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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101)화 (101/123)

101화 위기일발의 구조 작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되면 조용히 처리하는 것도 실패할 테고, 내일이면 경비가 더 강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오프리는 실력이 변변찮은 무사의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다치신 겁니까? 이 밤에 누가 치료라도 해 준 건가요?”

손등에 감긴 붕대를 보던 코로니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신경 쓰지 마라.”

저 잘난 맛에 사는 알렉세이도 짜증이 났지만, 의뭉스러운 코로니스 역시 만만찮았다.

“주군이 그리 말씀하시면 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몇 안 되는 수인을 저리 인간의 노리개로 만들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분부 받잡겠습니다.”

지오프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꾸뻑 숙인 코로니스가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새까만 깃털이 반짝대는 까마귀 한 마리가 차오르는 달 너머로 사라졌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지오프리가 책상에 두 팔을 짚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년간 새로 발견된 수인이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만 벌써 두 명째였다.

“빨리 해결해야지.”

갇힌 수인 하나를 구해 낸 다음에 미오와 이곳을 더 돌아볼 작정이었다. 새로운 풍경에 놀라는 미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단둘만 다니는 게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방해꾼이 없으니까 말이야.”

카스피언 공작 성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미오를 찾는 알렉세이 때문에 얼마나 거슬렸는지 모른다. 그녀의 마음이 알렉세이에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나의 것이다.”

고개를 깊숙하게 숙이는데, 그의 모습이 커다란 창에 희미하게 어른댔다. 셔츠 밖으로 삐져나온 긴 목걸이 끝에 미오와 같은 반지 하나가 달랑댔다.

* * *

방에 돌아온 미오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뭐지? 이상한데?”

지오프리는 간밤의 일을 전혀 기억 못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는 간단한 산책을 제안했고, 호수 근처를 둘러보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녀는 수상한 낌새를 금방 눈치챘다.

“분명 지오프리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어.”

게다가 코로니스가 없다고 했었는데, 아까 보니 집무실에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 워낙 특별한 음성이라서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나를 빼놓고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어제 지오프리가 다쳐 온 것과 분명 상관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나도 알아야 하지 않아?”

창틀로 폴짝 뛰어오른 미오는 근처에 앉은 비둘기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저기, 혹시 뭐 아는 게 있으면 내게도 알려 줄래?”

일전에 다람쥐와 의사소통을 성공한 적 있으니 이번에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녀의 말에 비둘기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정말 되는 거야?”

근처까지 다가온 비둘기는 창틀에 있던 작은 벌레를 낚아채고는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허탈한 눈으로 그것을 응시하던 미오가 중얼댔다.

“이러면 역시 내가 직접 뛰는 수밖에 없겠어.”

지오프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의 일은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매만지던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곧 어둠이 내렸고, 카르티아 성에 고요가 찾아왔다.

“저기 있네.”

한 시간 전에 자겠다고 침실로 사라졌던 지오프리가 누군가와 함께 재빨리 걷고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낮에 미리 구해 두었던 남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미오가 조심스레 창에 달린 덩굴을 붙들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말은 탄 그녀가 마차를 타고 사라지는 두 사람을 쫓았다.

“승마를 배워 둔 보람이 있네.”

거리를 다니는 마차와 말, 수레는 제법 많았기에 그녀는 어렵지 않게 그것에 섞여서 추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오프리가 향하는 곳이 항구라는 것을 눈치챘다.

“……설마.”

내내 마음에 걸렸던 그 여인 생각이 불쑥 났다. 하지만 일단 어떤 일인지는 가 봐야 알 것이다. 지오프리의 마차가 멈춰 서자 그녀 역시 멀찌감치 말을 매어 두었다.

“여기 가만있어. 알겠지?”

미오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 짧게 콧김을 내뿜었다. 지오프리는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고, 미오 역시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미오는 수로 앞에 섰다.

“여기로 들어갔지?”

수로는 방치된 지 오래되어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발 근처에 툭툭 차이는 생쥐를 보며 그녀는 열심히 앞으로 향했다.

“생쥐는 질색인데…….”

어둠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수로의 끝에서 발하는 빛뿐이었다.

“지오프리는 대체 여기를 왜 온 거지.”

수로 끝에 도착할 때쯤 긴장감이 엄습했다. 얼굴을 꼼꼼히 가린 미오가 슬쩍 밖을 내다보자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철통같은 경비를 서는 데다 주변이 막혀 있어서 수로를 모르는 자라면 이곳에 잠입하는 것은 힘들 게 분명했다.

“……저게 뭐야.”

