

“흐윽! 주인님….”

벤치에서 내려와 우왕좌왕하던 그녀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어갔다.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고 고꾸라졌다. 채 벗지 못한 하이힐이 볼썽사납게 잔디를 긁으며 끌려갔다.

거실로 들어가는 통창 앞에 그가 멈춰 있었다. 무헌은 문을 잡아 공간을 내곤 산책을 마친 강아지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주인처럼 우희를 관망했다.

“기다려.”

“네.”

우희가 들어오자 문을 닫은 무헌이 어정쩡하게 무릎을 굽히고 앉은 그녀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실내의 밝은 빛이 우희를 거세게 쏘아댔다. 우희는 연신 훌쩍이며 커다란 공간에 알몸으로 앉은 제 꼴을 확인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황홀하고 값진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나타난 그는 물에 젖은 수건을 들고 있었다.

“일어서.”

우희가 무릎을 펴고 일어서자, 그가 손과 무릎을 직접 닦아주었다. 허리를 굽혀 발바닥까지 깨끗이 하는 행위가 정말 개를 다루는 것 같았다.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는 손길이 세심할수록 오물을 묻히고 들어온 말썽꾸러기가 된 것 같아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수건을 던진 그가 소파로 향했다. 무헌이 앉은 자리는 정확하게 그가 옆구리를 다쳤을 때 누운 그곳이었다. 무헌의 상처를 확인한 그 날만 해도 이 공간에 헐벗고 서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뭐 비슷한 상상은 했으나 실현 가망성을 계산해보진 못했다. 우희는 제 인생에 이토록 큰 이벤트는 다시 없을 거라 확신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그가 강아지를 부르듯 손을 뻗었다. 우희는 커다란 어둠 속으로 기쁘게 기어갔다. 무헌이 바닥을 눈짓했다.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대리석 바닥에 흡착된 성인 기구가 우뚝 솟아 있었다. 남자 성기 모양의 딜도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고정되어 우람한 형태를 자랑했다.

“빨아 봐. 하는 거 봐서 좆 물려 줄 테니까.”

바닥에 우뚝 선 살구색 성기는 족히 20센티는 돼 보였다. 무헌의 것보다 몇 센티 짧고 얇았으나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네.”

우희는 자세를 낮추고 엎드렸다. 인조 성기 주제에 핏줄이 도독하게 오른 모양새가 흉물스러웠다. 거부감이 일었으나 빠는 게 어려운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우희는 기꺼이 혀를 내밀어 귀두를 핥았다. 끝을 할짝거리며 무헌의 눈치를 살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성인 기구를 애무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더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혀를 더 빼야지.”

“흐음….”

“목구멍까지 열고 기둥 뒤를 핥으면서 빨아. 일일이 말해줘야 하나?”

“으….”

기묘한 실리콘 질감이 입안을 채웠다. 그의 말을 되새기며 쪽쪽 사탕 빨 듯이 애써보았다. 많이 봐왔던 거라 나름대로 자신 있게 나섰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입을 한껏 벌리고 목구멍을 열어보려 해도 겨우 반도 삼켜내지 못했다. 헛구역질이 밀려 나오는 걸 참느라 곤욕스러웠다.

20센티의 인조 성기를 좁은 입안에 전부 가두기엔 무리가 있었다. 신체적 미흡함을 열정으로 무마시키고자 힘껏 찔러넣었다가 결국 헛구역질을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귀두를 물고 콜록거렸다.

“고작 그것밖에 못 삼키면서 딥쓰롯을 하고 싶어? 주제도 모르고 욕심만 그득하지.”

“흐읏….”

우희는 엉덩이를 허공으로 치켜든 채 더욱 열중했다. 무헌의 성기로 목구멍이 헤집어지는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선 그에게 쓸만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소파 헤드에 팔 하나를 길게 뻗어놓은 무헌이 나직하게 한숨 쉬었다.

“비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흐아…. 죄송해요. 잘하려고 했는데…. 처, 처음이라서….”

침 범벅이 된 성기를 쥔 채, 우희가 울먹이며 호소했다.

“처음은 처음이고, 네 멋대로 뱉으면 안 되지.”

“흐…. 죄송합니다.”

“위로 안 되면 아래로 삼켜보든가.”

아래? 우희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성기와 무헌을 번갈아 보았다. 되물으면 혼날 것 같아서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혼자, 씹질해 보라고. 밑구멍이라도 쓸만하게 넓혀.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더는 설명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테이블에 놓인 위스키로 손을 뻗었다.

“정 좆 같으면 한잔하든가.”

“아뇨….”

고개를 젓던 우희는 침으로 범벅된 인조 성기를 보다가 침울해졌다. 경험이 몇 번 없다 보니, 이런 무지막지한 걸 넣을 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었다.

결국, 일어나 무헌에게로 다가갔다. 술을 한 잔 얻어먹기로 생각을 바꾼 거다.

“기다려. 따라 줄….”

무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희는 술병 입구에 입술을 붙이고 독한 액체를 꿀꺽꿀꺽 넘겼다. 빠르게 취하기 위해 병째 마시길 택했고 그 과정을 무헌이 기가 찬 듯 바라보았다.

아무리 우희가 성욕에 찌들었다고 해도 낯선 행위를 능숙하게 해낼 재주는 없었다. 거대한 실리콘 기구를 구멍에 넣고 혼자 방아를 찧으려면 술기운이 도는 게 수월할 거란 계산뿐이었다.

“흐으…”

알코올 섞인 숨을 내쉰 우희가 다시 성기가 박힌 곳으로 돌아갔다. 결연한 표정으로 고인 액체를 삼켰다.

“주인님…. 하읏….”

우희는 무헌을 바라본 채 인조 성기를 잡고 엉덩이를 내렸다.

몇 년 전의 섹스 이후, 손가락조차 넣어보지 않은 좁다란 구멍은 혼자서 위치를 찾기조차 어려웠다. 술기운이 얼굴을 벌겋게 적실 때쯤 간신히 앞 대가리를 구멍에 물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허벅지 근육이 아려왔다.

“흐읏….”

윤활제는 필요 없었다. 사냥감을 주시하는 듯한 무헌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 둑이 터진 것처럼 물이 흘렀다.

“젖이라도 만지면서 흔들어 봐.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아니이… 너무 커서… 흣.”

“그래서 못 해?”

무헌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어룽대는 시야에 두둑한 앞섶이 눈에 들어왔다. 무헌도 흥분하고 있었다. 그녀만큼이나 흥분해서…. 아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용기가 났다.

우희는 힘껏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과감하게 주저앉았다.

“읏아아아!”

우희는 급히 다리 사이로 바닥을 짚었다. 생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믿기지 않아 헐떡댔다. 힐 때문에 인조 성기의 3분의 2 이상은 넣을 수가 없다는 게 조금의 위안이었다.

“흐읏….”

다리를 살짝 벌리자 아까보단 자세가 편해졌다.

“아흣…. 너무….”

“제대로 봐. 네가 먹고 있는 게 뭔지는 알아야지.”

“흡, 네….”

우희가 울면서 내려다보았다. 엉덩이를 살짝 들었을 뿐인데 속살이 딸려 나와 젖은 성기를 붙들었다. 애액으로 칠갑한 음모 사이로 핏줄이 도독하게 양각된 실리콘 성기가 반쯤 먹혔다가 나타나는 형상이 반복된다.

“아, 어떻게 해…. 으응!”

“어쩌긴. 이왕 넣은 거 쩝쩝대면서 맛있게 먹어 봐.”

“흐읏…!”

우희가 흔드는 속도에 맞춰 기구가 들락날락, 속살에 미끄러지길 반복했다. 먹고 뱉고. 행위를 쉼 없이 반복하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지고 귓바퀴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주저앉으며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아읏…. 주인님, 저…. 더는, 으응! 못 움직이겠어요.”

가볍게 입가를 쓸던 무헌이 갈증을 해소하듯 잔을 꽉 채운 술을 단숨에 마셨다. 한참을 꿀꺽거렸으나 고작 두잔 정도의 술밖에 넘기지 못한 우희와는 다른 생물임을 과시하듯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댔다.

