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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45)화 (45/123)

45화 질투입니까 (2)

“베스. 지금 공작님은 아마 침실에 계시겠지?”

미오의 질문에 화장대를 정돈하던 베스가 움찔거렸다.

요즘 베스의 기분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라비니아 베일 덕에 눈엣가시 같던 미오를 쳐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라진 것은 미오가 아니라 라비니아 아가씨였다. 게다가 별 볼 일 없는 줄 알았던 미오가 정말 우르체카 대공 각하의 사촌이란다.

‘사냥 대회를 공작님과 함께 가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니…….’

하찮게 여겼기에 깔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진짜 밉살스럽다니까…….’

우르체카 공국 출신 귀족이란 것을 감쪽같이 숨겼으니 말이다. 그래 놓고 이름을 물어보면서 친근한 척을 했다고 생각하자 열이 뻗쳤다.

‘귀족들이란 어쩔 수 없다니까.’

화장대를 훔치는 헝겊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공작이 미오를 끼고도는 것도 싫었는데, 이제 대공까지 난리였다. 매일 같이 산책하는데 미오의 뒤를 졸졸 따르는 모습이 흡사 커다란 개 같았다.

‘이대로는 안 돼.’

베일 영애도 없는 지금, 그녀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가만있다가는 카스피언 공작에 대공까지 죄다 미오에게 푹 빠지게 생겼으니까.

‘그래. 그게 좋겠어.’

공작이 저 계집을 싫어하게 할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마른 헝겊을 곱게 정리한 베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네. 아마 공작님은 지금 주무실 준비를 마치셨을 겁니다.”

사실은 씻고 계실 시간이었다.

이런 때 누가 침실에 들어간다면 공작님의 성격상 아마 엄청나게 비난을 퍼부을 게 분명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 나는 잠깐 나갔다 올 텐데, 로렌에게는 비밀로 해 주겠어?”

“물론입니다. 아가씨.”

베스는 최대한 공손하게 행동했고, 그 모습은 꾸며 낸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슈미즈 위에 가운을 걸친 미오는 슬리퍼를 신은 후에 천천히 침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걷는 미오의 눈에 불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요즘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와 손끝이라도 스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오프리의 냉랭한 음성이라도 듣고 싶을 정도였다.

‘곧 사냥 대회도 있는데 이대로는 곤란해.’

그와 접촉을 조금 해 두지 않으면 여우로 변하는 일을 겪을 것이다.

‘불면증이 심하니까 자장가를 불러 주겠다고 할까?’

분명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볼 게 뻔했다.

‘그래. 지오프리랑 자장가는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몇 가지 고안해 뒀으니 문제없을 것이다. 살금살금 복도를 지나친 미오는 공작의 침실 앞에서 인기척을 냈다.

“공작님. 저 미오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벌써 잠든 걸까?’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지오프리가 답을 했으면 했다.

‘고용인 누가 내가 지오프리 침실 앞을 서성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가뜩이나 이상한 소문이 파다했는데, 더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더구나 로렌은 그녀가 공작과 결혼이라도 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공작님 닮은 아기는 얼마나 예쁠지요.’

혼잣말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미오가 다 듣게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코에서 김이 쉭쉭 났다.

‘아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녀가 몇 분이나 서성댔지만, 공작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급한 마음에 할 수 없이 미오가 침실 문을 밀었다.

“공작님. 잠시만 실례할게요.”

문을 등지고 선 미오는 실눈을 살짝 떴다. 분명 지오프리의 잔소리가 날아들 줄 알았는데 침실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빛을 내는 것은 그의 침대 근처의 양초 하나가 전부였다.

‘벌써 자는 건가.’

하지만 쉼터에서 본 공작은 밤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몸이 아파서 깼을 때 난로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오프리를 여러 번 목격했다. 조심스럽게 침대까지 다가온 미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 간 거야?”

침대는 누군가 누웠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지오프리는 오늘도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베스가 아마 잘못 알았나 보네.’

주인 없는 침실에 머무르는 것이 신경 쓰여서 얼른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침실 옆에 딸린 작은 문이 열리더니 뿌연 연기가 방을 메웠다. 그리고 연기 속에 검은 가운을 걸친 지오프리가 서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지오프리의 눈이 가늘어졌고, 미오는 감탄을 품은 한숨을 뱉었다.

“……아.”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촉촉하게 젖은 그의 검은 머리, 물기 어린 얼굴에 살짝 핀 홍조가 그의 미모를 돋보이게 했다. 채 여미지 못한 가운 사이로 익히 잘 알고 있는 지오프리의 탄탄한 가슴 근육이 보였고 그 위로 물방울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예뻐.’

그녀보다 더 고운 지오프리의 미모에 홀딱 빠진 미오는 입만 벙긋댔다. 그녀가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지오프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다시 시작인가?”

