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셀리아의 일기장 (2/5)

1. 셀리아의 일기장

엘톤 제국력 619년 5월 10일.

너 미쳤구나, 셀리아 크렌도티?!!!

아니지. 이제는 셀리아 로네트 공작 부인이지!!!!

 오늘부로 크렌도티 남작 영애에서, 로네트 공작 부인으로 호칭이 달라졌다고!

꺄아아아아!!

결국 카딘과 결혼하다니.

그래! 그와 결혼했어!

그와 결혼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다들 날 만류했지만 난 그와 결혼했어. 결혼했다고.

그를 사랑하는데 어떡해?

아니, 신이시여.

(제가 당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만약 계신다면) 들어보세요.

제가 어떻게 그를 거부할 수 있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요!!

아, 신이시여. 저는 카딘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답니다.

아……. 그 첫 만남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해요.

좋아요. 신이시여. 제가 다시 한번 그날의 행복한 기억을 되새겨보겠어요. 잘 듣고 계세요, 알았죠? 아니, 글이니까 읽어야 하는 건가?

어쨌든, 네, 신이시여. 맞아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이었죠. 그가 총지휘관으로 참전했던 페리컨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제국에 돌아온 날이요.

처음에는 그의 잘생긴

너무 완벽한 거 있죠?

아니! 로네트 공작이 그렇게 생겼을 줄

저는 괴팍한 악마를 떠올렸었다고요!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생긴 놈으로요.

뭐라더라? 향수병으로 눈물 흘리며 차라리 죽고 싶다는 부하들에게,

“알았어. 그럼 오늘 최전방에 배치하겠다.”

그래서 저는 카딘 로네트 공작에게 별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착하고 친절한 남자가

어쨌든 그날이 그의 승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주최하신 무도회였는데요. 황궁 연회장에서 카딘을 처음 보게 된 거예요. 열여덟 살이던

처음에는 그의 뒷모습을 봤어요. 그가 제게 등을 보이고 서 있었거든요.

‘와, 저 사람 누구지? 덩치가 너무 좋다.’, 싶어서 앞모습 보려고 그 주위를 얼쩡거렸어요.

그에게 가려져 있던 다른 남자가 황자님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깜짝 놀라 피해가려는데(저는 남작 영애라 너무 신분 높은 분들은 부담스럽거든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카딘의 목소리는 죽였어요. 황자님께 무어라 무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제 심금을

저도 모르게 우뚝 서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어요.

카딘 로네트는 대단히 잘생긴 남자였어요.

단단해 보이는 덩치와 다르게 얼굴은 굉장히 섬세했어요. 선이 곱다고

아아, 머리카락까지 금색이었죠! 눈동자는 맑은 푸른색이었고요. 마치

호기심이 잔뜩 동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은 저런 사람도 모르는 게 있다니? 황자님이 대체 무엇을 물어봤는지 궁금했어요.

“그래도 한번 찾아봐. 자네도 결혼할 때가 됐지 않나.”

눈치 빠른 저는 금세 알아차렸답니다. 황자님은 카딘을 회유하고 있었어요. ‘마음에

저는 카딘이 묵묵부답인 게 너무나 슬프고 속상했죠. 그는 전혀 무도회에 관심이 없어 보였어요. 격식 있는

막 소리치고 싶었답니다.

‘잘 모르겠다니요. 저 여기 있는데? 저랑 춤춰요. 셀리아 크렌도티. 열여덟 살!’

물론

그래서

“저 카딘 로네트 공작과 결혼하고 싶어요.”

철없게 행동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머리는 있어서 다 계산을 했답니다.

카딘

“황제 폐하께

아빠는 서기관이거든요. 우리 크렌도티 남작가가 세력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아빠의 직업이 서기관인 만큼 황제 폐하를 가까이서 뵐 수 있죠.