“손 뒤로 짚어서 해봐.”

“으흣…. 아, 안 될 것 같아.”

“돼.”

“흣!”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쭈그려 앉은 후 흐느끼며 체중을 뒤로 옮기자 푹, 하고 성기가 더 깊게 들이닥쳤다. 요의 비슷한 압박감이 아랫배를 시큰하게 쑤셔댔다.

“힘들, 아아!”

입을 벌린 채 허리를 뻣뻣하게 움직였다. 아까보단 빠르지 못했지만 느리게 뽑혔다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느낌만은 더 선명해졌다. 아랫배에 밀접한 어딘가가 흥분 스폿인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소리가 달떴다. 허벅지 안쪽으로 쾌감이 자근자근 몰려들었다.

“아아…! 으흥! 죽을, 아… 것 같아.”

“눈 떠야지.”

겨우 무헌과 눈을 맞추고 허리를 움직였다. 채도 낮은 눈동자에 사로잡힌 채 무아지경으로 방아를 찧었다. 허벅지가 마비될 것 같은데 무언의 명령에 채근당해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님… 저 안 될 것 같….”

우희가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향해 내민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고양감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이 삐걱거리며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다. 인제 그만 그가 어떻게든 해주었으면 했다.

“제발…. 주인님! 아! 저… 아흣!”

“좋아 보이는데 왜.”

“저 주인님 흣, 거… 으읏, 넣고 싶어요. 넣어주세요. 흐읏…!”

“지 꼴리는 대로야, 순.”

흐윽흐윽… 서럽게도 눈물이 터졌다. 무헌의 것을 넣어주지 않을까 봐 하염없이 슬퍼졌다. 울면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젖가슴이 흔들리며 유두 위치가 반복적으로 변화했다.

“저, 잘할게요. 그러니까아…. 아흣!”

지친 하체가 겨우겨우 깔짝대며 주륵주륵 애액을 싸재꼈다.

“흐읏…. 주인님 거 먹고 싶어요….”

중간중간 딸꾹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안 돼…. 이거 안 돼요.”

소파에서 일어난 무헌이 단정한 동작으로 지퍼를 벌리고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지난번 봤을 때보다 더 거대해진 좆을 앞둔 우희가 손등으로 젖은 눈을 비볐다.

“이걸 먹고 싶어?”

가까이로 다가오며 무헌이 묻기에 우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흣, 네….”

“러그에 누워.”

“감사, 흐읏… 합니다.”

우희는 덜덜거리는 허벅지에 힘을 주곤 바닥을 짚었다. 고양이처럼 울며 흠뻑 젖은 인조 성기를 빼냈다. 하얀 거품이 낀 실리콘 기둥이 낯뜨거워 얼른 외면했다.

우희는 조금 옆에 떨어진 러그까지 기어가 누워 다리를 벌렸다. 무헌이 박아주기만 한다면 더한 꼴도 내보일 수 있었다.

“주인니임…. 윽.”

몽둥이 같은 성기를 한 손에 쥐고 다가온 무헌이 우희의 가슴 사이에 선 뒤 무릎을 꿇었다. 높은 곳에서 시선을 내리깐 무헌이 왕관을 쓴 지배자처럼 보였다. 물론 선량한 왕은 아니었다.

우희는 땀에 젖은 손으로 그의 탄탄한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허락 없이 만졌다가 혼날까 봐 열심히 눈치를 살폈다.

“잘 받아마셔 봐. 그럼 네가 원하는 좆질 해줄 테니까.”

“으흣….”

우악스러운 힘으로 발기한 성기를 밑으로 꺾은 무헌이 들고 온 양주병을 기울여 좆 뿌리부터 술을 흘려보냈다. 거대한 기둥을 타고 흐른 꿀 색의 술이 귀두부터 긴 선을 만들어내며 낙하했다.

느릿하게 포물선을 그린 술이 우희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해. 입 벌려.”

잠긴 목소리로 무헌이 지시했다. 혀를 내밀어 핥아보려던 우희는 이내 모자란 판단을 인정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졸졸 흐르던 술이 입안에 고여 익사할 듯 가득 넘치기 시작했다.

“커흑, 커헉!”

바둥대면서도 눈이 뻘게지도록 술을 삼켰다. 잠시 허리를 뒤로 물린 그가 자지를 털며 웃었다.

“골든 샤워하는 기분이네. 진짜 뿌려버릴까.”

“있…어요. 흐….”

“뭐?”

“맛있, 어요. 감사합…. 으흡.”

금세 술기운이 오른 우희의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무헌이 기둥을 흔들어 남은 술을 털어낸 뒤 옆으로 비켜 재킷을 벗었다.

그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자 우람한 상체 근육이 과시되었다.

“술 취한 채로 박으면 맛이 없는데.”

“안 취했어요…. 으응.”

무헌이 마음을 바꿀까 봐, 필사적으로 그의 허벅지를 쥐며 눈을 크게 떴다. 탄탄한 근육을 제대로 붙들지 못하고 땀에 젖은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주인님…. 이것, 흐응 보세요.”

우희는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오금을 눌러 엉덩이를 들었다. 힘껏 붙들어 벌린 구멍 털에 허연 흥분액이 끼어 반질반질했다.

“이걸 어떻게 죽여놓지?”

무헌이 가까이로 내려오자 붉어진 눈가, 정염 어린 기색이 강조됐다. 홀린 듯 그의 눈썹을 만지려던 우희의 두 손이 머리 위 바닥에 처박혔다.

“더 벌려.”

낮게 쉰 목소리가 고막을 적셨다. 끅끅대며 가랑이를 한껏 벌렸다. 밑을 내려다본 그가 픽 웃었다.

“그렇게 해서 욕심대로 먹겠어?”

“아읏, 아아아아!”

대뜸 구멍을 짓이기는 뭉툭한 살덩이는 무헌의 귀두였다. 엉덩이나 밑을 두들겨 맞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압박감이 구멍을 파고들고 있었다. 우희는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아흣! 아아아아!”

그의 아랫도리가 내장을 전부 올려붙이며 점진적으로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범상치 않은 크기인 줄 알았지만, 성욕에 미쳐 과신했던 거다. 충격받은 육신이 본능적으로 물러서려는 것을 무헌이 단호하게 막아섰다.

“더 활짝 열어야지. 아직 반도 안 들어갔어.”

가까스로 비명을 삼킨 우희는 믿을 수 없어 고개를 내려 이음부를 확인했다. 음부를 팽팽하게 벌린 성기 기둥이 정말 한참이나 남아 들어오지 못해 발딱거리고 있었다.

저걸 다 넣으면 밑이 찢어지지 않을까 뒤늦게 두려워졌다. 봐주지 않겠다는 듯 무헌이 허리를 쳐올리며 굵은 기둥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 턱턱 허리를 흔들자 말뚝에 대고 누군가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가랑이가 쪼개지는 통증이 엄습했다.

“앗아! 아아!”

턱. 턱턱턱. 턱. 턱턱. 심지어 무한의 허리 짓은 일부러인지 불규칙했다. 마음의 방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박히는 페니스에 속절없이 꿰뚫렸다. 허겁지겁 다리를 더 벌려보았으나 별 도움은 안 되었다.

“이걸 다 삼키려고? 씨발, 씹어먹으면 어쩌겠다고.”

핏줄이 선 흰자위가 바르르 뒤흔들렸다. 삽입을 끝낸 무헌의 남자 주먹만 한 고환이 벌겋게 부은 엉덩이를 퍼억, 부드럽게 스팽했다. 둥글게 허리를 굴리며 꺽꺽거리는 우희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에 만족감이 서렸다.

“내 좆 먹고 싶다고 애원하더니만, 왜 눈을 못 떠.”

“너무, 아아아….”

단어가 흩어져버렸다. 육신이 부서지는 것처럼 하고픈 말이 산산이 조각났다. 개의치 않고서 무헌이 공들여 밑을 쳐올렸다.

바지와 속옷만 살짝 내리고 성기를 꼽은 탓에 얇은 피부에 슈트의 질감이 사납게 비벼졌다.

