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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100)화 (100/123)

100화 도르프 제국 (3)

그건 절대로 아니어야만 했다.

여우의 몸일 때 그를 만났으니, 지금 그녀는 코로니스라는 존재를 전혀 몰라야 말이 되는 거니까.

뒤적대던 미오가 잠든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치유 능력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나는 내 굴도 하나 못 파는데?’

‘그래도 미오, 너는 이렇게 귀엽잖아.’

‘비앙카, 냇물에 얼굴을 좀 비춰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때?’

동그란 눈과 반들반들한 코, 잘록한 허리를 가진 사슴은 미오의 눈에는 완벽했다. 게다가 사슴 수인 비앙카는 마음씨가 고왔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미오를 무시하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 주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비앙카, 우리는 언제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을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그때가 되면 분명 알 수 있을 테니까.’

미오를 향해서 웃어 주던 비앙카가 순식간에 쇠사슬에 매달려서 울부짖었다.

‘미오! 나는 괜찮아!’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비앙카! 내가 구해 줄게.’

‘네가 다치는 것은 싫어. 그러니 괜찮아.’

누군가의 채찍에 신음을 삼키던 비앙카가 희미하게 웃었다.

“안 돼!”

미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났다.

땀을 너무 흘려서 등이 축축했다.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살짝 들자, 창가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두워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미오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람에 익숙한 체향이 실려 왔으니까.

“……지오프리?”

어두운 밤하늘을 등진 지오프리는 어쩐지 위태로워 보였다.

창틀에 발을 한쪽만 걸치고 있어서 곧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다.

“왜 위험하게 거기에 있어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온 미오가 그를 향해서 나아갔다.

“…….”

지오프리는 답도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내려오라는 말에 반응이 없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아요.”

지오프리는 여전히 쳐다보기만 했다. 한참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그가 나지막하게 입을 뗐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람.

무섭기는 했지만, 그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하여튼 진짜 말을 안 들어.”

아주 작게 속삭인 미오가 그의 손목을 힘주어서 잡아끌었다. 갑작스러운 몸짓에 균형을 잃은 지오프리가 휘청였고 이후 큰 소리가 났다. 창틀 아래에서 한바탕 뒹군 미오가 끙끙 앓았다.

“떨어질까 봐 구해 줬더니,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아요?”

“……이게 어떤 식이지?”

“어떤 식이긴―.”

허리를 세운 미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분명 떨어진 지오프리를 받으려고 팔을 뻗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그의 배 위에 앉아 있는 걸까. 게다가 약간의 소동에 그의 셔츠 앞섶 끈이 죄다 풀려서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마침 달빛이 딱 잘 드는 자리일 건 뭐람.’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한 그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다, 다쳤어요?”

인제 보니 지오프리의 셔츠에 피가 군데군데 튀어 있었고, 그의 손등에도 상처가 있었다.

“이 밤에 나가서 도대체 뭘 했던 거예요.”

미오가 피를 닦아 보려고 손으로 셔츠를 비볐다. 그녀가 열심히 움직일수록 그의 근육이 꿈틀댔다.

“이러면 상당히 곤란한데…….”

난처한 기색을 드러낸 지오프리가 그대로 몸을 세워서,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아래로 쭉 밀려 내려간 미오가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게 되었다.

“질문이 조금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어디가 틀렸죠?”

문득 잠옷 아래 지오프리의 허벅지 근육이 거슬려서 슬쩍 바닥으로 내려가려는데, 그가 미오를 붙들었다.

“야심한 시간에 왜 여길 찾아왔는지부터 물었어야지.”

“지금 그게 중요해요? 피가 묻었잖아요.”

붉은 피를 흘리던 것은 모두 죽었다.

미오는 이 비릿한 냄새를 몰고 다니는 악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덜덜 떨리자 지오프리가 미오의 볼을 감싸 쥐었다.

“전부 내 피가 아니야.”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그래.”

그의 말에 미오는 그대로 지오프리의 품에 이마를 묻었다.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정말.”

오히려 미오의 반응에 놀란 것은 지오프리였다.

이곳을 찾은 것은 충동적인 일이었다. 밖에서 일을 마친 후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미오의 생각만이 가득 남아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잠은 제대로 들었는지…….’

코로니스를 영 내켜 하지 않던데 그대로 두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렸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군.”