아빠는 엄마 없이 자란 저를 늘 안타까이 여겼기에 웬만해서는 제 부탁을 다 들어주시는 분이세요. 그런데 좀 걱정하시는 것 같았죠.

“셀리아, 꼭 그와 결혼해야겠니? 난 네가

“켈론 영식은 못생겨서 싫어요. 저는 카딘 로네트 공작님이 좋다고요. 그리고

“난 별로 상관없다만…….”

“저는 로네트 공작 부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 행복할 것 같아요.”

어릴 때, 저와 잘 놀아 주었던 사촌 언니는 이렇게

“셀리아, 감수성이 풍부한 너는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3개월도 못 버텨. 로네트 공작은 황무지 같은 남자야. 완전히 메말라 있어. 아무런 감정도 키워낼 수 없다고.”

사촌 언니는 저를 아끼는 친척으로서, 그리고 기혼자로서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것 같았어요.

“무뚝뚝한 것을 넘어,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야.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로네트 전 공작 부부가 마차 사고로 돌아가신 것은 그가 두 살 때 일 아니었어? 되게 어렸을 때잖아.”

사촌 언니는 당황하는 투로 대꾸했죠.

“그, 그래.

그러면서 카딘이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황제 폐하를 향한 충성심 하나뿐이라고, 그런 무딘 남자와 결혼하면 제가 힘들고 괴로울

하지만 아무한테도 고백하지 않은 게 있어요. 나 사실 그가 웃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날, 연회장이 답답한 듯 자리를 뜨는 그를 몰래 뒤따라갔었는데…….

카딘은 정원에 가득 핀 장미 덩굴을 보고서 살짝 입꼬리를 올렸어요. 언뜻 보면 무표정이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고요.

꽃을 보고 웃는 남자가 어떻게 나쁜 사람일 수 있겠어요?

사람들은 바보예요.

저는 그에게 로맨틱한 감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꿋꿋이 카딘 로네트

어쨌든 6개월간, 아빠를 조르고 졸라, 그리고 우리 아빠가 황제 폐하께 조르고 졸라, 드디어 카딘과 만남이 성사됐어요.

처음에는 황제 폐하의 명을

“쿠키 맛이 어때요? 제가 직접

“…….”

“공작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크림소스도 잘 드시나요? 제가 요즘 크림을 이용한 레시피를

취미나 관심사 등등, 카딘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가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말을 아꼈어요.

하여튼 카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어떨 때는 밖에서 만날 때도 있었어요. 우린 함께 연극을 봤어요. 커피도 마셨고요.

저는 그와 데이트하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박하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라니?! 이렇게 괜찮은데?!’

카딘은 굉장히 무표정했지만, 에스코트는 끝장나게 예의 바르게 해 줬어요. 제가 하는

우린 서로 손을 맞잡지도 않았지만 제 심장은 늘 터질 것 같았답니다.

하여튼 그렇게 간질간질 설레는 6개월을 보내고서 드디어 결실을 보았죠.

그래서 마침내 오늘 결혼했답니다. 전 이제 정식으로 로네트 공작 부인이에요! 오늘은 로네트 공작성에서 맞는

앞으로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말 노력해야 할 거예요. 전 아주 멋진 로네트 공작 부인이 될 거랍니다.

저는 그동안 카딘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일지

그는 얌전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음, 그러니까, 예를 들어 제가 너무 신나서 말하면, 살짝 힘들다는 듯 몰래 한숨을 쉬는 것을 봤거든요.

앞으로 평생 같이 살 건데, 웬만하면 서로 좋은 쪽이 좋잖아요. 저는 카딘이 너무 좋으니까 그가

아, 행복해라. 신이시여, 저는 카딘과 결혼해서 너무나 행복해요.

그보다 신혼 첫날밤이라니!

물론 그동안 많은 정보를 이곳저곳에서 얻어듣긴

하여튼 신이시여, 이만 쓸게요.

물소리가 그쳤거든요. 이제 카딘이 욕실에서 나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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