“눈 떠. 주인이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주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가, 읏! 감사…. 하읏!”

러그가 찢길 듯이 거센 삽입이 이어졌다. 허리를 쿵쿵 내리찍던 무헌이 우희를 들어 올리며 앉았다. 마주 앉은 자세로 결합하자 괴물 같은 성기가 더 깊게 자리 잡았다. 우희는 눈이 뒤집혀 끈 풀린 연처럼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하윽… 흐윽!.”

그런데도 도무지 숨이 안 쉬어져서, 살기 위해 허리를 띄우려다가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아읏!”

크게 뜬 눈으로 근처에서 뒹굴고 있는 힐을 발견했다. 언제 벗겨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헌이 두 엉덩이를 떼어내듯 각기 주무르며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꽉 잡힌 덕에 달아날 곳 없이 몽둥이 같은 성기를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아읏! 읏! 읏!”

비명 지를 힘조차 부족해서 입을 벌린 채 자지러졌다. 배가 뚫리고 목구멍이 구멍 날 것처럼 밑에서 솟구치는 강도가 매서웠다.

출렁대던 젖가슴이 무헌의 입속으로 일부분 사라졌다. 쩝쩝. 게걸스레 유두를 빨고 유륜에 키스하듯 혀를 굴린다.

정신이 반쯤 나간 우희는 젖은 눈에 무헌을 담으며 해방감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옭아놓고 좆을 박아넣는 무헌의 품 안에서 자유를 얻은 새처럼 홀가분하게 날아오르고 있으니.

교양있는 사람인 척, 평범한 성적 취향을 가진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천박함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성욕을 분출해도 무헌은 비웃지 않았다.

업신여기는 말투를 사용하고 있으나 무헌의 말은 그저 플레이의 일환일 뿐이었다. 무헌이 자신을 잠시 사용할 싸구려로 여길지라도 난생처음 깊은 포만감을 얻었기에 상관없었다. 무헌 또한 자신이 성욕에 미친 여자인 것에 만족하고 있을 거다. 우희는 섹스하는 상대와 바닥을 공유하며 마음껏 몸서리쳤다.

젖을 깨물고 엉덩이를 내리치며 흥분하는 무헌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 웃기지도, 믿기지도 않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주인님, 너무…. 하읏, 좋아요. 너무 좋아서… 머리가 이상해…. 하읏!”

우희를 수색하는 무헌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짙어진 눈동자가 우희를 살피다가 일어섰다. 우희는 놓칠세라 그의 목을 꽉 껴안고 다리를 허리에 감았다.

몇 걸음 이동한 무헌이 아까 보았던 통창 앞에 멈춰 섰다.

“김우희, 저기 봐.”

격정적인 섹스 중에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자 질 주름이 가볍게 경련했다. 거실 조명을 모조리 켜둔 탓에 두 사람의 모습이 창에 고스란히 비쳤다.

울긋불긋 울혈이 진 알몸의 우희와 매끈한 슈트 차림의 무헌이 다른 재료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서로의 음부를 이은 결합부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주인님….”

“보지 벌어진 거 보여? 어떻게든 다 먹으려고, 크게 벌려선.”

“아흐흐흐!”

태엽처럼 맞물렸던 성기가 빠져나가는 순간 등허리를 휘며 전율했다.

“바짝 붙어서 봐.”

우희의 가슴이 찌그러지도록 통창에 바짝 세운 무헌이 밑에서 무릎을 구부려 굵직한 성기를 다시 삽입했다. 그녀는 고무처럼 압착된 신세가 되어 삑삑, 유리창에 젖은 젖가슴을 짓뭉갰다.

“하읏…. 아! 아! 아흣!”

입김이 뿌연 얼룩을 만들어냈다. 퍽퍽퍽. 성기가 아랫도리를 후려칠 때마다 정원에 켜진 밝은 등이 눈앞까지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무헌이 하체를 더 밀착하자 우희의 맨발이 그의 슬리퍼 위로 올라갔다. 등 뒤를 온전히 차지한 그가 우희를 깊은 곳으로 몰고 갔다. 검푸른 바닷물로 떠밀리는 듯 익사할 것 같은 쾌감에 빠져갔다.

우희는 거의 선 채로 그를 받아냈다. 귓바퀴에 혀를 들쑤시며 낮은 신음을 흘려대는 무헌의 만족스러운 반응에 그녀는 끝모르고 격앙되었다.

“주인님, 너무! 흣, 좋아! 아아아아!”

이 미친 짓을 함께해줄 동행자가 있다. 잔인하리만치 능숙한 그가 든든하게 그녀를 받쳤다. 무헌이 섹스를 잘해서 좋았다.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야 할 만큼의 한계로 내몰아주는 것도, 모질게 밟아 주는 것도 좋았다.

“주인님, 저, 안돼… 으응, 가요!”

무헌은 통창 앞으로 온 뒤부턴 말이 별로 없었다. 좆을 박는 명령어만 입력된 기계처럼 무지막지하게 허리 짓을 하기에 여념 없었다.

“안 돼요…. 흐아아앙!”

삽입으로 절정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깊고 긴 고양감은 몸을 붕 띄워 아득한 공간의 어딘가로 우희를 삼켜버렸다. 꺽꺽거리며 침을 줄줄 흘리자, 그가 클리토리스를 비비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귓불을 쭉 빨아들인 그가 뭉근하게 불알을 비비며 웃는다.

“맛있다더니 좆을 죄 끊어먹으려고 그러지.”

무헌이 자세를 바꿨다. 그대로 우희의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브이자로 벌렸다. 그녀는 허공에 뜬 채 밑이 진창 나는 장면을 통창을 통해 선명하게 감상했다.

투투투투툭. 투명한 액이 수도관이 터진 것처럼 뿜어졌다. 대리석 바닥에 샘이라도 솟은 것처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우희는 쉴새 없이 몰아치는 물살에 떠밀려 어딘지도 모를 곳을 헤엄치고 있었다.

“안 돼! 나! 또…! 또! 이상, 아아아아!”

“허락도 없이 가더니, 이젠 분수까지 터뜨리네.”

무헌의 성기가 빠져나갈 때마다 점막이 달라붙으며 그를 붙들었다. 자궁 입구를 밀어 올리며 과격하게 들락거리는 페니스가 두려운 마음을 등지고 속살이 반갑다고 좆을 쪽쪽 빨아먹었다.

“안 돼…. 저 진짜 싸, 쌀 것 같, 으음!”

“아직. 좀만 참아 봐.”

사정이 임박한 듯 무헌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으음, 하는 낮은 신음이 우희의 귓가를 타고 꼬리뼈까지 흘러갔다.

“안 돼, 주인님…. 진짜…. 아아!”

강한 요의가 느껴졌다. 아랫배를 시큰하게 조이는 통증과 오르가슴이 동시에 찾아왔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내려달라 말했으나 그의 힘을 이겨내진 못했다. 무헌이 사정없이 허리를 털며 물었다.

“똑바로 봐. 누구 좆을 물고 있는지.”

“비, 비켜주…. 아으으으으으!”

두 다리를 높게 들고 통창에 애액을 내뿜었다. 쾌감의 농도와 지속력이 아까보다 진하고 길게 우희를 거쳐 갔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통창에 허연 김을 만들어내는 제 분사액을 눈에 새겼다.

쪼르륵, 쪼르륵, 소변이 릴레이 하듯 포물선을 그리며 창문을 두들겼다.

“흐윽…. 비켜 달라고, 흑, 했는데에….”

퍽퍽퍽. 끝나지 않은 허리 짓에 밀려, 남아 있던 소변이 자잘하게 튀었다. 믿을 수 없게도 무헌은 아직 사정 전이었다.

그가 축 처진 우희를 바닥에 눕힌 뒤 두 다리를 어깨에 걸었다. 번들대는 귀두가 좁다란 길을 뚫으며 다시 진입했다.

“그만, 그만….”

연속된 절정으로 몸이 너무 예민했다. 페니스를 넣는 것만으로 사지가 경련했다.

“타고났어. 너.”

