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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60)화 (60/123)

60화 기르되 정은 주지 않는다

“오! 은여우 아닌가? 이렇게 귀한 것을 잡아 왔군. 애완용으로 기를 작정인가?”

하필이면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여우를 보이고 말았다. 지오프리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알렉세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겁을 먹을 거야.”

알렉세이는 보기 힘든 지오프리의 모습에 놀란 눈을 했다.

“이렇게 다정한 주인이라니, 나도 작은 여우가 되고 싶군.”

“알렉세이. 알다시피 나는 환자니까 제발 좀 꺼져 주게.”

“그렇다면 저 여우를 내가 가져도 될까?”

알렉세이의 말에 지오프리의 얼굴빛이 싹 변했다.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자네는 원래 짐승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네.”

알렉세이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는 잠시 침묵했다.

“이리 와 보렴. 내가 고기파이와 말린 고기를 줄 테니…….”

주머니에서 말린 고기를 꺼낸 알렉세이가 미오에게 흔들어 보였다.

“알렉세이. 자네 덩치가 커서 무서워하는 것 같군.”

“그럴 리가! 나처럼 선하게 생긴 얼굴도 잘 없지.”

아예 쪼그리고 앉아서 여우에게 열렬한 구애를 하는 알렉세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저러다 강제로 품에 안고 달아날 기세라서 지오프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일전에 키에트 황제와는 무슨 이야기를 했나?”

그래서 지오프리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황제라는 말에 한숨을 내쉰 대공은 손수건 위에 고기를 둔 후에 침대 아래로 밀어 주었다.

“뭐, 늘 같은 이야기지. 전쟁과 세금, 무도회와 사냥 아니겠나.”

지오프리는 평소 그의 일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는 신이 나서 키에트 제국과 우르체카 공국에 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 * *

알렉세이가 다녀간 다음에야 미오는 침대 아래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앞발을 침대 난간에 걸친 미오는 그를 올려다봤다. 지오프리는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세로 고민 중이었다.

‘뭐야. 왜 또 저렇게 심각해.’

아까는 그가 그녀를 우르체카 대공에게 넘길까 봐 간을 졸였었다. 대공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너무 수다스럽고 그녀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였다.

‘아마 그와 지내다가는 사흘 만에 과로사할지도 몰라.’

아까도 그녀를 잡아 보겠다면서 팔을 쑥 밀어 넣더니, 먼지떨이까지 가져와서 마구 휘저었다. 미오가 작은 발로 그것을 밀어 내면서 작게 낑낑댔다.

‘그런데 내가 여기 남은 것을 이렇게 안심할 일인가.’

원작에서 지오프리와 여우의 관계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났다. 괜히 심란해져서 고개를 땅에 박는데, 커다란 손이 불쑥 내려왔다.

“왜 너까지 그런 얼굴이지? 아까 그자 때문에 놀란 거로구나.”

지오프리는 그녀를 이불 위로 올려 둔 후 손가락으로 턱을 한참 문질렀다. 미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 정도는 알려 줘야 하지 않아?’

그녀가 꼬리로 이불 위를 팡팡 치는데, 지오프리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늦기 전에 다녀오는 게 좋겠군.”

―끼잉.(그 몸으로 또 어딜 가.)

미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꺾은 후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가 걸치고 있던 침의를 훌훌 벗어 던지기 시작해서, 미오는 얼른 고개를 이불에 파묻었다.

‘또, 또 저러네.’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부드러운 천이 미오의 등에 닿았다.

“……?”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데, 지오프리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잠시만 참도록 해.”

‘그러니까 뭘?’

그는 미오를 얼굴만 나오게 한 다음 몸에 천을 돌돌 감았다. 영락없이 미라처럼 되어 버린 그녀는 네 다리를 버둥댔지만, 워낙 꽁꽁 감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보석이랑 금덩이를 달라고 해서 그래? 그래서 나를 처리해 버리려고 작정한 거야?’

미오가 촉촉해진 눈으로 그에게 호소했으나 지오프리는 그녀를 망토 안쪽에 밀어 넣을 뿐이었다.

맙소사!

잠시 방심했던 것이 이런 끔찍한 일을 불러일으켰다.

‘나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살려만 줘!’

잠시 후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찬 바람이 망토를 두드렸다. 사위가 어두워서 보이는 게 없었다. 공포는 배가되어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민감해졌다.

‘지오프리가 드디어 완전히 미쳤나 봐.’

절망으로 눈을 감는데, 몸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기분이 들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그가 2층에서 겁 없이 뛰어내린 것이다. 미오는 머리 위로 별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이 냄새는…….’

일전에 지오프리가 야심한 밤에 무언가를 묻고 있던 호수 근처였다. 비릿한 물 냄새와 향긋한 꽃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이대로 나 생매장되는 거야?’

살아 있는 채로 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밀려들어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숨이 막히는 건가?”

