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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61)화 (61/123)

61화 나는 개가 아니다!

미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코로니스에게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서 지오프리의 옷에 고정했다.

―케겡.(지오프리! 나 좀 봐!)

미오가 구슬프게 울었지만, 지오프리는 그녀를 전혀 봐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망토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를 꺼냈다. 미오의 두 눈이 거꾸로 매달린 꿩과 마주쳤다. 죽은 지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미오는 네 발을 버둥대면서 다시 한번 사정했다.

‘다시 집으로 데려가 주면 불면증 그거 치료해 줄게! 내가 비법을 알아!’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까지 막 지어냈다.

하지만 매정한 지오프리는 그녀를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는 자에게 내줘 버렸다. 천에 돌돌 싸인 미오는 코로니스의 두 손 위에서 벌벌 떨기만 했다.

‘눈, 눈이 없어!’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의 검은자가 없어서 소름 끼쳤다. 새하얀 눈이 미오의 비밀을 죄다 꿰뚫은 듯 날카롭게 번들댔다.

“오호, 여우를 기르십니까?”

쇠를 긁는 것 같은 코로니스의 음성에 미오는 천 속으로 고개를 숨겼다. 지금이라도 다시 지오프리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정이 생겨서 잠시 돌봐 주는 것이다.”

“기르되 정은 주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헛소리는 그만하고…….”

코로니스의 말에 지오프리가 손을 들어서 귀를 매만졌다. 그의 모습을 살피던 코로니스가 킬킬대며 입을 뗐다.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될까요.”

“여우의 모습을 바꿔 주면 좋겠다.”

“독점하시렵니까?”

혼자 낄낄 웃으면서 미오를 감싼 천을 풀어 헤치는 코로니스의 손길이 굼떴다. 완전히 풀려나자 미오는 낯선 자의 손을 뿌리치고 문까지 달아났다. 문손잡이에 손이 닿지 않아서 발톱으로 문을 박박 긁는데, 코로니스가 다시 킬킬댔다.

“바보처럼 굴지 말고 얼른 이리 와라. 조금 있으면 내 힘이 약해져서 도와줄 수 없으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던 코로니스가 손을 까닥하자, 미오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놀란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데 코로니스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스피란티 포르레비니스 레데베 넨돔 푸마니스…….”

―끼잉끼잉.(이게 다 뭐야. 날 내려 줘!)

그녀는 풍성한 꼬리가 줄어드는 기분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건 북극여우의 자존심인데! 왜 마음대로 내 몸에 손을 대는 거야! 이런 마법 따위 당장 거두거라!’

곧 그녀를 감싸고 있던 막이 사라지자,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연속되자 미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구나.’

그녀의 세상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여우가 바닥에 부딪치기 전에 지오프리가 팔을 뻗어서 무사히 받았다. 두 손으로 여우를 보듬어 안은 그가 코로니스에게 턱을 까딱였다.

“수고했다.”

“제가 영광입죠.”

다시 흔들의자에 앉은 코로니스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바보가 그래도 길을 잃지는 않았나 보다. 낄낄.”

이미 기절해 버린 미오는 코로니스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늘어지게 한잠을 자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두 팔을 쭉 뻗다가 놀란 미오가 누운 채로 몸을 한 바퀴 뒤집었다.

괴상한 작자한테 걸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풍성한 꼬리도 털이 촘촘한 앞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뭐야. 악몽을 꾼 거야?’

한차례 식은땀을 흘린 미오가 앞발을 핥는데, 그녀가 누운 자리가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건가.’

냉큼 확인해 보니 그녀가 밤새 편하게 잠을 청한 곳은 웬걸, 지오프리의 가슴팍이었다. 그제야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자연스레 딴청을 부렸다.

“밤새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지오프리의 원망스러운 말을 뒤로한 그녀가 슬며시 아래로 미끄러졌다. 이건 그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도 이렇게 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다가 일어난 일이잖아!’

게다가 어제 마음대로 그녀를 꽁꽁 싸맨 다음에 그런 무서운 곳에 데려간 사람은 지오프리였다.

‘어제 일을 좀 따져 봐야겠어.’

등을 곧추세운 다음에 당장에라도 그를 공격할 것처럼 구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공작님. 사무엘입니다.”

곧 사무엘이 들어와서 침대 아래로 숨으려고 하는데, 지오프리가 그녀의 발을 움켜잡았다.

―깨갱깨갱.(왜 이래. 나처럼 예쁜 은여우는 사람들 눈에 띄면 안 좋아. 위험하다고!)

약을 챙겨서 온 사무엘은 지오프리와 함께 있는 작은 짐승을 확인한 후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 강아지를 기르신 겁니까?”

‘……강아지?’

사무엘의 말에 충격을 받은 미오가 그녀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무엘이 그러는 건 곤란했다. 지오프리가 그녀를 개인 줄 알았을 때도 북극여우라고 알려 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녀가 멍한 얼굴로 앞발과 사무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데, 두 손이 미오에게 향했다.

“제가 얼른 치우겠습니다. 요즘 성에 이런 일이 많네요. 뱀이 들어오질 않나. 공작님 침대에 이렇게 털을 잔뜩 묻히고…….”

미오를 번쩍 들어 올린 사무엘이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공작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내가 숲에서 주웠다.”