그가 웃으며 좆을 찔렀다. 무헌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여유롭던 남자의 관자놀이에 퍼런 핏줄이 돋았다.

바닥으로 퍽퍽 처박히며 우희는 흐느꼈다. 더 내려갈 곳 없이 뒹구는 이 순간이 짜릿했다. 그래, 이게 바닥이지. 이게 진창이지.

“웃네. 이게 재미있나.”

무헌이 코를 깨물며 물었다. 그가 허리를 펴고 직각으로 앉은 틈을 타 밑동을 매만졌다. 척척하게 젖은 고환 표면에서 이상한 질감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기둥 끝까지 정말 다 집어넣고 있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

“너무 커요…. 어떻게, 흐응…. 먹었는지, 모르겠… 어서. 신기해서… 흣!”

“이걸 예뻐할까, 혼낼까.”

그가 허리를 돌리자 흠뻑 젖은 음낭이 회음을 찰싹찰싹 후려쳤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과 그 뒤의 주름진 꽃잎이 흠칫거렸다.

무헌이 폭력적인 삽입을 재개하며 불룩하게 솟은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우희가 엉덩이를 띄우며 자지러졌다.

“맛있어?”

“아으으으! 맛, 으으응… 있어요. 주인님 거 가득, 차서… 너무… 흐윽… 근데 너무 힘들… 아응!”

“그럼, 그만할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원했다. 그만두지 마요. 더. 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죽을 것 같은데 멈추긴 싫었다.

짧은 욕설과 함께 무헌이 이전까진 장난이었다는 듯 전속력을 다해 허리를 흔들었다.

“으아아!”

“그래, 좀만 참자.”

“흐응! 네에…. 아앙!”

“우리 강아지, 씨발. 안 예쁜 데가 없어.”

허벅지가 가슴까지 접힌 채 그의 양팔 안에서 마음껏 망가졌다. 반죽처럼 그가 원하는 대로 형태가 짜부라졌다가 늘어났다.

페니스가 더 팽창하며 질 주름을 압박했다. 무헌이 헛숨을 삼키며 사정했다. 덩달아 우희도 몇 번째인지 모를 절정에 올라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정액이 세차게 분출되며 내벽을 두드렸다. 정액에 잠긴 페니스가 질 안에서 계속 꺼떡거렸다. 부피가 아주 약간 줄어든 페니스가 질척해진 내벽을 휘저으며 다시금 운동할 준비를 했다.

우희는 고개를 내렸다. 척척척, 낯뜨거운 소리를 내며 다시 성기를 박아넣는 무헌의 행실에 기함했다.

“주인님, 이제… 그만. 그만 해요…. 흐응!”

“왜 이래. 더 받아먹을 수 있잖아.”

몸이 뒤집혔다. 그가 피부를 짓씹자 따끔한 통증이 벼락처럼 꽂혔다.

“뜨, 뜯어져… 하읏!”

“어. 씹어버리려고.”

무헌이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으며 추삽질을 이어갔다. 달아날 수도 없이 머리채가 뒤로 붙들려 고개가 꺾였다. 중심이 무너질 때마다 허리째 끌려가 처박혔다. 우희는 구멍 취급을 당하며 울부짖었다.

“그만…. 안 돼… 진짜 안 돼…. 나아…!”

“못 참겠으면 안전어를 말해.”

삐삐. 경보음이 울렸으나 안전어를 외치고 싶지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가라앉는데도 엉망이 되어 쉰 목소리로 엉엉 울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만… 아아아!”

그가 머리를 놓자 바닥에 무너졌다. 배를 깔고 누운 우희의 다리를 사정없이 벌렸다. 컴퍼스처럼 최대 각도로 활짝 펼친 다리 사이로 하체를 밀착한 무헌이 골반만 유연하게 움직였다.

“안전어 말하면 왜. 참을성 없는 똥개 취급이라도 당할까 봐.”

“흐응…. 흐읏!”

대답하지 못했다. 난파된 배 일부분에 몸을 의지한 채 떠밀려가는 것처럼 러그를 쥐고서 휘몰아치는 절정을 감내했다.

“흐윽…! 나쁜…. 아응!”

무헌이 웃으며 귓바퀴에 혀를 쑤셔 넣었다. 키스하듯 쑤걱거리며 구멍을 범하고 귓불과 여린 뼈를 씹어댔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데 왜 나쁜 새끼래. 실컷 예뻐해 주고 있잖아.”

탁한 호흡이 전해졌다. 유해진 음성으로 그가 낮게 탄식했다. 아, 씨발. 웅웅 멀어져가는 귓가로 욕설이 들렸다.

무헌이 옆으로 누우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희의 한쪽 다리를 들고선 사선에서 때려 박았다.

“잠든 사람 구멍 쓰는 거 맛없어. 김우희, 정신 차려.”

“흐윽…. 흐응….”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더는 못할 것 같았다. 수없이 왕복한 질 입구가 따끔따끔했다. 몇 초에 한 번씩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고 있었다.

“으흣!”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간 기억이 끊겼다가 정신이 들었다. 밑에서 주르륵 어마어마한 양의 정액이 쏟아졌다. 허리를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히 먹인 그가 물러났다.

우희를 안아 든 무헌이 소파에 앉았다. 마주 보고 앉아 밑을 결합하는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또다시 아랫배를 무자비하게 뚫는 거대한 성기에 우희가 흐느꼈다. 정액과 애액이 치덕치덕 달라붙은 고환이 엉덩이를 미끄럽게 문질렀다.

“더는…. 안 돼. 못해…. 진짜야! 으응!”

우희가 불나는 것 같은 아래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울었다.

“고작 몇 번 박아보자고 널 데려왔겠어?”

콱. 허리를 쳐올렸다. 우희가 점멸하는 시야를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 채신머리없이 고개를 젖히고 젖가슴을 흔들었다.

“고개 숙이고 젖 빨아 봐.”

“흣, 힘들어어….”

힘겹게 거절하며 무헌에게로 꽉 달라붙었다. 그만하고 싶다며 그의 어깨에 부은 눈을 비볐다. 엉덩이로 찰싹, 따끔한 일갈이 돌아왔다.

“그만… 그마안….”

“말이 계속 짧다.”

“나쁜….”

무헌이 손끝으로 활짝 벌어진 애널을 긁었다.

“나쁜 건 하나도 안 했는데.”

골반이 붙들려 위로 치받쳤다가 내려오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손가락에 주름 입구가 박혀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통 젖은 탓에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야릇한 감각에 허리가 뒤로 꺾이며 눈이 뒤집혔다.

“아으, 아으…!”

“여기도 벌려줄게. 좆을 욱여넣고 못 걷게 찢어놓으면 입버릇 정돈 고치겠지.”

망가진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나부꼈다. 빠르게 치받히며 속으로 욕한다는 게 그만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중얼거렸다.

“나쁜, 나쁜… 새끼. 변태. 아응!”

순간 허리를 쥔 무헌의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씨발 진짜 귀여워서 이걸, 머리부터 씹어먹을 수도 없고.”

“아읏, 아아읏!”

애널 안으로 손가락 한 마디가 파고들었다. 그의 손가락을 뒤에 끼운 채 미친 듯이 몸이 흔들렸다. 자꾸만 기억이 끊기고 무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가 까만 화면으로 전환되길 반복했다.

“나쁜…. 나빠! 미워, 읏응…!”

어떻게든 안전어를 내뱉게 하겠다는 무헌의 집요한 괴롭힘과 복종에 목마른 우희의 지독한 싸움은 그녀가 정말 기절한 뒤에야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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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비가 왔었나. 기억을 더듬어보자 날씨가 요즘 같았던 듯하다.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우중충하고 맑은 날씨의 반복이었다. 시원하나 퀴퀴하고 껄끄러운 그런 나날들.

당시 막 제대한 무헌은 남들 다 갖는 휴식기도 없이 외조부 최 회장의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에 착수했다.

놀자고 마음먹으면 못 놀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나. 또래들이 으레 추구하는 욕구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고집 센 조직폭력배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계획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바빴다.

