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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남편과 재회 (3/5)

2. 전남편과 재회

이웃이니까 곧 대면하게 될 것 같긴 했는데, 예상대로 만남은 무척 빠르게 진행됐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가 온 지 바로 다음 날, 오전 9시쯤에.

오전 9시라면, 아침을 먹고서 내가 여유롭게 집 주변을 산책하는 시간이지. 또, 그가 머무는 별장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내가 그쪽 집 앞을 지나가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과인데, 마침 그 시각에 카딘이 잔디밭에 나무 테이블을 설치해 놓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건 굉장히 수상쩍은 거였다.

아주 미심쩍지. 그가 마치 티 타임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처럼 맞은편에 빈 찻잔도 하나 두고 있다면.

“셀리아.”

또 2년 만에 보는 전 부인을 마주치고도 충격받거나 회피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반가워하는 태도라면 더더욱.

왜 나에게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이혼했잖아. 남남처럼 살아야지. 아니, 이미 남남이지.

그보다 제국의 공작이라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런 시골에 요양을 와 있는 거야? 그것도 시중들 하인을 고작 한 명만 데려오고.

이상해. 너무 수상해.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응답했다.

“어머나, 이게 누구예요? 제가 우연히 누굴 마주친 거죠? 굉장히 익숙한 분인데. 음, 성함이 카, 뭐더라?”

“셀리아, 잠깐 앉아봐.”

싫어요, 하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치즈 스콘이 눈에 띄었다.

음……. 내가 좋아하는 건데. 저것만 먹고 갈까?

그래, 정보도 캘 겸, 간식도 먹을 겸, 한번 시간을 낭비해 보자.

이혼한 전남편과 대화해봤자 쓸데없는 일이겠지만, 솔직히 그가 왜 아픈 건지 궁금해서 어제 잠도 안 왔단 말이야.

내가 지금 머무는 나풀리아 지방은 제국의 끝자락에 있어서, 어떠한 사교계의 소식과도 뜸하다. 카딘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기도 하고, 이혼했던 당시에 너무 슬퍼서 온 연락 통을 끊고 내가 시골에 잠적해 버린 거지.

어쩐지 망설이는 듯하던 그가 나직하게 물었다.

“셀리아,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스콘을 반으로 쪼개던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뭐야? 저 인간 뭘 물었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양심 어디 있지?

손에 든 스콘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난 턱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떻게 살았냐고요? 당신과 이혼한 후에요?”

카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듣고 싶은 거예요?

사랑하던 남자에게 상처받고 떠난 여자의 삶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지금이야 2년이 훌쩍 지났으니 이렇게 마주 앉아서 대화도 하지만, 이혼한 직후에 내 가슴은 정말 너덜너덜 찢어졌다.

내가 한동안은 잘 지내지 못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 근황을 묻는 카딘의 뻔뻔함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건강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빛이 그의 푸른색 눈동자에 떠오르고 있어서 더욱 심술이 났다.

재산을 많이 얹어줬다고 그나마 죄책감이 덜한가 보지?

내가 이혼할 때 그에게서 어마어마한 위자료를 받아냈기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건 맞아.

근데 카딘이 그걸로 안도하고 있어서, 내가 그의 잘생긴 얼굴에서 그런 감정을 알아볼 수 있어서 짜증이 났다.

2년 만에 보는 건데. 낯설게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어젯밤 같이 잠든 것처럼 카딘이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지?

화가 나. 그가 밉게 느껴지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 왜 나는 카딘이 밉지 않은 거지?

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주 재밌게 잘 살았죠. 카딘, 당신과 이혼한 후로 살 맛이 났어요. 자유인이 되었잖아요. 오는 남자, 가는 남자 잡지 않고 방탕하게 지냈어요. 하루하루가 난잡한 파티 생활의 연속이었죠. 정말 즐거운 2년이었답니다.”

카딘의 무표정한 낯에 살짝 균열이 가는 듯했으나, 그의 음성의 높낮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즐겁게 살았다니 다행이군.”

그의 속을 긁고 싶어서 꺼낸 말인데 그가 무덤덤해서 더욱 화가 났다.

어쩌면 요양 생활이 필요한 건 내 쪽이 아닐까? 나한테 신경과민 증세가 좀 있는 것 같아.

내 말을 순순히 믿어 버리는 카딘을 보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여전히 수더분한 여자로 보이나 보지?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진짜라고 믿고 있나 봐.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니에요! 나는 성녀가 아니야! 당신 앞에서 얌전하고 조용한 척했던 건, 당신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였지. 사실 나는 수다쟁이에다가 거짓말도 잘한단 말이에요!

당신의 수더분한 아내는 이제 사라졌어요! 그때의 셀리아는 이제 없다고요!

짜증 나서 좀 더 허풍을 섞어 보기로 했다.

“네. 그러다 정말로 잘생긴 남자를 만났어요. 한 1년 전이었나? 당시 갓 스무 살 된 남자였는데 체력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서 하루에 8번도 거뜬하더라고요. 대단히 정력적이라 마음에 들었죠. 걔랑 살림을 꾸렸었어요.”

카딘의 눈이 좀 커진 것 같았다.