지오프리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 주었다. 미오는 이불을 끌어 덮으면서 옆에 놓인 베개를 흘끗 살폈다. 이 방은 과거 지오프리의 조부모가 쓰던 침실이라고 했다. 그래서 침대가 얼마나 큰지 혼자 누워 있으면 황량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같이 있고 싶어.’

그녀를 무시할 때는 그렇게 붙어 있을 일이 많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반지까지 받은 후에는 되레 거리감이 느껴졌다. 반지를 만지작대는데 지오프리가 창을 닫고 문으로 향했다.

“그냥 가려고요?”

“……그러면?”

그녀의 물음에 지오프리가 고개를 갸웃대더니 이상한 음성을 냈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난 미오가 서랍 속에 있는 구급함을 꺼내 들었다. 자주 다치는 지오프리 때문에 카스피언에서부터 챙겨 온 것이었다.

“그러다 덧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리 와요.”

작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서 지오프리가 팔을 내밀었다. 셔츠를 살짝 걷자 다행히 손등 외에 깊은 상처는 없었다.

“왜 이런 게 묻어 있어요?”

그의 팔에는 나무 톱밥이나 흙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미오의 물음에 그것을 대충 떨어낸 지오프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넘어져서 그런가 보군.”

미오가 상처를 대충 소독한 후에 천을 감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가 봐야겠군.”

“……저기.”

이번에도 미오는 그대로 일어서는 지오프리의 셔츠 자락을 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머뭇대는 얼굴을 확인한 지오프리가 미오의 손을 잡았다.

“이리 와.”

그는 다시 미오를 눕힌 후에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드는 것을 보고 갈 테니 눈을 감아.”

“공작님, 왜 이래요.”

“……뭘 말이지?”

왜 나한테 다정하게 굴어요.

사람 헷갈리게.

전할 수 없는 말을 입 안에 가둔 채 미오는 이불을 끌어서 코까지 덮었다. 눈만 빼꼼 내어 둔 미오를 바라보던 그가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어떤 악몽도 그대를 해칠 수 없다.”

요즘 들어서 고백 같은 말을 얼마나 해 대는지 미오는 그의 말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 * *

동그랗게 몸을 만 미오가 잠이 들자 지오프리는 2층 집무실을 찾았다. 창가에 선 유령 같은 사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미오는 오늘 뭘 했지?”

“제가 불편한지 종일 방에만 계시더군요.”

“불편해할 만도 하지.”

실제로 코로니스를 접하는 사람 대부분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모습을 해도 코로니스 특유의 섬뜩한 기운을 가리는 것이 어려웠다.

“약간 서운하더군요.”

“……서운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품에 꼭 안겼던 미오의 체온이 느껴졌기에.

들뜬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지오프리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하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지 심장은 더욱더 세차게 날뛰었다.

“사실 미오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지?”

코로니스는 뛰어난 마법사였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것치고는 지오프리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알려고 들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약을 그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아닐 테지.”

코로니스의 말에 지오프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해열약을 만들어 드리는 게 전데,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이제 결혼도 하셨으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오프에게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 이유로 한 달에 한 번, 심각한 발작을 일으켰다. 약을 미리 먹어 두지 않으면 그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성장함에 따라 증상은 점점 심각해졌고, 성년이 되던 해에 절정에 달했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내가 지시했던 일은 어찌 되었지?”

“네. 확실히 수상한 냄새가 나더군요.”

코로니스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르프 제국에 온 지오프리는 미오와 최대한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었다.

카스피언에서는 이것저것 제약이 많았으니까.

그가 어딜 가든 카스피언 공작이라는 저주 같은 이름이 따라다녔고, 이것은 카스피언 공작 부인이 된 미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괜한 욕심이었던 걸까.’

도르프 제국에 온 첫날부터 그는 기이한 사건을 마주해야 했다. 네 개의 제국에는 수인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그들 모두 수인인 것을 감추고 은밀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미오와 들렀던 항구 시장에서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수인 판매…….’

놀란 내색을 감추었지만, 감금된 수인을 보자 분노로 눈이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거야.’

미오와 함께 있는데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그녀가 다칠지도 모른다. 지오프리는 멀리 있는 코로니스에게 연락을 취했고, 밤에 다시 조사해 보기로 했다.

어둠이 내린 항구는 낮보다 더욱더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장이라기보다는 요새 같았다. 아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노예와 수인, 짐승을 지키느라 경비가 삼엄했다.

‘진짜 수인인지 확인해 보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수인을 만나기도 전에 입구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경비병의 실력이 생각보다 출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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