그날은 카지노 대표 자리에 오른 기념으로 영업장으로 출근했다. 수하들을 데리고 현장을 둘러본 뒤 술자리를 가진 무헌이 VIP 룸에서 금 사자를 마주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때였다.

최측근 수하 하나가 무헌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배신이었다. 알고 보니 차기 보스로 무헌이 아닌 최 회장의 오른팔을 지지하는 자였다.

싸움이 꽤 커졌으나 무헌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어쩌다 한 번 나오는 배신자보다 한 번 목숨을 바치면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는 이가 만연한 바닥이었다. 최 회장의 수하들은 보스가 점찍은 무헌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싸움이 마무리되자 부상자가 눈에 띄었다. 수하 몇 명이 어떻게 다쳤다더라. 누가 피를 봤다더라. 이딴 상세한 상황을 최 회장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경영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카지노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면 무헌의 책임이었다. 아직은 무헌을 애송이 취급하는 자들이 많았다. 권력을 공기처럼 취해야 할 무헌에게 잡음은 도움 되지 않는 약점일 뿐이었다.

무헌은 주변을 입막음시킨 뒤 사건을 조용히 처리했다. 그렇다곤 하나 배에 칼침을 맞고서 연고나 짜 바르면 나을 거라는 수하들의 무식한 말을 순순히 따라줄 무딘 성격은 못되었다.

무헌은 귀동냥으로 들은 정 의원을 찾았다. 급한 처치를 맡긴 뒤 상황이 조용해지면 큰 병원으로 데려갈 작정이었다. 근방의 대형병원으로 향했다가 끄나풀의 먹잇감이 되는 건 사양이었으니.

수하들을 챙겨 정 의원에 도착했을 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애들을 들여보내고 담벼락에 붙어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손에 피를 묻히고 사는 거야, 날 때부터 예감한 일이었다. 위의 형이나 사촌들은 일찍이 경영자가 되기 위한 초석을 다졌으나 외조부를 많이 닮은 무헌은 일찍이 그림자로 낙점되어 키워졌다.

그게 이상하거나 불편하다, 여기는 대신 오늘같이 계획에서 벗어난 사고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시야가 좁았나. 사고가 편협했나. 애새끼 하나가 배반을 때렸다고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꼴이라니. 무헌이 떫은 숨을 삼키고 담배를 하나 더 빼 물었을 때였다.

부슬대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던 머리 위로 우산이 드리웠다. 우산을 씌운 건 무헌의 정수리에 우산 살이 툭 걸릴 정도로 키가 작은 이였다.

“너 뭐야.”

“비 맞잖아요.”

여린 목소리로 퉁명스레 말을 내뱉은 건 여자애였다. 중학생? 고등학생? 그 언저리에 나이가 걸쳤을 것 같은 외모에 피부가 하얀, 그야말로 애였다.

겁도 없이 이딴 걸 들이댄 여자애는 새치름하게 위로 뻗은 눈매를 거두지 않고서 빤히 무헌을 바라보았다. 버림받은 고양이를 보듯 측은한 기운이 그녀의 눈가에 머물다가 사라졌다.

한바탕 동정을 끝낸 여자애가 무헌을 위한답시고 캔커피까지 내밀었다.

“따뜻해요.”

“이걸 나더러 먹으라고?”

“할아버지가 드리래요. 안에 아저씨들한테도 다 돌렸구요. 아저씨는 안 들어오세요?”

“가져가.”

싸구려 커피나 마시면서 속을 달랠 기분이 아니었다. 이딴 여자애한테 불쌍히 여겨질 정도로 추락하지도 않았고.

“그럼 받았다고 쳐주세요. 아 우산은 받으시고요. 안 그럼 저 죽어요.”

캔커피를 거둔 여자애가 무헌의 손을 끌어 억지로 우산 손잡이를 쥐여주었다. 보통 이 나이 때의 애들이라면 깡패를 무서워하는데 여자애는 별반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무헌이 멀뚱히 바라만 보자, 우산이 힘없이 밑으로 쳐지려고 했다.

“잡으세요, 얼른.”

무헌이 대꾸하지 않고 제 손을 감싼 여자애의 차가운 체온에 집중했다. 얼음장 같은 손으로 누가 누굴, 동정한다는 건지. 기가 막혔다.

무헌이 시간을 끌수록 슬리퍼를 신은 여자애의 맨발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아 몰라요. 난 준 거예요.”

손을 놔버린 여자애가 힘없이 꺾이는 우산을 외면하곤 대문을 향해 몸을 틀었다. 떨어지려는 우산을 별수 없이 구제한 무헌이 사라지려는 여자애를 부른 건 충동적인 짓이었다.

기분이 좆 같아서. 짜증 나서. 괜스레 말 섞으며 우산 따위를 쥐여준 여자애가 가소로워서. 그런 이유였겠지.

“야.”

“저 이름 정우희인데요.”

눈을 치뜨며 뒤돌아보는 여자애가 조금쯤 궁금해졌다. 어떻게 살길래 깡패 새끼를 보고도 기가 하나도 안 죽는 건지. 정 의원 딸이 얼굴 반반하고, 그녀의 딸은 더 예쁘장하단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엄마 이름이 정은영이라고 했나. 무헌은 특출난 기억력으로 상관도 없는 여자를 기억해냈다. 예쁘고 힘없는 여자는 인생이 고달픈 법이다.

정은영을 어떻게든 한 번 해보려고 문지방이 닳도록 이곳을 드나들던 깡패 새끼가 꽤 있다고 들었다. 가만 보니 저것도 나이가 차면 비슷한 꼴이 될 것 같았다.

“안 받았는데 어떻게 받은 거로 쳐.”

“커피요?”

“줘봐.”

무헌을 향해 돌아오려다가 물웅덩이에 빠진 우희가 어울리지도 않는 욕을 내뱉었다. 염병. 빨아들이는 담배가 달았다.

“자요.”

다시금 내민 캔커피에 빗물이 맺혀갔다. 우희는 그새 쫄딱 젖은 꼴이 됐다. 그 사이 빗방울이 꽤 굵어진 터다. 흰색의 얇은 티셔츠 위로 속옷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우희가 그랬듯 무헌도 그녀의 미래에 대해 아주 약간 동정심이 들었다. 그에 무헌은 그답지 않게 선의를 베풀어 말했다.

“그 꼴로 들어가면 짐승 새끼들 눈요기나 될 텐데.”

그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낯빛을 하고 서 있다.

“커피 달라면서요. 안 받으실 거예요?”

“따라와.”

무슨 오지랖이었는지. 무헌이 골목을 쭉 걸어나갔다.

“왜요?”

“더럽게 쫑알거리네. 오라면 와.”

골목 입구에 정차된 자동차 안에 여자애를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감옥에 갇힌 양 차창을 손으로 두드리는 그녀를 두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히터를 조절하곤 말했다.

“옷 마르면 나와.”

“저 지금 안 가면 죽어요.”

“쪼끄만 게 죽는다는 소릴 밥 먹듯이 하네.”

“저 진짜 괜찮은데….”

“내가 안 무서운가 보다?”

“저 안에 있는 형님들이 훨씬 무섭죠. 인상 차이가 있는데.”

기가 막혔다. 여동생 같아서 호의를 베풀려는데 겁도 없이 까불었다. 그래, 여동생이 어디 있다고 이 지랄을 했을까.

무헌은 우산을 뒷좌석에 밀어 넣곤 내릴 때 가져가라 말했다. 바로 뒤에 정차된 다른 차에 올라서 어두워지는 밤에 고요히 녹아들었다.

그리고 30분 뒤 여자애가 차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 잠깐 잠이라도 들었던 건지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주황빛 가로등 아래 놓인 여자애는 은혜 갚는 까치처럼 무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녀가 똑똑똑. 무헌이 탄 차를 두드렸다. 차창을 조금 내리자 여자애가 머뭇대며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형님.”

“어.”

“나중에 또 오실 거예요?”

대답하지 않았다. 무헌의 입만 보고 있던 그녀가 포기했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곤 골목으로 사라졌다.