그녀가 우는데 망토가 열리더니 지오프리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곧 죽을 건데 숨을 쉬든 못 쉬든 무슨 상관이야!’

미오가 송곳니를 잔뜩 드러내자 그가 싱긋 웃었다.

“화를 내는 걸 보니 아직 기운이 생생하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지금 나를 죽이려는 거 아니야?’

미오가 슬쩍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데 어디선가 말이 나타났다. 저번에 숲에서 그녀가 쫓아 보냈던 그 말이었다.

“잠시 어딘가 다녀오는 거니까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당장 침대로 돌아가. 넌 환자야!’

아픈 몸으로 2층에서 뛰어내리질 않나, 말을 타겠다고 하질 않나. 지오프리는 정말이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훌쩍 말로 뛰어오른 지오프리는 밤길을 잘도 달렸다.

‘짐승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시력이 좋아.’

망토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그녀는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벌판을 달리는 지오프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턱선 위로 얇은 입술이 맞물려 있었다. 전방을 주시하는 그의 눈매에 마음을 온통 뺏겼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리면 좋겠다.’

그러면 원작이니, 몇 번의 죽음 같은 것은 잊을 수 있을까.

그냥 함께 이대로 말을 달리면 어떨까.

그의 품이 너무 포근해서 벗어나기 싫었다.

‘바람도 좋구나.’

달도 숨어 버린 밤, 사방이 고요하기만 했다. 넓은 세상에 오직 둘만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밤이었다.

“거의 다 왔다.”

“……?”

미오는 코를 킁킁대다가 숨이 멎을 뻔했다.

‘여기는 거기잖아!’

라비니아가 그녀를 내버렸던 땅이었다. 미오를 간식쯤으로 생각하던 들개 무리가 있는 무서운 땅.

―깨갱깨갱.(지오프리. 난 저기에는 안 가!)

그것은 말도 마찬가지인지 앞발을 들더니 입에 잔뜩 거품을 물었다. 인간보다 오감이 발달한 짐승은 본능적으로 이 땅에 서린 기이한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다.

“레오. 여기서 기다리도록 해라.”

말에서 내린 지오프리의 말에 검은 말은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콧김을 내뿜었다. 몸이 꽁꽁 묶인 미오는 눈빛으로 절박함을 드러냈다.

‘아니, 나도 안 들어갈 거야. 나도 짐승이잖아. 저 말이랑 여기 기다릴게.’

“……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여기 온 건 너 때문이니까 같이 가야 한다.”

미오는 그의 답에 소름이 끼쳐서 입을 떡 벌렸다.

‘동물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거야?’

모르겠다면서 그녀의 질문에 답을 떡하니 내어놓는 것이 아닌가.

* * *

안개가 자욱한 숲으로 들어서자 달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빛을 내는 것이라고는 이따금 날아다니는 작은 반딧불이뿐이었다. 미오는 딱딱 이가 맞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떨고 있었다. 호숫가에 파묻히는 것을 면했다고 생각했더니, 이렇게 무서운 숲에 오게 될 줄이야.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끔찍해.’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가 숲을 성큼성큼 걸었다. 득실득실한 뱀하며 작은 날벌레들이 지오프리의 근처에서 달아나느라 바빴다. 머리 위로 새도 아닌 날개 달린 것이 윙윙 소리를 냈다.

‘여기는 어디이고, 지오프리는 뭘 하려는 거야.’

점점 더 마음이 불안해진 미오는 울먹거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명색이 숲의 이인자는 되는 몸인데, 이런 일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결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오프리가 발길을 멈춘 앞에 산처럼 커다란 죽은 나무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그 아래 문이 하나 있었는데,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뱀이 주렁주렁 장식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의 목적지는 저 이상한 집인 것 같았다.

―끼잉끼잉.(저기는 죽어도 안 들어가!)

미오가 세차게 고갯짓을 하는데, 그는 보기만 해도 기절할 것 같은 문을 잡아당겼다. 내부는 숲보다는 조금 더 밝은 편이었지만, 잘 마른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쪽 벽에는 죽은 꿩이 매달려 있었고, 진득한 것이 담긴 병도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안의 내용물은 차마 볼 용기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코로니스. 안에 있나.”

지오프리가 소리를 내자 난로 앞에 있던 흔들의자가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 비어 있던 그곳에 누군가의 형체가 나타났다. 미오는 그 기이한 광경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아, 아무도 없었는데…….’

그때 가래가 잔뜩 낀 음성이 어디선가 흘렀다.

“오셨습니까.”

의자에서 일어서는 사람은 등이 심하게 굽어서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손가락 마디가 무척 시꺼멨고 긴 머리도 음침한 검은색이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군요.”

망토 속으로 숨은 미오를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미오는 무서웠지만,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 들어 본 목소리야.’

“이리로 주시죠.”

말라비틀어진 덩굴 채찍 같은 것이 지오프리를 향해서 뻗어 오자, 미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주지 마! 안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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