“……네?”

사무엘은 믿을 수 없는 말에 입을 크게 벌렸다.

공작은 사람과 짐승 같은 생명이 깃든 것에 통 관심이 없었다. 후원에 있는 앙겔라스도 숲에서 거두기는 했지만, 이 경우와는 달랐다. 그 거대한 짐승은 공작의 침대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래서 여기에 둔다는 말씀입니까?”

재차 확인하는데 공작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사무엘은 아무래도 사냥 대회 이후 공작이 이상해진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데…….’

그는 빨리 가서 로렌과 집사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다.

“더 분부하실 일이 있습니까.”

“……개에게 맞는 방석과 물그릇 같은 것을 가져다 두도록.”

“네. 공작님.”

충직한 사무엘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얼빠진 얼굴로 미오를 안은 채 문 쪽으로 향했다.

―깨갱깨갱.(아니! 나는 두고 가야지!)

“어, 미안하구나.”

그녀가 버둥대자 사무엘이 그제야 미오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 * *

미오는 어느새 공작이 키우는 개가 되어 있었다. 로렌과 집사도 그녀를 따로 보러 왔었고, 우르체카 대공은 수시로 드나들었다. 급속도로 피로감을 느낀 미오는 아무도 몰래 잠시 방을 빠져나왔다.

‘바보 개한테나 가 볼까.’

그녀가 없으면 누가 놀아 줄 사람도 없어서 심심해할 게 뻔했다. 그러다 손님방을 지나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기운 차리셔야죠. 그래야 공작님께 병문안도 가 보죠.”

“내가 아프다는 건 전달했겠지?”

“그럼요. 아가씨가 뱀 때문에 놀라서 몸져누우신 거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내가 그날만 생각하면 진짜 소름이 끼친다니까…….”

라비니아가 울먹대자 베스가 연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얼른 나으셔야죠. 곧 무도회가 열린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 전에는 무조건 일어나야지. 이번에는 기필코 공작님의 파트너로 무도회에 참석할 거야.”

베스와 라비니아의 대화를 엿듣던 미오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아니 뭐, 그 정도에 놀라?’

사람을 독살해서 내다 버리는 일까지 지시했으면서 말이야.

‘무도회 타령하는 걸 보면 아직 멀었지만.’

아무래도 라비니아에게 뭔가 더 특별한 추억을 안겨 줘야 할 것 같았다. 곧장 미오는 촘촘한 그물망을 찾아서 입에 물고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로렌이 아끼는 양봉장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꿀을 채집해서 쿠키나 차에 넣었다.

‘아, 저기 있네.’

그녀가 노리는 것은 로렌의 벌이 아니었다.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샛노란 몸에 까만 줄무늬를 지닌 벌이었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그냥 본 건 아니거든.’

땅벌은 말벌과에 속했는데, 쏘이면 퍽 고통스러웠다.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살금살금 땅에 난 구멍으로 다가선 미오는 망으로 입구를 막아서 몇 마리의 벌을 잡는 데 성공했다.

‘꿀벌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

망을 물고 걷는데 걸음이 퍽 신중했다.

돌아온 미오는 여전히 무도회와 드레스 걱정에 여념인 라비니아의 방에 망을 던졌다. 그리고 얼른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아니나 다를까, 라비니아의 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꺅! 이게 뭐야! 당장 창문을 열어! 물을 뿌려!”

처절한 라비니아의 비명에 미오가 입을 활짝 벌려서 웃었다.

‘……아직 한참 멀었어.’

다쳐서 숲속 쉼터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모른다.

‘나를 아주 우습게 봤겠다.’

미오는 그녀를 죽이려 한 사람을 절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지오프리는…….’

그를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원작에서 분명 여우는 지오프리 때문에 죽었다. 그가 검을 박아 넣지는 않았지만,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번에도 똑같았을까.’

책 속에 들어와서 숱하게 죽었지만, 눈을 뜨면 중요한 기억은 전부 날아가 버렸다. 머릿속에 남은 거라고는 정말 하찮은 것들이었다. 원작의 내용 조금과 곰과 사슴은 친구이며, 까마귀는 짜증 나는 존재라는 것 정도만 기억났다.

‘참 웃기는 기억이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도 모르면서, 자질구레한 것만 한가득 머릿속에 담고 있으니까.

“어딜 다녀온 거지?”

그녀가 지오프리의 침실을 찾자 안경을 벗어 내리던 그가 인상을 썼다.

“야생 동물이니 자유롭게 다니는 게 당연한 거지.”

‘뭐라는 거야.’

몰랐는데 지오프리는 혼잣말의 대가였다.

‘지금도 봐. 혼자 묻고 답하고 아주 난리잖아.’

미오가 협탁 아래 마련된 보라색 쿠션에 폴짝 뛰어오르자, 그가 몸을 숙였다.

“네 이름을 한번 생각해 봤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어.’

그녀는 미오라는 이름 말고는 다른 이름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지도 모르니까. 턱을 쿠션에 괴고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는데, 지오프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미오는 언제 오려는지 모르겠군.”

그의 입술을 타고 흐른 그녀의 이름에 심장께가 뻐근해졌다.

‘아무래도 광견병에 걸린 건가 봐.’

기묘한 감각에 미오가 앞발을 잘근잘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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