무헌이 차에서 내려 담배를 물었다. 걸음을 멈춘 여자애가 뒤를 몇 번이나 흘긋거리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닥. 물웅덩이를 거침없이 밟으며 뛰어온 여자애가 숨을 헐떡였다. 하는 짓이 꼭 똥강아지 같네. 꼬리를 흔들었다가 내뺐다가 아주 저 좋을 대로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무헌이 짜증스레 물었다. 집에 들어갔다 나온 사이 거적때기 같은 비닐 잠바를 걸치긴 했는데, 비를 흠뻑 맞아 아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건 비싼 거래요.”

우희가 내민 건 손바닥만 한 상자였다. 어렴풋한 가로등 불빛에 비춰 우희가 내민 것이 수입 초콜릿이란 걸 알아냈다.

“드세요.”

다시 한번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한 여자애가 왔던 것처럼 뛰어서 사라졌다. 무헌은 손바닥에 뎅그러니 놓인 초콜릿 상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옆길에 던졌다.

담배를 두 대쯤 피우고 나니 욕이 튀어나왔다.

“씨발.”

한숨 쉰 무헌이 허리를 숙여 상자를 들었다. 웅덩이에 빠졌다가 건져진 게 꼭 여자애 같았다.

흐물거리는 상자를 몇 번 털어낸 뒤 재킷에 쑤셔 넣었다. 안 하던 짓을 한 대가가 좀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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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문틀에 기댄 무헌은 잠시간의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잠든 우희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자니 맹랑하게 초콜릿을 건네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특출난 기억력 덕에 호수에서 우희를 봤을 때, 그녀가 그때 그 여자애란 걸 알았다. 무헌이 예상했던 것처럼 우희는 눈이 가는 미인으로 자라 있었다. 문지방이 닳도록 그녀의 집을 드나들 깡패 새끼 중 하나가 되어 우희를 원하게 될 거란 건 계산 밖이었다.

자면서 얼마나 뒤척이는지, 3분 전에 덮어둔 이불이 공처럼 말려 우희의 옆구리에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다. 애도 아니고. 아니 앤가. 6살의 차이를 짚어보자니, 둘을 같은 세대로 묶기에는 양심이 저렸다.

아침 햇살을 받은 말랑한 나체가 뽀얗고 맑았다.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잠든 모양이 제법 귀여웠지만 물어뜯어 새긴 흔적들은 아침부터 음심을 부추겼다.

우희가 또 뒤척거리기 시작했다. 선잠이 든 것 같은데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정오가 넘었으니 식사를 챙겨야 했다. 무헌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우희의 등을 받쳐 일으켰다.

품으로 당겨 한쪽 팔에 기대게 하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뺨을 어루만졌다.

“뭘 좀 먹어야지.”

잠을 떨치지 못해서 골골대던 우희가 어느 순간 눈을 떴다. 가까이 자리한 무헌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버버, 당혹스러워했다.

“짐승이라도 본 얼굴이네.”

“으어….”

우희가 버둥댈 때마다 차양처럼 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파르르 경련했다. 색조 옅은 눈동자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게 감질나서 팔에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물 줄까.”

“어음, 저기….”

“지금 12시 30분.”

“어제는….”

“너 오줌 한 번 더 싸고 난 뒤에 기절했지.”

우희의 말간 뺨이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꽉 깨물어 먹고 싶게 단내까지 났다. 과즙이 흘러나올 것 같은 통통한 입술이 달싹이다가 자그맣게 소리를 내밀었다.

“…물.”

무헌은 손을 뻗어 미리 준비한 물컵을 직접 입에 대주었다. 우희가 두 손으로 받으려는 것을 가볍게 무시하곤 수고를 들여 직접 먹여주었다.

무헌을 보며 물을 꼴깍꼴깍 넘기던 우희가 가볍게 기침했다. 그가 잽싸게 턱에 흐른 물을 훔쳐주고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괜찮나.”

우희가 아리송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싶었는지, 네 하고 대답했다. 아직도 플레이의 일환이라 여길 만큼 긴장하고 있는 게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다.

“엉덩이는 어때.”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우희가 팔다리를 돌려보곤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보단 괜찮은 것 같아요. 이상하네….”

잠에 취한 목소리로 구시렁대는 입술에서 페로몬이 퐁퐁 솟는 것 같다. 그녀가 확인차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어볼 때마다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가까스로 식혀둔 욕망을 들추었다.

“자는 동안 주물러놨더니, 괜찮나 보네.”

“아….”

“이렇게 약골일 줄 알았나.”

우희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시트를 끌어 몸을 가리며 문밖을 살피는 눈동자에 경계가 가득했다. 누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건가.

“별장에 다른 사람도 있어요?”

역시나.

말을 하며 목 아래까지 꼼꼼히 가리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죄 뜯겨서 울긋불긋한 주제에. 너덜너덜한 등 쪽은 보이지도 않는지 앞을 가리기 급급하다.

“있어도 여기까지 올라올 놈은 없지.”

“옷 좀 입혀주지….”

“식사부터 해.”

“우선 씻고 싶어요.”

“씻겼어. 구석구석 약도 발라 두었고.”

문밖을 살피는 걸 그만뒀는지 우희가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으려 하기에 턱을 들어 올렸다.

“뭐가 문제야.”

“좀 기분이 이상해서요.”

“후회돼?”

그렇다고 하면, 포만감 가득한 뱃속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좋은 걸 못하고 살았던 게 후회라면 후회죠.”

뻣뻣해졌던 목덜미를 주무르며 무헌이 유달리 너그럽게 대꾸했다.

“놓친 건 만회하면 되지.”

우희가 비단 같은 머릿결을 쓸어 넘기며 옅게 웃었다. 침대에서 안는 김우희의 맛은 어떨까. 출렁거리는 매트리스를 바닥까지 찍어 누르며 우희를 파묻고 싶었다.

그러나 무헌은 인내를 발휘했다. 좋은 주인이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했다. 문득 아까부터 정확히 알 수 없던 갈증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희를 먹이고 재우고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런 행위에 대한 욕심이 인 거다. 그런 것까지 관여하고 싶어진 거였나. 이럴 거면 플레이 파트너가 아니라 DS 관계를 요구했어야 했다. 지금으로선 김우희를 꽁꽁 묶어둘 구실이 부족했다.

“눈 피하면 뭐가 달려지나? 밑은 잘만 맞췄으면서 왜 예민을 떨어.”

“창피하단 말이에요.”

우희가 갈라진 제 목소리를 의식하고 헛기침했다.

“개처럼 허리 턴 건 내가 더 했지.”

“…그렇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네가 조른 거야.”

무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미리 챙겨둔 옷을 가져왔다. 제 티셔츠를 우희의 머리에 끼우고 소맷단을 접어주었다.

“옷을 사두긴 했는데, 그건 이따가 보고 우선 이거 입어.”

포장지에서 뜯은 새 팬티도 잔뜩 웅크린 다리를 펴서 끼웠다.

“이, 이런 건 제가 할게요.”

“됐어. 또 픽픽 쓰러지게.”

무릎으로 일어서자마자 곧 쓰러질 것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던 우희는 더 고집부리지 않고 무헌에게 옷 입는 걸 맡겼다.

우희의 골반까지 팬티를 올려 마무리한 무헌이 따끈따끈하게 열이 오른 몸을 안고 일어났다. 갑자기 시야가 뒤바뀌자 떨어지는 줄 알았는지 우희가 목을 안으며 꽉 감겨들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묘한 충족감이 차올랐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우희는 세상에 무헌 뿐인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고, 그는 흡족함에 좆을 빳빳하게 세웠다.

본래 무헌은 섹스의 연장선이랍시고 이런 귀찮은 짓거리를 할 성격이 못됐다. 그러나 지금은 자발적으로 번거로워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의 휴가가 모처럼 보람찼다.

1층으로 내려오자 말끔해진 거실을 두리번거리며 우희가 물었다.

“거실 누가 치웠어요?”

“왜.”

“다른 사람이 보면 좀 그래서요.”

“누가 허리 휘어지도록 치웠지.”

