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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105)화 (105/123)

105화 다시 카스피언 제국으로

두 사람이 엉켜 있는 모습이 건너편 거울에 훤히 비쳤다. 더운 김이 사정없이 내뿜어졌고, 헐떡대는 숨결은 좀처럼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불을 꺼 줘요.”

천천히 그녀를 침대에 눕힌 지오프리가 미오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흐으읏.”

미오의 몸을 격렬하게 탐하는 그가 주는 생경한 감각에 교성이 절로 터졌다. 그녀의 생경한 음성에 지오프리의 근육이 더욱더 거칠게 불끈댔다.

“……지, 지오프리. 좋아.”

참을 수 없는 흥분에 미오는 침대 시트를 세차게 움켜잡았다. 밤새 쏟아지는 신음과 열기로 작은 방의 창이 뿌예졌다.

* * *

하루만 묵겠다고 했던 작은 여관에서 장장 사흘을 보냈다.

“지오프리, 인제 그만…….”

눈만 뜨면 그녀를 안으려 드는 짐승 같은 사내를 밀어 내면서 미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짐승 같은 사내가 아니라, 진짜 짐승이구나.’

“……왜지?”

“너무 힘들어요. 게다가 이곳 주인 보기도 민망하고…….”

첫날이야 뭐 흥분해서 그 생각을 못 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그들이 내는 교성을 누가 들을까 봐 너무 신경 쓰였다. 그러자 가운만 걸치고 있던 지오프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는 이곳을 아예 사들였단다.

“그러니 누구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을 거야.”

“공작님, 도대체 이 여관을 왜 산 거죠?”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인데, 다른 사람을 들일 수는 없잖아.”

“……아.”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한 지오프리의 말에 미오는 반박할 수도 없었다.

카스피언 제국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이 조용했다.

커다란 마차 안에는 미오와 지오프리, 코로니스와 비앙카가 함께 탔다.

“제가 찾아가지 않았으면 언제쯤 나오실 생각이었습니까?”

“……아.”

저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딱 코로니스다웠다. 얼굴이 시뻘게진 미오가 헛기침하는데, 지오프리가 쌀쌀맞게 입을 뗐다.

“우리가 신혼여행 왔다는 것을 잊은 건가?”

“일정에서 일주일이나 지체되었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역시 코로니스는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었다.

급한 전갈을 들고 코로니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분명 두 사람은 아직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흠흠.”

두 사람의 감정이 대립하자 괜히 마차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러자 비앙카가 미오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코로니스. 그러지 말고 미래를 좀 봐 줘요. 어때요?”

“글쎄요. 그게 아무 때나 보이는 건 아니라서…….”

코로니스가 미오를 보면서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코로니스는 마법사면서 점성술사라서 미래 예언도 할 수 있거든요.”

비앙카의 말에 미오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 같은데…….’

미오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코로니스가 마차의 창을 열어젖혔다.

“역시 저는 이런 좁고 답답한 마차는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오십시오.”

“……?”

곧 코로니스의 몸이 작아지더니 까마귀가 되어서 창틀에 올라앉았다.

“……멍청이.”

미오를 향해서 그 말을 내뱉은 코로니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

그녀는 분명 저 까마귀를 잘 알고 있었다.

충격받은 표정의 미오의 옆에서 비앙카가 염려스러운 표정을 건넸다. 맞은편에 앉은 지오프리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였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태운 마차의 바퀴가 쉼 없이 굴러갔다.

카스피언 공작 성으로 돌아오는데, 문 앞에 고용인 전부가 두 줄로 길게 서 있었다.

“이제 내릴까.”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지오프리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괜히 볼이 달아올랐다. 미오가 그의 손을 잡고 내려오자, 로렌이 다가와서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무탈하게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님.”

“로렌. 반겨 줘서 고마워요.”

얼떨떨한 얼굴로 꽃을 받아 든 미오의 말에 로렌이 얼른 귓속말했다.

“이제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답니다.”

“고맙네.”

어색한 인사를 건넨 미오가 지오프리와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기분이 새로웠다.

‘……카스피언 공작 부인.’

아직 어색하기만 한 호칭을 혼자 조용히 불러 보는데,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

층계를 오르는데, 지오프리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드는 바람에 바닥으로 꽃다발이 떨어졌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더군.”

미오를 꼭 안은 그가 성큼성큼 그의 침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작님, 왜 여기로 오는 거예요?”

눈을 가늘게 뜬 미오가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면 다른 방을 쓸 줄 알았나?”