커다란 거울 앞에 선 그는 수건으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지오프리는 거울로 손가락을 튕기면서 망설이는 미오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용감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감히 이 밤에 그의 침실을 찾다니 정말 대책이 없는 여인이었다. 극도로 예민한 지오프리는 그가 없을 때만 방 정리를 하게 했고, 목욕 시중을 받지 않았다. 침실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했고, 밤에 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때 까치발을 한 미오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지오프리가 모른 척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팔을 뻗더니 수건을 잡아챘다.

“뭐 하려는 거지?”

아직 물기가 많이 남은 머리를 쓸어 넘긴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시중, 시중들어 드릴게요.”

미오가 폴짝폴짝 뛰면서 그의 머리를 닦으려고 했다.

“나는 이런 시중은 받지 않는다. 이만 돌아가라.”

돌아선 지오프리가 그녀에게서 수건을 뺏으려고 했지만, 미오는 뺏기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지오프리는 수건 하나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뭘 하는지 묻잖아.”

힘을 세게 주자 수건을 쥔 미오가 단숨에 그의 품에 냉큼 안겼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의 가슴에 미오의 볼이 닿았다. 그녀는 화상이라도 입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뗐다.

“……쿨럭. 제가 그냥 닦아 준다고 했잖아요.”

공연히 수건 가지고 힘자랑을 하는 바람에 이게 무슨 일인가. 게다가 뒤에 서 있을 때는 견딜 만했는데, 그의 품에 안기자 미오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계속 이러고 있을 작정인가?”

“아니, 제가 안긴 것도 아니잖아요.”

수건 끝을 부여잡은 미오가 중얼대자, 그가 그녀의 몸을 떼어 내면서 쌀쌀맞게 굴었다.

“나를 왜 찾아온 거지? 그, 팬인가 하는 건 그만둔 게 아니었나?”

“……하.”

그녀를 비난하는 것 같은 지오프리의 음성에 미오가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할 말인데요.”

카스피언가의 손님이라면서 낮에 항상 식사하자고 권했던 것은 그다. 싫다는 사람을 붙들고 정원을 걷게 한 것도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던 지오프리는 한순간 그녀를 모른 척했다. 알렉세이 우르체카 자체가 불편한 것보다는 그게 더 그녀를 힘들게 했다.

‘지오프리가 이대로 나를 어디론가 보낼까 봐.’

왜 이런 불안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들리지?”

그녀의 손에 들린 수건을 뺏어 간 지오프리가 남은 물기를 떨어내면서 중얼댔다. 왜 원망하는 기분이 드는 건지 그녀도 모른다. 바쁘다고 말하면서 사라지던 지오프리의 등을 지켜보는 것이 왜 그리 쓸쓸한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글쎄요.”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미오가 우물대자 지오프리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 올렸다. 그녀가 목욕할 때 쓰는 향료와 같은 향이 지오프리에게서 풍겼다. 별것 아닌데 이상하게 그녀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오프리가 쥐고 있던 수건을 바닥으로 떨구면서 물었다.

“그럼 대공보다 내가 더 좋은가.”

“……네?”

‘……장난이겠지.’

상상도 못 했던 질문에 미오가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지오프리의 검은 눈동자는 조금의 장난기도 담고 있지 않았다. 새까만 밤하늘처럼 고요했다. 그 안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는 일은 어쩐지 가슴을 뛰게 했다.

“왜 대답이 없지.”

지오프리와 너무 가까이 서 있다는 것이 이제야 의식되었다. 입을 열면 그녀의 심장 소리도 함께 밖으로 흐를 것 같았다. 미오가 한 발 뒤로 물러서려는데, 바닥에 떨어진 수건이 밟혔다.

“……앗.”

넘어질 줄 알았다.

저번에 춤을 출 때 그는 그녀를 잡아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미오는 지오프리의 품에 갇혀 있었다.

‘숨을 못 쉬겠어.’

그의 커다란 손이 미오의 허리를 움켜잡았고, 그녀의 두 손이 가운 위를 붙들었다. 맞닿은 두 가슴이 거칠게 뛰어 댔고, 미오는 놀란 가슴을 달래느라 몸을 떨었다.

“그 대답은 이미 들은 것 같군.”

한참 만에 입을 연 지오프리의 말에 미오는 몸을 떼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꽉 잡은 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지오프리는 그의 팬이라는 미오를 귀찮아하고, 싫어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글쎄.”

언제나처럼 애매한 답을 내어놓는 지오프리의 눈을 응시하는 미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저는 그만 가 봐야겠어요.”

지오프리의 손길에서 벗어난 미오가 허둥지둥하자 그는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문이 채 닫히기 전에 지오프리가 속삭였다.

“일단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음성이었다. 은은한 달빛이 그의 날카로운 턱에 와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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