무헌은 손수 러그를 걷고 세탁기를 돌렸다. 섹스의 흔적을 수하들에게 보이는 게 껄끄럽다고 여긴 거다. 술 냄새가 밴 소파를 닦으면서 헛웃음을 터뜨렸었다. 꼴 한 번 죽여줬다.

일회성 만남이 아닌 플레이 파트너를 두는 건 무헌도 처음이었다. 이딴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하는 게 뭔지 골몰할 필요가 있었다.

“진무헌 씨가… 치운 거예요?”

“어.”

자신답지 않은 일을 자처한 게 좀 멋쩍었는데 목덜미로 파고들며 옅게 웃는 우희를 보자 내가 이걸 보려고 안 하던 짓거리를 했구나 싶었다. 그녀가 조금 더 몸을 떨며 웃었다.

“재미있나?”

“그냥. 치우시는 모습 생각해보니까 너무 안 어울려서요.”

“나도 알아. 굳이 되짚지 마.”

주방으로 향하자,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 위를 보며 우희가 순수히 감탄했다.

“와.”

“놀랄 일인가?”

무헌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새벽부터 수하들을 족쳐 근방의 고급 한정식에서 반찬을 공수했다. 우희가 일어나지 않아 음식이 식자, 음식을 다시 사 오게 해 교체했다.

요리를 제일 잘한다는 수하를 데려와 주방에 세워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시한 일까지는 우희가 몰라도 됐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말해. 나중엔 그런 거로 차려줄 테니까.”

“상다리 부러지겠어요.”

우희가 잔망을 떨었다. 먹는 것 앞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타입인가. 의자에 내려주자 우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숟가락을 잡았다. 무헌이 바로 옆자리의 의자를 빼 앉았다.

“진무헌 씨도 얼른 드세요.”

우희가 달걀 물을 입힌 햄 부침을 보며 건성으로 권했다. 무헌은 젓가락으로 그걸 집어 우희의 밥 위에 놔주었다.

“며칠 굶었나?”

“네. 안 드실 거면 먼저 먹을게요.”

밥을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가려던 우희가 아아,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두영에게 얻어맞은 곳이 아물기도 전에 인조 성기를 빨다가 찢어진 입가가 말썽인 듯했다. 약을 발라두긴 했는데 하루아침에 아물진 않을 거다. 이왕 찢을 거면 내 좆으로 해야 했는데.

“당분간 아무거나 빨지 마.”

“네네.”

“대답은 한 번만.”

“알았다구요.”

대충 대답한 우희가 밥을 덜어내고 신중하게 숟가락질했다. 반 쪼갠 햄을 가지고 한참을 우물거리더니 참치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뭐가 이상하다 싶어 보니 두 다리를 의자 밑에서 달랑달랑 흔들고 있다.

무헌은 생각지 못한 귀여운 짓에 기쁨을 느끼며 턱을 괴고 우희를 지켜보았다. 계란말이, 매운 콩나물무침, 김치찌개, 햄과 조미김, 그리고 새우장과 소 갈비찜이 전부인 식탁은 무헌의 눈에 그리 풍성한 차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총기가 넘쳤다. 무헌이 입을 가리고 나직하게 웃었다.

한참을 씹어대더니만 아직도 밥이 절반이나 남았다. 열심히 먹는 것에 비해 음식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뎠다. 이러니 좆 받으면서 맥을 못 추지.

조그마한 것이 살겠다고 먹어대는 게 짠했다. 멀쩡한 자신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다. 무헌은 단정한 젓가락질로 조미김을 씌운 밥을 건넸다.

그걸 손으로 덥석 받은 우희가 조그마한 입으로 뜯어먹었다.

“진짜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게.”

“입이 찢어져서 그래요.”

김을 싼 밥을 말하는 줄 알고선 우희가 배시시 웃었다. 씨발, 이거 뭐지. 무헌이 와락 눈썹을 구겼다. 심장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무헌이 턱을 감쌌던 손을 떼어내고 허리를 폈다. 벌떡 선 자지 위의 아랫배를 손끝으로 긁었다. 우희가 자고 있을 때부터 힘이 가득 들어간 좆은 당장이라도 밑구멍에 처박을 수 있는 상태였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현상은 사춘기 이후로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무헌은 눈살을 찌푸리고 부푼 사타구니를 경멸스럽게 노려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라앉긴커녕, 더 커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었었나 봐요.”

다 먹은 것인지 물로 입을 축인 우희가 웅얼댔다.

“안 드세요? 진무헌 씨도 얼른 드세요.”

“고작 이게 많이 먹은 건가?”

정말 믿을 수 없어서 되물어야 했다.

“네. 매일 같이 샐러드랑 지독한 주스만 먹다 보니, 평범한 음식에 그리움이 깊었나 봐요. 정말 잘먹…. 아.”

방긋대던 우희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제 핸드폰… 핸드폰 어디 있어요?”

“있어 봐.”

무헌이 일어나 따로 챙겨두었던 우희의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계속해서 울리기에 전원을 끄고 작은방에 처박아두었다. 충전기 선을 제거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자 문 앞까지 우희가 따라와 있다. 액정이 금 가 수명이 간당간당해 보이는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핸드폰 새로 사야겠는데.”

“네, 고마워요.”

먹은 밥이 얹히기라도 한 듯 우희가 입술을 질끈 물며 핸드폰 전원을 켰다. 무헌은 그런 우희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의아한 눈빛이었지만 그녀는 어딘가로 통화를 연결하느라 여념 없었다.

대리석 세면대 위에 우희를 앉힌 순간 통화가 성사되었다.

[정신이 있어, 없어!]

거대한 고함이 욕실까지 뻗어 나왔다. 당황한 듯 우희가 무헌의 눈치를 살피며 핸드폰을 그러쥐었다. 그는 관심 없는 척 무심하게 칫솔에 치약을 짰다.

김중혁 국회의원. 당의 핵심 인물로 청렴과 투명성을 내세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가 우희의 친부이자, 통화 상대였다.

“죄송해요. 깜빡했어요.”

우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흥분한 김중혁을 약을 올리듯 차분했다. 햄 한 조각에 마냥 좋아하던 모습은 증발하고 가라앉은 그녀만 남아 있었다.

“이번 생일은 세 분이 오붓하게 보내세요.”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감정 없는 음성이 세상 다 산 것처럼 공허했다. 김우희를 제외해야 오붓한 가족이 완성되는 그림인가? 무헌은 어렵지 않게 그녀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중혁은 아마 뒤늦게 얻은 딸이 조폭 나부랭이들과 어울려 자랐으니 혹여 의원 생명에 해가 될까, 항상 날을 세우고 있었을 거다.

김우희를 결혼 시장의 매물로 내놓으려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성질로 바꿔놔야 했을 텐데, 어려웠겠지. 무헌은 바닥부터 하늘까지 두루 경험해본 사람이었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얼마 전 우희가 마약 단속반에 걸려 연행되었다. 그때 김중혁의 반응이 어땠을지, 지금의 통화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었다.

우희가 김중혁의 골칫덩어리인 점이 왜 귀여울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헌은 좀 더 우희가 대항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부모들은 종종 자식을 휘두르기 편한 무기, 내지는 트로피로 삼았다. 누군가 우희를 휘두르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면 그 주인은 무헌이어야 했다. 진무헌이 그녀의 주인이니까.

다만 그게 침대 위에서라는 제한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는 게 지금에 와서 아쉬웠다. 이걸 진짜 먹어버릴 수도 없고. 성욕과 식욕은 한 끗 차이란 걸 어젯밤 우희의 목덜미를 아작 내며 깨달았다.

[지금 당장. 올라와라. 가족 모임은 빠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내 말이 우습더냐?]

“아버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잔말 말고 나와! 곧 오 기사 도착할 게다. 그거 타고 와.]

전화가 매정하게 끊겼다. 우희가 핸드폰을 내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흑색이 된 액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우희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입 벌려.”

무헌이 그녀의 입가로 칫솔을 가져갔다. 그녀가 고개를 들며 무헌의 손을 밀어냈다.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저분한 채로 어딜.”

알아들었으면서 모른 채 되물으며 그가 터진 입가를 칫솔 머리로 눌렀다.