“……아.”

미오는 아직 그와 결혼한 게 한 번씩 실감 나지 않았다. 지오프리가 천천히 그녀를 침대에 내려 둔 후에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거예요.”

“구두를 벗겨 주려고.”

“하지 말아요.”

“가만있어.”

그녀의 발목을 움켜잡은 지오프리가 천천히 미오의 구두를 벗겼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구두 소리에 미오의 가슴이 두근댔다. 드레스의 무릎에 닿는 지오프리의 이마가 언뜻 보이더니, 그의 동그란 뒤통수에 시선이 이르렀다. 미오가 손을 뻗어서 그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어쩜, 안 예쁜 구석이 없어.’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수없이 가슴 졸였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으응?”

미오가 그의 검은 머리카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지오프리의 손이 발목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미오가 발을 위로 끌어 올렸다.

“피곤해 보여서 말이지.”

숨기지 못하는 열망이 담긴 그의 눈이 무언가를 호소했다.

“당장 비켜요.”

미오는 지오프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고 드레스 안으로 다리를 모두 숨겼다. 텅 빈 손을 가만 들여다보던 지오프리가 쓸쓸하게 입을 뗐다.

“그런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아.”

그녀는 지오프리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생각보다 퍽 낭만적이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침대에 걸터앉은 미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그런 말을 그가 했다는 게 너무 이상했고, 이런 상황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 카스피언 공작님 맞죠?”

그녀가 손을 뻗어서 지오프리의 볼을 요리조리 매만졌다. 분명 생김새는 그가 맞는데, 하는 말이나 행동이 너무 생소해서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잡혔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물고기가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미오가 활짝 웃으면서 그에게 속살대자 지오프리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서 입을 맞추었다.

“처음부터 그대 거라고 영역 표시를 하지 않았던가. 내 벗은 몸 위에 올라타서 이렇게―.”

“도대체 그 이야기를 언제까지 할 셈이에요!”

지오프리는 그녀가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면 당황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실은 내가 이미 그대에게 반해 버렸다고.”

“지오프리 카스피언! 거짓말하지 말아요.”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저 말은 믿을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해서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정원을 산책하던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당신, 그날 호수에 빠진 날 비웃었잖아요. 그게 반한 사람이 할 법한 일인가요?”

옆구리에 손을 대고 미오가 턱을 추켜올리자, 그가 입술 끝을 슬쩍 올렸다.

“내가 이유 없이 누군가를 구하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나?”

“……그건.”

지오프리의 말에 미오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그는 영지민이나 성의 고용인에게 퍽 친절했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차갑기만 했다. 베일 백작가의 라비니아나 버드만 후작가의 돌로레스에게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누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대가 갑자기 안 보여서 한밤중에 미친 듯이 말고 몰고 갔었지.”

“……아.”

확실히 이상한 일이 많았다.

위기의 순간에 항상 그가 미오 앞에 나타났으니까.

“내가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야.”

지오프리는 처음부터 그녀를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사무엘이 조사해 온 병원을 거절했고, 알렉세이 우르체카에게 신분을 부탁하면서까지 그녀를 대동한 채 사냥 대회에 참가했다.

‘모든 것이 필요에 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지오프리의 마음은 이미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대에게 첫눈에 반한 게 거짓말이라고?”

어느새 창가까지 뒷걸음질 치게 된 미오의 손에 차가운 대리석 창틀이 잡혔다.

“오히려 그대가 내게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닌가.”

정반대의 처지가 된 미오가 창백하게 질려서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요. 처음부터 당신의 팬이라고 했잖아요.”

눈치라고는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때는 또 지나치게 예리했다. 처음 그를 좋아한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었지만, 절대 들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마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금 이런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그녀를 추궁해 대니까.

창틀에 걸터앉게 된 미오의 드레스 사이로 그가 다리 하나를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그 바람에 지오프리의 몸과 창 사이에 갇힌 미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단단한 무릎이 드레스를 파고들어서 그녀 의 여린 허벅지 살을 문질렀다.

“왜 내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는 거지, 부인?”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나 침실에서 나가게 될지 몰라.’

초조해진 미오가 그녀를 실컷 유혹해 오는 지오프리의 목을 꽉 안았다.

“집에 오니까 너무 좋아요.”

“……나도.”

그의 가슴에 뺨을 잔뜩 비비면서 행복에 겨운 음성을 내는 미오를 바라보던 지오프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몸을 숙여서 그녀를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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