그래, 이제는 좀 충격적이지?

그가 살짝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만족스러운지 모르겠네.

“……재혼했다고?”

“아뇨. 그냥 데리고 살았어요. 걔도 결혼을 요구하진 않았어요. 그냥 자기를 책임져 주면 평생 봉사하겠다기에, 알았다 하고 내 집에 들였죠.”

“……그래서 지금도 같이 사는 건가? 저 3층 집에서?”

곧 들킬 거짓말이라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낫다. 내 집에 현재 남자는커녕 어린 하녀 키티밖에 없으니까.

난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뇨. 아쉽게도 금세 죽었어요. 아무래도 하루에 여덟 번씩 사정해서 그런가 봐요. 젊어서 괜찮을 줄 알았더니. 그래, 뒤로 갈수록 좀 괴로워 보이긴 했어.”

하아, 카딘이 의미 모를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뭔 뜻이지?

그가 담백하게 말했다.

“유감이군.”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당신이 왜 유감을 느껴요?”

우린 남남이잖아. 나랑 같이 살던 남자가 죽든 말든 카딘, 당신이 왜 유감을 느끼냐고.

어쩐지 상처받은 기색으로 날 물끄러미 보던 카딘이 멋쩍은 듯이 대꾸했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으니까.”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래도 걔는 행복했을 거예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내 나신이잖아요. 걔는 내 몸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거든요.”

“…….”

“그래도 좀 안타깝긴 해서 아침저녁으로 추모 기도를 올리고 있어요. 걔가 천국에 가길 바라면서요.”

“그래. 아주 부지런히 살고 있군.”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여전히 잘생겼구나, 카딘.

짧은 금발, 섬세해 보이는 이목구비,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했던 그 푸른색 눈동자까지 여전하구나.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았던 카딘이 입을 열었다.

“내 지난 2년이 어땠냐면…….”

난 냉랭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아뇨. 굳이 말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요.”

정말 하나도 안 궁금해.

내가 늘 물어봤었잖아. 그때는 말해주기 꺼렸잖아. 말할 게 없댔잖아. 왜 인제 와서 말하겠다는 거야?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근데 그를 보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누그러지는 걸까?

아무래도 내일부터 산책할 때 선글라스를 껴야겠어. 저 푸른 눈에 홀려버리잖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뱉었다.

“말한다면 들어는 줄게요. 하지만 너무 길게 말하면 안 돼요. 난 바쁜 사람이라고요.”

“나는…… 지옥에 사는 것 같았어.”

헉. 그 순간 호흡곤란이 왔다.

어떡해? 지옥에 사는 것 같았대!

내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도망쳤다.

“아! 아침에 그 남자를 향한 추모 기도를 올리는 걸 깜빡했어요. 지금 하러 가야겠다. 안녕!”

그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내 집을 향해 달리는데, 비가 오는 걸까? 이상하다. 하늘에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액체는 하나도 없는데 눈꼬리 옆으로 무언가가 후두두 흘렀다.

“흑…….”

카딘, 조금 전에 왜 그렇게 말했어요?

어째서 그동안의 삶이 지옥 같았다는 거야?

당신, 이혼했으니 후련해야 하잖아. 근데 왜 상실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거야?

실제로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 다 아는데.

내가 당신에게 전혀 의미 없던 사람이라는 거 다 아는데.

당신이 이혼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 다 아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

카딘은 왜 아직도 내게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지?

나는 그랑 2년 전에 이혼했는데. 우린 이제 남인데.

그에게 미련 따위 절대 없는데.

짜증 나, 정말.

* * *

“근데 참 이상해. 카딘은 내가 나풀리아에 있다는 걸 알고 온 느낌인데.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전혀 흔적을 안 남겼는데.”

내 얼굴에 얇게 썬 오이 조각을 올려 주던 키티가 흠칫했다.

“응? 키티,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니? 그가 하필 많고 많은 지역 중에서 나풀리아로, 그리고 그것도 내 집 바로 옆에 요양 오다니. 주소를 알고 온 느낌이야. 정말로 수상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랑 너뿐인데.”

난 소파에 누운 채로 키티를 올려다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키티가 이내 울먹이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네, 마님……. 사실 공작님께 제가 편지를 보냈어요. 마님께서 여기에 머무르고 계시다고…… 제가 알려드렸어요.”

난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얼굴 위에 촘촘히 올려놓은 오이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런. 키티! 정말 실망이야. 내가 내 주소를 절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특히 로네트 공작가에는 절대로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루에 열 번씩 말했잖니?”

“네, 네. 열 번씩…….”

난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고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다.

“키티, 네 하녀 계약서를 가져와 봐.”

키티가 두 눈에 눈물을 글썽글썽 매달고서 말했다.

“잘려도 괜찮아요……. 저는 정말 마님이 행복하시길 바라서……. 매일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계시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계약서를 당장 가져와! 붉은색 펜도!”

키티가 계약서를 가져왔다.

“마님, 저는 정말로 다른 것을 노리고, 그러니까 공작님께 어떠한 보상금을 받은 게 아니라…….”

나는 키티의 말을 들은 척하지 않고. 냉정하게 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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