“따 먹었으니까 가겠다?”

“무슨 말을 그렇게…. 그리고 먹힌 건 저죠.”

무헌이 앞니 사이로 칫솔을 밀어 넣고 말랑한 혓바닥을 살살 문질렀다. 키스까지 했으면 더 황홀했으려나.

그는 생전 생각해보지 않던 타인과 타액을 교류하는 교감행위를 상상했다. 상대가 우희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약돌 같은 치아를 구석구석 닦으며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턱을 잡아 고개를 젖히게 했다. 거품이 입가로 줄줄 흐르는 걸 난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물잔을 쥐여주었다.

우희가 콜록거리며 입을 헹구는 동안 머리칼을 뒤에서 잡아주었다. 진창이 난 목덜미에 수건을 둘러주며 질척거렸다. 이 조그만 것을 품 안에 넣고 조물거리고 싶어서 안달 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우희가 힘껏 무헌을 밀어냈다.

“세수는 제가 할게요.”

세면대 아래로 내려가려는 우희의 허리를 잡아 세면대 가장자리에 멈춰 세웠다. 그러곤 품 안에 가두었다.

“속옷 벗어 봐. 상태 확인하게.”

무헌이 긴말하지 않겠다는 듯, 그저 눈빛으로 우희를 다그쳤다. 플레이가 아닌 순간이지만 미묘한 긴장감은 존재했다. 우희가 넘어서는 안 될 최후의 선은 분명 있었다. 그렇게 곧 열릴 우희의 다리 사이를 그리며 자만하던 무헌은 뒤통수를 맞았다.

우희가 무헌의 기대를 무너뜨리며 욕실 바닥으로 껑충 뛰어내린 거다.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재차 진동했다. 우희는 어제 처음 몸을 섞은 주인보다 아버지를 택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반항하는 노예를 둔 주인처럼 기분이 좆 같아졌다.

“가봐야 좋은 꼴 못 볼 것 같은데.”

“통화 내용 들으셨잖아요. 안 가면 더 죽어요.”

우희는 굳이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불행한 가정사를 드러냈다. 더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무헌은 가슴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조소했다.

“그 죽는단 소린 질리지도 않나.”

“밥은 잘 먹었습니다. 이만 가요.”

“서울 가려는 거면 이 실장 보내지. 차 타고 가.”

“아니요.”

우희가 질색하듯 움찔거리며 말했다. 계속되는 고집에 무헌의 눈가가 좁아졌다.

“김우희.”

“집 앞으로 사람이 올 거예요. 그거 타고 가면 돼요.”

“그럼 집 앞까지 타고 가.”

입술을 굳히고 거절 의사를 밝힌 우희가 느릿한 걸음으로 욕실 밖으로 향했다.

“내 좆 받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걸어간다고? 편한 길 놔두고 왜 그런 수고를 들여.”

“이러는 거 과분해요.”

“뭐?”

연이어 맞은 뒤통수가 저릿했다. 무헌의 입가가 슬쩍 올라섰다.

“저는 어제 섹스면 충분했어요. 진무헌 씨는 아니었나요?”

고조된 열기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게. 어제 충분히 섹스했으니 만족해야 하는데 무헌은 계속해서 무언갈 더 바라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김우희를 제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제대로 쥐어보지도 못했는데 손안에서 달아나려는 우희에게 화가 나려 했다. 정말 따먹고 버려진 기분이란 건가.

우희에게 플레이 파트너를 제안한 건 무헌이었다. 주종관계가 고착되는 DS나 애정이 기반인 연디를 제안했다면 이런 순간에 우희를 속박할 권리가 있었을 거다.

우희와 더 끈끈해지는 게 이 좆 같은 감정을 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결론이 났다. 대략 생각이 마무리되자 무헌은 차분해졌다. 그는 본디 불처럼 끓거나 화려하게 타오르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가 생겼으나 해결 방안이 나왔다. 그럼 이제 그렇게 밀고 나가면 될 일이다.

“타.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건 내 의무야. 정 껄끄러우면 에프터 케어라고 생각하지.”

우희의 손목을 잡고 욕실에서 나간 무헌은 옷장을 열었다. 더 거절하면 목줄이라도 묶어두려 했는데 우희는 체념한 듯 순순해졌다.

전에 사둔 열 벌가량의 여자 옷 중, 네이비 원피스를 꺼내 우희에게 직접 입혀주었다. 거울을 보는 우희의 뒤쪽 소파로 상자 하나를 던졌다.

“입어.”

상자를 연 그녀가 포장된 속바지를 이상한 것을 보듯 만지작거렸다. 불편한 표정으로 아래 대보는 우희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자, 그녀가 스스로 발을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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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는 골목 입구에 정차된 익숙한 차를 보곤 안전 벨트를 풀었다. 오 기사가 벌써 도착했을 줄이야. 알았다면 어떻게든 혼자 오겠다고 우겼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슈퍼 앞을 기웃대던 오 기사가 가까워지는 무헌의 차를 발견하곤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데려다주시면 돼요.”

직접 운전대를 잡은 무헌을 향해 말한 우희는 내릴 채비를 했다.

“지금이 플레이라고 생각해보는 건.”

“네?”

“의자 젖히고 다리 벌려.”

우희의 얼굴이 굳었다. 저릿하게 쾌감이 감도는 아랫배를 감싸 쥐며 손을 파르르 떨었다.

진심인 걸까. 그렇다고 해도 협의하지 않은 시간이니 따를 의무는 없었다. 다만 본능이 당장 그의 말대로 하라고 아우성이었다.

“왜. 그런 눈이지.”

우희는 자신이 눈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원하는 게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 조금 염려되었다. 너무 야해 빠진 표정은 아닐지 무서워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 눈이 어떤데요?”

“뭘 더 바라고 있잖아, 지금.”

채찍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후끈거렸다. 선뜻 부정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변명하자니 육체적인 변화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었다. 새로 입은 속옷이 동그랗게 젖어가는 게 민감한 살갗으로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절구질하듯 커졌다. 그러다 오 기사가 보닛 앞까지 다가온 걸 뒤늦게 인지했다.

오 기사의 둥근 얼굴을 보며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내려야 돼요.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다리 벌리라고 하면 벌리고, 짖으라고 하면 짖는 게 이상한가?”

아까까지만 해도 너그러웠던 무헌은 어두컴컴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뒤집으면 전혀 다른 색상이 되는 양면 색종이처럼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우희를 쥐락펴락했다.

몸과 마음이 홀딱 젖어 드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그가 사준 속바지까지 축축해졌으나 감동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 사고 치면 안 돼요, 정말.”

모호한 설명이란 걸 깨닫고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가 진무헌 씨랑 만나는 거 알면 정말 감금당할 거예요.”

“나도 못 해본 건데. 안 되지.”

“농담할 때예요?”

“농담으로 들려?”

찔끔했으나, 나중에 얘기할 때였다. 손잡이를 잡은 우희가 말했다.

“오 기사님한텐 지나가던 길에, 안면 있어서 태워준 거로 할게요.”

결혼 사업에 혈안인 김중혁이 그녀가 진무헌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조폭 나부랭이랑 어울린다며 발광할 게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두통이 밀려들었다.

“돌아와서 연락드릴게요.”

곧 내릴 듯이 말했지만,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해 엉덩이가 움직이질 않았다. 허락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바로 내리지 못하고 무헌의 입을 바라봤다.

“전화하면 받아.”

“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우희가 차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마주친 무헌의 눈빛이 섹스할 때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은 건 착각이 아니었다.

우희는 차주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서 멀어졌다. 그러곤 무표정하게 오 기사에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어디 다녀오십니까?”

“잠깐 산책이요.”

우희는 왜 거기서 내리냐는 듯한 질문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오 기사에게 고저 없는 투로 설명했다.

“아는 분이라, 여기까지 태워주셨어요.”

“그랬습니까.”

오 기사의 눈이 짙게 선팅된 차체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기다려주세요. 짐만 챙겨서 나올게요.”

“예.”

우희는 곁눈질로 무헌의 차가 후진하는 걸 본 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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