그녀의 예상처럼 두 사람은 수인이 갇혀 있는 새장 앞에 서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나누는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무언가 심각한 내용인 것 같았다. 곧 새장이 열리더니 코로니스가 안에 있는 여인을 부축했다.

그때였다.

순찰하던 병사가 지오프리를 발견했고, 신호를 보냈다.

“침입자다! 침입자다!”

그러자 사방에서 수십 명의 무장 병사가 지오프리가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저런!”

미오는 주변에 있는 나무통 하나를 굴렸다. 어떻게든 병사들의 접근을 막아야만 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무통 때문에 몇몇이 당황해서 난리를 피웠다.

“이곳에도 침입자가 있다!”

‘아, 진짜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몰래 따라와서 지오프리가 뭐 하는지 보기만 하려고 했다. 그가 다쳐 오니까 조금 신경이 쓰여서 말이다.

‘따라온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쫓아오는 병사를 뒤로하고 그녀가 지오프리가 있는 곳을 향해서 전력으로 질주했다.

“이게 누구시더라?”

남자 옷을 입은 그녀를 확인한 지오프리가 화가 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난 도와주려고 그랬는데…….”

그녀의 말을 싹 무시한 채 지오프리가 급박한 상황에 지시를 내렸다.

“코로니스, 얼른 그 여인을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거의 의식을 잃은 여인을 가뿐히 안은 코로니스가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래. 용감한 부인이 나를 어떻게 도와줄 작정이지?”

이제 코앞까지 다가선 병사를 보면서 지오프리가 물었다.

“일단 조금 물러나 있을까요.”

아무래도 싸우는 데 그녀는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아니.”

지오프리는 그녀의 손목을 붙들더니 곧장 새장 안에 미오를 밀어 넣었다. 아까 수인이 갇혀 있던 그곳이었다.

“거기가 제일 안전해.”

“날 가두겠다고요?”

“이미 갇혔잖아.”

자물쇠까지 채운 지오프리가 등을 돌려서 가 버렸다.

“지오프리! 당장 날 풀어 줘요!”

쇠창살을 움켜쥔 미오는 더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지오프리의 목을 향해서 수십 개의 날카로운 검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지오프리!”

놀란 그녀는 눈을 감기는커녕 목이 터지라 그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지오프리는 옆의 상자를 밟더니 사뿐히 적의 검 위로 날아올랐다. 한 발로 검을 디딘 후 지오프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유려한 동작에 사내들이 픽픽 쓰러졌다.

“아니! 이 새끼가 우리를 뭐로 보고!”

남은 사내들이 다시 벌 떼처럼 지오프리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기다란 창을 세운 사내 몇이 사방에서 지오프리의 몸을 꿰뚫으려고 했다.

“맙소사! 도저히 못 보겠어.”

그대로 주저앉은 미오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럴 때 원작에 나오는 거대한 여우가 될 수만 있다면…….’

그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 봐도 그녀의 몸은 전혀 변할 기미가 없었다. 주먹을 꽉 쥔 미오의 귀로 처절한 비명이 날아들었다.

‘분명 그가 이길 거야.’

지오프리를 믿었지만, 밀려드는 적의 숫자에 약간 불안하기는 했다. 검에 찔리고 베여서 내는 비명과, 무기가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음이 한참 이어지더니 곧 사방이 조용해졌다.

“……끝난 건가.”

고개를 들자 미오는 참혹한 현장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수십 구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피 칠갑을 한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지오프리.”

쇠창살을 쥔 미오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피에 흠뻑 젖은 그의 모습이 원작에 묘사되었던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광기를 달래지 못한 지오프리는 결국 저 검으로 모든 것을 베어 냈다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워.’

지독히도 피폐한 상황이 극상의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 선 지오프리의 속눈썹에 핏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검 끝에서는 아직 더운 피가 흘렀다.

“이제 내가 무서운가.”

왜 자꾸 저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꼭 무서워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을 죽였는데……?”

그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지오프리와 그녀가 죽었을 것이다.

“그래요.”

두려운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턱까지 쳐들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등을 가벼이 두드렸다.

“……착하네.”

“그게 무슨 말……!”

꼭 집을 잘 지킨 강아지한테나 할 법한 칭찬이었다.

“얌전하게 잘 기다렸으니 말이야.”

“당신, 지금 웃는 거예요?”

천으로 가려져서 입 모양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분명 그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웃은 적 없는데…….”

“빨리 날 내보내 줘요.”

갇혀서 애원하는 모습에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에게서 한 발 물러선 지오프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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